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1 17:02:53
4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라이언 쿠글러의 뱀파이어 시대극 <씨너스: 죄인들> 북미 1위 안착 성공

<블랙 팬서> 시리즈를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신작 <씨너스: 죄인들>이
2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마인크래프트 무비>를 밀어내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북미에서 4,560만 달러를 벌어들여, 당초 예상치였던 3,500만 달러를 훌쩍 넘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로튼토마토에서는 98%의 평점을, 메타크리틱에서는 2025년 개봉작 중 일곱 번째로 높은 점수인 84점을 기록하며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고루 받고 있습니다.
<씨너스: 죄인들>은 1930년대 고향 남부로 돌아와 ‘주크 조인트’(음악 바)를 연 쌍둥이 형제 스모크(Smoke)와 스택(Stack)을 주인공으로,
어느 날 그들의 마을에 뱀파이어가 들이닥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며, 마이클 B. 조던이 두 형제를 모두 연기했습니다.

한편, 국내 박스오피스도 개봉 후, 3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승부> 대신할 새로운 왕좌의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마약 수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신작 <야당>이 그 주인공입니다. 누적 관객 수 78만 명을 돌파하며 단숨에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2위는 한 계단 내려갔지만,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앞두며 여전한 화력을 보여주고 있는 <승부>가 차지했고,
3위는 다시 순위권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애니메이션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에게 돌아갔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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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모두 다른 모양의 솔방울
왜 전쟁이었을까. 왜 하필 피노키오를 전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은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줄에 묶여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는 피노키오의 모습이, 바로 전쟁터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어린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배우고, 삶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할 나이에 전쟁터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어른들조차 견디기 힘든 전쟁의 고통을, 왜 고통스러운지도 모른 채 그저 익숙해져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줄에 묶인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파시즘에 젖은 시장의 아들, 캔들윅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의문이나 불만은 입 밖에 내서는 안된다. 꼭두각시는 줄을 조종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살 수 있으니까. 줄이 끊어졌을 때 처참히 버려진 자신을 대신할 꼭두각시는 많다. 전쟁이 모두를 똑같은 꼭두각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삶의 목표를 단일화 시킨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를 가지는 순간, 죽임 당하거나 괴로움에 못 이겨 생을 마감할 테니까.
꼭두각시 조종자들에게 줄이 없어도 움직이는 피노키오는 존재 자체만으로 위협적이다. 피노키오는 전쟁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거부한다. 전쟁의 무의미함을 꼬집으며 삶의 가치를 찾아내려는 피노키오를 보며, 상처 입은 자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학대당했던 원숭이 스파차투라와 소년 캔들윅은 피노키오로 인해 해방을 얻는다. 이는 굉장히 슬프지만 어찌할 수 없는 수순이다. 인생을 돌아보면, 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으로 인해 치유되는 경험은 거의 없다. 우리는 대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가진 사람과 만나 나의 아픔을 치유한다. 슬프지만 당연한 일이다.
피노키오는 자신 역시 무거운 짐을 이고 있으면서도, 남들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기꺼이 남을 위해 위로를 나누어주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용감하면서도 강인하다. 이는 쉽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위로를 내어주는데 인색한 현대사회 속에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피노키오, 내 아들. 내가 널 다른 아이로 만들려고 했구나.
이제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마라. 네 모습 그대로 살아.
난 널 사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피노키오는 영생을 포기하고 죽음이 있는, 단 한 번뿐인 삶을 선택한다. 죽음의 신은 반복해서 말한다.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 순간이 매우 짧기 때문이라고. 모든 순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 단 한 번뿐인 나의 삶을, 내가 아닌 남으로 살면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카를로가 처음 솔방울을 가져왔을 때, 제페토는 그것이 완벽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난 솔방울도, 상처가 있는 솔방울도, 땅에 심고 충분히 물을 주면 제각각의 모양으로 훌륭한 소나무가 된다. 어떤 솔방울이든 나무가 될 기회는 있다. 그 누구도 솔방울에게 완벽함을 운운할 자격은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린 언제나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전쟁은 누가 만든 것인가? 진정 그 전쟁이 내가 원했던 것인가?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목표를 가지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다. 한 번뿐인 삶을 나라는 특별한 존재를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때론 그런 사회의 총격에 피를 흘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린 꿋꿋이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나만의 길을 가야 한다. 나라는 존재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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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0월 4주 개봉영화!
리벰버 REMEMBER , 2020
60년을 계획한 복수
영화 "리멤버"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를 그린영화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성민과 남주혁 만났는데요
80대 필주와 20대 인규를 절친으로 설정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케미를 완성시켰습니다.
영화 "리멤버"가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과 다른 가장 큰 지점은 이 이야기가 가족을 죽인 자들을 대상으로 한 필주의 개인적인 복수를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요
역사책 속에 박제된 과거의 사실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개인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역동적인 스토리 속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 넷플릭스 '수리남'의 윤종빈 감독 기획!
추천영화 "리벰버" 입니다.
자백 Confession , 2020
소지섭X김윤진X나나X최광일
영화 "자백"은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망한 사업가 '유민호'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가
숨겨진 사건의 조각을 맞춰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누명을 벗기 위해 호텔 룸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하기 시작하는 유민호와 그의 진술에서 발견되는 허점을 메꿔가며 사건을 재구성해가는 양신애의
날 선 대화가 시종일관 날카로운 긴장감을 형성하는데요
두 사람의 팽팽한 심리전과 숨 막히는 대화의 줄다리기는 영화 "자백"의 결정적 관전 포인트입니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재미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관객들을 스크린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소지섭, 김윤진, 나나, 최광일까지 독보적인 존재감과 카리스마의 네 배우가 펼치는 추리소설 같은 압도적인 몰입감!
추천영화 "자백" 입니다.
죽어도 자이언츠 Giants 'Til I Die , 2022
자이언츠의 40년 역사가 펼쳐진다.
영화 "죽어도 자이언츠"는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역사를 함께했으나 1992년 이후 30년째 우승이 없는 롯데 자이언츠와
'구도'(球道)라 불리는 부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입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무쇠팔' 고(故) 최동원과 지난 8일 LG와의 홈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그리고 이대호를 닮은 개성고의 배광률 선수를 통해 부산 야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날 수 있는 점이 관점포인트 입니다.
30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팬들의 이야기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40년 역사와 부산의 근현대사!
추천영화 "죽어도 자이언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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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도시가 비극을 기억하는 방법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가깝게 세월호 사건은 벌써 7주기가 되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그때 세월호의 모습은 잊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여전히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망자를 완전히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제 이만 그 일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그 일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누구의 잘못으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원인을 파악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다음 한 발자국을 떼어 걸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조금 먼 과거를 보면 광주 민주화 항쟁을 떠올릴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일 년에 한 번씩 맞이하는 추모일에만 그 일을 한 번씩 생각한다. 하지만 유족들은 1년 365일 여전히 그 일을 생각하고 잃은 가족을 마음속에서 꺼내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희생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희생자들을 폭도라고 이야기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과거는 과거로 묻고 아픈 것을 그만 들추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제는 과거를 묻어두고 앞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말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원인도 같이 묻어두자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원인에 대한 명확한 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과거의 기억인 광주에서의 아픔을 찾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군부 독재의 비극적 역사를 똑같이 경험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한국의 광주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 이후 남은 유족과 과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파헤치는 것보다는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적인 부분과 그들이 지금 해나가고 있는 일들을 천천히 보여준다. 두 도시는 모두 독재 군부에 의해 자행된 학살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벌어진 행태도 비슷하다. 갑자기 길거리나 학교에서 사람들을 잡아가 폭도 세력으로 몬다. 그리고 죽이거나 특정 장소에 가두고 고민했다. 잡은 민간인들을 고문하는 일도 많았다. 마치 거울처럼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이 슬픈 역사는 굉장히 비슷해 보인다.
영화는 두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실종자들의 유골을 찾는 일이다. 그 당시 두 도시에서는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가 많았다. 하지만 실종자도 굉장히 많았고 그렇게 갑자기 연락이 끊긴 사람들은 유골조차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 몇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실종된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특정 기관 주도로 땅속 어딘가 묻혀있는 유골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 작업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 자체가 남은 가족들에게는 작은 희망을 선사한다.
가족을 잃는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이후, 남은 가족들은 망자를 편안히, 그리고 곱게 보내려 애쓴다. 장례절차를 통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가족의 모습을 마음에 꾹꾹 넣어둔다. 그 마지막 인사는 작별을 의미하지만 남은 가족들이 그 슬픔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신을 찾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유족들은 그나마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만 그런 작별의 기회 조차 가질 수 없는 가족들은 삶을 이어가면서 잃어버린 가족과의 마지막 인사를 꿈꾼다.
과거를 보존하고 실종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희생자들의 가족 인터뷰를 담았다. 남은 가족들의 소원은 이미 나이 든 자신이 죽기 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땅에 편안히 묻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군부 학살 당시 겪었던 일들을 마치 어제처럼 묘사한다. 가족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들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떤 사람은 죽은 자식의 시체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단서가 끊겨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한 경우가 모두 나온다. 그들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할 때 그들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 눈물을 아는 사람들은 남은 유골을 찾으려 무던히 애쓰고 하나하나의 유골을 찾고 분석해 나간다. 이것이 두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고 정리해나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두 번째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이 역시 양쪽의 의견이 있다. 그 당시의 건물이나 물건을 옛날 그대로 보존하여 그때의 비극의 역사를 그대로 현재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견과 아픈 과거를 새롭고 더 밝은 모습으로 덮어쓰자는 의견이다. 이 영화는 그 아픈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당시의 역사가 있는 그대로 기록된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당시 군의관이었던 한 의사가 그 당시 군 병원 건물을 걸어가면서 내뱉는 말들이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40년이나 더 지난 일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가 느끼는 감정과 주변 인물들이 느끼던 감정이 전달됨과 동시에 그 당시의 처참함이 그의 말에서 느껴진다. 그 당시의 병원이나 옛 전남도청 건물을 있는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과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지는 그 당시 실종자들이 갇혀있던 건물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비슷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결국 잘 보존된 역사적 현장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과거에 대한 복원과 보존 노력 역시 남은 유가족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 당시 희생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신들의 권리인 자유와 민주주의가 이들의 희생으로 조금이나마 지켜지길 바라는 것, 그리고 국가 권력이 가면 안 되는 길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는 두 도시에 남은 유가족의 그 당시 기억에 대한 발언을 함께 보여주며 이러한 노력이 중단되면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기록과 복원에 대한 노력에서 조금 벗어나 과거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덧붙이고 있다. 그 당시 자녀들을 잃었던 어머니들이 비슷한 처지의 다른 어머니들과 하나둘 모여 투쟁을 하게 된다. 광주뿐만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을 시작했다. 대부분 여자인 그들을 무시했지만 그들은 조금씩 세력을 키워 큰 투쟁의 불씨로 키웠다. 또한 그들은 나이가 든 현재 시점까지도 진상규명과 실종자 유골에 대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현재까지 두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실상과 아픔이 전달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연약하게만 보였던 어머니들이 끝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은 얼굴에 슬픔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미래에 다시는 그런 아픈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그것에 자신들이 할 일을 끝까지 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투쟁
영화 속에는 현재 두 도시의 10대 학생들이 그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영상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간간히 나온다. 아주 먼 거리지만 영상으로 인사하고 그들이 느끼는 과거의 슬픔을 작품으로 담아내려는 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임흥순 감독은 과거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타기도 한 미술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영상 속에 담긴 과거의 여러 모습들은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빛이란 뜻을 가진 도시 광주와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군부 학살은 굉장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이때 나온 희생자, 그리고 유가족들의 모습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 흑백으로 구성된 화면은 광주와 브에노스아이레스스를 교차로 비추는데, 언뜻 보다 보면 이곳이 광주인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만큼 두 도시가 겪은 상황이 비슷하고 남은 과거의 건물이나 잔재들도 같은 모습이다. 결국은 두 도시가 하고자 하는 앞으로의 방향성도 같아서 두 도시가 과거를 담고 그리는 모습이 마치 하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상이나 매체를 통한 연대로 이 두 도시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영화에 담겼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얀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 군부에 의한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에 대한 지지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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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들을 위한 시(詩)적 허용, <생각의 여름>
[감독: 김종재 | 출연: 김예은, 곽민규, 한해인, 오규철, 신기환 등 | 제작: 너드 조크 필름 | 배급: ㈜인디스토리 | 러닝타임: 82분 | 개봉: 2021년 8월 12일]
안그래도 덥고 짜증나는데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해 올여름은 웃을 일이 참 적다. 거기에 장기화된 취업난까지 겹쳐 괴로운 일상이 지속되는 청년세대를 위로해줄 유쾌한 영화가 찾아온다.
영화 <생각의 여름>은 MZ세대의 사랑을 받는 젊은 작가 황인찬 시인의 실제 시 5편이 영화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테마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원래의 시를 영화 속 상황에 어울리게 배치하다보니 딱 들어맞지 않고 느슨하게 연결이 되는데 이러한 점이 오히려 '시적 허용'같이 느껴진다.
'시적 허용'이라는 키워드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도 연관된다. 시인 지망생인 주인공 '현실'은 마지막 공모전에 낼 시 한 편이 써지지 않아서 헤매인다. 또한 사랑하던 연인과도 헤어졌고 인간관계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시가 써지지 않으면 산으로 가는 게 답!"이라며 근처의 산을 등반하러 발걸음을 뗀다. 풀리는 일은 없지만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그의 모습을 보자면 관객들은 어느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된다. '현실'의 모습은 되는 일 없고 답답함의 연속이지만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있어 아름다운 청춘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는 인생에서 청춘은 시에서 '시적 허용'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시에서 '시적 허용'은 어법에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시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듯이 인생에서 '청춘'은 괴로울 일 하도 많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시기라고 말이다.
누구는 좋은 직장에 취업도 덥석덥석 하고, 또 인기가 많아서 알콩달콩 짝지어 연애도 잘만 하는데 왜 나는 이도저도 아닌 걸까. '현실'도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알바를 하는 카페의 동료 알바생이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시를 쓰는 모습이 마냥 멋지기도 하지만 엉뚱하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하는 지 알 수 없는 '현실'에 마치 동류(同類)를 만난 듯 끌리고 만다. 새롭게 찾아온 인간관계 말고도 낮에 술 먹자고 불러도 못 이기는 체 달려나오는 절친 '남희'도 있다. '현실'은 그의 생각보다 인간관계를 망친 것 같지 않다.
나도 여봐란듯이 살지도 못하고 있고 인기도 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외롭고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또 그럴 때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을 떠올린다. 어디선가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껴질 때면 더 힘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내가 비록 대중성은 떨어져도... 좁지만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음에 감사하다. '현실'도 '남희'와 투닥거리면서 내색은 안 하지만 맞은 편에 앉아 내 찌질한 모습을 다 받아주고 또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다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황인찬 시인의 [실존하는 기쁨]으로 시작해 [소실]로 끝나는 영화를 다 보고나면 한 편의 시집을 감상하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시 읽는 것에 큰 취미가 없는 사람이 영화 덕분에 시에 매력을 느끼게 된 걸 보면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뺐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특히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무화과 숲]은 마지막 구절이 백미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모한 짓을 저질러도 그에 대한 댓가가 따르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이 저릿한 느낌을 주는 구절이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무화과 숲]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존하는 기쁨]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실존하는 기쁨]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내 감정에 확신이 없어 생기는 두려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목은 또 '실존하는 기쁨'이어서 이런 불안마저 실존하기에 얻을 수 있는 기쁨이라는 역설이 재밌다. 어쩌면 불안과 고민 속에서도 활짝 웃기를 택한 '현실'과도 잘 맞는 시라고 느껴진다.
영화의 매력을 높이는 건 김예은 배우의 역할이 8할 이상이다. 나는 김예은 배우를 처음 본 게 <비에 젖은 나방>이라는 작품에서였다. 거기서도 시인(지망생이다ㅠㅠ)으로 나오는 김예은 배우는 흑백의 화면처럼 밝은 빛마저 흡수해버릴 듯 다크한 모습이다. 목소리가 워낙 좋고 독보적이라 해당 작품에서도 시를 읽는데 내 기억에 오래 남았나보다. 배우의 다른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비에 젖은 나방>과는 180도 다른 발랄한 모습으로, 그것도 시인 지망생으로 나오다니 무척 반가웠다. <생각의 여름>에서 김예은 배우는 슬프고 외로워도 씩씩하다. 보는 관객들의 고민마저 날려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달까. 해사한 웃음에 절로 무장해제가 된다.
김예은 배우가 연기하는 '현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보니 김예은 배우의 매력이 부각되는 것이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기 섭섭하다. '현실'의 옛 절친이었지만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고, '현실'의 첫사랑을 뺐은 '주영' 역의 한해인 배우는 영화의 톤을 오묘하게 바꿔놓는 힘이 있다. 속에서부터 뿜어내는 힘이랄까. 앞서 언급한 '현실'의 절친 '남희' 역의 오규철 배우는 실제로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 같은 텐션으로 영화의 활력을 더해준다. '현실'에게 다가온 새로운 친구 '유정' 역의 신기환 배우는 이 작품에서 처음 봤는데 맑은 기운과 생생함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현실'의 전 남친 '민구' 역의 곽민규 배우는 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보여줘서 그 능청스러움에 웃음을 짓게 한다. '현실'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반려견 '호구' 역의 '복자'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멋진 연기견이다.
여름 속을 헤매는 '현실'이 다섯 편의 시와 여러 인간관계를 거치면서 정답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면 은은한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 영화 전체가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같다. 스물 아홉에 제대로 아홉 수를 맞은 '현실'이 좌충우돌 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이십 대의 중반인 나는 조금 더 고민하고 헤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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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꺼풀
눈꺼풀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바닷가 자갈 틈에서, 산속 개울 아래서 크고 작은 미륵불이 보이는 섬, 노인은 이 섬을 찾는 사람에게 떡을 만들어 먹인다. 멀고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은 이 섬을 찾아와 노인이 만들어준 떡을 먹으면 그가 떠나왔던 곳에서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그가 가야할 길만 기억하게 된다.
노인은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듣고, 떡을 만들어 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절구에 쌀을 빻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떡을 찐다. 그렇게 하얀 백설기가 되면, 섬을 찾아온 사람은 떡을 먹고 사라진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 배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많고, 이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방송 보도가 들린다. 그리고 바다에서 섬으로 쥐 한 마리가 헤엄쳐 오고, 그 쥐는 노인의 집 천정에서 부스럭거리며 노인의 잠을 방해한다. 노인은 쥐를 잡으려 나서고, 절구공이로 절구 위에 있던 쥐를 내리치지만 절구공이만 부러지고, 쥐는 다시 도망치다 섬에서 유일한 우물에 빠진다.
섬에 학생과 선생님이 도착하고, 노인은 어린 학생을 보더니 '어린 사람이 왜 이 섬에 왔느냐'고 역정을 낸다. 학생은 '떡을 먹으러 왔다'고 말한다. 노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쌀을 빻아 떡을 만들려 하지만, 절구공이가 부러져 쌀을 빻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돌미륵불을 거꾸로 들어 쌀을 빻지만, 고통스러운 노인의 신음소리와 함께 돌미륵불의 목이 부러지고, 절구도 부서진다.
선생님은 물을 마시려 우물로 가지만, 우물은 이미 썩어버렸다. 노인은 망가진 절구와 목이 잘린 돌미륵불을 우물에 던진다. 절구와 돌미륵은 바다 깊이 가라앉고, 자욱한 모래먼지 속에서 돌덩이로 보이던 물체가 미륵불인듯, 사람인듯 눈을 감고 있는 돌같은 물체가 순간 눈을 번쩍 뜨고 정면을 바라본다.
오멸 감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편의 진혼곡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와 메타포로 일관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현실을 직접 언급할 때가 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다룰 때가 그렇다.
바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천을 상징한다. 바다는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이면서, 희생자들이 있는 삶과 죽음의 공간이자,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경계로써의 바다다. 이 바다를 건너면, 어떤 사람은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영영 바다에 살게 된다.
노인은 미륵불의 현현이고, 불쌍한 중생을 보듬는 부처이자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한없이 자애로운 보살이다. 노인은 섬을 찾아온 학생과 선생님을 보면서, 그들에게 떡을 해주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저 어린 것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깊은 바다를 건너 노인을 찾아와야 했을까. 노인은 자신을 내던져 온몸으로 쌀을 빻지만, 주체할 수 없는 비애와 아픔 때문에 목이 잘리고 만다. 미륵불 마져도 이 어린 학생과 선생님을 구할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 죄 없는 사람들만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승의 불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노인은 이승을 떠난 사람이 먹어야 하는 떡도 만들지 않고, 떡을 만드는 도구인 절구와 절구공이를 바다에 버린다. 부정한 세상에서 갈 곳 없는 영혼들은 결국 떡을 먹지 못하고 사라지고, 목이 잘린 미륵은 저 바다밑 깊은 곳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을 기다려도 뜨지 않던 눈을 뜬다.
느리고 유장한 화면만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깊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화인같은 슬픔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뽑은 대통령이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악랄한 쥐새끼 같은 존재였고, 인간이 아닌 존재, 저주받아야 마땅한 악귀같은 존재가 대통령이며, 공무원이며, 국회의원이며, 검찰, 경찰, 해경이며, 패륜집단이 저지른 야만의 학살이자, 집단 살해극이었고, 그 결과의 참담함은 다수의 국민들 가슴에 찍힌 고통이다.
7년.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고, 가해자들은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달마가 눈꺼풀을 잘라 낸 것은 무엇을 보려는 것이었을까. 두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저 악마들, 가해자들의 기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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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액션도 미처 못 담은 회색지대의 삶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징역형을 감형하는 조건으로 CIA의 기밀 프로젝트인 '시에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코드네임 '식스(라이언 고슬링)'. 일명 '그레이 맨'이라 불리는 첩보 요원이 된 그는 여느 때처럼 방콕에서 타깃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기 직전 자신을 시에라 프로그램 참여자라고 밝힌 코드네임 '포(four)'로부터 메모리 카드를 건네받는다. 그 안에 CIA의 기밀 정보가 든 것을 알게 된 후 식스는 상관인 '카마이클(레게장 페이지)'에게 메모리 카드를 넘기는 대신 그 기밀을 파헤치기로 결정하고, 이에 카마이클은 전직 CIA 요원이자 소시오패스인 '로이드(크리스 에반스)'를 보내 그를 추적한다. 식스는 전직 상관인 '피츠(빌리 밥 손튼)'와 방콕에서 만난 요원 '대니(아나 데 아르마스)'의 도움을 받아 로이드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조금씩 숨겨진 진실에 가까워진다.
7월 13일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22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영화 <그레이 맨>은 베스트셀러 시리즈인 마크 그리니의 '그레이맨' 시리즈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레드 노티스>와 함께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제작비인 2억 달러가 투입된 <그레이 맨>은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에반스, 아나 데 아르마스, 레게장 페이지 등의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며 개봉과 공개 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다. 특히 <그레이 맨>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비평과 흥행을 모두 잡은 루소 형제의 연출작이었기에 더욱 큰 기대를 모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레이 맨>은 그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화려한 액션 시퀀스와 오락성은 액션 영화를 다룰 줄 아는 루소 형제의 장점을 제대로 선사한 반면,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그들의 스토리텔링은 첩보영화로서의 독특함과 '그레이 맨'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레이 맨>은 시작부터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로 눈을 사로잡는다. 루소 형제가 만든 MCU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달리 액션의 퀄리티가 높기로 소문나 있었는데, 이번에도 거액이 투자된 게 단숨에 느껴질 정도로 그 솜씨를 발휘한다. 방콕에서 타깃인 '시에라 포'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식스는 고층 빌딩 한가운데서 미션을 이행하는데, 신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는 그 시작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뒤이어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사투와 폭발하는 건물, 프라하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트램을 배경으로 한 총격전까지 영화는 끊이지 않는 액션씬을 선보인다.
이처럼 스트리밍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볼 충분한 이유가 되는 <그레이 맨>의 액션은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하나는 아날로그적이고 육체적 쾌감이 돋보이는 액션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클리셰를 역이용 한다는 점이다. 타깃을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대신 나이프와 주먹으로 직접 제압하면서 시작된 <그레이 맨>의 액션씬들은 가급적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맞부딪히는 형태의 액션을 고수하며, 마지막 대결도 주먹싸움으로 귀결된다. 이는 도시나 배경이 바뀔 때마다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타일리시한 도입 샷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일전에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MCU 내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히어로 대신 첩보 요원을 내세우면서 그 특징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그들과 협업했던 무술 감독 샘 하그레이브가 연출한 넷플릭스 작품인 <익스트랙션>이 국제적으로 확장된 듯한 느낌도 든다.
한편 대놓고 007을 언급하는 <그레이 맨>은 여러 클리셰의 방향성을 살짝 역이용하는 영리함으로 무장한다. 우선 카 체이싱이나 추격전처럼 액션 영화의 감초나 다름없는 액션 시퀀스는 배제시킨다. 대신 원거리 저격 대신 육탄전을 벌이는 초반부 방콕에서의 장면처럼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는 길을 걷는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도 오히려 식스와 로이드를 정면으로 대결시켜 버리면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물론 한계점이 없지는 않다. 프라하 시내에서 펼쳐지는 액션이나 다수의 적이 기다리고 있는 적군의 본부에 소수 인원이 침투하는 장면 등은 루소 형제의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연상시킨다. 즉, 액션 시퀀스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액션을 통해 감정과 드라마까지도 전달하면서 기시감을 잊게 만드는 점에서 이들의 탁월함은 다시금 빛난다. 수류탄을 이용한 속임수를 한 번은 유머스럽게, 다른 한 번은 뭉클하게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첩보 영화로서의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클리셰의 역이용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냉전이 저물며 활력을 잃은 후 다양한 변주를 해 왔고, 새로운 클리셰들을 만들어 냈다. 소련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적을 대신하기 위해 첩보 조직 내부에 적이 있다는 방식으로 새로운 적을 상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이슨 본처럼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의 등장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왜 첩보 요원으로서 활동하는지, 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국가의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지, 왜 국가의 이익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 왜 옳은지 혹은 잘못된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는다. 첩보 영화의 대표주자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최신작인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복잡한 이론적 배경을 제치고 나면 <테넷> 역시 싸워야 하는 이유를 갈구하는 첩보영화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레이 맨>은 지금까지 많은 첩보물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뻔뻔해 보일 정도로 간단히 답하면서 클리셰를 반바퀴 비튼다. 영화는 스파이의 존재 의의와 목적, 그리고 정당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지 않는다. 대신 손에 이미 피를 묻힌 이상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의미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식스는 감옥에서 꺼내 주는 조건으로 합류한 시에라 프로젝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피츠의 말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수긍하고, 지금의 삶이라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다. 사실 재소자 중에 가능성 있는 이들을 스파이로 활용한다는 콘셉트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클리셰다. 그런데 스파이가 될 재소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그레이 맨>은 다른 첩보물과 이질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신 <그레이 맨> 속 인물들은 '어떻게?'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방콕에서의 첫 번째 임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식스는 코드네임 시에라 포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전혀 묻지 않는다. 그가 CIA에 위협이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들은 채 미션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는 타깃 제거 방식을 두고서는 책임자인 카마이클과 충돌한다. 민간인과 어린아이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임무를 수행하라는 카마이클의 명령을 식스는 거부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어떻게'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그레이 맨'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재고될 수 있다. 영화 속 그레이 맨은 피츠가 만든 비밀 첩보 요원을 뜻한다. 그러나 회색은 흑과 백 사이에서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그레이 맨'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선이 불분명하고 이를 구분하려 하지도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들린다. 이는 식스가 포에게서 건네받은 메모리 카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자료에는 카마이클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로이드를 고용했고,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첩보 임무를 진행했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정보를 접한 인물들 중 CIA의 존재 이유나 임무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는 이는 없다. 그들은 그저 임무를 진행할 때 어느 수준까지 윤리적 기준을 지킬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이는 작중 식스와 로이드의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대립 구도인 이유다. 매사에 침착하고 냉정한 첩보 요원 식스와 기분파이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민간 청부업자 로이드는 얼핏 보기에 상극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학대에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아버지를 총으로 죽인 자신의 행동이 칭찬받을 일이었다고 회고하는 식스의 모습에서는 왜 그가 '그레이 맨'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애초에 도덕적 기준을 준수한 적이 없는 사이코패스인 로이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들의 마지막 대결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사투다.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의 경험을 동력 삼아 식스가 로이드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만 보더라도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문제는 삶의 근본적인 의미와 이유 대신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그레이 맨>의 스토리가 지닌 깊이를 루소 형제가 온전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어떤 방식의 삶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고민한 바가 드러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작중 식스와 대니를 로이드와 카마이클로부터 구분 짓는 유일한 차이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선을 준수하는지 아닌지에 불과하다. 민간인과 어린 아이를 죽이지 않는 것,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사랑과 신뢰의 의미를 아는 것.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전제 위에서 행동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영화는 그 선을 넘는 사람은 부적절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적절하다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결과 평면적인 '그레이 맨'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굳이 인물들의 과거사나 심리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도 그들의 손쉽게 편 가르고 대립시켜 이야기를 전개할 최소한의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과거사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식스의 과거사는 운을 띄우는 감옥에서의 초반부, 중반부의 플래시 백 장면, 그리고 대니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진상까지 딱 세 대목에 불과하다. 로이드 역시 카마이클과 하버드 동창이었고, 소시오패스라서 CIA에서 퇴출되었다는 것 외에는 과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빈 공간은 끝없는 액션과 익숙한 관계성이 대신한다. 식스가 자신과 같은 처지인 포를 제거하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유사 가족인 식스와 클레어의 관계는 <레옹>을, 식스와 대니가 수십 명이 지키는 성을 공략하는 모습에서는 <존 윅>과 <윈터 솔져>가 보인다. 그래서 결코 간단할 수 없는 식스의 복잡한 내면, 다른 첩보 영화들과 비교되는 차별점은 깊은 우물 속으로 가라앉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대중성과 오락성을 위해 <그레이 맨>의 잠재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선택처럼 보인다.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깊이 고찰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순응하고, 대신 그 안에서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 이러한 태도는 나날이 퍽퍽해지는 현실의 삶을 사는 많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모순된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본질적인 원인을 찾고 개선할 수단이 개개인에게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면, 시청자들의 동병상련을 유도하고, 극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단점의 연장선이다. 창작자들의 자유와 재량을 최대한 보장하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창작자들의 단점을 극대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그레이 맨>이 정확히 그 사례에 해당한다. 루소 형제는 이미 전작들에서 오락성과 대중성을 위해 드라마적인 측면을 희생시킨 전적이 있다. <윈터 솔져>는 안전을 위한 자유의 통제라는 사회비판적 주제를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도로 풀어낸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빌 워>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벌어진 상이한 정의관의 충돌을 두 주인공의 개인사와 감정적 충돌에 국한시키는 측면이 있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도 하나의 이어지는 작품으로 본다면, 생명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어벤져스의 철학과 극단적 공리주의자인 타노스의 신념 간의 논쟁에 대한 결론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대중성과 오락성에 집중하는 루소 형제의 작품이 세련되지만 항상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고, <그레이 맨>도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단순해질 수 있는 흐름에 화려한 액션만큼이나 변주를 주는 대목을 꼽자면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캐릭터들의 매력이다. 우선 크리스 에반스는 <나이브스 아웃>에서 보여준 양아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선보인다. 감정을 전혀 숨기기 못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광기 어린 인물인 로이드를 영화의 톤에 알맞게 표현해낸다. 그가 보여준 로이드의 매력은 정반대의 매력을 뽐내는 식스와의 조화 속에서 더욱 빛나기도 한다. 라이언 고슬링은 정적이고 여유로우면서도 한 끗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또 상당한 지략과 언변을 자랑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잠깐 동안 <드라이브>에 등장한 라이언 고슬링을 보는 듯한 인상도 준다. 이에 더해 <노타임 투 다이>에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바 있는 아나 데 아르마스가 또 한 번 조력자로 등장한 점 역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조차도 단순한 오락 영화 그 이상일 수 있었던 <그레이 맨>의 잠재력을 살리지는 못하며, 영화를 압축한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서 남는 아쉬움도 끝끝내 달래지 못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넷플릭스를 만나 극한으로 발현된 루소 형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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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방민아 배우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방민아 배우님 본격 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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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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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방민아 배우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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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중기 스타일의 액션 /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 / 보고타: 기회의 땅 / 권해효, 이희준의 물오른 연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보고타: 기회의 땅"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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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네데타> 30초 예고편
성혼과 그리스도와의 심장 교환. 신과의 결혼 등 종교적이고 에로틱한 무아경으로 신비주의로 추앙 받으며 수녀 원장에 오른 베네데타. 수녀원에 들어온 바톨로메아라는 처녀와의 사랑이 교회에 적발되면서 한 순간에 불경한 창녀로 매도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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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서펀트>
[2021년 4월 2일 넷플릭스 공개]
- 살인자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실제 사건에 기반한 <더 서펀트>는 끊임없이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찰스 소브라즈(골든글로브 후보 타하르 라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를 법정에 세우고자 전력을 다한 이들의 분투 또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