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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5-06-26 20:16:12

비인간성의 대척점엔 무엇이 있나

영화 <그을린 사랑> 리뷰

DIRECTOR. 드니 빌뇌브

CAST. 루브나 아자발, 멜리사 디소르미스 풀린, 막심 고데트, 레미 지라르 외

SYNOPSIS.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어머니가 쓴 편지를 전하라는 것. 남매는 아버지와 형제를 찾기 위해 어머니의 과거를 쫓기 시작하고,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는데…


POINT.

✔️드니 빌뇌브의 명작으로 이미 너무 유명한 작품, 6월 25일에 4K 리마스터링 재개봉했습니다.

✔️한국 제목은 <그을린 사랑>이고 원제는 Incendies, 그을렸다는 뜻과 함께 큰 화재를 뜻하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두 제목이 다 너무 적절한 영화입니다.

✔️ 자 그럼 이제부터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그냥 보기. 꼭. 꼭.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이 영화는 제목과, 붉은 메인 포스터, 그리고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그냥 보라는 사람들의 추천사가 모두 강렬하다. 기대감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라디오헤드의 노래 You and whose army? 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풍경과 느른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곧 날카로운 눈빛에 찢긴다. 아마도 한때 교실로 쓰였을 듯한 곳에서, 머리를 밀리며 관객과 눈을 맞추는 아이의 눈빛이 그렇게 알처럼 영화의 도입부를 깨뜨린다. 이 장면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 오프닝 시퀀스가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는 흘러간다. 난민 출신인 연인을 형제들의 손에 잃고, '명예 살인'을 겨우 피한 여인 나왈의 여정. 그리고 아끼던 비서가 사망하자 그 쌍둥이 자녀들에게 공증인이 읽어준 유서. 제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조각들은 이내 이야기 안에서 조금씩 맞추어진다. 차곡차곡 맞춰지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에 이르면, 참담한 충격과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거부감이 충격을 더 강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이하게 뒤틀린, 불꽃으로 쓴 시간

나왈의 전 생애는 마치 불꽃으로 쓴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걷고 있다. 가족이 반대하는 무슬림 난민의 아이를 낳았고, 모두가 피난을 위해 빠져나가는 남부의 도시로 저벅저벅 걸어갔으며, 비명 소리가 퍼지는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사람들의 흐름과 정반대로,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걷는 듯 살았다.

 

그 시간의 동력은 오직 사랑이다. 가까스로 살아남을 때에도, 잔혹하게 짓밟힐 때에도, 세상을 등지고 떠나겠다는 의지를 결연히 보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동력에는 사랑이 있다. 비록 그 와중에 알아버린 진실이 관객 이전에 그를 충격에 빠뜨려도.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놓인 두 통의 편지는, 신기할 정도로 둘 다 진실임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엔딩 크레디트를 보는 동안, 절대 내가 연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유형의 인간에게까지 연민이 어리고 만다. 그리고 깨닫는 것이다. 전쟁이 만드는 비인간성이 얼마나 기이하게 뒤틀린 모양새인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어떤 인물들의 어떤 모습들은, 비인간성의 인간화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전쟁의 비극, 분쟁의 잔혹함. 이 말은 언제나 아주 뼈아프게 피부로 느껴지거나 아니면 막연하게 그려지거나 둘 중 하나로만 이해될 수 있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전쟁 걱정을 해보지도 않은 이들에게는 그저 교과서 속 단정한 단어들처럼 고요하다. 반면 전쟁을 아는 자들에게는 언어를 넘어 통각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 <그을린 사랑>은 그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자,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처절하게 비극적인지를 문자로만 어렴풋이 감지한 자들에게, 피비린내와 녹슨 쇠 냄새와 매캐한 탄내를 맡게 하고, 그 뒤에 더 끔찍하고 참담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감정을.

 

 

궤적을 밟는, 혼자가 아닌 시간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유서에 남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엄마의 궤적을 그대로 밟는 딸의 여정이 그 뒤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나왈이 다녔던 학교를 딸 잔느도 찾아가고, 사진이 주는 힌트를 찾아 엄마가 있던 곳을 하나씩 따라 밟는다.

 

이 여정이 가리키는 곳은 잔느 입장에서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을 진실이다. 그러나 나왈은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그 여정을 밟게 한다. 침묵을 깨고, 진실을 밝히도록. 그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걷던 나왈의 삶의 태도다.

 

충격과 슬픔에 여러 차례 덮이고, 좌절과 혼란을 경험하는 여정이지만... 잔느는 그 길에서 혼자가 아니다. 그가 밟은 길은 모두 이미 나왈이 밟았던 길이며, 함께 태어나고 자란 쌍둥이 시몽도 있다. 여정을 거치며 그는 "함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음에서 사라질 수 없을 나왈의 존재감과 함께, 이후로 잔느는 자기만의 궤적을 만들어 갈 수 있겠지.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이 영화에서 나왈의 여정을 찾아다니는 쌍둥이가 차를 얻어 마시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시골 지역의 여인들에게서 차를 얻어 마시며 어설픈 현지어로 나왈의 행방을 묻는 잔느, 대놓고 '차를 좋아하는지' 질문을 받은 후 티 타임을 통해 정보를 얻는 시몽 둘 다 그렇다.

 

영화 속에서 딱히 따뜻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다지 공들여 따뜻하게 그리지 않은 평이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인상 깊었다. 이 영화에서 전몰되어 버린 인간성의 빈자리, 그러니까 비인간성의 대척점에 무엇이 있나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들어 대답하고 싶다.

 

한참 오랜만에 만났고 또 헤어질 사이여도 일단 열 일 제치고 앉아 차를 마시며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것. 낯설고 우리말도 못하는 이더라도 일단 앉혀 차를 한 잔 내밀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 환대란 어쩌면 유난스럽게 다정하고 녹아내릴 듯 달콤한 태도라기보다는, 덤덤하게 차를 내밀며 함께 앉아있고 그 시간을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더 느껴지는 것 같다.

 

 

전쟁이 만든 비인간적인 모양새가 얼마나 잔혹하고 기이하게 뒤틀려 있는지를 보게 만드는 이 영화 끝에, 역시나 전쟁은 없어야 할 것임을 역설하게 만드는 이 영화 끝에, 찻잔을 나누는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는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서서 참담한 잿빛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지 않아도 되는 일상. 비명을 노래로 받아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란히 찻잔을 들고 싶다. 비인간성의 대척점에 가장 푹신한 방석을 깔아 두고,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있고 싶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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