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씨네2025-05-21 23:44:41
평행 세계 로맨스 영화, 그래서 뭐가 특별한데?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나를 모르는 그녀의의 세계에서>
작가 지망생 리쿠(나카지마 켄토)는 교수에게 빼앗긴 창작 노트를 되찾기 위해 학교에 몰래 잠입한다. 경비원에게 들켜 도망치던 중, 비어 있는 강당에서 노래를 부르던 미나미(미레이)를 만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두 사람은 곧 연애를 시작한다.
결혼을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리쿠의 소설이 히트하고, 유명 작가로 떠오르면서 둘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소설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뒤편으로 밀려났다.
월식이 있던 어느 밤, 운명이 완전히 전복된다. 여느때와 같이 잠에서 깬 리쿠는 더 이상 소설가가 아니고 글도 쓰지 못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아내인 미나미가 인기 가수가 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학 완전히 타인으로 대하면서 리쿠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녀가 자신을 모르는 세계에서, 리쿠는 그들의 행복했던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평행 세계라는 오래된 장치를 전형적으로 활용한다. ‘사랑의 반복 가능성’, ‘시간을 넘는 감정’은 이미 일본 로맨스 영화의 단골 소재이며,
그의 작품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처럼 그 전통은 이미 과잉 상태에 가깝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의 세계에서> 역시 그 계보를 충실히 따르며,
대중이 기대하는 멜로적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서는 지점은, 주제의식의 ‘깊이’가 아니라, ‘조율’에 있다.낯을 섬세한 감정으로 풀어내며 진정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진정성은, 무엇보다 두 배우의 연기에서 나온다.
미나미 역의 미레이는 첫 연기 도전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준다. 눈빛과 망설임, 짧게 머뭇대는 손끝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그녀의 진심이 된다. 칸토 역시 리쿠라는 인물을 갈등과 후회, 집착과 배려 사이에서 복잡하게 흔들리는 내면을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덕분에 이 비현실적인 설정도 끝내 감정적으로 납득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축적 위에, 관객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끄는 인물이 있다.
바로 키리타니 켄타가 연기한 카지와라 선배다. 초반 그는 능청스럽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조언자로 등장한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한숨 돌릴 여유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이입하며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조연으로 활용될 것 처럼 보이지만 후반부, 그는 자신의 죽은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화의 주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어떠한 형태로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쿠는 미나미의 기억을 빌미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남편이었기에 알 수 있었던 디테일들’을 이용해 그녀의 마음을 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문하게 된다.
“내가 그녀의 삶에 없던 편이 더 나았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로맨스의 안락한 공식에 균열을 낸다. 사랑은, 그리고 함께한 시간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축복이었을까. 리쿠는 희생함으로서 비로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그때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켜켜이 쌓여 때론 후회하기도 또 자연히 몸에 남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돌이킬 수 없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좋은 방식으로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이 영화는 만약, 이라는 가정으로 그가 정의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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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21)
개봉일 : 2021.11.18.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매거진에 담긴 따뜻한 인생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국내에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가장 유명한 감독, 웨스 앤더슨. <개들의 섬> 이후 3년 만에 공개된 그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껏 봐왔던 그의 작품 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공개된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 일러스트와 여러 스틸컷들을 보자마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호텔과 색감이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떠올랐고, 이 영화는 ‘가장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행복할 만큼 착-맞아떨어졌다.
이 두 작품은 외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웨스 앤더슨 감독이 담아낸 작품 속 메시지 또한 서로 닮아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구스타브와 제로의 우정, 오랜 시간 한 장소를 지켜낸 그들의 인생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작품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매거진인 ‘프렌치 디스패치’를 운영했던 편집장 아서와 매거진에 글을 기고한 작가들. 즉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주간지를 만들어온 편집장 아서와 저명한 필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행을 앞두고 시작된다. ‘내가 죽으면 매거진도 발행을 중지한다.’라는 아서의 유언을 따라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매거진 또한 죽음(마지막 발행)을 준비하게 된다. 오래 이어져온 길고 긴 매거진의 역사가 끝나는 기념적인 마지막 발행본에 어떤 특종을 실을 것인가. 편집장실에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각자의 특종을 이야기하며 고민한다.
웨스 앤더슨스러운 영화
‘웨스 앤더슨스럽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을 전부 다 보지 않고 아주 일부만 봤다 하더라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 체감이 될 것이다. 이전까진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두 가지만 추천한다면 <로얄 테넌바움>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이야기했는데,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그만큼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스러움’의 끝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각이 엿보이는 색감과 이야기의 구성과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 또한 이 영화의 ‘웨스 앤더슨스러움’을 가득 충전한다.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고도 불리는 빌 머레이, 애드리언 브로디, 오웬 윌슨, 틸다 스윈튼 배우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색감에 완벽하게 물든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제프리 라이트 배우 등. 훌륭한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감독이 그린 아름다운 세계를 가득 채운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매거진의 특성을 알맞게 살린 영화로, 각각의 주제를 가진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저널리스트들이 준비한 에세이와 3가지 특종. 그리고 쇠락과 사망에 대한 챕터까지.
사건들 사이에 연관성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을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부분이 더 큰 장점으로 와닿았다. 필진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색다른 세상 이야기를 보며 여러 세계를 한곳에서 만나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이야기가 매력적이었고, 하나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아.. 저런 미학적 세계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내 시간을 저 세계에 넣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세계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회차 관람이 아닌 다회 관람을 추천한다. 1회차 관람 때는 초반부에 와르르 쏟아지는 정보량과 수많은 인물들, 눈을 깜빡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요소들로 가득찬 화면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그제서야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무심하게 ‘No Crying’ 던지던 아서 편집장의 작은 행동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며 영화의 엔딩을 더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다. 영화에 담긴 색감과 미술 장치들, 컷의 구성, 캐릭터들의 디테일 등을 눈에 담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영감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언제 멈추든 상관없이 모든 순간이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시놉시스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도시의 성쇠, 희로애락. 모든 것을 함께 한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는 아서의 편집장 부임과 함께 '피크닉' 대신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이 매거진은 아서와 함께 탄생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마지막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도시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시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성장과 함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모아 한곳에 엮어낸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훑어보는 도시 여행기를 시작으로 정신 병동에 갇힌 천재 예술가의 비밀, 이 도시에 오랜 시간 이어져온 공화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겁 없이 커다란 게임을 시작한 청년들의 도전기, 아주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경찰서장의 아들 납치 사건,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도록 매거진을 만들어준 훌륭한 저널리스트 아서의 일대기까지. 프렌치 디스패치 매거진은 아서와 이 도시의 일대기이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다.
알고 보면 다정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르는 필진들
세 편의 특종과 부록에 해당하는 도시 에세이 한편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착착 줄 맞춰 지나가고,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해당 호를 준비하며 필진들의 글을 읽는 아서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무심한 표정으로 'No Crying'을 강조하던 아서의 모습을 보면 다정함 같은 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이만큼 따스한 마음을 가진 편집장이 또 없다. 그리고 필진들도 자연스레 아서의 말을 따른다.
아서는 원고의 양이 예상을 훌쩍 웃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고를 쳐내는 대신, 매거진 인쇄에 들어갈 용지의 부수를 늘리는 선택을 하고, 마감을 앞둔 채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작가를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말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크레멘츠 옆에 쌓인 몇 장의 바삭한 토스트, 조심스레 들리던 아서의 노크 소리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의자. 손짓을 한 번 한 후 불편한 기색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는 크레멘츠. 다른 기자가 제안한 수정사항은 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아서의 한마디는 바로 수긍하는 세저랙. 낯선 도시의 차가운 창살 안으로 건네진 입사 지원서와 한 권의 책. 매거진의 발행 중지와 함께 문제없을 만큼 챙겨주라는 보너스에 대한 언급까지. 편견 없이 따뜻한 편집장의 시선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있다.
글과 함께한 일생
<프렌치 디스패치>는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친구 같은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를 지탱했던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매거진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함께한 편집장 아서와 그를 따랐던 훌륭한 작가들. 아서의 죽음을 확인하고 한곳에 모인 작가들은 마지막 기사로 편집장의 부고문을 쓰기로 결정한다. 매거진이 만들어지기 전 그의 삶부터 프렌치 디스패치의 탄생과 편집장으로서의 행보까지. 각자가 보고 느껴온 아서의 이야기가 편집장실 안에 가득 차고, 탁탁-경쾌한 타자기의 소리와 함께 부고문이 조금씩 완성된다.
아서는 평생을 글을 읽고, 모으며 작가들과 함께 살아왔다. 글과 사람을 사랑하던 저널리스트의 죽음은 또 한편의 글이 되어 프렌치 디스패치에 실린다. 아서의 일대기는 발행이 중지된 매거진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던 작가들이 써낸 글 속에서 말이다.
부고문이 실린 마지막 발행본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프렌치 디스패치가 발행되는 저 가상의 도시에 살아봤다면 참 즐거웠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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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인터뷰] 영화에 녹아든 시선
*국문 인터뷰 하단에 영문 인터뷰 번역도 함께 준비되어 있습니다:)
There is also an English interview translation at the bottom of the Korean interview:)
▶Date: 5 /5
▶Interviewee : Adam Wong (A)
▶Editor/ Interviewer : 윤채원 chaewon Yoon (Y)
in 북눅 전주(Booknook Jeonju)
Y: 제일 처음 ,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 (원제: The way we talk) > 이라는 제목만 보고 영화를 접했을 때는 ‘인물들이 이야기 하는 다양한 방식, 방법을 보여주는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인물이 이야기하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인물들이 자신의 가치랑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이야기가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혹시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 이야기 하고 싶었던 점은 어떤 것일까요?
A: 이 영화가 가지는 핵심 가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생각해 봤더니 지금까지 저의 모든 영화들은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특히나 이번 영화는 굉장히 사전 조사도 많이 했고, 실제 사례들에 많은 기반을 두었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까 주제로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 해주셨는데, 소통도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사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소통을 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지 알아야 하고, 그것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에요.
영화 속 세 등장인물은 모두 소통 방식이 다릅니다. 한 명은 수어만을 사용하고(Wolf), 한 명은 인공 와우와 수어를 함께 사용하고(Alan), 한 명은 인공와우(CI)를 사용하여 수어를 사용하지 못합니다(Sophie). 저는 이들을 통해 '인공 와우를 착용했을 경우 더 잘 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집중 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정체성이 가진 가치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왜 그는 수화를 지금까지 계속해 왔는지, 인공 와우를 왜 거부하는 지에 집중했던 거죠. 울프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고, 가족들도 모두 수화를 사용하기에 어릴 적부터 그 언어에 익숙했던 반면, 소피는 후천적으로 청력을 잃게 된 케이스에다가 부모님은 모두 들을 수 있는 청인이잖아요. 그러니 그녀의 부모님은 아이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도록 치료 되길 바라는 거죠. 수어를 배우는 대신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고요, 그러나 인공 와우의 문제는 안경처럼 맞춘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게는 실패 가능성이 되게 높아요. 인공 와우를 착용한다고 해도 근거리에서 들리는 소리와 원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죠. 앨런의 경우에는 수화와 말이 모두 가능하잖아요, 그는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들이 흔히 청각 장애인이라고 하면 수화만 한다고 생각을 하죠. 그렇지만 사실 스펙트럼이 되게 광범위하고,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들이 가진 생각들이 서로 대치하기도 해요. 이것과 관련해 그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탐구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와 같이 협력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Y: 방금 이야기해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도 그렇고, 이전 작품들에서도 계속해서 감독님께서는 청춘이나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셨는데,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사실 뭐라 딱 떨어지게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주제가 먼저 저에게 다가오고 그다음 그로부터 어떤 동기 부여가 되는 순간이 딱 찾아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0년 전에 제가 <댄스 스트리트 The way we dance >를 만들기 시작했을 땐, 제가 가르치던 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왜 춤을 추지?’라는 생각에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진정한 나를 찾는(True self) 것이 저에게 너무 중요한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저, 그리고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세계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동시대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경우, 5년 전 우연히 한 단편 영화 대본을 받았는데, 그 중, 물에서 수어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전까지는 제가 청인이다 보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불리한 것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장면을 통해 사람들이 물 안에서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수화로 물속에서 훨씬 더 자유자재로 소통을 잘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죠. 그 영화는 아직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그 한 장면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우리는 흔히 그들을 청각 장애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장애가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인 거예요. 그래서 deaf가 아닌 대문자 D를 사용해 Deaf (고유명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느 날 친구, 그리고 농인분들과 같이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식사 시간에 농인 친구들에게 만약에 나중에 기술이 엄청 발달해서 하루 만에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지금 그대로 사는 걸 선택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미 그들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거죠. 그때 뭔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고, 마침 그 자리에 프로듀서가 함께 있었는데 이걸 장편 영화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Y: 영화 속 인물의 대화나, 아이가 그리는 그림, 앨런이 찍은 사진 등 문어가 많이 등장했던 것이 인상 깊었는데, 혹시 특별히 문어를 언급하신 이유가 있는지, 혹시 문어의 움직임이 수화와 관련이 있어서는 아닌지 궁금했었어요. 저는 보면서 문어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표정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손 마디마디 유연하게 활용하는 수어가 유사하다고 느껴졌거든요.
A: 문어가 영화를 봤을 때 인상 깊게 다가왔나요?
Y: 네. 사실은 며칠 전에 한 영상에서 문어는 뉴런이 다리에도 있어서 다리 8개를 다 각각 독립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인지 그런 문어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표정부터 손 마디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수화랑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 깊게 다가오더라고요.
A: 흥미로운데요. 사실 특별한 뜻이 있던 건 아니에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비롯한 농인에 대한 많은 영화들에서 바다도 많이 등장하는데, 바다 또한 저는 의도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장면 같은 경우엔, 소피가 아이들에게 바다를 주제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이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문어가 해양 생물 중 그리기 가장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나 싶어요 (웃음).
Y: 그렇군요(웃음) 아, 아까 영화 속에 세 가지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이 등장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영화의 도입부터 사운드 디자인이 다양하게 구성됐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혹시 이것도 관객이 그들의 소통을 경험해보길 원했던 마음에서 기획하신 걸까요?
A: 맞아요.그냥 글로써 읽었을 때는 인물의 심리가 이해가 잘되었는데, 영화로 만들고, 혹은 대본으로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인물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더라고요. 이 기계가 왜 필요한 건지, 소피의 말에 울프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글을 총 4명이 함께 썼는데, 우리가 쓰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던 것들이 막상 대본화가 되니까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더라고요.
자신만의 개성이나 성격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성장의 경험이에요. 예를 들면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던가, 아주 조금만 들렸다거나, 그러한 경험들인데, 이런 것이 단순히 이미지나 글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니까 사운드 디자인에 신경을 써서 관객이 그들과 유사한 히어링 포인트를 포착하고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Y: 사운드 디자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해주셨는데, 사운드 디자인 외에도 이 영화를 연출하며 특별히 더 신경을 많이 쓰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물론 영화의 모든 부분은 중요하지만요. (웃음)
A: 농인의 문화가 어떤 다양한 측면에 침투해있는지 보여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대본 구성부터 후반 작업, 촬영 등 모든 과정에서 이 Deaf 문화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 청인과 농인을 가리지 않고 영화를 봤을 때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자막 작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지점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중에서도 영화 작업을 위해 조사를 하다 보니 발견한 건데, 인공 와우를 사용해도 무조건 잘 들리는 건 아니고, 그것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의 문제도 많더라고요. 조사를 하며 그런 점들을 깨닫게 되고,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사운드 디자인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Y: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벌써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슬슬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은데 동시대 사회에서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역할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A: 너무 거대한 질문인걸요 (웃음) 음...사람들에게는 스토리가 필요하고, 특히 요즘 같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스토리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가야 되는지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러한 의미들이 더욱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극장 말고도 숏폼이나 틱톡, 유튜브와 같이 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어요. 비록 이렇게 영화를, 스토리를 보여주는 방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주말에 가족끼리 영화를 많이 보러 갔었는데 요즘은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한편으로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전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Y: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에서 그리고 싶은 인물이 있으신가요?
A: 아직 다음 계획은 없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 농인 문화에 대해 조사를 했고, 또 그 과정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다음 작품에서도 이 주제를 조금 더 이어가 보고 싶긴 해요. 한번만 촬영하기엔 자료들이 너무 아깝고 영화를 준비하며 농인에 대한 관심이나 영감이 더욱 많아져서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만 이번에는 수어 자체 뿐 아니라 수어 통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을 해보고 싶은데, 이번 영화보다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웃음)
Deaf culture은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말로 분명히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일까, Gv와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주어진 시간 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이야기를 모두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아쉬워하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모습은 그가 누구보다 이 이야기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영화를 설명할 때 항상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는 ‘스펙트럼’ 이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농인의 세계와 인생에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측면과 다양한 생활 방식이 존재하고, 그는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들을 영화에 담음으로써 단순히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세상과 협력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지' 보여준다.
그는 5/7일 열린 GV에서 울프와 소피, 앨런의 아역을 맡았던 배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농인 배우였으며 ,수어 담당 조감독과 함께 작업했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약 5년 간 그들의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그토록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 와 닿았던 것은, 어쩌면 농인, 그리고 사회를 향한 감독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과 소통방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애정을 가득 품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영화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을 통해 나는 작은 일상의 가치들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돌아보며 나는 어떠한 따뜻한 시선과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을 지, 나는 어떤 존재로 타인과 소통하고 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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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The first thing I’d like to ask is about the title, The Way We Talk. When I first watched the film, I thought it might be about different ways of communication. But after watching it, I felt that it was more focused on how the characters explore their own identities and values. What did you want to convey through this film?
A: The central theme of this film is identity, the searching of true self After making the film, I realized that all of my past works have always been about the same topic. But this time, the film (The Way We Talk) is based it on real-life cases, and I thought it’s a good chance to me to talk about this topic that are still rarely shown in our society.
And I think communication can also be seen as a main theme because communication is very important to construct true-self, and I think true self be defined by “others’. To understand who we truly are, we need to research how we are different and similar to others—and that happens through communication.
The three main characters in the film all communicate differently. One uses only sign language to communicate other people(Wolf), another uses both sign language and a cochlear implant (CI) (Alan) , and the third uses a CI and doesn’t sign at all(Sophie). I wasn’t focused on whether someone with a CI could speak better—I wanted to highlight the value of identity. For instance, why did one character continue using sign language? Why did they refuse a CI?
Wolf was born deaf and his whole family uses sign language, so he grew up with it as his first language. Sophie, on the other hand, lost her hearing later, and her parents are hearing people. So they viewed her as “sick” and wanted her to be “restored” to her original state. That’s why she had cochlear implant surgery instead of learning sign language. But 'CI' doesn’t work the same way for everyone. They’re not like glasses that simply correct a problem—they often don’t work, or make it hard to distinguish between near and far sounds, making social adaptation difficult. Many people assume that deaf people only sign, but in reality, they have a wide spectrum. People make different choices depending on the situation, and their perspectives can even conflict with one another. I wanted to show how these characters explore their identity, and how they collaborate and communicate with society.
Y: This film, and your previous works have often deal with 'youth' and 'identity'. Did you have any special reason that you to tell these stories?
A: It’s hard to explain in a very structured way, but I think, always the topic comes to me first—and then later, some story that inspired me to develop the story. I have a moment of motivation that sparks everything. For example, when I made <The Way We Dance> ten years ago, it started with me watching some people dancing in front of a convenience store near the school where I was teaching. I thought, “Why are they dancing?” and that was the beginning.
More recently, finding one's true self has become very important. I think It’s not just about me or Hong Kong, but about the whole world. I feel that discovering our true selves is a value that we all need to reflect on today. As for this film, it started about five years ago when I happened to read a short film script. There was a scene where someone was signing underwater. As I'm a hearing person, I used to think of being unable to speak as a disadvantage, but that scene changed my perspective. Underwater, people can’t talk—but signers can still communicate freely. That struck me. That film hasn’t been made yet, but that scene stayed with me. We often refer to them as “hearing-impaired,” but it’s not really a disability—it’s a culture. That’s why I want to use a capital “D” in 'Deaf' to highlight their identity. One night, I had dinner with some Deaf friends, and I asked them: “If technology advanced and you could hear again in just one day, would you choose that?” They said no—they’d rather live as they are. That moment really struck me. My producer was there too, and we decided to make a feature film on this topic.
Y: I was really struck by how often octopuses appeared in the film—whether in the characters’ conversations, in the child’s drawings, or in the photos Alan took. I was wondering if there was a particular reason you chose to include octopuses. Was it perhaps related to sign language? While watching, I felt that the octopus’s fluid movements and expressive nature were quite similar to sign language, which also uses a wide range of expressions and the flexible movement of each finger.
A: Oh, the octopus made a strong impression on you?
Y: Yes. I recently learned that octopuses have neurons in their legs, so each arm moves independently and flexibly. And when I watched a movie, I thought moving of octopus looks like sign language, in freedom and flexibility. Especially, I thought it is similar with flexible finger moments and using facial experiences of sign language.
A: Interesting.. But actually, I didn’t include them with that intention. In the scene where Sophie teaches children, she asks them to draw the sea freely. I think the octopus is just the simplest marine creature to draw. (laughs) Also, many films about Deaf people—like those by Takeshi Kitano—often feature the sea, but actually, I'm not that intention and that's not my inspired. I was inspired this film by that earlier short film script, the one scene in that script, I felt that the ocean was a space where Deaf identities were fully expressed, a place where only they could communicate freely.
Y: I see (laughs). Earlier, you mentioned that the film features three different communication styles, and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movie, I could feel that the sound design was quite diverse. Did you plan this with the intention of allowing the audience to experience their ways of communication?
A: Yes, exactly. When we wrote the script, everything made sense to us, but when we turned it into a screenplay and showed it to others, they had a hard time understanding, for example, Sophie needed the device or why Wolf was so angry at her. Four of us co-wrote the script, and what felt natural to us didn’t always translate well on screen.
We realized that each character’s upbringing—whether they were born deaf or lost their hearing later—shaped their personalities and ways of interacting. But I think just writing or showing that isn’t enough. So I paid attention to the sound design—to help the audience experience what hearing might be like for each character and to better understand them.
Y: Aside from sound design, what aspect of the film did you pay the attention to?
A: I focused on showing how Deaf culture permeates many aspects of life. From scriptwriting to post-production and shooting, I constantly thought about how to reflect Deaf culture and make it understandable to both hearing and Deaf audiences. Subtitling also was important. During our research, I learned that even with 'CI's, hearing is not guaranteed. There are many issues when the device doesn’t work properly, So that's why I put so much effort into the sound design—to show these realities clearly.
Y: As our conversation comes to a close, time has flown by so quickly. Before we wrap up, I’d love to ask—what do you think is the role of cinema in today’s society?
A: That’s a huge question! (laughs)
Umm.. I think people need stories—especially now, when the world feels more complex and unpredictable. There are more problems, more confusion. So people need meaning in their lives, and stories help with that. Cinema is one of the most powerful ways to tell those stories. Fewer people go to the theater these days. We now have short-form videos, TikTok, YouTube. Though the platforms have changed, I don’t think the storytelling power of cinema has diminished. And nowdays, watching a film in the theater has decreased, so watching a film in a theater become more special than before—maybe even more meaningful.
Y: Oh..Time's up. Last, do you have any specific characters you’d like to explore in your next film?
A: I don’t have any set plans yet, but after all the research I’ve done on Deaf culture, I feel like I want to continue exploring this topic. It feels like a waste to stop now—I’ve gained so many insights into the Deaf community. But this time, I’m interested in focusing more on sign language interpreters. And I also want to work at a slightly faster pace than with this film.
Deaf culture has various aspects that cannot be defined in one word, so it is difficult to express it clearly in words. Perhaps that is why, when I met him through an interview with GV, he was someone who regretted not being able to express or explain all the rich stories that could not be expressed in words in a given time, and this made me feel that he is a person who has more affection and interest in this story than anyone else.
One of the words he always uses when describing movies is ‘spectrum.’ Contrary to our stereotypes, there are many aspects and lifestyles that we have not thought of in the world and life of deaf people, and by including characters with such a diverse spectrum in the movie, he goes beyond simply showing their daily lives and shows us ‘how we can cooperate with this world,’ ‘how we can find our true selves,’ and ‘how we can communicate with the world while maintaining our individuality and identity.’
He said that, except for the actors who played the younger roles of Wolf, Sophie, and Alan at the GV held on May 7, all of them were deaf actors, and he worked with an assistant director, who in charge of sign language and studied their culture for about 5 years to make the film. The reason the characters in the film were able to communicate so freely, and their warm hearts touched us, was perhaps because of the director’s meticulous and warm gaze and communication style toward the deaf and society?
Thanks to Adam, through conversations with him, who was full of affection for what he wanted to say, and through the film <The Way We Talk>, I looked back on the values of small daily lives and the world around us, and thought about what kind of warm gaze and method I could use to look at and feel our society, and what kind of being I am to communicate with others and exist in thi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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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축한 대지 위에 그려낸, 가장 건조한 장르의 로맨스
나는 주로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부류의 관람객이다. 하지만 종종 영화관을 나서며 타인의 존재가 간절해지는 때가 있다. 정리되지 못한 채 쏟아지는 서로의 언어를 갈구하게 하는 영화를 만나고 난 후, 상기된 얼굴로 나와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마주할 때 더욱 그렇다.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는 바로 그런 영화다.
<와이드 스크린에 끝도 없이 펼쳐진 황야. 그 거칠고 메마른 땅 위를 고독하게 걸어가는 카우보이의 뒷모습. 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내달리는 말에 올라탄 개척자들...> 이러한 영화적 풍광은 아마도 영화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는 문구가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관습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서부 개척사는 유럽 정착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미국사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턴 장르는 따라서, 의도적으로 '개척되어야 마땅한 서부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정당화한다. 웨스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馬)과 서부 영웅들의 존재감은 프런티어(frontier)를 확장하는 개척의 역사만을 포섭하는 주체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 이면에 감춰진 '타자화된 개인들'의 역사가 흐려지는 지점이다. 켈리 라이가트(Kelly Reichardt)의 '축축한 웨스턴'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서술해나가기 시작한다.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
(새에게는 둥지가, 거미에게는 거미줄이, 인간에게는 우정이)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지옥의 격언(Proverbs of Hell) 속 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새둥지와 거미줄. 그곳의 정주자들은 스스로 몸 뉘일 곳을 부지런히 쌓아 올려 삶을 일궈낸다. 그리고 한 시인은 인간의 우정을 그에 견줄 만한 것이라고 보았다.
영화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킹 루(King-Lu)와 쿠키(Cookie) 이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 잊힌 서부 '정착사'의 토대를 그린다. 뒤집힌 채 배를 보이며 바둥거리는 도마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쿠키는 모피 사냥꾼들의 요리사다. 숲 속에서 버섯을 줍던 쿠키는 발가벗은 도망자 신세인 킹 루와 조우하고 그에게 덮을 것과 잠깐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이후 정착민 마을에서 재회하는 킹 루와 쿠키 두 사람은 술과 거주 공간을 그리고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 나간다.
Cookie : You speak good English.. for an Indian.(인디언치곤... 영어를 잘하는군요)
King-Lu : I'm not Indian.(난 인디언이 아닌데요.)
Cookie : Oh.
King-Lu: Chinese.(중국인이죠)
Cookie : I didn't know there were Chinese in these parts.(이쪽에 중국인들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King-Lu : Everyone is here. Everyone wants that soft gold. It's why you're here, isn't it?
(모두가 여기에 있죠. 모두가 모피를(혹은 노다지) 원하잖아요.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도 그 때문 아닌가요?)(Google search : First Cow script, 의역이라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첫 만남에서 오가는 대화는(위) 서로 다른 얼굴과 언어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되며 이들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함께 들려온다. 부족의 언어로 인디언 사공과 소통하는 킹 루의 모습도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이는 마치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두 구의 백골이 스스로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출신지나 피부색, 언어가 지워진 채 땅 속에 묻혀 나란히 누워있을 뿐이다. 킹 루의 말대로 그곳에는 모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위로 그곳의 역사가 세워진 것이다.
(좌)<믹의 지름길(Meek's Cutoff)>(2019) (우)<퍼스트 카우(First Cow)>
영화적 발화자의 범위를 넓혀가는 라이카트 감독의 전작 <믹의 지름길(Meek's Cutoff)>의 첫 장면을 잠시 돌이켜보자.(위 그림, 좌) 감독은 '물'과 '소'의 이미지를 관객과 처음으로 소통하는 지점인 오프닝 시퀀스에 담기로 선택했다. 그의 웨스턴이 정주, 즉 '뿌리내림'이라는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를 품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은 캐스팅을 위해 펼쳐놓은 수많은 소들의 헤드샷(headshots)을 검토하는 중에 가장 큰 눈을 가진 소, Evie를 만났다고 한다. 영화에서 Evie는 흐르는 강의 물결을 따라 유유히 정착민들의 땅을 향해 다가온다.(위 그림, 우) 삶을 일구는 기본적인 조건인 물과 함께 흘러와 이 땅에 첫 발을 들이는 젖소의 모습은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유목적 삶에서 벗어나 정착하기를 꿈꾸는 이들의 열망이 겹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경유해 장소의 정체성을 연구한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인간의 실존을 거주, 즉 '뿌리내림'에서 찾았다. 렐프에 의하면 장소란 우리 자신을 외부로 지향시키는 출발점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에게 '진정한 장소감'이란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부에 속해있는 느낌이다. 렐프의 의견을 빌리자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장소감은 정주함으로써 얻어진 공동체적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블레이크가 사랑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우정을 정주의 자리에 넣어놓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1820년대 킹 루와 쿠키가 도착한 곳은 새로 이주한 이들에게 뿌리내림의 역사가 부재한 곳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상업적 자본주의의 논리다. 무엇이든 교환 가능한 것이 곧 가치가 되는 이곳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꽤나 낭만적이다. 서로를 향해 비스듬히 기대어있다는 안도감이 그들만의 교환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유한 자본가의 소유인 젖소의 우유를 훔친다. 그들의 완전한 정주를 가능하게 할 빵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한국인들에게 갓 지은 쌀밥의 모락모락 한 김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향이 '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유럽인들에게 우유를 넣어 갓 구운 빵 한 조각은 떠나온 그곳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쿠키가 구워낸 빵의 온기가 그들의 작은 거주공간을 가득 채우고, 허기진 이주민들의 마음을 채우는 동안 불안의 기운이 덮쳐온다. 그들은 과연 이 축축한 자투리 땅 위에서 계속해서 빵을 구워낼 수 있을까?
변용된 ‘스파게티 웨스턴’이 공간적 배경을 저 멀리 구대륙으로 옮겨 놓았다면,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는 프레임에서 내뿜는 분위기(atmosphre), 냄새까지 바꿔놓았다. <믹의 지름길>에서와 마찬가지로, 4:3 화면비율을 고집한 감독의 선택과 더불어 피사체와 카메라 간의 밀착된 거리는 다른 향을 뿜는 서부극을 빚어낸다. 그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서부의 이미지가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점령하고 전복해야 할 황야'로 느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폐쇄적이고 빽빽한 감각이 프레임을 메운다.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깊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서부의 메마른 모래먼지로 점철된, 가장 건조한 장르의 로맨스가 버섯이 피어나는 축축한 땅 위에 그려진다.
아직 역사가 기입되지 않은 그곳을 걸으며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History hasn't gotten here yet, "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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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없는 존재들의 콘크리트
SYNOPSIS.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미국에 정착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미국 이민자의 냉혹한 현실 속에 전쟁의 트라우마를 견뎌내던 어느 날.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본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기념비적인 건축물 설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시대와 공간, 빛의 경계를 넘어 대담하고 혁신적인 그의 건축 설계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후원자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질수록 오히려 더 자신의 설계에 집착하던 ‘라즐로’. 혁신적인 브루탈리즘 건축에 자신을 투영하던 ‘라즐로’는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데...
발 디딜 곳 없는, 소속이 불분명한 삶의 연대기 트라우마가 예술로 승화된다!
POINT.
✔️ 영화의 배경이 된 1950년대 영화처럼 비스타비전 화면비를 자랑하고, 오프닝과 엔딩에서 평소와 다른 결로 흐르는 크레디트를 볼 수 있습니다.
✔️ 서막-1막-인터미션-2막-에필로그의 구성. 215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인터미션까지 찬찬히 바라보게 합니다.
✔️ 거기에는 이 영화의 걸출한 음악이 일조합니다.
✔️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납득이 가는 수상입니다. 비록 발음이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말이에요.
✔️ 영화 바깥 작금의 미국과 유대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더욱 공허하게 아름다운 영화로 느껴집니다.
소설 <GV 빌런 고태경>에는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8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기적이 아닐 리 없는 이 영화를 보며 건축업자의 딸은 생각했다. "모든 (미)완성된 건축도 기적이구나..." 라즐로 토스 같은 예술적인 건축가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가능했던) 그간 그가 지어올린 모든 건물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로 갖게 됐다. 영화도 건축도, 누군가의 설계도에서 시작하지만 그 설계도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과 자본이 연결되어 있는 작업이고, 중간에 좌초되기도 쉬운 만큼 어렵사리 완성된다. 그렇다면 대놓고 건축의 도식에 맞추어 쌓아 올린 이 영화는, 어쩌면 이중의 기적이 아닐까.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분한 한 남자가 배에서 내린다. 바우하우스 출신에, 내로라 하는 프로젝트를 몇 개나 진행한 걸출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 그가 미국에 당도하는 순간은 어둡고 축축하고 어지럽다. 웅장한 관악기와 함께 울려 퍼지는 '서곡'을 따라,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그리고 편지 속 에르제벳의 목소리가 해설처럼 덧붙인다. "None are more hopelessly enslaved than those who falsely believe they are free."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노예 상태라는. 그렇다면 이 "자유의 나라"는 정말 자유의 나라인가.
뿌리 없는 존재들은 자유로운가
이내 그는 흩날린다. 뿌리 없는 이름과 있지도 않은 아들과 (그들 입장에서) 이교의 아내까지 맞아들여 '미국식' 가족을 꾸린 사촌의 가게 구석 창고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려다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말만 듣고 쫓겨난 일터에서... 자유의 나라는 라즐로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라즐로의 작업물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명성을 얻게 된 서재 주인 밴 뷰런이 라즐로를 찾아오고, 객관적인 그의 상황은 상승세를 탄다. 그러나 라즐로를 잘 아는 에르제벳이 금방 간파하듯, 그는 일 안에서 미쳐가고 있다. 더 정확히는 일 때문이라기보다 일을 수단 삼아 "그를 벌레 보듯 하는" 나라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막연한 희망 속에서 미국에 갓 도착했을 때보다,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는 지금 더더욱. 뒤집힌 땅에서 뿌리가 자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뿌리가 없다는 건 뭘까. 영화에서 공교롭게도 엄마 잃은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엄마가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다는 것과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는 대놓고 엄마 잃은 존재 셋이 나온다. 어머니와의 일화를 라즐로에게 이야기하는 밴 뷰런, 어머니 없이 숙모 에르제벳과 함께 여기까지 온 조피아, 그리고 고든의 어린 아들. 이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뿌리 없는 삶에 응전한다.
#1. 밴 뷰런: 뿌리 대신 이파리로
밴 뷰런은 부실한 뿌리를 풍성한 이파리로 승부 보려는 존재다. 이파리처럼 돈을 뿌려대며 자본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다만 그는 돈 외의 다른 수단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가 라즐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뒤에 나올 장면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스스로가 여성 혐오자임을 알지 못하는 여성 혐오자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지금 아주 미쳐 있네 저러다 잘하면 키스하겠네... 싶을 만큼 라즐로를 가까이하고 애정을 퍼붓는 듯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라즐로와 작업물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엉킨 자기애에 가까운 마음으로 보여서였다.
라즐로에게 찬사를 늘어놓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쉽게 탓하는, 투박하고 (부정적 의미로) 감정적인 반응. 라즐로에게 범죄를 저지를 때 내뱉는 문장을 보면 라즐로라는 개인보다 상대를 집단화해 기괴한 일반화하는 비약. 여성과 깊은 관계이고 싶은 마음과, 그 깊이까지 차곡차곡 도달하기에는 게으른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개인 혹은 집단으로서의) 여성 탓이라고 손쉽게 문제를 전가하는 일부 남성들과 같은 태도다. 생각해 보면 (상처가 있다는 점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조부모를 대한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건축을 향한 태도는 최악이다. 애당초 기획을 해놓고 중간에 돈 때문에 엎을 거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요 이 양반아. 마구 이파리를처럼 돈을 날리지만 잘 날리는 것 같지도 않다.
#2. 조피아: 뿌리 끝까지 어떻게든
반면 조피아는 그 없는 뿌리에 천착하며, 뿌리 끝을 찾아 어떻게든 떠나는 존재이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조피아의 첫 대사는 이스라엘로 가겠다는 선언이며, 반신불수의 몸이 된 라즐로를 대신해 그의 건축물을 해설하는 엔딩에서의 확신에 찬 대사들 또한 라즐로의 건축을 유대인의 정체성 안에 꽁꽁 묶어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실제 라즐로의 삶은 아주 경건한 유대인의 삶도 아니었으며 (그는 유대인 예배당에 계속 나가기는 하지만 그의 삶이 신앙에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번 창부를 찾고, 의료적 도움 이상으로 약물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완으로 남은 콘크리트 건축물 또한 밴 뷰런의 자본과 라즐로의 실력 그리고 뿌리 없이 흩날린 시절의 상처가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공허하게 지어진 건축물은 조피아의 해설 속에서 유대인의 정체성 하나만으로 뭉뚱그려져 거의 황금 궁전처럼 힘차게 묘사된다.
#이파리와 뿌리 끝의 우로보로스
이런 둘의 태도는 얼핏 반대처럼 보이지만, 뿌리 끝과 이파리는 의외로 마치 우로보로스의 머리와 꼬리처럼 결착된다. 마치 자본 만능주의가 팽배한 미국 그리고 시오니즘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의 결착처럼. 이는 영화 바깥에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가질 권리가 있다"며, 가자지구를 장악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 시킨 다음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네타냐후는 웃고 있었다. 이 발언으로 인해 사람들은 가자지구의 (가뜩이나 불안했던) 휴전 가능성을 더욱 낮게 점치기 시작했고, 실제로 휴전 두 달 남짓 만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했다. 4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역시나 "트럼프가 여지를 주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공교로운 지점은 이곳이다. 영화는 한 사회의 토착민 사이에서 벌레 취급을 받은 이민자가 또 우뚝 서서 체제를 찬양하는 모습을 이어 붙임으로써 결착된 폭력의 고리를 포착하고자 한다. 미국 사회에서 환대를 받지 못하고 폭력을 경험한 (듯한) 조피아가 시오니즘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밴 뷰런'이라는 이름도 네덜란드계 이름 즉 이민자의 후손일 수밖에 없는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의 이름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 폭력의 고리에서 미끄러진 존재들이 있다. 역시나 엄마 없는 존재들이다.
#3. 라즐로 토스: 사라진 뿌리
약간의 비약을 가하자면, 라즐로와 에르제벳의 결혼식 사진에는 엄마로 추정할 수 있는 나이대의 여성이 전혀 없다. 라즐로는 폭력의 고리에서 미끄러진 정도가 아니라, 그 고리에 납작하게 깔린다. 그가 밴 뷰런에게 폭력을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경로로 반신불수가 되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은 채로 그는 조피아의 해석에 꽁꽁 묶이고 있다. 한번은 예술가라고 치켜세우다 유대인/이민자라고 후려치는 폭력에, 또 한번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유대인의 정체성 아래 종속시키는 폭력에.
내게 이 지점은 단순히 예술과 자본의 역학 관계에서 예술이 자본의 질투를 받아 꺾였다는 느낌이라기보다, 자본과 시오니즘에 결탁된 폭력의 고리가 사람을 얼마나 잔혹하게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건축물이 사라지지 않아 좋다던 그는 정작 콘크리트 덩어리만 공허하게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부재를 바라보는 존재는 어디에
영화의 주요 인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인물은 고든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에 안겨 거리의 음식을 먹거나 때론 그마저 먹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아빠의 추측과 달리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빠가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다지 내색하지 않으면서 자랐다.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음에도 돈과 산업재해 사이 휘청거리던 밴 뷰런의 건축지, 건축가의 자부심과 계산에 번번이 부딪히는 '벌레' 대우에 날카로워진 라즐로의 건축지와 달리, 고든의 아들에게 건축지는 이따금 아빠가 건축용 차를 태워주기도 한 즐거운 곳이었다.
고든의 아들은 아주 작게 지나가는 인물이다. 라즐로와 에르제벳, 밴 뷰런 같은 인물들마저 결말을 앞두고 제각각 황급히 사라져 버린 이 영화의 결말부에 고든의 아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상상하게 된다. 그는 영화 바깥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사라진 뿌리의 자리를 기억하며 고요하게 살아남아 자라 갈 수 있을 만큼 운이 좋다면.
다시 영화 바깥을 보자. 미국의 자본 만능주의와 시오니즘이 선으로 연결된 자리, 가자지구를 보자. 그곳에 있으나 영화 속에는 부재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그들 또한 뿌리를 빼앗겨 흩날리고 있으나, 고든의 아들처럼 미약한 존재감으로 보도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서, 세상이 투명하게 여기는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계속 뿌리를 고요하게 지켜보며 살아남아 자라 갈 수 있을까. 이번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한 400여 명의 사망자 중 170여 명이 어린이라고 한다.
감독은 시오니즘과 미국 자본주의를 묶어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 그런 의도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비판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충분히 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부재로 도형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지점 또한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자꾸 공교롭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미국과 유대인을 묶는 것은 서막-1장-인터미션-2막-에필로그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도식만큼이나 과하게 심플한 것이 아닌지. 뿌리 없는 존재들의 공허한 콘크리트 같은, 아름답지만 공허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2천여 년 전, 사람들 앞에서 콧대를 높이고 있던 고위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던진 일갈을 떠올린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이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브루탈리스트>라는 웅장한 콘크리트 회벽에는 너무 많은 뼈가 투영되어 보인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이자, 어쩐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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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
일본의 국립공원 중 하나인 오제는 네 개 현에 걸쳐 있는 광활한 습원이다. 희귀 동식물이 많아 습지 보호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차량 통행도 불가하다. 산장으로 짐을 운반하는 봇카가 필요한 이유다. 오제에는 여섯 명 안팎의 봇카가 있는데 이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일 80킬로그램에 가까운 짐을 지고 오제를 가로지른다. 〈행복의 속도〉는 그중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두 봇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오제의 풍경이다. 영화 중간중간 부감숏으로 나오는 오제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오제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도 예쁘다. 드넓은 습원 중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건 통행을 위해 만든 좁은 나무판자길뿐이다. 관광객이 몰릴 때면 판자길 위에서 가만히 기다리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봇카의 모습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편리하지 않은 것도 가치 있는 태도임을 가르쳐 준다.
오제의 모습
이시타카와 이가라시는 각자 다른 태도로 등에 짐을 싣고 오제를 걷는다. 이시타카는 오제 밖에서 할 수 있는 봇카 일을 열심히 찾는다. 봇카 일은 겨울에는 할 수 없기에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지 않고, 건강 상태에 따라 당장에라도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청년봇카대라는 단체를 꾸려 오제에서뿐만 아니라 여행, 등산을 가는 사람들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사업을 추진하며 도시로 나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이가라시 역시 이시타카와 같은 고민을 한다. 다만 고민을 해소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그는 오제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감각하는 사람이다. 아가라시는 그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도 마음을 끄는 풍경이 있으면 발걸음을 멈춰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오제에서도 능숙하게 길을 헤쳐나간다. 헬기가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모습, 즉 자신들의 일자리가 곧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랜 시간 오제와 조율해 온 호흡을 신뢰하며 묵묵히 제 일을 해낸다. 이가라시에게 오제는 돈을 버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오제는 몸의 감각을 활짝 개방하여 적극적으로 서로를 주고받는 상호적 삶의 대상이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이시타카와 아가라시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영화도 누가 옳다는 식으로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의 선택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는 ‘취향’, ‘성향’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이가라시의 방식이 더 좋았다. 아들과 함께 떠난 오제 트레킹에서 아들이 새가 자신을 피하지 않아 놀라자 그는 “오제와 사람은 서로 빼앗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가라시가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흐름과 속도,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오제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는 한 오제도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가라시
이가라시는 시종일관 부드럽고도 단단한 태도로 그가 오제와 맺어 온 오랜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데, 이를 보고 있자면 ‘봇카의 노동이 참 고되겠다’는 안타까움이 ‘나에겐 과연 이가라시와 오제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단단히 묶여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부끄러움으로 바뀌게 된다. 나아가 저런 태도야말로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의 모든 것을 나를 위협하는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함께 호흡하며 서로를 보듬음으로써 형성하는 신뢰. 어쩌면 봇카는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표상일런지도 모른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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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없는 할리우드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9편인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5월 19일 국내에서 최초로 개봉됨과 동시에 공휴일 효과에 힘입어 개봉일 관객 수만 40만 명을 끌어모으며 흥행 초대박을 예견했는데요. 역시나, 개봉주 주말 관객 수 62만 명을 모으며, 개봉 5일 만에 관객 수 100만을 훌쩍 넘겨 오랜만에 코로나 이후 최고 흥행작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뛰어넘는 흥행을 기대해 볼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분노의 질주 9> (이하 F9)의 흥행 돌풍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5월 19일, 한국과 동시에 개봉한 홍콩과 더불어 5월 21일 개봉을 택한 중국까지 총 8개의 시장에서 1억 6200만 달러 (한화 약 1830억 원)을 끌어모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최고 흥행을 일궈내 할리우드의 체면을 살려주었습니다.
이번 F9의 흥행은 극장 최대 성수기인 여름 시장을 시작함에 있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인데요. 특히, 팬데믹 이전의 <분노의 질주> 전작의 개봉주 박스오피스 성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해외 수익 전체 162만 달러 중 135만 달러의 수익을 낸 중국 시장의 경우, 2017년의 <분노의 질주 8>이 세운 개봉주 수익 185만 달러에 이은 시리즈 2위에 달하는 기록이고, 최근 2년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100만 달러 수익을 돌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6월 25일 자국인 북미 개봉과 60개국에서의 개봉을 앞둔 F9는 할리우드 내 여타 대작들이 디즈니+ 등에서 동시 개봉을 택한 것과 달리, 극장에서 단독으로 개봉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직 F9가 상륙하지 않은 할리우드 시장은 새로운 공포 시리즈를 써 내려갈 영화 <스파이럴>이 개봉 2주 차인 현재까지 총 1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이로써, 공포 대작 <쏘우> 시리즈는 전세계 10억 달러를 넘긴 시리즈 반열에 당당히 오르게 되었습니다. 2004년, <쏘우> 제 1편과 창대한 시작을 함께한 ‘제임스 완’ 감독은 F9의 전작인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감독이기도 한데요.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한 시리즈 제7편은 어벤져스를 뛰어넘는 전세계 수익을 올린 대작입니다. 그런 제임스 완 감독이 써내려간 또다른 공포 세계관, <컨저링> 시리즈 제3편 또한 6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와 해외 박스오피스 시장이 이를 기점으로 더욱 살아나길 바라며,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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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보다 별로라고? / 여전히 기발한 연출의 병맛 영화 / 웹툰 암살요원 준 시즌 2 / 권상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트맨 2"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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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공포영화
랑종이 개봉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서 기대가 많았던 영화였는데요.
전작인 곡성과 주제가 통하는 측면도 있어 뭔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무당을 전면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러닝타임이 꽤 긴데 초중반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후반부 공포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연달아 등장하면서 공포가 반감되는 단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부분도 많이 옅어져 버렸어요.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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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그다드 카페 리마스터링> 메인 예고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바그다드 카페’. 커피머신은 고장난지 오래고, 먼지투성이 카페의 손님은 사막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들 뿐이다.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을 쫓아낸 카페 주인 ‘브렌다’ 앞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이 찾아온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한 낯선 동거. 그러나 곧 야스민의 작은 마법으로 그녀들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행복해지려는 노력, 꾸밈없는 미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해가는 소중한 시간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바그다드 카페'도 두 사람의 마법으로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이 깃들게 되는데...
황량한 사막에서 일어난 마법 같은 기적!
당신의 삶을 위로할 가장 아름다운 뮤직바이블이 찾아옵니다! Call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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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마일> 압도적 공포 예고편
#스마일 의 압도적 공포를 보이기엔 30초면 충분. 10월 6일, 너도 곧 웃게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