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2025-05-18 23:38:48

경계가 무너진 세계에서

<소년의 시간>을 보고

 

 2010년대부터 스마트폰의 이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인류의 삶은 예전과 달라졌다. 이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고화질의 사진과 영상을 찍히고, 보호자는 자신들이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못하는 시간엔 패드를 쥐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만의 스마트폰을 가지는 이들. 직전 세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대를 경유한 세대라면,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태어난 알파 세대의 인생에 있어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소년의 시간>은 13살 소년 제이미를 주인공으로 삼는 시리즈이다. 마시멜로우가 들어간 핫초콜릿을 좋아하는 소년은 동급생 여자 아이 케이티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이기도 하다. 4편의 리미티드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데 긴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다. CCTV에는 명백한 물증이 남았고, 제이미는 사건의 범인임이 틀림없다. 누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는 이미 밝혀진 바, 이제 질문은 ‘왜’ 제이미가 살인을 저질렀는가이다.  

 

 살인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관계자들은 제이미와 케이티가 맺어온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10대의 소년 소녀가 맺어온 관계는 기존의 문법과는 다르다. 둘 사이에 있어 오프라인 상의 교류는 쉽게 찾아볼 수 없으나, 온라인 상의 SNS에는 두 사람이 나눈 소통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들에게 SNS란 무엇인가. 알파세대에게 있어 SNS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학창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해온 앞세대로서 SNS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까지. 친구들이 사용하는 SNS의 계정을 자연스레 만들었다. 일상을 담은 사진을 올리고, 온갖 생각들을 기록했다. 친구들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고, 친구들에게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성인이 되었다. 페이스북의 시대는 어느새 저물어갔고, 인스타그램은 대세가 되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고, 친구들을 태그하고, 태그당한 스토리를 리그램한다.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연락처가 되기도 한다. 지인들과 번호 대신 계정을 교환하는 일도 왕왕 있다. 카톡은 하지 않아도 댓글을 달고 dm을 나누는 사이도 있다. 현시대에 SNS를 이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를 넘어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의 관계자들은 이같은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CCTV에 남은 물증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인스타그램의 댓글뿐인 상황에서 이들의 분석은 끝없이 현실과 어긋난다. 첫 번째 면담의 시간, 경찰은 케이티가 제이미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친구라고 유추한다. 임상 심리학자도 SNS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제이미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으며, 여럿이 찍어 올린 사진 속 태그의 의미에 대해 묻기도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겐 그저 일상에 불과한 일들이 기성 세대에겐 의문이 되고, 제이미와의 소통은 끝없이 실패한다.

 

 태어나자마자 디지털과 연결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흐릿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오프라인에서 배제된 이들의 삶에 있어서는 온라인의 삶이 더욱더 선명한 삶일 수도 있다. 케이티에게 ‘인셀’로 칭해지고,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제이미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제이미는 인스타그램의 세계에서 노출이 심한 여성 모델들의 사진을 리포스트하고 댓글을 남겼다. 스냅챗을 통해서는 남학생들과 함께 케이티를 비롯한 같은 학년 여자애들의 반나체 사진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 동참한 일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흐리고, 사진을 유출한 동급생은 안쓰러워한다. 한 번 사진을 유출했으니, 신뢰를 잃어 다시는 그런 사진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온라인 세계에서 그가 습득한 여성의 모습은 편향적이기 그지없다. 성인 여성들은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된 이미지로 비춰지며, 또래 여자를 바라보는 모습 또한 인셀의 논리와 맞닿아있다. 그는 자신이 인셀이 아니라 주장하나, 여성을 일부 남자만 얻을 수 있는 ‘트로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런 그에게 연애와 살인은 게임 같은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이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진이 유포된 뒤 마음이 약해졌을 그녀를 얻을 ‘영리한 전략’을 세웠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러자 홧김에 그녀를 죽인 것이다. 명백한 물증에도 무죄를 주장하는 제이미. 여성을 소유물이자 트로피 정도로 생각하는 그는 실제로 자신의 행동이 큰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 해야할까. 결말부에 이르면 제이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그가 유죄를 인정하게 되었는지 작품은 보여주지 않는다. 변한 것은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스마트폰을 잃은 채 몇 달을 보냈다는 것 정도일테다. 어쩌면 그는 스마트폰이라는 ‘연결된 신체’를 벗어나, 비로소 오롯한 자신으로 사유하게 되었을 때 죄를 인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 메시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미디어가 다루는 내용이 메시지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나, 내용을 담는 그릇인 미디어 자체도 메시지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나 손에 쥐고 있는, 어쩌면 신체의 일부라 보아도 무방한 스마트폰을 켜면 여성혐오적인 메시지는 시청각적으로 체화된다. 그렇게 소년들은 자연스레 여성혐오를 배운다. 그리고 이는 온라인 세계를 넘어 오프라인 세계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소년의 시간>은 단순한 픽션이라 보기엔 현실과 닮아있는 작품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는 16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에게 SNS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과연 이같은 조치가 무엇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이들은 우회하는 경로를 발견하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정 연령이 지나면 SNS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즉,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나아가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고 할지언정, 미디어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이미 이전에 직간접적으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해온 가부장적인 제이미의 아버지가 있었고, 여성 임상심리학자를 낮잡아보는 남성 경비원이 있었다. 미디어는 사회가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품고 발화한다. 기성 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관계의 문법을 넘어, 삶의 문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노력만으로는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적인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작성자 . 숨

출처 .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