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6-01 23:53:17
사랑 안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영화 <너와 나> 리뷰
SYNOPSIS.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하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은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쳐흐르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 서툰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세미는 하은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까?
POINT.
✔️ 배우로서도 뛰어나지만 감독으로도 이미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
✔️ 세월호를 '논하는' 영화가 아니라 '느끼게 하는' 영화. 마음 앓게 하는 영화.
✔️ 각본과 연출이 매우 섬세합니다. 여고생의 삶을 이토록 여고생답게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은 듯해요.
✔️ 필터를 뽀얗게 쓴 화면 위로 흐르는 오혁의 음악. (너무 좋은데 음원 왜 안 내주세요?)

누군가의 사랑이 깃든 자리는 언제나 은은한 빛이 난다. 아주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했어도 애정을 가득 받은 영화들 또한 그렇다.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상영 시기를 놓쳐 못 보았던 이 영화를 결국 보게 된 건, 세월호에 관한 다큐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보인 진득한 애정 때문이었다. 너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너무 어렵다. 딱 떨어지는 문장과 내 마음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단어를 고르기가 매우 어려워 "하..." 혹은 "너무 좋아요." 따위의 말이나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서 익숙한 표정과 문장을 본 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려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거나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가 왜 이러지. <러브레터>를 처음 봤던 17살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이 난 적은 많아도, 보고 나서도 그 감정이 너무 얼얼하게 내 안에 남아 계속 울게 되다니.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마치 내상 같았다. 간접 경험만으로도 이렇게 아픈데 이 마음으로 10년을 살았다니, 살고 있다니. 그 주간 내내 세월호 관련된 영화를 두세 편 보았는데, 나중에는 약간 몸살 기운마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건 그러므로, 자학이 아닐까. 너무 좋았지만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다시 보고 싶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두 번째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세월호를 정면으로 품고 있고, 그렇기에 아프지 않을 방법이 없지만, 그래도 이 아픔을 뒤덮는 넉넉한 사랑을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아프지만 아름답다. 이래도 저래도 아플 거라면 아름답게 아프고 말겠다.

꿈과 현실이 뽀얗게 엉킨 자리
언급했듯 이 영화는 세월호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는다. 영문 자막 버전으로 영화를 보면 아예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까만 화면 위로 텍스트를 띄워 세월호 사건을 설명한다. 그리고 2014년 4월의 어느 봄날, 이라는 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다리를 다쳐서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하은(김시은)과,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하은을 찾아가 수학여행을 같이 가자고 하는 세미(박혜수)의 하루를 담은 영화다. 한동안 수학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움찔하던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 수학여행의 비극을 피부로 알고 있고, 그렇기에 두 아이의 뽀얀 하루를 따라가는 기분이 매우 기묘하다.
그래서일까. 두 아이의 뽀얀 하루는 현실인 듯 꿈인 듯 아룽아룽거린다. 시계와 거울이 유난히 많고 곳곳에 나비가 붙어 있고 필터가 2000년대 일본 영화처럼 뽀얀... 그 자리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득하게 흐려진다. 어쩜 이 모든 게 거대한 꿈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죽음 너머 아득한 미래에서 보기엔 이 현실도 꿈같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언젠가 내가 죽은 후에 지금 이 시간을 누군가 영상으로 재생해 보여준다면, 꿈처럼 보이겠지.

내일을 모르고 오늘을 사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여기, 관객의 자리가 그 아득한 미래다. 내일을 알아버린 자들이 내일 너머에서 보고 있기에 모든 순간은 더 영롱하게 빛난다.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 거냐는 흔한 질문도 그렇지만, 모든 말이 사무친다. 왜 죽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빵을 우걱우걱 먹으며 "정답!"을 외치고는 '늙고 병들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늙지도 병들지도 않은 아이들은 왜 죽음을 건너가야 했을까. 흉 지면 안되니까 물 닿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셨는데 물에 닿아 버려서, 흉 지지 않게 아껴주고만 싶었던 손에 물이 닿아 버려서 어쩌지.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꿈과 현실은 원을 그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를 세월호 안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날 떠난 건 너만도 나만도 아니고 우리였음을, 너와 나였음을 깨닫게 한다.

그 안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두 고등학생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이기도 한데, 보는 내내 어떻게 십 대 여고생의 사고체계와 관계 방식은 물론 말투와 머리 묶는 방식까지도 저렇게 현실성 있게 구현했는지 감탄했다. 뭐 나도 십 대 여고생이었던 시절에서 많이 멀어져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의 모양이나 양상은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감 있게 그려낸 여고생 캐릭터들을 통해, '너와 나'는 그 비극 안에 놓인 것이 숫자나 사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마음은 두둥실 떠오르는데, 그 마음을 건네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그 서툰 모습에 스스로 괴로워질 때도 있고... 내 감정조차 이리저리 탁구공처럼 튀는 나이. 그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 알겠어서, 기쁨도 괴로움도 양극단으로 치닫는 첫사랑의 타격을 마음 어딘가 깊이 기억하고 있어서, 세미와 하은은 내게 남이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세미가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르는 장면이 너무나 슬퍼, 그 장면부터 펑펑 울기 시작한다. "널 보내는 게 널 떠나보내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다면서도, "그래 더 이상 묻지 않을게 내 곁을 떠나고 싶다면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 하고 노래하는 그 장면이... 어떻게 보면 우스울 만큼 진지한 그 장면이 나는 너무 슬펐다. 사랑하면 원래 모든 사랑 노래가 자기 이야기가 된다지만... 혼자서 좋아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이별하고 웃었다 울었다 하는 그 풋풋한 사랑.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있고 싶고, 더 받고 싶어서, 솔직하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마음. 게다가 "다신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을래 내 마지막 사랑은 돌아선 너에게 주고 싶어서"라는 가사가 이들의 내일과 묘하게 겹치면서 더욱 슬퍼지고 만다.

<체념> 장면에서 울었다는 말을 들은 주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내 두 번째 눈물 버튼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모두의 눈물 버튼이다. 바로 세미와 하은이가 진식이를 따라간 컨테이너 박스에서, 진식이 아니 똘똘이 주인(정해연)이 울면서 강아지를 부르는 장면. 하은이는 보지 못하고 세미는 본 그 컨테이너 박스 안, 말간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강아지들이,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고 우는 목소리가, 어떤 배와 겹쳐서 누구라도 울지 않을 수 없는 장면 말이다.
세월호의 이미지는 이 영화 속에서 여러 차례 변주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바다도 배도 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다. 그날의 처참했던 기억을, 어떤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죽어 누워 있음을 처참하게 깨달았던 그 시기를.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일깨워지는
그 괴로운 상처를 이 영화는 넉넉한 사랑으로 뒤덮는다. 사랑한다는 말 하나로 일깨워지는 작고 소중한 순간들. 언젠가 하나하나 다 사무치게 될 줄 아직 모르기에 더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 위로, 그 모든 순간들을 깨뜨린 비극 위로, 사랑이 속살거리며 내려앉는다.
아픔은 쉬이 위로되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다. 올 4월은 세월호 이후 10주기라는 기억할 만한 해였음에도, 곧 있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방송은 취소되었고, 10주기를 기하여 나온 다큐멘터리들은 정작 몇 년 전의 다큐멘터리들보다도 상영시간표 찾기가 힘들었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만, 개봉 시기에 맞추어 특정 감독의 기획전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티겟 파워가 있는 다른 중요한 행사들도 있었겠지만, 관객 입장 또 시민 입장에서 몇날며칠 상영시간표를 뒤적거리면서 일정을 가늠해 보다 한숨 쉴 만큼 속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만난 이 영화는 사랑한다는 말로, 모든 아픔은 아니더라도 어떤 아픔은 확실히 녹여냈다.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싶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다시 마주할 것이다. 그 배에 있던 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므로. 그 사람 각자는 사랑한다는 말에 감싸인 귀한 존재들이므로. 아주 먼 미래에서 보기엔 지금 나의 현실 또한 꿈처럼 아득할 것이므로. 너와 나는, 사랑 안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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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 3년차, MBTI가 바뀌었다.
이 글은 영화 [더 배트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난은 늘 낯설고 새로운 것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 007이 되었을 때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여태까지 이런 007은 본 적이 없다며 비난과 험담의 벽을 쌓아 올렸으니까.
그러나 첫 작품이었던 [카지노 로열]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미움의 벽을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덕분에 다니엘은 시리즈 사상 가장 마초적이면서 인간적인 요원으로 자리 잡았고. 15년 동안의 임무를 완수하고 기꺼이 우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참고 1) DC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 배트맨 시리즈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기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손에서 가장 완벽한 3부작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희대의 악역인 조커를 낳았다.
이런 시리즈에 아직 물음표가 가득한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을 앞세운 새 배트맨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영화 [더 배트맨]의 시작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고. 덕분에 그림자인 비난 역시 짙게 깔려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더 배트맨]은 이런 비난의 색을 가득 담았다. 어둡고 또 무겁다. 로버트 패틴슨은 우울하고도 생각으로 가득한 배트맨 역할을 여태 해 온 역할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풀어내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제작진이 비난에 대처한 방식은 영화의 색깔과 같았고. 비난은 슬그머니 배트맨이 가진 고뇌의 무게에 합쳐져 긴 러닝타임 내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9회 말 2아웃 상황의 DC가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가벼운 마음만큼이나 영화 속 배트맨의 마음도 조금은 밝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3,6,9는 진리다.;배트맨도 피할 수 없는 3년 차 성적표
사진 출처:다음 영화
3년 차. 일반 회사로 친다면 이제 슬슬 대리 달아야지?라는 덕담 같은 압박이 귓가에 쌓이기 시작할 때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업무 짬도 차기 시작하고 전체적인 일의 그림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익숙해져 버린 자리 덕에 슬슬 회사 전체에 대한 불만도, 그리고 이직을 했을 경우의 "조건"들에 대해 점치기도 시작한다. 또한 근원적으로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해도 될 것인가에 대한 의심과 물음도 하나둘씩 마음을 채운다.
올해 3년 차에 들어선 고담 시 (명예) 공무원인 배트맨의 위치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이제 고담 시 전체도 제법 눈에 익었고. 모든 범죄에 출동할 수 없으니 Priority를 세워 선택적으로 야근할(?) 줄도 안다. 그럼에도 고담 시의 경찰들에게는 가면을 쓴 자경단들 중 하나 정도라는 생각에 그칠 뿐이지만.
그럼에도 경찰들이 이 혼돈의 배트맨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에게 기대하는 "능력"이 (연차 대비) 출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뛰지 않는다. 날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현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배트맨은 자신의 정체가 그들의 코앞에 다가갈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밤이 만들어 낸 안개가 걷히면서 배트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범죄자들은 그제서야 허공을 향해 빛나고 있는 박쥐 모양의 경광등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어진다. 물론 그 마른침이 다 넘어가기도 전에 얻어맞고 바닥에 뻗어 있겠지만. 영화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위압감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분명 다른 히어로들보다 휘황 찬란하다거나, 빠르지도 않지만. 배트맨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오는 압박감만은 매우 대단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그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집념을 느낀 악당들에게 배트맨은 훌륭하고도 끔찍한 악몽이며.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만나보고 싶기도 한 빌런이다.
세례 받은 배트맨;자신 스스로도 구원해 내기.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배트맨은. 마치 자신의 진정한 MBTI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질문들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행하던 것이 복수였는지. 혹은 정의였는지에 대해 생각하듯이.(참고 2)
리들러의 공격은 너무도 현실에 착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을 파고들었다. 덕분에 외면하고 싶은 연좌제에 대한 이슈를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 또한 뒷골목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만 같아서.
셀리나는 자신이 드러낼 수 없는 마음속 분노의 모습과 닮아있어 더 이상의 고아가 탄생하는 것도. 고아가 저지르는 잘못도 없기를 바라는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막아야 했다.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삶은 일찌감치 박살 난 지 오래라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엉망인데. 배트맨은 자신의 앞에 놓인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고 정확하게. 게다가 늦지 않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담 시 사람들이 사상을 입을 수도 있는 그 순간에. 배트맨은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기꺼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마치 영화의 진행 내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복수와 정의 중 후자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임과 동시에. 여태까지 지니고 있던 모든 고뇌를 세례를 통해 씻어내린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MBTI는 결정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배트맨이 되었다. 그리고 배트맨은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좀 더 가까이서 직접 돕는 것을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그는 이 역할에 당위성을 고쳐 붙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가 건져올린 것들에 자신도 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기를 빈다.
과연 이직에 성공할 수 있을까?;일단 야근부터 좀 어떻게 해보자.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말미에. 배트맨은 아주 잠깐이지만 그 지독한 어둠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도우는 일에 합류한다. 마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그 모습마저도 먼지 구덩이에서 한 번은 구르고 나온 것 같은 모습이지만. 배트맨의 눈길과 몸짓은 경직되어 있던 영화의 초반과는 조금은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그전까지 자신에게는 어둠만 허락된다고 생각했다.
어둠을 먹고 사는 자들을 처리하는 것이 자신의 복수이자 고담 시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밤의 지배자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를 뿌려댈 수 있지만. 낮의 주인들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낮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희망이 전염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제 배트맨은 고담 시를 떠날 수 없다. 3년 차가 갖고 있던 고민도 사라졌고, 자신의 MBTI도 명확해졌다. 그리고 야근만 하던 삶을 주간 근무로 바꿀 수 있는 희망도 이젠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런 각오가 무색하게 6년 차의 헛바람은 찾아올 것이고. 이 도시는 여전히 자신을 배신하겠지만. 게다가 잊고 있었던 야근도 종종 하게 될 테지만. 이제 배트맨의 눈은 바뀌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는 매일 다른 것을 하며 자극을 찾는 것이 아닌. 똑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힘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눈으로.
이 초보 공무원이 고담에서 보낼 영원한 시간들 중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디 평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야근도 안 하면 더 좋고.
마치면서
호불호가 매우 강할 영화다. 액션이나 최첨단 무기, 혹은 브루스 웨인의 어마 무시한 부(Richness)를 기대한다면 한없이 지루할 것이고. 지울 수 없는 이름인 히스 레저를 떠올린다면 더더욱 실망할 영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을 지우고 새로운 배트맨에 집중한 것이 좋았다. 배트맨의 탄생이나 고담 시 7급 공무원 정도의 짬을 가진 타이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겨우 병아리 티를 벗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 의욕은 많지만 처음 접해보는 문제들에 부딪쳐 시무룩해지기 쉬운 딱 3년 차의 모습이라서. 그냥 응원해 주고 싶었다.
최근 영화가 길어지는 추세에 대한 큰 반감이 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같은 쓸데없는 잡생각 없이 그저 이 야근만 하는 공무원의 고군분투 일처리를 보다 영화관을 나왔다. 그가 아주 조금은 행복.. 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가벼워진 게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좋아한 장면]
중간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전 장면과 천장을 박살 내면서 떨어져내리는 장면은 뭐 말할 것도 없지만. 글에도 쓴 홍수 난 광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그냥 자꾸 눈물이 났음. 기꺼이 고난으로 뛰어드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재탄생을 잘 살린 것 같았음.
참고 1
007시리즈 말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007에 대해 쓰다가 저장해둔 글이 있었는데 거기서 조금 갖고 옴. 개인적으로 크리스찬 베일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에 로버트 패틴슨이 배트맨을 한다고 했을 때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던 사람이었으나. 이 영화 보고 나서 영원히 입다물기로 함.
참고 2
내 MBTI도 제대로 못 외우는 주제에 리뷰 쓰겠다고 찾아봄. 실제로 배트맨의 MBTI는 INTJ이며. 나는 INFJ임. 문제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아직도 잘 모름.
[이 글의 TMI]
1. 영화는 (너무 무거워서) 내 취향이지만. 리뷰는 좀 가볍게 쓰고 싶었음.
2. 어두운 영화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내 OTT 서비스 보고 싶어요 한 목록 보니까 이건 뭐. 아포칼립스던데.
3. 샐러드 먹고 16시간 금식은 내가 봐도 너무 힘들다. 근데 그걸 두 달째 하고 있지.
#더배트맨 #맷리브스 #로버트패틴슨 #앤디서키스 #조크라비츠 #폴다노 #DC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인플루언서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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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대교처럼 와르르
제작비 185억 원이 무색하게 할 정도의 결과물이다. 어떻게든 탈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나 예상대로 흘러갈 줄이야.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갯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물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는 작품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된 만큼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을까 생각될 법도 한데, 그간 봐왔던 국내 재난영화의 모든 걸 담아냈다. 재난물에 익숙지 않다면 무난할 수도 있지만, 눈치가 빠르다면 절정에 다다르기도 전에 김이 팍 샐 것이다.
뻔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탈출'은 흥미로운 소재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방위산업 일환으로 암살용 군견 개발에 착수했으나 문제가 생겨 폐기하려던 당일 추돌사고로 인해 개들이 풀려난다. 위험천만한 차량 연쇄추돌로 공항대교가 마비되고 개들이 케이지에서 탈출하기까지 20분은 관객들에게 긴박감을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이번 재난의 원인인 군견들은 진짜처럼 느껴질 만큼 디테일하게 CG로 구현했다. 하지만 공항대교에 갇힌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관객들에게까지 무서운 존재로 각인될지는 미지수다. 어느 장면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긴장감을 100% 불어넣진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영화 속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따로 논다. 주지훈이 연기한 견인차 기사 조박이나 김희원이 맡은 양박사는 극 전체 분위기와 맞지 않아 방지턱 역할을 한다. 분명 조박 캐릭터가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인 건 알겠으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정원(이선균), 경민(김수안) 부녀 관계 또한 영화 '부산행'과 흡사해 기시감이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김수안이 주인공의 딸로 출연해서인지 끊임없이 오버랩된다. 이선균의 유작으로 남겨두기엔 영화 전반적인 완성도가 영화 속 공항대교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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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더 하이츠> 음악과 춤을 곁들인 라티노의 미나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들과 이민 온 워싱턴 하이츠에서 잡화점을 하고 있는 ‘우스나비(안소니 라모)’,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는 ‘바네사(멜리사 바레라)’, 엘리트로 온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한 ‘니나(레슬리 그레이스)’. 세 주인공이 각기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하는 사이 워싱턴 하이츠에는 무더운 여름과 함께 우스나비의 가게에서 판매된 복권이 당첨됐다는 소식이 찾아온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된 이가 누군지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 사이 하이츠 전역에 정전이 찾아오고, 거리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뒤바꿀 이별을 맞이한다.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에게는 일관되게 기대하고 또 실망하는 대목이 있다. 이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사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주인공들의 시련과 아픔은 해피엔딩을 위한 밑거름일 뿐이며, 종국에 그들은 원하는 꿈을 성취하고 보상을 받는다. 흥겨운 음악과 춤, 세련된 만듦새는 그 기쁨과 행복을 배가한다. 대신 결말에 이르기 위한 갈등의 해결 과정과 방식은 휴 잭맨 주연의 <위대한 쇼맨>처럼 지나치게 간략하고 도식화되어 얄팍하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이는 달리 말해 뮤지컬 영화가 일부의 변화만으로도 훨씬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데이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는 여전히 해피엔딩을 표방하면서도, 플롯을 살짝 비틀어 모든 것이 완벽한 유토피아적 결말의 반대쪽으로 향한다. 실제로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필연적으로 져야 하는 현실의 무게감을 재즈 피아노의 건반에 담은 결말에는 씁쓸함이 한 스푼 더해져 있다. <스텝 업> 시리즈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존 추 감독이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라틴계 이민자들의 동네, 워싱턴 하이츠에서 3일간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동명의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인 더 하이츠>도 마찬가지다.
<인 더 하이츠>는 겉보기와 달리 마냥 희망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다양한 장르의 비트와 선율 위에는 라틴계 이민자들이 열망하는 꿈과 환상보다 현실을 묘사하는 가사가 먼저 얹혀 있다. 우스나비의 잡화점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일면을 포착한 오프닝처럼 영화는 크고 거시적인 사회적 구조와 문제가 아닌 개개인의 소소한 삶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래서 우스나비, 바네사, 니나 등의 중심인물들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 우스나비는 고향 도미니카 해변에 있는 아버지의 상점을 다시 열겠다는 의지를 현실의 난관과 함께 음악에 담는다. 바네사는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면서도 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픈 꿈을 위해 도시로 나가고 싶지만 많은 돈이 필요한 현실을 읊조린다. 니나는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하기 전, 특히 어릴 적 자신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다.
하늘에 떠 있는 꿈과 환상보다 땅에 붙어 있는 현실에 주목하는 영화의 전반적인 태도와 정서는 주요 소재 중 하나인 복권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분명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복권에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바삐 출근하는 와중에도 복권을 잊지 않고 사가며, 주인공들의 대사에서도 복권은 끊임없이 언급되면서 그 존재가 부각된다. 복권 당첨자가 우스나비 잡화점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수영장에 모인 사람들은 제각기의 희망을 화려하게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복권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을 신나게 보여준 뒤, 정작 복권은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다. 이미 그들은 세 주인공의 노래에서 드러났듯이 그런 꿈이 결코 가능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단순히 노래와 춤만으로, 곧 우연한 복권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환상 또한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인 더 하이츠>는 주인공들의 공간인 워싱턴 하이츠를 통째로 정전 속에 빠뜨리면서 그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꿈과 노래만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게 만드는 진짜 힘을 선보인다. 그 힘은 존재 자체의 소중함이다. 설령 현실이 너무나 어두울지라도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하며 더 나아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기가 끊겨서 더운 여름날 무기력해진 워싱턴 하이츠의 사람들이 본래 늘 하던 대로 어제와 같이 오늘과 내일도 살아가자고 노래하고 춤추는 이유다. 비록 노래와 춤 그 자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그 자체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늘 거리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던 '피트(노아 카탈라)'로부터 바네사가 옷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 것, 우스나비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이츠에 남는 것, 니나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버티기로 결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특히 워싱턴 하이츠에 사는 모든 이들을 마치 자신의 아이들처럼 키워 온 '클라우디아(올가 메레디즈)'의 삶에 집약되어 있다. 모두의 할머니였던 그녀는 정전으로 말미암아 거리가 혼란에 빠진 바로 그 순간 워싱턴 하이츠의 사람에게 가슴 아픈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온갖 잡일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기어코 지켜낸 그녀의 인생사는 현재의 삶에 지치고 본래의 자리를 이탈해 과거로 돌아갈까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그 자체로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일확천금을 노릴 복권이 아닌 클라우디아가 수십 년 간 간직해온 손수건을 보면서 그녀가 그랬듯이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일상을 살자고 결심한다.
이 지점에서 <인 더 하이츠>는 마치 라틴계 이민자들을 위한 <미나리>처럼 느껴진다. 이민자들의 소소하고 평범한 삶의 일면을 다루고, 또 할머니가 이민자들의 험난한 적응기를 지탱해주는 힘이자 존재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도 메시지를 담은 소재가 각각 복권과 미나리로 다를 뿐, 미국 사회에서 비주류인 이민자로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존재함으로써 일구는 변화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 역시 똑같다. 자신의 꿈이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할머니가 심은 미나리를 보면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을 배운 제이콥처럼, <인 더 하이츠>의 주인공들도 꿈꾸는 일들이 기적처럼 이루어지지만은 않는 평범함의 힘을 마음 깊이 간직한다.
다만 <인 더 하이츠>는 <미나리>만큼의 뭉클함이나 따스함까지 전달하는 데는 실패한다. 일단 철저히 라틴계 이민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일상을 들여다보는 작품이기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렵다.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더 나아가 미국의 히스패닉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상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러닝타임 내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고 느껴질 여지도 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상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문제들이 하나씩 있는 라틴계 이민자들이 뉴욕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문제를 해결하고 꿈을 이루려고 한다'는 문장 하나로 축약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이 돌아가면서 털어놓는 여러 고충은 실상 크게 다를 게 없고, 오히려 캐릭터들의 감정선이나 사연을 도중에 뚝뚝 끊을 뿐이기에 영화는 자연히 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현실 안에서 꿈을 꾸며, 실제적인 해결책과 방안을 고민하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이는 존 추 감독의 몫이 적지 않다. 존 추 감독은 <나우 유 씨 미 2> 같은 영화에서 각본의 짜임새와 볼거리 중 후자를 중시한다고 비판받아 왔는데, 이 대목이 역으로 주인공들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장점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들의 눈앞에 있을 수 없지만 그들이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바네사가 꿈을 노래할 때 맨해튼의 건물을 형형색색의 천들이 뒤덮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니나와 베니가 건물 벽을 걸어 다니며 춤을 추고, 니나가 자신의 현실을 한탄하며 노래할 때 거리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목격하는 것, 우스나비가 잡화점 한 구석에 마련한 공간이 진짜 해변처럼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전개가 유발하는 지루함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귓가를 스치는 음악과 음악에 스펙터클을 더하는 군무가 그나마 상쇄해준다. 수영장에서의 군무 장면은 물이라는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감독의 전작인 <스텝업 3>를 떠올리게 하며, 싱크로나이징을 본 딴 수중 댄스의 등장은 한 발짝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정전된 직후나 오프닝 시퀀스에서 거리를 가득 매운 채 선보이는 칼군무는 해당 장면이 함축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열정과 흥분을 뿜어내는데, 이 역시 전작인 <스텝업 4>에서 플래시 몹을 활용한 댄스 장면들을 보는 듯하다.
따라서 <인 더 하이츠>는 현실을 더해 지나치게 뮤지컬스러운 정서는 덜어내고, 그러면서도 뮤지컬 고유의 스타일을 극대화시킨 결과 더 큰 매력을 뽐내는 영화로 재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의 히스패닉과 라티노들의 존재와 이야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결코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설령 무시당하고 보이지 않는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인 더 하이츠> 역시 그 존재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라라랜드>의 형식에 <미나리>의 메시지를 더해 라틴 팝으로 버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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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주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1]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다음 주로 훌쩍 다가왔습니다!
크리스마스 계획은 다들 세우셨나요?
아직 계획을 세우기 전이라면, 끝내주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추천해 드리려 합니다.
바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하루를 채우는 것입니다.어찌 보면 가장 뻔하고 쉬운 방법이지만, 그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끝내주는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크리스마스에 꼭 봐야 할애니메이션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٩( ᐛ )و
여러분의 크리스마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다음에는 크리스마스 특별 큐레이션 2편으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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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2021)
** 본 리뷰는 <스펜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스펜서 (2021)
감독: 파블로 라라인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장르: 드라마
개봉일: 2022.03.16
러닝타임: 111분
다이애나 스펜서의 지옥 같은 성탄절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기간을 함께하기 위해 '다이애나 스펜서(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홀로 차를 몰고 왕실 소유의 저택, 샌드링엄 하우스로 향한다. 이곳은 '스펜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 왕가가 한자리에 모인 그곳엔 화려한 드레스, 방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선물들, 그리고 수석 셰프 '대런(션 해리스)'가 고급 식재료들로 완성한 만찬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임에도 길을 잃고 지각을 한 다이애나에겐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저택에 들어선 순간부터 왕실을 모시는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은 왕실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몸무게를 재고, 3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어야 할 드레스가 정해져 있어 그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미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중인 남편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왕실의 모든 수하인들은 허울 뿐인 왕실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옥죈다. 결국 다이애나의 울분은 인내심의 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그녀는 마침내 해방을 좇아 한없이 질주한다.
창살 없는 감옥, 자유를 향한 갈망
<스펜서>는 '다이애나 스펜서'의 비극적인 삶을 모티브로 상상을 가미하여 쓴 허구의 이야기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이라면 '이 정도의 사건쯤은 벌어질 수 있었겠지'라는 생각으로부터 발현된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보통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지만, <스펜서>는 오로지 왕실의 크리스마스 파티 기간인 단 3일의 시간만을 다룬다. 따라서 사건의 발생이나 줄거리의 기승전결보다는 오로지 '다이애나'의 심리적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따라서 그 복합적인 심리를 선명하게 표현해야 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영국 왕실을 위한 식재료를 배달하는 차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 죽은 꿩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이는 마치 자유를 좇아 영국 왕실을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다이애나'를 상징한다. 시작부터 미장센을 통해 극에서 다이애나의 불행과 슬픔이 그려질 것을 예고하며 극의 분위기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끔 만든다. 극중 꿩들은 왕실 사람들의 사냥 연습을 위해 길러지는데, 마치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왕세자비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요구받는 '다이애나'의 삶과 닮아있다.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에게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으며 그녀는 사냥용 꿩들처럼 꼼짝없이 갇힌 채 자신의 역할과 자유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끝없는 감정의 충동을 겪는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생연기
<스펜서>는 오로지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의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위한 작품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빛을 발한 영화다. 실제로 외모적인 싱크로율이 높기도 하지만, 극 중반부터는 배우가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실제 인물에 빙의했다고 보일 정도로 역할에 혼연일체 되어 소름돋는 연기를 펼친다.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해 온갖 신경이 곤두선 예민한 상태,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두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울과 압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왕실 사람들에 대한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특히나 주변의 모든 것이 다이애나를 옥죄어 올 때의 폭발하는 처절한 괴로움과 심리적인 압박은 관객에게 감정을 전이시킬 정도다.
특정 사건 전개가 아닌 다이애나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이기에 배우의 연기가 가진 파괴력이 핵심이 되는 작품인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를 넘어 몇 배로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과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 인생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스펜서의 불행을 극대화한 연출
<스펜서>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작품 중 하나인 <재키>와 많은 면이 닮아 있다. 대칭 구도의 촬영 기법, 뿌연 화면의 질감과 부드러운 색감의 활용, 과거의 시대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그레인 필름, 그리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상류층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래된 동화 같은 영상미와 다이애나의 파스텔톤 의상이 가진 러블리한 색감, 왕실의 온갖 화려한 장식들과 음식들은 다이애나의 시커먼 불행과 대비되어 그녀의 외로움과 답답한 심정을 극대화한다.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다이애나의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웠기에 드레스를 입은 채 자해를 시도하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으며 구토를 해야만 했던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토록 괴로움을 터뜨리는 그녀 곁에는 지원군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다이애나와 그의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3일의 시간을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마치 30년의 긴 세월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지옥 같은 하루하루는 끔찍하게 길었다. 공포스러운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현악기의 연주, 진주목걸이의 찰랑거리는 소리 등의 청각적 요소가 다이애나의 불안과 공포를 선명하게 대변한다. 매일 같이 이러한 상태를 겪었다고 가정하면, 이혼을 바라고 왕실을 뛰쳐나오는 게 당연한 결과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건
물론 픽션이겠지만, 결말부에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사냥장에서 구출해 차를 타고 맘껏 도로를 달리며 자유를 만끽한다. 수석 셰프가 만든 최고급 음식을 모두 토해낸 그녀가 찾아간 곳은 패스트푸드점 KFC였고, 드라이브 스루 주문을 하며 마침내 자신의 이름 '스펜서'를 당당히 외친다. 극 초반부터 고향집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허수아비에 걸린 아버지의 낡은 자켓을 가져와 소중히 걸어두는 것을 보면 그는 영국 왕실이 다 앗아갈지도 모르는 자신의 뿌리이자 자신의 자아 그 자체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왕실은 자신에게 두 가지 역할을 요구했지만, 결국 그 중 하나인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모습은 사라져만 갔고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불행의 늪에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국 왕실의 모두가 그녀의 품행을 비판했을지는 몰라도, 허울 뿐인 전통 속에 사로잡힌 왕가의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그곳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스펜서의 삶이 가장 고귀하고, 혁명적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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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 소녀들이다 I am All Girls 후기 / 남아프리카 영화
넷플릭스 영화 내가 그 소녀들이다 I am All Girls 후기 / 남아프리카 영화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들을 고르다가 선택한 영화가 <내가 그 소녀들이다 I am All Girls>이다. 감독은 <헌터 킬러>를 감독한 도노반 마시 이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 배우들이 출연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화다. 예고편을 봤을 때는 어렷을 때 납치되어 성폭행 당한 여자들 중 생존자들이 팀을 이루어 복수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식의 이야기 진행이 아니었다. 복수를 하는 이야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전개 방식이 예상과는 달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암울한 현실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느낌이 나는 영화이다. 소녀들의 이야기가 우울함에 잠기게 하는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Positive.
1. 다큐멘터리 느낌이 강해서 실화라는 느낌을 받는다.
어린 소녀들을 납치한 그 당시의 모습과 비디오 테이프에서 본 자백 영상, 그리고 죽은 소녀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방식은 액션 스릴러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고발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소녀들의 상황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2.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배경인 영화는 처음이라서, 낯설기도 하고 상상과는 다른 모습에 무섭기도 하다.
3. 톰비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격투와 공부를 병행하며 생존해서 복수하는 강인하고 슬픔을 안고 있는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배우인 호루비 음보야가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4. 형사의 집 주소가 비밀로 유지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다.
Negative.
1. 인신매매 단속을 하는 주인공 형사인 조디는 매력이 없는 캐릭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배우인 에리카 웨셀스가 연기하는 조디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생각으로 감정적인 일처리가 너무 많은 형사다.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형사다. 아주 위험한 스타일이다.
2. 과거의 범인들에게 복수를 하는 자의 능력이 너무 강하다.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는다.
3. 좋은 주제에 비해서 영화적 완성도는 아쉽다.
전체적인 진행이 느슨하고, 주인공 형사들은 매력이 없으며, 긴장감이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
4. 손녀까지 제물로 삼는 악당의 모습은 경악스럽다.
5. 마지막 복수 장면도 너무 쉽다. 그래도 경호원들이 지키는 장관의 집인데도 말이다.
총평
약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우울하지만 재미는 떨어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 소녀들이다 평점 6.0 (작품 6, 재미 6)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네레이드 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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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5? ?영화관 아르바이트?!?
?씨나병의 영화정보 #15? ⠀ ?열다섯 번째 주제? ⠀ ? 영화관 알바?! 영화관 아르바이트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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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4 최동원> 메인 예고편
무쇠팔, 부산의 심장, 최고의 투수, 등번호 11번, 불꽃 투혼, 금테 안경
우리가 그를 부르는 이름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 레전드 한국 시리즈, 기적 같은 우승
우리가 기억하는 1984년 가을
1984년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롯데 자이언츠 vs 삼성 라이온즈
모두가 절대 강자 삼성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던 한국시리즈
“코리안 시리즈에 올라왔으니까, 제가 힘이 되는 데 까지는 열심히 해서
전 게임을 다 나가더라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전부다 이기고 싶습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 5번 등판, 4승 1패, 완봉승, 완투승, 구원승
전세계 유일무이 깨지지 않을 만화 같은 기록
희망, 열정, 도전, 투혼
‘기록’이 아닌 ‘기적’을 선물한 최동원 선수
눈물 나게 그리운 그 이름
무쇠팔 최동원 10주기 첫 번째 다큐멘터리
“야구가 제 인생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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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저승보다 낯선> 메인 예고편
“이게 죽은 거라면 죽음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로 코마에 빠진 영화감독 민우는
이상하게도 영화를 찍으려 했던 신도시 주변의 황량한 제방길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생각 혹은 의식일지도 모르는 이곳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삶을 살았던 그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천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믿는 놈을 만난다.
영화이야기와 이야기를 만들려는 자의 운명을 이야기하던 민우는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놈의 운명에 연민을 느끼고 두 사람은 먼 듯 가까워진다.
혹시 자기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우는 같이 탈출해보려 하지만,
놈은 이미 이곳에 익숙해져 가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데…
저승 비슷한, 저승이고 하기에는 이상한, 저승이 아니라고 하기엔 낯선,
그저 텅 빈 곳에서 삶과 죽음이 존재하고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