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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2025-04-02 21:06:56

지나간 추억은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가? <로봇드림>

<로봇드림> 리뷰

 

살다보면 차마 잊히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지나가버린 세월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각별한 사람과 그와 공유했던 시간들은 우리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추억 속에서 그들은 눈부시고, 우리는 때때로 '그'가 아니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행복을 가늠하곤 한다. 우리는 그때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그게 우리를 아쉽게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우리는 어쨌거나 새 인연을 만나 새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나가 버린 추억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저 흘러가버린 인연은 우리 안에 무엇으로 남는가? 영화 <로봇 드림>은 우리가 흘려 보낸 수많은 인연과 삶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개'는 번화하지만 외로운 대도시에 사는 시민 중 하나다. 그는 외롭다. 그 많은 시민들 중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외로우신가요?' 

 

어느날 텔레비전 광고는 그에게 묻는다. 그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반려 로봇을 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연인은 조각한 피그말리온처럼 '개'는 반려 로봇을 조립한다. 로봇은 완벽하다. 그는 가장 순수한 눈으로 '개'를 바라보고, '개'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보다 더 절묘한 파트너는 없을 것만 같고, 둘에게 찾아온 찰나같은 여름은 행복하기만 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러나 운명은 잔혹하고, 둘의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바다에서 논 것이 무언가 잘못된 걸까? 즐거운 물놀이 후 로봇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개'는 고철로 된 친구를 해변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로봇을 되찾아오겠노라 다짐하지만, 여름철이 지난 해변은 입구를 걸어 잠갔고, '개'와 로봇은 단절되고 만다. 나중에 다시 여름이 오고, 해변이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로봇은 자취를 감춘 후다. 영원할 것만 같던 우정이 한순간에 스러지고 만 것이다. 이별은 예고없이 들이닥친다. 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운명이란 으레 그런 것이므로.

 

 

 

브런치 글 이미지 4

 

 

이별은 괴롭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도록 둘은 끝없이 서로를 그린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자꾸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다. 그럴수록 서로가 보고 싶다. 재회의 기쁨을 상상할수록, 오늘의 고독은 선명해진다. 다시는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도 싹튼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야속하게도 그렇다.

 

결국 새로운 인연은 오고 만다. 로봇은 그저 고철로 마감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을 구원한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개는 새로운 반려 로봇을 들인다. 그러는 사이 둘은 참 많이 변했다. 이별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삶도 저마다의 길을 따라 나아가버린 탓이다. 다시 봄이 왔고, 로봇은 스쳐지나가는 옛 인연을 알아보지만, 그의 손을 잡는 대신 그를 떠나 보낸다. 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 한 곡과, 그 언젠가 나누었던 진실한 감정을 되새기면서.

 

 

 

https://youtu.be/Gs069dndIYk

 

 

My thoughts are with you
Holding hands with your heart to see you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how we knew love was here to stay
Now December found the love that we shared in September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the true love we share today

 


난 늘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과 한 마음이 되어서.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사랑이 지속될 거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제 12월이 되었고 저는 우리가 9월에 나누었던 사랑을 찾았어요.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오늘 우리가 나누는 진정한 사랑을. 

 

 

브런치 글 이미지 5
 

지나간 추억은 오즈의 마법과도 같다. 그것은 찬란하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방식 그대로 재현되지는 못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의 속성이 본디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나가버린 세월과 시간들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그 향그러운 추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보다 성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중 로봇과 개가 그랬듯, 우리는 그 찰나 같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살아갔을 것이다. 그 기쁨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나눌 줄도 알게 되었을테고, 그 지나간 인연과 함께 하며 저질렀던 몇몇 실수들은 우리를 더욱 조심스러워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그를 더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되었으리라. 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유의미하다. 로봇이 개를 더는 붙잡지 않고 그를 그저 떠나보낸 것은 그가 이러한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경험과 정서를 생생하게 담음으로써 보편성을 가진다. '개'를 통해 드러나는 ;지독한 고독에 시달리며 나의 완벽한 이해자를 그리는 개인'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또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매스컴을 타던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떠올렸다. 부품이 절판되어 다시는 회생시킬 수 없어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는 그 반려 로봇들 말이다. 나는 또한 로봇과 개의 관계를 통해 우리 세계의 개와 인간의 모습을 연상했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개가 근원적인 고독을 이기지 못해 반려 로봇을 들인다는 설정은, 우리 인간이 개에게서 애정과 위안을 받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작중 반려 로봇들이 그 사회에서 받는 취급 역시 우리 사회의 '반려 동물'이 처한 현실과 닮아 보였다. 결코 우리 사회에 주류가 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삶도.

 

작중 '개'는 250불짜리 연 대신 70퍼센트 할인되는 연을 사야하며, 싸구려 맥앤치즈로 끼니를 떼우고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는 또한 친구를 사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쉽게 섞여들지 못하고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의 평안과 행복은 스스로 만든 ' 갈라테이아'에 의해서만 영위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사리 찾은 인연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단절되고 만다. 개가 아닌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로봇은 그저 고철에 불과하고, 로봇은 토끼, 악어 등의 타인에 의해 처절하게 이용당하고 만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수많은 현실적인 장벽에 의해 와해되고 무너져 내리는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비극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가 아닌 인연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새 사람은 온다. 흔치는 않지만, 어떤 사람은 온전히 고립된 또 다른 개인에게 기꺼이 손 내밀기도 한다. 그것은 가장 소박하지만 견고한 연대이자, 사랑이다. 

 

 

 

 

 

사람은 참 외롭다. 오늘날처럼 개인과 개인의 삶이 단절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사리 만난 인연이 더 소중하고, 그래서 이미 지나쳐 버린 인연에 대한 미련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외로운 삶은 끝없는 부침을 맞는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사이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때때로 비참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삶의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제의 좋았던 날들에 너무 빠져들 것도 없고, 조금 전의 나쁜 일에 잠겨들 필요도 없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오늘과 내일은 온다. 우리는 우리가 맞이할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하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오늘 좀 덜 충실하면 어떤가? 내일 조금 더 충실하면 된다. 내일이 영 시원찮으면 모레에는 그보다 올라갈 길이 많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부침 속에서, 자꾸만 밀려드는 그 파도와 해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요트를 타고서 돛을 올릴 뿐이다. 요트가 없으면 뗏목이라도 타면 된다. 그게 없으면 헤엄이라도 치는 것이다. 그러다 힘들면 남의 배 좀 얻어 타고, 가끔 외딴 섬을 만나면 거기서 몸도 좀 말리고, 나처럼 외롭고 처량한 사람에게 기꺼이 손도 내밀고. 그런 좋은 추억과, 소박한 연대가 서로 엮이다보면 인연은 오고, 해는 떠오른다. 우리는 다시금 그 햇발 아래 살아가게 된다. '개'와 '로봇'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처럼.

 

작성자 . 토리

출처 . https://brunch.co.kr/@heatherjorules/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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