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deinx2021-04-19 00:39:24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리뷰]'남매의 여름밤(2019)'
“빨리 내 방으로 와 봐! 급해!”
“왜?”
“불 좀 꺼줘^-^”
남매들의 밤은 항상 치열하다. 서로 아웅다웅 괴롭히고 못 살게 군다. 사실 남매라는 관계는 형제나 자매에 비해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해님 달님' 속 오누이 같이 다정한 사이가 있는 반면, 좋아하는 게 달라서 서먹서먹하거나 얼굴만 봐도 으르렁 거리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남매보다 ‘엄마 아들’ 혹은 ‘아빠 딸’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릴 때도 있다. 제목부터 이렇게 복잡한 단어를 넣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그들을 어떤 관계로 그리고 있을까?
영화 ‘남매의 여름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아빠(양흥주)와 함께 작은 지하방에서 살던 남매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는 할아버지(김상동)가 계시는 2층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고모(박현영)까지 같이 지내게 되며 한 지붕 아래 두 남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제24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감독 조합상, 시민 평론가상, 넷팩상, KTH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후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 미래상 수상,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수상, 제8회 무주 산골영화제의 대상으로 불리는 뉴비전상을 연이어 휩쓸었다. 평론가의 선택이 반드시 관람할 이유가 되지 않지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관객들이 공감할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현실적인 가족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집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법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가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를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아빠, 가출한 고모,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된 ‘옥주’, 세상 물정 모르고 해맑은 막내 동주’까지 서로 다른 인물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대화하고 행동한다.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밥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수저를 건네는 모습이나 ‘콩국수 동주한테 덜어줘.’, ‘이거 맛있다,’ ‘포도가 햇빛을 많이 받아서 달아요.’ 등의 대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 위주가 아닌 식사 장면 전체를 촬영해서 실제 가정의 식사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사용된 할아버지의 생신 축하 장면은 핵심 장면으로 꼽힐 만큼 가족 간의 소중한 순간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은 영화의 첫 시사회에서 식사 장면에 대한 질문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말 그대로 가장 일상적인 식사 장면을 담고 싶었다. 옥주의 가족이 처음 할아버지의 양옥집에 왔을 때는 주방에서 고모가 왔을 때는 거실에서, 동주와 옥주는 2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가족들이 어떤 위치에서 식사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답했다.
영화의 배경인 할아버지의 2층 집도 현실적이다. 담금주와 각종 살림살이가 쌓여서 창고가 된 작은 방과 오래된 재봉틀은 그곳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인천에서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빌려 촬영했으며, 영화의 시나리오도 집에 맞춰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할아버지 집 마당은 관리 안 된 텃밭이 있는 걸로 설정했지만, 촬영 장소에 맞춰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추억을 쌓는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시간적 설정인 ‘여름’의 분위기가 한층 강조되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14살 ‘옥주’
영화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극적이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처럼 영화의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정리된다. 화면도 감성적인 색감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담담하게 그린 가족의 일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고 잔잔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담백한 표현 방식에는 주인공 ‘옥주’의 영향이 크다. 주요섭 작가의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른들의 복잡한 관계를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담아낸 것처럼 ‘남매의 여름밤’도 마찬가지다. 14살 ‘옥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어른들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불편한 상황이 많은 부분 생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옥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다.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마냥 즐거운 아이이자 또래 친구들처럼 외모와 이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춘기 소녀다. 하지만 어른들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채고 그들의 대화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옥주’는 어른의 세계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몰랐던 진실이 밝혀지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겪으며 관계와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도 ‘옥주’네 가족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옥주’와 ‘동주’는 계속 싸울 거고 아빠와 고모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껄끄러운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러면서 괜한 자존심과 미안함에 부끄러운 모습을 숨길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들은 같은 식탁에 앉아 별 거 아닌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내면의 민낯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지붕 아래 지내던 여름밤처럼 말이다. 어느 가족의 현재이자 추억할 과거, 견뎌야 할 미래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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