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6-06 13:46:54
오징어게임 말고 젊은남자 '이정재'
청춘의 이정재가 담긴 영화들
<오징어 게임> 성기훈의 <젊은 남자>시절?
📺 오겜3 보기 전에,
에디터가 고른 “청춘 이정재” 대표작 5편
담아두고 같이 정주행해요 📂
에디터 픽🎯
<젊은 남자>, <태양은 없다>, <시월애>, <하녀>, <도둑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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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으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 영화 8선
등장인물의 감정과 욕망의 도구로 표현되는 영화속 ‘색’. 여러분들은 어떤 영화의 ‘색’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레스터 번햄은 좌절감으로 가득 찬 잡지사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무기력 속에서 살아간다. 그가 하루 중 최상의 기분을 느끼는 때는 단지 샤워실에서 자위 행위를 할 때뿐이고, 아내와 딸은 그가 한심한 실패자라고 낙인찍어 놓았고 직장의 상사는 그를 해고하기 직전이다. 부동산 소개업자로 일하는 아내 케롤린은 수완가로 자처하고 완벽주의를 외치며 물질만능의 길을 추구한다.
한때는 사랑을 했을 법한 둘의 현재 결혼생활은 단지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형식뿐이고, 외동딸 제인은 전형적으로 반항적인 10대 소녀가 아버지를 향해 내 뱉는 분노를 넘어 아예 사라져 주길 바랄 정도로 미워한다. 제인의 학교를 방문한 레스터는 딸의 되바라진 친구 안젤라를 보는 순간 한 눈에 욕정을 품게 된다. 이것이 레스터로 하여금 자신을 완전하게 변화시키는 동기를 부여한다. 자기를 해고하는 상사를 공갈 협박하여 목돈을 받아 내어 젊은 날 갖고 싶었던 오래된 스포츠카를 구입하고, 안젤라를 염두에 두고 보디빌딩을 위해 차고에서 벤치프레스를 하는가 하면, 고급 마리화나를 피기 시작하고, 새로운 직업으로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고기를 굽는 것이다. 레스터는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진 자신의 소년기를 회복하려는 듯이 자유를 추구하는데.
하지만, 옆집으로 해병대 출신 대령 가족이 이사오면서 일은 복잡해진다. 사무적으로 철저해 보이고 군대식 권위로 동성애자를 경멸하는 대령에게는 기죽어 사는 아내와 말없이 기분 나쁘게 온갖 것을 비디오로 찍는 취미를 갖고 있으며 대마초를 밀매하여 큰돈을 만지는 고교생 아들 리키가 있다. 제인은 곧 조용하고 진지하게 사물을 바라보며 신념이 강해 보이는 리키에게 관심이 깊어지고, 친한 친구였던 안젤라는 자신의 성경험에 대하여 자랑을 들어주던 제인으로 부터 외토리가 되자 레스터와의 색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사이 케롤린은 성공한 부동산 대리인과 바람을 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격장에 나가 신나게 총을 쏘아 대는데...다른 사람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로 일하고 있는 ‘테오도르’는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인 채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어느새 점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에게 아들 케빈이 생기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은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만 간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준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데…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정적만이 가득한 시골길, 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가던 줄리는 예기치 않은 교통 사고로 유명한 작곡가인 남편 파트리스와 다섯 살 난 딸 안나를 잃는다. 한 순간 사랑했던 모든 것을 잃은 줄리는 가족과 함께 했던 공간과 흔적들, 심지어 남편이 쓰다만 곡까지 버리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난다.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세상과도 단절해 버린 채 고독한 나날들을 보내던 줄리는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동료이자 자신을 줄곧 사랑해 왔던 남자 올리비에가 남편의 유작을 완성시키려 한다는 사실과 남편에게 숨겨 둔 애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18살 생일날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를 잃은 소녀 인디아. 그녀 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가 찾아온다. 남편의 죽음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던 인디아의 엄마 이블린은 젊고 다정한 찰리에게 호감을 느끼며 반갑게 맞아주고 인디아는 자신에게 친절한 삼촌 찰리를 경계하면서도 점점 더 그에게 이끌린다. 매력적이지만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찰리의 등장으로 스토커가(家)에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인디아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인디아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충격적인 비밀들이 드러나는데...
유능한 광고 카피라이터인 저스틴은 마이클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고질적인 우울증으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며 결국 결혼을 망치고 만다. 상태가 심해진 저스틴은 언니인 클레어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고 클레어는 그런 저스틴을 극진히 보살핀다. 한편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클레어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과학자의 말을 맹신하는 남편 존으로 인해 내색은 하지 못한다. 날이 갈수록 더 이상 행동을 보이는 저스틴과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클레어. 다행히 과학자들의 말대로 멜랑콜리아는 지구를 지나쳐 다시 멀어지는데….
낡은 풍금과 함께 그녀가 찾아왔다 7명이나 되는 누나들한테 들들 볶이며 자란 배리. 비행 마일리지를 경품으로 준다는 푸딩을 사모으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는 어느 날 아침 거리에 내동댕이 쳐진 낡은 풍금을 발견하곤 사무실에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바로 그날, 뜻하지 않게 신비로운 여인 레나를 만나게 된다. 언제나 꿈꿨던 황홀한 사랑... 당신은 모를 겁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다고, 당신과 키스하고 싶다고 말하는 레나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배리. 하지만 일생에 단 한번 올까 말까한 가슴벅찬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외로움에 지쳐 폰 섹스를 걸었다가 알게 된 악덕업체 일당, 일명 “매트리스 맨”. 배리와 레나가 꿈결 같은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그들을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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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현재 일본 영화감독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Our Apprenticeship>이 프랑스에서 촬영될 예정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줄거리나 출연진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본 소녀가 파리에서 공부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프랑스-일본 합작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이며,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더불어, 본 작품은 2019년 제작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2020년 팬데믹으로 폐기되었던 프로젝트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Our Apprenticeship>는 하마구치 감독의 첫 비일본/비한국 제작 작품으로, 프랑스인 게이 커플, 시리아인, 벨기에인, 한국인, 일본 여성을 중심으로 한 젊은 출연진이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미키 17>,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오는 2월에 열리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될 예정입니다. 최근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여러 차례 개봉일을 변경한 바 있는 해당 작품은 국내 개봉 2월 28일, 북미 개봉 3월 7일로 개봉 일자를 최종 확정 지었습니다.
한편, 주연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이 1월 20일에 내한하여 푸티지 상영회, 무대인사 등 만남의 자리를 가질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클레어 드니 신작 <The Cry of the Gurads>, 이달 촬영 예정
클레어 드니의 신작 <The Cry of the Gurads>가 1월 세네갈에서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주연으로 예정되었던 ‘라일리 키오’가 하차하면서 영화 <하우 투 해브 섹스>로 신예로 떠오른 미아 맥케나-브루스가 새롭게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영화는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살인마 잭의 집>의 맷 딜런, <죽음은 두렵지 않다>로 클레어 드니와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삭 드 번콜도 함께 출연할 예정입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 뉴욕에서 차기작 촬영 예정
자파르 파나히와 더불어, 이란 영화계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아스가르파르하디 감독이 올해 뉴욕에서 차기작을 촬영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경 외에 줄거리나 출연진에 대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 1월 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0년 동안, 이란의 예술가들은 억압과 검열에도 불구하고 매년 창작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특히 영화 제작 부문에서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저 역시 더 이상 같은 조건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없다."라며 현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당분간 이란에서 영화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라 답했습니다.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이전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각각 두 편의 영화를 촬영한 바 있습니다.( 스페인 <누구나 아는 비밀>, 프랑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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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KY 데일리]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을 빼앗는 이는,
제20회 BIKY 기획기사 [유스 단편 5]
<곰을 기억하다>
감독장 & 나이트
국가United Kingdom
제작년도2024
Cast Anna Calder Marshall, Lewis Cornay
시놉시스
영국 시골 마을에서 정체 모를 금속음에 집착하는 소년 피터는 소리를 따라 녹음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리가 담긴 장면을 노인에게 보여주자, 그는 어린 시절 곰이 언덕을 떠돌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감각적인 사운드의 디자인, 교차 편집의 스타일을 통해 세대 간의 감정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영화적인 동시에 서정적으로 연결해 냅니다. 환상과 현실의 교차하는 세대 간의 공감을 일으키는 단편.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소음인가? 언젠가부터 그레이힐에 쇠와 같은 무언가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마을 전역에 메아리처럼 퍼진다. 창문을 매트리스로 막고, 더 큰 노래로 잠재워보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방송사에서 취재하러 올 정도로 사안이 커질 즈음, 유일하게 신이 난 듯한 소년 ‘피터’가 등장한다. 자신이 들고 있는 드론 카메라보다 훨씬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말을 건다. 저 엄청난 영상을 찍었는데, 보여 드릴까요? 그들에게 대답을 듣기는 커녕 무시 받았음에도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눈빛을 보인다. 그런데, 마을의 흥밋거리를 찾아 온 외지인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또한 소년에게 큰 관심이 없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소음’의 원인을 파고들고 해결할 만한 유일한 인물임에도.
마을과 묘하게 동떨어져 있는 인물은 피터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에 남아 있지 말라는 관리인의 말을 듣고도 저항하지 않는 인물이 보인다. 건물 청소부 ‘에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있던 피터는 갑작스레 들리는 라디오 소리에 그가 지내는 곳으로 이끌려 온다. 자신은 남동생과 함께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거라며 반사적으로 해명하는 에바는, 그저 예전에 불에 타 사라진 마을의 유물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공간에 매료되었을 뿐인 피터의 모습을 보고 한층 경계를 푼다. 그리고 피터가 계속 자랑해 마지 않았던 어떠한 영상을 함께 본다. 계속 희미하게 들려오던 쇠 마찰음.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한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가까이서 마주하니 무언가 다르다. ‘곰의 정령’이 돌아왔음을 에바는 바로 알아챈다.
이미 사라진 마을을 찾아 헤매던 곰의 정령은 다함께 춤을 췄던 기억을 더듬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나,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이미 있었던 소리. 그 소리에 집중하고 추억을 기억해 준 건 피터와 에바 뿐이다. 화재가 일어난 이후 마을의 이름도, 위치도, 모든 게 바뀌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에바와 정령 또한 춤을 온전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들을 이루던 근간을 잊는다. 이 땅 위에 분명히 있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곰의 정령은 떠난다. 소리와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양>
감독하디 바바이파르
국가Iran
제작년도2024
Cast Rose Tabatabaei(Gelavij Alam)
시놉시스
테헤란에 사는 10살 소녀 로즈는 축제에서 사용을 양들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이란의 전통에 맞서는 과정이 되고, 전통의 엄격함이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어린 소녀의 선택과 결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양을 구하기 위한, 어쩌면 소녀를 닮아 있는 양을 둘러싼 모험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희망은 어떻게 피어나는 것일까요.
<할아버지>
감독콩스탕스 들로름, 에르완 딘
국가France
제작년도2024
시놉시스
네 명의 손주가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가족 모임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현실과 환상이 자유롭게 교차한다. 시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속 각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여러 생각과 울림을 준다. 보통의 날들인 것 같지만 아주 특별한 할아버지의 손주들의 만남을 다룬 세대를 잇는 상상력이 번뜩이는 작품.<양>과 <할아버지>는 <곰을 기억하다>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몽환적인 이미지를 곁들여 작품의 주제를 표현해낸다. 그리고 인간 이전부터 존재했던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은 특히나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성경 구절 중 하나를 꼬집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성경을 차용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성스러운 행위로 탈바꿈하여 양을 죽인다. 수많은 양을 마당에 데려와놓고 그들의 앞에서 동족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로즈’는 그날부터 고기 반찬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집에 있던 채소를 한껏 챙겨 그 마당에 들어가 양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줄곧 조용하던 로즈는 엄마에게 이웃집에 대해 질문한다. 양을 제물로 바치는 거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차분하게 설명하는 엄마에게 다시 묻는다. 성경이 우리에게 양을 직접 도살하라고 시켰어요? 엄마는 대답하지 못한다. 사사로운 감정과 이해관계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은 무언가 옳지 않다는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고민하던 로즈는 어느새 세 마리의 양 밖에 남지 않은 마당으로 다시금 몰래 들어가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다.
새를 집에 박제해두고 새에 관련된 영상만 보는 ‘할아버지’의 집에 네 명의 손주가 놀러온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과 환상이 교차된다. 어쩌면 극의 첫 시작부터 환상 속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아이들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일까?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하고 TV를 감상하던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밥을 챙겨주려는 순간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죽음을 모르는 건지, 외면하는 건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먹여준다.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할아버지인 척 문자를 보내고, 박제된 새의 깃털을 뽑고 꼬리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깃털이 마구 뽑힌 새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몸에 깃털이 듬성듬성 붙어 있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앞에 나타난다. 아이들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다같이 놀고 TV를 본다. 아이들을 멀쩡히 보내주고 새의 모습을 한 할아버지는 집 난간에서 도약한다. 동시에 나무에 앉아 있던 실제 새도 날아오른다.
새는 할아버지의 손에 박제되어 거짓된 생명을 유지한다. 얼마나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 보이게 만들까, 하는 욕심 뿐이다. 할아버지는 날지 못해 죽었고, 새는 죽은 순간 날지 못하게 되었다. 상반된 죽음이 한데 모이며 환상 속 존재를 만든다. 아이들의 눈에는 두 존재가 겹쳐 보였을까? 죽음을 앞두고 있던 세 마리의 양은 과연 살아 남았을까?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
감독아나스타시야 팔릴레이예바
국가Czech Republic, Slovakia, Ukraine
제작년도2024
시놉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기억의 다큐멘터리. 2022년 2월 키이우에서 이르핀으로 피신하여 열흘 간 고립되었던 상황을 회상한다. 컷아웃 기반의 흑백 연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애니메이션 특유의 간결함을 취하는 동시에 전쟁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다. 전쟁의 상처와 죽음의 무게를 교차하면서, 개인의 기억을 앞세운 빼어난 작품.
<나를 그려줘>
감독코헤이 키야스
국가Japan
제작년도2024
Cast Kobayashi Momoko(Koyori Edogawa), Takizawa Erika(Kiriko Asai)
시놉시스
고등학교 만화가 지망생 코요리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친구 키리코로부터 “너의 만화가 최고였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키리코는 “나를 그려 줘”라고 요청한다. 소녀들의 성장담을 바탕으로 외면과 내면 사이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학원영화의 감성을 건드리면서 진짜 모습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풋풋한 감성의 드라마.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와 <나를 그려줘>는 감정의 정적인 표현과 과장된 표현이 대비되어 함께 감상하면 각 작품의 매력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또한 애니메이션과 그림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부분 또한 집중할 만한 부분이다.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는 감독 자신의 경험담을 독백으로 다루고 있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역사 속에서 종식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있던 전쟁이 발발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적극 활용되어, 자신이 경험한 모든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절제하고 비워두고 관객에게 상상의 틈을 열어주면서 세세한 감정을 완성시킨다. 전쟁에 대한 경험이 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그 감상을 전달할 만큼, 개인의 시간이 죽고 또 죽을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나를 그려줘>는 극영화로서, 주인공 ‘코요리’의 성장담을 코믹하게 담고 있으나 <나는 이르핀에서 죽었다>와 주인공이 지닌 ‘사실’을 그림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생님과 학생들을 캐릭터화하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은근한 따돌림을 만화로 그려 승화시킨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코요리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그만두기를 강요한다. 그럴수록 코요리는 그만둘 수 없다. 그런 주인공 앞에 학교 내 유명인사 ‘키리코’가 나타난다. 모든 이들에게 비난 받던 만화를 전적으로 응원한다며 칭찬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속내는 금방 드러난다. 자신을 그려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완벽해보이는 가면을 벗기고 망가트려 달라고 한다. 코요리는 유일하게 호의적으로 다가와준 인물의 특징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하지만, 가득하다 못해 넘쳐나는 악의로 구성된 그림으로는 키리코를 그려낼 수 없다.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은 선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극에 달하는 순간, 코요리는 키리코를 그린다. 키리코는 코요리의 그림 속 진실된 자신과 마주한다. 한번도 미소를 잃은 적 없던 그가 포효한다. 만화적인 이미지로 주인공의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해내는 장면에서 독특하고 독자적인 연출 방식이 눈에 띈다.
두 작품 모두 각 주인공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성장을 다루고 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결정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그들의 성장담이 탁월하게 그려진다.
상영일정
2025.07.14(월) 13:30 소극장2025.07.16(수) 10:00 사하구청 대강당
BIKY 2025. 07. 08. (화) ~ 2025. 07. 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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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해결을 현실에 맞지 않게 판타지로 풀어낸 영화 <백두산>
더 테러 라이브와 같이 하정우의 원맨쇼가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 <백두산>. 하정우라는 타이틀롤 하나만 가지고 승부수를 던진 작품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병헌이 나와서 이렇게 남자 배우들 중 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2명이나 나오는데 기대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판단을 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영화 백두산 시놉시스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 발생. 갑작스러운 재난에 한반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다. 여기에 더해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추가 폭발이 예측된다.사상 초유의 재난을 막기 위해서 전유경은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 온 지질학 교수 강봉래의 이론에 따른 작전을 계획한다. 전역을 앞둔 특전사 EOD 대위 조인창이 남과 북의 운명이 걸린 비밀 작전에 투입되고,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과 접선에 성공한다.
하지만 준평은 속을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인창을 계속해서 곤란하게 만든다. 한편, 인창이 북한에서 펼쳐지는 작전에 투입된 사실도 모른 채 서울에 홀로 남은 최지영은 재난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사이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 시간을 점점 가까워져 간다.
하정우의 개그는 실없이 웃겼다하정우의 띨~ 하면서도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개그는 영화 <백두산>에서도 존재했다. 특전사 대위로서 팀을 이끌고 있지만 어딘가 미숙한 이 느낌.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또 다 임무를 수행하는 저 능력!
백두산이 한 차례 폭발하고 자신의 어깨에 대한민국의 존망이 달려 있는 상황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고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마 하정우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이러한 위트와 유머가 한 두차례 정도 발현이 됐다면 극의 긴장감을 잠시 환기시켜주고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솔직히 말하면 백두산이라는 폭발 상황이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는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하정우식 유머가 영화 곳곳에 묻어나서 그런지 필지는 계속 실없이 웃기기만 했다.
그런데 북한을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영화를 보면서 정말 의문이 들었던 점은 ‘도대체 북한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다. 백두산이 폭발해싸고 해서 북한 정부가 저렇게 손을 놓고 방관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현재 남한과 북한은 적과 다름이 없는 상태다. 월북과 월남을 시도하려면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하며 조금이라도 영해와 영토, 영공을 군사부대가 넘으면 경고 사격에 이어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관계다.그런데 백두산이 폭발했다고 해서 북한이 남한의 특전사 부대가 핵무기를 훔치러 들어오는데 가만히 있는다? 너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북한 이라는 나라가 남한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고 시설이 열악하다고 하나 국가 유지를 위한 체계와 기구들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런데 백두산 1차 폭발 하나로 무너지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사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야기는 어디로백두산 폭발에 중국, 일본, 미국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아했다. 사실 북한과의 문제에서는 한국과 북한 1대 1로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미국이나 중국이 사이에 껴서 협상이 진행되곤 한다.
그래서 항상 언론에서는 한반도의 이야기지만 언제나 코리아패싱이라며 한반도의 문제에서 주체가 되지 못하는 남한의 상황을 비꼬는 헤드라인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한국의 위치다.그러나 영화 백두산에서는 유아적인 발상을 하고 있어서 실망스러웠다. 북한이 망하면 북한이 만든 핵은 우리의 소유이고 우리가 이 핵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백두산이 터진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과연 특전사를 바로 파견할 만큼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주변 국가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작품이어서 굉장히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백두산 폭발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조금 더 남한과 북한의 관계적인 위치,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눈치싸움을 녹여냈다면 훨씬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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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켄 로치는 끝끝내 희망을 길어냈지만…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United Kingdom, France, Belgium/2023/113
켄 로치 감독/‘아이콘’ 섹션
나눌 게 고통과 슬픔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켄 로치는 〈나의 올드 오크〉가 이러한 질문을 고민하는 영화라 말한다. 영국의 한 폐광촌.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집값은 나날이 떨어진다. 어떤 회사는 방문 한 번 하지 않고 수 채의 빈집을 사들인다.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져가고, 자신들이 정부와 자본에게서 버려지고 발로 차이는 삶을 산다고 여긴다. 그런 마을에 모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그러나 그들은 환대받지 못한다. 그들이 시리아 난민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마을이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다며 분노하고 영국 정부의 허가로 마을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위축된다. 긴장이 감돈다.
밸런타인은 광부의 아들로 오랫동안 마을에서 펍을 운영해왔고, 야라는 따뜻한 마음씨에 똑똑한 머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다. 약자들을 돕는 자선 봉사활동을 해왔던 밸런타인은 친구들이 야라에게 저지른 무례에 유감을 표하며 그녀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적대 관계가 자리 잡은 마을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건 기존 친구를 잃는다 의미다. 밸런타인은 옛 친구와 새 친구 사이에서 점점 난처해진다.
영화는 시리아 난민에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는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 무엇도 제공받지 못하는 마을 주민의 분노·박탈감은 시리아 난민들이 모든 인간이 누려 마땅할 권리를 최소한으로나마 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다만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켄 로치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능숙하고 촘촘한 솜씨로 서로 다른 두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저항, 연대의 계기를 모색한다. 밸런타인과 야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난당하고 파괴되는 모두를 위한 식사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론장은 이미 무너졌다. 그럼 희망은 어디서 길어올 수 있는가? 켄 로치는 두 공동체가 가진 공동의 경험에 카메라를 갖다 댄다. 대처 시대의 광부와 망명을 선택한 난민에게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연대를 해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을의 청소년이나 난민의 자식들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상실한 채 집에만 머물며 우울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문제는 서로의 공통된 경험에 접속하게 해줄 계기다. 영화는 말한다. 거창하거나 혁신적인 답은 없다고. 몸을 부대끼며 타자를 향한 적대적 감정을 성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다고. 켄 로치는 이번에도 ‘연대’의 내용을 단단하게 채워 넣으며 희망을 말한다.
절망의 시대에 이토록 품위 있는 인간애를 여전히 고수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말은 그가 그려내는 희망이 절망보다 더 작아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절망의 순간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결말부의 희망은 다소 극적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희망이 작위적이거나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처럼 쉬이 도래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수치심을 잃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그 정도로 성찰할 수 있는 존재라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과연 이런 모습일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물론 켄 로치는 그가 잘하는 것을 이번에도 잘해냈다. 다만 그의 영화를 보는 나의 감각이 지난 몇 년간 바뀐 듯하다. 나는 더 이상 그가 말하는 희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는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연 절망 속에서도 켄 로치가 끝끝내 길어낸 희망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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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증의 모녀에게 멀티버스가 필요했던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 국세청 조사에 시달리기 시작한 '이블린(양자경)'. 국세청에 제출할 수많은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케 후이 콴)'의 이혼 요구와 연애 중인 여자 친구를 인정해달라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때문에 대혼란에 빠진다. 그때 이블린의 눈앞에서 멀티버스가 열리고, 알파 지구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를 만난 그녀는 수많은 자신이 다른 우주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파 웨이먼드는 이블린에게 그녀가 무한한 다중 우주의 절대 악 조부 투파키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는 수많은 이블린 중 가장 최악의 선택만 한 이블린이기에 모든 멀티버스의 이블린으로부터 능력을 빌려 온다면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또 알파 지구의 이블린이 딸 조이에게 권위적으로 윽박지른 결과 조이가 흑화 해 조부 투파키가 되었으니, 이블린만이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알려준다. 이에 이블린은 멀티버스의 운명과 딸과의 관계를 모두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참신한 소재라면 가만두지 않는 창작자들 덕분에 '멀티버스', 다중 우주 개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익숙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과 그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멀티버스도 마찬가지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설정을 필요로 하는 다중 우주 개념은 마치 복어와도 같다. 당장 지난 10년 간 할리우드의 정점에 있던 MCU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면 이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두 명의 다니엘이 만든 액션 코미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는 다르다. 시작부터 멀티버스 세계관을 숨기지 않으며 러닝타임 내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영화는 이블린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뒤적이는 가운데, 거울에 비친 그녀를 담아내면서 시작된다. 두 명의 이블린을 함께 잡아주던 카메라는 이내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지금 보이는 이블린 말고도 다른 이블린이 있다는 걸 암시하듯이. 거울을 활용한 도입부는 흥미롭게도 <에에원> 속 멀티버스만의 한 가지 특징을 암시한다. 영화에는 다중 우주의 다양한 이블린이 등장하지만, 마치 거울 안에 갇혀 있듯 그들이 직접 만나는 장면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든 것(Everything)"이 있는 멀티버스, 인터넷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MCU를 비롯한 다른 영화의 멀티버스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멀티버스 영화는 우주 간의 경계가 없어져 '내'가 다른 '나'를 만나는 사건을 다룬다. 반면에 <에에원>의 멀티버스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에게 있는 능력과 특징의 일부를 '내' 우주로 끌어올 수 있다. 실제로 이블린은 필요한 순간마다 적재적소의 능력을 다른 우주의 이블린으로부터 빌려온다. 괴력의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에게 쫓기자 쿵후 마스터 이블린의 격투 실력을 끌어온다. 다수의 적과 싸워야 할 때는 피자집 아르바이트생 이블린의 광고판 돌리는 능력을 가져온다. 조부 투파키도 마찬가지다. 불의의 사고로 모든 우주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그녀는 각종 기상천외한 능력을 끌어다 활용한다. 이 아이디어는 <에에원>의 연출과 프로덕션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다. 사실상 세탁소와 국세청 건물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닥터 스트레인지 2> 못지않은 스케일을 뽐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에에원>의 멀티버스는 낯설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필요한 순간 모든 것을 가져다 쓸 수 있는 멀티버스는 어딘가 친숙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멀티버스는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요리 레시피부터 지하철 배차 시각에 이르기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암기하거나 알지 못한다. 대신 필요한 순간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가장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 활용할 줄 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갈등은 단지 멀티버스의 운명을 건 대결이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서로 다른 세대의 갈등이다. 멀티버스를 처음 접한 이블린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에서는 인터넷을 비롯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세계를 처음 접한 기성세대를 엿볼 수 있다. 반면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티버스를 다루는 조부 투파키에게서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서핑하던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다니엘은 <에에원>이 "세대 차이와 인터넷,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잠재된 공포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당장 전화번호를 모두 외우고 다니던 사람들의 눈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삶의 방식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들처럼 숨 쉬고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인해 정보가 넘쳐 나고, 같은 시공간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시대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일상이 아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골라하는 철천지원수 간의 싸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이블린이 동성애자인 조이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이블린이 막아야 하는 빌런 조부 투파키가 알파 지구의 조이인 이유다.
멀티버스 속 "모든 곳(에브리웨어)"의 의미
그렇다고 해서 <에에원>이 어머니, 부모님, 기성세대가 마주한 놀라움과 혼란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멀티버스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조이의 내면을 장악한 공허함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녀는 멀티버스 안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역으로 무의미하다. 이는 SNS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곳에서 접하는 정보에 압도되거나 좌절하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 결과 조부 투파키가 된 조이는 모든 것을 파괴할 블랙홀, 검은 베이글을 만든다. 세상을 휩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부 투파키는 이름만 다른 같은 공간에 사로잡혀 삶의 의미와 이유를 잃어버린 인물을 대변한다.
조부 투파키의 캐릭터성은 <에에원>을 단순히 코미디와 액션으로 점철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진중함까지 맛볼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영화로 만든다. 삶의 의미를 잃은 조부 투파키는 바위만 존재하는 우주에서 비로소 평온해진다. 모든 것들에게 개입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우주의 고요함만이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모든 일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생생히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선택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것이고, 당장 옆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부 투파키처럼 모든 멀티버스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이블린은 무위의 우주에서 딸을 끄집어 내려한다. 자신에게 권한 검은 베이글을 거절하고, 돌이 된 우주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블린과 조부 투파키의 논쟁은 두 다니엘이 <에에원>에 "가족 드라마용, 공상과학용, 철학용 답이 각각 따로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철학적, 종교학적 사유가 함축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모녀는 마치 해탈의 경지에 올라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모녀의 갈등은 깨달은 자가 현실 세계를 무의미하다고 여겨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주며 살 것인지에 대한 논쟁인 것이다. 그래서 이블린이 끝까지 조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모성애이자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는 히어로의 자세이지만, 동시에 종교 철학적 선택이기도 하다. 특히 이블린이 제3의 눈을 개안하는 것, 불교 미술 양식인 탱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메인 포스터, 부처의 깨달은 마음을 상징하는 원불교의 일원상처럼 생긴 베이글의 존재는 오랜 시간 종교를 막론하고 이어진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 번에(All at once)" 모든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의 마무리
이렇게 조부 투파키와 조이의 마음을 읽은 뒤 영화는 이블린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그녀가 온갖 우주를 경험하며 단 번에 깨달은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에블린은 마침내 딸을 이해한다. 그녀는 조이가 레즈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딸과 매번 싸웠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문제일 뿐 핵심은 자신과 딸의 세상이 같지 않으며 모녀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설령 딸의 세상이 두렵고 혼란스럽더라도, 발을 내디뎌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딸의 관점에서 딸의 고충에 공감하되 먼저 살아 본 이만이 알 수 있는 변치 않을 삶의 지혜를 일러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터득한다. 이렇게 먼저 다가가서 위해서 그저 평범할 수 있었던 가족 드라마에는 멀티버스가 필요하다.
이처럼 <에에원>은 두 다니엘의 말마따나 수많은 혼란 속에서 "가족에게 관심 갖는 법을 배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등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는 B급 코미디 요소는 익숙함에 신선함을 더하는 양념일 뿐이다. 영화는 줄곧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엄마가 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마침내 깨달은 후 화해하는 익숙한 흐름을 따라간다. 그래서 온갖 장르적 특징을 다 섞어 놓아 왁자지껄하고 정신없던 멀티버스는 결국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가족 드라마로 귀결된다.
이는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시작만큼이나 인상적인 이유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사정을 알게 된 이블린이지만, 그녀는 멀티버스 속으로 빠지지 않고 눈앞에 있는 세무국 직원 디어드리에게 주목한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으니 한 번만 다시 말해달라면서 디어드리에게 관심을 쏟는다. 서류에 눈이 고정되어 있을 뿐 정작 가족이나 손님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오프닝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 나는 변화다. 멀티버스가 이름만 다른 인터넷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만 <에에원>에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우선 뒷심이 부족하다. 사실 영화는 템포가 상당히 빠르다. 세탁소에서의 오프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쇼트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고, 화면 전환도 빠르다. 그런데 러닝타임도 짧지 않다. 2시간 19분에 달한다. 그 결과 영화는 상대적으로 길게 체감되고, 피로감이 쌓인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블린과 조이의 화해 장면이 생각보다 늘어진다는 인상이 남는 이유다. 확실한 임팩트를 주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의도적으로 끈다. 말 한 마디면 종결될 상황에 굳이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감에 약간의 지루함이 더해지면서 감흥이 덜해진다.
호불호가 나뉠 가능성도 크다. 장르를 하나로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에에원>은 기본적으로 가족 드라마와 코미디 영화의 혼합이다. 그런데 이 코미디가 미국식 B급 감성을 적잖이 풍기는 관계로 취향에 어긋나는 순간 영화는 전반적으로 혼잡하다. 조부 투파키가 남성 성기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장면이나 성인 기구를 활용한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관객을 웃기겠다는 목표 충족에는 적합한 아이디어일지 몰라도, 그 자체로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취향 차이를 제외한다면 <에에원>이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120% 살려낸, <탑건: 매버릭>과는 또 다른 의미로 올해의 '시네마'라는 점에 동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붙잡고 고생 중인 MCU 입장에서는 다소 쓰라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에에원>의 제작자이니, 그들과 재계약하지 못한 걸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블이 보고 배워야 할 멀티버스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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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파서블 영화 후기 / 이선빈, 김영광 케미 / 코믹과 액션 둘 다 잡으려다 아쉬움이 더 커진.. / 마지막 액션씬은 엄지척!!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미션 파서블”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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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 영화 예고편 리뷰
서복 제목 의미 그리고 스토리 정리 및 예측CJ 엔터테인먼트 제공/배급
스튜디오 101, CJ 엔터테인먼트 제작
TPS 컴퍼니 공동제작감독 : 이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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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
그와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과거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직 요원 ‘기헌’은 정보국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받는다.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하지만 임무 수행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되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기헌’과 ‘서복‘은
둘만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실험실 밖 세상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서복‘과 생애 마지막 임무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기헌’은
가는 곳마다 사사건건 부딪친다.한편, 인류의 구원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서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은
점점 거세지고 이들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소개된 서복 역사는 학계의 주장 중 하나일 뿐,
지나친 맹신은 금물입니다
#서복 #서복_리뷰 #서복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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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끼리와 나비> 30초 예고편
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앙투안은 얼떨결에 옛 애인의 딸 엘사를 보호하게 된다.
천사 같은 미소, 심장을 녹이는 애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5살 소녀가 낯설지 않다.
엘사도 앙투안에게 고백한다. "비밀이 있어요, 아저씨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면, 그건 우리가 특별한 사이이기 때문일 거야.
존재조차 몰랐던 우리,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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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경관의 피> 메인 예고편
본격적으로 경관의 피 수혈 시작! 쫀쫀한 긴장감 X 폭발하는 수트핏 (그리고 내 심장❤) [경관의 피]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