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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의 판타지아 그리고 우드잡
2015년 어느 날, 좋은 영화라 같이 보고 싶다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날은 상영 마지막 날이었고, 관객석은 꽉 차 있었다. 내가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대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정보는 배경이 일본이라는 것.
배우도 감독도 아무것도 모른 체 영화 관람이 시작되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흑백이라면 좀 답답할 것 같지만 몰입도가 높은 영화라 어느새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이 흑백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 중심엔 조감독 '미정'역의 김새벽 배우가 있었다. 영화감독 태훈과 새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 나라현을 방문한 미정. 그녀는 외지인임에도 자연스럽게 마을에 녹아 들어가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 필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그녀의 연기는 이후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어서 그랬을까? 1부와 2부의 주인공이 같은 사람들인데, '배우가 바뀌었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남주인공인 ‘이와세 료’씨는 2부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3일 동안 일부러 살을 까맣게 태웠다고 했고, 여주인공인 ‘김새벽’씨는 영화가 전환되는 시점에 머리를 풀고 나왔다. 참 신기하게 2부의 새벽씨는 다른 여자라고 느껴질 정도로 예뻤다.
영화는 큰 굴곡 없이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힐링 무비였다. 그리고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끝나고 난 후, 고조라는 일본의 어느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듯 느껴졌다. 또 영화 내내 떠오르던 미우라 시온의 책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영화 '우드잡'으로 개봉했는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함께 보기 좋은 영화다.
순서는 조금 더 자극적인 우드잡을 뒤로 해야 한다.
워낙 미우라 시온의 원작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좋아해서 영화 '우드잡'을 보기 전에 기대와 불안감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아, 좋다."라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는 원작 소설과 약간 다르지만, 그 다른 점이 영화를 더 살렸다.
대학 시험에 떨어졌는데, 여친에게 차이기까지 한 우드잡의 주인공 히라노. 홍보 전단의 모델이 예쁘다는 단순한 이유로 산림관리 연수에 지원한다. 깊고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다뤄야 하는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의 무서움을 모른 체, 모델만을 찾아 가무사리 마을에 떨어진 히라노. 휴대 전화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식객으로 산림관리 연수를 시작한 그. 고된 노동에 열두 번도 더 도망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어느새 벌목과 산림관리에 익숙해져 가고, 그를 가무사리로 이끌었던 홍보 모델인 이시이 나오키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따뜻하고 먹먹한 소설 '가무사리 숲의 나날'에 스윙걸즈의 감독인 야구치 시노부의 유쾌함을 덧입혀 탄생한 영화 우드잡. 장면 장면을 사진으로 소장하고 싶은 영화다. 눈이 편해지면서 마음도 편해지는 영화의 색감도 좋았지만, 그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히라노 유키역의 소메타니 쇼타의 구부정한 어깨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영화다.
소메타니 쇼타의 어벙한 표정은 우드잡의 별책부록.(귀여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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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복귀 출연료 1100억 +@ 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연출하게 된 루소 감독은 "빅터 폰 둠을 전 세계 영화관에 선보이려면 이 캐릭터를 연기할 세계 최고의 배우가 필요했다"며 "마블 멀티-유니버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존재로서 빅터 폰 둠을 연기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고 다우니 주니어를 소개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 전 세계 15억 달러 돌파
<인사이드 아웃 2>가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익 15억 달러를 돌파하며 애니메이션 영화 역사상 최고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이전 기록 보유작인 <겨울왕국 2>를 넘어선 기록입니다.
또한 역사상 12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되었으며, 이로써 디즈니는 역대 최고 수익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영화 10편 중 7편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차기작 <디스클레이머> 스틸 공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디스클레이머> 시리즈 스틸컷이 공개되었습니다.
24년 10월 11일에 Apple TV+를 통해 방영하는 오리지널 심리 스릴러 미니시리즈로 케이트 블란쳇, 케빈 클라인, 코디 스밋 맥피, 정호연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디스클레이머>는 주인공이 한 소설의 내용이 자신의 오랫동안 과거에 뭍혀 있기를 바랐던 이야기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빌런으로 복귀한 로다주 위기의 마블 구할까
마블은 지난 27일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로다주가 26년 5월 개봉하는 <어벤져스: 둠스데이>에서 닥터 둠으로 돌아온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연출은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등을 연출한 루소형제 감독이 맡았으며 보도에 따르면 마블에서 루소형제감독, 로다주를 영화에 참여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트위스터스> 내한 무대인사 일정 공개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위스터스>의 정이삭 감독이 내한을 확정한 가운데, <미나리>로 호흡을 맞춘 배우 한예리와 GV에서 다시 한번 재회한다고 합니다.
영화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 정면돌파에 나서는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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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한 남성 서사마저 '예술'로 만드는 거장의 저력
표면만 보자면, 레오 카락스 감독의 신작 〈아네트〉는 다소 뻔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남성 예술가(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 맥헨리)가 여성 예술가(오페라 가수 안 델그레코)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아내는 승승장구하는 데 반해 자신은 정체되고 퇴보한다는 생각에 열등감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는 점차 폭력적으로 행동하며 아내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열등감이 해소되지 않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한다. 아내뿐 아니라 딸도 자기 욕망에 따라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 파국 이후에 또 다른 파국이 닥친다. 점점 꼬여만 가는 그의 삶은 철저한 외로움, 고독으로 귀결된다.
즉, 〈아네트〉는 다소 뻔한 방식으로 남성 예술가 서사를 재현한다. 〈아네트〉에 레오 카락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부분적으로나마 담겼다는 점도 감독이 ‘고독한 남성 예술가’라는 구닥다리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케 한다.
하지만 영화 심층의 주제의식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표면의 주제의식을 전복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선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던 레오 카락스의 전작 〈홀리 모터스〉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홀리 모터스〉 스틸컷
주인공은 매일 다른 역을 연기하는 배우 오스카다. 그는 구걸하는 노파, 3D 모션 연기자, 흉측한 광인, 괴팍한 아빠, 악기 연주자, 살인자, 부자 노인, 원숭이 등으로 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짜’ 오스카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무대 뒤에 ‘진짜 오스카’와 무대 위의 ‘배우 오스카’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오스카는 그가 연기하는 배역 그 자체다. 배역이 바뀔 때마다 변주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홀리 모터스〉는 인간의 주체성이 본질적인 자아에 근거한다는 전통적 철학 명제에 반기를 든 수행성 이론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우리는 무대 뒤에 ‘진짜 나’가 따로 있고, 사회생활(무대 위) 중에는 필요로 하는 자아를 상황에 맞춰 연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행성 이론은 이런 구분을 거부하며 본질적 주체·자아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흔히 우리가 본질적 자아라 일컫는 것이 상황에 따른 수행적 이미지의 연속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수행성 이론을 〈홀리 모터스〉에 대입해 보자면, ‘진짜 오스카’가 배역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매일 오스카가 연기하는 다른 배역의 연속이 오스카 그 자체다.
수행성 이론은 인간을 상황적·맥락적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본질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일례로,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우리가 본질적이라고 여기는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가 ‘남자답게’, ‘여자답게’ 반복적으로 행동한 결과 만들어진 상상적 구성물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젠더 역할의 수행적 반복이 성별 범주를 '본질'로 착각되게끔 만든다. ‘남자’와 ‘여자’라는 본질이 있어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는 게 아니라,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강제하는 사회가 남녀라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아네트〉 스틸컷
〈홀리 모터스〉가 수행성 이론을 다소 불친절하게 영화화한 작품이었다면, 〈아네트〉는 이를 더욱 극적으로(동시에 암시적으로) 드러낸 영화다.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주인공 헨리 맥헨리는 자신의 쇼에서 “코미디는 살해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유일한 방법”이라 익살스레 말한다. 그가 아직 안 델그레코를 만나 열등감에 무너지기 전의 일이다. 자신은 '무대 위'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헨리의 자기재현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헨리는 범죄가 탄로 나 재판을 받으며 진실을 말할 것을 추궁받자 전혀 다른 말을 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면) 날 죽일 테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입을 열지 않는다. 이 대사는 이제 헨리가 더 이상 무대 위에 있지 않음을, 즉 그가 무대에서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무대 위의 헨리는 진실을 말해도 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대 위에서 추방당한 그는 이제 더 이상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무대 밖의 헨리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수행성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수행성 이론에서 ‘무대 밖’은 없다. 우리는 모두 ‘무대 위’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헨리의 두 번째 말은 그가 삶의 바깥으로 튕겨 나갔음을 의미한다. 그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공간, 즉 무대 밖에 있음을 인정하는 건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패배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아네트〉 스틸컷
영화는 헨리의 딸 아네트의 대사를 통해 무대 밖으로 내쳐진 헨리의 ‘죽음’을 확언한다.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 아네트는 내내 인형으로만 등장한다. 아네트가 자기 의지를 가지지 못한 채 헨리의 비뚤어진 예술욕에 수동적으로 이용되었음을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형으로만 나오던 아네트가 사람으로 바뀌는 장면이 있다. 바로 그가 헨리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때다. 아네트가 자기 의지를 갖고 처음 말하는 순간 그녀는 인형에서 사람이 되었고(생명을 얻었고), 사람이 된 후의 첫 대화를 통해 아버지를 무대(삶) 밖으로 완전히 추방했다. 거만하게 군림하다 아내와 딸, 아내의 또 다른 연인에게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가했던 헨리에게 이제 남은 삶(무대)은 없다. 이처럼 〈아네트〉는 〈홀리 모터스〉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 밖 삶은 없음을, 모든 것은 무대 위의 수행적 구성물임을 보인다. 무대 밖은 삶으로부터 추방된 곳, 즉 '죽음'의 영역이다.
〈아네트〉는 찌질한 남성 예술가 서사를 철학적 메시지로 내파함으로써 ‘예술’이 되었다. 여기에 강렬한 음악과 실험적 연출,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성격 등이 잘 어우러져 영화의 격을 높인다. 무엇보다 헨리 역의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는 카리스마적 예술가와 딸에게 애정을 구걸하는 아버지 사이의 간극을 체화한 연기로 몰입감을 높인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사이먼 헬버그의 연기도 영화를 탄탄히 받쳐준다. 여러모로 매혹적인 영화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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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발견한 단일한 결핍의 조각
<헤어질 결심>은 사랑과 추적, 그 사이를 위태로이 오가는 수사극이다. 영화는 숨기는 것 없이 오히려 투명히 사건들을 조망한다. 관객은 해준의 시선이 되어 서래를 미행하고, 함께 쫓는다. 그렇기에 해준이 서래를 의심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채로 그저 서래를 따라가게 된다.
누군가 내게 ‘그래서 해준은 서래를 사랑한 게 맞나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당연하게도 서로 사랑했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질문에 당황했다. 처음에 서래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맞으나,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난 후 배신감을 느끼며 그녀를 떠났으므로 ‘사랑까지는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 해당 질문의 의도였다. 나는 왜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다고 단정지을 수 있었나.
해준은 서래의 곁에서만 잘 잔다. 그녀의 숨소리를 듣고,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코로 숨 쉬는 기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서래가 남편(기도수)을 살해했음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건으로 그녀를 의심할 때조차도 해준은 서래와 함께여야만 잘 잔다. 서래의 존재만이 해준을 편안하게 한다.
해준은 이과 여자와 결혼했다. 계산적인 아내와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겠으나, 당돌하고 마음 가는 대로 뛰어드는 서래의 행동들은 해준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16년 8개월’을 세고 있는 아내에게 ‘그걸 세고 있냐’며 대꾸하던 해준은 서래의 공백 ‘402’일은 애쓰지 않아도 쉽게 뱉어 낸다. 초밥을 먹자는 아내에게 ‘아무 초밥이나 먹기 싫다’고 답하던 해준은 고급 초밥을 주문해 서래와 함께 먹는다.
해준은 붕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서래를 체포하고, 미결 사건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품위보다 서래가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해준의 감정은 명백히 사랑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 해준은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잘 보는 사람이 아니다. 해준은 계속해서 사랑의 이유를 찾으려 한다.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 서래를 붙들고, 그는 ‘당신이 꼿꼿해서 좋다’며 고백한다. 서래가 꼿꼿한 사람이라서, 바다를 좋아해서, 죽은 남편의 사진을 보여달라 청해서. 여러 이유들이 존재했으나, 꼿꼿하지 않은 서래의 모습이 등장하자 혼란에 빠진다. 그는 서래를 사랑하는 이유를 잃었고, 그렇기에 이유 없는 본인의 감정을 깨달을 수 없다.
어쩌면 내게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은 정확히 해준의 시점에서 영화를 감상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서래에게 해준은 어떤 존재일까. 해준은 서래에게 상흔을 남기지도, 어긋난 소유욕을 보이지도, 실내흡연에 불쾌해하지도 않으며, 고급 초밥을 사주고 칫솔과 방수 밴드를 쥐여 주는 사람이다. 비록 엉터리일지라도 중국식 요리를 만들고, 중국어를 공부하고, 코트가 흠뻑 젖도록 우산을 기울여 주는 사람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저녁은 아이스크림으로 때우던 서래의 모든 결핍은 해준으로 인해 채워진다. 해준이 서래로 인해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면, 서래는 해준으로 인해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새로운 남자와 결혼했지만, 되레 덧난 결핍은 되찾고 싶은 마음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친절했던 그 남자를 단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그녀는 살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래는 새로운 사랑을 통한 ‘헤어질 결심’에 실패했다.
서래는 두 번째 ‘헤어질 결심’을 행한다. ‘내가 언제 사랑한다는 말을 했냐’며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해준을 보고 그녀는 차라리 재난이 되기를 택한다. 슬픔이 잉크처럼 번지는 듯 했던 여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랑에 빠져 죽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해준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해준에게 서래는 영원한 미결로 남을 것이다.
서래는 해준이 밤에 잠도 못 자고 본인의 사건에만 매달리기를 원했으나, 미결이 되어버린 서래를 떠올리며 해준은 오히려 잘 잘지도 모르겠다. 비록 상상 속일지라도 그녀와 함께이니.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틀림없이 서럽지만 울음보다는 쓸쓸함이 어울린다. 심란하고도 아리송하고 아득히 아름다우며 애달프다. 영화가 감추고 있는 대상은 어디에도 없지만, 무수한 감정들을 관통하는 지각은 거듭 떠올려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영원히 미결로 남을 서래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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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세련된 복수극이라니,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2020)
그동안 <킬빌 시리즈>, <리턴 투 센더>,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여성 서사의 복수극들을 흥미롭게 봐 왔는데, <프라미싱 영 우먼>은 조금은 독특한 화법으로 이를 그려내어 더 인상 깊었던 영화이다. 처음엔 잔물결을 일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점점 파장이 거세지는 전개 방식이 참 매력적이다.
<캐시가 쏘아올린 작은 공>
캐시는 자신의 절친인 니나가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된 일련의 사건 이후로, 해당 사건에 가해자들을 찾아가 대신 복수를 해나간다. 처음엔 그들을 하나 둘씩 찾아가 살인을 저지르고 범죄 흔적을 지우는 전개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자신이 니나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가해자들이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할지 그들을 시험에 놓게 하는데,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타이밍을 잡는 시기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목적으로 캐시를 대한다. 캐시는 그 때마다 돌변해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그들이 잠재적 범죄자임을 인정하게 한다. 하지만 예상했듯이 모두가 자신의 행동을 자기합리화하고, 심지어 방관자인 친구는 니나가 당한 그 날의 일을 피해자인 니나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7년이 지났음에도 왜 아직도 그 일을 들먹이냐는 듯이, 가장 끔찍한 ‘그 땐 어렸고 생각이 없었다.’라는 변명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단 한 사람, 그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 한 명만이 죄책감을 떠안고 살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사건의 시작점일 뿐이라는 걸 그들은 알았을까.
<사건을 다루되, 피해는 적게>
무엇보다 피해자가 당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한다는 컷이라던지, 니나에 대한 일절의 말 없이도 충분히 전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외부 노출은 최대한 줄이고, 오히려 가해자들을 더욱 부각시켜 누가 봐도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주는 데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사건들을 다룰 때 일부 매체들은 그들의 피해 여부를 세세하게 드러내고, 심지어 피해자의 신상까지 알려져 2차 가해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작품은 그런 것들까지 인식을 하고 최대한 보호하려는 입장이 보여서 사건을 다루는 바람직한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상황을 맞닥뜨린 주변인들의 감정에 더 집중하여 관객들이 그들에게 더 이입하도록 도움을 준다.
<영리한 복수극>
후반부는 어떻게 보면 마냥 통쾌하지 만은 않다. 오히려 나에게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더욱 큰 감정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캐시가 모두에게 벌을 주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는 낭만적인 해피 엔딩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전개가 더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고 와닿지 않을까. 결국 캐시는 또 다른 2차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언제나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예상한 캐시의 마지막 일침은 그들을 평생 후회 속에 살게 할 것이다. 가해자 중 유일하게 양심을 가지고 있었던 판사의 행동으로 그들은 법적인 책임을 물게 되고, 니나와 캐시의 복수는 성공리에 끝나게 된다. 그들이 해낸 복수가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망각이나 철없음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는 모든 가해자와 방관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사건들은 또 다른 큰 피해가 발생해야 비로소 재조명되는 걸까. ‘복수는 이제 시작일 뿐이야.’라는 문자를 끝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 있어서 모든 일이 드러나는 결말은 공허함과 허탈함이 남는다.
<미적 감각과 사운드트랙까지>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2000년대 초반의 하이틴 감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클루리스>,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같은 톡톡 튀고 과감한 색들의 사용으로 변곡점을 주기도 하고, 카페나 인물들의 집 같은 인테리어들 또한 모든 프레임을 완벽하게 생각한 듯한 느낌을 준다. 사운드트랙 또한 그때의 감성을 담았다. <Toxic>, <It’s Raining Men>과 같이 반가운 음악들이 종종 나온다. 특히 <Toxic>은 장면과도 너무 잘 맞는 음악이라서 한동안 계속 귀에 맴돌 것 같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받아드리게 되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7년 동안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캐시, 잔인하게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로 자신만의 복수를 계획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오히려 악을 완전히 처단해 버린다는 그런 극적인 설정들보다 우리가 평소에 뉴스에서 접하던 사건을 재조명하여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어서 이 또한 관객들이 이 주제에 대해 더 무겁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것들이 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한 것들이 어쩌면 가장 현실에 와닿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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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다소 한산했던 극장가가 한국 영화들로 풍성하게 채워질 예정입니다.
독특한 제목만으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부터 설경구, 김희애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로 화제를 모은 <보통의 가족>, 202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던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까지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잠자리 구하기>, <페이퍼맨> 등 다양한 한국 독립영화도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1편 개봉 당시, 국내에서도 약 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던 독특한 소재의 공포 영화 <스마일>도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전편과 동일한 감독이 연출을 맡아 더욱더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10월 셋째 주 개봉 PICK!
시작합니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DIRTY MONEY
개요: 범죄 | 대한민국 | 100분
감독: 김민수
주연: 정우, 김대명, 박병은, 조현철
개봉: 2024.10.17.
배급: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줄거리
수사도, 뒷돈 챙기는 부업도 늘 함께 하는 생계형 형사 ‘명득’(정우)과 ‘동혁’(김대명). 우연히 범죄 조직의 검은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두 사람은 인생 역전을 위해 신고도, 추적도 불가한 돈을 훔치기로 계획한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던 현장에서 잠입 수사 중이던 형사의 죽음으로 사건은 꼬여만 간다.
“어차피 우리가 저지른 일, 수사하는 것도 우리야”
살인으로 번져버린 사건을 ‘명득’과 ‘동혁’이 직접 수사하게 되고 ‘명득’과 악연으로 얽힌 광수대 팀장 ‘승찬’(박병은)이 수사 책임자로 파견된다. 그리고, 은폐하려 했던 현장 증거까지 두 사람을 점점 압박해 오는데… 목숨 걸 자신 없다면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보통의 가족
A Normal Family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9분
감독: 허진호
주연: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봉: 2024.10.16.
배급: ㈜하이브미디어코프, ㈜마인드마크
줄거리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재규’(장동건)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수현). 서로 다른 신념을 추구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던 네 사람.
어느 날,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리고 매사 완벽해 보였던 이들은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데…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그날 이후, 인생의 모든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마일 2
SMILE 2
개요: 공포 | 미국 | 127분
감독: 파커 핀
주연: 나오미 스콧, 루카스 게이지, 카일 갈너, 로즈마리 드윗
개봉: 2024.10.16.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넌 죽음을 목격했어. 그게 이제 너를 따라다니는 거야”
월드투어를 앞두고 자신의 눈 앞에서 기괴한 미소와 함께 끔찍한 죽음을 맞은 친구를 목격한 팝스타 ‘스카이’. 그 날 이후 공연 리허설과 팬 미팅 행사 등 그녀의 삶 곳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잇따라 발생한다. 화려한 스타의 삶을 뒤덮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스카이’는 자신이 죽어야만 전염처럼 번지는 저주가 끝난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데…
“이번엔 너도 같이 웃게 될 거야”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You Will Die In 6 Hours
개요: 스릴러 | 대한민국 | 91분
감독: 이윤석
주연: 재현, 박주현, 곽시양
개봉: 2024.10.16.
배급: (주)트리플픽쳐스
줄거리
“지금부터 6시간 후, 당신 죽어”
서른 살 생일을 하루 앞둔 ‘정윤’은 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 ‘준우’에게 죽음 예고를 듣는다. 믿을 수 없는 예언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어가면서 ‘정윤’은 자신을 죽이려는 범인을 찾기 위해 ‘준우’와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예고된 죽음 정해진 미래와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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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적 : 도깨비 깃발> 30초 예고편
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 한 배에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이지만 산과 바다,
태생부터 상극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항해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적 인생에 다시없을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라진 보물을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권상우) 또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데...!
해적과 의적, 그리고 역적
사라진 보물! 찾는 자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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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네 집에 누군가 있다> 공식 예고편
컨저링》 시리즈와 《기묘한 이야기》의 제작진이 전하는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반 소녀(시드니 박)와 친구들에게 가면을 쓴 살인마가 접근한다. 이들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알고 있는 살인마. 그 비밀을 하나씩 폭로하며 목숨을 위협해오기 시작한다. 스테퍼니 퍼킨스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원작. 패트릭 브라이스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