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6-22 15:16:36
남을까 넘을까
영화 [퀴어] 리뷰
이 글은 영화 [퀴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퍼런스로 언급할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분위기도 스포일러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 갈 땐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 레퍼런스로, 그것도 훌륭하다 못해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만큼의 칭송을 받는 위치에 있다면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한 칭찬이 더 있을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영화 [퀴어]를 보았을 때, 혹은 보기 위해 마음을 먹은 관객이라면 당연히 감독의 전작인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름과 동시에 얼마나 그 이야기와 다를지. 그러면서도 감독이 잘하는 것을 얼마나 구연해 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면서 걱정이 될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전작만큼이나 궤도를 안정적으로 그리며 날아간 다는 것이다.
티모시 샬라메의 오디션 탈락 설움을 한 번에 날릴 작품이자(참고 1) 감독의 레퍼런스인 작품이 한 여름, 그것도 해가 가장 기세를 떨치는 바람에 그림자 마저 기를 펴지 못하는 시간대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번 영화는 바람마저 슬슬 바뀌기 시작하는 8월의 어느 날, 어스름해지는 것으로 슬슬 하루의 마감을 알리려는 듯한 그 시간. 하지만 아직은 저물어 가는 그 하루에 대한 강렬함과 미련이 남아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듯한 오후 3시 이후의 이야기를 꺼낸다. 인생에 있어 007 요원 은퇴 후 모은 연금으로(아님) 여생을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 있는 리(다니엘 크레이그)의 인생의 시계와 맞아 떨어 지기에. 그가 기를 쓰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찾아다니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쓸쓸해 보이다 못해 비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한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도 이 작품 또한 감독의 손길이 잘 닿았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멕시코를 비롯해 정글에 이르기까지 마을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지의 아름다움과 낯섦을 담고 있어서 눈에 담기는 많은 장면들에서 만족감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충분하다. 특히 누가 봐도 타지인 출신인 리가 마치 환영 인사처럼 팔랑이며 떨어지는 보랏빛 꽃잎들 사이에 앉아있는 장면에서. 그가 이 도시에서 겪어야 할 시련이 얼마나 아프기에. 벌써부터 이런 아름다움으로 눈을 가리려 애쓸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레퍼런스 영화와 다르면서도 닮았기에 어느 정도의 만족감이 쌓이는 영화로 남았을 수도 있지만. 감독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궤도로서의 비행을 시도한다. 리와 유진(드류 스타키)이 큰 칼 하나와 서로에 의지해 정글의 수풀을 크게 한 팔씩 베어가 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그러나 아주 천천히 예전과는 다른 경로로 가는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편에 조용히 쌓이는 가슴 찌릿한 우려가 있다면 이 새로운 시도가 과연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통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어느 정도는 조심스러웠지만, [퀴어]는 지는 노을만큼이나 훨씬 더 노골적이고, 농염하다. 리는 중독이라는 것 자체에 중독된 사람처럼, 뱉어내는 단어 하나마저도 매우 아슬아슬하기에 그의 걸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태롭다. 그러나 대척점에 서 있는 유진은 그를 밀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의뭉스럽고 쌀쌀맞으며 열어 보여주기는커녕 있는 것마저 숨기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그의 태도에 리는 점점 더 불타오르며 시들어가지만, 그의 시선과 관심을 한 번에 받는 유진은 그 관심의 크기와 깊이에 관계없이, 그의 시선을 고스란히 무시한다.
이 두 사람이 가진 태도의 다름이, 불균형으로 가득한 이 관계가 아프다 못해 서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 그 감정은 연인인(?) 유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텔레파시를 도와준다는 약초(?)를 찾는 여정까지 마지않는 리의 어리석음이 펼쳐지는 3장에서 극대화된다. 사실 3장에서의 몇몇 장면들은 몽환적이라 하기엔 조금은 난해하고. 낯설다고 하기엔 가슴 아프며 받아들이기엔 거부감이 꽤 큰 부분이 존재한다. 설명하지 않았다거나 함축했다는 표현을 쓴다 해도 그다지 적절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방법이 만약 감독이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강조하는 듯한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대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어느 정도의 이해로 인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다. 분열하는 듯하면서도 하나이고,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가도 살아 숨 쉬었으며 서로와 자신을 위한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 내내 인물들이 넘나들었어야 할 경계가 참으로 많고 험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장에서 리가 그 지역에서 약간 쉬쉬하는 선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운 보금자리에 뿌렸다면. 두 번째 챕터에서는 유진에게 그 선 너머에서 손을 내민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 두 사람의 혼돈과 확신을 보여준다. 리는 이미 유진의 나잇대에 이미 그 금기를 넘어섰고, 이제는 자신이 퀴어라는 것을 숨기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것이 시공간을 성큼성큼 넘어선다 해도.
그러나 유진은 달랐다. 그의 삶은 이제 시작이었고. 리와 함께 머물기엔 마치 오후 5시에서 6시로 넘어가며 슬그머니 나타난 석양처럼 저물어 보인다고까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진은 자신이 가끔 일탈처럼 넘어 다녔던 그 선을 외면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 결과 누군가는 선을 넘어선 뒤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고. 또 누군가는 그 선을 등진 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어느 한쪽의 회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계 안에 남는 것도. 경계를 외면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의 남은 생을 살아가기 위해 그 시점엔 반드시 필요했을 용기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초라하게 시들어가는 리의 모습을 보니 그가 영화의 두 번째 장(phase)에서 유진과 가장 가까웠던 그 순간에 손을 내밀며 마음속으로 되뇌었을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남을 것인가. 넘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날, 그리고 당신의 일부를 모른 척할 것인가.
참고 1. 티모시 샬라메는 스파이더맨 캐스팅에서 탈락하고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오디션에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 글의 TMI]
1. 유진.. 전완근 루틴 알려줘…팔 너무 예뻐…
2.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의 OST가 영상에 잘 안 묻는다는 생각이 들었음.
3. 내가 조조영화를 보다니. 내가 게으름뱅이가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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