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artist2025-06-29 23:41:01
멋 그 자체인 남자와 멋을 아는 영화의 역대급 질주
영화 리뷰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 달리 차에 큰 관심이 없던 아이는 자라 운전까지도 관심이 없더니 면허까지 등을 돌린다. 그런 소년이 유달리 관심있던 것이 바로 F1 레이싱 경기였다. 경기를 꾸준히 챙겨본 적도, 응원하는 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TV를 돌리다 F1 중계방송이 있으면 뉘어있던 자세를 고쳐 앉아 집중했다. 규칙을 몰라도 스피커 너머로 터질 듯한 굉음 소리가 이목을 사로잡았고, 팍팍 터져가는 아스팔트 조각들 뒤로 레이서들의 가쁜 숨소리와 땀방울이 경이로웠다. 운전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가냘픈 생각은 중고교 시절 원심력과 중력이라는 간단한 과학상식만으로도 부숴져 그들은 우상이 됐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한 생각은 작은 충격에도 날라가버리는 차량과 그 잔해들을 보며 치유됐다. 처음 F1 레이싱 카의 소름과 흥분을 체감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 나에겐 F1과 관련된 구설수나 스캔들, 사건들 등에도 아직까지 그 스포츠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고, 이를 영화로 접했을 때의 기대감은 이미 상상 초월이다. 지금껏 영화 <포드 v 페라리>, 영화 <카> 시리즈, 영화 <스피드 레이서> 등 수 많은 레이싱 영화들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레이싱의 감흥을 모두 채우기란 역부족이었다. 이번 영화 <F1: 더 무비>가 개봉하기 전까지 말이다.
영화 <F1: 더 무비>는 할리우드 산업이 쓸 수 있는 자본의 총량을 모두 모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인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만들어낸 올 상반기 최고의 상업영화가 아니었을지 감히 추측한다. 그만큼 엄청난 촬영 방식과 볼거리들 그리고 편집, 또한 다소 무난하고 빈번한 감이 없지 않은 스토리라인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엄청난 배우 라인업 등이 영화를 풍성하게 했다. 멋,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본 단어는 어쩌면 영화 <F1: 더 무비>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는 영화 <탑건: 더 매버릭>을 촬영한 조셉 코신스키가 감독을 그리고 해당 작품을 촬영한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이전 작에서도 영화적으로 가장 찬사를 많이 받은 부분은 전투기의 움직임을 촬영한 롱 쇼트 그리고 전투기에 직접 올라타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다루며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실제 F1 레이서들은 훈련하는 과정에서 속도와 중력을 버티기 위해 목 단련을 많이 하는 만큼 경기를 치르며 겪는 긴장과 압박 그리고 하중되는 피로도 등을 목과 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을 영화는 전작에서 촬영한 방식과 마찬가지로 다루어 관객을 이입시켰다. 또한 F1 경기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인 5번의 빨간불이 들어오고 모두 꺼지며 시작을 알리는 출발신호를 영화가 다룬 방식이 흥미롭다. 영화의 중반부 사고 이후 복귀한 '조슈아'와 주인공 '소니'가 출발선에 서 신호를 기다릴 때 영화는 마치 차량의 좌측을 중심으로 오버 더 숄더로 촬영했는데, 재밌는 점은 화면을 분할해 각 인물들이 탄 두 차량 모두를 프레임 속에 비춘다는 것이다. 본 장면을 통해 출발 신호와 함께 달려나가는 것은 차량만이 아니라 함께 긴장 중이던 관객도 포함됐다. 나아가 이전 장면들부터 영화는 계속해서 같은 팀이면서 동시에 치열한 라이벌 관계 속의 두 인물을 경쟁구도로 비췄는데, 이를 비슷한 모양의 차량과 비슷한 구도 속 다른 인물과 다른 상황이라는 식의 구도로 표현한 점은 본 작품이 뛰어난 점 중 하나이다.
영화는 가히 역대 레이싱 영화 중 가장 시원하고 멋있는 레이싱 장면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굉장한 연출과 촬영을 통해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본인들이 앞으로 다룰 레이싱 씬들에 대해 관객에게 으름장 놓듯 영화는 시작부터 터질 듯한 영화적 에너지와 음향으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특히 놀라운 점은 F1 차량에 대한 이해도와 F1 경기 자체에 대한 이해도라고 생각된다. F1 차량은 기본적으로 최대한 빠른 속도를 구사하기 위해 바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차량이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바람을 타면서 더 잘 나아가게끔 설계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차량 전면부와 후면부의 윙들 양쪽 하단의 장치들, 타이어의 상태나 각 타이어별 상황에 맞는 기능 등이 경기에서 중요해지는데, 영화는 단순히 달리는 차량이나 레이서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차량의 여러 장치들과 기능들이 작동하는 순간을 담아내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더불어 레이서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수석 코치와 같이 피트 내에서의 인원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면서 F1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관객 또한 이번 작품을 통해 모터스포츠 세계에 입문하고 싶게 했다. 물론 영화의 이러한 점 때문에 차량의 기술 내지는 전략과 관련해 전문 용어들이 빈번히 등장하고, 몇몇 씬들에서는 'DRS(드래그 감소장치(Drag Reduction System). 전자 제어 부품에 의해 공력 파트를 실행시켜 강제로 공기 저항을 감소시키는 장치)'와 같은 장치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용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여 영화의 흐름에 방해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이에 반해 스토리라인은 다소 밋밋한 편이었다. 감독의 이전 작품을 떠올려본다면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으며, 전작이 아니더라도 불의의 사고로 비주류였던 주인공이 기회를 얻고 여러 갈등과 고난 끝에 결국 승리 내지는 우승을 챙긴다는 다소 '클리셰'스러운 구조를 가진다. 물론 클리셰가 있다고 하여 옳지 못하다는 점은 아니지만 영화의 흐름과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되고 그렇기에 후반으로 갈 수록 갈등이 깊어짐에도 진부해지거나 지루해진다. 영화의 플롯은 지나치게 소니라는 인물에게 의존적이다. 소니라는 인물이 다시금 주류 인물이 되는 이야기, 같은 팀의 어린 유망주 선수를 지도하는 이야기, 팀 전체에 놓인 위기를 풀어내는 이야기 모두를 소니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생각해볼 점은 그 방식 모두 그다지 창의적이거나 이 영화만의 개성이 엿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장르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선수의 트라우마와 각종 사고를 대동하고, 트럼프 카드와 얼음물과 같은 선수의 루틴을 사용해 관객을 설득시키고자 했으나 설득보다는 이해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F1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나 시설, 차량 설계 내지는 전략 등을 최대한 멋스럽게 살려내 관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고, 앞서 언급한 레이싱 씬들을 통해 어쩌면 창의적이면서도 위험한 스토리라인을 사용하기보다 다소 진부하지만 안정감있는 플롯을 바탕으로 삼고, 그 위를 화려한 연출로 덮으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영화 <F1: 더 무비>를 촬영하는데 최소 3억 달러, 6월 26일 기준 한화로 4063억 8800만원이 투자됐다. 우리나라 1년 총 예산을 어림잡아 600조라 한다면 총 예산의 0.06%를 이 영화를 위해 사용했다는 뜻으로 엄청난 양임을 가늠할 수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이 정도 투자금이라면 당연히 잘 만드는 것이 맞고, 당연히 영화가 재밌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할 수 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꽤 있어왔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영화 <F1: 더 무비>는 말 그대로 '돈 값하는' 영화였다. 모터스포츠를 잘 모르는 관객도 즐길 수있는 멋 그 자체인 배우 브레트 피트부터 모터스포츠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막스 베르스타펜부터 샤를 르레르와 같은 현역 F1 선수들까지도 출연했으며, 실제 피트월을 촬영해 극의 분위기와 몰입감을 더했다.
어떨 때에는 카메라의 촬영법이나 편집법, 앵글의 위치와 대사의 의미 분석 등에 집중하다 보니 영화를 오로지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의심된다. 영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이겠고, 분석할 수 있기에 더 즐길 수 있는 것도 맞지만 그만큼 영화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화면 속 비춰지는 세상은 허구라는 것을 인식하고 관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본 작품은 오랜만에 어깨 위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게 만들면서 나 또한 한 명의 레이서로서 함께 달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한 작품이었다. 더불어 어떨 때에는 충분한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에 방문하면, 그 영화관 속 스크린에는 정말 내가 기대한 그게 틀어졌으면 하는 소망과 우려가 생긴다. 이번 영화 <F1: 더 무비>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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