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6-26 20:16:12
비인간성의 대척점엔 무엇이 있나
영화 <그을린 사랑> 리뷰
DIRECTOR. 드니 빌뇌브
CAST. 루브나 아자발, 멜리사 디소르미스 풀린, 막심 고데트, 레미 지라르 외
SYNOPSIS.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어머니가 쓴 편지를 전하라는 것. 남매는 아버지와 형제를 찾기 위해 어머니의 과거를 쫓기 시작하고,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는데…
POINT.
✔️드니 빌뇌브의 명작으로 이미 너무 유명한 작품, 6월 25일에 4K 리마스터링 재개봉했습니다.
✔️한국 제목은 <그을린 사랑>이고 원제는 Incendies, 그을렸다는 뜻과 함께 큰 화재를 뜻하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두 제목이 다 너무 적절한 영화입니다.
✔️ 자 그럼 이제부터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그냥 보기. 꼭. 꼭.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이 영화는 제목과, 붉은 메인 포스터, 그리고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그냥 보라는 사람들의 추천사가 모두 강렬하다. 기대감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면, 라디오헤드의 노래 You and whose army? 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풍경과 느른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곧 날카로운 눈빛에 찢긴다. 아마도 한때 교실로 쓰였을 듯한 곳에서, 머리를 밀리며 관객과 눈을 맞추는 아이의 눈빛이 그렇게 알처럼 영화의 도입부를 깨뜨린다. 이 장면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마치 오프닝 시퀀스가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는 흘러간다. 난민 출신인 연인을 형제들의 손에 잃고, '명예 살인'을 겨우 피한 여인 나왈의 여정. 그리고 아끼던 비서가 사망하자 그 쌍둥이 자녀들에게 공증인이 읽어준 유서. 제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조각들은 이내 이야기 안에서 조금씩 맞추어진다. 차곡차곡 맞춰지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에 이르면, 참담한 충격과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거부감이 충격을 더 강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이하게 뒤틀린, 불꽃으로 쓴 시간
나왈의 전 생애는 마치 불꽃으로 쓴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걷고 있다. 가족이 반대하는 무슬림 난민의 아이를 낳았고, 모두가 피난을 위해 빠져나가는 남부의 도시로 저벅저벅 걸어갔으며, 비명 소리가 퍼지는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사람들의 흐름과 정반대로,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걷는 듯 살았다.
그 시간의 동력은 오직 사랑이다. 가까스로 살아남을 때에도, 잔혹하게 짓밟힐 때에도, 세상을 등지고 떠나겠다는 의지를 결연히 보인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동력에는 사랑이 있다. 비록 그 와중에 알아버린 진실이 관객 이전에 그를 충격에 빠뜨려도.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놓인 두 통의 편지는, 신기할 정도로 둘 다 진실임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엔딩 크레디트를 보는 동안, 절대 내가 연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유형의 인간에게까지 연민이 어리고 만다. 그리고 깨닫는 것이다. 전쟁이 만드는 비인간성이 얼마나 기이하게 뒤틀린 모양새인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어떤 인물들의 어떤 모습들은, 비인간성의 인간화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전쟁의 비극, 분쟁의 잔혹함. 이 말은 언제나 아주 뼈아프게 피부로 느껴지거나 아니면 막연하게 그려지거나 둘 중 하나로만 이해될 수 있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전쟁 걱정을 해보지도 않은 이들에게는 그저 교과서 속 단정한 단어들처럼 고요하다. 반면 전쟁을 아는 자들에게는 언어를 넘어 통각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 <그을린 사랑>은 그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자,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처절하게 비극적인지를 문자로만 어렴풋이 감지한 자들에게, 피비린내와 녹슨 쇠 냄새와 매캐한 탄내를 맡게 하고, 그 뒤에 더 끔찍하고 참담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영화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감정을.

궤적을 밟는, 혼자가 아닌 시간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유서에 남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엄마의 궤적을 그대로 밟는 딸의 여정이 그 뒤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나왈이 다녔던 학교를 딸 잔느도 찾아가고, 사진이 주는 힌트를 찾아 엄마가 있던 곳을 하나씩 따라 밟는다.
이 여정이 가리키는 곳은 잔느 입장에서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을 진실이다. 그러나 나왈은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그 여정을 밟게 한다. 침묵을 깨고, 진실을 밝히도록. 그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걷던 나왈의 삶의 태도다.
충격과 슬픔에 여러 차례 덮이고, 좌절과 혼란을 경험하는 여정이지만... 잔느는 그 길에서 혼자가 아니다. 그가 밟은 길은 모두 이미 나왈이 밟았던 길이며, 함께 태어나고 자란 쌍둥이 시몽도 있다. 여정을 거치며 그는 "함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음에서 사라질 수 없을 나왈의 존재감과 함께, 이후로 잔느는 자기만의 궤적을 만들어 갈 수 있겠지.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이 영화에서 나왈의 여정을 찾아다니는 쌍둥이가 차를 얻어 마시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시골 지역의 여인들에게서 차를 얻어 마시며 어설픈 현지어로 나왈의 행방을 묻는 잔느, 대놓고 '차를 좋아하는지' 질문을 받은 후 티 타임을 통해 정보를 얻는 시몽 둘 다 그렇다.
영화 속에서 딱히 따뜻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다지 공들여 따뜻하게 그리지 않은 평이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인상 깊었다. 이 영화에서 전몰되어 버린 인간성의 빈자리, 그러니까 비인간성의 대척점에 무엇이 있나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들어 대답하고 싶다.
한참 오랜만에 만났고 또 헤어질 사이여도 일단 열 일 제치고 앉아 차를 마시며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것. 낯설고 우리말도 못하는 이더라도 일단 앉혀 차를 한 잔 내밀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 환대란 어쩌면 유난스럽게 다정하고 녹아내릴 듯 달콤한 태도라기보다는, 덤덤하게 차를 내밀며 함께 앉아있고 그 시간을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더 느껴지는 것 같다.

전쟁이 만든 비인간적인 모양새가 얼마나 잔혹하고 기이하게 뒤틀려 있는지를 보게 만드는 이 영화 끝에, 역시나 전쟁은 없어야 할 것임을 역설하게 만드는 이 영화 끝에, 찻잔을 나누는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는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서서 참담한 잿빛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지 않아도 되는 일상. 비명을 노래로 받아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란히 찻잔을 들고 싶다. 비인간성의 대척점에 가장 푹신한 방석을 깔아 두고,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있고 싶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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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들
*스포가 있습니다.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 은 더 이상 은유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이란 정부의 폭력, 가부장제의 착취, 신정체제의 억압을 한 가정이라는 무대에 그대로 올려놓는다. 카메라는 한없이 사실적이며, 시선은 철저히 여성의 고통과 그 응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 영화는 목격이 아니라 직면의 영화다.
주인공 ‘이만’은 테헤란 혁명수비대 법원의 수사판사로 임명된, 독실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을 넓히며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은 국가의 수사권을 행사하는 권총과 함께 붕괴된다. 이만이 수사판사로서 서명하는 수많은 사형 선고는 단지 국가의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가정 내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장의 권위’로 변모한다.
영화는 이 권위의 사유화 과정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권총을 잃어버린 후, 이만은 가족을 의심하고, 통제하고, 고문하고, 감금한다. 그가 총을 휘두르지 않아도 ‘권위’는 총과 함께 집 안을 배회한다. 이 총은 국가의 총구이자 가부장의 상징이다. 이만은 점차 스스로를 ‘국가 권력의 대리자’로 여기며, 가정을 법정으로 만들고, 가족을 피고인으로 전락시킨다.
이 영화는 한 가부장의 몰락이 아니라, 한 여성들의 각성을 따라간다. 특히 어머니 나즈메의 변화가 눈에 띈다. 처음엔 남편의 출세를 기뻐하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침묵하던 그녀는, 시위에서 다친 딸의 친구를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전선을 넘는다.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던 그녀는, 점점 무너져 가는 남편을 보며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체제를 체감한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두 딸이다. 그들은 SNS를 통해 외부 세계를 접하고, 친구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점차 체제에 반응한다. 큰딸은 거짓 자백으로 가족을 지키고, 작은딸은 그 고리를 끊어내며 직접적인 구조 행위를 수행한다. 이 연쇄적 행동은 ‘페미니즘적 연대’이자, ‘다음 세대 여성의 행동’ 그 자체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더 이상 희생자도, 관찰자도 아니다. 그녀들은 결단하고 구조하며, 제도를 넘는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픽션이지만, 장면 곳곳에 실제 히잡 혁명의 시위 장면이 삽입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큐적 삽입과 극적 전개 사이의 긴장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을 형성한다. 이른바 정치적 리얼리즘이다.
감독은 카메라를 고정하고, 인물 간 거리와 시선을 세심하게 조율한다. 가족이 함께 앉은 식탁에서조차 긴장은 감지된다. 감금 장면에서는 캠코더의 시점이 삽입되어, 권위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이 분리되고 충돌한다. 이 장치는 이만의 권력이 외부에 의해 기록되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영화는 철저히 연출된 세계이지만, 이 세계는 오늘날 이란 여성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무섭게 평행한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전장이 ‘가정’이며, 전투는 ‘삶 그 자체’다. 주체는 여성이고, 그들의 감정은 두려움과 책임, 그리고 연대의 용기다. 이 영화는 관계의 전복을 이야기한다.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존재이며, 이 싸움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국외 도피 상태에서 비밀리에 완성된 영화다. 감독 모하마드 라술로프는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 이후 반정부 발언과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 수감되었다. 이후 당국으로부터 여권을 압수당하고 출국 금지 처분을 받았고, 그 상태에서도 이 영화를 촬영했다.
놀랍게도 영화는 여러 감독과 활동가, 스태프의 협력과 은닉, 그리고 디지털 편집 및 파일 전송을 통한 비밀 유출 방식으로 마무리되어, 2024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개되었다. 감독은 영화 공개 직전, 극비리에 이란을 탈출하여 독일에 망명했다. 이 영화는 단지 하나의 극영화가 아니라, 제작 과정 자체가 정치적 저항의 행위였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그 어떤 다큐보다 구체적이고, 그 어떤 픽션보다 절실하다. 이란의 억압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종종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라는 명분으로 침투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성의 연대가 그 거대한 가부장제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영화의 씨앗은 단지 이란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모든 여성의 것이며, 한국 사회 또한 그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이제, 그 씨앗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
개봉 2025.06.03.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독일
러닝타임 167분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네랩 초청으로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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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벤져스가 연 새로운 시작!
언제 적 마블인가? 기대를 모았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폭망하고, 또 다시 도약 실패를 한 시리즈의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어벤져스: 둠스데이> 제작 발표와 로다주, 루소 형제의 만남, 새로운 <판타스틱 4> 시리즈가 나온다는 기대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썬더볼츠*>의 중요성은 커졌다. 앞서 소개한 계획을 이행하고 스토리를 발전시키러면 확실한 브릿지 역할은 물론, 도약 발판이 꼭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블은 이 임무를 갖고 루저들을 불러 모았다. 과연 이번 미션은 성공했을까? 아니면 실패했을까?
직장인이라면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라면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못해 공허함을 느끼는 옐레나(플로렌스 퓨)를 이해할 것이다. 직접 세상을 구하는 일도 아닐뿐더라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가 시킨 비밀 업무의 흔적을 없애는 일이기에 그녀가 느끼는 보람이나 성취율은 0%. 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의 목표가 사라지고 마음 구멍이 커진 옐레나는 숨만 쉬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어두운 비밀이 세상에 공개될 위기에 처한 발렌티나는 옐레나에게 그 흔적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한다. 문제의 장소에 간 그녀는 그곳에서 U.S. 에이전트(와이어트 러셀), 고스트(해나 존-케이먼), 태스크마스터(올가 쿠릴렌코)를 만난다. 그리고 의문의 남자 밥(루이스 풀먼)과도 조우한다.
| 마블이 개설한 우울증 치료 모임?<썬더볼츠*>는 기존 마블 영화와 다르게 거창한 영웅담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문제 많고 힘들었던 삶을 보낸 주인공들의 상처 극복과 성장담을 채운다. 옐레나를 비롯해, U.S. 에이전트, 고스트. 레드 가디언(데이빗 하버), 윈터솔져(세바스찬 스탠)의 공통점은 루저이자 외톨이다. 저마다 가슴 한 켠에 트라우마가 있고, 씻을 수 없는 그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어벤져스와 달리, 멋진 영웅도 아닌 이들은 사람들의 응원과 갈채를 받기는커녕, 음지에서 그 누구의 환영을 받지도 못한 채 활동한다.
이런 그들이 발렌티나의 계략에 의해 만나고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면서 엉겁결에 팀이라는 구색을 맞춘다. 평생 혼자 활동했던 이들이 서로 합을 맞추기에 불협화음이 나지만, 그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이해와 공감, 배려를 통해 결국 하나의 팀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모이고 팀을 이뤄가는 과정이 마치 우울증 모임 멤버들의 모습과 겹친다는 점이다. 병명은 다르지만, 저마다 아픔을 가진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소개하고 듣고, 나누는 과정은 그 자체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처럼, 이들 또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픔이 아물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고 그 자체가 영화의 동력이 되어 함께 세상을 구하고 동료를 지키며, 비로소 팀의 끈끈함을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 빌런은 센트리가 아닌 각자의 트라우마!앞서 소개했듯이 <썬더볼츠*>의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한 편의 심리극을 보는 듯한 이 작품은 마블 영화인지를 새삼 확인하게 할 정도로 이전 작품과 그 궤를 달리한다.
이 방법은 기존 팬들에게 낯섦을 전하는 등의 위험부담이 있지만,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은 이를 밀고 나간다.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을 통해 루저들의 성난 모임을 주최한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이 반쪽 영웅들에게 이식한다.
이 요소가 인물들에게 착 달라붙는 건 바로 공허함에 있다. 특히 옐레나는 마음에 큰 구멍이 있는데, 이는 사랑하는 언니의 부재에 따른 상실감에서 비롯한다. 이를 더 크게 확장한다면 어벤져스(영웅)가 사라진 세상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부재와 공허함은 시리즈마다 언급되어 왔다. 하지만 그 쓰임은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작은 요소로써 활용되는 것에 그쳤다. 전작과 다르게 이번 영화는 그 공허함을 전면에 내세워 2시간 동안 진득하게 치유하는 과정을 선보인다. 특히 밥의 등장은 영화의 주제를 부각하며 각 인물들의 거울치료처럼 느껴진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마약 중독자까지 된 밥은 인체 실험을 통해 결국 무한한 힘을 가진 센트리가 된다. 하지만 그의 불안정한 마음과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어둠에 잠식되고, 보이는 사람들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결국 옐레나와 루저 영웅들은 센트리를 막기 위해 서로 연대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싸움이 결국 센트리의 내적 환경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힘든 세상 속에서 공허한 마음에 무엇을 채우는가에 따라 자신의 힘을 이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강조한다.
| 스스로 빛을 내는 뉴 어벤져스(z~~)의 탄생!결과적으로 이 내적 치유는 우울증에 시달렸던 루저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전한다. ‘가장 강한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처럼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과 마주하고 이겨내는 그 과정은 기존 마블 영화에서 보지 못한 감동을, 더불어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과 그 과정을 함께 했다는 점 또한 격한 위로를 전한다.
물론, 어벤져스의 부재에 따른 아픔과 이를 이겨내는 이야기가 새롭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이 작품도 어벤져스의 자장 안에 갇혀있다. 더불어 극 중 옐레나와 센트리의 관계는 나타샤(스칼릿 조핸슨)와 헐크(마크 러팔로)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고 센트리의 무기인 어둠을 퍼뜨려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염력은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사람들이 사라지는 공포와 맞닿아 있다. 여기에 철학적인 키에르케고르 등 철학적인 메시지는 때때로 거리감을 두게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건 이 영화를 통해 마블이 비로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가장 인간적인 루저들을 통해 말이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었던 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어둠을 몰아낸 그 경험을 함께하며 서로를 빛내주는 모습은 (구) 썬더볼츠* (현) 뉴 어벤져스(z~~)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극 중 많은 사람이(샘 윌슨 포함)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마음속 어둠에 잠식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들이라면 그 자체로 영웅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했고, 영웅도 변했다. 이제 뉴 어벤져스(z~~)를 맞이해야 하는 우리가 변할 차례다.
덧붙이는 말: 확실히 액션의 맛은 떨어진다. 하지만 내적 갈등에 따른 자신과의 싸움은 흥미롭다. 옐레나 역을 맡은 플로렌스 퓨가 극 중심을 잡는데, 감정 연기가 너무 좋다. 역시 믿고 보는 배우라니까. 제발 체중 관련한 부정 이슈로 태클 걸지 마쇼~~ ㅎㅎ쿠키는 2개다. 첫 번째는 피식 웃게 만들고, 두 번째는 가슴을 뛰게 만드는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쿠키는 마블이 젤로 맛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평점: 3.5 / 5.0
한줄평: 짭벤져스를 통해 이제야 도약 지점을 찾은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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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 리뷰
"우린 그저 운이 좋았던 거죠. 당신과 나."
꼭 보겠다고 말한 다짐이 무색할 만큼 난 오랫동안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수작이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마이클 레젠더스 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내가 차일피일 감상을 미룬 건 영화의 소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기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이 추적한 논란이 바로 가톨릭 아동 성범죄였으므로. 내가 가톨릭 신자인 것은 아니나 선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 종족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결국 고개를 들 만한 이야기는 늘 보는 것이 망설여지기에(그래도 늘 보긴 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영화 제목인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팀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마땅한 사건을 추적하겠다는 기자들의 직업정신과 열의가 돋보이는 작명이다. 재미있게도 팀 내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자는 국내에 소개된 포스터 속 문구처럼 '세상을 바꾼 최강의 팀플레이’를 해냈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영상 속에 끊임없이 비쳤음에도 개개인으로 기억에 남진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네 기자’가 아니라 네 기자가 포함된 ‘스포트라이트’라는 유기체적 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과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의 대립을 통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팀플레이일지언정 얼마든지 갈등이 존재할 수 있고,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가 비치는 가톨릭에 대한 회의 등을 통해 기자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지켜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을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설정한 전략은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측에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즉, 작가인 조지 싱어와 감독이자 작가인 톰 매카시는 가톨릭 교구의 아동 성범죄를 추적하기 위해 실화를 극화하면서 단 한 명의 피해자에 매달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피해자 한 명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졌고 교회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뜨렸는지를 전시하거나 소비하지 않은 대신, ‘생존자’라 불리는 피해자들이 모임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무심해질 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영화 내에선 집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거듭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한 명의 신부/사제의 일탈처럼 비치지 않도록 사건을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재를 열심히 한들 가톨릭 교회 관계자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이 사과가 몇 알 썩었다고 박스채 버릴 순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더더욱. 가장 돌봄이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취약한 환경에 처한 어린아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면모는 죄책감 없는 개인의 범죄적 계산과 그 모두를 눈 감은 무소불위의 권력일 것이다. 피해자가 너무도 많아 병리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는 전문가의 말이 흘러나오는 세상 이건만 한편으론 천상에서 지상으로 걸음 한 신의 말씀을 경건하게 받아들인 양 설교하는 종교적 지도자인양 행세하면서도 무수한 개인을 짓밟은 범죄자는 권위에 보호받으며 그저 교구를 옮겨다니기만 하였다. 이렇듯 영화는 스포트라이트팀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이 사건의 뒤엔 얼마나 많은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었으며 스포트라이트팀이 받은 퓰리처상에 대한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시사 고발 영화는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다. 지나간 일을 다시금 들추고자 할 뿐이었다면 기자들의 회고록을 찍거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되는 일 아닌가. 존재했던 진실을 서사적으로 엮어 내면서도 전달해야만 하는 메시지를 러닝타임 내에 예술의 이름으로 삽입하여 시민의 성찰과 각성을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고발 영화의 미덕이지 않을까. 모든 시사 고발 영화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따르며 관객을 소외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히 부당한 억압에 따라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단순히 상업 영화라는 미명 하에 왜곡시키고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흥미만을 좇아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결국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무너진 사회 정의를 조명하는 고발 영화에 조금의 윤리의식도 기대할 수 없거나,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사건을 단순한 감정의 배설구로 사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모순일 테다. 이런 점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언론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무감각한 사회로 인해 비극이 심화된 사건의 본질을 해치지 않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실화를 각색하였다. 또한 영화 내 등장하는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의 대사, "이건 명심하세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까지 하니, 훌륭한 시사 고발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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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이야기를 써나가기
<그린 나이트>는 언제 봐도 웃긴 영화다. 영화의 말미 일찍이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나약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무력하게 웃고 만다. 누군가에게는 대서사시나 위대한 성장담으로 읽히는 이 영화를 n차 감상하면서도 매번 웃고 마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뤄온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제서야 찾아보려 한다.
영화 <그린 나이트>는 주인공 가웨인의 모험담이자 성장담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그리고 가웨인이 함께 모인다. 모습은 성인이나 아직은 어딘가 그들과 어우러지지 않는 가웨인의 모습. 아서왕은 모임에서 겉돌고 있는 가웨인에게 재밌는 얘기를 한 번 해보라하지만 들려드릴 이야기가 없다 한다. 그때 왕은 영웅담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이밍은 완벽하게 좋고 나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투를 신청하러 온 녹색 기사. 결투에 응할 자를 찾는 녹색 기사에게 대적하는 자는 가웨인이다. 1년 후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라는 주의에도 불구하고 가웨인은 ‘용감하게‘ 녹색 기사의 목을 친다.
그렇게 영웅담은 만들어진다. 인형극으로 재현되고 입소문으로 도는 그의 이야기. ‘소년’에서 ‘남자’, 그리고 ‘기사’가 된 그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한다. 그렇기에 그는 녹색 기사와 다시 대적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이 모험은 무척이나 이상한 양태를 띠고 있다. 무언가를 얻는 모험이 아닌, 계속 잃고 잃는 모험. 사실 결말마저 정해져있다. 그는 머리를 잃기 위해, 즉 죽음을 위해 모험을 떠난 것이다.
모험의 과정에서 그는 무엇을 잃는가. 먼저 어머니가 준 사랑의 증표를 잃는다. 그가 떠나기 전 어머니는 그를 지켜줄 물건이라며 녹색 허리띠를 건네준다. 그러나 모험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도 무리를 만난 가웨인은 무력하게 그것을 빼앗긴다. 연이어 연인이 건넨 사랑의 증표마저 그는 쉽게 잃는다. 이렇게 잃고 잃는 모험 속에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는 가웨인을 살린 성주는 묻는다. “이렇게 맞서싸워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이 질문에 가웨인은 질문으로 답한다. “명예요?” 가웨인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길을 간다.
모든 여정에 목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떠나는 모험에 목적이 없다니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녹색 기사를 다시 조우한 가웨인이 숨기고 숨겨온 두려움을 분출했을 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것 같다. ‘기사’로서의 임무를 다하려는 가웨인은 결국 인간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기사됨‘과 ’남자됨(남성성)‘의 이상향은 인간의 인간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 끝이 무엇인가. 그의 연인 에셀이 말했듯 어리석은 남자들은 꼭 그러다 죽고 만다.
사실 단순히 우습기 짝이 없다고 말하기엔 현재까지도 남성들은 소위 말하는 ‘맨박스’라는 것에 갇혀 산다. 사회학자 래윈 코널은 ‘패권적 남성성’을 한 사회가 이상적인 남성에게 가지는 기대감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회적 기대에 있는 힘껏 부응하려는 남성만이 그 사회에서 ‘남성’으로 인정받는다. 반면 사회적 기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그런 조건을 거부하는 남성은 ‘남자로서 불합격인 존재‘가 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남성성‘을 정립하기 위해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자라면~“으로 시작되는 문장들은 지금도 말해지며, 그것은 남성들의 인간성과 유약함을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제약이 된다. 감독은 그런 스테레오타입들의 우스움을 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녹색 기사를 다시금 조우한 뒤 그가 어떤 성장을 거두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사 하나 없이 이어지는 모종의 압도적인 플래쉬 포워드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가웨인. 그렇게 그는 허울뿐이 ’영웅‘이 되어 돌아갔을 때의 허망한 결말을 떠올리고,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 가웨인의 모습은 결의에 차있는 동시에 절망이 느껴진다. 이때, 영화의 초반부 별것도 아닌 일에 아이처럼 웃으며 연인과 장난을 치던 가웨인의 행복한 모습이 겹쳐보였다. 기사가 되고 남자가 되어 남들이 말하는 성장을 거두기 위해 행복을 잃는다면, 그런 성장은 안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한 여자 아이가 등장하여 왕관을 착용한다. 그 순간 최근 관람한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한 청년은 우연히 만난 여자 아이에게 영웅담을 들려준다. 병원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임에도, 그들의 상상은 영화적으로 재현되며 시공간을 오간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히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마다 개입하여 이야기의 방향성을 바꾸어놓는다. 이것은 영화의 말미에 아이가 말하듯, ’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남성이 아닌 여성이, 강자가 아닌 약자가 중심이 된다 하여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틀에 매이지 않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논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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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의 앙상블로 이끄는 대환장 축제 한마당
“망진이랑 이거 하나만 하고 빠이 할 거야?”
개최 일주일 전 갑자기 정종 문화제에서 연산군 문화제로 바뀐 망진의 지역 축제를 성공적으로, 그리고 무사히 끝마치려는 축제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와 어쩌다 팀원들이 된 그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예고편│Trailer
영제: Extreme Festival│감독·각본: 김홍기
출연진: 김재화, 조민재, 박강섭, 장세림 외 多
장르: 코미디, 드라마│상영 시간: 94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평론가 6.8
제작: 비리프, 실버라이닝 스튜디오│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개봉일: 2023년 6월 7일
“난장판 축제 현장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역 축제를 맡아 어떻게든 현생을 이어가려 고군분투하는 대행사 대표 혜수의 하드캐리는 눈물겹다. 함께할 직원 하나 없는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연명하는 작가인 애인 상민은 능청스러운 한량짓에 여념이 없다. 퇴직한 직원 래오를 알바로 데려오는가 하면, 설상가상으로 알바로 뽑은 처음 본 은채를 인턴으로 채용하는 대 환장할 짓까지 벌이고 초대가수는 사기를 당한다. 이 정도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망하게 하겠다는 건지 의심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혜수에겐 다음 밴댕이젓 축제의 칼날을 쥐고 있는 군수의 비위를 맞춰 어떻게든 잘 마무리해야 하는 궁극적이고 초단기적인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익스트림 페스티벌’이라는 영화 제목 그대로 가상의 지역 문화축제를 진행하며 생기는 별의별 일들을 그린 한국 코미디 드라마였다. 망할 망을 뜻하는 건 아니겠지만 지역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망진군의 아주 소규모 축제를 진행하는 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를 통해 고달픈 K-직장인과 자영업의 현실도 관객의 뼈를 때린다. 등장인물 개개인이 가진 작은 문제부터 지방행정의 탁상공론식 실태는 물론, 마지막엔 소규모 연극집단이 가지는 예술적 고뇌까지 수렴한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극본에 참여했던 김홍기 감독인 만큼 축제를 진행함에 있어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채워나가며 젊은 감독의 패기 넘치는 풍자와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작은 에피소드들이 계속 연계되며 다소 산만할 수도 있지만, 축제라는 큰 틀안에서 소소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역할을 망론하고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내뿜는 김재화는 인턴보다 더 눈물 나는 대표 혜수를 미친듯한 원맨쇼로 채우고, 사고뭉치 월급루팡 이사 상민을 맡은 조민재는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잔망스러움을 선보인다. 그나마 멀쩡해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 발언으로 막장드라마를 만들어버린 래오의 박강섭은 강렬한 한방을 남기고, 인 서울을 꿈꾸며 지른 인턴 지원 생활이 물거품 된 은채의 장세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더불어 기자처럼, 간호사처럼, 불륜처럼, 뭐 하는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의문의 커플도 매 장면마다 등장해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리프레시는 물론,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이처럼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진짜 지역축제의 하루를 진행하고 참여하며 체험하는 여러 인물들을 교차시키면서 현실 공감적 상황을 이끌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그들의 말이 씁쓸하지만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 줄 평 : 정신없지만 공감가는 재기 발랄한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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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순수한 마음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
사실 나는 영화의 장르를 따로 가리지 않고 잘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전체관람가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은 어른이 보기에 너무 유치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 잘 보지 않았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영화가 있다. 바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이다. 동화를 원작으로 했던 본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에 이어 11년 만인 2025년 6월 11일, 속편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이 개봉했다. 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을 먼저 보았는데, 이내 주인공들에게 매료되어 이전 작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만큼 좋은 인상을 남긴 영화 애니메이션이다.
개봉 : 2025.06.11
등급 : 전체관람가
장르 : 애니메이션
국가 : 프랑스
러닝타임 : 80분
감독 : 장-클리스토페 로저, 줄리엔 청
소개 :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은 절친, 음악가 곰 ‘어네스트’와 꼬마 생쥐 ‘셀레스틴’! 둘은 ‘어네스트’의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러 그의 고향 ‘샤라비’로 향한다. 오랜만에 찾은 거리에는 음악이 금지되어 침묵만이 흐르고 ‘어네스트’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는데… 사라진 멜로디를 되찾기 위한 ‘곰’과 ‘생쥐’의 특별한 우정이 다시 시작된다!
영화는 전편에 이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함께 지내는 집에서 시작된다. 꼬마 생쥐 셀레스틴이 음악가 곰 어네스트의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기 위해 머나먼 어네스트의 고향, 샤라비로 향하면서 이야기의 막이 열린다. 샤라비에는 음악이 불법이 되어있고(2000년대 애니콜 Talk Play Love 뮤직비디오가 생각났다..^^) 음악을 되찾기 위한 두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다. 1편이 셀레스틴과 그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엔 어네스트와 그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줄거리와 별개로 내가 생각하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멜로디 소동> 의 관전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동화 같은 따뜻한 작화와 음악, 프랑스 영화 특유의 자유로운 표현, 그리고 순수한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점들이 짜임새 있게 잘 연결되어 하나의 영화에 녹아있는데, 그걸 잠시 해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동화같은 따뜻한 작화와 음악
요즘 극장가에서 2D, 그것도 이렇게 질감이 살아있는 작화를 보기가 정말 힘들다. 게다가 동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 영화를 이렇게 원작을 살려 잘 구현한 경우는 더더욱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동화 작화 스타일의 2D 애니메이션 특유의 따뜻하고 아날로그 한 느낌이 귀여운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 완성도를 높인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멜로디 소동이라는 제목답게, 각종 클래식 악기들이 아름다운 선율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바이올린뿐 아니라 미파솔의 색소폰, 그리고 음악보존협회의 타악기들까지 현, 관, 타를 아우르는 악기들로 유럽 스타일의 풍성하고 클래시컬한 OST를 선보인다. 극장에서 이런 음악을 들은 것이 언제인지..! 양질의 음악을 장르 없이 사랑하는 나에게는 무척 귀한,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였다.
프랑스 정서의 개성있고 독창적인 표현법
이런 아름다운 작화와 음악은 프랑스 영화 특유의 표현들과 만나며 시너지를 낸다. 1편에서도 그런 표현들이 두드러졌었다. 과감한 구도는 물론이고 물감을 뿌려서 계절의 변화를 표현한다든지, 차를 물감으로 지워버리거나, 두 주인공의 꿈속 장면들이 그러하다. 스포가 될까 봐 말하진 못하지만, 2편 역시 이처럼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표현법을 사용한다. (특히 추격전이 인상적이다) 동화에서는 주인공의 상상이 곧 현실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한순간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도 그게 뜬금없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그런 걸 프랑스 영화가 참 잘한다. 그림과 음악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하나가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모든 대사가 우리에게 낯선 프랑스어인 점도 이런 개성 있는 애니메이션 구성과 합쳐져 색다른 매력을 만든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셀레스틴, 어네스트 하고 부르는 그 억양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함께하는 삶을 필사적으로 지키는 주인공들이 전하는 가치
마지막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명확해 그를 이해한 어른 관객들에겐 영화가 전혀 시시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편도 1편에서 그랬듯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이야기는 태어난 환경, 가족, 주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것을 제안한다. 생쥐 직업 중 최고라고 불리는 치과 의사보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셀레스틴처럼 어네스트도 가족들이 원하는 꿈보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살아왔다. 이 "주체성" 은 단지 내 일이나 꿈에만 지나지 않고 이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선택했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영화 소개 글에서는 둘의 우정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들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느꼈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닐뿐, 서로를 위해 굳은 일을 기꺼이 해내고 가장 변하지 않는 소망이 서로와 함께하는 삶인 게 어찌 순수한 사랑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저 곰과 생쥐의 귀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네스트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셀레스틴의 모습을 보며 나의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게 되었다. 이들은 원하는 일과 가족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다. 멋지지 않은가? 가끔은 현실을 이상이 버티게 해주기에 이상적인 이야기도 필요하다. 살아가는 데에 돈과 명예도 물론 필요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순수한 마음도 중요했다는 것을, 사회에 물든 어른에게 다시 알려주는 아주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여운이 남는, 그리고 재밌게 보기 좋은 영화라고 느꼈다. 셀레스틴, 어네스트 어딘가에서 함께 행복해야 해...!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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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주 최신 개봉영화(싱크홀, 프리가이, 더 톨:함정, 암살자들, 생각의 여름)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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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수란잔 Bes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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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수란잔 BEST 10
(1 ~ 10위)
1. 새벽의 모든 (2024) - 미야케 쇼
2. 가여운 것들 (2024) - 요르고스 란티모스
3.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4) - 하마구치 류스케
4. 추락의 해부 (2024) - 쥐스틴 트리에
5. 독립시대 (1994) - 에드워드 양
6. 안티크라이스트 (2009) - 라스 폰 트리에
7. 우나기 (1997) - 이마무라 쇼헤이
8. 노 베어스 (2024) - 자파르 파나히
9. 나의 올드 오크 (2024) - 켄 로치
10. 시빌 워: 분열의 시대 (2024) - 알렉스 가랜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란잔 #영화순위 #2024영화베스트 #2024베스트영화 #영화베스트 #영화순위2024 #2024영화순위 #2024영화추천 #영화추천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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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주피터스 레거시>
[2021년 5월 7일, 넷플릭스 공개]
그 어떤 유산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100년 가까이 세상을 수호한 1세대 슈퍼히어로들. 이제는 그 아이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들이 물려받은 전설과 이상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영웅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첫 번째 세대의 슈퍼히어로.이제 그 아이들의 세대가 세상을 밝혀온 횃불을 이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긴 했을까.
높아지는 긴장 속에, 오랜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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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애콜라이트> 메인 예고편
?전대미문의 제다이 연쇄 살인 사건 발생 그 누구도 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한 달 후, 어두운 비밀과 새로운 진실이 떠오른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애콜라이트] 6월 5일 1,2화 디즈니+ 전세계 동시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