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08 19:55:46
[JEONJU IFF 데일리] 달까지 가는 롤러코스터
영화 <외계 우주 정복자 환영> 리뷰
DIRECTOR. 안드레스 후라도
CAST. 안토니오 자르코
SYNOPSIS. 냉전의 긴장 속,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국경 지대 다리엔(Darién)에서 길을 잃은 우주 비행사들이 원주민들 때문에 놀라 깊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이 목이 잘리거나 야생 식인종에게 잡아먹히게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외계 우주 정복자 환영>은 열대 생존 훈련에 사용된 프로파간다 아카이브와 관련 영화들을 재조립해 우주 정복이라는 미션에 새겨진 식민주의적 내러티브에 도전한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첫 감정은, 역사 속에서 갈기갈기 찢긴 상처의 조각들을 퀼트처럼 엮은 영화 같다는 것이었다. 파나마의 정글에서 생존 훈련을 받는 우주 비행사들에 대한 뉴스 풋티지 영상을 보여준 다음 "원주민의 콜럼버스 발견은 그들에게 재앙이었다"는 텍스트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 준다. 이 영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달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야심을 식민지 혹은 제3세계 착취에 대한 야심과 대구를 이루도록 병치시켜, 조각조각 자르고 붙인 작품이다.
우선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어원으로 하는 국가명, 콜롬비아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자. 많은 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콜롬비아 또한 원주민들이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땅이었다. 천문학과 금 세공에 능했던 무이스카족의 이야기는 훗날 서양에 '엘도라도' 황금 도시의 전설로 전해진다. 그리고 15세기 말에서 16세기 무렵, 스페인이 무이스카 왕국을 정복하고 오늘날까지 수도인 보고타를 설립하면서 길고 긴 식민지배의 날들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주민 인구가 급감할 만큼 잔혹한 학살이 있었다. 게다가 현지 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묻어 온 천연두, 홍역 등의 질병에 면역이 없었으므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스페인은 당시 식민지에서 엔코미엔다라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다. 이는 해당 지역에 파견한 통치자에게 토지와 주민 통치권을 위임하는 것인데, 통치자는 노동력과 세금을 징발할 수 있었고 여기에는 보호와 기독교 개종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사실상 국가로서는 방임이었고, 통치자 입장에서는 현지 주민들을 쥐고 짜서 나오는 만큼 가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착취적인 강제 노동과 폭력으로, 사실상 노예노동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괴롭고 지난한 역사 끝에 마침내 19세기,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시몬 볼리바르가 이끄는 독립군을 주축으로, 콜롬비아 사람들은 독립을 이룩한다.

하지만 독립국이 되었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가 협력과 갈등 사이를 미묘하게 오락가락하는 20세기가 시작된다.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영토였는데, 파나마 운하 건설을 원했던 미국이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해 버린다. 추후 보상금을 지급하고, 군사와 외교 문제로 미국과 협력은 깊어진다. 남미에서 콜롬비아는 미국의 주요한 "반공" 동맹이었다. 그 결과 영화에서도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미국과 콜롬비아가 협력한다는 내용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우주를 향한 야욕은 패권에 대한 야욕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으므로, 닐 암스트롱을 비롯한 우주 영웅들이 콜롬비아를 방문했을 때 온 국가가 그들을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질문이 나온다. 저개발 제3세계 국가로서, 우주에 수백만 달러를 태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우주비행사들은 "달에서 돈을 찾은 사람은 없다."는 식의 정보값 0인 문장으로 대답한다. 할 말이 없었겠지.
그러나 달에서 돈을 찾은 사람은 정말 없는가? 애초에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에 충격을 받고 이룩한 성과로, 달 착륙은 철저하게 정치경제적 계산이 깔린 프로젝트였다. 물론 우리가 달에서 무슨 광물을 캐다 사는 건 아니니까 "향후 몇 년간 인류가 얻는 것은 정보일 것"이라는 닐 암스트롱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라지만, 수많은 산업이 창출되고 국방 전략 자산화를 했던 것, 소프트파워를 과시한 것을 고려하면 다양한 유무형 자산을 얻은 건 사실이다. 뭐랄까, 1945년에 일본인들이 살던 집을 내버려두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고 해서 그들이 식민지배로 '돈'을 얻지 않은 건 아니니까.

식민지에 대한 착취는 언제나 다방면으로 이루어진다. 보고 있노라면 '달을 정복'하겠다던 옛 유럽인들의 상상도는 식민지를 향한 제국주의의 탐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전 유럽이 상상한 '달 정복'의 풍경은 이렇다. '야만인'과 '유인원'의 중간쯤 되는 존재들이 날아다니고 있고, 꽃잎 위에 여성이 자고 있으며 (와중에 망원경까지 쓰고 보고 있다), 낯선 동물들과 새들이 많다. 이들은 큰 범선을 타고 달에 날아가, '야만인'들의 목에 밧줄을 두르고 채찍질을 하고, 동물들을 사냥해 배에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오는 꿈을 꾼다. 나비 요정 같은 저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도에서조차,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겠지. 하긴 우주비행사들도 '여성 우주인'이 있어서 안고 자면 좋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너네는 뭐가 그렇게 다 쉽냐?"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인디언'을 '발견'한지 20년 되었다고 그들의 '역사'를 쓰겠다더니, 그들은 '흥이 많고 호전적이다' 뭐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 '이우아나'라는 동물을 육상동물로 분류할지 수상동물로 분류할지 고민하다가 멋대로 어느 한쪽에 귀속시킨다. 이 동물은 훗날 생존 훈련을 받는 우주비행사들에게 먹이로 주어진다. 늘 이런 식이지. 신비화하는 동시에 그 신비를 쥐고 흔들고 싶어 하는 것.

이우아나를 보며 일제 강점기 때 숱하게 사라진 우리 개 '동경이'를 떠올렸고, 회사를 차려 금을 채취하는 장면을 보면서 구한말부터 우리도 겪은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픈 사람들을 보낸 곳이 있다기에 병원이라도 지었나 했더니 거기서 '하이바나'를 했단다. 약초에서 기인하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것. '하이바나'가 샤먼이라는 의미임을 생각하면, 치료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자화된다. '인간 사냥꾼', '금속을 좋아하는 사람들' 같은 식으로 신비화되고, 철저하게 세팅된 자리에서 우주비행사가 이들을 만나는 자리를 '크로스-컬처'한 경험이라고 한다. 어떤 문화도 넘나들지 않고,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자들이 이제는 언어까지 반지르르하게 넘본다. 대책 없는 착취. 상대를 지속 가능하게 두지 않는 착취. 그게 식민지의 본질이다.

이 모든 야만은 지난 세기의 것이어야만 한다고 선언하듯, 이 영화는 시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듯한 옛날식 노이즈로 덮여 있다. 오래 전의 풋티지뿐 아니라 모든 장면이 그렇다. 일정한 화면비 안에서 펼쳐지지도 않는다. 달 모양으로 둥근 화면만 한참 보여 주기도, 화면을 양분해 멜리에스의 영화 한 장면과 현실을 나란히 보이기도 한다.
각종 풋티지가 빠르게 전환되고 많은 부분이 텍스트 자막으로 처리되어 지나가다 보니, 배경 지식 없이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다. 느낌만으로 따라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앞에서 뿌린 ("갑자기 왜 이구아나?") 내용이 뒤에서 대구를 이루며 거두어질 때, 그리고 거기서 야만성의 편린이 드러날 때 한 번씩 가슴이 철렁한다. 그래도 가장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은 역시 마지막 풋티지일 것이다. 광고 문구처럼 빠르고 현란하게 지구가 아프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이 식민지배의 야만이 우리 모두의 것임이 피부로 와 닿기 때문이다.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매단 돛단배를 타고 달까지 도달한 순간, 내가 타고 있는 것이 롤러코스터임을 깨닫는다. 신기한 영화적 경험이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30-05.09) 상영일정]
2025.05.02 17:0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2025.05.03 17:00 CGV전주고사 8관
2025.05.07 20:30 CGV전주고사 8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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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안 본 사람의 '상견니' 리뷰 (feat. 타임슬립 영화 추천)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상견니
(23.01.25 개봉)
감독: 황천인
출연: 가가연, 허광한, 시백우 등
대만 드라마 탑으로 꼽히는 '상견니'가 이번에 영화로도 개봉했어요 ㅎㅎ 개봉 기념 배우들이 내한(무대인사)을 오시기도 했는데 티켓팅이 겁나게 힘들었기에,, 저는 그냥 영화만...
일단 저는 드라마 상견니를 보지 않았어요! 드라마를 영화화 한 거인 줄 알고 몇십 회 분량을 2시간으로 본다면 꿀이지~ 하고 예매했는데 알고보니 드라마의 스핀오프, 비하인드 느낌이라더라고요... 고로 저는 스토리는 물론 캐릭터에 대해서 1도 모른 채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일반인(??)의 입장에서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위쉬안은 재회한다.
이들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지고, 연인이 된다.
2017년, 항위쉬안은 해외 발령을 받는다.
항위쉬안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지만
이 선택은 그녀의 미래를 를바꿀 뿐만 아니라,
리쯔웨이와 모쥔제,
그리고 그녀가 모르는 천윈루의 운명까지 바꾼다.
이제 이들은 수없이 뒤엉킨 타임라인 인속에서
서로를 구하기 위해
'라스트 댄스'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한다.
'상견니' 줄거리
이게 영화의 줄거리예요! 확실히 드라마 상견니의 후속 작품인 듯한 느낌이 들죠?
근데 결말은 비슷한 분위기인 거 같더라구요. 영화 상견니에서도 테이프를 태우면서 결국 모두에게 최선인 결과를 선택하거든요. 그로 인해 미래는 온통 바뀌게 되지만 그래도 0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는 성공합니다
영화 안 본 사람은 재미없는 이유!
첫 번째,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리쯔웨이와 항위쉬안의 재회가 이루어진다는 것부터가 드라마를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에요. 제가 보기에 저 둘은 어딘가에서 봤나...? 싶은 관곈데, 서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존재인 거 같거든요? 그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ㅠㅠ
두 번째, 타임슬립이 지나치게 자주 나온다
타임슬립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환호하시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터널 선샤인>이나 <라라랜드>처럼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이야기를 안 좋아해요. 정신사납고 이해하기가 힘들어서요 '상견니'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정말 수십 번 등장해요...
누가 누군지는 알겠다만 어디서 온 건지는 이해 불가......
세 번째, CG가 구리다
떨어져 죽는 장면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 싶을 정도로 영화에 중심적으로 작용하는 씬인데
CG가 증맬루... 구려용...... 떨어지면서 모래바람 후욱~ 피 그냥 줄줄...~ 한국인이 용납하지 못하는 CG의 형태랄까요.
좋았던 점은 배우들이 잘생겼다 정도... 남주는 물론이거니와 나오는 남자마다 잘생겼으니 눈호강이 되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오늘 밤 어쩌고에 미치에다 슌스케는 못 따라감
아 쿠키는 3개 정도 있는데요. 엔딩 크레딧 올라가면서 바로 나와서 (토이 스토리처럼) 크레딧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이러실 필욘 없습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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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누군가의 일기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 걸까
성적표의 김민영(2022)
김 :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씨들이 모여 가장 효용 없는 한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민 : 민영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변호하고 싶었다.
영 : 영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
성적표의 김민영.
영화를 보기 이전 영화에 대해 했던 생각과는 다른 영화였지만 정말 좋았다.
스펙터클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였고, 정말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을 꺼내어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한다.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 매일 매순간을 함께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더 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아니 성립될 수 없는 친구들의 관계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
스무살에 이르러 더 큰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도, 이전의 세상의 머무르는 듯 해보이지만 나름대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도
불과 일 년 사이에 우리가 이렇게 안 맞았었나, 어떻게 친구로 지냈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인물들이 딱 스무살의 나 같았다.
나 또한 학창시절 모든 것이 비슷하고 마음이 꼭 맞아떨어진다 느꼈던 친구와 급격히 사이가 틀어진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느꼈지만
아마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별 이야기 아니지만 당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세상을 뒤흔드는 아주 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고 있는 영화라 느껴졌다.
대사도 좋았고 삼행시 센스도 정말 좋았다!
특히 오프닝의 김민영 삼행시와 수산나의 PAUL 사행시.
개인적으로 PAUL 사행시를 다시 한 번 읽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각본집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제목은 '성적표의 김민영'이라 초반에는 민영이의 세계가 펼쳐지려나 짐작했는데
영화는 중반까지 죽 정희에게 초점을 맞추고 정희의 삶을 따라가는데
초반에 몇 없는 민영이의 대사만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민영' 삼행시와 대학에서의 인터뷰 답변만으로 민영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사들이 참 좋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민영이가 미웠다 좋았다 했다.
스무살이 되어 다른 환경에 놓인 정희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미웠고
대학생활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곳과 동떨어진 대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으려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갔다.
하지만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스무살에 접어든 친구들의 관계'까지라고만 생각했던 때에는 거기까지인 인물이라 생각했다.
정희가 민영이의 일기장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성적표의 김민영'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정희의 삶과 감정을 따라간다.
자연스럽게 정희의 감정을 가져가던 나는 사실 정희처럼 민영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거지
고등학생 시절의 민영이는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갔는지
내가 봐도 헛된 꿈을 꾸기만 하던 정희에게 현실을 살라던 민영이는
사실 자기도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그러면서 정희에게 헛된 꿈을 꾸지 말라던 민영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실 정희에게 한 말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민영이의 일기장이 넘어간 이후로 민영이와 정희가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상반되어 보이던 인물들은 사실 서로 닮아있었고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는 걸 느낀 것 같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민영이 자취방에 있던 액자를 보고 정희가 한 말이 영화의 엔딩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유칼립투스 향이 날 것만 같다던 그림 속 주인공은 당연히 정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엔딩에서 숲에 앉아 뒤를 돌아본 건 민영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민영이에 대한 이야기도, 정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과 기억들이 합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가장 개인적인 일기를 읽는다는 것 어떤 뜻일까.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부분적으로나마 더 깊이 그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좋았던 왓챠피디아 평 하나 덧붙이자면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문보영 <일기시대> 중
- 김차원 (왓챠피디아 '성적표의 김민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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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여성 커플의 제자리 찾기
씨네랩의 초정 시사로 개봉 전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나무들이 나란히 길게 배열되어 있는 어떤 강가의 공원에 두 아이가 있다. 까마귀들이 연신 울어대는 한적한 그 공원에서 두 아이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한 아이가 어떤 나무 뒤에 숨고, 다른 아이는 그것을 찾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숨은 아이 근처로 가면 숨은 아이는 그를 피해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한참 두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숨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찾던 아이는 숨은 아이가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까마귀 소리다. 영화 <우리, 둘>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오프닝은 향후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와 그 관계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어 궁금증을 유발한다.
영화 <우리, 둘>은 여성 커플인 마도(마틴 슈발리에)와 니나(바바라 수코바)의 이야기다. 이들은 20여 년 전 로마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지만 주변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그 관계를 알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도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 길러냈다. 남편과는 사별했지만 아이들과는 여전히 교류 중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마도와 니나는 바로 앞 집에 살고 있어 매일 만나고 사랑을 나누지만, 마도의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 니나는 마도에게 가족에게 비밀을 알리고 로마로 가서 남은 생을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결과적으로 니나의 이 바램과 제안은 영화 내내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할머니가 된 20년 차 커플, 마도와 니나의 이야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운 것을 극복하게 하기도 한다.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서로의 관계에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들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꽤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에 더해서 그 관계가 동일한 성이라고 했을 때 마음속의 장벽은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우리, 둘>의 주인공, 마도와 니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외부에 공개를 하려고 했다가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이 담겨 있다.
영화 속 두 사람이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비밀관계를 유지했는지, 아니면 마도가 결혼하고 남편과 사별한 이후 이 둘이 다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 둘이 마음 깊숙이 서로를 사랑하고 원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마도와 니나가 마도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느 연인처럼 그들은 스킨십을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 이제 할머니 나이가 된 그들의 외모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어떤 편견도 없이 사랑하는 일반적인 부부나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의 눈치를 보다 말을 하지 못한 마도는 그것을 알게 된 연인 니나의 짜증도 받아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그만 쓰러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니나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공개되지 않은 관계인 탓에 공식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고, 니나가 마도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주변의 시선은 따갑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 니나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에게 다가가서 품어주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때마다 좀 더 과격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조금씩 과격해질 때마다 모든 것이 깨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영화의 템포를 빠르게 만든다.
마도의 뇌졸중 증상 이후 서서히 공개되는 그들의 관계
꽤 오랜 기간 동안 주변에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알리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그들의 달콤한 사랑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느 로맨스 퀴어 영화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반응과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영화에 중점적으로 담는다. 영화의 제목이 <우리, 둘> 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변의 반응과 갑작스러운 질병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도와 니나가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건 그들 두 사람의 힘이다.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두 아이는 마도와 니나라고 할 수 있다. 숨바꼭질을 하다 갑자기 사라진 아이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마도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는 니나로 보인다. 그 아이가 까마귀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다른 아이를 부르는데 여전히 친구를 찾지 못한다. 실제로 니나는 마도를 다시 보기 위해 간병인을 이용하거나, 한밤중에 마도의 집에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 마도를 보고 나온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마도의 딸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마치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아이가 기이한 까마귀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니나는 상대방을 찾기 위해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은 기이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중반 마도의 상상이지만, 마도가 물속에 빠진 아이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고, 물속에 빠진 아이를 니나가 건져내는 장면은 서로의 관계를 복원한다는 일종의 영화적 암시다. 이런 은유적인 장면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여러 가지 시각으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마도를 찾기 위해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은 보는 입장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이 마도를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이용하거나,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마도의 가족을 대하는 모습은 니나의 상실감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랑이 집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마도와 니나의 노력
영화는 니나의 뒤를 따라가지만 마도의 반응도 놓치지 않는다. 뇌졸중 증상 이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던 화면은 니나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변하게 된다. 특히 마도의 몸 전체를 화면에 잡기보다는 마도의 얼굴 중 두 눈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니나의 행동에 따라 나오게 되는 반응을 눈의 초점이나 눈이 여기저기를 바꿔가며 보려 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니나의 노력에 마도가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노력은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니나의 노력과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니나가 싸우는 것은 외부의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마도는 자기 자신의 신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니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노력이고, 마도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이다.
영화 속 마도의 딸 앤(레아 드루케)과 아들 프레드릭(제롬 바랑프랭)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이 둘은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된 자신의 엄마와 이웃 여성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차단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어떤 가족에게 이 일이 벌어졌어도 반응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관계를 부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분노로 표출된다. 영화에선 그들의 반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들이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인정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자녀와 가족들의 반응이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마도와 니나에게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이 영화가 첫 연출작이다. 2020년 제10회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퀴어영화 평론가상을 수상했고, 2021년 46회 세자르 영화제에서 데뷔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두 여성이 겪는 답답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고 긴박한 시선으로 담은 영화 <우리, 둘>은 기존의 퀴어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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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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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괴물을 마주한 아이들
여기 한 한부모 가정이 있다. 엄마는 아들이 느낄지 모르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고자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아들은 점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점점 파악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한 터널에서 발견이 되질 않나, 학교에서 선생님과 나눴던 이해 못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조합해 보니 아들이 담임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 학교에 항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학교의 대응은 무성의하기 그지없다. 사과는 하는데, 눈에 영혼들이 없다. 절차 상 필요한 행동만 하고 사건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과정에서 담임에게서 아들이 왕따를 주동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하는데........ 이 일의 진위는 무엇인 걸까? 내 아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엄마는 혼란을 감출 수 없다.
1. 3가지 시점이 존재하는 영화
영화는 주인공이 두 명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두 명의 시점에서만 진행되진 않는다. 미나토의 엄마, 미나토의 담임 두 사람의 시점도 함께 보여준다. 이 세 가지 시점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본 것만 믿으면서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문을 창조해내는 한없이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1-1. 아이들의 시점
한 초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미나토와 요리, 두 친구는 멀리서 보면 그리 친해 보이진 않는다. 표면적인 교실의 풍경 속에서 요리는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미나토는 그 왕따를 관망하는 쪽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이 둘이 정말 영혼의 단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어른들이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거라고 몰아갈 수는 없다. 어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아이들이 굉장히 잘 숨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잘 못 생각하는 지점 중에 하나가 초등학생들의 심리 정도는 어른들이 가뿐히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틀렸다. 아이들도 집단으로 뭉치게 되면 그 어린 영혼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존재하게 되고, 집단 논리라는 것이 생긴다. 요기는 그 집단의 논리에 적응을 못해 남자 아이들의 따돌림을 당하던 아이였고, 미나토는 집단의 논리에는 순응하는 듯 했지만 사실은 반감이 있었던 아이였던 것이다. 이 두 지점이 통했던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끝나면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가 힐링의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별해야 할 시점이 오자,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그저 우정이 아니라 그 너머의 있는 감정임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감정은 어린 초등학생이 느끼기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1-2. 담임
담임은 표면적인 잘못은 한 적이 없지만 아이들 사이에 어떤 논리가 형성되어 있는지부터 학생들의 개개인적인 특성을 잘 알지 못했다. 표면적인 평화를 지키는 데에 급급했을 뿐이다. 그는 학교폭력을 저지르거나 세상의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은 한 적이 없지만 아이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아이들이 숨긴 메세지가 불러온 나비효과에 직격탄을 맞은 것 뿐이다. 요리와 미나토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아이들이었지만 끊임없이 선생님에게 표현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혼란한 감정들을 말이다. 조금만 관심있게 지켜봤었다면 이 아이들이 겉으로는 친해 보이지 않아도 아주 깊은 공감대가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이성애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이기에 설마 이 어린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지점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3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사오리는 아들의 상처를 보고 폭력을 당했다고 1차원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곧장 학교를 달려가 항의를 하는데, 점점 미나토가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라는 둥, "아빠는 다시 태어났을까" 등등 엄마로서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말들을 한다. 정상적인 엄마라면 사오리의 행동이 정당했겠지만 미나토가 엄마에게조차 자신의 동성애 기질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사오리는 과연 자신의 아들을 잘 알고 있었던 걸까 의심하게 된다. 모든 엄마들은 자식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친근함을 느끼는 존재에게마저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철저히 숨긴다. 나는 내 아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며, 그 오만으로 사오리는 자신의 아들이 명백히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갖혀 한 교사를 폭력 교사로 몰아가기에 이른다.
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왔다.
일본이 사회적 이슈들을 소재로 삼아 영화화 해왔던 감독인 만큼 이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도 이지메라는 일본 사회의 왕따를 앞세워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키워드는 동성애이다.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느끼는 동성애, 그리고 그 혼란한 감정을 숨기는 과정에 있어서 어린 아이들의 서툰 모습들이 어른들의 삶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그런 이야기이다. 영화가 처음부터 잔잔한 파도처럼 시작되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몰아치기 시작한다. 잔잔한 과격함이 있다라고나 할까. 분명히 자극적인 내용이기는 한데, 모든 인간군상에 대한 이해를 하게 만든다. 그게 고레에다 감독의 장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분명 선악이 명확하지 않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건 범죄자를 미화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저 사람이라는 존재가 다 그런거지 하면서 씁쓸한 인정을 하게 만든달까.
3. 괴물이라는 제목
영화는 요리보다는 미나토의 관점이 주된 영화적 시점인데, 요리 캐릭터도 흥미로운 것이 미나토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는데, 요리는 마치 이전부터 자신의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온다. 아들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요리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괴물 취급을 하고, 그렇게 괴물 취급을 당하면서도 요리는 특유의 해맑음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리의 그런 해맑음이 어린 아이가 경험하기엔 너무 가혹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느끼게 한다.
그래서 괴물이라는 영화 제목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니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는 분들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다가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자책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때로는 외계인 같기도, 때로는 괴물 같이 느껴지는 것일까. 미나토도 언젠가 자신이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자신의 엄마 앞에서 자신의 아빠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그 모습에서 자신이 세상과는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세상에 융화되지 못하는 자신은 괴물이거나 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돼지의 뇌니 뭐니 하는 대사가 나오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니 그저 안쓰러울 수 밖에 없었다.
4. 결말에 대한 의문
영화는 과연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빗속에서 실종된 아이들을 담임과 사오리가 찾아냈다는 장면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상에서 두 아이들은 비가 그친 뒤의 들판을 해맑게 뛰어나간다. 이것은 아이들이 나온 곳이 진짜 세상인 건지, 그들의 죽음 이후의 세상인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상태가 어떤 것이든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안식을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에 미나토가 교장 선생과 부는 불협화음 색소폰이 그 증거일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면 그저 힘껏 색소폰을 불어보라는 교장의 말에 희미하게 웃는 미나토의 밝은 웃음을 믿어보고 싶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돌파구를 찾은 거라고.
아, 그리고 담임이 궁지에 몰려 난간에 서있을 때 그 불협화음 색소폰이 울려퍼지는데, 보면서도 이 기괴한 음악은 뭘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미나토의 일종의 절규였음을 알게 되자, 감독의 연출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의 모호하지만 처절한 외침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곱씹을수록 슬프면서도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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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한 재미로 승부를 보다
이제 마블을 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마블에 늦게 입덕한 자로서 영화 한 편 한 편이 개봉할 때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토르 1, 2편을 몰아보고, 3편은 볼 시간이 없어서 위대한 유튜버 선생님들의 요약본을 보면서 복습을 하고 영화관에 찾아갔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시놉시스"신을 죽이는 자, 신이 상대한다!"
슈퍼 히어로 시절이여, 안녕! 이너피스를 위해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난 천둥의 신 토르. 그러나 우주의 모든 신들을 몰살하려는 신 도살자 고르의 등장으로 토르의 안식년 계획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토르는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킹 발키리, 코르그, 그리고 전 여자친구 제인과 재회한다. 그녀가 묠니르를 휘두르는 마이티 토르가 되어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제, 팀 토르는 고르의 복수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히고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전 우주적 스케일의 모험을 시작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에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긴 영화영화 토르의 1, 2편을 보고 굉장히 진중한 컨셉에 조금 지루했었다. 3편은 요약편을 덕택에 이렇게까지 토르가 웃긴 캐릭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깔 웃다가 나왔다. 토르 3편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다보니 3편을 본 사람들 중에서 그 재미가 전작만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3편을 요약본을 본 터라 굉장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소비영화로서 2시간 깔끔하게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위험에 빠진 왕국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보상으로 받은 염소 2마리,,, 한국의 고라니인가 싶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데,, 아주,, 재밌었다. 비명소리로 관객을 이렇게 웃길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느슨해진 영화의 유머감에 한 순간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신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의 강력한 빌런 고르. 신 도살자인 고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신 도살자로 거듭니다. 가뭄이 찾아오면서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고 자신과 딸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섬기는 신을 만난 고르는 그 신에게서 자신은 필요 없고, 자신을 믿어주는 다른 이를 찾으면 된다는 말에 네크로소드를 가지고 신을 죽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백성을 져버린 신과 다르게 아스가르드 백성이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토르의 믿음이 대비되면서 신은 자신을 믿어주는 백성들의 신념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근데 사실 나는 무신론자여서 이러한 장면이 꼭 신에게만 적용된다기 보다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신의 권력과 권위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확장해서 받아들였다.
우상은 우상으로 남는 것이 좋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제우스가 너무 별로라는 점이다. 만화책에서 본 제우스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었다.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신들의 신 제우스가 배불뚝이 아저씨로 나와서 순간적으로 엥?? 했던 장면이었다. 물론 외관으로 평가를 해서는 안되지만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는 행동들 역시 자신들의 왕국만 지키면 되고, 다른 신들이 죽는 것에서는 상관없어하는 천하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면서 토르는 그동안 자신이 존경하고 흠모한 제우스가 이런 존재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누구나 자신이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존재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의 실제 모습을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상은 가까워지지 않고 자신이 상상으로 우상으로서 존재했을 때 더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모습에 친근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제우스처럼 자신의 왕좌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엄청난 실망감이 몰려올테니 말이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마블 영화치고 그리 길지 않았던 러닝타임과 빵빵 터지는 유머요소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귀여운 만두신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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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중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
우리는 매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현재를 살면서 과거에 대한 생각도 떠올리지만 미래의 모습도 떠올린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현재 아직 벌어지지 않은 무수한 가능성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그 이미지 안에는 긍정적인 모습도 있고, 부정적인 모습도 있다. 그런 단편적인 미래에 대한 이미지들은 계속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며 미래로 걸어가는 길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무수한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묻히고 때론 꿈의 형태로 형상화된다,
그 무의식, 깊은 곳에 저장된 미래의 모습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 간다. 실제로 자신이 꿈꾸던 미래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고 또 같은 방향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 속에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고 해도 그것이 현재 실현이 되기까지는 그저 상상 속의 미래일 뿐이다. 사실 상상 속의 미래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미래로 한 발짝 나아가기까지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한다. 미래의 모습이 현재가 되었을 때, 안도감을 느끼지만 한 편으로는 다시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환영을 보고 고뇌하는 폴과 그 가문의 이야기, <듄>
영화 <듄>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고뇌하는 폴(티모시 샬라메)과 그가 속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이야기를 담는다. 1960년대 후반에 프랭크 허버트가 출간한 소설 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듄>은 폴과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방대한 서사의 시작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은 폴이 꾸는 꿈으로 시작한다. 누군가의 독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조금 난해한 부분이 있지만 그 이후의 전개를 보고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그 배경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폴은 매일 밤 꿈을 꾼다. 미래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죽는 모습이나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이 계속 그를 괴롭힌다. 그의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특별한 목소리로 상대방을 조정할 수 있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조직의 사람이다. 그가 가진 능력은 아들인 폴에게까지 유전되어 전달되었고, 그것이 아직 완전히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폴은 그 능력을 쓰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어쩌면 제시카에게 물려받은 능력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환영은 베네 게세리트의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만이 보는 환영이다.
폴의 아버지인 레토 아트레이드(오스카 아이작)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잘 이끌면서 좋은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우주 황제의 명에 잘 따르면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힘을 키워가고 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하코넨 가문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느 날 황제의 명령으로 하코넨이 통치하고 있던 아라키스라는 행성을 관리하게 된다. 우주여행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질인 스파이스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지역 특성상 광물로 인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요한 물질 스파이스 채집도 레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된다.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행성에 살고 있는 원주민 프레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황제의 명을 제대로 따라야 하는 레토의 임무는 꽤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몰락과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폴
이번 <듄>에서 집중하는 건, 몰락해가는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그 상황을 견디며 앞으로 향하는 폴의 모습이다. 그가 보는 환영이나 꿈은 미래에 그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는 이미지들이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폴이 환영을 볼 때 그의 모습은 두려움 속에 있다. 환영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특히 스파이스가 많은 지역에서 더욱 심해지는 환영을 폴은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영화 속에서 폴은 아라키스의 원주민들인 프레멘들에게 리산 알가입이라는 메시아로 인식된다. 하지만 프레멘 쪽 인물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나 카인즈 박사(샤론 던컨-브루스터) 같은 인물들의 반응이나 말을 통해서 관객들은 프레멘들 사이에서도 폴이 진정한 메시아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폴 자신도 그가 메시아 같은 대단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폴이 가진 능력은 대단하지 않아 보인다. 개인 전투 능력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군인인 거니(조슈 브롤린)나 던컨(제이슨 모모아)에 비해 떨어지고 상대방을 조정하는 목소리는 레이디 제시카에 비해서 떨어진다. 또한 정치적인 역량도 아버지인 레토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아직 폴은 어리다. 그래서 그가 가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데, 바꿔 말하면 그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패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영화 <듄>에서 중요한 건, 바로 폴이 가진 가능성이다.
폴이 가진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보면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그가 보는 환영과 꿈에서도 그는 대단한 능력을 보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자신이 종교전쟁을 지휘하는 지도자로 등장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들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공격을 받고 완전히 몰락의 길을 간다. 충분히 부정적인 방향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은 자신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한 줄기 빛이 있는 희망을 찾기 위한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미지와 상황들이 겹쳐지지만 폴은 자신이 가는 길을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 만의 결정을 해나간다.
두려움을 헤치고 미래로 한 발씩 걸어가는 폴
영화 중간중간 폴이 보았던 미래에 대한 환영과 이미지는 영화 후반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알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게 이루어진 것도 있다. 결국 아무리 자신에게 미래의 환영들이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 이미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영화는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이후의 모든 여정과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폴 스스로 경험하면서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후반 등장하는 프레맨 챠니(젠다야 콜먼)는 폴의 환영 속의 존재이자 현재를 같이 만들어가야 할 운명의 동반자다. 이번 1편에서의 비중은 많지 않지만 영화의 후속 편이 이어진다면 꽤 중요한 캐릭터로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에 등장하는 리더 레토의 모습은 굉장히 위엄 있고 결단력을 보이는 등 좋은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를 보좌하고 있는 던컨이나 거니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는 그들이 가진 리더에 대한 충성이 깊이 느껴진다. 이렇게 단단하고 신뢰로 가득한 조직이 다른 집단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은 스펙터클한 영상에 담겨 있지만 무자비한 공격으로 인한 상실감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좋은 아버지 이기도 한 레토의 최후 모습은 폴이 가지게 될 짐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추후 이어질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복수를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폴의 성장과 함께 그가 걸어가게 될 메시아로서의 길도 궁금하게 한다.
스파이스라는 귀중한 광물이 가득한 아라키스는 척박한 땅이다. 그곳의 원주민인 프레맨들은 원래 그들이 살던 땅을 외부 존재에게 착취당하는 집단이 되고 만다. 마치 아프리카가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화되었던 것처럼 외부 존재에 의해 그들의 땅의 귀중한 것을 빼앗기고 이용당한다. 그 땅에 묻힌 광물들을 현지인들을 이용해 캐나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망령을 이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 새롭게 들어가게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최대한 그들을 존중하며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더 깊숙이 감추고 만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아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통합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존재이겠지만 그들 앞에 아직 그 존재는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 <듄>은 원작 소설 1권의 반 정도를 화면으로 옮겼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원작을 영상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고 깊은 이야기를 다 풀어낸다. 무엇보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화면과 한스 짐머가 만들어낸 웅장한 음악은 이 스페이스 오페라에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이야기 안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거대한 우주함선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그리고 그 모래 속을 기어 다니는 거대한 모래 벌레는 그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영상과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가능하면 좋은 시설의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 할 장중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탄생
영화에서 폴 역을 연기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띈다. 가문의 대를 이을 후계자이지만 아직 다 성숙하지 않은 그는 자신과 가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뇌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여리여리한 몸이지만 점점 날카로워지는 폴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더욱 실감 나게 담겼다. 이 영화가 가지게 된 신비하고 압도적인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레토를 연기한 오스카 아이작, 레이디 제시카를 연기한 레베카 퍼거슨을 비롯하여 조쉬 브롤린, 제이슨 모모아,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의 여러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이 영화에 강력한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듄>의 흥행이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면 현재 계획된 것과 같이 무난히 속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한 편에 <듄>이 가진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황제의 음모, 베네 게세리트의 활동, 아라키스와 폴의 모습 등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향후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듄>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앞으로 만들어질 아라키스에서의 다음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될 것 같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이 스페이스 오페라의 후속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관객들은 기꺼이 아라키스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질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듄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QrUTKIa-P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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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매버릭, 실감나는 전투기 액션을 담다!
?Rabbitgumi 입니다!
탑건 매버릭이 개봉했습니다.
1986년에 1편이 나온 이후 30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죠.
톰 크루즈의 매력이 돋보였던 1편인데, 이번 2편에는 그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요?
전투기 액션이 많이 담겼고 실제로 배우들도 전투기를 조종했다고 하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을텐데 과연 멋지게 담아냈을까요?
제가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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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볼버 - 전도연, 임지연 배우 두 명 빼고 모두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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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리볼버 #전도연 #지창욱
“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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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흩어진 밤> 메인 예고편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갑자기 집에 찾아드는 낯선 사람들.
엄마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오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그리고 원치 않게 떠맡게 된 힘든 선택.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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