KinoDAY2024-11-25 16:07:38
위키드 | 뮤지컬보다 더 화려하게, 풍성하게, 날카롭게
<위키드>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초록색 피부와 마력을 타고난 마녀, '엘파바'(신시아 에리보). 그녀는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동네 사람들에게 따돌림과 차별 대우를 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시간이 흘러 여동생 '네사로즈'(마리사 보데)가 오즈의 마법 학교인 쉬즈 대학에 입학하고,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돕기 위해 입학식에 동행했던 엘파바는 뜻하지 않게 교장 '마담 모리블'(양자경)의 눈에 띄어 같이 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에서도 이상한 눈초리를 받으며 외톨이로 지내던 엘파바. 하지만 그녀는 룸메이트가 된 것을 계기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우정을 쌓아 나가고, 마담 모리블과의 마법 수업에 열중하며 마력을 갈고닦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엘파바는 어릴 적부터 롤모델이었던 '마법사'(제프 골드블룸)의 초대를 받아 글린다와 함께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고,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두 친구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뮤지컬과 영화 사이의 중용
2012년 겨울에 개봉한 <레미제라블>이 4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자 유니버설 픽처스는 본격적으로 유명 뮤지컬 영화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할리우드에서는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성공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뤄졌으니, 그 반대로 접근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렵지 않게 떠올랐을 테니까.
다만 유니버설 픽처스의 프로젝트는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레미제라블> 다음 주자들은 영화와 뮤지컬이라는 매체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줄줄이 혹평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 <캣츠>는 뮤지컬 무대를 스크린으로 똑같이 옮기려고 배우에게 CG로 고양이 분장을 덧입혔다가 기괴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몇몇 뮤지컬 넘버를 삭제한 <디어 에반 핸슨>은 원작과 달리 스토리 개연성 문제를 노출하고 말았다.
동명 뮤지컬을 영화화한 <위키드>는 앞선 실패를 확실히 반면교사로 삼은 듯하다. 원작 팬과 영화 관객 모두의 니즈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 뮤지컬 넘버를 줄이지 않는 대신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눴고, 뮤지컬보다는 판타지 장르를 강조하면서 일반 관객에게 어필했다. 이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2부를 기대케 하는 결말의 카타르시스만으로도 <위키드>는 목적을 충분히 이뤘다.
청각 대신 시각, 뮤지컬 대신 판타지
<위키드>는 뮤지컬의 1막 내용을 다루며, 그중 가장 유명한 노래는 엘파바가 서쪽 마녀로 거듭나는 'Defying Gravity'다. 문제는 이 노래가 1막 끝에 나온다는 것. 그러다 보니 <위키드>는 뮤지컬 영화인데도 노래만으로 영화 관객을 매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상대적으로 인지도 높은 넘버가 부족하기에 'Dream' 같은 노래로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한 <레미제라블>과 같은 방식을 활용할 여지 자체가 없다.
그래서일까? <나우 유 씨 미> 시리즈 및 <스텝 업> 시리즈 연출 및 제작을 맡았던 존 추 감독은 노래보다는 노래를 보여주는 방식에 힘을 줬다. 특히 판타지 분위기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존 추는 <인 더 하이츠>와 같은 작품에서 진하고 다양한 색감, 선명한 영상, 리드미컬한 편집과 같은 특징을 선보였다. 이러한 기교는 불가해한 현상을 신비하고 경이롭게 보여줘야 하는 판타지 장르에 최적화되어 있다.
존 추의 기교는 엘파바와 글린다가 에메랄드 시티를 구경하는 'One Short Day' 시퀀스에서 빛을 발한다. 두 주인공의 시점에서 에메랄드 시티의 거리와 전경을 자유롭게 오가며 비현실적인 장면을 더욱 과장해 흥미롭게 풀어낸다. 원형으로 움직이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Dancing Through Life' 시퀀스도 마찬가지다. <나유 유 씨 미 2> 속 카드 마술 시퀀스처럼 등장인물과 카메라의 다채로운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1부의 대미를 장식하는 'Defying Gravity' 시퀀스의 연출을 보면 <위키드>가 뮤지컬의 청각적인 즐거움보다는 판타지 영화의 시각적 쾌감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진다. <맨 오브 스틸>처럼 상하 움직임과 속도감을 강조한 엘파바의 활공 장면이 오즈의 화려한 산과 숲을 배경으로 펼쳐질 때, 노래와 가사 자체의 감동도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현실을 후벼 파는 판타지
이처럼 뮤지컬보다는 판타지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선택은 스토리와 메시지도 더 명확하게 만든다. <위키드>는 사람이 원래부터 악하게 태어나는지, 아니면 자라면서 악하게 되는지에 관한 오래된 논쟁을 다룬다. 이때 판타지라는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덕분에 차별과 분리주의에 대한 <위크드>의 풍자와 비판은 현실의 숨은 체계와 구조를 부드럽게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위키드>에는 크게 두 종류의 차별이 있다. 피부색과 동물 차별이다. 둘은 얼핏 보기에 다른 유형의 차별 같다. 전자는 사람들의 인식에 기반한 반면, 후자는 동물이 교수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등 정책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 실제로 극 중에서도 엘파바가 동물 차별에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두 종류의 차별은 별개로 자행된다. 그전까지 엘파바는 다르게 생겼을 뿐, 서쪽 마녀처럼 잔악한 인물로까지는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이 엘파바를 마녀로 규정하며 수배를 내리는 장면을 곱씹어 보면 두 차별은 결국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물 차별과 엘파바 수배 모두 마녀 사냥의 일환이기 때문. 특히 중세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은 진짜 마녀보다는 주류 질서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 탄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 집단을 악마화하면서 공동체 질서를 강화하고 결집을 도모하는 전략적인 접근인 셈이다.
즉, <위키드>는 판타지 세상에서 마녀 사냥을 재현하면서 권력의 선택에 따라 누구든 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엘파바는 그저 피부색만 달랐지만, 인간 중심 질서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동물보다 더 악한 존재로 공표된다. 이처럼 동물과 엘파바 같은 사회적 소수자를 악인으로 낙인찍고 탄압하는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유대인과 집시를 절멸시키려 한 히틀러를 비롯해 여러 권력자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구조를 넘어서는 개인의 힘
현실의 구조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희망의 끈도 놓치지 않기에 <위키드>가 들려주는 서쪽 마녀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 있다. 극 중 글린다는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색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소수자를 차별하면서도 그 행동이 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즉, 그녀는 일반적인 집단, 사회적 다수에 속하는 이들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다.
그렇지만 <위키드>는 개인의 양심이 깨어나면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엘파바를 놀리려고 마녀 모자를 선물하면서 파티에 초대한 글린다. 하지만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에 에워 쌓인 엘파바를 보면서 그녀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며, 엘파바의 유일한 친구가 된다. 또 설령 본인은 마법사나 마담 모리블에 못 맞서도, 엘파바에게 망토를 둘러주며 그녀의 비행을 돕는 용기도 보여준다.
마법사의 성에서 추락하던 엘파바가 마침내 날아오르는 순간은 글린다의 응원과 조력 덕분에 단순한 쾌감 이상의 카타르시스로 가득하다. 마치 히틀러와 나치에 대놓고 저항은 못해도 남몰래 유대인을 돕던 사연을 보는 듯하기 때문. 특히 두 여성의 관계가 2부 내용 전개의 핵심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풍성해진 그들의 우정은 <위키드: 파트 2>에 대한 기대를 더욱 돋운다.
여전한 매체의 한계
다만 <위키드>가 뮤지컬과 영화라는 매체의 간극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며 판타지 색채를 덧칠한 선택이 영화적 관점에서는 종종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 당장 연결이 어색한 시퀀스가 적지 않다. 2부에서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 사자, 양철인간, 허수아비 등으로 이어지는 중요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맛보기처럼 보여주는 대목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부 전개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장면이지만, 1부의 중심 내용인 엘파바의 성장 서사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뮤지컬은 근본적으로 세밀한 스토리텔링이 어려운 장르이기에 엘파바와 '닥터 딜라몬드'(피터 딘클리지), 엘파바와 '피예로(조나단 베일리)' 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풀어내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의 서사를 보여주며 복선을 쌓는 과정은 곁가지이자 수박 겉핥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1부와 2부로 나눈 구성의 한계도 숨겨지지 않는다. '기승전결' 중 '승'까지 다루고 있으니 '기'의 단계가 특히 지루해진다. 물론 다양한 시도로 한계를 극복하려고는 한다. 엘파바의 학교 생활, 엘파바와 글린다가 친구가 되는 과정을 묘사할 때는 <해리포터> 같은 마법학교 배경의 판타지처럼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를 여럿 풀어놓는다. 여기에 노래가 더해지다 보니 마치 <하이스쿨 뮤지컬> 같은 분위기도 조성된다.
하지만 엘파바가 겪을 차별 대우나 사건이 예상 가능한 지라, 원작 넘버를 다 살리려고 분량을 줄이지 않은 선택은 중반까지의 흐름이 늘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레미제라블>이 '아베쎄의 벗들' 분량을 줄였듯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남는 지점이다. 그 결과 16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절대적으로도 길지만, 체감상 더 길게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는 몇몇 기술적 단점이 눈에 띈다. 80년대 분위기가 나는 오프닝 자막은 <위키드>라는 작품의 위상과 규모에 비하면 성의 없어 보일 정도로 당황스럽다. 또 라이선스 공연의 가사를 참조하며 한국어판 가사에 맞추려 한 것은 알겠으나, 'Popular'나 'Unlimited' 같은 단어를 음역한 자막은 영화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듯 느껴진다. '뮤지컬' 영화가 아닌 뮤지컬 '영화'라는 관점에서 가사를 번역하면 어땠을까 싶다.
Acceptable 무난함
판타지로써 뮤지컬 영화의 장단점을 기묘하게 상쇄시키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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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시장’이라는 미장센을 구성한 여성 노동자들의 확대경
근로기준법, 평화시장, 전태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노동의 환경들엔 이미 알려진 노력들외에도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우리가 몰랐던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을 통해 들려준다.
‘굶는 것에 굶주렸던 사람이잖아요. 근데도 너 밥 먹을래 노동교실 갈래하면 노동교실 간다고 할 정도로…’
-신순애 인터뷰 중,
‘시다'가 하는 일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저 할 수 있어요’라고 대담하게 외치며 시작한 공장일은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해야했던 소녀들은 청계피복노동조합과 노동 교실을 만난 후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그녀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탄압하고자 정부는 노동 교실을 강제 폐쇄하고 그녀들은 정부에 맞선다. 노동 교실에 가는 것이 삶이었던 소녀들 중 일부는 뭣도 모른 채 대담하게 맞서지만 이내 빨갱이라는 누명과 협박에 도달한다.
1977년 9월 9일 피고인으로 소환되기 직전 공장으로부터의 일시적 탈주에 대해, ‘전야제였지'라며 회상하는 바닷가 시퀀스는 파도치는 바다 앞에 서있는 세 인물의 풀샷-클로즈업샷-풀샷-클로즈업샷을 반복한다. 마치 이 프레임을 완성시킬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확대경으로 확대하는 것처럼 1970년대 ‘평화시장’이라는 미쟝센을 구성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확대하는 듯 보여준다.
이 과거는 이들에게 어떤 기억이었을까.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기억, 억울하고 아픈 기억이라 자식에게도 선뜻 말할 수 없었다는 임미경씨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터뷰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요즘은 아무도 남들에게 신경쓰지 않아'라는 딸의 말 덕분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다.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임미경씨의 마음에도 이 이야기가 널리널리 멀리까지 닿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생길뿐이다.
어두운 방, 대화를 하듯 인터뷰하는 인물들 뒤로 보이는 스크린. 투영된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등장인물들은 어느순간부터 투영된 과거의 자신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과거의 10대 자신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크고 많은 노력에도 기록되지 못해 지워진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중 70년대를 이뤄낸 여성들의 캐릭터, 아카이브와 연결된 증언, 연대까지 완벽한 서사는 2021년의 중요한 기록물이 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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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세련된 복수극이라니,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2020)
그동안 <킬빌 시리즈>, <리턴 투 센더>,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여성 서사의 복수극들을 흥미롭게 봐 왔는데, <프라미싱 영 우먼>은 조금은 독특한 화법으로 이를 그려내어 더 인상 깊었던 영화이다. 처음엔 잔물결을 일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점점 파장이 거세지는 전개 방식이 참 매력적이다.
<캐시가 쏘아올린 작은 공>
캐시는 자신의 절친인 니나가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된 일련의 사건 이후로, 해당 사건에 가해자들을 찾아가 대신 복수를 해나간다. 처음엔 그들을 하나 둘씩 찾아가 살인을 저지르고 범죄 흔적을 지우는 전개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자신이 니나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가해자들이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할지 그들을 시험에 놓게 하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타이밍을 잡는 시기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목적으로 캐시를 대한다. 캐시는 그 때마다 돌변해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그들이 잠재적 범죄자임을 인정하게 한다. 하지만 예상했듯이 모두가 자신의 행동을 자기합리화하고, 심지어 방관자인 친구는 니나가 당한 그 날의 일을 피해자인 니나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7년이 지났음에도 왜 아직도 그 일을 들먹이냐는 듯이, 가장 끔찍한 ‘그 땐 어렸고 생각이 없었다.’라는 변명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단 한 사람, 그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 한 명만이 죄책감을 떠안고 살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사건의 시작점일 뿐이라는 걸 그들은 알았을까.
<사건을 다루되, 피해는 적게>
무엇보다 피해자가 당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한다는 컷이라던지, 니나에 대한 일절의 말 없이도 충분히 전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외부 노출은 최대한 줄이고, 오히려 가해자들을 더욱 부각시켜 누가 봐도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주는 데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사건들을 다룰 때 일부 매체들은 그들의 피해 여부를 세세하게 드러내고, 심지어 피해자의 신상까지 알려져 2차 가해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작품은 그런 것들까지 인식을 하고 최대한 보호하려는 입장이 보여서 사건을 다루는 바람직한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상황을 맞닥뜨린 주변인들의 감정에 더 집중하여 관객들이 그들에게 더 이입하도록 도움을 준다.
<영리한 복수극>
후반부는 어떻게 보면 마냥 통쾌하지 만은 않다. 오히려 나에게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더욱 큰 감정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캐시가 모두에게 벌을 주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는 낭만적인 해피 엔딩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전개가 더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고 와닿지 않을까. 결국 캐시는 또 다른 2차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언제나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예상한 캐시의 마지막 일침은 그들을 평생 후회 속에 살게 할 것이다. 가해자 중 유일하게 양심을 가지고 있었던 판사의 행동으로 그들은 법적인 책임을 물게 되고, 니나와 캐시의 복수는 성공리에 끝나게 된다. 그들이 해낸 복수가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망각이나 철없음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는 모든 가해자와 방관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사건들은 또 다른 큰 피해가 발생해야 비로소 재조명되는 걸까. ‘복수는 이제 시작일 뿐이야.’라는 문자를 끝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 있어서 모든 일이 드러나는 결말은 공허함과 허탈함이 남는다.
<미적 감각과 사운드트랙까지>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2000년대 초반의 하이틴 감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클루리스>,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같은 톡톡 튀고 과감한 색들의 사용으로 변곡점을 주기도 하고, 카페나 인물들의 집 같은 인테리어들 또한 모든 프레임을 완벽하게 생각한 듯한 느낌을 준다. 사운드트랙 또한 그때의 감성을 담았다. <Toxic>, <It’s Raining Men>과 같이 반가운 음악들이 종종 나온다. 특히 <Toxic>은 장면과도 너무 잘 맞는 음악이라서 한동안 계속 귀에 맴돌 것 같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받아드리게 되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7년 동안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캐시, 잔인하게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로 자신만의 복수를 계획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오히려 악을 완전히 처단해 버린다는 그런 극적인 설정들보다 우리가 평소에 뉴스에서 접하던 사건을 재조명하여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어서 이 또한 관객들이 이 주제에 대해 더 무겁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한 것들이 어쩌면 가장 현실에 와닿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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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이란 바다를 가로지르는 실화, 그리고 여성의 힘!
실화, 스포츠, 여성! 영화로 제작하기에 매력적인 요소가 넘치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영화 <여인과 바다>는 우리가 알고 기대하는 범위 내에서의 재미를 전하는 스포츠 전기 영화다. 사회적 편견이 담겨 있는 듯한 높은 파도와 거친 바다를 가로지르며 프랑스에서 영국까지 34km에 이르는 거리를 헤엄쳐 세상을 놀라게 한 트루디 에덜리의 기적 같은 도전은 예상만큼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어느 순간 감동이 온몸을 적신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포츠 전기 영화의 정공법을 따라가려는 마음, 트루디 에덜리만이 아닌 그녀의 도전 뒤에 감춰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줘야 겠다는 그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트루디(데이지 리들리)는 보기보다 강인하다. 과거 홍역을 심하게 앓고도 살아남았고, 수영이 배우고 싶은 마음에 이를 반대하는 옹고집 아빠의 기를 꺾었다. 과거의 경험은 그녀에게 ‘하면 된다’는 믿음을 갖게 했는데, 그 결과 미국 올림픽 수영팀 최고의 선수가 된다. 많은 기대 속에 출전한 1924년 파리 올림픽. 하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실의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극장에서 영국해협 수영 횡단 도전 소식을 접한 트루디는 잊고 지냈던 열정이 되살아나고, 여성으로서 첫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다.
<여인과 바다>는 스포츠 전기 영화인 동시에 1900년 초 사회적으로 편견과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의 삶을 오롯이 옮긴 작품이다. 극 중 독일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트루디가 직접 맞서 가로질러야 하는 건 바다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가부장적으로 돌아가는 사회다. 당시 노출 1도 없이 온 몸을 감싼 여성들의 수영복만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여자는 안돼’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해 애 낳고, 살림하는 등 굳어진 성 역할을 이행하는 게 우선이다. 진보적인 성향의 트루디에겐 답답할 노릇. 결국 그녀는 고정관념에 쌓인 이 사회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헤엄쳐나가는데, 그 정점이 바로 영국 해협을 건너는 일이다.
남자들도 어렵다는 영국 해협을 건너겠다는 그녀의 무모한 도전은 현실화된다. 하지만 사회는 그녀의 도전에 박수 대신 “12km도 못 갈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죽을 겁니다” 라는 악담을 쏟아붓는다. 더불어 미디어는 그녀의 수영 실력이 아닌 수영복, 외모 등 신변잡기에만 관심이 있다. 그만큼 그녀의 성공을 바라는 이는 극히 드물다. 어렸을 때부터 지는 걸 싫어했던 트루디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부장적 남성 코치가 권하는 평형이 아닌 자신을 수영선수로 이끌어준 여성 코치가 알려준 자유형으로 헤엄친다. 자기 자신을 믿고 바다를 건널 용기를 낸 그녀는 급변하는 조류, 해파리 떼 등 갖가지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끝내 영국 땅을 밟는다.
기적과도 같은 이 실화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여는 스포츠 실화 영화처럼 이 부분은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이유는 실화의 무게감 때문에 제대로 옮기는 것 자체에 큰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
연출을 맡은 요아킴 뢰닝은 실화가 가진 장점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듯 <쿨러닝> <글로리 로드> 등의 디즈니의 대표 스포츠 전기 영화의 정공법을 따라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의 극대화를 노린다.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반부 감동이 배가되는 스포츠 전기 영화의 공식처럼, 감독은 초반 트루디가 겪어야 하는 사회적 편견과 시선, 그로 인해 꿈이 좌절되는 과정을 차근히 보여준다. 1,500m 장거리 수영 경기처럼 힘을 비축하면서 후반부에 스퍼트를 내는 형식으로, 도전을 통해 이런 부분들이 하나씩 타파되면서 끝내 마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큰 울림을 전한다. 특별함은 없지만, 정공법을 우직하게 따라가면서 실화의 힘을 오롯이 담으려는 감독의 노력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영화의 감동을 배가 시키는 건 역시나 트루디 역을 맡은 데이지 리들리의 연기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줬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리듬에 맞춰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는 여성을 그린다. 극 중 절대 자신을 물 밖으로 나오게 않게 해달라는 트루디의 말처럼 세상의 편견을 깨기 위해 모든 걸 건 여성이자 인간의 집념을 호소력 있게 연기한다. 촬영 몇 개월 전부터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수영을 배웠다는 그녀의 노력도 한몫한다.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트루디의 뒤에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딸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은 엄마, 함께 수영을 배우며, 해협을 건널 때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는 언니, 그리고 수영 실력을 키워주고 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게 도와준 여성 코치 등 여성들의 작은 힘들이 곧 트루디의 성공을 이뤄낸 요소라는 걸 알려준다. 물론, 피상적으로 그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들이 나눈 연대와 사랑은 적지 않은 감동을 전한다.
파리 올림픽 시즌에 맞춰 공개한 <여인과 바다>는 트루디를 통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나약함을 이기는 용기와 할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각국 대표 선수들과 오버랩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트루디에게 빛을 선사한 이들처럼, 처절하고도 외로운 싸움을 해 나가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응원이란 작은 불꽃을 선사해 보는 건 어떨까! 올림픽 기간 동안 컴컴한 새벽에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불빛이 켜지기를 희망해본다. 참고로 실화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엔딩크레딧 직전에 트루디 에덜리의 실제 모습이 나온다. 끝까지 지켜보길 추천한다.덧붙이는 말
- 1926년 트루디의 영국 해협 횡단 기록은 14시간 31분으로, 기존 남자들이 세운 기록보다 2시간을 단축했다.
- 횡단 성공 이후 트루디는 ‘파도의 여왕’이란 찬사를 얻는다.
- 과거 홍역을 앓고 나서 소리를 잘 듣지 못했던 트루디는 횡단 성공 이후 완전히 청력을 잃는다
- 트루디는 자신처럼 청각장애 아이들을 지도하며 남은 여생을 보낸다.
사진제공: 디즈니플러스
평점: 3.0 / 5.0
한줄평: 디즈니표 스포츠 실화 영화의 장점이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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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가 산 자를 또 살릴 때.
이 글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재개봉이니까 봐줍시다. 글을 퍼가실 때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단 5분이다.
무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제출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감독의 작품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난 뒤에 감상해도 전율로 몸서리치게 만들기 충분한 시간. 그러나 이 시간은 영화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허세의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행하는 작전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병사들의 얼굴. 들리지도 않게 입 안에서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기도. 지휘관조차 손을 떨며 맞이해야 하는 불과 몇 분 후의 두려움들을 비춘다. 군인들의 어깨에 고요하게 내려앉은 공포를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실체로 바꾸어 보여주는 이 5분은 폭발적이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며. 이를 그저 지켜봐야 하는 관객인 나마저도 그 처절함과 처참함에 온몸이 떨려온다.
그렇다. 이 작품은 이미 초반 5분 만에 영화 역사 길이 남을 만큼 기강을 확실히 잡긴 했다. 그러나 전쟁영화라는 장르에 속하는 것 치고는 사실 전투씬 자체가 차지하는 시간적인 비중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왕좌에 앉아 영원히 군림할 제왕이 되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나는 감독의 그 탁월한 선택에 경이와 감사를 함께 표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는 전쟁이 가진 비참함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가 해석한 전쟁에서는 죽음이나 승리, 비장함 등을 과대포장하지 않았다. 상부의 명령은 언제나 부조리하거나 모순적이고. 그로 인해 전쟁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언제나 병사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해변에서 널브러져 죽어가는 생선만큼이나 하찮게 그려진다. 심지어 밀러(톰 행크스)의 죽음마저도 전쟁 속 오고 가는 수많은 총알 한 발로만 그려질 뿐. 소위 말하는 “가오”를 단 한 순간도 느낄 수가 없다.
감독이 해석한 전쟁 속에는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백하다 못해 냉정하고 덤덤해 보이게 연출할 수 있었던 데는 배우 톰 행크스의 역할이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종전되기 전 까지는 모든 것이 과정일 뿐이고, 그 속의 개인은 그저 부품일 뿐이라는 것을. 밀러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은 표현 해 낸다. 이 무미건조함에 매몰된 관객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한채, 세 시간짜리 전쟁이 주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어야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몇십 년 전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촌스럽지 않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동시대를 살면서 이 작품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감독에게, 그리고 모든 배우들과 참가자들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뉘우침(?) 뒤에야 밀러가 라이언(맷 데이먼)에게 건넨 마지막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밀러는 100명에 가까운 자신의 부하들을 잃고 나서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영혼들의 넋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이 빚을 갚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자신의 삶이 증명됨과 동시에 그들의 죽음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밀러는 주인공 버프 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밀러의 표정은 아주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다. 마치 죽은 부하들이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살린 것처럼. 자신 또한 이제 죽은 자가 되어 라이언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을 살려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라이언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토록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자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마지막 숨결에 실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으니.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라고.
마치면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실 잭슨(배리 페퍼)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나이퍼들의 순위를 매길 때마다 매번 상위권에 랭크되곤 한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매 순간의 위기를 해결해 내는 담대함이 늘 그를 멋있는 존재로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지닌 두려움이 명확하게 보였다. 잭슨은 한 발 한 발 장전하고 쏠 때마다 마치 주문처럼 성경구절을 읊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마치 스스로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 들렸기에. 그가 마주한 두려움의 크기에 측은함 마저 느껴졌다.
비록 작품 속이지만. 잭슨의 기도가 공허하게 울려펴지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의 TMI]
1. 내가 진짜 아무리 다시 봐도 업햄은 용서가 안 된다. 너어는... 진짜..
2. 커피랑 프로틴 바 들고 들어갔는데 하나도 못 먹음
3. 드디어 재개봉 영화 관람 끝났다.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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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생과 폭력의 경계에서 제시한 질문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갱생과 폭력의 경계에서 제시한 질문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출연 : 말콤 맥도웰, 패트릭 마지, 마이클 베이츠, 워렌 클라크
시계태엽 오렌지 시놉시스
노숙자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주택 침입…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극악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저택에 침입해 주인과 싸우고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에 검거된다. 살인죄가 적용되어 14년 형을 살게 된 ‘알렉스’. 좀 더 빨리 감옥을 탈출하고자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스탠리 큐브릭. 나는 이 이름을 들으면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질어질하다. 스릴러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영화 <샤이닝>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1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같은 시대를 뛰어넘은 SF 명작과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남긴 감독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스탠리 큐브릭’은 충격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샤이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몇 달을 볼까 말까 고민했던 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이 느낌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역사를 남긴 인물이자 나에게 충격을 선사한 영화인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모든 사람들이 깨면 안 된다고 말하는 벽을 인정사정없이 걷어차다 못해 산산조각 내버리는 영화 같았다. 1971년 당시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만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나, 그에 닿기까지의 과정이 심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라 나름 무던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보고 있기 조금 힘든 수준이었다. 우선 절대, 가족과 함께 볼 영화는 아니고... 누구랑... 아니, 그냥.. 혼자 봐야 할 것 같다.
범죄 본능을 가진 주인공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소년 알렉스다. 그는 밤이 되면 친구들과 가벼운 비행을 넘어선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 보통 이렇게 탈선을 한 주인공이 나오면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간단한 이유라도 있기 마련인데, 알렉스에게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에게 범죄란 본능이다. 폭행하고 갈취하고 추행하는 모든 파렴치한 행동이 그저 즐겁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이런 행동들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 알렉스는 거침없이 일을 저지르다 청소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로도 막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공범인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쓴 알렉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된다. 하지만 ‘갱생’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커다란 조직 안에서도 알렉스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악마라도 들은 거냐?”는 질문에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그는 악의 기질을 타고난 골칫덩이로 보인다.
그렇게 감옥에서의 지겨운 시간이 지나고 알렉스에게 조기 석방의 기회가 생기는데, 그 시점부터 알렉스가 말하는 ‘비극’과 새로운 폭력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영화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강력한 시각적 자극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가장 짧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이것밖에 없다. “미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다른 각도로 미쳤다.”
악과 정반대에 있는 순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흰색 옷을 쫙 빼입은 악마 같은 주인공, 둔탁한 무기들, 지독한 주인공의 눈빛과 시선을 옭아매는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생기 대신 음기가 가득한 배경까지. “이거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싶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거기에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범죄 장면들은 보는 이의 시각을 강하게 자극하며 주인공 알렉스에 대한 혐오도와 온갖 복잡한 감정을 일으킨다. 배경이 좀 잔잔해지나 싶으면 알렉스가 날뛰고, 날뛰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 눈빛에 사정없이 갈려버리는 느낌이 든다. 여러 가지 의미로 띠용-하느라 눈이 쉴 틈이 없다.
본능을 뒤바꿀 교화에 대하여
자극적인 사건들과 함께 한숨을 푹푹 내쉬다 보면 어느샌가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가닿게 된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초반부엔 살짝 역하게 느껴질 만큼 지독한 폭력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알렉스의 일상은 폭력으로 가득하다는 것과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우리가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엔 일어나는 것과 같은 루틴이자 본능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에 닿았을 때 알렉스의 폭력적 본능을 교화시킬 새로운 충격요법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본능을 뒤바꿀 새로운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갱생과 폭력의 경계선에서 타고난 본능과 강력한 충격이 부딪히며 이야기는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결국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본능을 바꾼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악의 본능을 타고난 자를 교화시키는 게 가능한 것인지, 모두가 내면에 아주 작은 선이라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진실인지. 그리고 그 선을 충격을 통해 발현시킬 수 있는지. 특수한 상황에서 그 본능을 발현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선을 넘어도 되는지. <시계태엽 오렌지>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론 결국 변한 것은 없고 남은 건 폭력뿐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스는 그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잠시 본능을 미뤄두는 것일 뿐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본능과 반대되는 가치(선)를 적극적으로 택하진 않는다. 차라리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하면 택했지, 진실된 내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폭력성을 개선하기 위한 교화 프로젝트는 결국 국가폭력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과물은 선인이 아닌 잘못 비틀려버린 악인 한 명뿐이다. 만일 알렉스가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14년 형을 마치고 출소했다면, 그가 진정한 선인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나는 타고난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모두가 선을 품은 채 태어나는 건 아니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반대되는 두 개의 본능은 끝없이 부딪힐 거고, 그때마다 새롭게 발생하는 폭력과 피해를 100% 막아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것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의 종류와 적절한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책하고 다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보여주는 폭력은 잘못된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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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어떤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왕가위, 라이언 맥긴리, 자비에 돌란 등 예술가들의 예술가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더불너 개인의 사적인 순간들을 생생히 포착해낸 사진가 [낸 골딘]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이 직접 전하는 자신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의 이야기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5월15일 대개봉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개요: 다큐멘터리 | 미국 | 122분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
출연: 낸 골딘
개봉: 2024.05.15.
배급: 찬란
시놉시스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그녀가 죽었다
Following
개요: 미스터리, 스릴러 | 한국 | 103분
감독: 김세휘
출연: 변요한, 신혜선, 이엘 등
개봉: 2024.05.15.
배급: ㈜콘텐츠지오, ㈜아티스트스튜디오, ㈜무빙픽쳐스컴퍼니
시놉시스
“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 고객이 맡긴 열쇠로 그 집에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취미를 지닌 공인중개사 ‘구정태’.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비건 샐러드 사진을 포스팅하는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에게 흥미를 느끼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관찰 152일째, 그녀가… 죽었습니다.” 급기야 ‘한소라’의 집까지 드나들던 ‘구정태’는 어느 날, 그녀가 소파에 죽은 채 늘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그가 ‘한소라’ 집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협박을 시작하고, 사건을 맡은 강력반 형사 ‘오영주’의 수사망이 그를 향해 좁혀온다. 스스로 범인을 찾아야 하는 ‘구정태’는 ‘한소라’의 SNS를 통해 주변 인물들을 뒤지며 진범을 찾아 나서는데…
디피컬트
A Difficult Year
개요: 드라마, 코미디, 멜로/로맨스 | 프랑스 | 120분
감독: 에릭 토레다노, 올리비에르 나카체
출연: 노에미 메를랑, 피오마르 마이, 조나단 코헨, 마티유 아말릭 등
개봉: 2024.05.15.
배급: TCO(주)더콘텐츠온, (주)블루라벨픽쳐스
시놉시스
“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 고객이 맡긴 열쇠로 그 집에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취미를 지닌 공인중개사 ‘구정태’.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비건 샐러드 사진을 포스팅하는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에게 흥미를 느끼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관찰 152일째, 그녀가… 죽었습니다.” 급기야 ‘한소라’의 집까지 드나들던 ‘구정태’는 어느 날, 그녀가 소파에 죽은 채 늘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그가 ‘한소라’ 집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협박을 시작하고, 사건을 맡은 강력반 형사 ‘오영주’의 수사망이 그를 향해 좁혀온다. 스스로 범인을 찾아야 하는 ‘구정태’는 ‘한소라’의 SNS를 통해 주변 인물들을 뒤지며 진범을 찾아 나서는데…
가필드 더 무비
The Garfield Movie
개요: 애니메이션 | 영국, 미국 | 100분
감독: 마크 딘달
출연: 크리스 프랫, 사무엘L. 잭슨, 니콜라스 홀트 등
개봉: 2024.05.15.
배급: 소니 픽쳐스
시놉시스
세상귀찮 집냥이, 바쁘고 험난한 세상에 던져졌다! 집사 ‘존’과 반려견 ‘오디’를 기르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집냥이 ‘가필드’. 어느 날, 험악한 길냥이 무리에게 납치당해 냉혹한 거리로 던져진다. 돌봐주는 집사가 없는 집 밖 세상은 너무나도 정신없게 돌아가고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아빠 길냥이 ‘빅’은 오히려 ‘가필드’를 위기에 빠지게 하는데… 험난한 세상,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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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어른은 없다, 주름진 아이만 있을 뿐
#기쿠지로의_여름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일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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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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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쇼군> 공식 예고편
‘너의 몫을 해낼 준비가 되었는가?’ 권력을 향한 치열한 사투가 펼쳐진다! 전 세계 1500만 부 이상 판매 제임스 클라벨 작가 동명 소설 원작 [쇼군] 4월 23일, 오직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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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씽 : 사라진 딸> 메인 예고편
작지만 이웃 간의 정이 깊은 마을로 이사 온 '클레어'와 딸 '사라'. 마을을 대표하는 농구팀에 입단한 '사라'는 팀원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했다 실종된다. ;클레어'는 실종 당일 함께 있던 팀원들을 수사할 것을 요청하지만 주민들은 되레 그녀가 결백한 아이들을 의심한다며 등을 돌린다. 외로운 수사를 이어가던 '클레어'에게 발신자 불명의 영상이 도착하고 그 안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담겨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