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10 17:30:22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영화 <해피엔드> 리뷰
DIRECTOR. 네오 소라
CAST.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토 외
SYNOPSIS. 점멸등이 일렁이는 근미래의 도쿄. 음악에 빠진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는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나날을 보낸다. 동아리방을 찾아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한 그들은 교장 ‘나가이’의 고급 차량에 발칙한 장난을 치고, 분노한 학교는 AI 감시 체제를 도입한다. 그날 이후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POINT.
✔️ <사카모토 류이치: 오퍼스>를 연출한 네오 소라 감독의 장편 극영화 첫 연출작.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다운 감각이 돋보입니다. 음악, 미술 모두 아름다워요.
✔️ 최근 일본 영화의 경향성에서 현실과 공명하는 부분들을 봅니다. 솔직히 한국 영화가 이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한국 사회의 맥락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어요.
✔️ 얘들아 너희 우정 정말 너무... (울컥)
✔️ 연기가 처음이라는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토는 그냥 유타와 코우로 태어나서 자란 존재들처럼 보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말대로 영화가 끝난 후에도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 <썸머 필름을 타고>에서 블루 하와이 역할을 맡았던 이노리 키라라, 다양한 일본 영화에서 봐온 나카지마 아유무의 얼굴도 반갑습니다.

근미래라는 단어는 분명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라고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지만, 나는 일상에서 이 단어를 써본 적이 없다. 한국어의 어미는 시제보다 다른 것들을 더 중시하는 느낌이고, (예컨대 “하다”와 “했다”의 차이보다, “하다”와 “한 것 같다”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서양의 언어를 배우면 오히려 시제가 명확했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어는 단순미래와 근접미래, 복합과거, 반과거, 단순과거, 대과거를 촘촘히 쪼갰다.
일본어는 과거와 현재를 나누지만 미래 시제를 따로 두지는 않는다. 현재시제가 미래시제를 대체할 수 있고, 시간 표현이나 문맥, “~할 생각이다” 같은 표현들로 미래를 담아낸다. 미래의 어미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 그 언어 안에서 근미래는 어쩌면 현재의 탈을 쓴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 예감 안에서 근미래를 담은 일본 영화들을 본다. 노인 안락사를 국가 정책으로 지원하는 영화 <플랜75>는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작금의 약자 혐오 맥락을 보면 현재의 고민과 담론이 녹아 있다. 그리고 여기 빨간 불빛 사이를 달려, 우리에게 <해피 엔드>가 찾아왔다. 그렇다면 <해피 엔드>가 근미래를 통해 비추는 현재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판옵티’라는 회사의 AI 감시 체계가 도입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세계관은 이미 감시사회다. 미셸 푸코가 말한 감시사회는 단순히 365일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물리적 존재보다, 그 느낌을 받은 개인이 결국 자기 행동을 검열하게 되어 굳이 물리적인 통제까지 가하지 않아도 되는 쪽에 방점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기계의 도입 여부는 마치 버튼 하나를 누르는 정도의 변화이다. 그저 인물들의 내면에 있던 생각들, 이미 느끼고 있던 감정들이 외부로 표출되는 계기.
경찰관이 얼굴을 찍는 것만으로 이름과 민족 정보까지 나오고, 자이니치라는 이유로 코우는 유타보다 더 많은 차별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위기 시 내각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개헌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 어쩌면 나는 이 말이 얼마나 민주주의에 큰 위기를 만드는 문장인지 즉각적으로 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마치 2024년 12월 3일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어떤 일처럼, AI 감시 체계의 도입은 그간 사람들 안에 있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털털하게 다녔지만 코우의 내면은 차별로 상처받아 왔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음악에 취해 살았지만 유타는 사실 불안과 절망을 너무나 깊이 느낀 존재였고 (그의 안에 있을 ‘탄광 속 카나리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침묵하고 있던 파시스트들도 그제야 목소리를 낸다. AI 감시 체계 도입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의견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버튼이 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서 묵음으로 처리된 지진은, 수도 없이 개인의 내면에서 굉음을 내며 이루어지는 어떤 붕괴들과 얼마나 다를까. 가끔은 오보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틀어놓는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그 점조차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닮아 있다. 미약한 지진을 그냥 내 경련이나 어지럼증으로 오인하기도 하는 경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진 오보가 늘어난 데에는 어떤 거짓이 있기 때문이다. 그 거짓 뒤에는 거짓을 튀어나오게 만드는 잘못된 시스템이 있다. 교장 선생님은 AI 체계에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사회는 훨씬 더 차가운 곳이라고 계속 이야기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 학교 교육의 목적은 감시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 정도 시스템은 문제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감시 시스템은 결코 자기들의 말대로 “공정과 상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교사의 말에 순응해 교실 바깥으로 나온 ‘비-일본국민’ 학생들에게는 벌점이 부여되고, 똑같은 잘못으로 불려간 후미와 코우의 보호자들은 전혀 다른 태도로 교장실에 들어선다. 법적 의무가 아님에도 달라고 하면 따라가야 하는 경찰들의 태도 또한 이를 드러낸다.
이런 사회는 누가 언제 내 눈앞에 나타나 권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요청할 수 있는 사회로, 그건 마치 코앞에 총구를 들이대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례로 어둠 속에서 설왕설래하는 코우와 어머니의 대화를 끊고 다가오는 자경단의 불빛은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 나오는 전짓불을 떠올리게 한다.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을 때에야 그 공포는 희석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감시사회는 공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기에. 그 공포의 ‘전짓불’이 자신을 향할 일 없다 믿는, 작은 박스 안에서의 삶에 순응하면서 살아감으로 충분하다 믿는 이들만이 캐비닛에 갇힌 채로 안심한다.
뭐 캐비닛에 갇혀 괴롭힘을 당하는 데에 익숙한 누군가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사회 안에서 심경이 복잡해진다. 아이들은 작은 새들처럼 예리하게 그 복잡한 감각을 받아들이고 또 내뿜는다.

톰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말을 할 때, 유타는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톰은 마치 유타를 달래듯 미국’도’ 끔찍하다는 말을 한다. 이 절망에 혼자 버려지고 싶지 않은 유타와, 친구들을 부드럽게 어르는 힘을 가진 톰의 사이에는 ‘주의’라고 적힌 기둥이 놓인다. 무엇을 주의하는 것일까, 궁금해하다 나중에 유타와 코우가 대화하는 그림자를 보고 깨닫는다. 기둥 위에는 거울이 있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바로 그 볼록거울.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는 것들은 거울 속에, 가만히 바라만 보는 눈 속에 있다. 방관 속의 침묵으로 드러난 파시즘이 대를 잇는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다만 그 파시즘을 깨뜨리는 것은 결국, 아주 오래 같이 걸어온 사이의 사랑이다. 언제부턴가 사랑은 연애감정의 동의어로 쪼그라들었고, 심지어 그조차 사치라는 듯 연애 관계조차 규약처럼 바뀌어 간다. 이러한 시대에, 제각각의 생각으로 박터지는 세상에서, 서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서도 유타와 코우는 서브 우퍼를 같이 옮긴다. 음악을 같이 듣고, 땀을 같이 흘린다.

<해피 엔드>가 그리는 현실은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다.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한다면 그때 1923년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실제로 감독은 그 질문을 품었고, 영화 속 캐릭터 후미 또한 가네코 후미코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세상은 멈추고 또 흔들리고, 상처를 남기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 그대로가 우리의 싸움이다. 때로는 깊은 절망 안에서 회피하고, 때로는 투사처럼 싸운다. 다시 만날 수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고, 나누어 먹는 김밥이 있고, 과거에 빚진 멋진 음악도 있다. 절망하지도 희망하지도 못하는 채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혼란한 이 마음으로, 우리는 앞으로 간다. 거울은 맞세워 놓으면 무한 확장되는 세계 같지만, 깨지면 아무 것도 아닌 세계일 뿐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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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성의 50가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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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한 달이었다.
앞다투어 개봉하는 대작들의 풍년으로. 그리고 그 영화들을 속 시끄럽게 하는 잡음과 이슈들 로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세 영화에 이어. 마지막 기대작인 영화 [헌트]도 자신의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이미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도. 자신의 한계선을 저만치 밀어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은 작품으로, 이정재는 배우이자 신인 감독의 이름으로 꾸벅 인사를 건넨다.
어쩌면 이중고가 될지도 모르는 이 무거움을 기어코 어깨 위에 얹고 걷는 영화 뒤로. 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할 주사위가 던져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화 [공작]에 이은 또 다른 호평을 이끌어 낼 첩보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이 영화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함께 걸으며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의 50가지 그림자;거울에 갇힌 자신을 꺼내려는 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은 만나는 첫 순간부터 서로를 향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분명 같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협력은커녕 뒤꽁무니를 캐느라 눈이 벌게진 모습이 긴장감으로 승화되어 영화를 지배한다.
누군가를 의심해야만 하는 시대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 더 크게 보면 두 사람 모두 품 속에 자신의 이념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신념은 목숨만큼이나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드러냈다가는 스스로의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기에, 가진 거울 위에 일부러 먼지를 소복이 쌓은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살아야만 했다.
김정도(정우성)에게는 이 거울의 정체가 매우 명확하다. 자신이 군인이던 시절 보고 겪은 참상이 그것이 되어 꼿꼿하게 마음에 뿌리내린 채 흔들릴 겨를이 없었다. 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단호하게 쳐내며 거울의 존재를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박평호(이정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방주경(전혜진)은 자신이 뒤집어쓴 먼지 같은 삶을 그 어떤 왜곡 없이 너무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상부의 명령에 오롯이 자신을 던지고. 자신의 일에 심지어 신이 나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불만은커녕 이 일이 즐겁다는 것처럼.
다른 거울이자 박평호의 크립토나이트(약점)인 유정은 자꾸 평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현재의 그 부조리를 과연 참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파문을 던져댄다. 생각해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지금 대답을 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라며 채근한다.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낀 박평호는 자신의 모습이 무한대로 반사되어 분열하는 것을 보며 하나의 자신만이 남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혼란에 빠져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려고 하는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무한대의 박평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저 느꼈을 그는 결국 방주경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이 혼돈이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오월동주에서 동상이몽으로;결국은 숨길 수 없었던 본질에 대하여.
사진 출처:다음 영화
박평호와 김정도가 공동의 목표를 종착지로 하는 배에 승선하려고 채비하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숨통 같은 거울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 각자 가장 아끼는 장수 하나씩을 제 손으로 바다에 밀어 넣어야만 했다.
눈물 뿌릴 새도 없이 매정하게 등을 돌려 돌아오다 눈을 들었을 때. 그제야 서로는 자신만을 비추는 거울을 오랜 세월 들여다본 다른 사내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 낯설고. 또 어딘가는 조금 닮아 있고. 이념과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고집스러운 입매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속을 보일 수 없어 고독했을 것이며, 아주 가끔은 자신의 이념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도 몇 번은 던졌을 것 같은 얼굴.
그 연민을 닮은 것만 같은 마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혹은 상대방을 향한 감정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본능에 가까운 불안감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결국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희생으로 배의 방향키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려보려 애썼지만. 본질적으로 달랐던 그들의 이념은 결국 사람마저도 양립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체제 앞에선 한없이 약한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이 지닌 거울의 본질에 상관없이 똑같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오월동주라도 되길 바랐지만. 결국은 동상이몽이 되어버린 배 안의 소란도 알지 못한다는 듯. 시대의 파도는 배를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게 할 뿐이었다. 조용히.
결국 닿지 못한 신세계;이자성 수난시대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정재 배우가 출연한 스파이 영화에서는 유달리 최종 목적지에 대해 묻는 장면들이 많다고 느낀다.
신세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자성이 골드문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 일이 끝나면.이라는 가정문은 희망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버티게 했고. 자신의 배역은 아니었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황정민)의 최종 목적지 역시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정문이 주던 희망은 결국 희망 고문이 되어 자신을 포박했고,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가려면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딸이 밟고 지나가는 길목을 훤히 터줄 수가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숨진 유정(고윤정)의 아버지(이성민)가 몇 년 전에 물었을 때도. 김정도가 일이 끝나면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도. 박평호는 자신이 절대 그곳에 닿지 못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으리라.
“그곳”에 닿지 못하는 것이 스파이의 숙명이고, 모든 작전이 쉬쉬 했지만 목적지는 이념의 승리일 뿐 그런 곳은 없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은 이미 이념에 잠식 당해 개인을 잃어버려 그 질문을 들었을 때마다 허를 찔린 기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목적 하나만 믿고 살아왔고.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그에게 허락된 종착역은 변절자라는 오명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자성도 인남도, 그리고 박형호 마저도. 원하던 종착역에 내리지 못했다.
마치면서
영화를 보며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최근처럼 강하게 든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의 웅얼거림은 첩보 영화의 복잡성을 조금 더 배가 시키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또한 많은 카메오들이 나오는 것은 좋았으나 중요한 장면에서 필요 이상의 “아는 얼굴”들은 영화에 쏟아야 하는 몰입을 약간 흩어지게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총격전 장면에서. 박평호가 자신이 몰던 차의 엑셀을 발로 비벼 밟는 장면을 보며 생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미 개봉 전부터 많은 매체에서 이야기했기에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겹의 말을 그 위에 얹자면.
무엇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감독이라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지는 나 같은 문외한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위해 초보 감독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그 한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낯설기도 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많은 감정을 닮은 간절한 발짓처럼 보였을 정도니까. 이 초보 감독의 곁에서 메인 배우이자 친구의 역할도 진심으로 해 냈을 정우성 배우와의 호흡도 두 말할 것 없다. 이토록 처절하게 미워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딱하게 생각하는 스파이들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애써서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고. 눈치챌 정도의 엉성함도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성공적인 첩보 영화의 한 예인 [공작]과는 대척점에 들어있는 또 다른 스파이 영화의 예로 남게 될 듯하다. 물론 좋은 쪽에 속하는 예시로.
열정을 실력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행보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대단하다.
차용하고 있는 거울의 모티브는 불식 경설화와 이규보의 경설에서 따왔음.
[불식경 설화]는 한 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편이 사 온 거울을 본 아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고. 화난 아내에게서 거울을 받아 든 남편은 외간 남자가 비치는 것에 놀라 화를 냈다는 이야기임.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는 이념의 거울을 처음 본 두 남자가 서로의 이념에 화를 낼 수밖에 없음을 빗대 차용함.
이규보의 [경설]은 거울에 먼지가 쌓여 흐릿해진다 해도 무언가를 비춘다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 어차피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거울이 있을 테니 그 본질이 결국 두 사람을 오월동주가 아닌 동상이몽의 파멸로 이끌게 했음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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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너의 모든 것 [You] 미국 드라마
어릴 적 학대를 겪으면서 인간관계 형성에 문제를 겪고 있는 남주인공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드, 너의 모든 것 [You].
청불의 넷플릭스 드라마답게 스토리가 굉장히 자극적이다. (스토킹, 납치, 감금, 살인, 섹스까지)
덕분에 한 편을 보기 시작하면 모든 시즌 끝까지 쭉쭉 보게 되는 몰입도 높은 마성의 드라마.
드라마가 끝날 쯤엔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주인공의 도피를 응원하게 되는데, 살인, 납치, 감금을 한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참 무서운 미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인공의 생각 회로는 일반적이지 않고 잘못되어 있다. 자신에게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인을 한다거나, 첫눈에 반한 상대를 스토킹하는 것처럼 대놓고 범죄로 규정된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드라마는 그런 남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린 소년을 돕거나 좋은 일을 하는 그의 선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하... 뭐야 주인공이 대놓고 범죄자인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거야.)
시즌 1 에서는 작가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인 여자와의 달콤 살벌 로맨스이고, 시즌 2 에서는 요리사인 미망인 여자와의 로맨틱 사이코 로맨스이다.
그리고 2021년 3시즌에서는 어떤 로맨스가 이어질지.
이 드라마를 보고 떠오른 가장 강한 생각은 저런 걸 보고 따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 주인공을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그려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이 따라 할까 봐 무섭기까지 한 몰입도 높은 드라마였다.
절대로 청소년 관람 불가가 되어야 할 드라마, 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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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최근 국내외 영화계, OTT 업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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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봉준호 신작, 스티븐 연 합류
ⓒ 네이버 영화
에드워드 애쉬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미키 7>에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을
확정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7일 외신에 따르면 스티븐 연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봉준호 감독과 스티븐 연은 <옥자> 이후 함께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이정현, <더 그레이> 출연 긍정 검토 중
ⓒ 네이버 영화
배우 이정현이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는 <더 그레이> 출연을 긍정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배우 구교환과 전소니가 출연을 확정한 바가 있다.
고경표 X 이이경 , <육사오> 8월 개봉
ⓒ 네이버 영화
배우 고경표와 이이경 주연의 코미디 영화 <육사오>가 8월 개봉을 확정했다. <육사오>는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린 57억 1등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 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육사오는 영화 <박수건달>을 연출한 박규태 감독의 신작이다.
허준호, 영화 <빙의> 출연
ⓒ 네이버 영화
<사바하> <엑시트> <모가디슈>의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신작 <빙의>에 허준호가 출연을
최종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빙의>는 김성식 감독의 첫 연출작이며, 배우 강동원, 이동휘, 이솜이
출연한다고 알려졌다.
해외
파라마운트+, K-POP 드라마 <Dee Takes Seoul> 제작
ⓒ 파라마운트+ 홈페이지
파라마운트+에서 <영 앤 헝그리> 작가 다이애나 스나이더 리터와 CJ 엔터테인먼트 공동으로
K-POP 드라마 <Dee Takes Seoul>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드라마는 신인 걸그룹의 안무가가 된
미국인 디 마티네즈가 서울에서 꿈과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을 담은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 <데스노트> 실사화
ⓒ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가 더퍼 형제 제작사인 '업사이드 다운 픽쳐스'와 계약한 영화 중 하나가 <데스노트>이다.
2017년에 이미 이 영화를 각색한 적이 있지만, 이번 작품은 2017년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아시안영화제, 장혁·류승룡· 김혜윤 등 참석
ⓒ 뉴욕아시안영화제 홈페이지
15일에 개막하는 2022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제에는 다수의 한국 영화와 감독, 배우가 초청되었다. 최동훈 감독, 권수경 감독,
최재훈 감독, 장혁 배우, 류승룡 배우, 김혜윤 배우 등이 영화 상영 후 GV도 진행할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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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의 에바에 대하여
토마토 축제 속 행복해 보이는 표정과 대비되는 대사. 토마토와 글씨, 빛 모두 마치 피를 상징하는 듯 에바의 표정은 점차 무표정으로 변화하며 빨간색으로 가라앉는 모습부터 누군가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마저 감수한 듯한 모습까지. 에바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빨간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시선 때문에, 에바 스스로가 옭아맨 족쇄 때문에. 이 영화는 어쩌면 케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에바, 즉 케빈의 앞에서 엄마의 '연기'를 시작하게 된 에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케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케빈을 통해 에바를 보여줘야 했기에.
괴성을 지르며 시끄럽게 울던 갓난아이인 케빈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먹힐 정도로 시끄러운 공사장 근처까지 데려가는 순간 마치 해방한 듯 평온해진, 혹은 처연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에바의 모습에서 흔히들 말하는 '정상적인'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에바와 케빈 둘 중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관계이지만 결국 에바에게 모성애는 생겨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어긋난 모자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케빈은 마치 에바에게 복수하듯 에바의 신경을 긁어놓고 화를 돋우는 행동들을 한다. 이러한 케빈의 행동은 자신의 엄마인 에바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아챘고 이 잔인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자기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아이가 되는 결정을 내렸던 것 아니었을까. 언제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혹여나 에바가 자신을 버리게 된다면, 케빈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이해할 만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당연하다고 합리화할 만한. 그렇다면 과연 '정상적인' 모성애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디까지가 정상적이고, 또 어디까지가 비정상적일까. 그에 대한 기준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이고, 우리는 '정상적'인 기준에서 에바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가?
우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을,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상적인’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의 어떤 행동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케빈을 괴물로 만든 것은 결국 에바인 건가? 에바는 영원히 아들이 저지른 죄를 마치 자신이 저지를 죄처럼 속죄하며 죄책감에 살아야 하는 것인가,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에바는 엄마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에바는 흔히들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바’의 인생은 실패한 것인가? 에바의 입장에서 케빈이라는 아이를 낳는 순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으며 케빈을 낳기 전의 에바만의 인생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패가 아닌 강제적인 소멸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았던 관계 속에서 에바는 케빈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고, 케빈은 에바에게 어떻게 사랑받아야 할지 몰랐다. 사건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후,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이제는 말해달라고, 왜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는지. 케빈은 대답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복수라는 단어의 탈을 쓴 채 했던 행동들은 전부 엄마에게 진정한 사랑을 원했기 때문에 했던 것이라고. 그것이 뒤틀린 사랑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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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국내와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모두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국내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개봉 2주 차에도 1위의 자리를 유지한 <미키 17>은 지난 7일 북미에서도 첫선을 보였습니다.북미에서는 개봉 첫 주말 1,91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1위에 올랐지만,
제작비가 1억 1,800만 달러에 달하는 만큼 극장 수익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 다소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더불어, 8,000만 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더한다면,극장 개봉만으로 손익을 맞추려면 최소 2억 7,500만~3억 달러의 글로벌 흥행 수익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키 17>는 해외에서는 66개 지역에서 2,540만 달러를 벌었으며,한국 개봉을 포함한 해외 수익은 현재까지 3,420만 달러, 전 세계 총수익은 5,330만 달러를 기록 중입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2, 3위는 애니메이션 <퇴마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상 <콘클라베>가
각각 누적 관객 수 38만 명, 7만 명을 기록하며 2위와 3위를 차지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여전히 대형 영화들이 강세입니다.마블 스튜디오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누적 수익 1억 7,658만 달러를 돌파하며 2위를,
우디 해럴슨, 시무 리우가 주연을 맡은 실화 바탕 영화 <라스트 브레스>가 누적 수익 1,465만 달러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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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펍에서 피어난 연대의 용기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의 특효약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집, 카페, 도서관, 기차 안, 공원 벤치, 친구 집...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머무르느냐에 따라 감각과 생각은 각기 다르게 작동합니다. 그렇게 모든 공간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자연스러운 믿음이 생겼죠.
'이 영화'의 중심에도 특별한 힘이 있는 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다투고, 분개하고, 배척하다가 결국에는 합일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연대의 물꼬가 열리는 이곳의 이름은 바로 '올드 오크(The Old Oak)'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나의 올드 오크>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나의 올드 오크>는 2024년 1월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나의 올드 오크
The Old Oak
어느 날, 시리아 난민들이 영국 북부의 작은 마을로 이송되면서 동네의 분위기가 수선스러워집니다. 마을 어귀의 허름한 펍 ‘올드 오크'에 모인 주민들은 이방인에 대한 반발심을 쏟아내고, 주인장 'TJ'는 따뜻한 맘씨에도 손님을 놓칠세라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하기를 택합니다. 그러던 중 한 마을 주민에 의해 아끼던 카메라가 망가진 시리아 소녀 '야라'를 만나고, ‘TJ’는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던 가게 뒷방의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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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일부 마을 주민들은 동네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합니다. "망할 외국인", "난민수용소", "거지꼴" 등의 님비(Not In My BackYard)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심지어 '야라'의 가족과 우정을 쌓아가는 'TJ'를 향해 위선적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하죠. 그들의 이러한 적개심은 '올드 오크'에서 마구 터져 나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을 전체에 남은 공적 공간이라고는 허름한 펍인 '올드 오크'가 유일하거든요.
그들이 내세우는 난민 혐오의 근거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일 공간마저 모조리 없앨 만큼 마을의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방인들로 인해 동네의 집값과 가치가 더 떨어진다는 겁니다. 내 가족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고, 사는 게 퍽퍽한 와중에 누가 누굴 챙기냐는 논리였죠. 실은 그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마저도 무너져가는 가게를 수리할 돈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주장대로 이곳은 이방인을 받아줄 마땅한 곳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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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배타적으로 굴 수밖에 없다는 마을 주민들의 아우성이 무색하게도, 원주민과 이방인 사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마을은 오래전 광부들이 모여 살던 탄광촌이었습니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활기를 잃어버린 마을은 서서히 메말라갔고, 사람들이 떠나자 마을의 집값과 가치는 떨어졌습니다. 즉, 원주민(탄광 노동자)과 이방인(전쟁 피해자)은 모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지 오래인 동네에 등장한 난민들은 그저 문제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더 손쉬운 약자였던 셈입니다.
광부 노조가 겪은 이전 세대의 아픔에 공감한 '야라'는 원주민과 이방인을 가르지 않고, 마을에 힘을 불어넣을 방법을 제안합니다. 바로 광부 노조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올드 오크'의 닫힌 방을 열고, 시대를 뛰어넘어 약자를 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힘들 때일수록 돕고 살자던 그 시절의 캐치프레이즈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we stick together)"를 내걸고 말이죠. 함께함으로써 할 수 있게 된다는 희망으로 가득한 '올드 오크'에서 원주민과 이방인은 조금씩 섞여 들어갑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편가름보다 중요한 연대와 포용의 힘을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이방인을 헐뜯고 배척하던 장소에서 약자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된 '올드 오크'. 영화는 식사 준비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올드 오크'를 드나드는 시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왠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끼며 눈치를 보는 마을 주민들을 비춥니다. 포용을 위선으로, 배척을 당위로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유토피아의 이방인이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던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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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화살을 겨누는 것을 알량한 위안으로 삼는 사회, 약자가 약자를 더 혐오하는 사회, 서로 돕고 사는 것을 위선으로 치부하는 사회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러한 모습이 이토록 당연해진 건지,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한국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여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올드 오크'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원주민과 이방인의 대립을 그려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용기, 연대, 저항의 가치를 조명하는 작품, <나의 올드 오크>. 갈림길 하나 없이 오로지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길만이 쭉 뻗어 있는 듯한 오늘날, ‘우리’가 될 용기, ‘우리’를 위한 연대,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저항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노동자 계급의 이야기를 능숙하게 전하는 켄 로치 감독의 지난 영화들을 감상하며 연말을 보내고, <나의 올드 오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위해 용기내고, 연대하며, 저항하는 한 해를 다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Summary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어느 날 마을로 들어선 낯선 버스에서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를 만난다. 마을 주민들은 불쑥 찾아온 ‘야라’네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반기지 않지만 ‘TJ’와 ‘야라’는 ‘올드 오크’에서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 켄 로치
출연 : 데이브 터너, 에블라 마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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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파일럿으로 변신한 조정석의 압도적 연기 / 빵빵 터지는 코미디 / 매력적인 이주명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파일럿"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쿠키영상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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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혀지는 라이온 킹의 대서사 / 무파사: 라이온 킹 / 라이온 킹의 프리퀄 / 형제에서 적으로 / 감춰진 스카의 이야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무파사: 라이온 킹"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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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조2 : 인터내셔날> 티저 예고편
삼각 공조로 더 강력하게! 짜릿하게! 돌아왔다!?? 현빈X유해진X임윤아의 뜨거운 재회부터 다니엘 헤니X진선규의 신선한 에너지까지!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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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속도> 메인 예고편
꽃, 바람, 새 그리고 나뭇길...
해발 1,500미터 천상의 화원 ‘오제’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카’이다
70~80kg의 짐을 지고 같은 길을 걷지만
매 순간 ‘오제’의 길 위에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는 '이가라시'
반면 '봇카'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이시타카’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
지금,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