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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025-06-20 12:39:24

6월의 햇살과 빗줄기는 무지개를 띄우고

엔리코 카사로사 <루카> 2021

6월의 여름이 찾아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픽사의 애니메이션 <루카>. 이탈리아의 쨍한 여름 풍경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무엇이든 도전해 볼 용기를 주는 이 영화는 6월의 맛을 지녔다.

 

 

 

바닷속에 살고 있는 어린 바다 괴물 루카는 육지로 나가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는 우연히 육지와 바다를 왕래하는 친구 알베르토를 만나고, 함께 베스파를 얻어 전 세계를 여행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지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다. 걷는 법도, 바다 괴물을 혐오하는 인간들도, 언제 물에 젖어 정체가 드러날 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순간들까지도. 그러나 그들은 베스파라는 목표를 위해, 인간 친구 줄리아와 함께 포르토로소 컵에 출전한다.

 

 

 

<루카>는 당연하게도, 소수자들을 위한 이야기다. 바다 괴물을 혐오하는 인간들에게 정체를 숨기려 애쓰는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습은 분명 퀴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처음 계획과 달리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루카에게 서운함을 느낀 알베르토는 바다에 뛰어들어 줄리아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루카는 그런 알베르토를 보고는 자신이 바다 괴물이라는 것을 숨기려 인간의 혐오를 흉내 내고 만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를 버린 것은 루카가 알베르토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정체를 들키고 받을 위협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온갖 혐오의 시선과, 실재하는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가리고 숨겨야 하는 루카와 알베르토를 보면, 이 작품이 성소수자들의 영화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루카는 혼자 포르토로소 컵에 참가한다. 잠수복으로 무장하여 수영 코스를 통과하고, 최선을 다해 파스타를 먹어 넘기지만, 에르콜레 패거리의 방해보다 더 큰 시련을 맞닥뜨린다. 마지막 코스인 자전거 경주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 이때, 알베르토가 우산을 들고 도우러 오지만, 에르콜레로 인해 우산이 날아가 그의 정체가 모두에게 드러난다. 하지만 루카는 전과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용기를 내 자신을 드러내고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 결승선에서 줄리아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바다 괴물임이 들통난 루카와 알베르토를 보호하려 하고, 그 모습을 본 그녀의 아버지도 둘을 죽여야 할 혐오의 대상이 아닌 그냥 딸의 바다 괴물 친구들로, 루카, 알베르토 자체로 대한다. 이윽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작살을 내려놓고 현상수배지를 찢어버린다. 연대가 빛나는 순간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루카는 줄리아와 함께 학교로 간다. 기차표를 선물한 알베르토의 진심 어린 응원과, 가족들의 다정한 믿음이 있지만, 루카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마을 밖 사람들은 더 큰 혐오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지 모른다. 이후 학교에서 루카의 여정을 그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뒤늦게 바다 괴물임을 드러낸 마을 할머니들처럼, 우리 곁에 있는 누가 바다 괴물일지 모른다. 그러니 모든 육지 괴물들이 그들과 함께 비를 맞고, 무지개를 맞이할 수 있기를. 이 영화와 함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연대할 수 있기를, 매년 다가올 6월을 위해 간절히 바란다.

 

 

 

세상 모든 언더독들에게 사랑과 응원을 보내며, 또다시 두려움이 기어 오른다면 외칠 것. 닥쳐, 브루노!

 

 

작성자 .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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