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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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최초 힙합영화
- 줄거리
줄거리라고 할 게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 느낀 점
학생의 입장으로서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힙합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고,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는 한 명은 부유한 집안 외동아들, 한 명은 가난한 집안이지만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으로 캐릭터를 잡았다.
이로 인해서 현실에서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모두 안 좋은 이미지로 바라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현재의 학생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질이 안 좋은 학생들 말고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 욕이 많이 나오는 부분 또한 랩하고 힙합 하는 애들은 다 그럴 것이라고 작가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나 싶었다.
중학생이라는 설정을 잡은 것 같은데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고등학생으로 설정을 했어야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이미지 말고도 극 중에서 나오는 대사나 상황들을 보았을 때 중학교 3학년은 극에 이입하기에는 깨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운전을 한다, 칼을 들고 다닌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아리와 함께 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송주는 갑자기 마이크 스탠드를 고치러 간다.
근데 이 전에는 송주가 마이크 스탠드 근처에 가거나 그쪽을 쳐다보는 장면이 없어서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스탠드를 고치는 게 진짜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왜 이 이야기가 들어갔는지, 왜 이 장면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건 많고 담고 싶은 건 많은데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나서는 내가 뭘 본 건지도 모르겠고, 뭘 느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헷갈리고,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저 등장인물이 왜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졌고, 이 이야기는 왜 들어간 것이며 엔딩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장면들도 이해하고 넘어갔을 텐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대체 그 부분들이 왜 들어간지도 몰라서 그냥 불편했다.
(+주연 와 송주가 햄버거를 만들 때 장난치면서 했던 대사들, 전체적으로 많은 욕, 오토바이 교통사고, 중3의 운전 등)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고, 시나리오가 좋아야 한다는 이유 또한 알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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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드리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 해당 리뷰는 씨네랩 초청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감독) 파얄 카파디아
출연) 카니 쿠스루티, 디브야 프라바, 차야 카담
7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 4월 23일 국내 개봉한다. ‘우빛상모’로도 불리는 이 영화는 인도 뭄바이에서 살아가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으며,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인도 영화
우리가 인도 영화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키워드는 춤과 음악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세 얼간이>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인도 영화의 흥겨움과 즐거움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또, 영화 산업이 활발한 나라인 만큼 ‘발리우드’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인도 영화 산업에 대해 왠지모를 친숙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의 머릿속 인도 영화의 이미지와는 다른 내러티브를 갖는다. 제목과 포스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빛상모’는 차갑고 진지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동시에 투영된 영화이다.
빛과 어둠
이 영화는 뭄바이의 밤 풍경으로 시작한다. 도심의 불빛은 꺼지지 않은 채 빛난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여러 광원은 그들과 함께 발광한다. 어둠이 깔린 이곳에서 그들의 존재는 빛을 통해 드러난다. 빛과 어둠은 흔히 상반된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가깝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 공존한다. 만일 우리에게 어둠만이 존재했다면, 그것이 어둠인지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과 매일 아침 찾아오는 햇살은 우리의 세계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다만 상대적으로 어둠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앞을 볼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우리의 존재감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의 필요성은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크게 부각된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내가 중심이라 생각했던 이 세계에서 수많은 중심을 발견하며, 특별하고 싶었던 삶에서 평범함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도 확장하는 우주에서 인간의 신체는 무척이나 작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과거를 선망한다. 무지에 가까운 순수함은 정제된 지식의 총합보다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은 우리를 위축시키고 후퇴하게 한다. 영화 속 그녀들 또한 막막한 현실을 마주한다. 여러 사회적, 문화적 이해관계로 얽힌 그들의 현재는 무척이나 어둡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들의 마음 속에 한 줄기 빛이 드리운다.
마음에 드리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하지만 빛을 찾아낼 두 눈이 존재한다. 가로등의 빛, 가게 천장에 달린 형광등, 줄에 매달린 LED 전구. 어둠 속에서 우리의 동공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면 내면의 어둠 속에서는 어떻게 빛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저버린 수많은 기대와 희망은 우리를 다시금 작게 만들었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능력이 남아있다.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의 현실은 상상이 거짓이었음을 방증하는 듯하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현실과 상상은 상반된 개념이 아닌 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점이다. 우리의 상상은 현실 속의 이미지, 이야기를 통해 생겨났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에 드리운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상상 그리고 현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보고 듣고 느껴줄 수 있는 누군가. 이 영화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에 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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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정식보단 시끌시끌 투게더지
쓸쓸한 고독정식을 먹는 것보단 시끌시끌하지만 투게더가 더 보기 좋다는 걸까. 솔로보다 팀이 낫다고 '더 마블스'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너무 재미없고 유치하게 풀어낸다는 게 아쉽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5의 3번째 영화이자 캡틴 마블의 두 번째 실사영화인 '더 마블스'는 우주를 지키는 최강 히어로 캡틴 마블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가 초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모니카 램보(티요나 팰리스), 미즈 마블 카말라 칸(이만 벨라니)과 위치가 바뀌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새로운 팀플레이를 펼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 캡틴 마블 캐릭터 설정이 다른 캐릭터들보다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닌 '먼치킨'에 가깝기 때문에 재밌게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크리족 리더이자 빌런인 다르-벤(자웨 애쉬튼)이 자신의 나라 할라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아이템 퀀텀 뱅글과 그로 파생된 점프 포인트 여파로 캡틴 마블, 모니카 램보, 그리고 미즈 마블이 서로 엮이게 되는 스토리로 밸런스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풀버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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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차티드 / Uncharted, 2022
한창 인터넷 방송을 보았을 때, 그때 "게임"섹션에서는 다양한 콘솔 게임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게임들을 볼 수 있었지만, 가장 공통된 주제는 "블록버스터(영화) 뺨치는 게임"이었고 이 조건을 충족시킨 건 <언차티드>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들려온 해당 게임의 실사화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들려오는 건 '제작이 안된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데이비드 O. 러셀"을 시작으로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숀 레비", 그리고 <A-특공대>의 "조 카나한", 그리고 <좀비랜드>와 <베놈>을 연출한 "루벤 플래셔"까지 이르기에 수많은 감독들이 오간 다음에 만들어졌고,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과연, 기대만큼 잘 나왔는지?' - 영화 <언차티드>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욕에서 "바텐더"를 하고 있는 "네이선"에게 한 남자가 접근합니다.
자신을 "설리"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그에게 "마젤란의 황금"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건네는데요.
잠시, 고민을 하지만 "네이선"은 이를 받아들이지만 이를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게임에서의 느낌을 영화로 줄까?
1. 게임에서의 장점이 영화에선?
앞서 말했듯이 영화 <언차티드>는 동명의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렇다는 건, 이미 인정받은 이야기라는 동시에 팬들이 원하는 기대치가 분명히 존재했을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언차티드>만의 강점이 뭔지를 소개하는 것이 해당 영화를 재밌게 바라볼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게임 <언차티드>는 무엇이 재밌길래?' - 이렇게, 영화까지 만들게 되었을까요?영화 같은 게임, 영화가 된다면?
앞서 말했듯이 게임 <언차티드>는 "블록버스터(영화) 뺨치는 게임"입니다.
그만큼인 게임에서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장소와 거기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은 게임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특히, 그곳에서 "퍼즐"을 맞춰 보물로 가는 그 과정은 <인디아나 존스>시리즈를 떠오르게 만드니 몸만 들썩이게 만드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기대를 걸어본 영화 <언차티드>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너무나도 평범한 작품이었습니다.2. 너무나도 평범해진 원작
물론, 이에 있어 많은 분들이 "게임의 장점들이 평범한 블록버스터와 큰 차이가 없지 않으냐?"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변을 하자면, 해당 게임이 나온 2007년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당시에 이런 스케일을 좋은 그래픽으로 밀어붙이는 게임이 드물었기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에 열광하고 해당 영화판에 기대를 한 겁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그 무대를 영화로 옮기니 보이는 기준점이 달라지고 맙니다.굳이, <언차티드>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만든 작품들은 더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언차티드>라는 걸 어떻게 알죠?
여느 작품과 똑같다면, 원작 팬들에게 '이 작품이 <언차티드>라는 걸 어떻게 알리느냐?'라는 중요한 과제가 되는데요.
그렇기에 우리는 "싱크로율"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말했듯이 '하얀색 민소매 나시와 청바지, 그리고 콧수염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듯이' 그저, 이름만으로 해당 캐릭터들을 납득한 수는 없어 이미지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톰 홀랜드 - 마크 월버그"의 선정은 원작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라 생각합니다.3. <언차티드>라는 제목이 없다면, 알 수 있을까?
게임에서 선보이는 "네이선"은 상당히 마초스러운 이미지이나 시종일관 구시렁거리고, 어딘가 허당스러운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톰 홀랜드"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이 적합하나 마초보다는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죠.
여기에 "설리"의 "마크 월버그"는 그냥 "마크 월버그"이니 캐릭터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였고요.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가 유사 부자관계로 비쳐 마치, "토니(aka. 로다주)"로 보이는 착각마저 일으키니 더더욱 <언차티드>로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이야기마저, 새로워?
이렇게, "싱크로율"도 <언차티드>를 못 알아보는 상황에서 선보이는 이야기도 <언차티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을 올라타는 장면은 원작 게임에서 사막이었지만 해당 게임에서는 바다로 대체합니다.
이처럼 해당 게임에서도 보여준 장면이나 몇몇 부분들을 바꿀 만큼 각색을 거친 것이 보이는데,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들을 짜깁기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이라도 원작을 즐겨본 팬들이라도 영화 <언차티드>는 새로운 느낌이겠으나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익숙함도 선사합니다.4. 평범한 시작이 된 1편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언차티드>는 게임을 떠나 평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을 올라타는 장면은 원작 게임에서도 선보인 스폿이나 이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서 볼법한 장면으로 여길 만큼 평범해졌습니다.
이외에도 배를 헬기에 매달아 하늘을 나는 마지막 액션까지 스케일에 신경 쓴 장면들도 있지만, 본 작품만의 시그니처로 받아들이기에는 역시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네요.그래서, 또 속편을 만들자고?
그렇게, <언차티드>는 마무리가 되지만 추후 선보이는 2개의 쿠기로 보아선 향후 시리즈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는듯합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원작 게임의 "설리"를 인식한 외모부터 개선된 방안을 보여주나 가장 문제인 "톰 홀랜드"의 "네이선"은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너무 어려 보이는 것도 참, 그렇네요.※ 하늘에서 떨어지고 "네이선 - 클로에"가 한 해변으로 도착하고서, 한 행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 게임의 "네이선 드레이크"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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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내버렸던 사랑의 우아한 복수극
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 2016)
“스스로 내버렸던 사랑의 우아한 복수극”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16분
감독 : 톰 포드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에이미 아담스, 마이클 섀넌, 애런 존슨, 아일라 피셔
개인적인 평점 : 4/5
사랑을 유지하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면 눈물 날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놓쳐 버리고 나서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모든 것들을 쏟아 쟁취해낸 사랑과 권태, 이별과 배신. 그 뒤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감정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지만,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중에서도 꽤 독보적으로 우아하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명예와 부, 잘 나가는 남편까지. 다른 이들이 부러워할 것들을 모두 가졌지만 행복보단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주인공 ‘수잔’이 한 택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손가락을 베이면서 겨우 뜯은 소포엔 오래전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가 들어있다. 출판하기 전, 꼭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바쁜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차차 사랑이 시들시들해지던 찰나, 남편과 정반대였던 전 연인 ‘에드워드’의 소설은 수잔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왠지 그때가 생각나 설레기도 하고 말이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은 부부와 딸로 구성된 토니의 가족이 텍사스 서부를 여행하다 휘말리게 된 끔찍한 사건을 그린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황량한 사막을 헤맨다. 소설 속 사건과 소설을 읽고 있는 수잔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나열되고, 수잔은 소설과 겹쳐지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가고 마지막에 닿아서는 꾹 눌러놨던 본심을 소리 없이 터트린다. 그리고 무기 하나 없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겨진 이를 사정없이 찌른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 수잔은 에이미 아담스가, 에드워드와 토니는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했고, 에드워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비, 레이 역은 마이클 섀넌과 애런 존슨이 맡았다. 작은 구멍 하나 없는 탄탄한 출연진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건 제이크 질렌할이었다. 에드워드와 토니, 1인 2역을 연기하며 각자 다른 상실의 아픔을 연기하는 그의 괴물 같은 모습에 나는 마음을 탈탈 털려버리고 말았다.
톰포드 감독은 전작 <싱글맨>에서도 그러했듯, 이번에도 역시 색이 가진 고유의 느낌과 옷감의 텍스쳐를 이용해 이야기를 막힘없이 끌어간다. <싱글맨>이 무채색과 유채색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녹색과 빨강. 보색의 경계. 부드러운 드레스, 고급스러운 코트와 거친 워크 셔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가 활용한 색 중에서도 가장 집중할만한 건 바로 파란색이다. 녹색과 파란색, 그 중간에 있는 영롱한 색. 톰포드 감독은 (위에 나열한) 네 주연 배우들의 눈이 가진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화면에 담아낸다. 마치 이 푸른빛을 아름답게 담아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느끼기 나름이겠지만, <녹터널 애니멀스>가 가진 색의 절반은 이 배우들의 눈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정말 지나치게 아름답다.
녹터널 애니멀스 줄거리
모든 것을 가졌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수잔’ 어느 날, 소설가를 꿈꾸던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받는다
그의 이야기 속 슬프고 폭력적인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수잔’은 잊었던 과거의 기억으로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변해버린 사랑과 상처
에드워드는 말한다. “누굴 사랑하면 노력하라.”고. <녹터널 애니멀스>는 사랑을 위해 총을 든 남자가 등장하는 소설이자 사랑을 잃은 남자, 사랑을 버렸던 여자에 대한 영화다. 수잔은 에드워드를 두고 바람을 핀 결과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지만, 모든 걸 갖고도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는 여자다.
수잔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모진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인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가 지망생 에드워드를 선택한다. 수잔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신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며 수잔을 말리지만, 수잔은 엄마와 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기다려보렴. 우린 모두 자기 엄마처럼 변하게 돼.”라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잔과 에드워드는 사랑의 결실을 맺었지만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수잔의 눈빛은 예전과 같지 않다. 새로 쓴 글의 피드백을 부탁하는 에드워드에게 수잔은 첫 부분부터 읽기 싫어진다며 너의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질책한다. 창의성을 내려놓고 안정을 택한 수잔과 여전히 창의성을 중시하는 에드워드의 관계는 당연하게도 틀어진다. 수잔은 진심을 가진 에드워드를 두고 허영으로 가득한 허튼에게 마음을 뺏기고 에드워드와 함께 가진 아이를 지운다. 에드워드는 모든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소설에 담은 죽어가던 순간
어쩔 수 없이 깨져버린 사랑이 아닌 지켜내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잔인한 사랑의 배신. 에드워드는 그 배신감과 슬픔을 녹여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수잔에게 보낸 ‘녹터널 애니멀스’다. 내 이야기가 아니면 쓰지 못하겠다던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이 죽어가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겪은 상실의 아픔을 토니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토니는 상실의 원인을 찾아 삭막한 사막을 헤맨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상처를 준 사람, 수잔은 이 잔인하게 끝난 사랑의 아픔을 모른다. 수잔은 자신이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마음 편히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에드워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revenge’라고 적힌 작품을 사놓고 구매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고통을 모르기에 그가 복수를 꿈꿀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잘못과 에드워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에드워드가 보낸 자신의 별명을 제목으로 사용한 소설을 선뜻 받아 들지 못했을것이다. 심지어 수잔은 에드워드의 메시지를 보고 마치 첫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처럼 신경 써 치장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준 상처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에드워드를 그저 옛 연인, 함께 꿈을 꿨던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웃으며 약속 장소에 나온다. 그리고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상대방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바라는 건 재회가 아닌 복수. 똑같은 아픔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는 걸. 수잔은 그걸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젠 에드워드와 토니가 삭막한 사막을 헤맬동안, 행복한 도시를 누볐던 수잔이 아플 차례다. 소중한 사랑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후회, 자신이 한 잘못(바람)을 그대로(허튼의 바람) 돌려받을 타이밍이다.
에드워드는 나약해서 사랑을 잃은 걸까?
수잔의 주변인들은 말한다. 에드워드는 나약한 사람이었고, 새로운 남편 허튼은 나약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설 속 인물들은 말한다. 토니가 나약해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과연 나약함은 사랑의 적인 걸까, 에드워드는 나약한 사람이었던 걸까?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누군가의 방해, 상대방의 이기심으로 사랑을 잃었다. 결코 나약한 모습 따위는 보인적이 없었다. 그저 지켜내는 방식과 행동 타이밍이 달랐을 뿐, 에드워드는 강한 사람이다. 긴 고민의 시간을 이겨내고 우아한 복수를 성공했으니까.
소설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에드워드도 이 복수에 대해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걸로 보인다. 복수를 위해 총을 손에 쥔 토니는 매번 망설임을 반복하고, 그를 돕던 보비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에드워드는 그렇게 자신의 소설 속 인물에게 위로를 받으며 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복수에 죄책감을 느끼던 에드워드의 마음은 복수를 마치고 끝내 자신에게도 총을 겨눈 토니의 모습을 통해 투영된다.
지나간 상처를 기록하고, 그 상처를 준 인물에게 마음을 내보인다는 건 엄청난 고민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에드워드를 어떻게 나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에 처절한 감정들을 모두 절제한 깔끔하고 완벽한 마무리까지. 이 복수를 준비하며 에드워드도 꽤 오랜 기간 아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수의 끝에서 맞이한 토니의 죽음과 함께 아팠던 과거의 에드워드도 사라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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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아어 단어에 아로새긴 2,840개의 이름
외국어 학습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말 하나를 더 배웠을 뿐인데, 삶의 너비가 달라지거든요.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만큼 늘어나는 기분은 뿌듯함 그 이상입니다. 제가 직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태국어 공부를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지요. 그런 제가 어찌 <페르시아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보고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사유에 깊이를 더하는 영화를 사랑합니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사랑해 마지않는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요. 이 작품은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독일군 장교와 살기 위해 페르시아인이 된 유대인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몇몇 장면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장면의 의미를 추론해내려 애썼죠. 지금부터 지난 며칠간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이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눠보겠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12월 7일(수)에 진행된 <페르시아어 수업>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2022년 12월 15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페르시아어 수업
Persian Lessons
독일의 패배와 함께 막을 내린 제2차 세계대전, 나치는 수용소의 모든 기록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수용소를 거쳐 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한 생존자가 있습니다. 그는 무려 2,840명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1945년으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대인 '질'은 강제로 끌려가던 독일군 트럭 안에서 굶주림에 지친 한 유대인에게 샌드위치를 건넵니다. 그는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어 치우지만, 샌드위치의 효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이 트럭 안의 유대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모조리 죽여버렸거든요.
그런데 '질'은 총격 속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습니다. 그의 생존을 눈치챈 독일군은 다시 총을 집어 들죠. 바로 그때, '질'이 샌드위치의 대가로 받은 페르시아어 책을 보여주면서 외칩니다. "저는 유대인이 아니에요. 페르시아인입니다!" 이렇게 '질'은 목숨을 건집니다. 우연히 얻은 페르시아어 책과 우연히 빗나간 총알 덕분에요. 그렇게 그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길 원하는 독일군 대위 '코흐'와 만납니다. 가짜 페르시아인이 된 '질'은 매일 '코흐'에게 일대일로 페르시아어 단어를 가르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말이죠.
영화의 초반 십여 분을 글로 정리했을 뿐인데, 앞으로 유대인 '질'이 겪을 고난과 역경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이렇듯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독일군과 가짜 페르시아인이 된 유대인이라는 인물 설정은 시작과 동시에 이야기에 서스펜스를 엮어 넣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그 어려운 일을 시작부터 훌륭하게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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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싸한 외국어 단어는 쉽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렇게나 뱉어낸 말을 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수용자 명부 관리와 식사 배급을 담당한 '질'은 가짜 페르시아어를 암기하기 위해 수용자들의 이름을 차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로 합니다. 그는 수용자 명부를 사전 삼아 단어를 만들고, 식사 배급을 위해 수용자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뜻을 되새깁니다.
"지겨워서요. 두려운 게요." <페르시아어 수업>에서 제가 꼽는 가장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영화 내내 우리는 '질'의 분투를 목격합니다. '빵'과 '나무'를 같은 단어로 번역해 '코흐'의 의심을 살 때, 자로 교묘하게 가려진 수용자 명부에서 '질'이 만들어낸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가 보일 때, 우리는 '질'이 느끼는 불안감과 긴장감, 그리고 두려움을 함께 경험합니다.
'질'은 저 말을 뱉은 뒤, 다음 날 수용자 학살이 자행되는 수용소로의 이동을 선택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두려워야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페르시아어 수업>은 단 두 마디의 말로 삶이 죽음보다도 처절했던 그때의 비극을 오롯이 설명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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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대위 '코흐'는 아마 몰랐을 겁니다. 그들만의 언어가 상상 이상의 유대감을 형성하리라는 것을요. '질'을 향한 '코흐'의 특별 대우는 독일군 내에서도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코흐'는 꿋꿋이 '질'을 보호합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옷을 줍니다.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다른 수용소로의 이동을 막고, 모든 수용인을 총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도 '질'을 구해주죠. 두려움에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고, 자신을 직함 대신 이름으로 부르라고 말하는 장면은 심지어 다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두 사람만의 언어로 대화하고, 시를 지어 '질'에게 읊어주는 장면 또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요.
'코흐'는 독일군 장교이긴 하지만, 독일군 사이에서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요리사 출신의 조리병입니다. 그런 그에게 '질'은 둘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됩니다. 이렇게 피어난 애정은 결말에 다다라 테헤란 공항에서 맞닥뜨릴 '코흐'의 절망을 극대화합니다. 테헤란 공항에야 비로소 자신이 배운 언어가 페르시아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코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는 모르지만, '질'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느꼈을 절망에는 절대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그가 불쌍하게 느껴졌을까요? ‘왜 이런 마음이 들지? 잊지 마, 그는 나치라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밀려드는 동정심을 막기가 어려웠습니다. 원래 요리사였던 '코흐'는 전쟁 이후 테헤란에서 독일 식당을 열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테헤란에 사는 동생을 향한 애정도 가득했죠. 그는 꿈을 위해 밤마다 침상에서 페르시아어 단어를 외웠습니다. 식당을 차리려고 한다는 소박한 꿈도, 동생을 향한 애정도, 열심히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치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그가 가혹한 결말을 맞이하니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겼던 겁니다.
그 밖에도 <페르시아어 수업>에는 나치군의 인간적인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소풍을 떠나고, 노래를 부르고, 서로 사랑하고, 헤어지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사과를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었어요. 단지 잘못된 신념이 그들을 악마로 만들었을 뿐이죠.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 <페르시아어 수업>은 인간의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유대인을 가차 없이 짓밟는 나치의 잔인함을 부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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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수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독일군 ‘코흐'도 길거리에 서 있던 나치가 멋져 보여서 입당한 것이라고 고백한 것처럼요. 빠르게 흐르는 강물은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듯이 시류 역시 거스르기가 힘드니까요. 거센 흐름에도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페르시아어 수업>과 같은 영화는 재현의 방식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그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잊지 않도록, 늦었지만 피해자와 희생자의 안녕을 영원히 기원하도록 말이죠.
Summary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원하는 독일군 장교 ‘코흐’. 살기 위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한 유대인 ‘질’. ‘질’은 살아남기 위해 '코흐'에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고 매일 밤 거짓으로 단어를 만드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바딤 피얼먼
출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라르스 아이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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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영국 역사 속 실제 기록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역사ㅣ킹스맨 프리퀄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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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태프
제작사: 20세기 폭스, 마브 스튜디오, 클라우디 프로덕션
배급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매튜 본
제작: 매튜 본, 데이빗 리드, 애덤 볼링
각본: 매튜 본, 칼 가이듀섹
원안: 매튜 본
출연진: 해리스 디킨슨, 레이프 파인스, 젬마 아터튼, 다니엘 브륄, 자이먼 혼수, 스탠리 투치 외
음악: 헨리 잭맨
개봉일자: 2020년 9월 18일-킹스맨 시리즈 프리퀄
1차 세계대전 배경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 #킹스맨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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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루이스 웨인 :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메인 예고편
모든 동물이 행복해지길 바랐던 엉뚱한 천재 화가 ‘루이스’(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림 말고는 모든 게 서툴렀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삶의 전부,
‘에밀리’(클레어 포이) 그리고 고양이 ‘피터’.
모두를 다정하게 끌어안을 가장 사랑스러운 로맨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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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탄적일천> 메인 예고편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증발해버린 남편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된 '자리'. 사랑을 포기하고 정략결혼을 택한 오빠의 불행한 인생을 지켜보다 집을 떠난 '자리'는 연인 '더웨이'와 타이페이에 정착하지만 결혼생활은 한없이 외롭고 위태롭다. 하루아침에 함께할 미래를 그리던 이의 손을 놓쳐버린 '웨이칭'. 유학길을 떠난 지 13년 만에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타이페이로 돌아온다. 귀국 공연을 몇 시간 앞둔 그녀에게 옛 연인의 동생 '자리'가 찾아온다. "그날 해변에서 사고가 있었어" 어느 덧 소녀에서 여니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간절할수록 잡을 수 없었던 사랑과 행복을 바랏던 지난날을 돌아보는데 ..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