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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2025-06-05 14:50:19

진정한 연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퀴어>(2024, 루카 구아다니노) 시사회 리뷰



“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작가 리. 함께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던 리는 태양아 마지막 열기를 태워내며 타오르는 오후에 아름다운 청년 유진을 만나 첫눈에 빠져든다.

“그렇게 다정하게만 대해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에게 내린 저주


리는 자신이 퀴어인 것은 ‘저주’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 조각처럼 전시된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며 되뇌는 환상, “나는 퀴어가 아니야.”.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한다. “이제 갈게”는 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다. 리는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곁에 있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퀴어, 남들과 다르다는 자신의 ‘이상함’을 견디지 못한 채 고독 속을 버텨낼 뿐이다. 그리고 그 고독함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때문에 알코올 중독, 아편 중독으로 범죄가 되는 국가에서 도망쳐 살아간다. 

 

 

육체적 접촉 행위가 아니라면, 타인과 연결된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리는 성관계에 집착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술과 약물로 버텨낸다. 그 고독한 삶 속에서 리의 바람은 단 하나, ‘텔레파시’이다.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다. 말이 아닌 존재 자체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리의 꿈이다. 그래서, 신비의 약물 ‘야헤’를 찾아간다. 진정한 연결 찾아서. 그렇게 리는 유진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모든 비용을 대줄 테니 자신과 함께 야헤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고. 그리고 단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다정하게 대해달라고. 유진이 없으면, 완전히 무너질 준비가 된 리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린다.

 

 

 

진정한 연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둘은 야헤와 의식을 통해 ‘텔레파시’ 그 이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리는 알고 있음에도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유진의 고백을 듣는다. “나는 퀴어가 아니에요.” 유진은 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알아.”라고 담담히 말하는 리. 리의 사랑은 일방적이다. 유진은 리를 사랑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는 부유한 중년 남성을 통해 스스로는 닿을 수 없는 자본주의적 세계를 경험을 해보려는 것뿐이다. 여행을 제안한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첫날밤에서부터 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는 유진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진에게 빠져든 건 그의 젊음도, 그의 찬란함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결국 리는 죽을 때까지 유진을 지켜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옭아매던 유진의 형체에 권총을 겨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리를 보며, 관객은 두 겹의 감정 사이 놓인다. 노인이 될 때까지 유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던 리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죽음을 통해 마침내 정서적 해방에 도달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영화는 말한다. 텔레파시를 넘은 진정한 연결, 그곳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도 고독과 공허는 결국 채워지지 못한다고. 그리고, 나 자신이 퀴어라는 감정은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작성자 . 고미

출처 . https://brunch.co.kr/@gomi2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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