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9-17 10:30:12
로맨스는 비하인드가 더 달달하지
Behind-The-Scenes
작품의 뒷모습을 담아 🧡Behind-The-Scenes🧡
영화, 드라마의 비하인드 사진은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그래서 종종 좋아하는 영화의 비하인드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저장을 누르게 되는 것 같은데요.
오늘은 로맨스 장르 영화와 드라마의 비하인드를 몇개 가져와 봤습니다.
망한 사랑이든... 이어진 사랑이든 뒤에서 행복한 모습의 배우들을 보면 그저 흐믓하게 보게 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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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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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것을 보면 정화되는 것처럼
어림잡아보니 10년이 넘었더라. 내가 영화관에서 로맨스를 본 지가.
매번 극장에서 볼 영화는 블록버스터이거나 영화관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독립영화들이었다. 그렇다고 상업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로맨스는 특히 영화관까지 가서 보지는 않았었다. 내가 여태껏 리뷰해온 로맨스 서사들은 ott로 접했던 영화나 드라마였다. 그런 내가 정말 뜬금없이 현재 상영중인 로맨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정말 응원하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고, 아주 오래전에 본 대만 영화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내용에 크게 실망할 만한 지점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 한국의 여름과 대만의 여름이 다르듯이
내 기억 속 대만판 '청설'은 대만의 습한 여름을 잘 표현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한국판 '청설'은 대만보다는 한결 싱그러운 한국의 여름을 잘 표현해내었다. 물론 한국의 여름도 습하고 무덥지만 축축한 느낌보다는 파릇파릇한 나무가 많은 그런 여름을 잘 그려냈다는 뜻이다. 그런 여름의 정서와 이 풋풋한 두 배우의 조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모두가 판타지 속 인물들이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어딨어'라고 할 만큼 모두들 순딩이들이다. 영화는 픽션인만큼 적당한 현실성과 적당한 판타지가 잘 조합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 속에서의 현실적인 모습이 있다면, 용준이가 취준생이라는 것과 여름이가 동생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현대의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모습은 사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훈훈하다. 누군가는 이런 내용을 순 거짓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픽션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떤 극을 볼 때 일말의 판타지도 없으면 다큐를 소비하는 것과 뭐가 다른걸까 라고 생각한다. 다큐와 같은 현실적 지점도 어느 정도 보유하면서 적당히 억지스럽지 않은 판타지를 섞어 '나의 삶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혹은 '저런 훈훈한 상황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상상할 수 있게 되어야 성공적인 픽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그 지점을 나쁘지 않게 구현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그저 두 주인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지점이 있다. 영화에 빌런이 없고, 그들이 겪는 갈등도 다 착해서 생기는 것들이라 분노하게 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소리는 없지만 눈이 호강하는 색감
이 영화의 키워드는 '수화'이기도 한데, 그래서 주인공 커플은 말을 하지 않는다. 계속 수화로만 대화하기 때문에 고요한 사운드가 오히려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여름과 용준이 데이트를 했을 때, 가을이 집에서 자고 있다가 불이 났는데, 경보 소리를 듣지 못해 연기가 가득한 집에서 깨었던 장면이다. 그 때, 흠칫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을이는 못 들으니 소리로 표현하는 위험은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나에겐 당연한 것이 가을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잠시 반성하게 되더라. 사회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간접적으로라도 이해하기에 영화만큼 좋은 매개체가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기도 했다. 비슷한 감정을 어떤 영화를 보면서 느꼈었나 회고해보니, '코다'라는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코다인 딸이 노래하는 모습을 농인인 가족들은 들을 수 없어 농인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음악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장면이었다. 그들은 딸의 공연에 호응을 하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밖에 없고,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박수를 쳐야하는 모습이 참 아팠는데, 이번 영화도 가을이의 시점에서 소리가 없을 때 위험을 감지하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용준이 가을과 여름과 놀러가는 장면에서 굳이 클럽을 데리고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소리를 못 듣는데, 왜 클럽을 간 건가 생각했었다. 소리를 물리적으로 들을 순 없어도 소리의 진동을 느낄 순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굳이 농인들이라고 음악이 있는 곳을 기피하는 것도 과도한 배려일까 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적인 측면에서는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시각적으로 참 예쁜 영화다. 우리 나라의 여름의 싱그러움을 잘 표현했고, 모든 것이 푸릇푸릇한 계절이지만 더위를 견뎌내야 하는 여름처럼 청춘을 견뎌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잘 담기어 그들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계절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게 대단히 예쁜 옷들을 걸치고 있지도 않은데, 그저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었는데도 모든 인물들이 밝게 웃고 있으니 그걸 보는 재미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뭐가 제일 중요했을까 고민해본다면 빛이 참 중요했겠다고 생각했다. 인물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도 일종의 빛이고, 그들을 조명하는 밝은 햇빛, 나무의 파란 빛, 물의 투명한 빛 등을 정말 적절히 잘 사용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일본 영화들이 빛을 잘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은데, 이 영화도 혹시 빛의 사용에 있어 그런 영화들이 레퍼런스로 참고가 되었던 걸까 싶었다.
3. 총평
이 영화의 장점은 편안함이다. 하지만 단점도 편안함일 수 있다. 인물 간의 관계도 분명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렇게 긴장감 있지도 않고, 영화라는 특성상 언젠가 풀리겠지 싶은 수준이기 때문에 혹자는 지루하다, 너무 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에 있어 내용은 30% 정도 중요하고 배우의 연기와 얼굴합이 70%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배우들의 청량한 조합이 참 잘 어울려 뻔한 느낌도 어느 정도 상쇄된 것 같다. 홍경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의외로 말랑말랑한 장르가 없어서 참 안타까웠었는데, 비로소 청춘을 표현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생각될 것 같아서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뿌듯했고, 노윤서 배우도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의외로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김민주 배우도 참 수수하게 나오니 가수였을 시절보다 더 예쁘다고 느꼈다. 뭔가 여름이보다 덜 종종거리고, 쿨하고 시크한 가을이 캐릭터에 참 잘 어울리는 마스크였달까. 오히려 캐릭터의 멋있음은 여름보다는 가을이 쪽에 한 표를 던진다. 그리고 용준이 친구로 나오는 배우도 자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능청스러운 연기가 참 보기 좋았다. 약간 그 옛날에 건축학개론에 나오던 조정석 배우를 봤을 때의 신선한 느낌이었다. 물론, 건축학개론처럼 살짝 도라이같은 대사는 없었지만 그 신선한, 새로운 배우를 봤다는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한참 전에 봐놓고 이제 리뷰하는 거긴 하지만...
아직 상영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보러 가세요.
이상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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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 강의 죽음> 추리의 틀을 쓴 사랑의 비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휴가를 즐기는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 그런 그의 앞에 친구 '부크(톰 베이트먼)'가 나타나고, 포와로는 부크 덕분에 행복한 신혼부부인 '리넷 도일(갤 가돗)'과 '사이먼 도일(아미 해머)' 부부의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받는다. 그러나 화려하기 그지없던 피로연은 도일 부부와 치정으로 얽힌 '재클린(엠마 맥키)'의 등장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이에 리넷은 하객들을 모두 나일 강의 초호화 여객선인 카르낙 호에 태워 아부심벨 신전으로 여행을 떠나며 재클린을 피하려 하지만, 결국 그 배 안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위태롭고 불길한 분위기의 선상에서 탐정 포와로가 탑승객들 모두를 범인으로 의심되는 가운데, 연이어 발생한 살인 사건은 냉철한 탐정인 그의 영혼까지 뒤흔든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을 논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작가로, 수많은 클리셰를 만들고 보급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탐정이 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후에 모든 진상을 설명하는 결말을 처음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애거사 크리스티 특유의 클리셰와 스타일은 그녀의 추리 소설이 어떤 쾌감을 의도하는지를 말해준다. 추리소설의 또 다른 대명사인 셜록 홈즈 시리즈가 사건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추적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왜, 누가 이 사건을 벌였는지를 추적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작중 등장인물들의 개인사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심리적 동기와 감정적 반응을 살피며 고조되는 긴장감을 맛본다. 이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 중 동명의 작품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자, 2017년에 개봉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속편인 <나일 강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나일 강의 죽음>의 구성과 구조를 보면 이 작품이 원작의 묘미를 충실히 옮기기 위해 노력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을 입게 된 포와로의 사연을 보여준 후, 시선을 돌려 본작의 살인사건에 관계된 이들을 하나하나 선보인다. 본격적인 사건은 카르낙 호 살인 사건에 결부된 11명에 달하는 용의자들의 관계와 과거를 살핀 후에야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1시간 가량이 지날 때쯤에야 진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의 템포는 상당히 느리게 느껴진다. 사건의 결과물을 먼저 제시하고 신속하게 추리 과정으로 넘어가는 최근의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범인을 추적하는 에르큘 포와로의 모습 역시 일반적인 탐정의 이미지보다는 프로파일러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그는 배에 승선하고 있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겠다는 듯이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수사 내지는 심문 과정 역시 적극적으로 증거물을 추적하거나 찾기보다는 살해된 레닛과의 관계, 주변인과의 관계 및 감정선을 파악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후반부 1시간 역시 앞선 분량과 유사한 특징을 갖는다. 물론 점점 과감해지는 살인범의 존재가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인물의 관계가 명확해지기는 하나, 온도가 천천히 올라도 좀처럼 끓지 않는 물을 지켜보는 듯한 인상은 여전하다. 이는 상업 영화로서는 호불호가 명백히 갈릴 지점이다.
다만 그 덕분에 <나일 강의 죽음>은 케네스 브레너 감독이 의도한 고급스럽고 세련되며 또 클래식한 리메이크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한다. 극의 속도감을 희생함으로써 원작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카르낙 호 승객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그 결과 고전적 매력과 현대적 감성을 모두 잡는 것이 대표적이다.
귀족 출신 영국인이 쓴 소설답게 본래 <나일 강의 죽음>은 상류층 인물을 다수 등장시키고, 사교계를 주된 배경으로 삼는 등 영국적이고 귀족적인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계급이 낮은 하녀, 물려받은 작위보다는 스스로 획득한 의사라는 직업을 더 중시하는 귀족 자제, 경제적으로 부유한데도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부인과 같은 인물상을 묘사하면서 상류층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 그에 따르는 의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에 더해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1900년대 초중반을 살아가던 흑인과 유색인종을 향한 선입견과 편견 및 그들이 겪어야 할 아픔과 설움도 등장시킨다. 이는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한 현대적 접근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비극적 사랑이라는 클래식한 테마에 초점을 맞춰서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과 이를 풀어가는 사랑에 아픔이 있는 탐정이라는 교과서적인 구도를 안정적으로 펼쳐 보이기도 한다. 사랑의 힘이 이룰 수 없는 것은 없다는 명제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대비시키면서 효과적으로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영화는 소설에서 묘사된 적 없는 포와로의 사랑 이야기를 선보인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큰 부상을 입는데, 이때 약혼자인 캐서린으로부터 참혹한 상처도 끊을 수 없을 만큼 사랑의 힘은 강하다는 위로를 받는다. 이후 영화는 삼각관계를 비롯해 백인과 흑인 간의, 또 여성 간의 금지된 로맨스를 펼쳐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로맨스의 모습은 포와로로 하여금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로서 오래전 연인의 위로를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추리 소설을 영상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작품은 마치 멜로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이에 더해 <나일 강의 죽음>은 이집트와 나일 강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를 비틀어 활용하며 비극적 사랑의 안타까움이라는 테마를 강조하고, 고전적 매력을 덧입힌다. 그 흔적은 리넷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람선 출항 직전의 퍼포먼스처럼 그녀는 스스로를 유달리 클레오파트라에 자주 비유하며, 도일 부부는 자신들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빗대어 소개한다. 다만 그들처럼 나일 강 유람을 떠난 커플로는 정작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더 유명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 대목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정식으로 결혼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는 달리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는 그저 연인관계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마치 영화 속 나일 강 유람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역사는 도일 부부와 재클린, 이 세 인물 가운데 진짜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 그리고 카이사르가 누구인지를 찾을 결정적 힌트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도 영화의 매력과 주제를 강조한다. 마치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온 듯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사랑과 죽음이라는 테마를 시각적으로, 또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의 존재가 단적인 예시다. 작중 아부심벨 신전은 카르낙 호의 목적지이자 사랑으로 말미암은 비극이 시작되고 결말을 맞이하는 장소다. 흥미로운 것은 아부심벨 신전이 람세스 2세가 첫 번째 왕비인 네페르타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세운 신전으로 유명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는 관습을 거스르고 파라오인 자신과 같은 크기로 왕비의 조각을 세운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심혈을 기울인 아부심벨 신전의 생생한 묘사는 사랑의 다양한 단면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한 몸이 되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는 나일 강의 낮과 밤, 노을과 동녘을 아름답게 비추는 연출 덕분에 더욱 돋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방점을 찍는 것은 결국 배우들이다.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윌렘 데포,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와 같은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면서 흠잡을 데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과 비교해봐도 <나일 강의 죽음>의 캐스팅은 밀리지 않는다. 갤 가돗, 아미 해머, 엠마 맥키, 레티티아 라이트 등 제각기 유명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꿰찼던 배우들이 안정적인 합을 보여준다. 다만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원작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력한 결과물에서 들려오는 묘한 불협화음까지 온전히 가리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나일 강의 죽음>은 전작처럼 다시 한번 무난한 타임 킬링 영화이자 착실한 영화적 재현이라는 평가와 지루하고 안이한 리메이크라는 상반된 평가 사이에 놓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모두를 설득할지언정 매료시키지는 못하는 세련됨과 클래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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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한 건 언젠가 날 울게 만들어
아마 이번 생은 역시 틀려먹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그런 것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카페도 아마 커플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인 거 같다. 앞에서 여자분이 남자분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는 모습이 기분이 좋았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12시. 창가 앞에는 사람들이 몇 명 지나가고 있다. 매일 같은 것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이 카페 사장님처럼 재미(?)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업만 잘하면 즐길 거 다 즐기고 살 수 있겠지만 난 역시 솔로로 태어나서 갈 운명인가 보다 싶다.
난 언제쯤 모두가 사는 세상에 끼어들 수 있을까? 청승맞은 주책을 부리며 노트북을 켜 글을 쓴다. 확실히 세상은 아름다운 게 맞는 것 같은데 말이지. 어떤 부침이 있어도 다들 잘 사는 거 보면 이 세상 60억 인구 모두가 행운아다. 전 세계 어디를 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만 봐도 사람이라는 존재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람 덕분에 우리가 외롭지 않은 거고 공감하며 행복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앉아있는 카페 창으로 보이는 저 귀여운 캐릭터도 역시 사람이 그렸으니 일상의 자그마한 귀여움과 즐거움도 다 그들 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뭔가를 창작하거나 그리는 일은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참 다행인 것 같다. 마음속에서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 이렇게 글을 쓰면 여러모로 효과가 좋았다. 되게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뭔가를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이거 되게 중요하다. 이렇게 살지 못하면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에 내면의 아픔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극도로 우울한 현실 속에서 내면의 밝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운명적인 로맨스를 기다려 온 한 화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딱 봐도 그림 잘 그리게 생긴 사람
루이스 웨인은 그냥 화가다. '그냥 화가다'라는 문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다. 왜냐하면 그는 그림 빼고는 모든 게 서투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화가다. 잘생긴 것도 아니고, 말을 청산유수로 줄줄줄 하는 게 아니라서 그림 빼고는 사실 사람들의 기억에 잘 박히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근데 이 말은 즉슨 그림 하나는 귀엽게 잘 그린다는 뜻도 된다. 친구도 없고 애인은 당연하며 가족과도 사이가 그렇게까진 좋지 않았던 루이스. 갑자기 가족을 부양해야 할 사정이 되자 부랴부랴 일을 구하기 시작한다. 근데 루이스에게는 과제 하나가 더 있다. 바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겠지? 조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양반쯤 됐던 루이스. 어렵지 않게 가정교사 한 명을 구하게 된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였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다. 둘은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내 결혼 이야기까지 오고 가는 관계가 된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이나 남매들의 압박이 있었지만 루이스 웨인은 아내와 함께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영화는 이 루이스가 그려왔던 미래를 소재로 삼은 영화다. 이 인물이 어떤 상황을 겪어 행복감을 느꼈고, 그 행복감이 어떻게 그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명한다.
사랑을 그리면서 우울함은 글로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귀여운 고양이들이 나오는 로코물'로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터 색감이 세상 밝으며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라는 부제까지 있으니 그 생각이 막 뚱딴지같은 추론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실제 내용을 까 보면 완벽히 다르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이다. 주인공 루이스 웨인은 한 데 머무르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이다. 뚜렷한 친구가 있었나? 그건 아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아내를 제외하고 루이스가 마음을 여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윽박지르기만 하는 여동생들이나. 노쇠해진 어머니를 보면 '이 사람이 가족에게도 위안받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라고 이해하기 충분하다. 또 이 사람은 영악하지는 못했다. 자기 걸 잘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일상 속에서 페널티를 겪는 묘사가 몇 번 나온다.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 그래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현실에 주인공 루이스가 겪는 장애물들이 몇 개 더 있다. 영화는 이 굴곡진 루이스의 삶을 보여준다. 아마 여러분이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아마 이럴 거야'라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떨어진다고 예상해 본다. 그러나 이렇게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엔딩부에서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사진에는 전기가 없지만
영화 안에 루이스가 실제로 대사를 치는 부분이 있다. '사진에는 전기가 없다!'라는 말이다. 사진은 플래시를 터트려서 기록으로 남기는 매체다. 이 대사의 뜻이 실제 물리학적으로 전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의 '전기'는 다른 비유적인 표현으로 쓰이는데 이는 극의 주제의식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웨인이 비유한 이 '전기'에 대한 묘사가 괜찮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찾을 때 짜릿한 느낌이 들곤 한다. 어쩔 땐 '와 이거다' 싶기도 할 것이고, 또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근데 이 지점을 첫눈에 반한 사람처럼 굉장히 짜릿하고 특별한 순간으로만 연출했다면 좀 과헀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지점을 피해 간다.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이스가 이에 기대는 것에 각본상의 허점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인물 설정, 고압적인 자매들, 자식을 낳지 않았다는 것, 당시의 신분 격차로 인한 사회적 시선까지 불안정한 인물을 만들어내며 관객의 감정이입을 원활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몰입이 잘 되는 영화'라는 뜻이다. 마치 이 작품에서 전기가 통한 루이스 웨인처럼.
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찾아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간단하다. 루이스 웨인의 일대기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시점에 관한 작품이다.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그림의 속성과도 이어진다. 그림은 내가 본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예술이다. 루이스 웨인은 재수 없는 동물의 상징이었던 고양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아티스트다. 이는 곧 예술가가 자기 적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원인이나 동기부여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건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고양이가 인물에게 어떤 방식으로 변해왔는지를 눈 딱 뜨고 보다 보면 단순히 한 가지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인물이 세상에게 건넸던 효과가 아니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묘사했다는 뜻이다. 이는 어쩌면 감독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식의 동기부여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아내 에밀리가 하는 대사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비극적으로 반복되는 삶에도 아름다운 구석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 아름다운 부분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외로웠던 루이스의 삶에서 그림같이 아름다운 몇몇 장면이 있던 이유는 그가 그의 전기를 따라가서 생긴 것들이다. 감독은 극의 주요 분기점마다 그림과 현실을 교차시키는 연출법으로 행복한 루이스의 모습을 기억에 남게 만들어준다.
아카데미 한 지 딱 2주
이 글을 쓰는 시간은 4월 10일이다. 아카데미가 3월 27일이었으니까 정확히 2주 지난 셈이다. 이때 남우주연상은 윌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난 <킹 리처드>를 안 봐서 그런가 내심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받았으면 했었다. 아카데미나 칸, 베니스가 뭐 우리 동네 시상식도 아니고 아무 때나 노미네이트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마 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요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20대부터 70대 노인까지 얼굴에 모든 곡절이 담겨있기는 쉽지 않을 텐데 비주얼적으로도 소화하는 멋진 모습을 선보였다. 또 섬세한 감졍묘사도 기억에 남는다. 극 중에서 반복되는 트라우마나 자매들을 만날 때의 표정 변화 같은 것이 이 인물 내면에 잠겨있는 깊이를 느껴지게 하는 훌륭한 연기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후반부 하이라이트 신이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의 연기는 <파워 오브 도그>에서 코디 스핏 맥피와 담배를 피우는 신만큼이나 임팩트가 강했다. 장면의 설정상 배우의 화려한 연기법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을 보면 압도된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림 같은 영화
영화의 다른 장점으로는 미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화가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보니 그림이 많이 나온다. 근데 이 그림들이 아무래도 실제 쓰였던 작품들을 갖고 왔을 텐데 루이스 웨인의 입장 변화에 달라지는 것을 잘 사용했다. 또 전반부에 이 극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엔딩에 다시 한번 반복되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티켓 값 2/3은 한다고 본다. 내가 갔던 파리의 퐁텐 플로가 생각나는 연출이었다. 이 외에도 특정 질환에 대한 묘사가 거슬릴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도 이야기해 볼 법하다. 인물이 겪는 고통을 가볍게 쓰지 않고, 또 타인이 보는 시점도 적절히 넣었으며 병세 시각화가 좋아서 기괴하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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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블도어의 비밀>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가 초래한 난국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매즈 미켈슨)'가 과거 범죄를 사면 받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자 '알버스 덤블도어(주드 로)'는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에게 마법부 오러이자 형인 '테세우스(칼럼 터너)', 순혈 마법사 가문의 후손인 '유서 프(윌리엄 네이디람)', 마법학교의 교사인 '힉스(제시카 윌리엄스)', 머글 '제이콥 코왈스키(댄 포글러)' 등으로 이루어진 팀을 이끌고 그린델왈드를 저지할 임무를 맡긴다. 이에 뉴트와 친구들은 마법 세계의 지도자로 선출되어 머글과의 전쟁에 나서려는 그린델왈드와 '퀴니(앨리슨 수돌)'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에 맞서 치열한 혈투를 펼친다. 한편, 전쟁 못지않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은 덤블도어는 가문의 비밀이 담긴 '크레덴스/아우렐리우스 덤블도어(에즈라 밀러)'를 조우하면서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2016년 <신비한 동물사전>, 2018년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비밀>에 이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시리즈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전편인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혹평을 받으며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둔 만큼, <덤블도어의 비밀>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프리퀄이자 5부작으로 기획된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존속 혹은 종결을 결정지을 수 있는 분기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영화는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듯 보인다. 우선 번잡하다. 너무나도 많은 내용을 한 데 다룬다. 부제에 충실한 덤블도어 가문의 출생의 비밀과 오해, 헤어진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과거사와 정치적 수싸움, 그린델왈드를 막기 위한 뉴트와 친구들의 미션, 그리고 남은 시리즈를 위한 포석 깔기 및 전편들에서 던져진 복선 회수까지. 결코 짧지 않은 2시간 20여분의 러닝타임이 부족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공허하다.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었지만, 남는 것은 없다. 뉴트의 모험과 신비한 동물들의 활약상이 간신히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선과 악의 구도로 집결한 마법사들의 대결은 스케일에 걸맞은 긴장감을 불어넣지 못한다. 전편처럼 또 한 번 길고 긴 예고편을 본 듯한 인상도 남는다. 어째서일까? 그 중심에는 내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형식을 고집한 각본이 있다.
<신동사>와 <해리 포터>의 결정적 차이점, 사랑
사실 <덤블도어의 비밀>의 전반적인 구조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을 상징하는 덤블도어가 한쪽에 있고, 악을 상징하는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와 볼드모트가 반대쪽에 위치한 가운데, 덤블도어의 대리인으로서 뉴트 스캐맨더와 해리 포터가 있다. 즉,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는 뉴트/해리 대 그린델왈드/볼드모트이고, 덤블도어는 뉴트와 해리를 지도하는 감독인 것이다. 문제는 덤블도어-뉴트-그린델왈드가 만드는 이야기와 덤블도어-해리-볼드모트의 관계가 빚는 이야기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자와 후자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상이하다는 점을 <덤블도어의 비밀>은 간과하고 있다.
잠시 시선을 돌려 <해리 포터>를 살펴보자. <해리 포터> 시리즈는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실제로 <해리 포터> 소설과 영화를 막론하고 사랑은 가장 중요한 마법으로 묘사된다. 해리가 몇 번이고 볼드모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님과 선생님, 동료,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의 힘이 컸다. 반면에 볼드모트는 죽을 때까지 사랑을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그에게는 연인도, 친구도, 동료, 가족도 없었다. 심지어 영혼을 잘라내는 어둠의 마법인 호크룩스를 연달아 만들며 자신의 영혼을 불구로 만들 정도로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해리 포터>가 사랑의 중요성을 외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을 이기는 모습만 보여주면 됐고, 비교적 단순한 선악 구도도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그런데 그린델왈드는 볼드모트와 다르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 이미 전편에서 그는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악인으로 묘사되었고, 1편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던 크레덴스가 눈앞에서 파괴되자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또 이번 영화에서 그와 덤블도어가 연인관계였던 것도 명시적으로 밝혀진다. 그러니 단순히 사랑의 유무로 선악을 나누는 과거의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당장 덤블도어와 뉴트는 머글과 마법사, 신비한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그 자체로서 사랑한다. 하지만 그린델왈드는 머글보다는 마법사를, 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마법사와 동물만 아낀다. 그러니 영화는 둘 중 어떤 사랑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보다 깊은 차원의 고찰을 보여주어야 한다. 머글과 전쟁을 펼치려는 계획이 원래 덤블도어의 것이었다고 일갈하는 그린델왈드의 대사만 보더라도, 이 갈등과 대립이 쉽게 매듭지어질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과거를 답습하는 데 그친 각본
하지만 <덤블도어의 비밀>의 시나리오는 익숙한 길을 고집한다.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차이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보다는 그린델왈드에게 악의 이미지를 거듭 덧씌움으로써 손쉽게 선악의 대결 구도를 만들려고 한다. 그린델왈드의 행보가 재고의 여지없는 악인인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뮌헨 폭동 이후 감옥에 갔던 히틀러는 출소 이후 본래 롤모델이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달리 쿠데타보다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거머쥐는 의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난 두 편에서 각종 테러를 저질렀지만, 사면을 받는 데 성공하고, 끝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마법 세계의 권력을 회득하려고 시도하는 그린델왈드의 행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광기가 번뜩이던 조니 뎁의 그린델왈드와 달리, 매즈 미켈슨의 그린델왈드로부터는 속내와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영화는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크레덴스, 즉 아우렐리우스 덤블도어의 서사를 최소한의 수준만 남겨둔다. 덤블도어 가문의 사생아인 그는 가문의 오점이 될 수도 있고, 알버스 본인에게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일깨우는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알버스 덤블도어는 아우렐리우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신, 자신의 과거 행적을 반성하고 또 일찍이 가족을 챙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그를 보호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면에 그린델왈드는 철저히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아우렐리우스를 아끼며, 그가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며 가차 없이 엄벌한다. 즉, '덤블도어의 비밀'은 그 자체로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가치관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비출 수 있는 소재였지만, 과거를 답습한 시나리오에 의해 끝내 빛이 바래고 만다.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리는 영화와 캐릭터
더 나아가 <덤블도어의 비밀>이 해리의 자리에 뉴트를 투입하고도 왜 뉴트여야만 하는지를 보여주지 못한 것 역시 과거를 답습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에게는 볼드모트와 싸워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부모를 죽인 원수였기 때문이다. 또 호크룩스나 죽음의 성물 같은 다양한 마법으로 인해 둘의 관계는 더욱 끈끈하게 묶인 바 있다. 해리포터와 덤블도어의 사이도 단순한 학생과 교수 관계가 아님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뉴트와 그린델왈드, 뉴트와 덤블도어의 관계는 3편에 이르기까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선과 악의 대결에 뉴트가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운명적인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뉴트가 자주 모습을 보일수록 오히려 영화가 중점으로 다루어야 할 덤블도어 가문과 크레덴스의 이야기, 그리고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관계가 설 자리는 줄어든다. 그렇다고 뉴트와 친구들의 비중을 줄이자니 그가 엄연히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제목이 나오기 전까지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가 처한 이 난국을 함축하고 있다.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짧은 만남은 그들이 갈등의 중심축이고, 크레덴스와 뉴트는 그 정치적 갈등에서 활용될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된 지도자를 알아보는 능력을 지닌 신비한 동물, '기린'만이 필연적 관계가 없는 이들을 느슨하게 엮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그 결과 영화의 구성은 시작부터 중심을 잃고 정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캐릭터들의 문제로 이어진다. 핵심적인 주연 캐릭터들조차 애매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조연들도 자신만의 매력이나 개성을 보여주기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들의 행보를 간신히 펼쳐놓고 정리하기에 급급하다. 히로인이어야 할 '티나(캐서린 워터스톤)'는 카메오나 다름없고, 퀴니나 테세우스 등은 그동안 쌓아온 매력을 상실하며, 유서프의 오락가락한 줄타기는 좀처럼 개연성을 느끼기 어렵다. 새롭게 합류한 '애버포스 덤블도어(리처드 코일)'는 활약할 만한 기회도 마땅히 않으며, 그나마 머글인 제이콥 코왈스키만이 고유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활기를 불어넣으려 고군분투한다.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최소한의 묘미
물론 <덤블도어의 비밀>에는 진일보한 측면도 있다. 기존 <해리 포터> 시리즈로부터 큰 폭의 변화를 준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그간 마법사 간의 결투에서는 지팡이에서 뻗어나가는 주문끼리의 충돌 혹은 주변 사물이나 환경을 이용하는 마법을 주로 묘사해 왔다. 이번 영화는 다르다. 덤블도어와 크레덴스,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결투 장면처럼 액션의 형식이 육체적으로 근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지팡이와 마법의 힘을 활용하는 형태로 달라지면서 더욱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이는 데 성공한다.
액션을 단순한 물리적인 충돌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관계와 그 변화를 보여주는 장으로 활용하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너무 많은 에피소드와 서브플롯으로 인해 스토리 전개에 과부하가 걸린 듯 느껴지는 가운데, 주요 인물들의 심경 변화를 시각적으로 전달해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고 영화의 템포를 순간적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 상의 특이점은 데이빗 예이츠 감독의 장점인 인물 간의 심리묘사를 잘 보여주며, 감독에 앞서 불완전한 각본이 이번 작품이 노출한 여러 문제의 근본 원인임을 방증한다.
또한 <해리 포터> 영화들이 그러했듯이, 최소한의 장르적 쾌감을 잡아내기도 한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성장 영화였고,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로맨틱 코미디였듯이, <덤블도어의 비밀>은 첩보물의 형식을 빌려오고 있다. 팀을 구성하고 그 팀으로서 실행에 옮기는 두 차례의 작전이 주요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마법사 버전의 <미션 임파서블> 같기도 하다. 다만 그 디테일이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첫 임무에서 실패한 후 재정비된 팀이 두 번째 임무를 성공한다는 클리셰는 물론,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대사나 뉴트의 가방을 활용한 속임수 등은 그리 낯선 디테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덤블도어의 비밀>은 <해리 포터> 본편에서 간략하게 등장했던 과거사들을 보다 풍성하게 채우고, 해리 포터 팬들을 마법 세계에 다시 한번 초대하는 팬 서비스를 하는데 그치는 듯 보인다. 호그와트와 마법사들의 마을인 호그스미드와 애버포스의 술집인 '호그스해드'가 주된 배경 중 하나인 가운데, 호그와트 대연회장과 필요의 방, 퀴디치, 맥고나걸 교수의 젊은 시절 모습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열성적인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시리즈의 여러 설정이 어긋나는 아쉬움을 달랠 만한, 그리고 반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다만 이러한 과거 답습의 대가로 <덤블도어의 비밀>은 시리즈를 이어갈 동력을 확인시켜주거나, 독립된 작품으로서 인정받을 만한 부분은 갖추지 못했다. 특히 전편인 <그린델왈드의 범죄>에 비해 정돈된 감은 있지만 소설에 적합한 내용을 한 시나리오에 과하게 집약시킨 듯한 단점은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다. 결국 두 번째 타석에 이어 세 번째 타석에서도 삼진 아웃당한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다음 타석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걱정을 먼저 키우며 애매하고 답답하게 시리즈를 일단락한다.
P(Poor, 형편없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자명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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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와 드가가 녹아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작
언제나 한결같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책이 진리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영화는 꼬박꼬박 보며 실망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책에서의 그 심리와 스릴러를 영화에서는 쫄깃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영화 <비뚤어진 집>은 발레와 드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분석과 해석의 여지를 남겨준 작품이었다.
영화 <비뚤어진 집> 시놉시스
“나를 죽인 범인은 집 안에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 최고의 작품! 탐욕, 복수, 사랑… 진짜 살인 동기는?갑작스럽게 사망한 대부호 애리스티드 레오니디스. 타살임을 직감한 손녀 소피아는 사립 탐정 찰스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레오니디스의 대저택에 도착한 찰스는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서 살인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곧 저택에서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난다. 겉으론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속은 전혀 알 수 없는 이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비뚤어진 집>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전형적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색을 볼 수 있었던 작품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한결같은 매력이 있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 심지어 조사를 나온 탐정까지 용의선상으로 올리게끔 구조를 짜서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근데 이게 또 모든 사람을 의심하겠구나 하고 알고 보니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범인은 한 사람이 될테니(물론 오리엔탈 특급열차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초반 수사하는 장면들을 너무나도 지루하게 편집을 해 놓아서 아니 무슨 수사를 아무리 탐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느긋느긋 모델하우스 구경나온 사람처럼 하는지 아주 졸음이 쏟아지던 초반부였다.
드가의 '스타'와 발레로 이어지는 추리물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들이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으로 끌어올리지만 이 작품은 그 형식을 지키면서도 유력 용의자를 둘로 추려낸다. 바로 큰손녀 소피아와 막내 손녀 조세핀이다. 영화 <비뚤어진 집>은 찰스가 저택에서 수사를 하기 위해 소피아의 집 소개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와중에 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드가의 '더스타' 작품이 비뚤어진 채 걸려있는 것을 소피아가 발견하고 이를 조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드가의 '스타' 작품은 파스텔로 그려저서 역동적인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지만 뭔가 불안정하고 분열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발레를 했었던 소피아와 발레를 하고 싶어했던 조세핀의 관계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아했던 소피아의 춤을 좋아했던 할아버지는 소피아가 발레를 하는 것을 응원했지만 막내 손녀 조세핀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를 한다. 비뚤어지게 걸린 드가의 작품은 그런 불안정하고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진 조세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이를 조정한 소피아는 끝까지 자신의 동생을 보듬어주고자 했던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복선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비뚤어진 조세핀의 마음
할아버지를 죽인 조세핀. 자신이 좋아하는 발레를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고 조세핀은 할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유모를 죽이기에 이른다. 발레에 대한 집착적인 조세핀의 해동에는 평소에도 일반 신발이 아닌 발레 슈즈를 신고 다니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이 모두 완성되자 할아버지의 초상화 앞에서 발레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해당 장면에서 선보인 장면은 지젤의 비극적인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와는 반대로 깔리는 배경음악은 굉장히 밝고 성공적인 느낌을 자아내서 그 모순이 굉장히 인상깊게 느껴졌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비뚤어진 조세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고, 어린아이가 저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을까 놀랍기도 했다.
영화 <비뚤어진 집>은 발레와 드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분석하는 재미를 선사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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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뉴욕 다이어리>영화리뷰
<마이 뉴욕 다이어리>(2021.12.9 개봉)
감독: 필라프 팔라도
출연: 시고니 위버, 마가렛 퀄리
1995년, 작가 지망생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의 CEO 마가렛(시고니 위버)의 조수로 입사한다.
설렘에 부푼 마음으로 출근한 첫날, 조안나는 예상과 달리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업무에 당황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잘 알려진 작가 J. D. 샐린저에게로 오는 수많은 팬레터에 그저 양식에 맞춘 건조한 답장으로 일관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
하지만 문학과 작가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고 싶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평범하기보다 특별해지고 싶었던 한 여성의 일화를 통해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따스한 영화다.
특히 책과 작가를 사랑하는 문학청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자랑할 만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단계들에 관해 조명하는 차분하고도 포근한 영화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의 집시 소녀로 얼굴을 알리고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용한 희망>에서 어지러운 현실에서 다시 일어서는
싱글맘을 연기한 마가렛 퀄리가 이번 영화에서는 조안나로 분해 꿈을 가진 젊은 여성을 능숙하게 연기했다.
또한 <에이리언> 시리즈와 <아바타> 등으로 일찌감치 믿을 만한 배우의 대열에 오른 시고니 위버가 CEO 마가렛 역할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화려한 뉴욕의 풍경들 또한 이 영화의 주요한 볼거리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이며 장소적 배경은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길 꿈꾸는 낭만적인 도시 뉴욕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우드톤의 작가 에이전시 사무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소품들과 주인공 조안나의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의상 또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젊은이들의 로망의 도시, 뉴욕의 감성있는 풍경을 담아 많은 영화관객들에게 따뜻한 감성과 향수 또한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극 중 조안나가 걷는 빌딩숲, 뉴욕 곳곳의 거리와 카페들은 지금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 시국 속에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저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위로와 힐링, 따스함을 자아내는 건 역시 등장인물이다.
CEO 마가렛의 조수가 된 조안나는 물론 뉴욕의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것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겪는다.
남자친구와의 연애, 일, 그리고 작가가 되길 원하는 진로 속에서 고민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조안나는 성장해간다.
조안나의 사랑과 일, 그리고 진정 작가가 되길 원하는 꿈 사이에서 그녀는 도전하며 나아간다.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이지만 그 덕분에 과장없고 화려한 치장없이 우리 자신을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영화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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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Rabbitgumi 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는데요.
최근 마블 영화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는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마블 영화에요.
완다의 서사가 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어, 시리즈인 완다비전의 내용을 알고 가야 캐릭터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여러가지 영화에 대한 느낌을 전달 드립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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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데드」리뷰ㅣ진지하게 '반도'가 더 나을 수도...??(*스포없음)ㅣ아미오브데드 리뷰ㅣ아미 오브 데드 영화리뷰
?"아미오브데드" 리뷰(*스포없음) - 예고편만 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네요
-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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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이프라인> 1차 예고편
목표는 하나, 목적은 여섯!
화끈하게 뚫고, 완벽하게 빼돌려라!손만 대면 대박을 터트리는 도유 업계 최고 천공기술자 ‘핀돌이’는
수천억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 거대한 판을 짠 대기업 후계자 ‘건우’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빠져 위험천만한 도유 작전에 합류한다.
프로 용접공 '접새', 땅 속을 장기판처럼 꿰고 있는 '나과장',
괴력의 인간 굴착기 '큰삽', 이 모든 이들을 감시하는 '카운터'까지!
그러나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들
그들의 막장 팀플레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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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엑소시스트 : 더 바티칸> 메인 예고편
충격 실화 퇴마 파일! 어둠 속 숨겨진 바티칸의 비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