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24 13:43:35
7월 4주차 개봉예정작
'마블 페이즈 6' 드디어 시작!
드디어 이번 주 목요일에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이 개봉하네요…과거 1960년대 코믹스를 생각나게 하는 레트로 감성 비주얼과 사운드트랙이 개인적으로 진짜 좋더라구요, 초심을 찾은듯한 느낌…!
페이즈 6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 마블도 꽤 공 들였을 것 같고 모두 아시듯이 <판타스틱 4> 리부트는 벌써 세 번째라 이번엔 제발 🔥🙏 그리고 레드 고스트 존 말코비치 분량이 통째로 빠졌다던데… 이게 옳은 선택이었을지 얼른 확인해보고 싶네요!
또한 <태풍클럽>, <여름정원> 등 80년대 일본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사>가 재개봉 했습니다! 저도 <이사>를 극장에서 볼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네요
마지막으로…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나나, 신승호, 지수까지 엄청난 캐스팅과 제작비로 화제를 모았던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오늘 개봉했습니다. 한동안 흥행작이 없었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여러분은 오늘 무슨 영화 보러가시나요??
🎬 7월 4주차 PICK!
►<이사>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8과 1/2>
►<전지적 독자 시점>
►<비밀의 화원>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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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치의 투명함
<힘찬이는 자라서>(2022, 김은희)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김진화)
<세기말의 사랑>(2023, 임선애)
<살인자ㅇ난감>(2024)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 위 작품들의 장면과 결말 포함
손수현을 보기 위해 재생한 단편 <힘찬이는 자라서>, 노재원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주인공 정희의 친구의 남편 강석, 적당히 내향적이고 친절한 남자인 그는 대화의 주제가 달랐다면 예의바른 미소로 일관하다 퇴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영화가 만들어질 까닭도 없었겠지.) 정희가 쓰는 시나리오가 테이블에 올라오며 두 사람은 부딪힌다. ‘이퀄리스트’적 논리를 따박따박 나열하는 강석의 언행에 딱히 악의는 없다. 그는 모르고 또 알려 하지 않으므로 ‘억울’해 하는 게다. 강석은 현실을 반영해 구성된, 특정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물이었다. 배우는 역할에 충실했고, 나는 강석이 밉고 갑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직설이 차라리 반가웠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리도 솔직한 표정을 짓는 저 배우는, 주어진 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이가 정희의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왠지 그럴 것 같다. 그건 노재원의 연기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어졌다는 신호였다.
첫 만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서서히 스며들게 되는 이도 있다. 노재원은 말하자면 후자였으나, 어느 정도 전자이기도 했다. 타 배우를 염두에 두고 관람한 작품들에서 그를 목격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놀랐다.
자주 길을 잘못 들거나 가다 멈추곤 하는 로드무비 <윤시내가 사라졌다>. 운시내=준옥은 완벽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반짝이는 재킷을 걸친 그가 카메라에 잡힌 순간, 노재원의 이름을 기억했고, 좋아하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다. “원조 가수랑 똑같기만 하면 매력이 있나, 저는 그냥 저 마음가는 대로 부르거든요. 그래서 일이 안 들어와요.” 그 자조 섞인 담백한 대사에 준옥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의 공연은 본인의 설명대로다. 힘주지 않아도 깊이가 느껴지는, 차분한 ‘엣지’를 품은 목소리. 섬세한 선을 그리는 움직임. 노재원은 단지 노래를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음으로 관객의 심장을 울릴 줄 아는 공연자였다, 꼭 운시내처럼. 무대 위의 옅은 웃음기는 후에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보며 짓는 미소와 닮아 있다. 미묘한 카타르시스. 겸손함, 당당함, 자만하지 않는 자신감.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운시내’가 노래하는 자세는 ‘정준옥’이 살아가는 자세와 닮았다. 식탁 밑에 있는 하다(=처음 보는 사람)를 동그란 눈으로 응시하다 한쪽 이어폰을 슥 빼 제 귀에 끼우는 그 독특한 붙임성. 당황한 하다가 식탁에 머리를 박자 튀어나오는 진심어린 감탄사 “아이고.” 그 마주침부터 줄곧, 하다는 무례하고 준옥은 스스럼없다. 준옥의 친절은 형식적 예의 이상이다. 어머니 뻘인 순이를 ‘친구’라 부르며 벽없이 훅 다가가는 그는 하다의 말처럼 “선을 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단 ‘선을 잘 넘는 법을 아는’ 이였다. 꿍꿍이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내면의 깊이마저 갖춘. 그 넓은 마음 씀씀이는 절로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스스로 투명하므로 타인의 속도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걸까. 그는 하다의 셈과 위악을 어느 정도 간파하면서도 섣불리 평가해버리지 않고 조용히 지켜본다. 은근히 끼고 싶어하는 속내를 눈치채고 보내는 눈웃음, 삐딱한 행동을 관찰하는 진지한 눈길. 준옥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형과 함께 모녀의 갈등을 터트린 것은 글쎄, 아마도 의도적이다. 가운데 끼어 욕을 먹고 눈치를 보며 기어이, 중요한 이야기를 던지고야 만다. 하다의 케케묵은 감정을 자꾸만 건드린다. 일부러 걸림돌이 되고 기꺼이 거슬린다. 노재원의 자잘하고 천연덕스러운 제스처들은, 준옥의 신묘한 중재자(!)적 능력을 의심케 했다.
그런 그가 살짝이라도 차가워지면 이쪽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단호해지면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준옥의 위로는 빈말이 아니고 그의 조언은 불쾌한 맨스플레인이 아니다. 그가 ‘실패한’ 과거를 꺼내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와닿았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진심을 체화한 노재원, 그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드문 종류의 것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굳이 말하자면 하다와 순이의 영화이기에, 준옥은 도중 하다에게 버려지며 화면을 빠져나간다. 화내거나 패닉하는 대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마는 것마저 그답다 싶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퇴장하는 그를 ‘메시지의 의인화처럼 보이는 존재’라고 해버리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 갈무리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노재원을 만나 생명력을 얻은 준옥, 그의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안 정도는 빌고 싶어진다. 한편으로는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그는 잘 살아가리라 짐작하게 된다.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 ‘관종’과 ‘짝퉁’들의 언더월드에서 운시내=준옥은, 우아한 미스핏, 골목길의 귀인,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도인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여기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가 또 있다. <세기말의 사랑> 속 도영이다. 모순된 묘사로 들릴 것이다, 그는 회사 돈을 횡령한 범죄자이니. 가출한 조카가 위장결혼한 와이프 명의를 도용해 만든 카드값을 혼자 메꾸려다 그렇게 되었다. 앞 두 문장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으나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다. ‘위장결혼’의 자간에는 사랑과 배려가 묵음처리돼 있다.
영미와 도영은 조금은 동족이다. 사랑하는 이의 범죄를 덮으려 밤새 부업을 하고 형까지 산 영미, 기다려달라는 영미 말을 따르다 그런 건지 뭔지 자수도 못하고 체포된 도영. 뒤늦게 꼬박꼬박 돈을 갚는 그를 미워할 수 있는 관객은 별로 없었으리라. 캐릭터의 사연도 성격도,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세기말의 사랑>, 도영의 껍질은 투명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소재를 클로즈업해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순간은 도영과 만나 유독 빛났다. 비엔나 소시지에는 타인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배려심이 묻어 있었다. 모기 물린 자국에 찍은 십자가에는 살짝 엉뚱한 유머감각과 순수한 설렘이 눌려 있었다. 도영의 스크린 타임은 짧았으나, 그의 됨됨이를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유진과 도영이 마주하는 시퀀스는 겨우 둘이었고 개중 하나는 화상면회 씬이었으나, ‘위장 결혼 상대’를 향한 도영의 사랑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좋아해요”를 뱉어버리고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입가에, 호텔 창문 너머 반짝이는 관람차를 보며 (혹은 보지 못하며) 섬세하게 일그러지는 뺨에, 작품이 생략한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도영은 그럴듯하게 멋져 보이는 법을 모르는 듯한 사람이었다. 어쩐지 노재원도 그런 사람일 것만 같았다. 수줍은 손끝과 내리깔린 눈꺼풀, 자주 흐리는 말끝에 가득 담긴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영에겐 그런 드문 자질이 있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고, 노재원은 이상한 배우다.
<세기말의 사랑>(2023)
최근 노재원은 넷플릭스를 누비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D.P> 시즌2에 군복을 입은 실루엣을 비추었고, 최근에는 <살인자ㅇ난감>에 출연하며 ‘범위’를 증명했다. ‘하상민 역에 노재원’이라니, 뜻밖의 캐스팅이었다. <힘찬이는 자라서>까지를 포함해도, 앞뒤가 다른 하상민은 그가 이제껏 보여준 이미지와는 한참 먼 캐릭터로 느껴졌다. 허나 곧 (정이서와 더불어) 꽤나 영리한 캐스팅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노재원은 어떤 전형을 따라하는 대신 저만의 스타일로 보통의 악인을 소화했고, 결과적으로 시청자가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도왔다.
움츠러든 어깨, 차마 피하지 못하는 눈, 머뭇거리는 말투, 하상민은 매혹적인 젠틀맨이 되기보단 유약함과 무해함을 가장해 상대의 경계심을 해제한다. “혹시 연락을… 해도 되나?” 수락을 해도 반대로 거절을 해도 괜찮을 듯한 톤이다. 그 탁월하게 균형잡힌 딜리버리에 감탄했다. 경아에게 ‘너는 나와 동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 꾸며낸 피해 서사 자체보다는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의) 태도이고 마스크다. 악의라곤 없어 보이는 노재원의 눈빛에, 원작의 전개를 알고 있음에도 속아넘어갔다. 거울 앞에서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하상민에게 이유있는 싸함을 느끼면서도, 거기 속셈은 없다고 믿고 싶었다. ‘이번엔 믿어봐도’ 될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최우식과는 또다른 방향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두른 배우. 그렇게 노재원은 성공적으로 경아와 시청자의 의심을 풀었고, 배신감을 극대화했고, 최후의 순간에는 이희준과 만나 더없이 보잘것없어졌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평범하여 더 유해한 비겁자 하상민. 송촌 앞에서 벌벌 떨고, 울며 애원하고, 먹어 들어가는 발성으로 죄를 고백할 때보다- 경아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이내 이성을 잃고 목을 조를 때, 그는 가장 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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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행이었다, 그 직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시청한 것은. 노재원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이 작품을 최근에야 보게 됐는데, 이미 목격한 매력과 범위를 놀라운 형태로 재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서완은 일단, 조심스럽고 순하고 해맑다. 날카로운 눈매와 맑은 눈동자가 안경과 만나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쭈뼛거리는 눈가와 입가, 어깨. 말투는 정중하고, 발걸음은 자유롭다. 스토리텔링을 장황하게 늘이다 끝을 흐리는 점, 몸을 슬며시 뒤트는 점, 시선을 허공이나 바닥에 두는 점, 그러한 디테일은 대사와 맞물려 서완의 ‘컨디션’을 암시한다. 허나 캐릭터성 또한 나타낸다. 그 흐름에는 개성이 있다. 다은이 떠온 “암브로시아”를 공손히 받아드는 제스처에 뱃속이 간질간질해 진 이는 (이미 배우를 좋아하는) 나뿐이 아니었으리라.
작품은 서완의 스크린 타임을 영리하게 조절했다. 은은한 잔상을 남기고 박보영과 연우진에게 포커스를 넘기며 슬금슬금 퇴장했다가, 동네 주민처럼 가끔 얼굴을 비추며 독보적인 그림자를 흘리는 서완. 인자하고 어색하게 유유자적하던 그는, 자신의 견고한 세계가 외부 자극에 의해 깨질 위기를 감지하자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노재원은 그 간극을 설득하고, 인물의 사연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4화에선 조심스러운 선의로 주위를 밝히고, 5화에선 시청자의 심장을 잔뜩 졸인 끝에 허탈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 다음 화에서, 우리는 서완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를 떠나보내게 된다.
자신이 구성한 판타지 월드 안 서완은 지쳐 있지만 단단하다. 발음과 말씨도 분명한 편이다. 그 세계가 스스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는 서늘한 눈동자엔 공허가 있다. 고요하고 무기력한 수긍이 이어진다. 유하고 공손한 그의 언어가 날카롭게 꽂히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 입원 전, 속상할 만큼 이성적인 자각을 털어놓는 상태와, 병 인지 후 조바심과 자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는 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은의 멍든 손을 보고 제가 더 아파하는 이다.) 노재원은 누르고 파고들고 덜어냄으로써, 공시를 준비하던 서완의 마음을 드러냈다. 참고 참아 무뎌져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 성마른 입술을 통해 뱉어내는 자조에 여러 해에 걸쳐 어마어마한 밀도로 압축된 응어리가 언뜻 비쳤다. 노재원은 쌓이고 뒤엉켜 본래의 색을 잃은 인물의 내면을 신중하게 내보이는 법을 아는 배우였다.
저마다 개성있고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로 가득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노재원은… 조금 달랐다. 무엇이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조금 달랐’다. 엉망으로 울게 했고, 기습적으로 웃게 했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그리고 서완의 마지막 순간, 노재원은 모조리 비워냈다. ‘차 한 잔’을 청하던 떨리는 목소리가, 허탈하고 자유로워 보이던 미소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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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기말의 사랑>을 관람하며, <힘찬이는 자라서>를 돌이켰다. 노재원에게 받은 첫인상과, 현재 머릿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이미지를 번갈아 떠올렸다. 각이 예리하게 두드러지는 얼굴은 일관성을 유지하며 다채롭게 변했다. 그는 부드러운 피부를 입고 단단한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한없이 약해질 수 있었다(하상민). 전부 내려놓거나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무던한 듯 통통 튀는 손수현, 예민함과 유함이 공존하는 노재원. 두 배우의 에너지가 보다 친밀하게 엮이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이주영, 이유영, 스치듯 화면을 공유했던 최우식까지- 관심을 보다 먼저 두었던 배우들과 노재원이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얽히는 모습을 은근히 그려보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남자 배우가 선뜻 내보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미지를 노재원은 스스럼없이 둘렀다. 힘주지 않고 깊이를 담는 연기자. 노재원의 인터뷰들을 읽으며, 자주 준옥이 겹쳤다. 일에 대한 사랑과 겸손한 자신감이 진중하고 솔직한 언어에 실려 있었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스포츠경향]는 그는 현명한 걸음을 저답게 내딛고 있다.
“당신의 다정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일본 TV 시리즈 <그래도, 살아간다> 속 대사다. <세기말의 사랑>, 도영을 보며 그 문장이 떠올랐다. 도영만이 아니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준옥,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서완, 그들은 웃는데 이쪽은 자꾸 울먹이게 됐다. 이들의 살갗에 안착한 배우가 노재원이 아니었다면 내 눈물샘이 이토록 왕성하게 활동할 일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노재원은 이상하고 소중한 배우다. 그가 수줍게 뿜어내는 무해한 아우라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영제는 “Daily Dose of Sunshine하루치의 햇빛(멋대로 의역. 배경이 병원이니 ‘복용량’을 살려 번역하는 게 더 맞을 테다.)”. 스크린 위 노재원을 보면, 하루치의 투명함을 보충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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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극장의 영웅으로 내세울 순 없다!
마침내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영화 <영웅>도 "코로나19"로 개봉을 기다린 작품이다. - 재밌는 건. 개봉 경쟁작이 얼마 전에 개봉했던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동명의 뮤지컬을 그대로, 영화로 가져왔기에 기대치도 있겠지만 문제는 "윤제균"이라는 이름이다.
<해운대, 2009>와 <국제시장, 2014>으로 천만 관객들을 넘겼지만, 반응이 "진정한 천만 영화"로 반응이 썩 좋지 않다. - N회차가 없다는 이유로...조선 말기.
일제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을 겪는 대한 제국은 "외교권"을 비롯해 주권들이 차례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독립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존재했고 "안중근" 역시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하는데...1. 음악 방송도 가사는 보여준다.
동명의 뮤지컬을 옮긴 <영웅>이기에 기대치도 있겠지만 우려 또한 존재한다.
혹자는 이를 '가사가 한국어'라는 이유를 언급하겠지만, <라라랜드, 2016>를 보는 "미국인"과 <레미제라블, 2012>을 듣는 "프랑스인"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결국, 해당 장르의 문제는 "한국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건데 영화 <영웅>도 "뮤지컬"보단 다른 문제들이 눈에 보인다.결국, "뮤지컬"을 떠나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것이 "넘버"이다.
<겨울왕국, 2013>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듀엣)'만 살펴보면, 닫혀있던 왕국의 문을 열려는 "안나"의 설렘과 "엘사"의 비밀이 대비적으로 그려져있다. - 그리고, "Let It Go"로 "엘사"의 매력이!!!
그런 점에서 이번 <영웅>에서 인상적인 넘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이런 이유에는 필자가 해당 원작 뮤지컬을 챙겨보지 않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음악의 가사가 보이지 않다는 것이 크다.
이전에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도 가사가 보이지 않았지만, 크게 돋보이지 않는 이유에는 기존 곡들을 활용한 "팝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은 오리지널 뮤지컬로 부르는 노래들 역시 새로이 만들어졌기에 앞서 <겨울왕국, 2013>을 생각하면 이런 세심함이 있어야만 했다!2. 새로운 캐릭터들이 나왔음에도...
앞서 말했듯이 <영웅>은 "도마 안중근"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영화나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그 마무리는 알 거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 살이 붙여나가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려는 것이 가장 초점을 둘 것이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해야 한다.
이는 "설희(김고은 분)"와 "진주(박진주 분)"에게 향하지만, 앞서 말한 가사 문제를 비롯해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영화에서 이들을 살펴보면, "궁녀"에서 "을미사변"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정보국 요원으로 활동하는 "설희"와 "진주"는 "동하"와 로맨스 라인을 형성한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큰 상관은 안 하나 이들의 이야기 톤이 널뛰며 달라지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설희"는 극에서 "안중근"과 이야기를 양분할 만큼 큰 분량을 할애하는 데에도 매력 없이 소비된다. - 그리고, "진주"는 모두가 걱정한 눈물로 희생된다.결국, 이런 부족한 설명력은 극 중. 그에게 감동한 일본 교도관이 대신해 사과하는 실제 역사를 허구로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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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의 <세이레>
본 글은 시사회 참석 후 씨네랩에서 리뷰 작성을 요청받아 작성한 것.
첫인상은 그저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를 떠올리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많다.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신청한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영화에 관련한 정보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포스터를 스크린에 띄워주는 바람에 배우들의 이름과 영화의 분위기만 짐작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상영되는 영화의 정보가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감독의 이름과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여하간 그렇게 만나게 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한국 공포 영화의 발전 가능성과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혹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수백 번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며, 대화를 나눠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 본 사람은 영화를 만들 사람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니가 좋아하는 걸 해.” 영화가 끝난 후 기자 한 명이 감독에게 미신을 믿는지 질문을 던졌다. 감독의 대답이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었다. 감독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관객은 믿음이 갈 턱이 없다. 이 영화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불가사의한 일은 마치 감독이 믿음이 가지 않아서 가려놓은 것처럼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낸 까닭은 호러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공식에 충실하다는 의미는 컨벤션의 의미가 아니다. 호러 영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억압”을 다룬다. 나는 공포 호러 영화를 볼 때 억압의 논리가 정당하지 않으면 그 영화는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여하간 <세이레>는 미신이 소재이지만 영화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은 “죄책감”이다. 미신으로 영화를 끌고 가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영화를 끌고 가기에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보다는 밑으로 파고 내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파고 내려가면서 영화는 종종 다른 길로 새는 듯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썩은 사과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사과가 영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라 사족처럼 느껴진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썩어있는 사과의 모습이 우진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감독의 대답은 더욱 사족 같다. 이 영화에서 사과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이상할 뿐 아니라 장모의 등장, 건강원 등은 어딘가 영화에 어울리지 못하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부분은 발아되지 못한 씨앗의 느낌을 주는데 이것들만 가지고도 하나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단연 으뜸은 죽은 전 여자친구를 쌍둥이로 설정한 것이다. 이 부분은 나름 밀도가 있다. 긴장감도 충분하고 영화를 끌고 가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설정 자체가 중간에 멈춰버린 느낌이다. 사실 쌍둥이 동생이 우진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과 집 안에서 속옷을 바라보는 이상한 쇼트들은 진전되지 않는다. 이것이 후반부에서 둘의 꿈속 정사 장면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무언가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이 정사 장면의 대응 장면은 우진의 마지막 꿈인 것인가. 영화에서 반복되는 악몽의 장면은 굉장히 많다. 마지막 악몽은 그의 아내가 그의 목을 찌르는 것이다. 이것은 죄책감에 대한 징벌적 장면으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동안의 악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의 개념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보았을 때 왜 세영이는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한 걸까. 그러니까 영화는 중요한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로 영화를 이끌고 가지만 거기에 붙어있는 곁가지들은 영화를 멈춰 세우게 만든다.
그러나 몇 가지 디테일들은 인상적이다. 꿈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시시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이유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점이 존재하고 꿈이 현실보다도 더 우진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지속되는 불길함 또한 지적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세영의 부고 문자를 받는 장면은 문자를 받기 전 줌이 먼저 들어간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줌 인 쇼트. 그러니까 카메라는 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카메라와 편집은 이런 방식으로 불길함을 조성한다. <이레이져 헤드>로 향하는 마지막 쇼트까지 우진과 우진의 아이는 접촉을 했을까? 아직 한 번 본 것이어서 정확하지 않겠지만 접촉이 없다. 우진은 분유를 타기만 할 뿐 아이를 안거나 아이에게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 감독은 영리하게 우진이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아내가 막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결국 세영이가 유산했다고 했을 때 안도의 한숨은 현재의 아이에게 이어진다. 우진은 아이가 싫다. 그렇다면 그는 왜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영화를 위태롭게 만든다. 시사회에서 한 기자가 감독에게 왜 와이프의 말을 안 듣고 장례식에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그 부분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세영이와 헤어진 지 1년 된 설정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면 현재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는 무엇인가. 영화는 우진이라는 인물을 위태롭게 만든다. 자연 유산이었어도 마치 그가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노력했던 뉘앙스를 부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진의 아이는 우진의 죄책감이 된다. 이것은 이 영화가 영화를 전개시키면서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공포를 모두 모아서 마지막 쇼트에 담은 것이 된다. 그렇다, 이제 우진은 평생 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2022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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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탈리스트 | 위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건축가의 삶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사촌 '아틸라'(알레산드로 니볼라)의 집에서 지내며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던 찰나, 그는 아틸라의 아내 '오드리'(에마 레어드)의 모함에 빠져 쫓겨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냉혹한 현실을 견뎌내던 라즐로. 그런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야심 찬 건축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
건축가로서 재기할 기회를 잡은 라즐로는 열성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빛의 경계를 넘나들며 브루탈리즘 양식이 돋보이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건물 설계안을 완성한다. 이에 더해 유럽에 있던 아내 '에르제벳'(펄리시티 존스)과 '조피아'(래피 캐시디)도 미국으로 건너올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라즐로는 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라즐로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환상과 허상을 딛고 우뚝 서다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개봉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고,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여우주연상을 포함해 10개 부문 후보로 선정됐으니까. 영화 내적으로는 근래 보기 드문 15분 간의 인터미션을 포함한 3시간 34분 51초짜리 장편 영화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키웠다.
영화 외적인 뉴스도 <브루탈리스트>를 향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제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주연 배우인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펠리시티 존스의 헝가리어 발음을 보정하는 데는 AI 음성 변조 기술을 사용됐고, 건축 도면 생성에도 AI 기술이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AI 기술로 인해 촉발된 미국의 작가 조합 파업과 배우 조합 파업 여파가 남아있는 가운데 논쟁에 불을 붙이는 뉴스였다.
하지만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제목 그 자체였다. 215분의 러닝타임이 '브루탈리즘'이라는 과거의 건축 사조에 어떤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고 쌓을지 의문이었으니까. <브루탈리스트>는 위로, 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한 건축가의 품위 있는 서사시를 통해 호기심을 완벽히 충족시켜 준다.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과 허상의 폐부를 찌르는 고전을 펼쳐 보이기 때문. 단지 약간의 과욕이 옥에 티일 따름이다.
위로, 또 앞으로 나아가기
<브루탈리스트>는 프롤로그, 제1막, 인터미션, 제2막, 에필로그로 나뉘어 있다. 그중 프롤로그와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는 라즐로가 미국에 정착하는 시기를 다룬다. 전반부는 이미지 두 개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이미지다. 뉴욕에 도착한 배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라즐로. 이때 카메라는 그의 시점에서, 아래에서 위로 자유의 여신상을 비춘다. 자연히 여신상은 거꾸로 뒤집혀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오프닝 크레디트를 장식하는 직진의 이미지다. 라즐로는 버스를 타고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향한다. 이때 카메라는 버스 안에서 밖을 비추되, 버스 전면부로 보이는 풍경을 고정적으로 보여준다. 그 덕분에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미지와 움직임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 둘을 합치면 제1막의 서사,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자는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상징한다. 나치의 압제에 시달리다가 자유의 땅에서 새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눌러 담은 셈이다. 이 이미지는 여러 형태로 변형된다. 해리슨의 의뢰로 라즐로는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 설계를 맡는다. 이때 그는 유독 높이에 집착한다. 그에게 하늘에 가까워지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에 다가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처음 본 미국 하늘에서 자유의 여신을 만났듯이.
후자는 이민자의 진취성을 상징한다. 희망이 현실로 이뤄지려면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라즐로가 사촌에게 배신당한 후에도 기어코 건축가로서 재기한 것처럼. 이는 라즐로가 설계한 커뮤니티 센터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 건물은 그의 수용소 생활을 상징하는 작은 방들 안에서 높은 천장을 올려다볼 때 하늘이 드러나는 구조가 핵심이다. 과거를 주춧돌 삼아 현재로 나아가고, 그 위에서 미래를 꿈꾸는 직진과 상승의 이미지로 가득한 셈이다.
인터미션이 만든 고전
이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현실에서 이룰 듯한 제1막의 감흥은 인터미션 직전에 정점에 달한다. 라즐로는 모두에게 잊혔던 자기 커리어와 명성을 되찾고, 자신을 신뢰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고, 유럽에서 떨어져 지내던 아내 에르제벳과 조카딸 조피아도 미국으로 데려올 연줄까지 갖춘다. 삶이 원래 궤도로 돌아와 비상하는 바로 그 순간 인터미션이 주어지기에 그의 감격과 환희는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인터미션 동안 라즐로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는 연출도 여운을 극대화한다. 이 사진은 아내와 조카딸의 이민 작업에 필요한 서류다. 라즐로의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할 가족이라는 마지막 조각인 셈이다. 그래서 인터미션은 감질난다. 거의 현실이 된 그의 아메리칸 드림이 보여줄 제2막이 궁금하니까. 이는 절반만 봐도 <브루탈리스트>를 고전으로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인물의 삶에 푹 빠지는 '시네마'다운 경험은 흔치 않기 때문.
다른 의미로도 인터미션은 인상적이다. 인터미션 덕분에 라즐로의 감정선은 제1막의 끝과 제2막의 시작에서 극명히 대조되며, 아메리칸 드림의 그림자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밝은 미래를 확신한 라즐로. 하지만 아내와 조카딸을 기차역에서 재회한 순간 그의 기대는 부서진다. 하체가 마비된 아내와 실어증에 걸린 조카딸은 그가 상상한 가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 그가 애써 외면하던 현실이 가족의 모습으로 등장한 셈이다.
환상 뒤에 숨은 허상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은 라즐로가 목도한 현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구체화한다. 허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중성이다. 미국인은 이민자를 환영하는 듯하나, 그들이 주류 사회에 동화되지 않으면 차별한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라즐로가 겪는 고초가 방증이다. 일례로 커뮤니티 센터 내에 교회를 짓기로 합의한 후에도 지역 사회는 라즐로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의도를 불신한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횡포다. 라즐로와 해리슨의 관계 변화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라즐로가 해리슨보다 우위에 있다. 라즐로는 해리슨이 애걸한 끝에 그가 제안한 커뮤니티 센터 프로젝트를 수락한다. 하지만 건설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선의로 시작된 후원자와 수혜자 관계는 점진적으로 수직적인 위계 관계로 비틀린다. 그렇게 해리슨은 돈을 목줄 삼아 라즐로를 통제하려 한다.
왜곡된 관계는 다른 영역에서 갈등을 초래한다. 라즐로 가족은 해리슨 가족으로부터 인격적 모욕을 당한다. 라즐로는 만찬 자리에서 해리슨에게 구두닦이 취급을 당하고, '해리'(조 앨윈)는 조피아에게 추근거린다. 가치관도 충돌한다. 철로 사고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라즐로는 예술가로서 프로젝트를 강행하려 한다. 그에 반해 해리슨은 회사 이미지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공사 현장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환상 뒤에 숨은 허상은 건축적으로도 암시된다. 제1막에서는 빛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중점이었다. 커뮤니티 센터에 교회를 설계할 때 라즐로는 햇빛을 어떻게 십자가 모양으로 다듬을지를 고심했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의 빛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에 제2막에서는 건물의 그림자 안에 깃든 추악함이 두드러진다. 공사가 재개된 후, 채석장 동굴 안 터널에서 해리슨은 술과 마약에 취한 라즐로를 강간한다. 그 이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라즐로와 제1막 끝에서 환희에 찬 그를 비교하면 이보다 극적인 추락도 없다.
브루탈리즘이 마련한 구원의 길
아메리칸 드림의 이중성이 밝혀지는 과정을 쫓다 보면 제목 '브루탈리스트'의 의미도 서서히 분명해진다. 사전적으로 브루탈리즘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재건 과정에서 등장한 건축 사조를 뜻한다. 이전의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기능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적은 수의 창문과 기하학적 구조를 외장 없이 노출된 콘크리트 건축물로써 표현하는 양식이다.
극 중 라즐로는 브루탈리즘 양식의 특징을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는 위양을 꾸미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특성을 솔직함의 미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재개된 커뮤니티 센터 건축에 열과 성을 다한다. 자신의 상처와 절망, 구원을 향한 희망, 그의 탈선과 집착까지도 숨기지 않은 채로. 아메리칸 드림의 '잔인함(brutal)'에 '브루탈리스트(brutalist)'답게 맞서는 셈이다.
실제로 제2막의 후반부는 솔직한 고백의 향연이다. 라즐로는 아내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로 숨겨왔던 마약 투여 사실을 고백한다. 에르제벳은 해리슨이 라즐로에게 저지른 만행을 그의 가족과 사업 관계자들 앞에서 폭로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 앞에서도 솔직해진다. 환상과 허상을 모두 거두어 내고 현실만 직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피아가 이민 간 이스라엘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그들의 선택은 종교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특히 라즐로와 해리슨의 대비가 눈길을 끈다. 유대인이라서 배척받은 라즐로는 구원받지만, 해리슨을 비롯해 그를 배척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으니까. 라즐로는 자신의 건축물이 그랬듯이 신 앞에서 떳떳해졌다. 그 솔직함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릴 정도로 높아진 명예로 보답받았다.
반면에 독실한 개신교도라던 해리슨은 죄악을 숨기려다가 파멸했다. 그는 라즐로를 강간했다는 진실이 밝혀지자 커뮤니티 센터 교회의 그림자 속으로 실종된다. 그 순간 햇빛 대신 달빛으로 만들어진 역십자가는 그의 비극적 최후를 암시한다. 이 대조적인 결말에 다다르면 <브루탈리스트>를 호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자라는 보편성과 유대인 건축가라는 특수성의 접점을 이렇게까지 깊고 다층적으로 파고들기는 어려울 테니까.
시대의 반영 또는 과욕
다만 에필로그는 옥에 티다. 이민자 서사와 유대인 서사 사이에서 절묘하게 잡았던 균형을 잃어버리기 때문. 라즐로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열린 본인 회고전에 조피아와 함께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조피아는 라즐로의 건축세계를 설명하는 연설을 한다.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의 디자인은 라즐로가 지냈던 강제수용소를 재현한 것이고, 그의 건축 세계에서는 과정보다는 목적지가 중요했다고.
얼핏 듣기에는 조피아의 연설이 라즐로가 추구한 건축 세계의 핵심만 짚어주는 듯하다. 하지만 화자가 라즐로가 아닌 조피아라는 점을 생각하면 연설의 뉘앙스가 미묘해진다. 극 중 조피아는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게 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강성 시오니스트로 묘사됐기 때문. 그녀의 신념은 라즐로와 에르제벳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의 이민을 강행할 정도로 굳건하다.
이 맥락에서 조피아의 연설은 다양한 종교적, 역사적, 예술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던 <브루탈리스트>의 이야기를 유대인 정체성과 시오니즘 이데올로기 안에 가두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원을 원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시오니즘을 추구하는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특히 영화의 시작과 끝에 라즐로가 아니라 조피아가 등장하기에 시오니즘 메시지는 더욱 강조된다.
물론 주인공을 유대인으로 설정한 이상 시대상을 반영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추구한 시오니즘이 2025년에도 끝나지 않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유발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에필로그는 <브루탈리스트>의 유일한 오점이 아닐까 싶다. 에필로그에서 욕심 한 숟갈만 덜어낼 수 있었다면 보편성까지 갖춘 명작이자 고전으로 기억되리라는 점에 두말할 여지가 없을 테니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유대인 이민자의 과거와 현재가 지어 올린 아메리칸 드림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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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밀수> 개봉 첫날<미션 임파서블> 제치고 1위 탈환! 영화 신작 <호프> 캐스팅과 북미 박스오피스 1,2위의 치열한 대결 '바벤하이머'까지 지금 핫한 영화 소식들 같이 한번 알아볼까요?
<밀수> 개봉 첫날 31만명 <미션 임파서블> 제치고 1위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가 개봉 첫날 31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범죄도시3> 이후 42일 만의 한국영화 1위 탈환으로 여름 극장가를 다시한번 활기를 불러일으킬 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 범죄 활극입니다.
<바비> X <오펜하이머> #바벤하이머 흥행몰이
<바비> <오펜하이머> 영화 각각 1억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어 <바비>X<오펜파이머>를 합친 말 ‘바벤하이머’ 단어가 미국에서 밈이 되고있습니다. <바비>는 한국에서 힘을 못쓰고 있지만 북미를 제외한 나라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오펜하이머>는 한국에서 오는 8월 15일 개봉예정입니다. 북미와 국내 박스오피스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오펜하이머>가 흥행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놀란 감독 한국 예능 ‘알쓸별잡’ 출연
<다크나이트> <인셉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신작 <오펜하이머>와 함께 한국예능 ‘알쓸별잡’에 출연한다고 합니다. 장항준 감독과 배우 김민하, 영화평론가 이동진 등의 멤버들과 출연배우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것은 물론이고 놀란 감독과 1시간 동안 단독 인터뷰도 가진다고 합니다.
나홍진 새 영화 <호프>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마이클패스벤더 캐스팅
영화 <곡성> <추격자>로 이름을 알린 나홍진 감독이 전남 해남에서 신작 <호프>를 촬영한다고 합니다.<호프>는 신비한 존재의 공격에 직면한 항구도시 호프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배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부부 배우의 출연 확정이 이루어졌고 최근 ‘해남’에서 촬영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엘리멘탈> 500만명 돌파 역대 픽사 최고 흥행
27번째 픽사의 장편영화 <엘리멘탈>이 한국에서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픽사 영화의 최고 흥행을 기록했습니다.올해 국내 개봉작 중에선 세번째로 많은 관객을 모았으며 개봉한지 한달이 넘은 시점에도 박스오피스 3위를 달리고 있어 역주행 성공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콘크리트유토피아> 시체스영화제 오르비타 섹션 경쟁 진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었습니다. 스페인 배급사는 “재난영화의 경계를 부수며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 곽객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영화관을 떠나는 관객에게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선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숭늉작가 <유쾌한 이웃>작품의 원작과 엄태화 감독이 연출,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배우가 출연하며 국내에서는 오는 8월 9일날 개봉예정입니다.
케빈스페이시 성폭행 혐의 무죄판결
<하우스 오브 카드> <아메리칸 뷰티>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배우 케빈스페이시가 9개의 성범죄 혐의에 관해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스페이시는 런던 올드 빅 극장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하던 20~30대 남성 4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습니다.형사 법원 배심원단은 12시간 넘는 심의 끝에 무죄 판결을 내리고 스페이시는 판결이 나온 26일 본인 생일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LATEST CINE NEWS’였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과 좋아요 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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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다시 사랑하기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다시 사랑하기
어느 날, 눈을 뜨자 우리가 사랑한 모든 시간이 사라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리쿠'는 8년을 함께한 첫사랑 '미나미'와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다. 너였기에, 빛나던 우리의 세계. 너였기에, 난 사랑을 할 수 있었어... 잃고 싶지 않는 그녀를 다시 되찾기 위해 시간을 넘어 여기,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평행세계 로맨스
- 네이버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소개 -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그녀를 사랑하다
'칸바야시 리쿠'는 대학생 시절 우연히 만난 '미나미'에게 첫눈에 반한다. '리쿠'에게 같은 호감을 느낀 '미나미'는 '리쿠'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하며 행복한 생활을 지속해 나간다. [청룡전기]라는 소설을 작성하며 대학생 때부터 작가를 준비하던 '리쿠'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만 가수를 꿈꾸던 '미나미'는 반대로 가수라는 자신의 꿈을 점점 마음속에만 담아둔다.
베스트셀러로 바빠져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 '리쿠'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미나미'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서 눈을 뜬 '리쿠'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바로 '미나미'가 곁에 없는 세계! 더 충격적인 것은 바뀐 세상 속에서 '미나미'는 인기 있는 유명 가수이고 자신은 출판사의 일반 사원이라는 것! 그리고 '미나미'는 '리쿠'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이후 영화는 사랑을 다시 이루기 위한 '리쿠'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다양한 사랑의 형태 속 피어난 두 사람의 사랑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클리셰를 모두 담고 있는 영화이다. 따라서 사랑을 이루기 위한 남자 주인공의 사투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방해 요소와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을 돕는 사랑의 조력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장애물을 모두 밀어내고 마침내 사랑을 쟁취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다른 로맨스 코미디 영화와 다른 점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쿠'와 '미나미'의 사랑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관객은 총 네 가지의 사랑을 마주한다. 첫 번째로 '미나미'와 '미나미'의 프로듀서 간의 진정함이 없는 사랑이다. '미나미'와 '미나미'의 프로듀서는 연인 관계이지만 진정한 사랑이 빠져있다. 프로듀서는 항상 '미나미'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미나미'와 '리쿠'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다. '미나미'의 할머니는 '리쿠'가 '미나미'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하며 애정하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본다. 할머니의 사랑과 도움 속에서 '리쿠'는 '미나미'에게 다가가고 그녀와의 사랑을 다시 이룬다. 세 번째로는 '리쿠'를 향한 신인 작가의 잘못된 사랑이다. '리쿠'는 신인 작가를 담당하여 그녀의 작품을 보조하고 돕는다. 그러자 그녀는 '리쿠'를 좋아하게 되고 그에게 그녀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리쿠'가 그녀의 마음을 거절하자 사실이 아닌 사건을 언론에 퍼뜨린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상대방에게 그녀의 잘못된 사랑은 결국 '리쿠'를 곤경에 처하게 한다. 마지막은 '리쿠'의 선배인 '케이스케'의 볼 수 없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의 사랑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사랑 속에서 '미나미'와 '리쿠'의 사랑은 더욱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서로를 볼 수 있고 아낄 수 있으며 진실 사랑이 존재하는 둘의 관계는 여러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흐름 속에서 돋보인다.
마무리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다양한 모습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어 주인공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의미 있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또한 '미나미'를 연기한 배우 '미레이'가 직접 부른 OST는 영화 속 장면들을 풍성하게 채우고 둘 사이의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기 전 봄 같은 사랑 이야기를 느끼고 싶다면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를 추천한다.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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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노라] 끝장리뷰 |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 빨간색과 흰색 | 노동자의 2주 해석 | 성노동자에 대한 견해 | 눈(snow) 상징
[아노라]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노동자의 2주
Chapter 2 이반과 이고르, 빨간색과 하얀색
00:00 황금종려상
00:37 귀여운 여인, 대부
01:51 노동자의 2주
03:46 편견, 자본가
06:34 이반과 이고르
08:01 빨간색 하얀색
09:10 별점 및 한 줄 평
09:28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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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가디슈> 2차 예고편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모가디슈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다!
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리는데…
목표는 하나, 모가디슈에서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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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달짝지근해 : 7510> 티저 예고편
올여름에 엄청난 거 온다..! IT'S YOU해진의 첫 코믹로맨스? 이런 달짝지근함은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