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6-01 23:53:17
사랑 안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영화 <너와 나> 리뷰
SYNOPSIS.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하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은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쳐흐르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 서툰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세미는 하은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까?
POINT.
✔️ 배우로서도 뛰어나지만 감독으로도 이미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
✔️ 세월호를 '논하는' 영화가 아니라 '느끼게 하는' 영화. 마음 앓게 하는 영화.
✔️ 각본과 연출이 매우 섬세합니다. 여고생의 삶을 이토록 여고생답게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은 듯해요.
✔️ 필터를 뽀얗게 쓴 화면 위로 흐르는 오혁의 음악. (너무 좋은데 음원 왜 안 내주세요?)
누군가의 사랑이 깃든 자리는 언제나 은은한 빛이 난다. 아주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했어도 애정을 가득 받은 영화들 또한 그렇다.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상영 시기를 놓쳐 못 보았던 이 영화를 결국 보게 된 건, 세월호에 관한 다큐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보인 진득한 애정 때문이었다. 너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너무 어렵다. 딱 떨어지는 문장과 내 마음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단어를 고르기가 매우 어려워 "하..." 혹은 "너무 좋아요." 따위의 말이나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서 익숙한 표정과 문장을 본 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려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거나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가 왜 이러지. <러브레터>를 처음 봤던 17살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이 난 적은 많아도, 보고 나서도 그 감정이 너무 얼얼하게 내 안에 남아 계속 울게 되다니.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마치 내상 같았다. 간접 경험만으로도 이렇게 아픈데 이 마음으로 10년을 살았다니, 살고 있다니. 그 주간 내내 세월호 관련된 영화를 두세 편 보았는데, 나중에는 약간 몸살 기운마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건 그러므로, 자학이 아닐까. 너무 좋았지만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다시 보고 싶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두 번째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세월호를 정면으로 품고 있고, 그렇기에 아프지 않을 방법이 없지만, 그래도 이 아픔을 뒤덮는 넉넉한 사랑을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아프지만 아름답다. 이래도 저래도 아플 거라면 아름답게 아프고 말겠다.
꿈과 현실이 뽀얗게 엉킨 자리
언급했듯 이 영화는 세월호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는다. 영문 자막 버전으로 영화를 보면 아예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까만 화면 위로 텍스트를 띄워 세월호 사건을 설명한다. 그리고 2014년 4월의 어느 봄날, 이라는 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다리를 다쳐서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하은(김시은)과,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하은을 찾아가 수학여행을 같이 가자고 하는 세미(박혜수)의 하루를 담은 영화다. 한동안 수학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움찔하던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 수학여행의 비극을 피부로 알고 있고, 그렇기에 두 아이의 뽀얀 하루를 따라가는 기분이 매우 기묘하다.
그래서일까. 두 아이의 뽀얀 하루는 현실인 듯 꿈인 듯 아룽아룽거린다. 시계와 거울이 유난히 많고 곳곳에 나비가 붙어 있고 필터가 2000년대 일본 영화처럼 뽀얀... 그 자리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득하게 흐려진다. 어쩜 이 모든 게 거대한 꿈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죽음 너머 아득한 미래에서 보기엔 이 현실도 꿈같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언젠가 내가 죽은 후에 지금 이 시간을 누군가 영상으로 재생해 보여준다면, 꿈처럼 보이겠지.
내일을 모르고 오늘을 사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여기, 관객의 자리가 그 아득한 미래다. 내일을 알아버린 자들이 내일 너머에서 보고 있기에 모든 순간은 더 영롱하게 빛난다.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 거냐는 흔한 질문도 그렇지만, 모든 말이 사무친다. 왜 죽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빵을 우걱우걱 먹으며 "정답!"을 외치고는 '늙고 병들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늙지도 병들지도 않은 아이들은 왜 죽음을 건너가야 했을까. 흉 지면 안되니까 물 닿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셨는데 물에 닿아 버려서, 흉 지지 않게 아껴주고만 싶었던 손에 물이 닿아 버려서 어쩌지.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꿈과 현실은 원을 그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를 세월호 안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날 떠난 건 너만도 나만도 아니고 우리였음을, 너와 나였음을 깨닫게 한다.
그 안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두 고등학생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이기도 한데, 보는 내내 어떻게 십 대 여고생의 사고체계와 관계 방식은 물론 말투와 머리 묶는 방식까지도 저렇게 현실성 있게 구현했는지 감탄했다. 뭐 나도 십 대 여고생이었던 시절에서 많이 멀어져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의 모양이나 양상은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감 있게 그려낸 여고생 캐릭터들을 통해, '너와 나'는 그 비극 안에 놓인 것이 숫자나 사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마음은 두둥실 떠오르는데, 그 마음을 건네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그 서툰 모습에 스스로 괴로워질 때도 있고... 내 감정조차 이리저리 탁구공처럼 튀는 나이. 그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 알겠어서, 기쁨도 괴로움도 양극단으로 치닫는 첫사랑의 타격을 마음 어딘가 깊이 기억하고 있어서, 세미와 하은은 내게 남이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세미가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르는 장면이 너무나 슬퍼, 그 장면부터 펑펑 울기 시작한다. "널 보내는 게 널 떠나보내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다면서도, "그래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내 곁을 떠나고 싶다면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 하고 노래하는 그 장면이... 어떻게 보면 우스울 만큼 진지한 그 장면이 나는 너무 슬펐다. 사랑하면 원래 모든 사랑 노래가 자기 이야기가 된다지만... 혼자서 좋아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이별하고 웃었다 울었다 하는 그 풋풋한 사랑.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있고 싶고, 더 받고 싶어서, 솔직하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마음. 게다가 "다신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을래 내 마지막 사랑은 돌아선 너에게 주고 싶어서"라는 가사가 이들의 내일과 묘하게 겹치면서 더욱 슬퍼지고 만다.
<체념> 장면에서 울었다는 말을 들은 주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내 두 번째 눈물 버튼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모두의 눈물 버튼이다. 바로 세미와 하은이가 진식이를 따라간 컨테이너 박스에서, 진식이 아니 똘똘이 주인(정해연)이 울면서 강아지를 부르는 장면. 하은이는 보지 못하고 세미는 본 그 컨테이너 박스 안, 말간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강아지들이,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고 우는 목소리가, 어떤 배와 겹쳐서 누구라도 울지 않을 수 없는 장면 말이다.
세월호의 이미지는 이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변주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바다도 배도 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다. 그날의 처참했던 기억을, 어떤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어 누워 있음을 처참하게 깨달았던 그 시기를.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일깨워지는
그 괴로운 상처를 이 영화는 넉넉한 사랑으로 뒤덮는다.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일깨워지는 작고 소중한 순간들. 언젠가 하나하나 다 사무치게 될 줄 아직 모르기에 더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 위로, 그 모든 순간들을 깨뜨린 비극 위로, 사랑이 속살거리며 내려앉는다.
아픔은 쉬이 위로되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다. 올 4월은 세월호 이후 10주기라는 기억할 만한 해였음에도, 곧 있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방송은 취소되었고, 10주기를 기하여 나온 다큐멘터리들은 정작 몇 년 전의 다큐멘터리들보다도 상영시간표 찾기가 힘들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만, 개봉 시기에 맞추어 특정 감독의 기획전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티겟 파워가 있는 다른 중요한 행사들도 있었겠지만, 관객 입장 또 시민 입장에서 몇날며칠 상영시간표를 뒤적거리면서 일정을 가늠해 보다 한숨 쉴 만큼 속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만난 이 영화는 사랑한다는 말로, 모든 아픔은 아니더라도 어떤 아픔은 확실히 녹여냈다.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싶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다시 마주할 것이다. 그 배에 있던 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므로. 그 사람 각자는 사랑한다는 말에 감싸인 귀한 존재들이므로. 아주 먼 미래에서 보기엔 지금 나의 현실 또한 꿈처럼 아득할 것이므로. 너와 나는, 사랑 안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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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의 씁쓸한 뒷면
이 글은 영화 [판의 미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기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혼자서 책조차 읽을 수 없었습니다. 받아쓰기는 늘 30~40점을 오갔죠. 엄마는 속이 터져 한글 개인 과외라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속 편한 아빠는 그런 거 다 때 되면 한다며 저를 품에 안고 파란 물고기가 바다로 간 이야기를 서른마흔다섯 번째로 읽어주셨죠.
딸이 드디어 한글을 깨우친 그날. 아빠는 신이 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제게 동화책 다섯 권을 선물해 주셨고 그 책은 부부 싸움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바로 동화의 실제 모습. 그러니까 팥쥐와 팥쥐 어머니의 알고 싶지 않은 결말이 담겨있는 '잔혹동화'였기 때문입니다. (참고 1)
덕분에 저는 생애 최초로 받은 조기 교육의 결과 동화가 얼마나 잔혹한지 알게 되었고 산타 따윈 없다는 것을 너무도 일찍 알게 된 시니컬한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사준 동화책에서 아는 글자가 나왔다며 환호성을 치는 저를 보며 쟤를 어쩌누.라는 말을 늘 하셨었는데. 결국 이렇게 커 버리고 말았죠.
영화 [판의 미로]는 스페인 전쟁(내전) 상황에서 오필리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제 겨우 한글을 깨친 제가 읽은 진짜 동화처럼 잔혹하고 또 잔인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기이함과 신비함이 섞여 정말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죠.
영화 전체가 암울하고 어둡지만 오필리아의 환상과 현실의 대비로 인해 더더욱 아름답고 슬픈 영화입니다.
이게 어찌 15세란 말이요
나도 무섭다고요.
사진출처:구글 YTN Science/익숙하지 않거나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개봉 당시,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였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동화 같은 분위기의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을 방문했죠. 그 결과 개봉관마다 학생이고 보호자고 할 것 없이 울어 젖혔다는 전설의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동화의 기본 공식을 익히 알고 있죠.
착하고 순진한 주인공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만나며 시련을 겪지만 결국 극복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야 디폴트죠.(인어공주 제외)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큰 줄기 자체가 스페인의 내전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한국 영화 [밀정]을 생각하면 편하실 겁니다. 내부의 스파이가 있고 그를 통해 정보를 얻어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이야기가 주가 되죠. 그 혼란 속에서 어린 오필리아는 임신한 엄마와 낯선 환경 속에 있게 되고. 그 안에서 만난 요정들과 작고 큰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화에 나오는 "의붓"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지만. 이 영화의 대위는 그 수위를 이미 진작에 넘어버린, 너무도 잔인한 사람입니다. 의심 하나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활자 그대로 때려죽이는. 오필리아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뱃속의 아들만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고지식하고 자신의 명예를 누구보다 생각하는 그런 자존심 밖에 남지 않은 사람 말입니다. 그가 벌이는 살인 혹은 살육의 행각은 지금의 제가 보아도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오필리아의 모험 속에 나오는 괴물들 마저 기괴하기 짝이 없죠. 콩쥐팥쥐에서 나왔던 두꺼비는 귀여울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두꺼비와 오물은 물론. 모든 아이들을 울리기 충분했던 그 "손바닥 괴물"까지 나옵니다. 요정이 잡아먹히는 건 뭐 말할 것도 없죠. 저는 정말 이걸 다 오필리아가 겪었다면 다시 기억을 찾아 공주가 된다 해도 PTSD에 걸릴 것이라는 걱정이 더 앞섰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제가 어릴 적 접했던 동화의 진짜 모습, 혹은 숨겨진 동화의 잔혹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익숙해진 달의 앞면이 아닌 숨겨졌던 달의 못생긴 뒷모습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우리가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 영화는 그런 동화나 판타지가 가진 아름다움을 걷어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화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어른들 틈바구니의 오필리아를 통해서 말이죠.
물론 배급사는 진짜 반성(?) 해야 합니다. 15세라뇨.
제가 보면서 먹던 딸기가 목에 걸렸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기예르모 델 토로, 세계관 최강자
역시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사진 출처:구글 etoland/이걸 디즈니가 받아줬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제겐 팀 버튼 감독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사람입니다. 음울하고 어둡죠.
제가 색깔과 냄새로 이 두 감독을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팀 버튼 감독은 총천연색에 가깝고, 녹기 시작한 눅진한 사탕에 가깝습니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텁텁함이 있죠.
그에 반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달빛에 비치는 물체의 그림자 같은, 무언가 생명력이 빠져 가는 죽음과 삶 그 경계에 가깝습니다. 대충 꿈도 희망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덕후들에겐 늘 시련이 존재합니다. 이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잘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그들의 유니버스로 올 수 있는 초대장을 꾸준히 날렸죠. 기괴하지만 각인되기 쉬운 그들의 예술세계는 이제 그들의 이름을 딴 장르로 기억이 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원더랜드가 되었습니다.
기예르모 감독의 취향(?)은 괴수물이었습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취향을 심하게 타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재능이 점점 영화 안에서 발휘되는 것을 보는 맛이 있는 감독이었죠. 다른 세계, 혹은 차원에서 불러들인 것 같은 생명체가 튀어나올 때마다 저는 환호성을 지른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감독 특유의 감성을 제가 좋아하나 봅니다.
이 영화의 판(Pan)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염소(혹은 양)가 악마 혹은 나쁜 기운을 불러오는 장난의 정령 같은 느낌의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로테스크 한 (혹은 쏘우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해 낸 감독을 보며 저는 또 한 번 내적 댄스를 춰야 했죠.
그의 또 다른 영화인 shape of water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합쳐졌기 때문에 더더욱. 저는 이 불행한 결말과 크리처를 사랑하는 감독에게 홀라당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저랑 똑같이(?) 음울한 동화를 보고 자랐지만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고. 저는 그냥 덕후가 되었네요.
이게 나라냐.그래서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꼭 해피엔딩 이어야 하나요.
사진 출처:구글 뉴스 포인트/오필리아 너무 사랑스러움. 드레스 입었을 때 너무 깜찍했다.
오필리아는 마지막에 죽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될 뻔했던 대위가 쏜 총에 맞아서.
그리고 그녀의 피가 지하세계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 닿아 그녀는 지하 세계 공주로 있었던 기억을 되찾고 백성들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이 영화의 끝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녀는 죽은 상태죠.
결말의 해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오필리아가 실제 지하 왕국의 공주였다는 사람들과 전쟁 때문에 힘들었던 아이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만든 판타지일 뿐이라는 부류로 말입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오필리아는 아직 아이입니다. 엄마의 죽음을 비롯한 자신 주변에서 생긴 많은 변화들이 아이에겐 방어 체계를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것이 극대화된 것이 자신이 만든 판타지 속의 세계인 것이죠.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고 목소리를 냈다 해도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이 조그만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들은 정보를 통합해 그 세계 안으로 자신이 숨어버린 것이죠.
그렇기에 결말은 더더욱 안타깝고 아픕니다.
오필리어는 고통만 가득한 기억을 안고 죽어버렸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은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죠. 이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작은 아이는 살아있는 동안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관을 찾았던 아이들이 울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공주님이 죽어버렸으니. 자신들에겐 익숙한 결말이 아니었던 것이죠. 해피엔딩이 디폴트가 아닌 동화는 그들에겐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테니까요.
슬프고 아름답고. 그럼에도 이해가 간다.
동화가 당신을 부를 때.
한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못하던 아이는. 잔혹 동화를 읽고 나서 더 잔혹한 세상을 조금은 더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도피하는 방법을 배워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오필리아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지금도 악착같이 동화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처한 현실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아이의 모습으로 본 전쟁의 힘듦과 무서움을 잘 그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씁쓸함과 행복함이 공존하는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더욱 그러하죠. 이젠 오필리아도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판타지가 아닌 현실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말입니다.
참고 1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정말 글이 그림보다 많은 책이었고 나는 내용보다는 내가 아는 글자를 찾아 읽기 바빴음. 근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다섯 살짜리 애가 "엄마 이거 젓갈!! 엄마 팥쥐가 젓갈!! 젓갈 되었대!!! 맞지!!"라고 하니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그 말에 엄마는 아빠를 베란다로 쫓아냈다고 함.
참고 2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중 크림슨 피크, shape of water, 판의 미로 이 세 편을 가장 좋아함. 감독은 멕시코 사람이었나 그런데 우리나라 전래동화처럼 거기 민화? 도 장난 없다고 한다.
[이 글의 TMI]
1. 정형외과 갔다 옴. 의사 선생님이 운동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안 할 거면 병원도 오지 말라고 함.
2. 집 꾸미는 재미에 폭 빠짐. 아 물론 며칠 안 가겠지.
3. 패딩 찾아야 하는데. 까먹었다.
4. 택배가 하도 와서 이젠 나도 움찔움찔 놀랄 지경.
5. 오늘은 빨리 자야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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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 나이트> 난해함에 가려진 현대적 고전의 진면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 톨킨이 현대어로 정리한 영국의 두운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아서 왕 전설에 속하지만 원작 자체가 아서와 엑스칼리버, 랜슬롯과 귀네비어의 사랑, 성배 찾기와 같은 굵직한 에피소드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린 나이트>는 난해하다. 일반적인 판타지 작품에서 기대할 법한 화려한 액션은 없다. 대사도 많이 등장하지 않으며, 간간히 나오는 대사들마저 함축적이거나 중의적인 경우가 많다. 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목 베기 게임, 여인의 유혹, 획득물 교환 게임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미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일반적인 화법을 따르지 않는 <그린 나이트>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마치 조개껍데기를 벗겨낼 때 숨어 있는 진주를 발견할 수 있듯이, 인상적인 영상미를 통해 혼란스러움과 불친절함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로 받아들일 때 <그린 나이트>의 감상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느낌은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는 가웨인의 여정에 관객들이 스스로를 대입시키는 효과적인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아서 왕(숀 해리스)'의 조카라는 이유로 원탁에 앉을 수 있었던 '가웨인(데브 파텔)'은 원탁의 다른 기사들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무용담을 가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런 그 앞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나타난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는 자신의 목을 내리치고, 그 대가로 1년 뒤 녹색 예배당으로 가서 녹색 기사에게 똑같이 목을 내리치는 도끼날을 맞는 게임을 제안한다. 가웨인은 이 '목 베기 게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진정한 기사로 거듭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녹색 기사의 도끼로 그의 목을 내리치고 정확히 1년이 지난 후 녹색 예배당으로 향하는 여정에 나선다.
모험 중에 가웨인은 도적, 여인, '성주(조엘 에저튼)', 여우 등을 만나고, 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기사도의 여러 덕목을 착실히 배워나간다. 이때 영화는 그가 관대함, 신의, 순결, 예의범절, 그리고 연민 등을 배우는 것보다 그 덕목 앞에서 자신의 끓어오르는 욕망과 삶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 채 갈등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원탁의 기사이자 영웅인 가웨인 이전에 자아를 사로잡은 혼란 때문에 괴로워하며 도망치려 하는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에셀'과 '귀부인' 역을 동시에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웨인의 연인인 에셀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그로 하여금 가책을 느끼게 하고, 그를 유혹하는 귀부인은 그가 기사가 되기에 인간적 약점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한 명은 과연 그가 기사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다른 한 명은 그가 기사가 될 만한 재목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게 그녀들과의 만남과 이별은 가웨인이 녹색 기사와 재회하기 위한 여정을 지속할 것인지, 즉 기사로 거듭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된다. 이에 가웨인은 연인과의 사랑을 유지할 것인지, 그리고 유혹에 넘어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고귀하고 진실한 인간이자 기사로 성장한다.
이처럼 기사도를 배우고 기사로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린 나이트>는 마치 기독교적 윤리로 가득한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로도 게르만 족이 잉글랜드 섬을 침략하자 브리톤 족이 이에 맞서 싸웠던 아서 왕 전설의 역사적 배경이 가웨인의 여정에 투영된 기독교적 흔적 영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당장 영화의 첫 대사부터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어요"이고, 이 대사는 가웨인의 방탕함과 대조를 이루면서 영화가 가웨인의 속죄와 회개, 그리고 참회를 다루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서 왕의 왕관은 성화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인들 뒤를 비추는 후광을 본뜨고 있으며, 이는 캐멀롯 왕궁의 상징인 원탁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녹색 기사가 기독교의 상징인 캐멀롯 왕궁에 난데없이 나타나 게임을 제안하는 모습은 이교도 대 기독교도의 대결 구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녹색 예배당에서 가웨인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십자가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뉘우치는 그의 모습에서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와 사도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명백히 들리고 보이는 것과 달리 <그린 나이트>는 가웨인의 모험을 평면적이고 교훈적인 성장담으로 결론짓지 않는다. 영화는 상징이나 이미지에서 두드러지는 기독교적 배경에 비하면 자연과 이교도, 마법과 켈트족의 신화에 힘을 주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그들의 존재감을 노출한다. 가웨인이 녹색 기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완결 짓지 않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가웨인의 어머니인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지만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가웨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도적떼와 붉은여우부터 거인과 눈을 가리고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노파에 이르기까지 가웨인을 유혹하거나, 낙담시키거나, 알 수 없는 조언을 건네는 이들의 정체도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 결과 <그린 나이트>는 신의 말씀에 충실하고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아를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찾는 입체적인 작품으로 거듭난다. 가웨인이 마주한 인물들이 그를 유혹하거나 방랑으로 이끈다 해도 영화는 그들의 존재가 악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기존의 전통과 관습 하에서 가웨인이 스스로 억압하던 정열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진정한 자아를 찾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목 베기 게임, 여인의 유혹, 획득물 교환 게임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과 갈망, 그리고 기사도의 덕목 중 갖춘 것과 갖추지 못한 것을 구분한다. 또한 부족함을 채우고 진실해지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깨닫는다. 따라서 가웨인의 각성은 단지 그리스도교라는 기존의 사회적 전통에 충실한 기사로의 성장보다는,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과 진정한 자아 사이에서 마침내 중심을 찾아낸 한 젊은이의 성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린 나이트>가 고대의 전설을 넘어 현대의 고전으로도 발돋움하는 이유다. "이야기의 뿌리인 자신의 자아를 찾아 나가는 한 청년과 관련된 기사도의 개념은 지금 시대에도 시의적절하다"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따르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은 젊은 세대가 가웨인에게 이입하여 스스로 기사가 되어가는, 즉 자신만의 삶의 기준을 확립하는 과정을 경험할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가웨인에게 "훌륭한 전사가 되는 것에서 사회적인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 곧 완벽하지 않아도 완벽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투영할 뿐 그를 완전무결한 기독교적 영웅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때 <그린 나이트>는 이 모든 이야기를 금색, 녹색, 적색, 회색이라는 색 안에 담아낸다. 가웨인이 입은 망토는 아서 왕의 왕관을 닮은 금색을 하고 있고, 이 망토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웨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연을 뒤덮은 녹색의 이미지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가웨인 대 녹색 기사, 카멜롯 대 녹색 예배당, 더 나아가 기독교 대 이교도의 대립이 두 색책의 대비에 담겨 있는 것이다. 적색은 숱한 피의 향연을 장식하면서 두 세계를 넘나드는 가웨인의 모험이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회색은 거인들을 만나는 대목처럼 매혹적이고 장엄하지만 동시에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모험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회색풍의 색감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며 녹색 기사의 도끼날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가웨인의 혼란스럽고 난해한 내면을 외면화하며, 마찬가지 입장인 관객들을 가웨인의 내면으로 자연스레 초대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채로운 영상미의 도움을 받아 난해함과 혼란이라는 껍데기를 열기만 한다면, <그린 나이트>가 품은 기독교적인 성장담, 기독교 세계에 가려졌던 켈트 족의 영웅과 마법을 조명하는 판타지, 더 나아가 가장 현대적인 고전이라는 다양한 진주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상이한 세계가 만날 때의 혼란, 충격, 경탄을 장중하게 담아낸 서사시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그린 나이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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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도의 탈을 쓴 심리 체험 드라마!
다수의 스포츠인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싶다고. 권투, 태권도, 유도 등 눈앞에 있는 상대와 시합을 벌이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검도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색의 옷과 호구를 쓰고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 스포츠에서 상대 선수는 곧 자신처럼 보이기 마련. 검도를 소재로 한 <만분의 일초>는 이 점을 극대화하며 오롯이 체험하는 자신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대회에 참가한 재우(주종혁). 외딴 산속 내 합숙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곳에서 과거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 태수(문진승)를 만난다. 재우가 태수를 더욱더 증오하는 건 사고 이후 검도 사범인 아버지가 그를 애제자로 삼았기 때문. 악연이자 이제는 경쟁자로서 태수를 만나야 하는 재우는 훈련에만 매진한다. 하지만 선발대회 참가자 중 가장 좋은 실력을 갖춘 태수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어렸을 적부터 친분이 있었던 감독이 대회 참여 기회를 줬다는 오명도 그를 괴롭힌다. 매주 탈락자가 생기는 선발 시스템의 압박을 받는 재우는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며, 결국 다른 참가자에게 피해를 주고 만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만분의 일초>는 검도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살리는 연출이 돋보인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선수들의 호흡과 음성, 죽도의 타격음, 구르는 발걸음 등 검도 이외의 것은 음소거 된다. 기존 스포츠 영화와 달리,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갖가지 요소는 일부러 배제한다. 이로 인해 오롯이 선수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자신도 모르게 숨죽여 이들의 대결을 바라본다.
1:1 대결이라는 점에서 대련 시 죽도를 잡은 손이나 구르는 발의 리듬과 스텝 등을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마치 서부극에 나오는 총잡이들처럼 결전을 벌이기 전 눈과 손을 클로즈업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부분과 오버랩된다. 경기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면을 부각하지 않으며, 최대한 담백하고 건조한 카메라 워킹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영화는 오롯이 검도를 체험하는 동시에 주인공 재우의 심리를 체험하는 여정을 그린다. 풍경 소리로 시작해 풍경소리로 끝나는 형식은 마치 정신과 상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듯한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로 빨려 들어가는 극 중 내용은 결국 검도를 소재로한 한 인간의 내면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송태섭이 농구로 형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면, 재우는 검도를 통해 자신을 옥죄는 미움과 증오의 늪에서 벗어난다. 재우에게 검도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매개체로 비춰지는데, 이는 아버지라는 대상과 오버랩된다. 재우에게 아버지란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족을 버리고 형의 원수인 태수를 애제자로 받아들인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 이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태수도 마찬가지다. 태수를 향한 재우의 증오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극 중 재우가 태수를 이기지 못하는 건 일렁이는 마음의 동요다. 검도는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글거리는 분노는 그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죽도를 잡은 손의 떨림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결국 지난한 과정을 통해 그가 깨달은 건 최종 상대가 바로 유년 시절 상처를 간직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 마지막 대결에서 죽도의 끝을 향하는 건 태수이지만,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재우의 내면 밑바닥까지 끌고 가는 영화 특성상 보는 이의 감정 소모가 심한 편이다. 점차 강박에 시달리는 재우의 트라우마 극복기는 보는 이들에게도 그 힘겨움이 느껴지고, 때로는 피로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재우의 심리 여정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드라마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주종혁은 대사 보단 표정과 움직임으로 인물이 가진 감정을 표출하고 토해낸다. 특히 애증의 관계인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놓지 않은 손, 마지막 태수와의 대결 때 비로소 놓는 손 등 손 연기도 탁월하다. 맞상대인 태수 역의 문진승 또한 과거의 일에 죄책감을 가진 상황에서도 스스로 채찍질하고 연마하며 비워내는 구도자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준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관객이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성환 감독의 말처럼, <만분의 일초>는 검도의 세계, 인간 심리의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 강도를 높이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고 쭉 뻗어 나가는 이야기, 재우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둠으로 시작해서 끝내 자신을 이기고 새하얀 세상을 바라보는 마무리가 깔끔하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영화적 체험, 극장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평점: 3.0 /5.0
한줄평: 검도의 탈을 쓴 심리 체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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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이 낳은 거짓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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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 (Inventing ANNA, 2022)
채널 : 넷플릭스 시리즈, 9부작 완결 │ 장르 : 미국, 범죄·드라마
제작 : 숀다 라임스 │ 출연 : 줄리아 가너(애나), 애나 클럼스키(비비안), 아리안 모아이드(토드), 케이티 로우즈(레이첼) 외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델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결핍은 양날의 칼 같다. 어떤 결핍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어떤 결핍은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기도 하니까. <애나 만들기>의 ‘애나 델비’는 단연 후자의 경우다. 애나 델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에서 금수저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았던 실제 인물이다. 본명은 ‘애나 소로킨’. 금수저 상속녀는커녕 실제로는 트럭 운전수의 딸이었다. 사실상 무(無)수저에 가까웠던 애나는 어떻게 ‘찐’ 금수저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일화를 하나씩 양파 까듯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최대 재미 요소다.
애나는 사교계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미술과 패션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언변 또한 그에 못지않게 화려했으며 성격도 화통해서 인맥 넓히기에도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사기꾼의 삼박자를 완벽히 갖춘 셈.
애나는 그렇게 뉴욕 사교계를 발판으로 하여 조금씩 인맥을 넓혀나갔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모두 그녀를 독일인 상속녀라고 믿었다. 그럴수록 애나는 대담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200억 규모의 대출을 신청하게 되는데… 결국엔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며 애나의 시대도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내로라하는 은행가와 기업인들 모두가 애나를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가히 놀라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모두가, 애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세상엔 왜 이런 캐릭터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까. 사람이 얼마나 결핍이 심하면 이토록 제 삶을 송두리째 꾸며내게 되는 걸까. 드라마는 그 화두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애나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녀가 당신들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 말한다. 애나 델비는 두말할 것 없이 돈이면 다 되는 이 자본주의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만 치부하기에 애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롭던가. 애나의 이야기에는 실로 수많은 사람이 걸쳐져 있었다. 애나를 금수저라고 믿었던 각종 유명인사들. 그들이 애나를 곁에 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이익과, 그 배경에 깔린 저마다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했다. 애나를 거대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데에 과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례로 ‘레이첼’을 들어보자. 그녀는 애나의 사기행각을 맨 처음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이자, 애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여성이다. <베니티 페어>에 근무하던 레이첼은 애나와 어울려 다니며 자신 또한 얻은 것이 상당했다. 함께하는 동안 많은 비용을 애나가 지불했고, 때로는 옷도 얻어 입었으며, SNS에 자랑할 사진과 럭셔리 라이프와 인맥과 기타 등등을 상당 시간 애나가 제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둘의 우정이 끝난 건 함께 떠난 모로코 여행에서였다. 그때 애나를 대신해 큰 여행비용을 레이첼이 결제했는데 그 돈을 애나가 갚지 않으면서 관계가 깨진 것이다. 레이첼은 실은 애나가 빈털터리였던데다 자신이 돈까지 낸 게 몹시 억울하고 빡이 쳤다. 그런데 그 말을 비틀자면, 레이첼에게 애나는 금수저일 때만 의미있는 친구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이 모든 순간 투명한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마음을 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금전 등의 이익 때문에 맺는 인간관계도 있을 테다. 그걸 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애나 소로킨이라는 정신 나간 여자가 금수저 연기를 하다가 뽀록이 났다’라는 한 줄의 줄거리 이면에는, 애나와 다를 것 없는 욕망으로 꿈틀대는 인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애나가 물질의 결핍에 의해 사기꾼이 된 것처럼, 그들 역시 물질을 이유로 애나를 곁에 둔 사람들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욕망에 의해 관계한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실제 '애나 소로킨' (사진출처:연합뉴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애나는 여러 사기행각을 죄목으로 12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2021년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애나의 이야기는 넷플릭스가 32만 달러, 한화로 약 4억을 주고 사들여 현재의 드라마로 만들게 되었다고. 자신을 상품화해 이목을 끄는 그녀의 재주는 감히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런 재능만큼은 애나가 가진 ‘진짜’가 아니었을까. 그 천부적 재능을,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쌓아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이 있다. 누군가에겐 그게 돈이고, 명예고, 학업이고, 인맥일 뿐. 애나는 화려하고 부유한 척을 하자 사람들이 보여왔던 그 관심과 호의에 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트럭운전수라고 할 때보다 외교관이나 석유 재벌, 태양열에너지 사업가라고 할 때 보여왔을 사람들의 눈빛, 자신의 몸에 두른 옷이 초호화 명품일 때 사람들이 보내온 동경. 그런 것들이 보잘것없이 고달픈 자신의 현실을 잊게 했는지도 모른다. 뒤틀린 결핍이 낳은 4년의 가상 세계에서 애나는 행복했을까. 그녀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괘씸해 마지않아야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또한 쉬이 접을 수는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존중
실제 일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는 이런 씬이 있다. 애나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던 기자가 교도소로 애나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애나는 기자에게 ‘당신이 입은 옷은 싸구려’라며 무시하다가도,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묻는다. “면회, 또 올 거죠?” 그때의 애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수많은 부자 친구들을 거느렸지만, 모두가 그녀를 필요로 하고 동경했었지만, 번번이 얻을 수는 없었던 사람의 진짜 온기를. 삶에 있어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래서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 해도, 누군가가 그 자체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해준다면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무수저 트럭운전수의 딸 애나 소로킨을 긍정해주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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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박스오피스를 한국 박스오피스를 견인한 영화
디즈니-마블의 액션 블록버스터 <블랙 위도우>가 개봉주 주말, 매출액 점유율 80.2%를 기록하며,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 극장 최고 매출을 경신하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블랙 위도우>는 개봉일 당일에만 2,465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1,975,849,660원의 매출을 기록하였는데요. 덕분에, 주말 3일 동안 국내 박스오피스는 전주 대비 60%가량 상승한 126억 원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디즈니’와 ‘여성 주연’ 영화라는 특성을 공유하는 <크루엘라> 역시 역주행 중에 있는데요. 개봉 2달 차에 접어든 ‘엠마 스톤’ 주연의 실사 영화 <크루엘라>는 꾸준한 관객몰이를 통해 누적 관객수 200만 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로 인하여 뜨거운 건 국내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7월 9일, 디즈니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와 북미 극장에서 동시 공개된 <블랙 위도우>는 개봉 이후 3일 동안 북미 극장에서만 8,000만 달러(약 917억 원)을 쓸어 담으며 역시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였는데요. 디즈니 플러스 측에서 처음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30의 추가금을 지불하고 대여 가능한 <블랙 위도우>는 같은 기간 동안 6,000만 달러(약 688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였으며, 지금까지 디즈니 플러스가 진출한 모든 나라에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타샤 로마노프의 10년 만의 솔로무비 <블랙 위도우>는, 7월 11일 기준 총 46개국에서 7,8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자국 박스오피스와 동등한 수치를 보였는데요. 북미와 세계 박스오피스 그리고 디즈니 플러스의 매출까지 합산하면 <블랙 위도우>는 개봉 첫 주에만 2억 1,500만 달러, 즉 2,466억 원이라는 매출을 기록한 것입니다. 게다가, 아직 ‘중국’ 시장에서 개봉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블랙 위도우>의 기록이 어디까지 상승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요. 중국 시장은 ‘마블’ 영화가 가장 큰 수익을 내는 시장이기에 더 기대되는 바입니다.
이러한 성공과 함께, ‘디즈니’는 분노의 질주와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주연이 만난 <정글 크루즈>의 7월 30일 OTT&북미 동시 개봉을 앞두고 있고, 이후 개봉 예정인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경우는 디즈니플러스 공개에 앞서 45일간 극장 선공개를 택했는데요. 이 두 편의 성패가 11월 5일 개봉을 앞둔 마동석 출연의 <이터널스>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 밝혔습니다.
최근, 대작들의 개봉과 함께 매주 박스오피스 기록이 경신되고 있는 가운데
<블랙 위도우>가 어느 정도의 기록까지 낼 수 있을지 같이 지켜봐주시길 바라며,
<블랙 위도우>와 함께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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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점을 잃어버린 리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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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음모를 접한다. 초현실적인 공포스러운 존재부터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이 어떤 음모로 세상에 나쁜 짓을 한다는 식의 여러 가지 떠도는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런 이야기는 일단 흥미롭고 재미있다. 우리는 어떤 일 이면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한 증거나 자료가 있지 않으면 그 이야기의 빈 곳을 채워 넣으려 노력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음모다. 작은 추정으로 시작한 그 이야기는 조금씩 세밀해지면서 음모론으로 점점 발전한다. 사람들은 이런 음모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좋아한다. 무서운 공포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사회의 어두운 면을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준다는 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 요소가 된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라쿤시티>는 좀비물과 음모론을 뒤섞어 만든 액션 스릴러다. 주인공 클레어(카야 스코델라리오)와 크리스(로비 아멜) 자매는 부모를 사고로 잃은 후 라쿤 시티의 고아원에 맡겨진다. 제약 회사인 엄브렐라가 깊이 개입하여 관리되는 라쿤 시티에서 자란 자매는 함께 지내다가 클레어가 그곳을 이탈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어 따로 생활한다. 영화는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클레어가 다시 라쿤 시티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포 액션 게임을 다시 리부트 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라쿤시티>
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졌던 인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의심이 많은 인물이고, 진실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오빠인 크리스조차 클레어를 완전히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가장 소외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다시 어린 시절 아픔이 있는 도시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아원에서 경험했던 미스터리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오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도 있다. 그저 외면하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엄브렐라라는 거대한 제약 회사가 운영했던 라쿤 시티의 음모는 그를 더욱더 빠르게 그곳으로 끌어들인다.
영화에는 다른 인물들도 등장한다. 경찰서 신입인 레온(애번 조지아)과 베테랑 형사 질 발렌타인(해나 존 케이먼), 웨스커(톰 호퍼) 등이 크리스와 함께 경찰 팀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 인물들은 모두 1996년부터 출시되고 있는 게임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 [레지던트 이블]은 공포물과 음모론으로 이야기 뼈대를 만들고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특성을 결합시켜 만들어진 인기 시리즈다. 당연히 각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레온, 질, 크리스, 클레어는 꽤 인기가 많은 캐릭터들이고 이번 영화에서 모두 등장하여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캡콤에서 제작된 이 게임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각종 게임기의 콘텐츠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좀비물이 좀 더 대중화된 인기를 끌면서 액션과 미스터리를 함께 즐기려는 게이머들은 계속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2002년에 개봉했던 <레지던트 이블> 은 원작 게임의 분위기를 적절히 살리고 앨리스(밀라 요보비치)라는 새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영화였다. 게임 원작의 첫 번째 영화였던 1편은 게임의 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게임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편의 성공으로 시리즈는 6편까지 이어졌고 앨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시리즈인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이 2017년에 개봉한 이후, 여전히 게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 게임 시리즈의 영화화가 계속되는 것은 이 시리즈를 영화적으로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영화화가 게임 속 주인공들을 주변 인물화 시켰다면 이번 리부트 작품은 게임의 주인공들을 실제 영화의 주인공으로 택했다. 또한 영상의 분위기와 음악을 게임과 거의 비슷하게 넣어 좀 더 원작 게임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원작 게임을 잘 살렸지만, 기존 영화 시리즈에 비해 아쉬운 완성도
음모의 단서를 찾아가는 클레어를 중심으로 각기 흩어져 있는 인물들의 서사를 각각 보여주면서 이들이 결국 한 곳에 모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이전 영화 시리즈에 비해 액션의 양을 대폭 줄이고, 미스터리와 공포 효과를 좀 더 극대화시켰다. 이 부분도 사실은 좀 더 원작 게임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함으로 보인다. 과장된 액션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액션 장면들이 화면에 그려진다.
이렇게 원작 게임의 분위기에 거의 맞추려는 노력은 이 영화 시리즈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없애버렸다. 화려한 볼거리인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사라졌고, 한꺼번에 모두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은 각자가 가진 서사를 보여주긴 하지만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도 전에 죽음을 맞거나 제대로 묘사되지 못한다. 또한 영화가 숨기고 있는 엄브렐라의 미스터리도 이미 모든 관객들이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음모론으로는 영화적 긴장감을 지속시키기는 어렵다. 게임에 등장하는 좀비 괴물이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괴생명체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보스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들과 벌이는 대결이나 액션 장면은 너무 밋밋하고 단순해서 무척 대단한 외모를 그저 보여주기용으로만 소비하고 만다.
영화에서 클레어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이전 시리즈인 밀라 요보비치에 이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을 맡았다. 그는 직전 작품인 <크롤>에서 악어와 대결을 벌리고, <메이즈 러너> 시리즈에서도 좋은 액션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레지던트 이블:라쿤 시티>에서 그는 액션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그렇다고 엄브렐라의 음모를 완벽하게 파헤치지도 못한다. 그만큼 그의 연기가 빛날 수 있는 장면도 전혀 없다. 그 외에 다른 인물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인물이 없다.
영화 속 좀비의 모습은 기존 모습과 다소 달라졌다. 어눌하게나마 언어를 구사하고,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만약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과거 영화 시리즈처럼 액션이 보강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만약 다음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모든 인물을 중심에 서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들에 집중하여 서사를 풀어간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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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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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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