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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025-05-04 23:45:46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리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장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당신은 천국의 문턱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마틴과 루디라는 두 인물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질문을 던진다.

 

 

 

같은 병원, 같은 병실. 서랍 속 데킬라 한 병을 나누며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다는 말에 병원을 뛰쳐나온다. 병원 주차장에서 훔친 벤츠와 그 안에 실려 있던 100만 마르크로 양복을 맞추고, 고급 호텔에 머물며 사치를 누리기도 한다. 호텔에서 작성한 버킷리스트는 둘의 여정에 새로운 꿈을 더하고, 이들은 훔친 돈을 돌려주거나 마음에 드는 주소로 돈을 보내며 세상에 작지만 따뜻한 흔적을 남긴다.

 

계속되는 경찰과 조직의 추격 속에서도 두 사람에게는 이상하리만치 큰 운이 따른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서 마틴과 루디는 처음처럼 데킬라 한 병을 들고 바다로 향한다. 마침내 마주한 끝없는 수평선 앞에서, 이들은 조용히 파도를 바라본다.

 

 

 

다소 유치한 총격전, 어딘가 나사 하나씩 빠진 듯한 경찰과 악당, 돈을 훔친 이들을 순순히 보내주는 인심 좋은 보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운 좋은 주인공들.

 

 

 

언뜻 보면 이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B급 영화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엔딩까지 제대로 음미하고 나면, 더 이상 이 영화를 가볍게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제법 유쾌하게 풀어낸다영화에서는 시한부인 마틴과 루디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내내 보여준다. 그 모든 장면이 따뜻하면서도 유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중간중간 종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마틴의 모습, 그에게 약을 챙겨주는 루디의 손길은 그들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죽음 앞에서 시작된 꿈

 

보통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마틴과 루디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삶에 더 가까워진다. 바다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이, 죽음을 직면한 후에야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나간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병원을 뛰쳐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나였다면?

 

두 사람은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기며 말한다.

트리니다드, 발리, 아카풀코, 하와이발음도 어려운 데로 가자.”

처음엔 그저 바다를 보는 게 목표였던 이들이 더 큰 꿈을 품게 된다. 전 같았으면 상상조차 못했을 꿈들이다.

 

카메라는 차량 백미러에 쓰인 한 문장을 비춘다.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

영화 초반, 마틴과 루디는 그저 평범한 행인일 뿐이다.

죽음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일탈과 새로운 시작 역시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

마틴과 루디는 죽기 직전에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아카풀코도, 하와이도, 마음먹는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이 된다.

 

 

 

 

천국에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지.

 

영화에서 바다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삶의 목표이자, 소망이다.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은 촛불 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영화는 여러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천국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바다뿐이며, 그 끝에 남는 것은 영혼 속의 불꽃이라고.

마틴과 루디에게 바다는 삶의 마지막 꿈이었고, 불꽃은 그 꿈을 향한 여정을 가능케 한 갈망과 내면의 용기였다.

 

나의 바다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바다를 향해 달릴 만큼 마음속 불꽃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가.

삶의 끝에 선 마틴과 루디의 여정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꺼내 보게 하고, 지금껏 삶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천국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다. 결국 우리가 천국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품었던 꿈, 그리고 그 꿈에 대한 진심이다.

마틴과 루디는 지금도 바다가 보이는 어딘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천국의 문턱 앞에 섰을 때, 우리도 우리만의 바다를 이야기하자.

 

 

그럼 뛰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 



 

 

작성자 . 벼리

출처 . https://blog.naver.com/dufwjd1106/22385549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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