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6-13 11:01:59
프랑스 애니메이션, 어디까지 봤니?
프랑스 애니메이션
여러분은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 얼마나 보셨나요?
각 작품마다의 매력이 너무나 달라 더욱 흥미로운 오늘의 큐레이션인데요!
매력적인 작품이 한가득인 가운데,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이 바로 오늘(6/11) 개봉하였으니,
극장으로 확인하러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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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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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있지가 있기 전에 헬렌 레디가 있었다.
호주 출신 불법체류자, 헬렌 레디는 미국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그저 버티는 중이다. 성공을 위해 딸까지 데려온 미국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자신의 매니저가 되어주겠다는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이 남자는 헬렌의 성공을 도와주기는 커녕 본인의 일에만 열중이다. 과연 헬렌은 이 남자의 도움을 받아 과연 데뷔라도 할 수 있을까?
1. 2020년대 한국 여자가수 음악에도 헬렌 레디의 정신은 살아있다.
요새 인기있는 여자 아이돌 음악에는 걸크러쉬 무드가 아주 진득하게 배어있다. 예를 들면, 인기 여자 걸그룹인 있지의 icy의 가사를 살펴보면,
차갑게 보여도 어떡해, 쿨한 나니까, 눈치 볼 마음 없어,
너의 틀에 날 맞출 맘은 없어, 다들 참 말이 많아, 하지만 난 괜찮아, 계속 블라블라,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계속 걸어갈거야
라는 주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도 있고, 같은 가수의 wannabe라는 노래의 가사만 봐도 더 노골적으로 주체성을 외친다.
잔소리는 stop it 알아서 할게,
내가 뭐가 되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평범하게 살든 말든 내버려둘래
어차피 내가 살아, 내 인생 내 거니까.
차라리 이기적일래,
말해버릴지도 몰라, 너나 잘하라고
누가 뭐라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
등의 가사를 보자니, 헬렌 레디의 노래는 지금 이런 노래들과 비교해봐도 그리 공격적이지도 않은데, 70년대의 미국은 얼마나 보수적이었던 걸까. 그 때, 헬렌의 노래를 여자 가수가 노래하기에는 너무 공격적이라는 레코드사 사장의 반대가 왜 나에겐 남자가 듣기에는 기분 나쁜 가사라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던 걸까. 한 여자 가수가 노래를 발표하는 데까지 남자의 비유를 상하게 하는 노래는 발매조차도 힘들었던 그 시대에 소외받던 여자, 그것도 결혼한 여자들을 타겟으로 삼아 그들에게 공감이 되는 가사로 어필이 되었던 헬렌의 존재는 가히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그 때, 헬렌의 노래를 여자가 부르기엔 가사가 공격적이라고 비난했던 레코드 사의 사장이 지금 현재 한국에서 걸크러쉬 열풍 아래 발매되고 있는 여자 가수들의 가사를 보면, 얼마나 뒷목을 잡을 지가 궁금하다. 솔직히 그 모습을 조금은 보고 싶다.
2. 여자가 강한 것은 남자의 거세와는 관련이 없다.
여자가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자신의 강함을 어필하는 것이 왜 그 시대의 남자들의 눈에는 거슬려보였던 걸까. 영화에서 한 기자가 헬렌의 남편을 상대로 헬렌의 성공이 남편의 기를 죽이기라도 한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라는 듯이 몰아붙이는 장면은 상당히 영화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기자의 질문은 마치 헬렌의 성공이 남편을 정신적으로 거세라도 한다는 듯이 물어본 것이었고, 그 질문의 이면에는 헬렌의 성공에 대해서 탐탁치 않아하는, 여자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대단할 것이 없다는 성별적 차별이 70년대에는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대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여자가 조금만 말을 세게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누군가는 이 영화는 여성의 관점에서 '여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요'라고 징징대기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인터넷 댓글창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감정적으로 싸워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누군가가 단지 "여자들은 차별을 당하고 있는 존재이고, 그 차별은 남자 때문이다" 라고 생각해 영화의 메시지가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남자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인 한 인간의 성공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이 여자의 성별을 가진 인간의 성공을 위해 그녀의 남편을 포함해 수많은 남자들이 이 여자에게 협력했는데, 일부 남자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여자의 성공을 논할 때, 남자의 기나 죽일거라는 평가는 이 여자에게 협력한 남자들의 공을 무시한 것이 된다.
그런데 2020년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차별을 당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70년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대 속에서 살아간 여성과 현재 2020년대의 여성이 입장이 같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논리적인 지적이라고 우선 박수 쳐주고 싶다. 그렇다. 그 때의 여성과 지금 시대의 여성은 확실히 삶이 다르긴 하다. 그 때의 여성들은 남자들이 벌어다주는 돈을 가지고 알뜰살뜰히 살림만 잘 하면 되는 시대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니 사회생활하는 남자들로부터 은근히 무시받기도 했지만 지금 여성들은 직업적인 사회생활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최소한 표면상으로라도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우들을 받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말하는 표현에 있어서 기세보여서는 안되는 분위기가 있다. 여자들이 자신의 불만을 정확하고, 명료한 톤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여자들은 기센 여자라고 칭해지며, 시집도 제대로 못갈 거라는 둥의 말을 듣는 경우가 아직 근절되지 않은 것을 보면, 헬렌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여성들의 대우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헬렌이 가사가 조금이라도 센 노래를 내려면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처럼 여전히 강하게 주당하는 여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 영화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직 효과가 있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조금 내용상 답답한 부분도 있고, 루즈해지는 내용도 있지만 노래빨로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인터넷 상에서 싸움이 될만한 관점이 조금은 보여서 이 영화 인터넷에서 호불호가 어마무시하게 갈리겠다 싶었지만 나는 여자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호감이었다. 우선, 그 시대에 이런 노래를 발매했었던 헬렌 레디의 강직함에 박수를 치고 싶었고, 요새 우리나라 음악에서 걸크러쉬라는 개념이 나온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사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개념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원조 걸크러쉬 팝가수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영화는 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자들을 향해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헬렌 레디라는 여성의 성공은 여성, 남성 가를 필요없이 두 성별들이 협력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고, 감독의 의도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미국에서 살림만 하며, 기에 눌려 살고 있던 다른 여자들에게 활력을 선사해준 그 콜라보레이션의 선한 영향력을 모두가 잊지 말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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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주년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개막, 온 가족이 다함께!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가 바로 내일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씨네큐 신도림, 서울생활문화센터 신도림, 문화철도959 등의 장소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시민들을 맞이합니다. 10주년과 동시에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로 어린이들이 주체적으로 말하고, 어린이들이 하는 말들에 모두가 귀 기울이겠다는 뜻을 담은 “어린이를 듣다(All Ears to the Children)”를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죠. 그 어느 때보다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하고 위축되었던 시간을 지내온 만큼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긍정적인 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쟁, 비경쟁 부문 총 157편의 작품들
전 세계 47개국 157편의 풍성한 라인업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와 가족을 포함해 저와 같이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들의 취향도 채워줄 전망입니다. ‘어린이를 듣다’란 주제로 경쟁부문에서는 세계 각국 아이들의 다양한 삶과 생활을 담아 현실적 문제를 보여주는 ‘키즈비전’, 한국 사회라는 맥락 안에서 어린이, 청소년의 상황과 그들의 시선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키즈포커스’, 꿈, 다문화, 폭력, 이주, 사랑, 이혼, 상실과 죽음까지 성장과정에서 다뤄지는 주제와 그로 인해 형성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어린이의 감정과 언어로 선보이는 총 30편의 단편이 모인 ‘키즈 크리에이티브’, 전 세계 어린이, 청소년 감독들이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펼쳐낸 작품들을 만나는 ‘키즈 챌린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경쟁부문은 어린이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감정들을 어른들의 시선으로 담은 ‘넥스트 제너레이션’, 다음 세대에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을 위한 ‘어른들을 부탁해’, 연령별 아이들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장르가 있는 ‘씨네키즈’, 지난 10년간 아랍의 문화를 소개한 아랍영화제 속 상영작들로 구성된 ‘영화제 교류전’과 남녀노소 모두가 어린이가 되어 즐길 수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볼 수 있는 ‘10x100 특별상영’ 섹션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생각과 시선을 알아보는 이벤트
이 밖에도 이번 영화제에는 10주년을 맞이하며 관람객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기획되어 있습니다. 크게 4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영화를 관람한 뒤 관련 주제를 통해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 보며 놀아요’, 문화철도 959 야외테라스에 즐거운 공연과 상영이 함께하는 기찻길 옆 극장으로 꾸며진 ‘함께 놀아요’, 현재 한국의 영상문화산업 내의 문제점들을 논의하며, 앞으로 어린이가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미디어 환경 조성을 위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다루는 ‘문제적 포럼’, 아동 권리와 어린이가 생각하는 인권에 대해 알아보는 ‘행동하는 어린이’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단연 눈길을 끄는 파트는 어린이의 시선이 담긴 해설을 통해 관람 전 내용을 상상해 보는 ‘영화를 보며 놀아요’ 중 ‘키즈 도슨트’로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린이 영화에 대한 키즈 도슨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시각으로 관람하는 신선한 방식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7일 금요일 16시와 18일 토요일 12시에 진행되오니 아이들의 상상력과 새로운 시선에 관심이 가신다면 참여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아카데미 수상작 ‘코다’를 본 후 수어사전을 만들고 있는 이현화 학예연구사님과 함께 수어도 또 다른 언어라는 것을 알아보는 씩씩한 토크,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크로스 아이콘이자 성인 배우로 스펙트럼을 확장해가는 배우 김환희와 함께 나누는 ‘액터스 토크’, 영화 감상과 그 주제에 대한 수업을 통해 폭넓은 이해를 즐길 수 있는 ‘비주얼 리터리시’ 등 알차고 뜻깊은 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개막작 〈울야는 못말려〉
개막작은 독일, 룩셈부르크, 폴란드가 공동제작한 영화 ‘울야는 못말려’로 천문학을 사랑하는 12살 소녀 울야가 같은 반 친구가 운전하는 영구차를 타고 동유럽을 가로질러 소행성 충돌을 보러 가는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202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주목을 받았고, 크리스티앙 국제어린이영화제 최우수 어린이영화상을 비롯해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는군요. 시종일관 흐르는 유쾌한 분위기 속 어린이들의 생각을 억압하고 존중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 모든 세대에게 즐겁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 같습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다양한 시선이 담긴 다양한 영화들이 함께할 1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페스티벌 거듭난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 현재 무료 상영과 여러 프로그램의 경우 매진이 꽤 되어서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 즐거운 행사가 될 듯합니다. 이웃분들도 가까우시거나 관심이 가신다면 참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EIDF와 부천판타스틱 은 온라인으로만 접했는데 처음으로 현장을 가보게 되네요. 모두 행복한 한주 되시고요. 저는 내일 또 영화제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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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나'로 거듭나게 해줄 꿈
** 본 리뷰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필리프 팔라도
출연: 마가렛 퀄리, 시고니 위버, 더글러스 부스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01분
개봉일: 2021.12.09
작가 지망생 조안나, 꿈에 닿기까지
1995년 미국, 작가 지망생 '조안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뉴욕에 입성한다.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한가로운 카페에서 담배를 피며 글을 쓰는 여느 작가들처럼. 꿈을 위해 남자친구와 이별 후 뉴욕에 사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던 조안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한다. 그렇게 그는 작가의 꿈을 잠시 접어둔 채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의 CEO인 '마가렛(시고니 위버)' 밑에서 비서로 일하게 된다.
조안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작가 'J.D. 샐린저'를 담당하며 작가에게 온 팬레터를 관리하게 되는데, 샐린저 작가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기계적인 응대만을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일개 직원인 조안나는 마가렛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만, 작가적 마인드가 활활 타오르는 그의 심리 상태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몇 개월동안 기계적인 업무만 처리하며 작가를 꿈꾸었던 과거의 꿈을 잊어가던 찰나에 조안나는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큰 결심을 내린다.
꿈과 현실 사이의 고민
조안나는 잡지에 자신이 쓴 시를 등재한 경험이 있는 어엿한 작가 지망생이지만, 뉴욕에 온 후 쉽사리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국 글쓰기라는 자신의 열망을 잠시 접어두고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하여 자신의 롤모델의 뒷켠에서 남들의 원고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러한 조안나의 행보는 순수하게 꿈을 좆던 어린 대학생이 현실이라는 벽 앞에 부딪혀 돈을 벌기 위한 다른 직업을 택하는 모습과 굉장히 닮았다. 이러한 청춘들의 삶은 1995년이나 2021년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2021년인 지금 취업난이 더욱 심화되었다.)
조안나는 매일 같이 에이전시에 출근하며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자꾸만 글에 대한 열망이 샘솟는다. 마가렛의 지시를 어긴 채 팬레터에 답장을 보낸 것 또한 상상력과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는 조안나의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다. 하지만 작가를 조수로 쓰지 않는다는 마가렛의 신조 때문에 조안나는 이러한 성향을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조안나는 작가가 아닌 작가 에이전시 직원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다. 몇 개월동안 근무하며 마가렛의 신임을 얻었고, 단독으로 서적 판매에도 성공하는 등 직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나갔다. 그에게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길이 펼쳐진 셈이다. 하지만 조안나는 고민 끝에 에이전시를 박차고 나와 다시 글을 쓰고자 한다. 결국 현실과 꿈 사이의 기로에서 꿈을 택한 것이다. 누군가는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모험을 나선 조안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청춘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마음 속에 품고만 있던 꿈에 대한 열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다.
디지털 VS 아날로그, 책의 미래는?
1990년대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아날로그 문화와 새롭게 나타나는 디지털 문화가 혼재된 시기였다. 극중 작가 에이전시의 CEO인 '마가렛'은 아날로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컴퓨터를 비롯한 최신 기기들을 흉물 보듯 대하고 타자기를 활용한 작업을 고집한다. 그는 디지털 기술로 인해 시행된 전자책 산업을 비판하며 이같은 기술의 발전이 출판업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 한탄하기까지 한다.
반면, X세대인 조안나는 타자기보다는 데스크탑으로 원고를 타이핑하는 것을 더 편리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분명 문명을 대하는 태도가 마가렛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젊은 사회초년생을 대표하는 조안나가 과연 훗날 종이책을 버리고 전자책만을 사용하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세대에 관계없이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감성 하나만은 모두가 동일하다. 종이책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따뜻한 정서와 마음을 향한 울림이 있기 때문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전히 종이책을 꾸준히 소비한다. 따라서 마가렛의 입장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완고한 고집은 문학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충분히 이해는 간다.
'아무개'에서 '나'로 불려지기까지
조안나는 '샐린저' 작가로부터 첫 전화를 받았을 때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소개하지만 청력이 좋지 않았던 작가는 그를 '수잔나'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주인공도 이러한 작가의 부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작가 본인에게 일개 직원의 이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안나의 자리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인원으로 대체된다 할지라도 회사나 작가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고, 누구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조안나는 샐린저의 업무를 관리하며 그와 계속 통화를 하게 되는데, 그에게만큼은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샐린저 또한 조안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계속해서 글을 쓰라는 말을 강조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퇴사를 앞둔 조안나는 베일에 쌓여 있던 샐린저를 드디어 마주하는데, 그는 처음으로 '수잔나'라는 별칭 대신 조안나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준다. 이는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 비춰진다. 자신의 꿈을 잊고 무기력하게 회사에 소속되어 '아무개'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꿈을 향해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보자는 감독의 응원이 아닐지.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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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청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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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마지막 주 개봉영화 소개 with 씨네랩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화요일!
한 주의 개봉작 중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을
씨네랩이 직접 큐레이션하여 소개드리는 콘텐츠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씨네랩은 영화의 다양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또한 무부분별하고 방대한 영화 정보를 자체 검증 시스템을 통하여 선별하여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큐레이션 매거진입니다.
씨네랩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Film Library' 서비스는
현재 상영영화와 개봉 예정 영화의 정보 제공 아카이브인데요.
영화의 상영일과 줄거리는 물론 검증된 시스템을 통하여 선별된
씨네랩 크리에이터들의 영화 평점과 코멘트 또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OTT의 모~~든 콘텐츠 정보를 아주 쉽고 편리하게 제공받으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그럼 씨네랩과 함께하는 12월 마지막 주의 개봉 신작을 소개하겠습니다!
1. 해피 뉴 이어(A YEAR-END MEDLEY)
멜로/로맨스 | 한국 | 138분
감독 : 곽재용 | 출연 :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윤아, 원진아, 김영광, 이광수, 서강준, 이진욱 등
개봉 : 2021년 12월 29일 개봉/ 티빙 동시 공개
배급사 : CJ ENM, 티빙
5년째 남사친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호텔리어 ‘소진’. 그런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여자친구 ‘영주’ 와의 초고속 깜짝 결혼을 발표하는 ‘승효’.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짝수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호텔 대표 ‘용진’.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하우스키퍼 ‘이영’. 공무원 시험 낙방 5 년 차,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호텔 투숙객 ‘재용’ 에게 걸려온 뜻밖의 모닝콜 오랜 무명 끝 전성기를 맞이하고 함께하는 마지막 콘서트를 앞둔 가수 ‘이강’ 과 매니저 ‘상훈’ 40년 만에 우연히 첫사랑 ‘캐서린’을 다시 만난 호텔 간판 도어맨 ‘상규’ 매주 토요일 호텔 라운지에서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맞선남 ‘진호’까지..
때론 아찔하고, 때론 애틋하고, 때론 눈물나게 행복한 올해의 마지막, 호텔 엠로스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관전포인트* : 지금의 배우 전지현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유명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의 차기작입니다. 곽재용 감독은 영화 <클래식>의 연출자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 역시 지금도 많은 영화팬들에게 인생 멜로작품으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가장 기대되는 점은 아무래도 배우, 출연진일 것입니다. 14인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인만큼 개성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저마다의 사연을 그려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윤아, 이광수 등 국내외에서 사랑을 한껏 받고있는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훈훈할 것 같습니다. 연말과 어울리는 영화인만큼 시기적절한 영화이기도 하네요! :)2. 램 (Lamb)
스릴러 | 아이슬란드, 스웨덴, 폴란드 | 106분
감독 : 발디마르 요한손 | 출연 : 누미 라파스, 할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
개봉 : 2021년 12월 29일 개봉
배급사 : 오드 AUD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크리스마스 날 밤 이후 양 목장에서 태어난 신비한 아이를 선물 받은 '마리아' 부부에게 닥친 예측할 수 없는 A24 제작의 호러"
*관전포인트* : 제74회 칸국제영화제 오리지널리티상 수상(주목할만한 시선), 제54회 시체스영화제 3관왕, 제94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노미네이트된 작품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유전>을 제작한 호러 명가 제작사 A24의 제작작품이라는 점이 영화관객들의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게 아닐까요?
또한 포스터나 예고편에 줄곧 등장하는 '어린 양'의 비주얼은 영화의 독특한 소재처럼 느껴지며, 궁금증을 품게합니다.항상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서스펜스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메이드in 'A24 호러작품'인만큼 당연하게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이네요.
마지막으로 주인공 '마리아'역을 맡은 누미 라파스 배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입니다.<밀레니얼>, <월요일이 사라졌다> 등 에서 항상 눈에 띄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인만큼 영화 <램>에서 역시 얼마만큼의 파급력있는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3. 노웨어 스페셜 (Nowhere Special)
드라마 | 영국, 이탈리아 | 96분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 출연 :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개봉 : 2021년 12월 29일 개봉
배급사 : 그린나래미디어(주)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아직 어리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내 아이를 키워줄, 새 부모를 찾습니다”
*관전포인트* : 제36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
그리고 전작 <스틸 라이프>로 베니스국제영화제 4관왕에 오른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차기작입니다.우연히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신문을 보고 '불치병에 걸린 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아들의 새 가족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알게되고 그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프로젝트라고 전해집니다.
또한 차기 제임스 본드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배우 '제임스 노턴'의 감정연기, 그리고 아역 배우와의 연기 앙상블 또한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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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이 추천하는 12월 마지막 주 개봉신작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께서는 12월 마지막 주 개봉예정인 작품 중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 있을까요?
씨네랩의 본 콘텐츠가 여러분들이 좋은 영화, 마음에 드는 영화를 pick하는데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오늘 하루도 안전하게 마무리 잘하시고,
다음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돌아오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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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카프카의 질문에 지독하게 응수하는 아리 애스터
불안한 머릿속
이 영화의 주인공인 보 와서만은 미국 어딘가에 사는 평범한 백인 아저씨다. 심리 상담가와 상담 중인 보. 상담가는 보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솔직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길 바란 적 있었나요?” 아연실색하는 보. 어머니가 무섭다고는 느꼈지만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약에 대해 처방받는 보. 의사는 보에게 ‘반드시 약을 물과 함께 먹어라’라고 당부한다. 할 일이 있던 보. 잠깐 외출하는 길에 여려 광경을 목도한다. 누구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 아예 길바닥에 시체까지 있다. 더러운 길거리. 어수선한 분위기를 무시하고 집에 돌아가려 하는 보. 문신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남자가 갑자기 뛰어온다. 당황하는 보. 집 엘리베이터까지 미친 듯이 달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보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이 남자의 일상은 크게 뒤틀려있다.
어떤 일상을 살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할 일은 해야 한다. 내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잠을 청하는 보. 아무도 없는 한적한 집 덩그러니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누가 보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온다. 누군가는 보의 문 틈에 쪽지를 쓱 던졌다. “선생님! 우리 다 같이 잠들어야 하잖아요. 음악 소리 조금만 자제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이상했다. 보는 원래 조용히 잠을 자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점점 자주 날아오는 쪽지. 음악의 m자도 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경고는 더 심각해진다. 갑자기 음악소리가 커진다. 보가 늦잠을 잤다. 비행기 타야 하는데 시간을 놓쳐버렸다. 갑자기 꼬인 보의 귀로. 설상가상으로 악재가 겹치기 시작한다. 이런 보에게 경비 아저씨가 한마디 던진다. “넌 x 됐어. xx아.” 놀랍게도 말이 정확히 이뤄진다. 보의 귀향길은 너무 어려웠다. 그에게 가늠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감독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이 남자의 데뷔작은 무려 <유전>이다. 그리고 그 차기작은 <미드소마>다. 파멸적인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는 아리 애스터는 일반적인 호러 영화 문법을 온몸을 바쳐서 거부하던 사람이었다. 첫 번째. 데뷔작 <유전>이다. <유전>에서 기억에 남았던 점은 화면을 담는 방식이었다. 영화에서 절대자가 등장한다. 이 절대자가 짜놓은 판에 주인공 가족이 휘말리는 게 영화의 핵심이 되는 만큼 어떻게 신의 존재를 묘사할지가 작품의 핵심이었다. 이를 카메라 구도와 건물 구조로 묘사한다. 악마가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촬영 방식, 디오라마로 표상되는 시각적인 무력감 묘사 같은 것들이 거부할 수 없는 저주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했다. 다른 영화 <미드소마>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만 봐도 다른 호러 장르물과는 다르다. 영화의 초반부-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입장을 바꿨는지가 그게 대한 근거다. 트라우마가 있던 주인공.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공감하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미드소마>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부분이었다. 이 과정 중에 주인공에게 큰 상처를 남긴 그녀의 가족들, 가짜로 공감했던 남자친구를 뒤로 하고 같이 울어주는 대안 가족의 역할을 보여주던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퀀스로 뽑을 만하다. 보통 트라우마를 주던 쪽이었던 호러영화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플롯을 끌고 갔던 것이다. 물론 공포 분위기를 주던 방식 역시 신선했다. <살인 소설>이라는 영화가 있다. 에단 호크가 주인공이었다. 이 영화는 ‘점프 스케어’와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연출법으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것 같은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미드소마>는 이 반대였다. 아예 대놓고 장면으로도 나온다. ‘설마! 헉!’같이 ‘실제로 이럴지도 모르겠다’라는 부분을 진짜로 구현하며 끔찍한 비주얼 호러를 묘사했다.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도 색다른 연출방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영화가 전작 두 편에 비해 호러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을 띄고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기존의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호러영화의 색을 띠고 있긴 하지만 장르적으로 보면 모험/판타지물에 가깝다. 하지만 기존 영화관을 계승한 지점도 있다. <유전>에서 딸을 떠나보내고 연대하는 두 인물, <미드소마>의 엔딩처럼 연대와 공감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으로 여러 번 삽입된다. 또 영화에서 호러 분위기를 나타내던 방식 중 하나는 분위기다.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끔찍하고 두려운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의 특성에 기반해서 만들었다는 부분은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전과 다른 화법이지만 ‘역시 아리 애스터’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는 몇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구체적으로 ‘몇 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이 챕터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어떻게 전개하는지를 유념하고 본다면 이는 아리 애스터의 상상력이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반복과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은 영화의 선명한 개성으로 작동하며 엔딩신이 들어갈 이유가 된다.
카프카의 농담
1880년대 후반, 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고 감성적이었다. 하지만 엄한 아버지는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폭언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아버지의 하대는 카프카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이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는 카프카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변신>이 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다. 외로운 그레고르.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이상하게 생긴 벌레로 변한 것이다. 벌레가 됐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될 리가 없다. 그레고르는 그렇게 쓸쓸하게 혼자 죽어간다. 정작 위기에 직면할 때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실존주의라는 테마는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서 핵심으로 작동했다. <변신>만 봐도 그렇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생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에 대한 문제다. 가족들에게 헌신했지만 다시 버림받은 그레고르. 인생 내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레고르를 어떻게 다른 구성원들이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사람이 사는 데 있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분명 생존을 책임졌다면 가족들이 그레고르의 실존을 긍정해도 되는 것 아닐까? 영화는 이 생존에 대한 딜레마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단순히 이야기 구조만을 갖고 온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의 문제, 중반부부터 제시되는 몇 사건들, ‘벌레가 되었다’ 같은 극단적인 비유 같은 것들이 카프카의 색이 영화 안에 들어갔다는 느낌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1부 마지막에 벌어지는 일들은 불안장애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지만 세상과 나 사이, 그리고 가족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소재가 들어가 있다. 과연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세상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받는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가 사실 대중적으로 엄청나게 호평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의 전작 <유전> <미드소마>가 대중적인 호러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야기 구조가 직선 형태라서 이해하기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솔직히 쉽지 않다. 분위기기에서 한발 더 들어가 거리 두기도 가까이 붙이며 반복함으로써 인간을 서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플롯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느낄 수 있다면 영화를 정말 잘 보고 있다고 쓰고 싶다. 감독의 이상한 유머감각이 잘 들어간 지점이다.
탄생의 이미지
영화에서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가 후반부에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고 극에서 반복되는 한 키워드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는 사실 영화의 핵심을 그대로 관통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물이다. 작품의 첫 장면이 보가 어딘가에 있다가 나오는데 그것이 물과 관련이 있다. 이 물은 1부에서 단수와 홍수로 보여주다 2,3,4부로 넘어가면 각기 템포를 변형하며 각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극초반부야 당연히 탄생의 이미지라는 걸 말할 수 있지만 이후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당연히 강력한 스포일러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제일 첫 장면이 탄생과 관련한 일이고, 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아리 애스터가 인간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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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을 바탕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인생의 오만 군데를 다 찌른다. 이 시선이 기괴하고 이상해서 관객 입장에선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의 정서가 어땠을까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저런 기분을 느꼈는지 생각해 보면 영화를 보다 더 넓게 이해할 수 있다. 아리 애스터의 변태 같은 디테일이 두드러진 부분이었다.
불사조 폼 미쳤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호아킨 피닉스다. 사실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보고 극장에 들어갈 사람이면 <조커>가 어떤 영화인지 알고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상이란 상을 싹 휩쓸었던 호아킨 피닉스. 이 영화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조커’는 참고 있다 폭발하는 연기라면 반대로 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내내 분출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핵심은 불안장애다. 이 불안장애의 특징이 뭘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으로 틈입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이러려면 자그마한 것에도 사람이 불안해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특히 1부에서 질주하는 몇 장면, 극후반부 시퀀스 전부는 이 사람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역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다시 체감하게 한다. 이 사람의 최근작은 <컴온, 컴온>이었다. 이 영화에서 임팩트 쾅 주고 내내 배경이 됐던 연기의 반대 측면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웠다.
주연의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훌륭하다. 우선 1부에서 보의 동선이 짜여 있는 방식을 본다면 인물 간의 동선을 세팅한 점이 꼼꼼하게 느껴진다. 이 동선을 촬영하는 구도도 어쩔 땐 시점 쇼트가 들어가고 인물의 표정이 제시되는지가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공간적 배경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집부터 시작해서 가지각색으로 바뀌고 이 변한 공간이 영화에서 변곡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영화가 어떻게 차이점을 두고 묘사했는지를 본다면 영화가 인간사의 어느 부분을 꼬집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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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수없이 추락하는 사람들, 붙잡지 않는 사람들?
숨 막히는 일상,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 현재. 그보다 더 막막한 것이 또 있을까. 끝없는 굴레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늪에서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라우라 카헤이라 감독의 데뷔작 <추락에 대하여>는 이민 노동자의 현실과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위태위태하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는 작품으로 '독립적이고 도발적인, 새로운 시선을 드러내는 영화'에 걸맞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정보
라우라 카헤이라
Laura CARREIRA
United Kingdom, Portugal
2024
104min
DCP
Color
Fiction
12세 이상 관람가
Korean Premiere시놉시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물류창고에서 피커로 일하는 포르투갈 이민자 오로라의 이야기. 광대한 유통 센터와 고립된 자신의 침실 사이 굴레에 갇힌 오로라는 소외감과 외로움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기회든 잡으려 한다.
영화리뷰
오로라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물류창고에서 피커로 일한다. *피커(picker)란 고객의 주문에 따라 창고에서 상품을 찾아내는 작업자를 뜻한다. 우수사원으로 뽑힐 정도로 성실하지만 늘 빠듯한 생활의 연속이다. 집세, 생활비, 유류비를 다 내고 나면 남은 돈이 없어 잼에 빵을 발라 먹거나 그마저도 없어 과자를 '훔쳐' 먹을 때도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그녀의 유일한 위안이 되는 건 휴대폰 화면 속의 수많은 동영상이다.
위태위태하게 일상을 유지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애써보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끌고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물러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이 순간, 오로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오로라는 수많은 노동자 중 한 명이다. 실제로도 많은 청년들이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끊는 일이 다수 발생했고 며칠 전, 함께 대화를 나누던 사람의 부고 소식을 듣기도 했다. 그 후, 오로라는 고객이 주문한 노끈을 발견하여 상품 바코드를 조작해 노끈 대신 베이킹 책을 발송하기도 한다. 절대적인 '을'로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락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녀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조차도 지켜낼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고질적인 사회적인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영화 속의 '오로라'는 끝없이 추락하지만 올라갈 길이 없어 막막한 모습이다. 보는 이 마저도 답답할 만큼 희망도, 해결책도 마련되지 않는다.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 노동자의 어려움과 더불어 현대인의 단절의 모습을 깊이 있게 담아냈지만, 구체화되지 않는 비극에 조금은 지루해졌다. 어떠한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할지, 또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지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노동자의 하루, 그리고 무기력함과 고립으로 물들어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다루어내고 있어 인상 깊었다. 돈도 없고, 무기력한 현대인. 그 단어는 참으로 익숙하다. 벼랑 끝에 내몰려 '추락'의 선택에 내몰린 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현실적이어서 씁쓸해진다. 벌면 벌수록 마이너스가 되어가는 통장,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구조적인 가난은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정서적 고립. 소통에서 고립되며 스마트폰 속의 쇼츠 그리고 릴스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반복되는 노동과 벗어날 수 없는 가난, 고립과 무기력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벼랑 끝에 서있다. 그래서 더는 누군가가 추락의 선택에 내몰리지 않도록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 하며,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영스케줄
2025.05.0110:00
CGV 전주고사 2관
2025.05.02
20:0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2025.05.03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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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에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다녀왔습니다 l 해물은 싫지만 이 짬뽕은 좋아요ㅣ선우정아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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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랜만에 제 이야기겸... 영화제 이야기겸....
무엇보다... 현생에 지친 모두를 위해 제가 힐링 받았던 순간들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영상을 보시고 다들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느끼셨으면 좋겠군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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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국이 싫어서> 메인 예고편
‘내 행복도 어딘가에 있을 거야’✨ 행복을 찾는 당신이란 청춘에게! [한국이 싫어서]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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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 <악귀> 티저 예고편
문밖은 다른 세상, 문을 열면 그곳엔 악귀가 있다 김은희 작가 신작! 김태리X오정세 믿보배들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