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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5-06-27 20:07:26

기억의 정체성

<살인자의 기억법> (2016)

 

 

 치매라는 설정을 가진 연쇄살인범 병수(설경구)의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내며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병수는 자신의 딸인 은희(설현)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살인범 태주(김남길)와 대립하게 되지만 그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점 때문에 이 이야기를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이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스스로 진실을 찾아가며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 상황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병수의 치매는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플롯 장치로 작용한다. 치매로 인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이 뒤엉키는 상황은 극적인 혼란을 만든다. 병수가 태주를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며 벌이는 심리적 싸움은 객관적인 진실과 병수의 주관적 경험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방식은 병수의 시각에 몰입하게 하면서도, 그의 판단과 행동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는 서술자의 신뢰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며, 단순히 누가 진범인가를 묻는 것을 넘어 기억이라는 요소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게 만든다.

 

 

 기억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사라질 때 인간의 정체성은 어떻게 변하는 것인가? 또한 기억이란 객관적 사실의 저장소와 주관적 경험의 재구성 중 어느 곳에 속하는 것일까. 영화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치매라는 병리학적 상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병수의 과거는 살인범으로서의 악랄함과 아버지로서의 애틋함 사이에서 양가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치매로 인해 그의 과거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는 기억의 단편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붙잡으려 애쓴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은희를 보호하려는 본능적 사랑과 책임감을 잃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이 단순히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가치와 관계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음을 통해 기억의 상실이 반드시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본질적인 방식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단편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며 고통 받는 병수의 모습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기억이 불완전하고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인간 정체성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그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자신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며 정체성의 중심에 위치한 기억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병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작성자 .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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