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2025-04-15 21:45:34
바둑판 위, 인생을 건 대국
영화같은 실화, 몰입감 높은 싱크로율
이병헌과 유아인.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두 배우가 바둑판 위에서 진한 사제지간의 심리전을 펼친다.
조훈현과 이창호,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에는 스승과 제자의 고요한 전쟁, 그리고 말보다 강렬한 침묵의 대화가 있다.
이병헌은 조훈현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천재 바둑기사로서의 자부심, 제자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세대교체의 그림자까지. 이병헌의 묵직한 눈빛과 단단한 어조가 조훈현이라는 인물을 완성시킨다. 유아인은 젊고 날카로운 이창호로 분해, 마치 기계처럼 완벽한 수읽기와 냉정함을 연기한다. 무표정 속 미세한 떨림, 스승 앞에서의 복잡한 감정선을 유아인은 특유의 에너지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사제지간의 관계가 어느새 경쟁과 대립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은 마치 장기판처럼 느릿하지만 긴장감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남기현 역의 조우진이다. 조우진은 두 천재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바둑 인생’을 보여준다. 조우진의 연기는 묵묵하지만 깊고, 영화 전체의 정서를 단단하게 지탱해준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타이틀 대국은 압권이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앉아 맞붙는 순간, 카메라는 말 없이 그들의 손짓, 시선, 호흡을 쫓는다. 모든 심리와 감정이 응축된 이 장면은 『승부』라는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순간이자, 영화가 향해온 감정의 절정이다.
『승부』는 결국 누가 이겼느냐보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도전하려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둑판 위의 묘수만큼이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기느냐’보다 ‘어떻게 마주하느냐’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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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아를 남성성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전통 서부극과 현대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났는지에 관하여
권총을 찬 채 말을 타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를 지키는 카우보이란 직업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쓰이기에 적합합니다. 전통 서부극을 비롯해 현대 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복수하는, 전통 서부극과 같은 골자를 가진 최근의 영화까지 카우보이는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재밌는 부분은 개척시대 혹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에 제작된 현대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전통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특징들을 비틀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각 영화가 가진 카우보이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그 영화만이 가진 특별함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 카우보이가 다수 등장하는 서부극 장르의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그들은 전통 서부극 카우보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카우보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외양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남성우월적 마초이즘·인종차별 마인드가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게 되면 <파워 오브 도그>에 등장하는 필 버뱅크로 대표되는 카우보이 또한 숨겨져 있던 비틀린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이 영화는 현대 서부극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는 총을 사용한 액션은 찾아보기 힘든 대신,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숨기거나 파헤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면서 여성스럽고 섬세한 피터를 멸시하던 필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성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동성애자임을 여러 메타포를 통해 은연중에, 또는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거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롱코 헨리의 안장을 쓰다듬는 행위는 마치 애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밴조를 음정과 박자에 맞춰 섬세하게 연주하는 모습, 카우보이 무리와 동떨어져 홀로 멱을 감고 스승의 손수건으로 자위를 하며, 남성의 나체 사진이 담긴 잡지를 비밀 공간에 숨겨놓는 등의 행위를 비춤으로써 말입니다. 마초적인 남성의 실체가 동성애자라는, 그 괴리감으로 인한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서 드러낸 클리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파워 오브 도그>만이 가진 특별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통 서부극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한 현대 서부극 <파워 오브 도그>, 클리셰일지라도 착실한 빌드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든다.
나의 유일한 영혼과 자아. 개에게 잡아먹혔느냐, 저항하였느냐
개의 세력으로 직역이 가능한 영화의 제목 <파워 오브 도그>는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성경의 시편 22편 20절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개의 세력을 제목으로 설정하였을까? 이 구절은 자신의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게서 구해달라는, 자신의 영혼을 악(惡)에게의 굴복이라는 고난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워 오브 도그>의 악은 무엇인가? 해당 시대의 사회가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성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로즈와 피터에게 남성성을 내세우면서 가차없고 잔인하게 대하는 필을 보면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느껴질 법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대변하게 된 나약하고 가여운 자일뿐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격에 가냘프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생화로 착각할 만큼 종이로 섬세한 꽃을 만드는 등 영화 초반의 피터는 전반적으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토끼를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고 관찰하며, 고통받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통한 살인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발견하지 못하던 개의 형상을 피터는 발견함으로써 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필은 황무지에서의 생존법을, 더 나아가 사랑을 배웠던 브롱코와의 관계처럼 피터와 그러한 사제지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피터는 그를 따르고 지식을 습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카우보이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터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개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둘 자체의 성격과 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은유하는 존재들 역시 영화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 외에도 인상 깊은 메타포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필과 피터가 같이 여행을 떠났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쫓게 되었습니다. 나무 더미 아래에서 당당하다는 듯 꼼짝 않는 토끼는, 실은 꺼내고 보니 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토끼에게서, 나무 더미와 같은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마초적이고 당당하지만 주변 환경에서 꺼내어져 실체를 확인하였을 땐 상처 입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필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 토끼를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피터는 필 또한 동일하게 구원과 안식을 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장치들을 통해 둘과 둘 사이의 관계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으며,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함 중 하나입니다.
브롱코의 안장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대하던 필과, 필이 만든 밧줄을 장갑을 낀 채 침대 아래로 밀어 넣은 피터, 악의 대물림과 끊어냄.
영화를 흘러가게 만드는 힘, 연출·배우와 소리
난해 보일 법 한 영화의 초반부 흐름과 달리 <파워 오브 도그>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합니다. 부유한 카우보이 형제·동생과 결혼하게 된 과부·소심하고 유약한 그녀의 아들·그리고 모자와 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이 영화의 주된 골자입니다. 이 단순한 스토리를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는 치밀한 플롯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치밀한 플롯은 누구에게서 탄생을 하였는가 하면 연출과 배우의 연기에서 탄생하였습니다. 분명히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드넓은 황무지를 익스트림 롱 숏으로 비추고 있음에도 그 분위기는 마치 겨울처럼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또는 등장인물을 비출 때 클로즈업을 통한 감정의 묘사와,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위치의 카메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한 가지 예로, 로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 필은 동일한 곡을 밴조로 유창하게 연주합니다. 이때 위에서 내려다본 로즈는 한없이 작아 보이고, 아래에서 올려본 필은 한없이 커 보입니다. 위축된 로즈와 위압감 넘치는 필을 자연스럽고 탁월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아무리 감독이 연출을 뛰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배우들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불완전한 실패한 영화일 뿐입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진정으로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영화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밋 맥피, 그리고 제시 플레몬스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그대로, 혹은 더 특출나게 영화에 담아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야 두말할 것도 없으며, 그가 맡은 배역 중에서 감히 최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컴버배치의 포스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동등하거나 오히려 후반부에서는 그를 잡아먹어 버린 코디 스밋 맥피는 새로운 배우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커스틴 던스트의 짓눌린 듯한 압박감과 공포로 인해 병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녀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인 캠피온의 소리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습니다. 필이 차고 있는 박차가 찰랑거리는 소리는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에게 압도되고 공포를 느끼도록 분위기를 전환시킵니다. 게다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들 역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피터가 미지의 공간인 산과 황무지를 처음 탐험할 때, 처음 발을 들이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을 OST가 묘사를 합니다. 전통적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함에 있어 바이올린이 주로 사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린우드는 호른 두 대와, 커다란 공간의 잔향을 활용하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외에도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는 로즈가 위치해 있는 장소의 분위기와 그녀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소리'까지, <파워 오브 도그>는 눈과 귀 모두에 강한 자극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받쳐주는 치밀한 플롯, 그 플롯을 받쳐주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그들을 한데 아울러 감싸고 있는 불편하지만 어울리는 소리까지.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동생 조지와 피터와 달리 필은 오직 말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필과 피터의 관계를 과거에 안주해 있는 존재와 그로부터 벗어나 현재·더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대립되는 존재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는 수많은 메타포와 상징이 산재해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그들을 찾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보니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해 내지 못하더라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고 훌륭한 심리 영화입니다. 다만, 서스펜스가 형성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꼭 감상하기를 추천하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입니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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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하는 청춘을 어루만지는 온기
- 브레이킹 아이스 (The Breaking Ice, 2025)부유하는 청춘을 어루만지는 온기
개봉일 : 2025.06.04.
관람등급 : 15세이상관람가
장르 : 청춘, 멜로, 로맨스
러닝타임 : 100분
감독 : 안소니 첸
출연 : 주동우, 류호연, 굴초소
물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출렁이고 흘러넘치며 특정 온도를 지나면 얼음이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청춘도 이와 비슷하다. 항상 출렁이며 작은 충격에도 큰 영향을 받고 어느 한계점을 지나면 특유의 생동감을 잃어버린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단어 ‘안정’. 그의 반하는 단어 ‘불안정’.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불안정함은 다소 연약하고 부정적인 단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불안정함을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불안정한 물질과 청춘의 가변성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펼쳐내기에 이른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주인공 나나는 여행 가이드다. 그는 다른 이들의 여정을 이끄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찾지 못한다. 가장 편안해야 할 내 집. 그 안에서마저도 신발을 벗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나나의 오래된 친구인 샤오는 이렇다 할 목표도 아쉬움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있다. 이리저리 밀리다 연길에 정착하게 된 그는 나나와 함께 차가운 겨울바람 속을 헤맨다.
여행객 하오펑은 금융계에 종사하는 청년이다. 친구들은 그의 직업과 경제적 능력을 부러워하며 ‘성공한 사람’이라는 왕관을 씌워주지만 하오펑은 자신의 인생이 즐겁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몸을 끼워 넣어 보지만 곧바로 대열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상처 입은 세 청년. 나나, 하오펑, 샤오의 이야기다. 세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는 물처럼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사건과 아픔을 겪으며 꿈을 포기하고 연길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현실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꽁꽁 얼어붙는다. 그렇게 한 번도 끓어오르지 못하고 불투명한 얼음이 되어버린 세 사람은 이제 스스로 얼음을 녹여낼 힘이 없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인연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나나, 하오펑, 샤오의 세상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공간적 배경은 연길이다. 연길은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로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공존하고 중국어와 한국어 간판이 한데 뒤섞여 있는 곳이다.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한국 같기도 중국 같기도 한 도시. 이곳에 정착한 이방인 나나와 샤오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서로를 붙든 채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나는 자신과 비슷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말하는 여행객 하오펑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손을 내민다.
세 사람은 그렇게 별거 아닌 이유로 한자리에 뭉친다. 그리고 술과 저녁 함께 먹기, 오토바이 타기, 길거리에서 라면 먹기, 서점에서 도둑질하기 등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세 사람은 그렇게 옆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두꺼운 얼음을 녹여낸다. 그리고 마침내 얼음 아래 갇혀있던 찰랑이는 물을 만난다.
나나는 하오펑, 샤오와 함께 얼음 위에 발을 올려놓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덕분에 과거를 가까이 마주하며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용기를 얻는다. 샤오는 나나, 하오펑과 내기를 하며 구매하게 된 책 속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찾고 하오펑은 나나와 온기를 나누며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을 의미하는 손목시계를 풀어 내려놓는다. 혼자였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온기와 안정감은 세 사람을 성장시키고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여러 인부들이 호수의 얼음을 깨고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비를 들고 얼음을 자르는 인부 한 명과 그의 허리에 감긴 로프를 잡고 있는 또 다른 인부. 두 명의 인부는 한 팀이 되어 얼음을 자르고 기계로 옮긴다.
호수를 뒤덮은 얼음을 깨는 일을 안전히 해내려면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인생의 전반을 뒤덮은 얼음을 거둬내는 일도 그렇다. 하지만 고립과 각자도생이 기본 옵션이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는 청년들을 각각의 얼음 속에 가둬버린다. 청년들은 그 안에서 홀로 벌벌 떨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스러지고 있다.
안소니 첸 감독은 이런 차가운 사회에 떨어진 청년들을 위해 <브레이킹 아이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은 낮은 온도에서 얼음이 되지만 얼음을 꺼내 수면 위에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놓기 시작하고 다시 물로 돌아간다. 이 원리를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라고 언급한 그는 단단한 얼음 상태를 벗어나 물처럼 유연하게 뒤섞이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과 관계의 소중함을 전한다.
<브레이킹 아이스> 속 자연 풍경들은 이러한 안소니 첸 감독의 마음을 투영하듯 굉장히 아름답고 무해하게 표현된다. 연길의 겨울바람은 꽤 차갑지만 세 사람이 마음껏 누빌 수 있는 눈밭과 얼음 연못을 만들어주고 백두산에서 마주친 거대한 곰은 조용히 나나의 발목 흉터를 킁킁대다 사라진다. 자연은 나나, 하오펑, 샤오를 해하지 않는다. 그 덕에 세 사람은 마음껏 자연을 누비며 울고 웃고 회복한다.
우리 사회도 이 영화 속 자연처럼 청년들에게 조금 더 무해하고 아름다웠으면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마음껏 헤맬 수 있는 긴 도로를 주고, 안전히 구를 수 있는 폭신한 눈밭을 주고, 타인의 흉터에 눈길을 건네는. 그런 사회 말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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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편지' 이야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편지 쓰는 걸 좋아하시나요?
디지털 기기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은 많지 않지만,
화면 너머의 정갈한 글씨보다 손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더 진심이 느껴질 때가 있죠.
그래서일까요? 여전히 많은 영화에서 '편지'는 매우 중요한 소재로 쓰이곤 한답니다.
오늘은 가슴 절절한 연애편지부터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는 따뜻한 편지까지!
다양한 편지가 등장하는 아름다운 영화 5편을 소개해 드릴게요.
시월애(2000)
A Love Story
ⓒ 익스트림무비
우편물을 부탁하는 편지로부터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까지
감독: 이현승
출연: 이정재, 전지현 등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판타지
러닝타임: 94분
단역 전문 성우 은주(전지현)는 1년간 살던 바닷가의 집 '일마레'를 떠나며 우편함 안에 다음 주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긴다. 그러나 그 편지는 시간을 거슬러 은주보다 먼저 '일마레'에 살았던 건축가 성현(이정재)에게 전달되고,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사이가 된 두 사람. 급기야 성현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은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미래의 은주는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하고 과거의 성현에게 자신과 그가 헤어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은주를 사랑하게 된 성현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하게 되고, 성현이 자신의 부탁 때문에 사고를 당함을 알게 된 은주는 사고를 막기 위해 성현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가 늦지 않게 그 편지를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영화의 제목 '시월애'는 한자로 썼을 때 '時越愛'로, 직역하면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비주얼로 호평을 받은 동시에 영화제, DVD 등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 초에 한국영화 팬덤을 이끌었던 주역으로 손꼽히며, 2006년 할리우드에서 <레이크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성현에게 보내는 은주의 편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람들이 가까워지면
점점 더 기대를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들 너무 멀리 있어요.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나요?
그냥 약속을 잊으신 거면 좋겠어요.84번가의 연인(1987)
84 Charing Cross Road
ⓒ MUBI
도서주문 편지에서 시작된 20년의 우정
감독: 데이비드 휴 존스
출연: 앤 밴크로프트, 안소니 홉킨스, 주디 덴치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00분
가난한 작가인 헬레인 헨프는 대단한 독서광으로 읽고 싶은 고전들을 싸게 사 보기 위해 영국 런던 84번지에 있는 중고책방에 편지로 책을 주문한다. 이를 계기로 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과 평생을 정신적 교류를 나누는 정신적 연인이 되어 편지로만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 때론 귀한 책 한 권에 함께 감동하고 때론 분노하면서 사소한 주변 얘기도 곁들며 가며 인생을 논할 수 있었던 건 프랭크, 헬레인 두 사람 다 따뜻한 인간애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정신, 여유롭고 유머가 풍부한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프랭크가 죽기까지 영국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헬레인은 프랭크가 죽고 난 후 어느 날 문득 그녀가 그토록 동경했던 그 서점에 가서 감상에 젖는다.
뉴욕의 무명작가와 런던의 고서점 관리인이 실제로 1949년부터 무려 2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의 대부분이 두 사람 간에 오간 편지글로 채워져 있으며, 긴 세월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영화 속 사건들에 당대의 역사 또한 고스란히 녹아 있어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프랭크에게 보내는 헬레인의 편지
전 고전 작품을 즐겨 읽는 가난한 작가인데
이곳엔 제가 원하는 책이 없어요.
있어도 가격이 비싸죠.
찾고 있는 책의 목록을 동봉합니다.
목록 중 5달러 이하의 책이 있다면
이 편지를 주문서로 여기시고
그 책들을 제게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헬레인 헨프 드림.윤희에게(2019)
Moonlit Winter
ⓒ 네이버 영화
오랫동안 하지 못한 말, 나도 네 꿈을 꿔.
감독: 임대형
출연: 김희애, 김소혜, 나카무라 유코 등
장르: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105분
"윤희에게, 잘 지내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딸 새봄은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는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여러 단편영화들을 통해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임대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두 번째 장편영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굵직한 내공을 보이고 있는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가 주연으로 함께했으며, 개봉 이래로 팬덤 '만월단'까지 만들어내며 호평일색을 받았다. 국내의 여러 퀴어 영화들 중에서도 젊은 세대가 아닌 부모 세대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장점이다.
윤희에게 보내는 쥰의 편지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네이버 영화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
감독: 데이비드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등
장르: 판타지, 멜로/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166분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 뉴올리언스, 80세의 외모를 가진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부모에게 버려져 양로원에서 노인들과 함께 지내던 그는 자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12살이 되어 60대의 외모를 가지게 된 그는 어느 날 6살 소녀 데이지를 만난 후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잊지 못하게 된다. 청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 벤자민은 숙녀가 된 데이지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비로소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벤자민은 날마다 젊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데…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집필한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세븐>, <파이트 클럽> 등을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아름다운 영상미와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작품이다.
딸에게 보내는 벤자민의 편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너무 늦은 건 없단다.
내 경우엔, 너무 이른 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꿈을 이루는 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원한다면 언제든 새롭게 시작해도 돼.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혹시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기 바라마.캐롤(2016)
Carol
ⓒ 네이버 영화
단 한번, 겨우 전한 진심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등
장르: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118분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재능 있는 리플리>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범죄 소설의 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인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며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영화의 계절적 배경인 겨울만 되면 재상영을 할 정도로 국내 팬층이 두텁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테레즈에게 보내는 캐롤의 편지
우연이란 건 세상에 없어요.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에요.
차라리 일찍 이렇게 된 걸 감사히 여겨요.
당신도 언젠가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그날이 오면, 그곳에서 당신을 반겨줄 나를 떠올려 줘요.
영원한 일출처럼 우리 앞에 펼쳐질 삶과 함께.
하지만 그때까지는 만나지 않기로 해요.
난 할 일이 많아요. 당신은 훨씬 많겠죠.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네요.
당신을 놓아줄게요.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헤어져야만 했던 캐롤과 테레즈.
그런데 이런 영화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편지지 세트가 있다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지금 바로 텀블벅에서 진행되고 있답니다.
바로 영화 취향 커머스 플랫폼 [클로저]에서 기획한 [클로저 투 캐롤] 프로젝트!
잠깐! [클로저]는 또 뭐고, [클로저 투 캐롤]은 또 뭐냐구요?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제가 바~로 설명해 드릴게요!
[클로저]는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만지고, 향을 맡고, 맛을 보기도 하며,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나누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를 더 가까이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영화로 발견하는 취향 커머스 플랫폼'이에요.
[클로저] 팀에게 <캐롤>은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해요. 좋아하는 영화 속 장면들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 갖고 싶은 물건들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클로저 투 캐롤]은 클로저 팀의 이러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구성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특별하답니다. 영화 <캐롤>의 팬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을 상품들을 지금 바로 소개해 드릴게요.
https://tumblbug.com/closertocarol
오늘도 유용한 정보가 되었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따뜻하고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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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내밀한 욕망으로의 여정
욕망: 우리의 가장 내밀한 본능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한다. 아니, 이 지구상의 생명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탐하고,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을 탐닉하고자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며, 이러한 본능은 우리들을 헤아릴 수 없이 번화하고 다채로워지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욕망의 종류는 다양하다. 꿈을 향한 야망, 야욕, 야심이 있는가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인 의욕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성적 욕망을 말하는 애욕, 정욕, 성욕 등도 있다. 사실, 욕망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욕망은 무엇으로든 이름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많은 욕구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지만 가장 괄시 받는 것이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성욕을 꼽을 수 있겠다.
요즘은 꽤나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화권에서는 성애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성행위는 암묵적으로 '많은 수가 수행하고 있으나' '차마 발설되지 못할' 욕망으로 치부되며, 그것은 나아 사람들로 하여금, 욕구 그 자체를 스스로 거세해 버리게끔 압박하기도 한다.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는, 가볍고, 방탕하고, 차마 상종 못할 '짐승'이 되기도 하고, '싸구려 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이 바람직한 성이라면, 우리는 그 욕망을 반드시 억압해야만 할까?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이런 의문에 대한 재치있는 답을 담고 있다.
1. 인생이 재미 없는 여자, '낸시'
'낸시'는 삶이 재미없다. 종교학 선생인 그는 평생토록 학생들에게 그들의 욕망을 단속하기를 강요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인생은 브레이크의 연속이었다. 이건 이래선 안돼. 이건 이렇게 보일 거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래, 나는 재미없어. 하지만 내가 ~할 순 없잖아. 이런 말들은 끊임 없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그것은 족쇄가 되어 그의 삶을 지치고 지루하고 지난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대단한 오르가즘은 문턱에조차 다다른 적이 없었다.
남편을 잃고 선생 일도 은퇴한 어느 오십 줄. 그런 낸시는 오랜 결심 끝에 새로운 자유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방법이랄 것은 바로, 젊고 매력적인 남자인 '리오 그랜드'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2. 고지식함과 방탕함
그렇게 고심 끝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시간을 샀는데, 낸시는 그럼에도 걱정할 것이 많다. 나이 들어 볼품 없어졌을 몸을 보이는 것도 걱정스럽고, 소위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수없이 갈등한다. 눈 앞에는 근사한 리오 그랜드가 앉아 있지만, 그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낯선 세계로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허둥지둥한다. 초보 운전수가 운전을 할 때 손에 땀을 쥐는 것과 같이, 누구나 처음은 녹록치 않다.
그러니 낸시가 새파랗게 젊고 아름다운 청년인 리오를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네 어머니는 네가 이런 일을 하는 거 아시니?" 같은 고지식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 뿐이었으리라.
한편, 리오 그랜드는 아주 능숙하다.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산 사람들을 그 각각에 맞추어 즐거움을 선사하는 법을 알았고, 그것에 그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는 여기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는 전문가답게, 조금 특별한 손님인 낸시를 차분히 기다린다. 이윽고 그는, 낸시와의 오랜 대화와 얼마쯤의 춤을 즐긴 끝에, 낸시가 바랐던 것을 선사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아름다우며, 얼마든지 원하는 바를 욕망해도 좋다고.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3. 무심한 어머니와 상처입은 아들
그러나 그 대단한 리오 그랜드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끝없이 사적인 물음을 일삼는 낸시와의 대화를 통해 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아프고 쓰라린 기억을 자꾸만 떠올린다. 그는 어머니의 눈에 지나치게 방탕했던 탓에 미움 받았고, 그 탓에 많은 것을 숨기고 숨으면서 안전한 그만의 요새에 다다랐다. 그는 '리오 그랜드'라는 가면을 쓰고 손님들의 돈을 받음으로써 안전한 곳에서, 마음껏 방탕할 수 있는 시간을 영위한다. 그곳에서 만큼은 그는 탕아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므로, 그는 그 안락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와 동시에, 그 밖과 안을 철저하게 유리시키고자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런 리오를 그만의 '방'에서 끄집어 낸 것은 다름 아닌 낸시다. 리오가 자유를 되찾아준 바로 그 손님 말이다. 낸시가 과격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리오를 '커밍아웃'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한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있다. 바로 낸시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는 것.
리오에게 낸시는 손님이기도 하고, 저를 매정하게 저버린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낸시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 다시 말해, '리오 그랜드'라는 인물을 속단하고 고지식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이 만든 어떤 '틀'에 밀어넣으려고 했던 일에 대해 사과했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낸시는 리오가 자신을 달래며 해주던 다정한 말들을 그에게 되돌려준다. 낸시는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리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스스로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남의 욕망을 서둘리 재단하던 과거의 일들을 반성했다. 그 고지식하던 사람이, 비로소 진솔한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어쩌면 낸시가 리오에게 해준 말은, 그가 어머니, 혹은 그밖의 많은 모진 말을 던지던 이들에게서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3. 우리가 외면해왔던 내밀한 욕망에 대하여
꼰대와 탕아의 만남은 썩 어울리지도 않은데다가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낸시와 리오는 어떤 부분에서 닮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욕망에 충실한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낸시와 리오는 서로를 만남으로서 각자의 구원을 받았다. 영화의 말미에서 두 사람은 비로소, 그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짐을 벗어든 순간, 욕망을 마주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진다. 낸시는 마침내, 그가 50년이 넘도록 느끼지 못했던 오르가즘을 맞이한다.
4. 우리는 욕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영화는 내내 말한다. 욕망은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좀 더 스스로와 세상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거울에 자신의 맨몸을 비춰보며 미소짓는 낸시처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좀 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 색안경을 끼는 일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조선 땅에서 나고 자란 유교걸이라 이 영화의 핵심적인 소재인 '매춘'(리오는 시간을 사고 파는 일이라고 했지만)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는 조금 더 고민된다. 이것은 보다 복잡한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벗어 던져야할 족쇄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걸 차치한다면, 글쎄, 영화 자체는 즐거웠다. 엠마 톰슨은 귀여웠고, 데릴 맥코맥은 섹시하다.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구원했으면서도, 고루한 로맨스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오래 고민해 볼까 한다. 혹시 아는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서 구원을 받거나, 그를 구원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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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나는 몇번째 '실패작'인가?
< 미키 17>
나는 몇번째 '실패작'인가?
“당신은 몇 번째 미키입니까?”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야 하는 ‘미키’. 기술이 없는 그는,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서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4년의 항해와 얼음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뒤에도 늘 ‘미키’를 지켜준 여자친구 ‘나샤’. 그와 함께, ‘미키’는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의 사이클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미키 17’이 얼음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와 만난 후 죽을 위기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둘이 된 ‘멀티플’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자알 죽고, 내일 만나”
-네이버 영화 소개-
도망치듯 떠나온 곳에 파라다이스는 있을리 만무하다.
미키는 자신이 어떤 판단을 한지도 모른채, 우주에서 '실패작'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우주세계의 '미키'에게는 성공이란 없다.
실패를 위해 태어난, 삶의 목적이 실패 그 자체인 삶이다.
이곳이 지옥과 다를 것이 뭔가?
불교의 지옥에서는 사람이 죽지도 않고, 끝없는 고통과 형벌이 계속된다.
끝이 없는 고통의 연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주도 미키에는 곧 지옥과 같았으리라.
너는 나, 나는 너.
운 좋게 살아남은 미키 17이 돌아온 곳에는 미키 18이 있었다.
분명 나인데,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니것도 아니다.
미키 18과 미키 17 중 어느 미키가 진짜 미키라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단순히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미키 17이 진짜인가?
이와 비슷한 물음을 하는 재밌는 만화가 있다.
바로,
'오억년 버튼'
사진 출처: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149552
지금 당장 버튼을 누르면 오억년간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버텨야하고, 오억년을 다 버틴 후에는 버튼을 누른 내가 큰 돈을 벌게되는 간단하지만 복잡한 게임이다.
현재의 내가 오억년을 버틴 기억을 잃었다고해서 내가 오억년을 버텼던게 사라지나?
돈을 받은 내가, 오억년을 버틴 나랑 같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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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문제이다.
이 만화와 미키들의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존재하는 하는 한, '진짜'를 정의한다는 것은 정말 해결하지 못할 난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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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나 모두 '나'라면, 그 둘을 어느정도 구분할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서 미키가 선택한 새로운 기준은
'주체성'과 '이타성'
이다.
사람은 주체적이며, 그 어떤 동물들보다 관계적이다.
독재자의 무조건 적인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성과 타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이종과의 관계까지 고려하는 이타성이 더 강한 미키가 '진짜' 미키에 조금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기에는 미키 17이 더 '진짜'답다라고 느끼는 것 아닐까.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주인공을 '미키 17'로 잡은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의 모든 구조적 장치들이 미키 17을 주인공으로 보이게끔 했기 떄문에 관객이 그를 진짜라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위의 설명은 이러한 연출 부분을 제외하고 말한다.)자유와 공존.
미키를 끝까지 쫓아오던 빚쟁이, 끝없는 복종을 강요한 독재자 그리고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실패작'으로서의 삶.
이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고 마침내 마주한 자유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자유'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하는 마지막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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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 '미키 17'은 인간에서 더 나아가 '공존'을 말한다.
우리는 혐오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대 사람의 혐오.
더 나아가 사람대 동물의 혐오.
심지어 동물은 일방적으로 혐오를 받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다양한 생명체의 공존과 생태계의 평화를 기저에 강조한다.
우리는 현재 우주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보기 전에,
지금 당장 맞닥뜨린 지구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공존이 곧 인간으로서 가장 존중받으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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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기계가 못 하는 일도 있지
기술 혁명의 양면성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수많은 발명품이 만들어졌고, 혁신을 이루어냈다.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편리해졌다.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속 월레스도 덕분에 매일 아침 루틴을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단순노동을 대신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무조건적으로 편리함만을 생각하지 말고 적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을 위협하는 존재도, 그들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존재도 모두 ‘노봇’이었기 때문이다.
'노봇'의 흑화
월레스의 발명품 ‘노봇’의 흑화는 기술 발전의 양면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처음에는 월레스의 친구 그로밋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노봇은 뛰어난 실행력으로 순식간에 가지치기 임무를 완수하고 잔디를 깎으며 정원을 ‘깨끗이’ 손질한다. 노봇을 창조한 월레스는 매우 기뻐하고 마을 사람들 역시 그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노봇을 대여한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노봇을 이용한 보수 서비스 사업을 통해 밀린 청구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로밋은 노봇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유심히 지켜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밋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는 노봇들의 허점을 처음부터 알아차린다. 단순히 울퉁불퉁 튀어나온 잔디와 잡초를 정형화된 방식으로 ‘정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노봇은 그로밋이 가꾸던 꽃과 나무의 의미와 소중함을 알 방도가 없기에 모조리 잘라버린다. 흑화되기 전의 노봇도 기술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노봇을 무조건적으로 편애하는 월레스와 노봇 군단이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노봇의 흑화를 가능케했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격 조정하는 것을 넘어서 성격 세팅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에 연동하여 해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악용하는 것은 바로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빌런 페더스 맥그로이다. 그는 인터넷에 연결된 노봇을 '사악함'으로 세팅하고 월레스 집에 있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칠 계획을 펼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로봇 혹은 AI 서비스를 왜곡하여 설정하거나 해킹하는 등 기술을 악용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술의 (불)편함
‘사악함’ 모드로 설정된 노봇들이 페더스 맥그로의 명령에 따라 블루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과정이 영화의 ‘위기’ 단계의 주를 이루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장면을 고르라면 노봇들이 월레스가 그들의 계략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잠에 들게 하는 장면을 꼽겠다.
월레스 역시 이 부분에서는 노봇들에게 “이게 다 뭐야?” 라며 되묻고 “천천히” 하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노봇들의 수면 유도 ‘서비스’에 정신을 빼앗긴다. 월레스가 원하지도 않았던 마사지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음냐음냐 코코아’를 마시게 하는 노봇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필요성을 느껴서 기술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 대신 자체적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필요하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일상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린 이미 그렇게 시스템화된 삶에 적응해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 불가한 무언가
그러나 영화는 노봇들을 악하게만 그려내지 않고, 결점과 비례하는 장점도 있음을 보여준다. 디폴트 값인 ‘착함’ 모드의 노봇들은 월레스와 그로밋을 절체절명의 순간 구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월레스도 노봇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개조하여 정원일을 돕는 방법을 택한다.
발명품을 만드는데에만 몰두해 있던 월레스가 기계 중심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아날로그함을 받아들이면서, 소소하지만 소중한 ‘인간적인’ 따뜻함을 다시금 일깨운다. 쓰담쓰담 기계가 아닌 자신의 손으로 그로밋을 쓰다듬어주는 장면으로 우리는 기술을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이들이 대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날로그의 미학
자칫 무겁고 교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메시지가 호러와 액션 스릴러의 색채가 더해져 마냥 잔잔하지 않고 몰입감 있게 전달된다. 진지해지다가도 페더스 맥그로의 허접하면서도 귀여운 변장술과 계략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노봇들이 지하실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드는 장면과 페더스 맥그로와 그로밋의 추격전을 그려내는 방식이 인상 깊다.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가 전하는 아날로그의 미학과 기술 발전에 대한 메시지가 더욱 와닿는 이유는 제작 과정에도 숨겨져 있다. 합성이나 AI와 같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스톱모션 형식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제작 방식을 유지함에는 아날로그의 매력을 지켜내고자 하는 바람이 깃들어있지 않았을까?
아날로그에 “느리고 불편한” 아니라 “섬세하고 정밀한”이라는 수식어가 더욱 강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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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 끝장리뷰 | 경계인 | 예언, 사슴 상징 | 아버지 죽이기 | 성장 영화 해석
[예언자](2010)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성장 영화
Chapter 2 예언자
00:00 자크 오디아르
01:49 성장영화
03:28 아버지 죽이기
05:38 예언자
08:02 레예브와 리아드
09:21 별점 및 한 줄 평
09:3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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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손> 메인 예고편
웰메이드 #가족시네마 🏡 올해의 가장 묵직한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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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악마의 다이어리> 예고편
어느 날 밤 오우자 판자를 가지고 놀다가 악마의 공격을 받은 레베카 클락슨.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일주일동안 자신의 웹캠에 비디오 일기 형식으로 그녀의 경험을 기록한다.
고조되는 일련의 사건들, 그림자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점점 소름이 끼치기 시작한다.
초자연적인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레베카는 마침내 악이 그녀의 몸을 점령할 때까지 악마적인 힘에 의해 반복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레베카는 악마를 물리치고 영혼을 보호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