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5-08-06 08:21:23
두 아이가 마주한 이 사회의 파열음
영화 <수연의 선율> 리뷰
두 아이가 마주한 이 사회의 파열음
영화 <수연의 선율> 리뷰
감독] 최종룡
출연] 김보민, 최이랑, 김현정, 진대연
시놉시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진 열세 살 ‘수연’은 보육 시설을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우연히 한 부부의 유튜브에서 ‘선율’이라는 일곱 살 아이를 입양해 행복하게 생활하는 완벽한 가족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추가 입양 계획을 알게 된 ‘수연’은 이들의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선율’에게 일부러 접근한다. 그런데 ‘선율’의 행동이 어딘지 좀 이상하다.
#스포일러 주의#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영화 수연의 선율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법적인 이유로 쉼터에 갈 것인지 보호자를 찾아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것인지 그 사이에서 생존전략을짜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선택도 수연이의 안전이나 회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부재한 상황에서의 아이의 선택지는 구조적으로 왜곡되어 있고, 실제로는 선택이 아닌 회피에 가까운 반응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당연히 보호 받아야할 존재라고 여기는 어린이는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쉽게 열악한 조건으로 내몰린다. 수연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현실 속에서 선택 불가능한 상황 속에 놓여져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수연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정말 아이들을 지켜줄 준비가 되었는가?를 돌아보게 해준다.
아이들을 위한 제도의 주어가 아이들일까?
수연의 선율은 영화 속 2명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년 뉴스와 거리에서 이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법과 제도는 여전히 느슨하다. 쉼터와 보호소는 부족하고, 보호체계는 파편화되어 있다. 특히 보호자의 부재나 학대로부터 벗어난 아이들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촘촘하게 설계되어야 할 아동 보호망은 현실에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먹먹함은 수연과 선율의 서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놓인 상황을 현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연의 선율은 우리에게 묻는다. 보호 체계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법과 제도는 있지만, 그 안에 정말 '아이'가 있는가?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없는 상황에서 수연은 선율이라는 존재와 조우한다. 하지만 그 만남은 위로와 연대의 선율이라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파열음처럼 삐걱거리는 관계의 긴장을 담고 있다. 이 두 인물의 선율은 조화롭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불협화음을 통해 이 영화는 현실의 어두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더욱 쓸쓸하고 먹먹했던 것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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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틈에 자란 독버섯
이 글은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또 한 번 뿌리내릴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찰스(에디 레드메인)는 살인자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사람을 살리는 일의 최전방에 서 있는 간호사일 테니까. 그것도 경력 많고 훌륭한. 그는 이 상충되는 두 개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회색 틈 사이에서 단단히 틀어박힌 채 조용히 살았다. 물론 이번에도 발각되기 전까지만 이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참으로 이상했다. 그는 죽음에 다다른 사람이 가진 특유의 축축한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그 냄새는 저승사자의 부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찰스는 그 친절이 마치 죽음을 향한 마중처럼 느껴졌다. 기꺼이 베풀 수 있는, 희생자를 위한 자신만의 담담한 장송곡.
옮긴 병원에서는 비집고 들어가야 할 틈새를 찾기 위해 조금 덜 두리번거려도 되는 행운도 맞이했다. 이미 경계에서 사는 삶을 경험하고 있는 에이미(제시가 차스테인)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에이미의 심장 박동은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의지만큼이나 거세고 힘찼지만. 그녀의 현재 상태는 그녀의 심장벽처럼 압력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얇고 약해져 있었다. 넉 달가량 더 버텨야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현실도. 견디지 못할 만큼 위태로운 딸들과의 불화도.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녀의 재정 상태도 자꾸 에이미를 두드려댔다. 그녀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매번 그녀를 쓰러뜨렸다.
에이미의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냄새를 온몸으로 뿜어대고 있었고. 그 냄새는 찰스를 안정시킴과 동시에 그녀를 향한 목적 없는 친절의 원인이 되었다. 이번에 맞이할 틈새의 삶은 혼자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러나 찰스는 자신이 꾸준히 행해 온 틈새를 이용한 살인을 멈추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눈치채지도 못할 작은 구멍은 인슐린이나 디곡신을 흘려 넣기 충분한 자리였고. 그 독은 서서히 퍼져 찰스의 살인을 몇 번이고 완성시켰다.
찰스는 언제나처럼 도처에 깔린 죽음을 가림막처럼 이용했다. 그를 향한 안개빛 의심은 있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명확한 의심은 그를 향하지 못했다. 자신이 행하는 이 느린 살인의 묘미였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채 무럭무럭 자라는 버섯 같은 삶은 이번에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먹고 조용하고 축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에이미는 자신과 달랐다. 자신처럼 죽음에 중독되어 있지도 않았고. 틈새에서 잠시 쉬고 있을 뿐. 그곳을 탈출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찰스가 풍기는 죽음의 체취를 닦아냈다. 그리고 기어코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쳤다. 이곳에 독버섯이 자라고 있노라고.
찰스는 이제 친절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알았다. 애써 웃어주고. 애써 보살펴 주어야 하며. 죽음의 장송곡을 불러줘야 할 대상. 이제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자신의 존재.
때가 되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찰스는 자신의 손을 놓은 에이미에게 음침하지만 화려하게 자란 독버섯의 마지막 친절을 베풀었다. 그 친절은 결국 자신을 끝없는 징역형으로 이끌겠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마치 자신이 살해한 모든 환자들이 그랬듯이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찾아온 죽음처럼.
틈.
그 작은 것이 만들어낸 모든 변화를 찰스는 자신의 남은 생을 다 바쳐서야 겨우 깨달을 것이다.
마치면서
사실 영화 자체는 건조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롯이 인물들의 연기만으로 서서히 퍼지는 약물 같은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모든 연기가 소름을 돋게 한다.
또한 실존 인물이자 범죄자에게 그다지 큰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것도. 또한 찰스와 에이미의 관계를 정말 담백하게 그린 것도 좋았다. 덕분에(?) 에디 레드메인은 정말 공허한 눈을 가진 살인자의 역할과. 살인자의 텅 빈 껍데기, 혹은 알 수 없는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한 연기를 두 시간 내내 펼친다.
만약 병원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 혹은 치열하게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무조건 실망할 테지만. 영화가 가진 “틈새”라는 모티브를 따라 생성되는 갈등과 서스펜스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면 두 사람. 아니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의 연기가 한 장면 한 장면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모호한 틈 사이에 도사리고 있었던 범죄를 잘 그려낸 영화다. 만약 넷플릭스를 통해 봤더라면. 이만큼 집중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의 TMI]
1. 약간 힘든데 질질 끄는 삶의 연속인 거 같은 요즘.
2. 그렇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만 또 그렇다고 힘내는 건 좀 힘든 거 같다.
3. 하지만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고 피자나 먹어야징(?)
#그남자좋은간호사 #토비아스린드홀름 #에디레드메인 #제시카차스테인 # 배우3 #헐리우드영화 #서스펜스 #실화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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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스크린 너머의 자유
� 스크린 너머의 자유, 서울에서 만나다
– 제5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소개
‘자유·정의·인권’이라는 가치를 담아, 영화로 세상과 대화하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가 2025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개최됩니다. 일반 시민과 더 가까이, 더 깊이 소통하는 국제 영화제! 함께 알아볼까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Seoul Larkspur International Film Festival, SLIFF)는 ‘자유, 정의,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국내외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토론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공유하는 국제 인권 영화제입니다.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영화제 이름 ‘락스퍼(Larkspur)’의 의미
‘락스퍼’는 자유와 정의, 긍정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꽃 이름입니다. 이 꽃의 의미를 영화제에 투영해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회적 불의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 서울락스퍼가 특별한 이유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상업성과 흥행 중심의 영화제들과 달리,
영화를 통해 '가치'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도모하는 공익 중심의 영화제입니다.� “스크린에 비친 작은 진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의 철학� 작년 영화제, 하이라이트만 골라보기!
– 2024년 제4회 영화제 돌아보기
개막작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마리우폴에서의 20일.
제96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와 20여 개국 외교 사절단이 참석한 개막식은 서울락스퍼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 영화제의 주요 특징
1. 인권과 사회 정의를 중심 주제로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는 특정 국가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세계 곳곳의 인권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다룬 영화들을 초청합니다. 특히 북한 인권, 전쟁과 평화, 난민, 젠더, 표현의 자유 등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다수 소개됩니다.
2. 개방성과 시민 참여 중시
전문 관객뿐 아니라 일반 시민, 학생, 외국인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영화제 문턱을 낮췄습니다.
단편영화 공모전, 관객과의 대화(GV), 포럼, 워크숍 등 시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합니다.
3. 국제적 네트워크 확대
매년 해외 대사관, 국제기구 관계자, 해외 감독 및 작가 등이 참가해 국제적인 소통과 연대를 이룹니다.
수상작은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기회를 얻으며 국제적 확장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 뭐가 열릴까? 2025 락스퍼 영화제 핵심 프로그램 총정리!
– 올해의 주요 행사 한눈에 보기
� 단편영화 공모전
주제: 자유·정의·인권(북한인권)
장르 제한 없이 30분 이내
접수: 4월 1일~30일 / 이메일 제출
� 7개 부문 시상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등
정부기관장상, 기업상 등 외부 수상도 포함
� 해외 상영 기회 제공
수상작은 해외 영화제 진출 기회까지!
�️ 자유를 말하고, 인권을 비추는 영화제
스크린 위에 담긴 이야기들이 당신의 일상에도 울림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25년 5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함께하세요!-락스퍼 서포터즈 후기
‘자유, 정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주제로 한 락스퍼 영화제는 사회와 관객이 함께 대화하고 연대하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반 시민과의 거리감을 좁히며 인권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는 락스퍼의 취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영화제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데 제 역량을 보태 콘텐츠 제작, 행사 운영,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영화와 사회, 관객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SLIFF2025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국제영화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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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선택이 만든 현재, 이단 헌트의 마지막 선택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첫 번째 이야기인 <미션 임파서블>에서 모든 팀원이 죽는 경험을 한다. 완벽했던 팀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그는 그 죽음의 책임자처럼 몰렸다. 누명을 벗기 위해,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다시 팀을 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미션은 3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단은 줄곧 달리고, 매달리고, 뛰어내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며 세상을 지키는 선택을 반복해왔다.
이단은 팀원이 희생되는 것에 무척 예민하다. 아마도 첫 이야기의 시작에서 모든 팀원이 죽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전 시리즈에 이어진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는 시리즈 내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뛰지만, 그 여러 미션 속에서 팀원이나 자신의 주변 사람이 다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그게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당시에 크게 고려하지 않았지만 그 수많은 선택들이 이번 시리즈에서 총합이 되어 결과로 나타난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빌런인 AI 엔티티는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을 보게 되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들을 보지는 못한다. 그 인간만의 선택은 이단 헌트가 주도하게 되고, 그래서 관객들은 그의 선택을 집중해서 볼 수 밖에 없다.
[첫번째 감정] 이단의 선의
시리즈 전체를 보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이단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이단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직업으로서 IMF라는 조직에서 첩보원 활동을 하지만, 그가 하는 대부분의 임무는 세상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이나 적이 나타나면 그것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미션 임파서블> 이라는 영화 시리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장면은 아마도 이단 헌트가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일 것이다.
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료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린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에서는 스스로 선택하여 극단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차가운 배링해 깊은 바다속으로 들어가고, 비행기에 맨몸으로 매달린다. 그의 선의가 특히나 이번 영화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왜냐하면 이번 영화에선 그의 팀을 제외하면 그의 선의를 믿어주는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만들어낸 극단적인 상황속에서 다른 인물들은 최대한 공격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구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단은 모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선택을 생각해낸다.
그건 이단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어쩌면 이단 스스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선택에 대해서 이단은 망설이지 않는다. 희생되는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시리즈에서 가장 이단의 선의가 돋보인다. 지난 30년동안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단도 나이가 들어왔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이단의 얼굴을 보면 세월이 느껴진다. 이제 조금은 힘들어보이는 그 외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던의 에너지는 변함없이 선의를 위해 불타오른다.
[두번째 감정] 이단의 믿음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이단이 혼자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벤지와 루터를 비롯해, 그의 곁에는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단은 그들을 깊이 믿는다. 그 신뢰는 언제나 양방향이다. 벤지는 이단의 달리는 길을 위해 가장 정확한 타이밍으로 문을 열고, 루터는 목숨을 걸고 해킹을 감행한다. 그들은 수많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살아남았다.
이 믿음은 단순하게 동료애라고 할 수 없다.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 함께할수록 더 강해지는 연대다. 이단은 그 믿음을 전제로 어떤 결정도 감행한다. 팀을 믿기에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고, 위험한 공간으로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이 미션은 단 한 번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강력한 믿음은 때로 이단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 믿음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도 상처받고, 더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믿음과 선의, 이단의 두 가지 무기는 AI조차 예측할 수 없었던 선택을 이끌어낸다. 이단은 이번에도 그 믿음으로 세상을 구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킨다.
[세번째 감정] 이단의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 시리즈에서 종종 감춰져 왔다. 하지만 이단은 늘 사랑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약혼자가 있었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끊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낸다. 그게 이단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이단이 약혼자와 재회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찡하다. 그 순간에도 이단은 말을 아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말한다. 여전히 상대방의 안전을 바란다고.
그 이후, 이단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일종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동료에게, 팀원에게, 그리고 자신이 책임졌던 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영화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들을 아끼고,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에서도 그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팀원을 먼저 생각한다.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동료를 지키는 것이 먼저인 사람. 그게 이단 헌트다.
사랑은 결국 그가 가진 모든 감정의 원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말하지 않지만, 늘 사랑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그는 그 사랑으로 선택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바로 그 사랑이다. 이단은 이번에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방식으로 미션을 완수한다.
마지막 선택은 모든 선택의 총합이다
<파이널 레코닝>은 제목 그대로, 지금까지의 모든 미션에 대한 결산이다. 처음부터 함께해온 사람들, 첫 시리즈의 떡밥들,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약속들까지. 모든 것이 이 이야기 안에 있다. 이단은 과거의 선택들로 인해 지금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또 새로운 선택을 한다. 그건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모든 과정이 낳은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의 우리 모두의 현재는 과거의 선택이 만든 결과다. 그 선택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단의 미션은 언제나 불가능했지만, 그는 그 불가능한 임무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이단 헌트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결국 이단 헌트에 대한 헌정이다. 그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 여정을 이렇게 정성껏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시리즈가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톰 크루즈의 얼굴로 끝나는 영화
액션의 스케일은 시리즈 사상 최고다. 비행기에 매달리고, 절벽을 오르고, 잠수함으로 들어가는 장면들 모두가 놀랍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대단한 이유는, 톰 크루즈의 얼굴 때문이다. 그 얼굴엔 모든 선택이 담겨 있다. 고통도, 후회도, 믿음도, 사랑도. 그 모든 것이 담긴 얼굴이 이단 헌트라는 인물의 마지막 선택을 대변한다.
사이먼 페그, 빙 라메스, 헤일리 앳웰 등 배우들의 연기도 빛났다. 팀원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영화는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강력한 빌런 대신, AI라는 무형의 존재를 빌런으로 삼은 점도 흥미롭다.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지, 선택이란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영화이기에, 아이맥스 혹은 4DX로 감상하면 이단의 마지막 선택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끝까지 함께해줄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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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추억은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가? <로봇드림>
살다보면 차마 잊히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지나가버린 세월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각별한 사람과 그와 공유했던 시간들은 우리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추억 속에서 그들은 눈부시고, 우리는 때때로 '그'가 아니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행복을 가늠하곤 한다. 우리는 그때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그게 우리를 아쉽게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우리는 어쨌거나 새 인연을 만나 새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나가 버린 추억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저 흘러가버린 인연은 우리 안에 무엇으로 남는가? 영화 <로봇 드림>은 우리가 흘려 보낸 수많은 인연과 삶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개'는 번화하지만 외로운 대도시에 사는 시민 중 하나다. 그는 외롭다. 그 많은 시민들 중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외로우신가요?'
어느날 텔레비전 광고는 그에게 묻는다. 그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반려 로봇을 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연인은 조각한 피그말리온처럼 '개'는 반려 로봇을 조립한다. 로봇은 완벽하다. 그는 가장 순수한 눈으로 '개'를 바라보고, '개'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보다 더 절묘한 파트너는 없을 것만 같고, 둘에게 찾아온 찰나같은 여름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운명은 잔혹하고, 둘의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바다에서 논 것이 무언가 잘못된 걸까? 즐거운 물놀이 후 로봇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개'는 고철로 된 친구를 해변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로봇을 되찾아오겠노라 다짐하지만, 여름철이 지난 해변은 입구를 걸어 잠갔고, '개'와 로봇은 단절되고 만다. 나중에 다시 여름이 오고, 해변이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로봇은 자취를 감춘 후다. 영원할 것만 같던 우정이 한순간에 스러지고 만 것이다. 이별은 예고없이 들이닥친다. 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운명이란 으레 그런 것이므로.
이별은 괴롭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도록 둘은 끝없이 서로를 그린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자꾸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다. 그럴수록 서로가 보고 싶다. 재회의 기쁨을 상상할수록, 오늘의 고독은 선명해진다. 다시는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도 싹튼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야속하게도 그렇다.
결국 새로운 인연은 오고 만다. 로봇은 그저 고철로 마감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을 구원한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개는 새로운 반려 로봇을 들인다. 그러는 사이 둘은 참 많이 변했다. 이별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삶도 저마다의 길을 따라 나아가버린 탓이다. 다시 봄이 왔고, 로봇은 스쳐지나가는 옛 인연을 알아보지만, 그의 손을 잡는 대신 그를 떠나 보낸다. 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 한 곡과, 그 언젠가 나누었던 진실한 감정을 되새기면서.
My thoughts are with you
Holding hands with your heart to see you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how we knew love was here to stay
Now December found the love that we shared in September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the true love we share today
난 늘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과 한 마음이 되어서.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사랑이 지속될 거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제 12월이 되었고 저는 우리가 9월에 나누었던 사랑을 찾았어요.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오늘 우리가 나누는 진정한 사랑을.
지나간 추억은 오즈의 마법과도 같다. 그것은 찬란하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방식 그대로 재현되지는 못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의 속성이 본디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나가버린 세월과 시간들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그 향그러운 추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보다 성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중 로봇과 개가 그랬듯, 우리는 그 찰나 같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살아갔을 것이다. 그 기쁨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나눌 줄도 알게 되었을테고, 그 지나간 인연과 함께 하며 저질렀던 몇몇 실수들은 우리를 더욱 조심스러워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그를 더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되었으리라. 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유의미하다. 로봇이 개를 더는 붙잡지 않고 그를 그저 떠나보낸 것은 그가 이러한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경험과 정서를 생생하게 담음으로써 보편성을 가진다. '개'를 통해 드러나는 ;지독한 고독에 시달리며 나의 완벽한 이해자를 그리는 개인'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또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매스컴을 타던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떠올렸다. 부품이 절판되어 다시는 회생시킬 수 없어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는 그 반려 로봇들 말이다. 나는 또한 로봇과 개의 관계를 통해 우리 세계의 개와 인간의 모습을 연상했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개가 근원적인 고독을 이기지 못해 반려 로봇을 들인다는 설정은, 우리 인간이 개에게서 애정과 위안을 받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작중 반려 로봇들이 그 사회에서 받는 취급 역시 우리 사회의 '반려 동물'이 처한 현실과 닮아 보였다. 결코 우리 사회에 주류가 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삶도.
작중 '개'는 250불짜리 연 대신 70퍼센트 할인되는 연을 사야하며, 싸구려 맥앤치즈로 끼니를 떼우고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는 또한 친구를 사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쉽게 섞여들지 못하고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의 평안과 행복은 스스로 만든 ' 갈라테이아'에 의해서만 영위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사리 찾은 인연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단절되고 만다. 개가 아닌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로봇은 그저 고철에 불과하고, 로봇은 토끼, 악어 등의 타인에 의해 처절하게 이용당하고 만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수많은 현실적인 장벽에 의해 와해되고 무너져 내리는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비극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가 아닌 인연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새 사람은 온다. 흔치는 않지만, 어떤 사람은 온전히 고립된 또 다른 개인에게 기꺼이 손 내밀기도 한다. 그것은 가장 소박하지만 견고한 연대이자, 사랑이다.
사람은 참 외롭다. 오늘날처럼 개인과 개인의 삶이 단절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사리 만난 인연이 더 소중하고, 그래서 이미 지나쳐 버린 인연에 대한 미련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외로운 삶은 끝없는 부침을 맞는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사이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때때로 비참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삶의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제의 좋았던 날들에 너무 빠져들 것도 없고, 조금 전의 나쁜 일에 잠겨들 필요도 없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오늘과 내일은 온다. 우리는 우리가 맞이할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하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오늘 좀 덜 충실하면 어떤가? 내일 조금 더 충실하면 된다. 내일이 영 시원찮으면 모레에는 그보다 올라갈 길이 많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부침 속에서, 자꾸만 밀려드는 그 파도와 해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요트를 타고서 돛을 올릴 뿐이다. 요트가 없으면 뗏목이라도 타면 된다. 그게 없으면 헤엄이라도 치는 것이다. 그러다 힘들면 남의 배 좀 얻어 타고, 가끔 외딴 섬을 만나면 거기서 몸도 좀 말리고, 나처럼 외롭고 처량한 사람에게 기꺼이 손도 내밀고. 그런 좋은 추억과, 소박한 연대가 서로 엮이다보면 인연은 오고, 해는 떠오른다. 우리는 다시금 그 햇발 아래 살아가게 된다. '개'와 '로봇'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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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아이 - 모성애, 성장 그리고 정체성
줄거리
대학교에서 늘 쓸쓸한 모습으로 혼자 공부하는 그를 만난 '하나'
둘의 만남은 우연이였으나 둘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았다.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그
그는 늑대였지만, 하나는 그런 그의 모습도 사랑했고 둘은 동화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함께 보낸 하룻밤에 나은 두 아이.
눈 오는 날 낳은 '유키'와 비 오는 날 낳은 '아메'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죽게된다.
혼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하나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시골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아이들은 아빠와 마찬가지로, 늑대와 인간이 섞인 늑대인간이였고
처음에는 사람들과 크게 접하지 않으며 지낸다.
하지만, 유키는 성장하며 학교에 가고싶어하게 되고
하나는 그런 유키를 학교에 보내게 된다.
그런 유키와 달리, 어릴 때 부터 유키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메는 학교보단 집에 엄마인 하나와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하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슬슬 선택하게 된다.
감독
이름 : 호소다 마모루
필모그래피 :
늑대아이, 썸머 워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 원피스 극장판 6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만한 감독 중 한명으로,
신카이 마코토 보다 작화는 좀 떨어질지언정(좀더 부드럽고 가벼운 듯한 작화) 스토리에선 밀리지 않는다.
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갈리는데,
2012년 늑대아이 시기에 늦은 나이에 득남을 해서, 그 시기부터는 영화가 대체로 가족간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그 이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같은 경우는 청춘에 포커스를 두어,
그만의 여름세계를 창조해냈다.
대체로 작화가 신카이 마코토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지만 머리카락 한올 한올 휘날리는 이런 디테일 함이 아닌 밸런스 있는 작화를 선호해서
뭔가 스케치 하는 듯한 느낌의 작화를 선호한다.
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 들은 배경 작화나 명암 효과는 균형이 잘 맞아서 보기 편하다는 느낌을 잘 받는다.
총 평
★★★★☆ 9.0/10.0
-짧은 평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리뷰할 때, 애니라고 하는 것이 있고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작품성을 가지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의 가치를 가지며, 애니메이션이란 선입견을 그냥 깨부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득남을 한 시기인 2012년 늑대아이를 분기점으로 작품세계가 갈려나갑니다.
과거는 청춘과 그 시절의 여름을 예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지만,
2012년 이후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가족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와 모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큰 틀로는 주인공과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심도있게 잘 다루었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이 다르지만, 늑대아이만을 보면은 왜 이 감독이 포스트(차기) 하야오 라는 평가를 받는지는 충분히 이 작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여운이 적절히 남는 결말-
결말을 보면은 오묘합니다.
따뜻하며, 춥고, 달달하며, 쓴 맛이 올라옵니다.
유키와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서로 떠납니다.
유키는 인간에게 섞여 지내는 것을 선택하며 떠나고, 아메는 자신의 본질적인 거주환경인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인 이유가,
다른 가족영화들과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외적 모습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내면의 모습이 더 성숙해진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내적 모습의 성장과 이상적 어머니상을 그리며, 영화를 전개합니다.
도시로 떠난 유키와 야생으로 떠난 아메, 그 뒤에는 홀로 남은 하나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잠시 생각하며, 영화는 아메가 다 자란 늑대가 된 모습과
하나의 모습, 유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하나는 혼자 시골에 남게 되었고,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게 되며,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가 그저 행복한 결말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닌 보는 이의 관점에서 다 다르게 느껴지게
장치를 설정한 것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그냥 아이들과 엄마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에서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품을 떠나며, 엄마가 할 역할을 다 했고, 이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라고 하며, 아이들의 관점으로는 희망찰 수도 있고, 부모인 하나의 관점에선 자식을 놓아주는 심정이다 보니,
아쉽거나 씁쓸한 느낌이 잘 남게 합니다.
-따뜻한 이야기 속에 내재된 고통-
영화를 보면, 유키와 아메의 엄마인 하나는 영화 내내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으며 두 아이를 키웁니다.
영화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냥 따듯하기만 했으면, 이정도 고평가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들어나며, 아이들의 갈등과 서로 성장함에 따라 갖는
서로 다른 주관으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미래를 선택하며, 부모를 떠나는 이야기까지 그려내었는데,
이 부분에서, 하나는 진짜 헌신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부모라 말할 수 있을 만큼,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참고 버티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영화에선 이 고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보는 우리에게 잘 전달합니다.
아이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유키는 자신이 늑대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위해, 최대한 사람인척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러면서 인간으로 살려 하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동생 아메와 갈등이 생기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갈등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깔끔한 연기, 적당한 음악, 절제된 연출 =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가장 절제된 연출을 보이며,
적당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 연기를 잘 보여준 작품을 뽑으라 묻는다면,
단연코 바로 이 작품을 말할 것 입니다.
너무 과하다하게 생각하지 않게 딱 끊은 절제된 연출을 선보입니다.
이게 상당히 힘든게, 이런 가족영화에서 정체성을 추구하며 극대화하기 쉽상인데,
이 작품은 그 극대화를 최소화하며, 더욱 인간적이게 그리려 애썼습니다.
그 부분이 영화 곳곳에 드러나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적당히 절제된 듯 하며 극의 분위기를 끓어올리는 음악은 최고였다가 아닌
딱 좋았다. 수준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이 작품을 뛰어넘는게 아닌 같이 잘 화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와 아메의 연기력은 준수했으며, 미야자키 아오이의 하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제작진과 성우를 한 사람들을 봤을 때,
이 사람이야 말로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다.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절제된 연출을 하며, 성우 기용을 하지 않고, 배우를 섭외하여 주연급 캐릭터 연기를 해서
성우들의 오버하는 톤이 아닌 현실적인 톤을 더욱 잘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성장-
위에서 계속 언급했듯, 인물들의 성장에 초점이 잘 맞춰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 하면, 싱글맘, 성장, 늑대, 등 많겠지만 가장 큰 주제를 내포한 단어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사람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어느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 섞여 지내고 싶어하는 유키와
자신은 늑대라며, 늑대를 위험한 짐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야생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늑대의 삶을 추구하는 아메
둘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며, 활기찼던 유키. 내향적이며, 늘 엄마의 그늘에서 지내던 아메.
서로 다른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재자의 역할로 엄마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늑대지만,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거 없이 갈등과 행복이 공존하는 집이라는 걸 잘 보여주며
인간과 똑같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커피처럼 향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 마실 때는 처음에는 쓴맛과 신맛이 느껴지지만,
혀에 닿았을 때는 씁쓸함을 느끼고, 목에 닿았을 땐 커피 향과 따뜻함에 내려가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이상적과 현실적 두가지를 잘 늑대아이인 아메와 유키, 엄마인 하나에 잘 대입하여
성장이란 이야기를 심도있으며, 가족들이 쉽게 접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큰 칭찬을 합니다.
-관람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초반의 전개와 설정-
이 영화의 유일한 허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두가지입니다.
초반에 갑작스러운 하나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늑대의 죽음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어머니.
우선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 극의 분위기를 정 반대로 뒤집으며, 큰 서사적 흐름의 장치로 이용되는데,
그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급하게, 그냥 어영부영 매꾸는 듯 합니다.
그리고 너무 헌신적이기만 한 하나의 모습은 작품 이입에 오히려 몰입이 힘들기도 합니다.
하나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하나도 없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몇가지 점을 제외하곤 현 시점,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퇴보하는 요즘시기,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제대로 영화라고 불러볼 법한 작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는거니?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行くの?私はまだあなたに何もしてあげたことがない。)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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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탈(脫)
불일부이(不一不二), 오프닝부터 기이한 거문고 소리와 함께 전면에 떠오르는 한자어는 아리송하다. 불교 철학에서 출발한 위 구절은 ‘너와 나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 (다르게 말해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는 뜻이다. 의미를 풀어보니 이해가 더 복잡해진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을 짐작케 한다.
불치병에 걸려 삶의 막바지에 선 영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108배에 매진한다. 죽음을 맞기 전, 마치 열반의 경지에 이르려는 듯 여자친구의 애닳은 전화에도 굴하지 않고 단지 절을 할 뿐이다. 숭고하게 절을 하고, 물잔을 비우고, 산책을 하고, 단상을 기록하며 번뇌를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려하지만 도리어 생각이 많아지는 역설을 발견하는 나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홀린 듯 나무 더미 속 공간으로 기어들어가 붉은 꽃 한 송이를 보게 된다. 그 날 이후 영목은 붉은 옷의 형상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신경이 쇠약해져 헛것을 보게 된 걸까, 혹은 부다의 현현인가. 공포에 휩싸인 영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지우는 작가다. 애니메이션으로 입문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 전시를 앞두고 있지만 번아웃이 온 탓에 마감기한에 쫓기고 있다. 영감을 기다리다가, 예전에 그렸던 애니메이션이나 내보라는 기획자의 독촉 전화를 받고는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그만 둔 이유를 반추해보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끝을 두려워한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모든 것은 끝내 멈추어야 하는가? 왜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하는가? 과거 남자친구와 함께한 니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들춰보다가 어렴풋이 답을 찾고 다시 애니메이션을 그리기 시작한다.
서보형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벗어날 탈은 실험적이다. 전형적인 영화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병치시켜 풀어내다가, 종국에는 이어버린다. 죽음을 연료삼아 깨달음으로 나아가기위해 노력하지만, 죽음(미지의 형상)을 두려워하는 영목. 멈춤을 두려워하여 영원히 유예하려고 하지만, 사진(정지한 것)에서 생명을 포착하고 애니메이션(움직이는 것)을 다시 그리게 된 지우. 서로가 두려워하는 것을 열망하고 열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먹고 먹히는 관계. 영화는 순환하며 점에서 거대한 고리 모양의 구조를 띠고 있다. 마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대비되는 것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다름을 부각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상승과 하강, 멈춤과 움직임 그리고 물과 불. 영목(남성)과 지우(여성)은 각각 수직운동과 정지-움직임을 반복하며 삶(물)과 죽음(불)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가장 짜릿한 지점은 서로 다른 개념이 접합되는, 말하자면 불일부이가 실현되는 때이다. 영목과 지우가 만나는 순간, 죽은 줄만 알았던 해변의 사나이가 영목으로 환생한 순간, 저승사자 같은 빨간 옷의 여인이 지우로 치환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치 영혼을 주고받듯 성스럽게 입을 맞추며 이어진다.
지우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두 사람이 합쳐지는 장면은 불일부이를 더욱 명료하게 나타낸다. 이야기 속에서 한 남성은 한 여성의 자궁으로 기어들어가 잉태된다. 남성의 모습에서 꽃을 찾으러 나무 더미 세상으로 기어들어가는 영목이 겹쳐진다. 지우는 둥그런 베개를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출산해내는 연기를 하는데, 마치 지우가 영목을 출산한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대비되는 것을 좇던 두 인물이 결합하게되니, 영목은 죽음을 연료삼아 추구했던 깨달음보다 삶의 기쁨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지우는 끝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지니 만물은 서로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뫼비우스의 띠가 완성되는 것이다.
2018년 제작한 단편영화 <탈날 탈(頉)>에서 확장된 <벗어날 탈(脫)>은 정해진 포맷 안에서 제작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4대 3비율을 사용하며, 남녀 한 명씩만 등장시키고 거문고 음악을 사용할 것. 가히 제한된 조건 속에서 창의력이 극대화된 경우라 할 만하다.
4:3, 정확히는 1.375:1(아카데미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하면서 회화적 연출이 두드러진다. 수직운동을 반복하는 영목의 움직임을 담기에 탁월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수행에 정진하거나, 몸을 꼿꼿이 편 채로 좌선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났다. 또한 프리즈프레임을 활용하여 회화적 특성을 부각하면서도, 1초 24번 이하로 프레임을 분절하여 달리는 지우의 모습을 간격있게 표현한 장면은 움직임을 중시하는 지우의 특질을 강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Pictures)라는 영화 매체의 본질까지 환유한다.
박우재 음악감독의 거문고 연주는 혼란스러운 극의 분위기를 선율로서 충실하게 표현한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무작정 구도하는 마음, 미지의 형상과 조우하여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영목과 지우가 만나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까지. 작은 단위로 특정 비트를 표현하는 것에서 발전하여 하나의 선율로서 장면을 뒷받침하기까지 다양하게 기능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시네마토그래프를 ‘움직이는 이미지와 소리를 가지고 하는 글쓰기.’라고 표현했다. 영화는 태동 이래 끊임없이 존재론적 위협을 받아왔다. ‘제7의 예술’로 명명되며 독립된 예술로서 지위를 공고히하는가 했지만, 회화, 문학, 연극, 음악, 무용의 특징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송의 표현은 독자적인 영화의 정의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벗어날 탈>은 회화의 특징을 끌어들이면서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승화시켜 시네마토그래프로서 구현해내었다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반갑다. 이미지(쇼트)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역학과 탁월한 사운드를 잘 버무려 영화의 본질을 존중하면서도, 인접 예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저변을 확장한 실험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3년 만에야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익숙하지 않은 불교 교리를 영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표현의 한계가 직관적 동요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정신적인 것을 시각화하여 필름 위에 환원해냈다는 점만으로도 괄목할 만하다.
원을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벗어날 탈>은 부서지면서 생겨날 것을 권한다. 멸(滅)의 끝은 생(生)의 시작이고, 생의 끝은 곧 멸의 시작이니 매끈하게 이어진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정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순환의 길 위에서 마음을 기울일 것은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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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 누구나와요? 그 사람들 나오나요?
큰 스포일러는 없지만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상이나 글은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기존 마블 영화의 팬이시거나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게는 선물같은 영화입니다.
그동안 모든 시리즈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그동안의 추억과 영화의 장면, 대사들이 많이 떠오르실 거에요.
마블이 작정하고 팬서비스를 해주는 영화 같기도 합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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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큐!! 극장판 / 쓰레기장의 결전 / 많이 보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 쇼요와 켄마의 매력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끝나고 제대로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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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킬러의 카운슬러> 예고편
루 판트는 히스테리와 치매가 있는 노모를 모시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우연히 그녀의 롤 모델이자 라이프 코치인 당당한 여성 발 스톤을 만나 모든게 바뀌게 된다.
사실 살인 중독자인 발 스톤은 루를 자기의 후계자로 여기며 자기 개발을 위한 '살인자의 여행'에 동참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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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쿠라우> 티저 예고편
미지의 땅 ‘바쿠라우’.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총격으로 구멍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시신까지 발견되며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곳에 절대 발 들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