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23 15:24:18
4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하이틴 무비의 정석 <클루리스>, 오리지널 캐스트와 함께 돌아온다!

감각적인 의상과 연출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하이틴 영화 <클루리스>가
원작의 주인공 ‘셰어’를 맡았던 알리시아 실버스톤과 함께 TV 시리즈로 돌아옵니다.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다시 한번 주연을 맡고 총괄 제작에도 참여하며,
NBC의 스트리밍 플랫폼 피콕(Peacock)에서 방영될 예정입니다.
1995년 작인 <클루리스>는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1990년대 베벌리힐스의 십대 문화를 날카롭고도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수많은 하이틴 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앤드류 가필드, <스파이더맨> 복귀설 답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주역이었던 앤드류 가필드가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올 가능성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최근 개최된 코믹콘에서 그는 “그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기쁨이라면, 나도 기쁨을 얻는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지만, “아주 이상해야 한다.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창의적인 자유가 보장되고,
독특하고 기묘하고 놀라운 이야기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시 불거진 마블의 스파이더맨 4에 가필드가 출연할 것이라는 루머에 대해서는
영국 GQ 인터뷰에서 “실망시키게 되어 미안하지만, 아니다. 물론 이제는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겠지만”이라고
웃으며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은퇴 가능성 언급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 <더 슈라우즈>가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최근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작품이 마지막 영화가 될 가능성을 언급해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세상은 내 다음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든다는 건 일종의 오만일 수 있어요”라고 답하는 한편,
103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포르투갈 영화감독 ‘마뇰 드 올리베이라’를 “도달하고 싶은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연출작, 칸영화제 진출하나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첫 연출작 <The Chronology of Water>가 칸영화제 진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발표된 경쟁 부문 후보에는 선정되지 않았지만, 영화제 측은 이미 이 영화를 관람했으며,
스튜어트에게 러닝타임 일부를 줄여줄 것을 요청했고, 그가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품은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회고록 <숨을 참던 나날>을 원작으로 하며, <비바리움>의 이모겐 푸치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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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운 게 늘어난다. 예전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실패하면 더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고 괜히 도전했다가 허송세월을 보내게 될 거란 걱정에 시달린다. 그렇게 익숙한 사람과 환경 속에 몸을 숨긴 채 새로운 일은 매번 다음으로 미룬다.이전에 하던 대로, 주어진 대로 지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문득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 생긴다.
게다가 지금처럼 망설이다가 후회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날이면 용기 내서 도전하는 사람에게 괜히 시선이 향한다. 그들을 보면 자극을 받아 용기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그런 날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보면 어떨까? 불도저 같은 성격의 주인공 '롤라(빅토리아 저스티스'에게 용기를 배울 테니까.
영화 <퍼펙트 페어링>
영화 <퍼펙트 페어링>은 2022년 5월 19일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최신 로맨스 영화이다. 주인공 '롤라'는 승진을 앞둔 발표에서 친한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상사에게 무시당한다.
큰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와인 회사를 그만두며 스스로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완벽한 홀로서기를 꿈꾸며 유명 와인 회사 대표 '헤이즐'을 찾아'호주의 낯선 목장에 도착한 그녀 앞에 의문의 남자 '맥스(아담 데모스)'가 나타난다.
티격태격 다투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예고편을 통해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만나보세요!
영화 <퍼펙트 페어링>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유능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의 모든 클리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꾸준히 봤던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에 어떤 행동과 대사를 할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이다.
주인공의 퇴사, 낯선 곳으로의 여행, 여자들의 우정, 멋있지만 비밀 많은 남자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한 번쯤 마음에 품었을 로망이 모두 담겨있다.단순하게 클리셰가 많아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로맨스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유지하되, 독특한 개성을 더하는 게 흥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퍼펙트 페어링>은 뻔한 스토리에 와인이라는 세련된 소재를 더하고 아름다운 호주 농장을 배경으로 얹었다.
덕분에 과도한 긴장감이나 격한 감정 소모를 겪을 필요 없이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Q. 용기 낼 타이밍은 언제일까?영화 속 모든 클리셰는 당연하게 주인공 '롤라'를 향한다. 정확히는 모든 요소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이끈다.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반할 때처럼 과하게 느끼던 그녀의 열정에 점점 빠져든다.
예를 들어 '롤라'는 '헤이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가축의 배설물을 치우는 작업 등이 처음이라서 계속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도 그녀는 늘 자신감 넘치게 지금껏 못해본 일이 없으니 해낼 거라고 답한다.특히 영화는 관객들이 그녀의 열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구구절절한 서사를 부여한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그녀가 '헤이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이유가 결코 돈이나 명예가 아닌 와인을 향한 애정임을 강조한다.
그러니 남자 주인공 '맥스'가 그녀를 위해 수 천만 원이 넘는 와인을 준비해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직접 그린 영화 속 한 장면
반면 그녀에게 농장 일을 알려주는 '맥스'는 잘생긴 외모, 농장 주인이라는 직업 등 객관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와인 회사 CEO '헤이즐의 친동생이며. 심지어 가족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초반에 도와준 투자자이다.
일말의 부족함 없이 지낼 것 같지만, 사실 '맥스'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세상에서 도망쳐서 지내는 겁쟁이다.
영화 내내 현실에 만족한다며 누나 '헤이즐'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농장 주인으로 존재를 숨기다가 결말이 되어서야 '롤라'를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다.'롤라'와 '맥스'의 관계를 보니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누군가의 용기를 마주하면 처음엔 호기심이 생겨 살짝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사람의 열정에 조금씩 빠지다가 어느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도 모르게 열정이 생겨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생긴다.
와인이 달콤하다는 이유로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어느새 취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인사불성의 상태와 닮았다.그러니 용기 낼 타이밍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신중해도 괜찮다. 도망칠 만큼 도망쳐 더는 갈 곳이 없는 곳에 숨어 있어도 상관없다.
당신에게 용기 내는 법을 알려 줄 누군가를, 무언가를 깊이 사랑할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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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와 로키타/Tori et Lokita, 2023>
다르덴 형제의 신작 <토리와 로키타>를 시사회를 통해 관람하고 왔습니다. 요새 씨네랩에서 좋은 영화들의 시사회를 많이 열더라고요. 덕분에서 좋은 작품들을 일찍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껏 탁월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왔던 다르덴 형제인 만큼, 이번 <토리와 로키타>도 굉장히 훌륭한 영화입니다.
<토리와 로키타>는 다르덴 형제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애절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벨기에 체류증을 두고 벌어지는 남매의 모습을 담은 이 이야기는 내내 처절하다가 끝내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할 무력감을 선사하는데, 이제껏 희망과 성장을 이야기했던 다르덴 형제가 사회의 치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고 일종의 해답을 내놓지 않는 다르덴 형제의 태도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법을 꿰뚫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르덴 형제의 바로 전작인 <소년 아메드>에서는 파죽지세로 달리는 듯하다가 갑작스레 희망을 보는 듯한 태도가 약간은 아쉬웠는데, <토리와 로키타>에서는 이 둘의 발자취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카메라의 활용이 굉장히 탁월합니다. 그저 목격자의 역할을 하는 듯한 <토리와 로키타>의 카메라는 그들이 겪는 풍파를 옆에서 고스란히 바라보는 듯이 만듭니다. 마치 <아들>에서 보여주었던 카메라의 경이를 다시 목도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르덴 형제는 <토리와 로키타>에서 이전의 작품과 달리 사회의 악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영화 내내 토리와 로키타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들을 벨기에로 들여보내 준 브로커, 심지어는 그들의 엄마까지 토리와 로키타를 돕기는커녕 그들의 돈만 원할 뿐이죠. 이 둘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이후 맞이하는 영화의 가장 아릿한 장면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를 통해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무시와 단절이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을 담담하지만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영화가 데뷔작이기도 한 파블로 쉴스와 조엘리 음분두의 연기는 매우 생생하고 탁월하게 영화에 깃들여져 있어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이외에도 종종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에서 모습을 비추었던 조연들도 좋은 연기로 작품을 탄탄하게 받쳐줍니다.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만큼이나 훌륭한 영화고, 매번 전작들 사이에서 다시금 변주해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5월 10일에 개봉하는데, 꼭 보셨으면 하는 작품 중 하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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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공자>의, 귀공자에 의한, 귀공자를 위한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불법 복싱 경기를 뛰며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던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어느 날, 평생 본 적 없는 한국인 아버지가 보낸 변호사가 마르코의 앞에 나타나고, 그는 아버지가 자기를 찾는다는 말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마르코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목숨을 건 추격전에 휘말린다. 비행기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던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는 곧장 마르코의 숨통을 조여 온다. 마르코의 이복형인 재벌 2세 ‘한 이사’(김강우)도, 필리핀에서 우연히 마르코와 만났던 ‘윤주’(고아라)도 제각각의 이유로 마르코를 쫓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문 모를 추격전의 끝에서 마르코는 자기 인생을 바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또 한 번의 변주
한국형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줬던 <신세계>.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박훈정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신세계>와 비교될 운명이었다. 실제로 몇몇은 <신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박훈정 감독은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누아르라는 장르 밖으로 나가지는 않되, 그 안에서 변주를 줬다. 일례로 <마녀>는 <신세계>와 달리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객에게 어필했다.
<낙원의 밤>은 서사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꾀했다. 한국형 누아르의 관습적인 이야기를 거부했다. 의리와 정을 강조하는 사나이 대신 같은 트라우마를 지닌 두 남녀에게 주목했다. 우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족처럼 보이기도 하며, 이성 간의 사랑 같기도 한 이야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낙원의 밤>은 서정적인 누아르였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귀공자>도 마찬가지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캐릭터다. 공들여 만든 '귀공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장르, 이야기, 메시지를 마음껏 가지고 논다. 귀공자가 한 인물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다만 성공적인 변화인지는 의문이다. '귀공자'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전반적인 균형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귀공자의 영화
귀공자. 처음 보거나 들으면 꽤 어색한 제목이다. 근래에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서 오글거리거나 과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보다 적확한 제목도 없는 듯하다. 따져 보면 이 영화는 어떤 맥락에서든 귀공자의 영화가 맞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귀공자는 "귀한 집 아들. 또는 귀한 집 젊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귀공자>에는 눈에 보이는 귀한 집 아들과 숨겨진 귀한 집 아들이 있다. 한 이사는 눈에 보이는 귀공자다. 재벌 2세인 그는 이복여동생 '가영'(정라엘)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 중이다. 마르코는 숨겨진 귀공자다. 필리핀에서 병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 연명하는 그. 마르코는 한 이사의 또 다른 이복동생이자, 귀한 집 아들로 밝혀진다.
<귀공자>는 기본적으로 이들의 추격전이다. 한 이사는 쫓고, 마르코는 쫓긴다. 한 이사는 급하다.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 내서 유언 내용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르코를 사로잡으려고 한다. 그의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으니. 아버지를 만나는 줄 알았던 마르코는 이내 필사적으로 도주한다. 평생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살던 그가 이복형을 위해 순순히 죽을 이유는 없다.
귀공자에 의한 영화
두 귀공자의 갈등을 틈타 속셈을 알 수 없는 세 번째 '귀공자'가 등장한다. 그 역시 귀공자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한다. "생김새나 몸가짐이 의젓하고 고상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그는 마치 제임스 본드 같다. 깔끔한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자랑한다. 일 하는 솜씨도 프로다. 신속 정확하게 목표를 처리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속물적이다. 명품 구두에 피가 튀면 크게 화내며, 빗방울이 떨어지자 양복이 젖을까 봐 추격을 멈추기까지 한다. 그 덕분에 귀공자가 본모습인지, 귀공자를 동경하는 경박함이 진짜 정체인지 알기 어렵다.
그의 행적은 이러한 양면성을 반영한다. 러닝 타임이 지나도 그의 속셈은 오리무중이다. 그는 마르코를 한 이사에게 데려가던 사람들을 습격한다. 마르코를 빼낸 후에는 몸값으로 천만 달러를 요구하며 한 이사를 협박한다. 그렇다고 마냥 마르코를 돕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친구라고 소개하지만 정작 마르코에게 총을 겨누기도 한다. 선과 악이 분명한 한 이사와 마르코 사이에서 '귀공자'는 물음표가 가득한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콘셉트도 그의 양면성과 맞닿아 있다. '귀공자'의 계획이 끝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영화 분위기도 그의 행보에 따라 달라진다. 마르코가 추격전에 휘말리는 전반부는 진지한 누아르에 가깝다. 그런데 '귀공자'가 난입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피 튀기는 액션과 만난 그의 유머와 기행이 무거움과 경박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다. 박훈정 표 누아르가 블랙코미디로 넘어가는 전환점인 셈이다.
귀공자를 위한 영화
이들 세 귀공자가 모이면 영화는 마침내 본심을 털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 혼혈 '코피노'가 있다. 전반부는 마르코의 일상을 자세히 비춘다. 그는 불법 복싱으로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다가 끝내 범죄를 저지른다. 아버지의 도움은 없다. 이 대목은 코피노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 마르코와 한 이사의 만남도 문제를 고발한다. 한 이사는 마르코를 잡종이라 부르며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이기 때문. 이는 서서히 이슈화되는 동남아 차별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 <귀공자>의 시도는 더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귀공자'는 자기도 코피노라고, 피 튀기는 추격전도 인질극도 다 자기가 계획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 순간 귀공자 3명의 관계가, 익숙한 재벌가 다툼은 다시 쓰인다. 차별하는 한국인과 차별받는 코피노, 그리고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뒤엎으려는 코피노가 새롭게 보인다. 마르코의 진짜 정체를 둘러싼 반전도 허를 찌른다. 귀공자라는 허상조차 막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일말의 아쉬움은 있다. 모든 코피노를 하나의 정체성 안에 가두는 섣부른 일반화가 눈에 띈다. 원색적인 언행을 걸러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귀공자>의 시도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슬픈 열대>가 본래 제목인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상업영화에서 코피노라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귀공자만을 위한 결과
하지만 <귀공자>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다. 과감한 시도는 좋았으나, 의도가 스크린 위에 온전히 구현되지는 않았다. 귀공자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려다 놓친 캐릭터가 많다.
고아라가 연기한 윤주가 대표적이다. 강렬한 첫인상과는 달리 그녀는 사건의 배경과 전개를 설명하는 기능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퇴장도 작위적이다. 추격전의 흐름을 한 번 더 꼬기 위해 갑자기 사라진다. <마녀>와 <낙원의 밤>에서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을 만든 전력이 있다 보니 이러한 활용법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귀공자'라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파생된 문제도 있다. 반전의 임팩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에게 모든 역할을 몰아준 결과 다른 두 주인공은 그저 소모된다. 우선 매력적인 마스크를 지닌 신인 강태주를 찾아 놓고도 마르코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그를 진중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로 설정하다 보니 친구가 되어야 할 '귀공자'와의 합이 잘 맞지 않는다. 복싱이라는 소재를 액션 영화가 살려내지 못한 것 역시 실망스럽다.
한 이사 역시 전반부와 후반부의 괴리가 두드러진다. 김강우의 광기 어린 연기는 인상적이지만, 그는 '귀공자' 주도로 장르가 전환될 때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전반부에는 무게감 있는 사이코패스였지만, 후반부에는 무게 잡는 척만 하는 평범한 악역으로 전락한다.
이에 더해 액션 누아르를 표방하는 영화치고 액션씬의 임팩트가 약하다. 카 체이싱 장면의 경우 템포가 다소 느리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비추는 앵글이 고정되어 있고, 차체를 비추는 앵글은 자동차 광고를 보는 듯하다. 그 결과 역동감이나 박진감이 부족하다. 잔인하게 피 튀기는 액션도 인상적이지 않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정확히 어떤 사건이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박훈정 감독은 개봉 전 기자간담회에서 "차별받은 이들이 차별하는 이들에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귀공자와 코피노, 두 키워드를 엮어낸 스토리에서 그 의도는 분명하게 읽혔다. 하지만 그 의도가 스크린에서 적절하게 펼쳐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결과 이번에도 박훈정 감독의 변주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신세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날도 다음을 기약한다.
Poor 형편없음
달리 말하면 김선호의, 김선호에 의한, 김선호를 위한 영화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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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독립정신 영화 명대사로 알아보기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로 한국의 국경일. 열정적으로 항거한 운동가들, 피해자들의 이야기 영화로 만나보아요.
줄거리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어둠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줄거리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송강호)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으로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고, 한 시대의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쌍방간에 새어나가고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폭탄을 경성으로 들여오기 위해, 그리고 일본 경찰은 그들을 쫓아 모두 상해에 모인다. 잡아야만 하는 자들과 잡힐 수 없는 자들 사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이 숨가쁘게 펼쳐지는 긴장감 속에서 폭탄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경성으로 향하는데…
줄거리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돼줘야지"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릅쓴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하는데.... 조선인 최초의 대역죄인!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상 초유의 스캔들! 그 중심에 '박열'이 있었다!
줄거리
1992~1998 6년의 기간, 23번의 재판, 10명의 원고단, 13명의 변호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줄거리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
줄거리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극장에서 해고된 후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 판수. 하필 면접 보러 간 조선어학회 대표가 가방 주인 정환이다. 사전 만드는데 전과자에다 까막눈이라니! 그러나 판수를 반기는 회원들에 밀려 정환은 읽고 쓰기를 떼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 또한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의 소중함에 눈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바짝 조여오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말모이’를 끝내야 하는데…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 말과 마음이 모여 사전이 되다
줄거리
온 동네를 휘저으며 무려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라고 불리는 ‘옥분’. 20여 년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그녀 앞에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가 나타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민원 접수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하던 영어가 좀처럼 늘지 않아 의기소침한 ‘옥분’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를 본 후 선생님이 되어 달라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둘만의 특별한 거래를 통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영어 수업이 시작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 될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면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간다. ‘옥분’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내내 궁금하던 ‘민재’는 어느 날, 그녀가 영어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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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정의'는 안녕한걸까?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는 경찰이 있다. 범죄자가 잡히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다. 살인을 저지르면 살인에 맞는 형량을, 성폭행을 저지르면 성범죄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일반 시민들은 이를 재판하는 판사와 사법부를 믿고 신뢰하려 하지만, 종종 판결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형량이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며, 사회적으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간다.
피해자들은 평생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공포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죄를 지은 범죄자들은 자신의 형량을 채우고 나면 죗값을 다 치렀다고 착각한다. 이런 괴리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범죄자가 더 이상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음에도, 피해자는 여전히 그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조두순의 출소 사건이 있다. 그의 출소 직후 집 앞에 몰려든 유튜버들과 취재진은 지금의 사회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장면은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시리즈 <비질란테>, <노웨이아웃 더 룰렛>, 영화 <무도실무관>, 그리고 최근 개봉한 <베테랑2>에도 비슷한 장면이 묘사된다. 이러한 출소한 범죄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에 대한 응징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 사회적 현상은 이제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범죄와 처벌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문제로 자리잡았다.
[첫번째 감정] 서도철의 정의감
서도철(황정민)은 사실 단순히 올바르기만 한 경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강력계 형사로서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서왔고, 그 과정에서 다소 거친 언행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범죄자들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협박이나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남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가족에게도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서도철의 내면에 깔린 세계관을 보여주지만, 그가 항상 법을 준수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관객들은 이러한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그가 과연 진정한 정의의 구현자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서도철의 정의는 단순한 폭력의 정당화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범죄자를 체포하고 제압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 한다. 물론 분노에 휩싸여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만, 그의 팀원들이 그를 제지하며 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 이는 서도철이 제도 내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의 강한 언행과 행동 뒤에는 법과 질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숨어있다. 서도철은 자신의 감정에 휘말릴 때가 많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범죄자들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서도철의 정의는 때로는 삐딱하고 비뚤어져 보일 수 있다. 그는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서도철은 이상적인 정의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의 거친 정의는 때로는 불안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과 맞서 싸우려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도철은 결국 제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투박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두번째 감정] 해치의 정의
해치(정해인)는 서도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그는 경찰이지만, 그가 경찰로서의 공권력을 사용하는 목적은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복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해치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직접 처단한다. 그가 추구하는 정의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다. 그는 범죄자들을 법에 맡기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다. 이런 모습은 서도철의 방식과 대조적이며, 해치의 정의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러나 해치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복수를 실천하며, 그 자신 또한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다.
해치가 처단하는 범죄자들은 모두 사회에서 적은 처벌을 받고 풀려난 자들이다. 해치는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전에 그들을 없애기로 결심한다. 관객들은 해치가 처단하는 장면을 보며 그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해치가 대신해주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해치의 처단은 우리가 실제로 법적 제재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범죄자들에게 통쾌한 대리 복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치의 행동은 때로는 불법적이고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정의는 많은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해치의 정의는 과연 정당한가? 그의 방식은 법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사법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해치의 정의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선다. 그는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범죄자들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가함으로써 자신이 피해자를 대신해 그들에게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다. 관객들은 그의 처단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정의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해치의 정의는 법적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의 잔인한 복수는 우리가 바라는 정의와 어긋나지 않지만, 그 방법론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관객들이 느끼는 정의
<베테랑2>는 관객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정의의 방식을 제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정의가 더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서도철은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려는 인물이고, 해치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이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해치의 복수가 더 통쾌하고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나 약한 처벌을 받고 사회로 돌아온 범죄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해치의 처단은 일종의 대리 만족을 제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서도철의 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치의 복수는 사법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방식이지만, 그가 처단하는 범죄자들도 결국 법적으로는 처벌을 받았다. 해치는 그 처벌이 약하다고 판단해 스스로 판사이자 집행자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이는 사법 체계의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치가 지속적으로 범죄자를 처단할수록, 그가 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정의 역시 범죄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관객들은 해치의 처단이 통쾌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한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결국 서도철의 정의가 옳다는 결론을 내린다. 서도철은 때로는 법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려고 노력한다. 해치가 기괴한 방식으로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 사법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동안, 서도철은 그 시스템을 지키며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다. 영화는 관객들이 해치의 처단에 일시적으로 마음이 기울게 하면서도, 결국에는 서도철의 정의에 더 큰 힘을 실어준다. 이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사법 시스템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 문제와 출소 이후의 사회적 반응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진다. 이는 1편에서 권력자와의 대결을 주제로 삼았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2편은 더욱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범죄자들의 처벌과 형량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다양한 정의의 형태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영화의 연출은 이전 작품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여, 서도철과 해치의 대립을 통해 사법 시스템 내에서의 정의와 사적 복수 사이의 경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황정민은 서도철이라는 인물을 거칠지만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정의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표현해낸다. 반면 정해인은 해치라는 인물을 통해 복수와 정의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차갑고 날카롭게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실현하려는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력은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고, 관객들이 이들의 정의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베테랑2>는 단순히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빌런을 점점 더 강력하게 그려내는 것과는 다르게, <베테랑> 시리즈는 보다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며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976nBHtE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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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페셜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고민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박강아름과 정성만은 타이머를 맞춰두고 사진을 찍는다. "보리야 이리 와"라며 들뜬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부르는 아름의 모습은 달달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결혼은 아름의 표정처럼 달지 않았다. 가끔은 삼키기 힘들어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아름과 성만은 진보 정당 활동을 하다 만난 사이다. 당시 아름은 학교에서 영화 수업을 하며 영화감독의 길을 밟고 있었고 성만은 정당 활동가이자 식당 종업원이었다. 남는 시간 글을 쓰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고 결혼했으며 프랑스에서 예술을 배우고 싶다는 아내 박강아름에 의해 프랑스로 떠났다. 아름은 성만에게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당신은 요리를 공부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성만은 아름을 만나기 전까지 대한민국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름과 달리 성만은 프랑스로 날아가서 이룰 꿈이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 타의로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간 개구리는 마치 소중한 서식지를 잃어버린 존재처럼 시들어간다. 박강아름은 그런 성만이 신경 쓰이지만 출산과 학교 생활로 지쳐 본인 몸을 돌보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경제와 행정 담당 아내 박강아름과 집안일과 육아 담당 정성만의 현실적인 결ㅁ혼 생활을 담아낸다.
집밥으로 만나는 집 밖 사람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름은 우울증에 걸린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요리사였던 성만의 특기를 살려 주말에만 한국식 집밥을 파는 식당을 열게 된 것. 부부의 식탁은 어느새 유학생이나 교포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공유 식탁이 되었다. 성만의 우울한 마음은 집밥으로 만난 집밖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듯했지만 그들의 경제 사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만은 좋은 재료로 건강한 요리를 내놓는 걸 좋아했고 집안의 경제를 맡고 있는 가장 박강아름은 그 모습이 아니꼬왔기 때문. 첫 번째 '외길식당' 프로젝트는 오래 가지 못해 마무리됐다.
박강아름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고립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찍자고 제안했다. 영화의 초중반을 촬영하고 나서 성별의 역할이 바뀐 가부장제를 인식했다. 사실 매일 서포트를 받고 있는데도 영상 속에서 제가 '오늘은 나 서포트해줘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덧칠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정도 본인의 시각이 가미됐을 카메라. 그 카메라가 자신의 가부장성을 담은 것이다.
아름은 가부장성을 인식한 이후에도 쉽게 본인의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경제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사회적 성 역할이라는 게 바뀔 수 있음을 두 부부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주부우울증에 걸린 성만은 토마토 대신 체리토마토를 사왔다고 타박하는 아름의 말에 하루 동안 가사 파업에 들어간다. 흥청망청 돈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겨우 3유로 커피 프라페를 마시며 마음을 달랜다.
또한 외관상 특별해보이는 그들마저 여느 부부처럼 끝없이 갈등한다. 아름은 결국 '외길식당'이 아니라 본인들의 결혼에 대해, 더 나아가 결혼의 의의에 대해 주제를 확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외길식당>이 아니라 <박강아름 결혼하다>인 것. 박강아름 시각에서 장면들이 보이니 <박강아름과 정성만, 결혼하다>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정성만과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더욱 어렵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비혼주의자였던 성만과 달리 아름은 원래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임신 초기 아름은 나흘 연속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속을 게워냈다. 막달에는 한 달 내내 변비에 시달려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고통은 계속됐다. 그는 용변을 볼 때 성기가 흘러내릴까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출산 후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 내내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고 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에 대한 책은 많았지만 출산 직후 여성을 위한 책은 없었다고 회의를 표했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었던 암스테르담 영화제에 본인의 작품이 초정작으로 선정됐지만 그는 결국 가지 못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그 시각 아름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혼에 접근하기도 한 아름.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름 대신 육아를 책임진 성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다니던 어학원까지 잠시 휴학하고 아이를 돌봤다. 아름도 성만도 딸 보리를 사랑하지만 결혼과 마찬가지로 출산 또한 그들에게 유쾌하고 행복하기만 한 경험은 아닌 것이다.
지켜야 하는 생명부터 생활비, 챙겨야 할 서류까지 늘어났다. 아름은 끊임없이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 두 번째 외길식당을 열고 다양한 커플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결혼과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의 차이는 뭘까. 본인의 꿈 대신 사랑만 선택해 해외로 이주한, 소위 '결혼망명'도 행복할 수 있을까. 대화가 오갈수록 질문들은 더 많아진다. 아름은 다시 연 '외길식당' 프로젝트를 실패라고 표현했다. 목이 붓도록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지만 궁금증은 당최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보며 고민해보는 것이다. 결혼 그 막막함에 대하여.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
이 영화의 끝부분, 아름-성만 부부와 반려견 슈슈, 딸 보리는 덩케르크 해변을 찾는다. 아름이 본인의 카메라에 그 바다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파도는 없다. 파도는 무겁게 오간다. 유모차는 모래 위에서 매끄럽게 밀리지도 않는다. 성만은 몸이 아프다며 투덜댄다. 아름은 그래도 이왕 온 것이니 비를 맞으면서라도 바다 가까이에 가보자고 우긴다. 결국 그들은 보리가 탄 검은색 유모차를 함께 들고 기어이 모래를 밟는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다.
영화 출연은 물론 촬영부터 편집까지 담당한 박강아름. 그가 이 부분을 영화의 엔딩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 터다. 그는 쉬이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함께 드는 것을 결혼이지 않을까 짐작했을 것이다. 부부가 들어야 되는 건 유모차가 아닐 수도 있다. 생활비일 수도, 챙겨야 할 서류일 수도, 서로의 꿈과 인생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건 보기보다 무겁고 손이 저린 일이다. 한 명이 독박 운반하는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두 명이라도 쉽지 않은 행위인 것. 심지어 그게 진정 의미있는 일인가는 더욱 어려운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몇 번이고 대답이 달라질 터다.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아름-성만 부부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개인의 일기이자 결혼에 대한 묵직한 물음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박강아름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내가 결혼하고 해외로 떠나자 해도 나 잡을 거야?", "결혼은 확실히 연애랑은 다른 것 같아", "팍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의 재미와 만듦새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그래도 박강아름은 성공했다. 그들도 박강아름처럼 결혼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고민하기 시작했으니까.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오늘(19일) 정식 개봉한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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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부기맨> 메인 예고편
스티븐 킹 원작 & 롭 새비지 연출 [콰이어트 플레이스] [기묘한 이야기] 제작진 상상인가, 진짜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숨멎, 심멎하게 만드는 [부기맨]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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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대 너머에> 메인 예고편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숙.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을 헤매는 지연.
과거의 기억 속으로 던져진 경호.
서로의 기억 너머,
존재의 의미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