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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5-09-22 23:44:12

[30th BIFF 데일리] 이란 영화 붐은 온다

영화 <허락되지 않은> 기자회견 현장 스케치

고대부터 찬란하게 빛나던 페르시아 문화를 품은 국가답게, 이란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필두로 해서 특유의 미학으로 영화사의 아름다운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이란 영화는 또 다른 색깔을 갖는다. 유례 없는 검열을 거치면서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이들에게서 새로운 방면의 상상력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그 이란 영화를 주목하고 있다.

 

2024년 칸영화제에서 무함마드 모술라프 감독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검열을 뚫고 새 나무로 우뚝 섰다.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이란에서 "여자, 삶, 자유"의 상황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어 202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돌아갔다. 역시나 이란에서 "반이슬람적"이고 "국가 안보에 위협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입막음을 당했지만 실내에서 카메라를 들고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영화를 찍어 세상에 내놓고, 구금과 징역을 넘어 여기까지 온 인물이다.

 

그리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서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 작품이 올라왔다. 제목부터 많은 것을 시사하는 작품, 하산 나제르(Hassan Nazer) 감독의 <허락되지 않은>이다. 9월 22일 오전 비프힐 1층에서 나산 하제르 감독과 세타레 파카리(Setareh Fakhari) 배우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허락되지 않은>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개인적으로도 매우 존경하고 작품에도 언급되는데, 감독님께 부국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운을 뗀 나제르 감독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관객들이 있는 부국제에서 영화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어 굉장히 영광이다"는 첫 인사를 건넸다.

 

어렵게 동행했다는 세타레 파카리 배우는 "이 영화가 이란 사회 여성들의 삶과도 긴밀하게 관련된 영화"이며, "억압적 사회 안에서 여성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란인들이 매일 경험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어려움에 놓인 여성들이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 목소리가 되는 영화"라는 소개에서는 단단한 자긍심이 느껴졌다.

 

나제르 감독은 "관객들이 이야기를 볼 때에 이것이 실제인가 가짜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실제성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극중 나오는 경찰의 목소리나 사이렌 소리 등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소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취재한 소리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를 오가는 이 작품에 힘을 더했다.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 또한 "다양한 배경의 가정에서 온 아이들로, 어떤 사상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진 모습 그대로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아이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촬영 장소가 아이들에게 불안하지 않은 장소여야 했다. 스스로도 감독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이 영화의 감독은 출연하고 있는 너희들이다'고 말하며 아이들이 책임감을 갖고 배역을 만들어 가도록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연습시키거나 훈련시키지 않는 것이다. 여러 번 해보면 늘 첫 번째의 대답이 가장 좋다"고도 덧붙였다. 좋은 영화인의 산실로서 이란 정부도 참고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 방침이다.

 

 

영화 <허락되지 않은> 스틸컷

 

그러나 이란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춤 추고 노래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고, 굳이 사회 비판적 소재가 아니어도 영화 촬영 허가를 받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은 "검열이나 제약을 이란 감독들이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는 이야기를 변형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것이 이란 영화의 특색이 되고, 특히 국외 관객에게 더 사랑받는 이유 같다. 정부의 검열에 대해 욕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란 감독에게는 창작의 또 다른 문을 연 것 같은 상황이다."고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나 자파르 파나히 감독 등 다른 이란 감독들에 대해서도 존경과 애정을 표하며, "그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내 영화가 그들과 함께 작은 기여라도 한다면, 이란 영화와 이란의 현실에 대해 영광일 것"이라는 겸허하고 단단한 인사를 남겼다.

 

세타레 파카리 배우도 그 단단한 심지가 다르지 않았다. 원래 세타레 파카리 배우는 음악인으로 영화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대본을 보기 전까지 잘 몰랐고, 그냥 아이들과 영화를 찍는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었"지만, "연극에 참여하거나 각본을 쓴 경험도 있고, 가수라는 직업 또한 허락되지 않은 직업이다. 이란에서는 여성들이 노래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검열 때문에 많은 괴롭힘을 당하고 압박도 있지만, 원래도 허락되지 않은 직업이었기 때문에 연기라는 작업도 크게 다르게 느끼지 않았다. 사실 이란 예술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는 대답에서 저력이 느껴졌다.

 

 

영화 <허락되지 않은> 스틸컷

 

세타레 배우는 작품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남자 배우들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하거나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걸 볼 때, '왜 남자들은 이렇게 실제 생활에서도 카메라 앞에서도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생각"하며 제작진과 대화를 나누고 영화의 방향성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갔다. "여자들은 이란 사회에서 이래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강박을 많이 갖고 살게 된다. 이 영화가 특히 좋은 점은 가족 안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인데, 아이들의 생각은 대부분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여아들이 어떻게 자라고 또 결혼 후 남편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영화에서 더 많이 말하고 싶었다."는 의도를 밝혔다.

 

나제르 감독 또한 "나의 성향이 배우 개인의 역량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감독 스스로를 덜어내고 배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며 그 결과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인터뷰 장면을 예시로 들었다. 서로의 역량을 인정하고 협업하여 얻은 멋진 결과물이었다.

 

 

영화 <허락되지 않은> 스틸컷

 

마지막으로 감독은 "영화가 부산에서 처음 공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서 새 작업도 미루고 여기 왔다"며, "전 세계에 전쟁이 많은데 이란의 감독들도 어떻게 보면 삶 속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발언을 남겼다. 언젠가 이란에 온전한 표현의 자유가 찾아온다면, 그때 이란 감독들의 창의력은 또 어떤 새로운 문을 열게 될까. 그때가 되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 있다면- 이란 영화 붐은 온다. 아니 이미 온 것 같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2025.09.18-26) 상영일정]

2025.09.21 16:3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242)

2025.09.22 16:30 영화의전당 소극장 (상영코드 334)

2025.09.25 14: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상영코드 608)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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