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ity2022-10-02 14:26:25
레퀴엠과 같던 김창열의 물방울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2022)
'물방울 화가'라는 이름을 가진 화백 김창열의 자서전과 같은 영화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보게 되어 기대가 컸는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시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대 이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자서전과 같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듯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 입 밖으로는
'그래, 이런 영화를 기다렸어-'를 연신 내뱉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예술 강연을 준비할 기회가 생겼었다. 그때 박서보, 김창열 작가 등 우리나라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백들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한때는 두 화백의 작품을 자주 찾아보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특별히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이라는 특정한 도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나의 궁금증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영화<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창열 화백이 왜 물방울 화가라고 불리는지에 관해 답을 한다.
김창열 화백이 물방울을 그리는 이유에 관해서 말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을 만나기 전의 삶과 물방울을 만난 이후, 물방울을 이해하게 된 아들의 이야기라고.
'아직도 호랑이가 산에 있던' 북한의 맹산 그리고 남한과 뉴욕, 프랑스, 제주까지. 화백 김창열을 만들어간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김창열 화백은 전쟁의 아픔을 뼈아프게 겪은 세대의 인물이다. 그가 겪었던 삶의 여러 모양과 아들에게 자주 들려줬던 이야기 그리고
노래를 함께 그렸다. 영화<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감독이자 그의 둘째 아들인 김오완은 아들의 시선과 함께 화백 김창열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다. 영화는 물방울에 집착한 한 화백의 삶의 아픔과 애환. 고집. 침묵. 고요 속의 노래가 가득 매운다.
김오완은 아버지 김창열에게는 침묵과 기묘한 균열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는 다른 '인간', '예술가'인
김창열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아버지 김창열 그리고 인간 김창열의 침묵과 기묘한 균열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을 기록한 영화다.
그가 보고 겪은 여러 죽음들을 오랫동안 추모하던, 레퀴엠과 같던 김창열의 작품들.
그가 수없이 그린 물방울의 의미를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통해 꼭 만나보기를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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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애프터썬' 리뷰
어린 시절의 질문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때의 나는 아빠한테 무슨 질문을 하던 아이였을까? 하늘은 왜 파랗냐, 롤러코스터는 언제부터 탈 수 있냐 내지는 이런 질문도 해본 적 있겠지. 아이는 어떻게 생겨요? 같은 짓궂은 질문들. 나는 어른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알아서 자제하던 눈치 빠른 아이였을까? 아니면 그런 질문들만 골라서 물어보는 개구쟁이였을까? 아이와 어른의 관계는 무엇하나 선명하지가 않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질 때도 있고, 질문이 없는데 정답이 나올 때도 있는 법이다. 완성하지 못한 문답들이 넘쳐나는 관계는 명확할 수가 없다. 흐린 눈으로 봐야만 한다. 빠르게 철들어 시간을 건너뛴 아이에게서는 애잔함이 남아있다. 일찍 크면 그때의 질문들이 몸과 마음속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흐린 눈으로 보아왔던 시간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진짜로 눈이 흐렸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땐 일부러 안경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뿌옇게 하고 지냈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항상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뿌옇게 있으면 앞이 보이느냐고. '보이니까 이러고 다니지.' 대충 이런 대답을 했다. 한숨을 쉬면서도 엄마는 꼬박꼬박 주방세제로 안경을 닦아줬다. 그러면 안경이 좀 더 오래 선명했다. 수경도 마찬가지였다. 안경은 그렇게 닦는 게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수경은 세제로 하는 게 좋았다. 물속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을 싫어했다. 바닷가를 가서 바다수영을 할 때도 수경은 꼭 챙겨서 갔다. 언제부턴가 안경은 잔기스도 덜 났다. 긁히거나 상하는 일 없이 점점 두꺼워져 갔다. 그러면서 일부러 안경알을 문지르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안경이 선명해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충 그때부터 무릎도 덜 까지기 시작했다.
딸 소피와 아빠 캘럼은 튀르키예로 여행을 왔다. 캘럼은 소피와 함께 이곳저곳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방학에 잠깐 시간을 낸 여행인지라 마냥 자유스럽지는 않다. 패키지 여행이기도 하고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으니까 돈을 쓰는 데 눈치도 보인다. 캘럼이 애써 감추려는 모습들은 티가 난다. 애써 '감추려'해서가 아니라 '애써' 감추려 해서 티가 난다. 행동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노력하고 있어서 보인다. 사춘기 소녀는 그 짧은 여행 기간 동안에도 자라난다. 의도치 않은 무심함과 조숙한 배려심이 부딪힌다. 두 세계는 충돌하면서 부서지고 충돌의 여파로 기억은 흐릿해진다. 단편적인 사실들은 먼지 구름이 되어 주관을 뒤덮는다. 기억을 반추하는 과정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리는 것들은 이제야 보이는 아빠의 이야기다.
캘럼은 잘 들어가지 않는 잠수복을 억지로 입기 위해서 몸을 구겨 넣는다. 요령이 없던 그는 청년의 도움을 받고 옷을 입는다. 계절마다 여행을 떠나던 청년은 아기와 함께 고향에 머무르게 되었다. 40살의 자신이 상상하기 어렵다는 청년을 보면서 캘럼은 몸을 구기느라 가쁜 숨을 몰아 내쉰다. 기나긴 한숨을 푸른 바다에 흘러 보낸다. 아빠는 차분하게 가라앉고 딸은 솟아오른다. 푸르른 대자연 속에서 캘럼은 꾸준하게 운동을 한다. 수련보다는 수양의 형태이다. 호텔방 TV 옆에는 태극권 비디오가 놓여있다. 명상과 태극권, 어린 소피는 아빠를 캠코더로 촬영하고 영상을 본다. 녹화하지 않은 채로 아빠에게 묻는다. '11살 때 아빠는 뭘 했나요.' 그리고, 이윽고 아빠의 대답이 이어진다.
다 큰 소피는 기억을 되짚어 아빠를 상상한다. 이제는 아빠의 상태를 대신 답할 수 있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비슷한 상황이었겠거니 넘겨짚으면서 답을 고민한다.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있던 감상을 끄집어 올린다. 추억하는 일이 어려운 건 묵혀두었던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주로 좋은 감정보다는 싫고 슬펐던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추억은 언제나 즐거운 행위이기 마련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과거의 특정 시점과 사건들에 고정되어 있는 걸 떠올리면 명확하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상황을 판단하기엔 지나치게 함축적이거나 암시적이다. 상상과 추리의 영역에서 해석하면 영화는 더없이 무거워진다. 나풀나풀한 한여름에도 세계는 절망스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마는 여름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공평하니까. 추울 때는 껴입어야 하는데 더울 때는 벗으면 되니까. 여름은 돈이 많건 적건 티가 덜 난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니 그나마 여름이 낫다. 공평하게 견디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궁핍한 건 마음으로 족하다. 캘럼은 열심히 소피의 등에 선크림을 발라준다. 소피도 아빠에게 선크림을 발라준다. 소피는 아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소피는 의젓한 아이다. 아니, 세상에 선크림 바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나. 끈적끈적한 피부는 다들 싫어한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건 소피가 충분히 아빠의 처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이는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게 아니다. 선크림처럼 그냥 스며들기를 바라는 거다. 덜 따갑고 덜 아프게끔. 두 사람은 서로를 정성껏 발라준다. 그저 여름을 견뎌내기 위한 손길이다. 그러니 이미 탄 피부에도 발라야 한다.
그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질문과 대답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는 시점이 온다. 명확하지 않은 문답 속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다 이해하진 못해도 사랑의 흔적이었다는 건 알 수 있다. 사랑은 정확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흐린 눈으로도 볼 수 있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어릴 때의 질문은 잃어버렸는데, 어렴풋하게나마 답은 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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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당이 불쌍해 보이는 영화 | 나쁜녀석들 더 무비
드라마의 인기의 힘으로 영화까지 진출한 드라마 겸 영화가 있다?!
그 드라마가 바로 나쁜 녀석들 인데
OCN에서 방영을 시작으로 인기가 많아서 영화까지 나왔어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마동석과 김상중이 극의 전체를 이끌어 나가면서
새로운 인물까지 등장하면서 재미있는 킬링타임으로 딱 좋은 영화라서
가지고 와봤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액션, 느와르, 스릴러, 블랙 코미디, 피카레스크
감독 : 손용호
각본 : 한정훈
출연진 : 마동석, 김상중, 김아중, 장기용
개봉일 : 2019년 09월 11일
평점 : 8.15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죄수들이 탈출했다!
교도소 호송차량이 전복되고 최악의 범죄자들이 탈주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경찰은 수감 중인 범죄자가 흉악범을 잡는 극비 프로젝트인 '특수범죄수사과'를 다시 소집한다.
미친개... 다시 풉시다!
'오탁구'반장은 과거 활약했던 전설의 주먹'박웅철'을 찾아가고,
감성 사기꾼 '곽노순'과 전직 형사 '고유성'을 영입해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해 더욱 강력하고 치밀하고 독해진 나쁜 녀석들.
이 사건을 파헤칠수록 배후에 거대한 범죄조직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그들은
더 나쁜 놈들을 소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나쁜 녀석들의 법 없는 검거작전!
놈들처럼 생각하고 놈들처럼 행동할 그들이 온다!
여담
OCN 드라마로 처음 방영을 시작하여 나쁜 녀석들의 이야기가 좋아
시즌 1과 시즌 2를 만들었는데 이번 작품은 시즌 1을 배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안 본 상태에서 영화를 봐도 될까요?!
가능합니다. 나쁜 놈들을 잡는다! 가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안본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봐도 됩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 결마를 살펴보자면...
역시 등장부터 구린내가 풀풀 풍기던 경찰차장은 나쁜 놈들과
결탁하여 나쁜 놈들이 위기에 처하지만, 역시 주인공의 버프로 인하여
믿는 건 박웅철(마동석)의 힘으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차례차례 나쁜 놈을 처리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며,
많이 아픈 오탁구(김상중)은 간 이식에 성공하고,
나머지 나쁜 녀석들은 각자의 감옥에 들어가 모범수로 생활을 이어가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새로운 인물과 서로의 티격티격한 케미가 재미있었던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마동석 때문에 나쁜 놈들이 더 불쌍해 보이는
킬링타임 영화였습니다.
한줄평 : 마동석이, 마동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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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틴 스튜어트 버젼의 다이애나는? 영화 <스펜서>
- 스펜서 (SPENCER, 2021)
장르 : 영국·미국, 드라마 │ 감독 : 파블로 라라인
출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다이애나), 잭 파딩(찰스왕세자), 샐리 호킨스(매기) 외
등급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6분
이 영화의 제목은 왜 스펜서인가
금발에 파란 눈, 훤칠한 키에 감각적인 패션, 수많은 파파라치. 엄숙함이 지배하는 영국 왕실에서 헐리웃 스타처럼 반짝이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사람들의 입에는 지금도 다이애나가 오르내린다. 패션의 아이콘으로, 영국 왕실의 이단아로, 그리고 만인이 사랑해마지않을 친숙하고 소탈한 성격의 한 여인으로. 그런 다이애나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했다기에, 한 걸음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다이애나의 일대기를 다룰 줄 알았던 영화는, 뜬금없이 크리스마스이브에서 시작한다. 이미 두 아들을 낳아 길렀고, 남편의 오랜 외도를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는 시댁 식구들을 견디며 행복을 연기해야 하는 시점의 다이애나다. 동화 같았던 세기의 결혼식으로부터 너무나 멀찌감치 떨어진 시점을 다루고 있는 것에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아니라 ‘스펜서’니까. 왕실의 며느리이기 이전에 고유한 인간이었을 다이애나 스펜서를 우선적으로 조명해준 덕에,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공주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고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날이 크리스마스였던 걸까. 영화는,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 날조차 살얼음 같은 불행을 걷고 있는 다이애나를 비춘다. 남편과 싸우고, 자해를 하고, 변기에 몸을 구부려 음식물을 토해낸다. 그리고는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찍는다. 국민들에게 따뜻한 왕실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줘야 하니 그에 걸맞게 몸무게도 1.4kg 찌워야 한단다. 왕세자비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반복의 일상. 정해진 옷을 입고, 몸무게를 통제받고, 마음대로 궁전 밖을 나가거나 개인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삶. 그 억압에 짓눌린 다이애나의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앤 불린’의 귀신과도 마주한다. 오명을 뒤집어쓰고 목이 잘려 처형당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그 앤 불린 말이다. 그녀는 왕실의 일부이면서도 영원히 왕실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자신과, 왕과 결혼했지만 결국 왕에 의해 처형된 앤 불린을 동일시했던 모양이다. 앤 불린의 환영을 보기도, 자기 자신이 앤 불린이 되기도 하면서 영화는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의 다이애나를 보여준다. 불안이 극에 달했던 고작 3일간의 시간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촘촘한 줄거리가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두서없고 심란한 내면 상태를 편집증적으로 나열하는 방식 덕분에, 관객은 다이애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궁전 밖에 있음을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왕자랑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재벌가에 시집가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릴까. 하지만 매일매일 값비싼 의상에 둘러싸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 말미, 다이애나는 자신을 옥죄던 비싸고 아름다운 옷 대신 야구모자를 뒤집어쓰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KFC로 향했다. 궁전에는 일반 서민들은 맛보지도 못할 오케스트라와 최고급 요리가 즐비하지만, 굳이 다이애나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귀가 터지도록 떼창하는 대중가요나 KFC 치킨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것. 언제든 원하는 복장으로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껏 넷플릭스를 봐도 되는 우리들의 이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행복이라는 것 아닐까.
우리가 사랑했던 건 스펜서
왕족들은, 언제나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며 그 성벽을 굳건히 유지해왔다. 다이애나를 며느리로 들였던 영국의 윈저 가문 역시 자신들의 이미지를 엄격히 통제하며 그 위엄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건 더는 왕이 필요치 않은 이 자유평등의 시대에 걸맞는 방식이 아니었다. 다이애나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단연 다이애나가 그 틀을 깨고 불행한 왕세자비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럼없이 국민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에이즈 환자들의 손을 잡거나 노숙인을 찾는 등 친근하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테다.
<실제 다이애나와 두 왕자들>
그리고 이는 다이애나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두 왕자를 통해 묻어나는 중이다. 어머니의 발취를 따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운동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 왕자들의 발자취를 보노라면, 다이애나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 왕자에게도 아마,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고 켄터키 치킨을 먹던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 아니었을지.
스펜서의, 스펜서에 의한, 스펜서를 위한
그녀가 원하던 방식대로 기억해주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인지, 영화는 샤넬백에 펌프스를 신고 있던 불안한 다이애나에서 시작해, 야구모자에 점퍼를 입은 채 웃는 다이애나로 마무리된다. 그녀는 너무나 고고해서 깨질 것 같은 존재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존재였다. 또, 행복해 보이고 수동적인 동화 속 여성상을 벗어나 자유를 향해 소신 있게 살아간 한 여성이기도 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건 왕세자비 타이틀과는 무관한 그녀의 인품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를 영원히 ‘스펜서’로 기억해주고 싶다.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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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망무제(一望無際)
구구절절히 설명하면 재미가 없다. 또 과하게 친절하면 매력이 없다. 왠지 모르게 이성관계에서 적용되는 이론을 꺼내오고 싶어진다. 과연 배때지가 불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네 연애나 제대로 하고 이런 문장을 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말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오히려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지내야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같다. 누군가가 정말 좋았다가도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릴 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멀어지게 된다. 너무 많이 말하면 다 알아서 상상력이 줄어드는데, 적게 알면 그만큼 사람이 생각할만한 건덕지가 넓어져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게 만드는 결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한 유령이 있다. 유령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 유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한번 열어보자.
간단하고 단촐하게
<고스트 스토리>는 살아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루니 마라와 케이시 에플렉이라는 할리우드의 빅 네임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근데 제작비는 10만 달러로 초초초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초저예산 영화의 특성만큼이나 줄거리는 소박하다. C와 M은 다정한 신혼부부다. 근데 갑자기 남편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M는 혼자 남겨졌다. 그렇게 C가 떠난 빈자리를 감당하며 일상을 보낸다. C는 이 빈자리를 조용히 관망하기만 한다. 유령이기 때문에 말도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떠난 빈 집에서 파이를 먹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M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이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삿짐을 준비하는걸 전부 마무리한 M. 집을 떠나며 무언가 쪽지를 쓰고 벽에 묻는다. 유령이 된 C는 M이 떠난 후 벽을 열심히 파서 쪽지를 보게 된다.
줄거리를 쓰기에 간단한 구성이다. 그 덕에 영화는 딱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C와 M이 부부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C가 세상을 떠나고 M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유령이냐/유령이 아니냐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중요한 건 M이 유령이 되고 난 후다. 이 작품은 M의 사후를 조명하는데, 이 과정이 영화라고 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심심하다. 솔직히 루니 마라가 파이 먹는 걸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파이를 먹는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 먹는 게 재미있는 분들은 유튜브에 '먹방' 검색하고 아무 영상이나 재생하는 것이 더 도움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상 속의 시간까지 조명하는 이 영화다. 영화는 M의 시점에서 C를 구경한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가 느낄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의 곁을 떠난 우리. 떠난다는 건 허무함과 우울함의 연속이다. 이를 수식할 수 없을까? 아니다.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 영화와 같이 조용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바쁘게 보내려고 한다. 치열했던 일상이 끝났다. 하루를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문득 혼자라는 걸. 난 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의 존재는 내 생각보다 컸었다. 그러면 무슨 행동에 전제조건이 붙게 된다. 어떤 일을 ‘그걸 이겨내기 위해’ 했었던 만큼 그 인물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타인의 흔적이 강하게 박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고 파이를 혼자 먹고 싶어서 먹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익숙한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는 그 지점은 인간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되게 별 것 아닌 순간에서 사람은 그제야 떠난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허전함이라는 감정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이 갖고있는 정서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의 경우 왕가위는 아휘 캐릭터가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먹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반대의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관객이 인물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롱테이크와 장면을 길게 늘이는 방식이 그 예인데, 파이를 먹는 신에서 그게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4분 30초간의 한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부엌 안에 덩그러니 앉아서 파이를 먹는 M. 우리는 그걸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에 빠진다.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한 부엌. 집엔 아무것도 없고 여자 혼자만 있다. 그럼 감정이입이 된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걸 나타내는 행위는 없는데도, 인물이 외로움을 느끼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여태까지 없던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이 외로움이란 정서를 M과 함께 공유하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 원래 둘이 있으면 뭐든 함께했다. 혼자서 먹을때도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 생각에 행복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같이 나눌 이가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함께'라는 사실에 기댔다가 누군가가 나를 떠나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씁쓸함에 외로워진다. 근데 인간에게 있어 이 시간은 점점 누적된다. 외로움에 지치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진다. 근데 지치면 지칠수록 시간은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더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영화로 돌아가서, 한 장면을 4분 30초 동안 본다고 가정해보자. 외로움을 느끼며 시간이 진짜 안 간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이 시간이 안 가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함께라면 이 파이가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금새 잊지 못했던 상처가 생각나 또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에 빠져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 더럽게 안 간다. 같이 하면 더 많은 걸 하면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서 하니까 눈이 파이 먹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이는 이 정서를 100% 의도한 연출이다. 일부러 잔잔하고 조용하게 설정해서 인물이 느낀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만약 왕가위라면 나레이션에 색감보정에 이것저것 많이 넣었겠지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인물 하나와 파이 하나만으로도 고독감과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상실의 의미와 아름다움
감독이 설정한 이 정서를 함께 느끼다 보면 우린 알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존재감을 느낀다. 삶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 극 중 예언자의 말처럼 존재를 기억하는 데 있어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를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 굳이 남지 않더라도 어쩌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름답다. 완전하게 신선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했다. 외로움은 우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이걸 표현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명제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각자 다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내 옆을 떠났고 그 인물이 나에게 무슨 느낌을 줬는지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감독은 이에 대한 공감의 방식으로 색다른 방법을 택했다. 정해지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여줬다. 우리는 이 덕에 각자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을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인간의 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우리에게 각자가 품고 있는 정서를 드러나게 했다. 일망무제가 딱 적당한 표현이다. 우리 인생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 또 영화와 예술은 이런 우리의 텅 빈 무언가를 꺼내주는 아주 감사한 매개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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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킷> 로맨스, 액션, 정치 스릴러의 무색무취한 만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애인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미국인 관광객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 그는 숙소로 이동하던 중 졸음운전으로 인해 차가 전복되어 추락하는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애인과는 달리 간신히 살아남은 그는 비탄에 잠긴 채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그리스 경찰에게 차가 추락한 주택 안에서 한 남자아이를 봤다고 진술한다. 그러자 친절하던 그리스 경찰들은 사건 현장을 찾은 그를 향해 느닷없이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베킷은 공격을 피해 도망친다. 아테네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베킷은 나라를 가로지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그는 그리스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의 거미줄에 빠져든다.
13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베킷>은 평범한 미국인 베켓이 갑작스럽게 그리스 경찰에게 쫓기는 추격전을 크게 세 개의 플롯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다이아키>와 <안토니아>로 이름을 알린 페르디난도 시토 필로마리노 감독은 우선 베킷과 에이프릴의 로맨스로 문을 열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처럼 갑작스럽게 베킷과 그리스 경찰 간의 추격전과 액션으로 노선을 선회한다. 이후 베킷이 자신을 둘러싼 음모에 대한 단서를 맞춰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두 개의 플롯을 포괄하는 그리스 경제위기와 관련된 국내외적 정치 스릴러의 면모를 선보이고, 영화는 윌 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연상시키며 마무리된다.
문제는 <베킷>이 선보이는 세 개의 이야기가 전혀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다는 점이다. 각각의 플롯은 그 자체의 매력이 부재하며, 상호 간의 연결고리도 느슨하다. 즉, <베킷>은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려 했는지 의도는 어렴풋이 보일지언정,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는 영화다.
먼저 도입부를 장식하는 베킷의 사랑 이야기를 보자. 상대적으로 보다 주관적 감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배우 간의 호흡은 차치하더라도, 영화는 좀처럼 베킷의 심정에 빠져들어갈 계기나 동기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커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두 남녀가 그리스에 여행을 왔고, 시위로 혼란스러운 아테네를 떠나 비교적 한적한 관광지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베킷이 죄책감에 매우 고통스럽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영화는 이들의 현재와 상황을 제시할 뿐,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피 흘리는 와중에도 베킷을 끊임없이 뛰고 구르도록 만드는 동기 중 하나인 죄책감 혹은 상실감은 마치 타인의 부고 기사를 읽는 듯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만약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추억을 공유했으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강한 지를 알려줄 장면이 짧게나마 있었다면 이러한 감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위의 내용만 있어도 베킷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영화의 구조상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베킷이 유일한만큼, 주인공에게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 로맨스는 도입부로서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베킷과 그리스 경찰 간의 추격전 역시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일단 긴장감이 없다. 사실 한 남자가 갑자기 표적이 되고, 정신없이 쫓기는 와중에 자신을 죄어오는 올가미를 하나둘씩 알아챈다는 전개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클리셰다. 그렇기에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라는 상황만으로는 더 이상 서스펜스를 자아낼 수 없다.
따라서 <베킷>과 같은 영화는 주인공을 다양한 변칙적인 상황 속에 던져 놓아야 하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베킷>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경찰에 의해 곤경에 처한 베킷이 그리스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주하고, 이에 경찰들은 현지인들을 위협해 얻은 정보에 기반해 그를 다시 추격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암석으로 가득한 그리스의 산을 비롯해 좁은 공간 그 자체로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집 내부나 기차 칸 같은 다양한 환경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도 이들을 베켓의 추격전에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시키지는 못한다. 단지 그리스어 대사에 해당하는 자막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불안함과 초조함을 가중시키는 재치만이 잠시 빛날 뿐이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되는 액션 역시 흥미를 돋우는 데 실패한다.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액션 시퀀스는 신선하지 않다. 단적인 예로 주차장 건물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는 시간대만 낮으로 다를 뿐,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처음 등장하는 주차장 장면과 유사하다. 유사한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본 얼티메이텀>을 연상시키도 한다. 액션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베킷의 능력 역시 몰입을 방해한다. 총탄이 복부를 관통하거나 건물 3층 높이에서 보어내려도 좀처럼 지치지 않고 고장 나지 않는, 슈퍼 히어로에 필적하는 그의 내구성과 신체적 능력은 영화의 개연성을 과하게 파괴한다. 특히 그리스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비현실적인 액션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베킷>은 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와 유렵연합, 미국이 뒤얽힌 정치 스릴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영화는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 SYRIZA)이 정권을 잡고 그리스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시행한 2015년 전후를 배경으로 삼은 듯 보인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세 번째 구제금융의 대가로 유럽연합에서 제안한 긴축재정 시행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고, 급진좌파연합은 그리스의 경제 주권을 침탈한다는 이유로 긴축안을 거부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경험한 후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미국은 그리스가 유럽 연합 대신 러시아 혹은 중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나토의 방어체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불상사를 걱정 중이었다.
문제는 영화의 불친절함 때문에 이러한 그리스의 국내외 정치적 배경을 좀처럼 알아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영화는 철저히 베킷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그 결과 그리스의 정치 상황도 그저 외국인이자 관광객의 시점에서 묘사될 뿐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스,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가 얽히고설킨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미국 대사관에 걸린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에 모두 함축되어 암시되는 것이 그 예시다. 베킷이 그리스 정치와 관련된 정보를 미국 대사관과 좌익 활동가로부터 각각 입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베킷이 발견한 어린 남자아이의 중요성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해석한 정보는 필연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고, 이는 베킷과 시청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그리스의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할 경우, 영화의 흐름과 전개를 쫓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러다 보니 <베킷>의 주제의식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영화는 미국 대사관의 도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베킷과 자국민 보호라는 의무를 저버린 대사관 직원을 대비시키면서 국민의 보호라는 국가의 윤리적 의무와 현실적 이익의 충돌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리스의 정치적 배경이 작중 가상의 그리스 우익 정권을 미국 정부가 돕고, 미국 대사관 측에서 교통사고로부터 그리스 정치계를 뒤흔들 단서를 발견한 평범한 미국 시민을 제거하려는 동기로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자국의 이익과 반대로 행동하며 미국을 공격하는 캐릭터인 베킷,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의 변화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신뢰를 저버릴 때 초래할 나비효과를 상징한다. 잘못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으로 인해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기에 이 메시지는 분명 의미심장하다. 단지 명료하게 전해지지 않을 뿐이다.
<베킷>의 실패는 영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연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모습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베킷보다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침착한 톤을 유지하며, 주인공을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트린다는 흐름 상의 유사점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킷이 <테넷> 속 '주도자'로 보인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영화가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베킷이라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극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기에 영화의 얼굴인 주연 배우에게 다른 얼굴이 온전히 덧입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킷 혼자 나오면 무색무취하던 영화가 에이프릴과 레나가 등장할 때 잠시 생동감을 되찾는 것만 보더라도 <베킷>이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Poor, 형편없음)
설렘 없는 로맨스, 지루한 추격전,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극이 빚어낸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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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히어로에게도 행복과 일상을 묻다.
이 글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목이 너무 길어서 아래의 글들에서는 모두 닥스 2로 줄여서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Phase4로 향하는 마블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새로운 히어로를 앞세운 영화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익숙한 히어로들의 빈자리는 새삼 크게만 느껴졌다. 모든 영화가 다음 편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는 마블 시리즈의 최대 불만은 적시타를 맞은 공처럼 튀어 올라 마블 관계자들이 하늘만 쳐다보게 하기 충분한 것만 같았다. 게임이 끝난 것 마냥 허망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살얼음판 같던 마블의 명성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로 겨우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리셋해놓은 판이었지만. 이 판의 우세한 승자가 마블이 될 것이라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블의 구원투수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과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거리 두기까지 끝난(?) 시점에 침체된 영화계의 부흥이라는 기대까지도 어깨에 얹은 채 5월의 징검다리 휴일에 개봉했다.
그가 부리는 마법이 이번에도 모든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발휘했을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포 영화의 형식을 접목한 접근법도 꽤나 신선하고, 멀티 버스라는 장점을 십분 살려 볼거리도 가득하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닥스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다시 생각해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명배우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닥터 스트레인지 역은 마치 캐스팅부터 마블의 운명을 짊어진 것만 같다. Phase3까지는 아이언맨 등의 걸출한 영웅들에 가려져 할당된 분량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능력이 출중한 캐릭터임을 드러냈을 때 이 점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큰 무리가 없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제작진은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모든 촬영 일정 등을 그에게 맞추는 등의 공을 들인 덕에 그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태 배우가 쌓아온 커리어 덕에 솔로 영화 한 편만으로도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진 히어로로 각인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새로운 마블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야 함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런 히어로에게도 마블의 현재 상황은 꽤나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멀티 유니버스라는 특성상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도 경험과 부담을 동시에 가진 작업이었을 테고.
그러나 영화 속 베니를 보고 있자면.
제작진의 직감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는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각각의 도플갱어들을 완벽히 다른 인물들로 재연해 내고. 피터 파커에 이은 아메리카의 훈육(?)도 완벽하게 해 낸다. 자신이 애써 피했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일상생활의 불안함을 즐기는 연기까지 보고 나면.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위대한 배우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어마어마한 중압감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배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왜 하필 공포인가;남은 자들에 집중하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제작 단계에서부터. 마블은 이번 작품이 공포영화가 될 것이라 말해왔다. 대형 프랜차이즈 히어로 영화에 공포라는 장르가 언뜻 매치가 되지 않을 듯 보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블이 취하는(혹은 바뀐) 자세와 공포가 그 어떤 때보다도 잘 맞아떨어진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마블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타노스의 블립이었다."5년전 그 일"이라는 단어로 불리며 제대로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인물들이 늘 존재했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장면들을 매 영화마다 넣어 희생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고개를 떨구는 히어로들을 그리곤 했다. 하지만 이 "의식"은 마블의 침체기와 맞물리면서 팬들에게 떠난 영웅들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그러나 마블은 이제. 혹은 "드디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은 자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부재로 가끔 긴 한숨을 몰래 쉬어야 하고. 다시는 누구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과 지키겠다는 마음이 뒤엉켜 늘 불안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돌아와 내 몸 하나 있을 자리를 겨우 유지해야만 했다.
이 불안함과 공포는 히어로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수많은 희생 위에 쌓아올린, 아직은 위태로운 평화를 위해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진 인물들이 영화에서 충돌하지만. 모든 히어로 영화에서 그렇듯 반드시 한 쪽은 패하게 되어 있고, 그들의 염원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들에서 공포를 느끼기 충분한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생소하다고 생각한 공포는 요소는 영화에서 크게 겉돌지 않는다. 가끔 이게 진짜 마블 영화가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도 만들어 낸다. 공포를 순수한 무서움이라는 좁은 의미보다 두려움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영화는 정말 성공적인 시도를 해낸 셈이고. 마블이라는 이름 하에 조금은 격하되었던 영화의 "격"도 함께 올라갔음을 느낄 수 있다.
히어로에게도 행복은 존재한다.;행복은 환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케이크는 한 조각만 먹을 때 제일 맛있는 거예요.
스쿼트를 몇백 개(?) 하고, 울기 직전의 상태로 주저앉아있는 내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해준 말이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인바디를 측정할 때마다 그 말이 조금씩 마음에 와닿았다. 고난이 없으면 케이크가 달게 느껴질 리가 없고. 그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면 고난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돌려 말해주신 것이었다.
완다는 케이크 한 판을 한 번에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했다. 그녀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우주에 있는 것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 케이크보다는 쓰디쓴 맛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완다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꾼 셈이다.
영화는 완다의 행복을 향한 불가능한 여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히어로들에게도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예전의 마블 영화들은 정체성과 하늘을 찌를 듯한 의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Phase 4에 다다른 마블은 이제 히어로에게도 능력에 대한 질문보다는 일상에서의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진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딛어야 하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냐고 묻는 것을 보니. 이제 진정으로 마블이 새로운 세대를 열 준비가 되었나 보다.
마치면서
마블 관계자들은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이라 부르는 것을 내쉴 수 있을 것 같다.
보는 내내 케빈 파이기와 샘 레이미 감독을 향한 찬사를 멈출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영화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야 뭐 당연하고.) 애써 되찾은 마블의 명성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이기적으로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최애 장면]
단연코 자비에 교수가 완다의 의식을 구해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샘 레이미 감독을 썼던 이유에 대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음. 그 장면 때문에 영화를 두 번 세 번은 다시 보고 싶을 정도.
[이 글의 TMI]
1. 오이 오빠 소처럼 일해줘서 고마워요.
2. 오이 오빠 제발 내 시간과 돈과 사랑을 받아.
3. 우리나라 사람들 마블에 진짜 진심임. 개봉날 조조영화가 매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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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주 최신 개봉영화(샹치, 켈리 갱, 코다, 습도 다소 높음, 최선의 삶)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1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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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집을 장만하면 아기를 옵션으로 제공하는 마을이 있다?! VIVARIUM
흥해라 이 영화
비바리움 (2019)
- 좀처럼 집을 장만하기 힘들어 하는 톰과 젬마
우연히 들린 이상한 중개업소에 소개한 집을 구경하다 본의 아니게(?) 입주하게 되는데...
기괴한 색감과 설정을 풀옵션으로 갖춘 영구임대주택에서의 육아체험기 '비바리움'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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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부를 판 남자> 메인 예고편
자유, 돈, 명예를 원한 '샘'은 악마 같은 예술가 '제프리'가 던진 계약서에 서명한다.
계약은 바로 그의 피부에 타투를 새겨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평생 전시되는 것!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과 5성급 호텔, 그리고 톱스타급의 인기까지!
타투 하나로 180도 바뀐 인생을 즐기던 '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제프리'에게 팔아 넘긴 건 단순히 피부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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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입덕 부정기는 끝?났?다? 폭풍 성장해서 돌아온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