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9-24 23:20:56
[30th BIFF 데일리] 근원적인 부조리의 통각
영화 <말리카> 리뷰
DIRECTOR. 나탈리아 유바로바 Natalia Uvarova
CAST. 이자벨라 캄피에바(Izabella Khampieva), 마레나 카르시에바(Marena Kharsieva)
PROGRAM NOTE.
이혼한 엄마와 함께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던 12세 소녀 말리카는 어느 날, 엄마의 연애 소식을 듣고 들이닥친 아빠로부터, 엄마가 재혼하면 말리카의 양육권이 아빠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엄마와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된 말리카는, 대가족과 자연 안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엄마의 재혼이 현실화되면서, 말리카의 불안도 고조된다. 카자흐스탄의 잉구셰티아계 소수민족이면서 보수적인 이슬람교도인 말리카의 가족들에게, 여성의 재혼과 양육권 문제는 전적으로 남성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말리카의 실존적 불안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엄마의 무기력감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탈리아 유바로바 감독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통해 말리카의 고난과 성장의 서사를 솜씨 좋게 풀어냈다. (박선영)
세상에는 참 다양한 문화와 규칙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어디에나 다양한 아름다움과 상처가 있으며, 다양한 부조리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 말리카는 카자흐스탄에 사는 12살 소녀로, 우리로 치면 올리브영 같은 가게에 가서 친구들과 얼굴에 이것저것 찍어 바르기도 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몸을 흔드는, 전형적인 십 대 초반의 여자아이다.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둘이 사는 삶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 생활이 곧 깨질 위험에 처했다는 것.
말리카가 사는 곳의 "무슬림 율법"은 이혼한 부부 중 여자 쪽이 재혼할 때 자식을 전 남편, 그러니까 아이 아빠 쪽으로 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소리인지... 남자가 "탈라크(Talaq)"를 세 번 선언하면 이혼이 자동으로 성립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인도에서는 부당한 이혼이라고 판단해 몇 년 전 불법화되었다) 이런 율법은 또 처음 듣는다. 두 사람이 똑같이 결혼하고 똑같이 이혼했는데, 말리카의 아버지는 재혼해서 아이가 둘인데, 엄마는 연애 분위기만 풍겼는데도 행동거지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딸을 빼앗기게 생겼다. 그 부조리에서 온 피로가 여름휴가를 앞당겨, 엄마와 말리카는 잠시 도시를 떠난다. 엄마의 고향이자 말리카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으로.
그곳은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가진 곳이다. 한국인 대다수가 처음 들어 보았을 인구시(Ingush)라는 민족이다. 체첸과 공화국을 이루었다가 1992년 분리된 '인구시 공화국'이 러시아 공화국으로 존재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도 고통을 안겨주었던)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도 소수민족으로 일부 거주하고 있다. 말리카의 가족은 이런 케이스로 보인다.
사촌들과 친척들과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보다, 말리카는 기민하게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게 먼저다. 이 영화는 딸과 엄마의 관계선을 세밀한 필치로 포착해 담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연신 핸드폰에만 시선이 가 있고, 말리카와의 대화에도 영 건성이다. 마치 말리카의 엄마가 아니라 첫 연애를 시작한 큰언니 같은 모습이다. 결국 사랑을 갈구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말리카와, 말리카의 생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엄마의 남자친구 젤림을 사이에 두고, 엄마 로자는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말리카는 적극적으로 엄마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젤림은 결혼하지 않을 거라면 이제 관계를 끝내자고 이야기한다. 일하는 꽃집 사장이기도 해서 결혼과 업무 환경, 거주지까지 걸려 있는 젤림을 쉽게 놓을 수도 없고, 결혼하는 순간 전 남편에게 빼앗기게 될 말리카를 놓을 수도 없는 로자 개인의 딜레마가 커다랗고 무겁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더 세밀하게 그려내는 것은 로자와 말리카 사이의 딜레마다. 말리카의 행복은 로자가 행복을 포기할 때 가능하고, 로자의 행복은 말리카의 행복을 포기할 때 가능하다. 즉 이 딜레마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더 커다랗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나의 행복이 내 사랑의 행복을 짓누르는 행태이기 때문에.
게다가 이 딜레마가 더 무거운 건, 둘이 같은 고통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행복이 걸린 결정을 두 사람이 내리는 게 아니라, 집안과 종교에서 수염 좀 만진다는 양반들이 모여 결정한다. 그 남성들의 판에 말리카의 아빠이자 로자의 전 남편인 사람은 손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당사자인 말리카와 로자는 밖에서 요리와 시중 그리고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결정권을 빼앗기는 괴로움을 같이 느끼고 있음에도, 나의 선택으로 상대의 행복이 훼손되고 결정권이 빼앗기는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것. 개인의 딜레마, 가장 사랑하는 엄마-딸 사이의 딜레마, 사회적 율법적 무게에서 오는 딜레마로 두 사람은 교착 상태에 다다른다. 그때부터 이 영화의 온전한 해피엔딩은 불가능해진다. 어떤 엔딩이어도 반쪽 짜리 혹은 그 이하의 행복밖에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둘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해 보기도 하고, 상대와 본인의 행복을 태워 보기도 버려 보기도 가꿔 보기도 하면서... 부조리 앞에서 서로를 상처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겪는다. 게다가 영화에는 로자와 같은 딜레마에 처했고 제각각의 결정을 내린 여자들의 이야기가 배경처럼 여러 번 등장한다. 로자와 말리카가 처한 대치 상태를 겪은 엄마와 딸들이 이미 무수히 있다는 이야기다. 왜 그 여자들은 둘 다 가질 수 없었을까?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대치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이 대치의 근원, '율법'이라는 탈을 쓴 남성 권력의 부조리를 관객에게 확인시킨다. 서로의 생을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결정권을 갖는 게 아니라, "율법"과 "남자다움"을 말할 뿐 둘의 삶에는 관심도 없는 이들이 결정권을 내리는 아이러니를 촘촘한 구조로 영리하게 포착한 영화다. 엄마와 딸의 관계, 사랑이 사랑을 상처 내는 영화로만 읽고 넘어가기엔, 이 영화가 날카롭게 제시한 부조리의 감각이 통렬하다. 햇볕에 빨갛게 탄 말리카의 피부처럼 서서히 덧씌워진 통각이 오래 남는 영화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2025.09.18-26) 상영시간표]
2025.09.21 20:2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2025.09.23 12: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2025.09.24 13: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2025.09.25 17:30 CGV센텀시티 4관
Relative contents
-
- 영화 클로즈
#클로즈
감독_루카스 돈트,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목 끝까지 잠겨오던 서러움을 애써 삼키다 결국 터뜨리고야마는 울음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섞여있는가. 어느 날, 문득 닥쳐온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진작에야 꺼냈어야하는 말들은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당사자의 가슴속에 침전해버린다.
감독은 “다정함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 다정함의 상실이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10대 시절 꼭 붙어다니던 두 소년 레오와 레미. 둘은 점차 멀어지게 되고, 결국엔 어느 것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잃게 되는 것, 잃어버리고야 마는 것. 레오와 레미의 우정이, 사랑이,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무너지는 과정이 마음 아팠다. 그 시절에 존재하던 다정함이 이제는 무형의 것이 되었기에. 레오가 꽃냄새 자욱한 벌판을 뛰어다니다가 뒤를 돌아봐도, 레미는 그곳에 없을 것이기에.
두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던 영화. 눈빛에 담긴 섬세한 감정선이 탁월하다.
-
- 아직도 세월호? 아직도 세월호!
8★/10★
조금은 이상하고 뒤늦은 슬픔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서울 어딘가에서 열리는 추모집회에 가는 길이었다. 고백하건대, 이날 눈물 흘리기 전까지 나는 세월호의 침몰을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의심하기 바빴다. 세월호를 슬퍼하는 모든 마음이 거짓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사회 변혁을 모색하던 때였지만 내 안에는 뿌리 깊은 패배와 절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감각이 나를 지배했다. 사람들이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원인인 죽음을 슬퍼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박근혜와 20대를 보낸 내게는 그들이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적 권위 국가가 상수였고 그에 반하는 다른 목소리는 늘 변수였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편안한 때였다. 그때의 나는 세월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슬퍼하리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눈과 귀를 닫았다.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섣불리 슬퍼했다가 외로워질까 봐 두려웠다. 한 달이 지나고 추모집회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슬픔을 나누며 내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눈물 흘리고 있었다. 다만 접속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홀로 외롭게 슬픔을 견뎌왔을 뿐이었다.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월호는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원인인 슬픔을 고립시키려는 모든 것과 단절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람들은 세월호를 애도하며 공통감각으로서의 슬픔을 되찾았다. 세월호는 슬픔과 애도의 마음을 통해 개별자가 ‘우리’가 될 수 있음을, 사라진 생명을 잊지 않는 우리의 존재가 변화를 요청할 수 있음을, 누군가를 잊지 않는 마음이 부끄럽거나 낙후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그러나 〈바람의 세월〉이 보여주듯, 이 깨달음은 지난 10년간 번번이 제도권 정치와 진실이 그리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로막혔다. 딸 문지성 양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뒤 카메라를 든 문종택 공동 감독은 지난 10년의 세월, 3,654일 동안 세월호를 기록했다. 그렇게 쌓인 영상은 5,000여 개, 분량은 50테라바이트에 달했다. 이 긴 시간은 대체로 참사 유가족과 그들의 슬픔에 접속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이 번번이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고, 유족과 시민의 염원을 이뤄줄 듯하던 문재인 정권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해 포괄적 진실 규명의 과제를 완수하지 않았다. 참사 후 유가족이 처음 환하게 웃은 건 박근혜 탄핵이 확정되었을 때였다. 그마저도 세월호는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유가족은 정치권에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결국 배반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는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법과 정치의 문제와 접속시킬지에 관해 많은 물음을 남긴다. 법조인, 정치인이 기존 법 체제 안에서 유족과 시민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고자 한 노력(특검, 특조위 등)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공적인 슬픔에 담긴 커다란 물음과 가능성이 법 기득권과 정파적 당리당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면 정의는 결국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누더기가 되기 십상이다. 세월호 관련 법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영화에 절망과 분노의 순간만 담기지는 않았다. 종종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슬픔을 느낀 건 배상‧보상을 통한 정부의 가족 분열 획책, 유가족을 향한 모욕을 담은 장면만이 아니었다. 생존 학생 등교를 응원하는 유가족의 모습에서도, 국회에서 유가족 앞을 막고 선 젊은 경찰이 흐느끼며 울먹이는 장면에서도,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추모 공간을 꿋꿋이 지키며 싸움을 이어가는 유가족의 모습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이 5.18 민주화 운동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나는 장면에서도 나는 무너졌다. 영화가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추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는 세월호 유가족이 지난 10년간 견뎌내야만 했던 야만적 시간을 영화가 압축해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시간을 유족의 시선으로 말하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뉴스로 사건을 접한다. 즉 누군가 한 번 매개해 가공한 상태로만 어떤 사건을 접한다. 기자가 유가족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더라도 어쨌든 그는 유가족처럼 울부짖으며 목소리를 높인 채 글 쓰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터무니없는 의견에 그럴싸한 목소리를 입혀주기 일쑤인 기계적 중립이 더해진다면, 나아가 기계적 중립마저도 외면하고 유족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실어 나른다면 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종택 감독이 직접 촬영하고, 내레이션한 〈바람의 세월〉에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대체로 중립을 가장한 차가운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한 절절한 목소리들을 꾹꾹 눌러 담은 만큼, 정제되고 정돈하여 매개하지 않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이 영화에 담기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유족은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보다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다짐을 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울컥하며 감정의 공적 기능을 다시금 되새겼다. 〈바람의 세월〉에는 ‘아직도?’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아직도!’라고 답할 힘이 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앞에 과거의 나처럼 무기력하지 않고, 슬픔에 기반한 공적이고 정의로운 연결감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이 영화에서 큰 위로와 연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족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가 되레 위로받고 나왔다. 〈바람의 세월〉은 그런 영화다.
-
- 故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세 얼굴
故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세 얼굴은 포개진다. 첫 번째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4)다.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으로 분한 그는 재난을 마주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정반대였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을 상관으로 둔 차정원은 모든 일을 정략적으로 처리하는 데 능숙한 인물이다. 어떠한 선택에 담긴 공적 의미가 아닌 그 선택이 표와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는지만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상관이 연루된 극비 프로젝트 때문에 되레 자신과 딸의 안전을 위협받고, 끝내 상관에게 버림받은 후 기존 가치관을 버리고 ‘생존자’로서 목소리를 낸다. 이때의 차정원은 웃는 얼굴이다.
두 번째는 〈행복의 나라〉(2024)에서의 군인 박태주다. 박태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에게 총을 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으로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경호원 3명을 살해했다. 재판에서는 박태주가 내란 모의에 적극 동조했다는 검사의 입장과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변호사의 의견이 대립한다. 두 입장의 길항이 이어지고, 그렇다면 군인은 어떤 명령이든 복종하기만 하는지, 그것은 아이히만의 변명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가 의아할 때쯤 박태주가 수동적으로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는 군인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박태주의 총알에는 상관의 명령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도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며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자신을 굽히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국가는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차정원의 당부는 시대를 거슬러 오른 박태주에게서 ‘국민을 지키기는커녕 되레 억누르며 위협하는 국가는 총의 주인이 아닌 총구의 표적이 된다’라고 응답받는다.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임하는 박태주의 얼굴은 내내 담담하고 결연하다.
그리고 차정원과 박태주가 아닌 인간 이선균의 얼굴이 있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2달 동안 그의 얼굴은 내내 지치고 버거워 보였다. 그는 노골적인 피의 사실 공표와 자극적 보도로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비난을 받았다.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 책임의 형태가 결코 이런 식이었을 리는 없다. 수사기관과 언론, 유튜버와 그들이 자극적으로 재생산한 단편적 진실들을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하거나 품평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에 대한 실망감을 너무 쉽게 비난의 형태로 표했고 모든 것을 손쉽게 단정했다. 내게는 이 모든 게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나중에 ‘아 그래?’ 하고 이내 잊어버렸으면 그뿐일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니었다.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낸 넓고 느슨한 연결망에서 관계 맺고 있던 나와 그가 이 추문의 파도를 마주했을 때 각자 느낀 충격의 격차는 거대했다.
나는 그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의 죽음에는 나의 책임도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를 클릭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살펴보고, 수사기관과 언론‧미디어의 행태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내가 재판관이라도 되는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쉽게 내뱉고……. 이후, 다시는 전반적인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누군가의 추문에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그리고 그 이전의 비슷한 수많은 죽음에) 그토록 슬퍼하고 반성하던 사람들은 이내 다른 먹잇감을 찾았고 물어뜯었다. 나 역시 그런 소용돌이에 말을 보태지 않고 빠져 있겠다는 다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만큼 우리를 휩쓸리게 만들고 관여하게 하는 추문의 파도는 일상적이었고, 거셌다. 나는 그의 죽음이 내게 남긴 무거운 질문에서 출발한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비틀거리고 있다.
〈행복의 나라〉에는 박태주의 변호사 정인후가 막후에서 재판을 좌지우지하는 군인 전상두(전두환)와 대면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영화 초반, 유능한 변호사 정인후는 군인들이 선을 넘는 것 같다며 짐짓 대범한 태도로 전상두에게 재판에 임하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영화 후반, 재판이 법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른다는 현실을 절감하고는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전상두 앞에 무릎 꿇고 울며 애원한다. 전상두는 첫 만남에서의 모욕감을 몇 배로 되갚는다. 그러고는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기에 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정인후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가 이 몽둥이를 들어야겠나?” 변호사가 아닌 군인이 몽둥이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인후가 기대는 법리는 전상두가 쥐고 있는 몽둥이의 힘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그리고 쿠데타로 몽둥이를 완전히 그러잡은 전상두는 우리가 알고 있듯 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만약 몽둥이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면, 그 손잡이는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군인이 아닌 보편주의에 입각한 법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전상두는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단죄받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사실상 ‘끝났다’(이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은 이 표현을 쓰는 데 머뭇거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제 모든 국민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받고, 재판받는다. 법의 영역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이 원칙을 두루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만 그렇다. 현실의 이선균 배우는 그가 법치의 원칙에 따라 마땅히 누렸어야 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북돋아야 할 법률가 출신의 위정자는 되레 정인후보다는 전상두의 방식으로 법을 대하는 듯도 보인다. 그리하여 차정원과 박태주를 경유한 이선균 배우의 얼굴은 이런 질문으로 나아간다. 총, 칼, 법, 여론 등 그 모습을 달리하며 반복해서 휘둘리는 몽둥이의 속성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 몽둥이가 꼭 필요할까? 우리는 어떻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가? 몽둥이의 폭력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한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선균과 함께했음을 기억합니다”라는 〈행복의 나라〉 영화 자막을 보고 울컥했다. 다시는 그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데,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여러 감정이 맞물려서 한동안 몸이 저릿저릿했다. 엔딩 크레딧까지 마무리되고, 모든 관객이 퇴장하고 혼자 앉은 텅 빈 영화관에서 그의 영화와 삶이 남긴 질문과 나의 다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선균 배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온 마음을 담아 그의 명복을 빈다.
-
- '아름다움'을 향한 동화 속 바디호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작품상, 관객상)의 화제작 <어글리 시스터>는 신데렐라 동화 속 못된 의붓자매를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조명하며 현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을 고발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어글리 시스터>의 후기들이 대부분 ‘신데렐라의 잔혹동화 버전’과 ‘영화 <서브스턴스>의 동화 버전’이라는 수식어로 가득 찬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실제로 최근 큰 흥행을 거둔 여성의 몸에 대한 바디호러 영화인 <서브스턴스>와 원작동화의 후광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하긴 힘들지만, 무언가의 다른 버전으로만 소개되기에는 아쉬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동화를 으깨어 바른 영화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OST와 동화를 으깨어 바른 것만 같은 몽환적이고 빈티지한 영상미의 조합은 <어글리 시스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클래식과 올드풍을 넘나들며 관객을 영화와 해리시키고, 때로는 몰입하게 하는 OST는 불쾌한 정서를 증폭시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영화를 관객의 귓속에 머무르게 한다. 또한 <어글리 시스터>는 클로즈업과 줌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바디호러와 고어 장르인 만큼 영화에는 수위 높은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줌인은 얼굴로 향한다. 잔인한 장면을 포착하는 대신 표정과 감정을 향해 수동 줌인 되는 카메라는 잔인함의 쾌락이 아닌 영화 속에서 보아야 할 의미를 주목하게 한다.
그 외에도 코 수술 같은 현대의 미용 시술을 중세 배경에 맞춰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장치들과 원작 동화의 요소들을 재치 있게 끌어온 장면들까지, 영화 곳곳에는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의 감각적이고 재치 있는 연출과 뚜렷한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의 결말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에
‘남성에게 소비되는 여성’에 대해 고발하는 <서브스턴스>와 달리, <어글리 시스터>는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파괴하는 여성들의 사회에 더 집중한다. 영화 속에도 저질스러운 남성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엘비라’(레아 미렌)를 심리적으로 억압하는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다. 예뻐져야 한다며 시술을 감행하게 만드는 엄마, 엘비라를 무시하며 맨 뒷줄로 보내는 예절 선생까지 영화 속 ‘아름다움’의 기준은 여성들에 의해 끊임없이 강조된다.
또 <서브스턴스>의 비현실적인 결말과 달리, <어글리 시스터>는 비교적 현실적인 모습을 담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인지 고어의 강도는 <서브스턴스>에 비해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장면보다 코 수술의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순간이나, 발가락을 자른 뒤 맥박에 따라 피가 꿀럭이는 것처럼 현실적인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물론 촌충을 토해내는 장면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어글리 시스터>가 현실적인 영화이기에, 죽음과 같은 꽉 막힌 결말이 아닌 여지를 남기는 결말인 점이 좋다.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고통이 따르지만 엘비라는 옳지 못한 선택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고, 이제는 국경을 넘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어글리 시스터>는 단순한 고발이 아닌, 고통받는 모든 여성에게 건네는 현실적인 위로이자 지침서이다.
-
- [SICFF 데일리] 이상한 나라의 ‘니노’
1. Information
피버 Fever
Chile | 2022 | 84min | G
Director
엘리사 엘리아쉬 Elisa ELIASH
Cast
Lautaro Cantillana TEKE, Macarena TEKE, Nestor CANTILLANA, Nora CATALANO
Synopsis
열병을 앓던 니노는 금지된 주문을 외다 신비로운 그림 속에 갇힌다.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니노의 이상한 모험
2. Review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는 작년 ‘키즈 비전’과 ‘키즈 포커스’라 불리는 국내외 장편 경쟁을 국제장편경쟁으로 통합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국내 작품 2편과 국외 작품 9편 총 11편의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뵀는데 그 중 칠레의 감독이자 각본가 엘리사 엘리아쉬의 장편영화제 ‘피버 Fever’가 9월 16일, 9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상영됐다. 상영뿐만 아니라 감독과 감독의 귀여운 아이가 함께하는 GV도 진행되어 영화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감상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다.
한 편의 만화. 한 편의 동화
이 영화는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작품의 내용 또한 니노라는 어린아이가 주문을 외운 후 그림 속에 갇혀 이곳저곳을 떠다니든 모험극의 형태를 띠고 있을뿐더러 그의 여행이 단순히 실사영화로만 표현되지 않았다. 흑백, 물감, 사진, 모래 애니메이션 등으로 마치 관객 또한 그의 모험에 함께하는 것 같은 생동감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초반에는 이런 연출이 다소 어색하다고 느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감독의 이런 연출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니노는 극 초반 눈이 불편하고 열병을 앓고 있다고 설명된다.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이 그를 감싸고 있었고 엄마를 찾고 싶어 하며 그의 불안감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느끼게 한다. 하지만 마치 만화 같은, 동화 같은 연출로 또 다른 여정의 주인공 ‘디나’를 등장시키면서 불안에 신비함을 더한다. 맞닿을 수 없는 조합이지만 조화롭게 만든다. 실사영화에 애니메이션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을 텐데 도전하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과 스태프진들의 노력에 손뼉을 치고 싶은 부분이었다.
어린아이가 준 뜻밖의 이름
영화 내내 니노와 디나가 그림, 사진 속 새로운 장소로 가기 위해 외우던 주문이 있었다. 파랑가 리쿠타로 미쿠아라. 이것의 그 주문인데 정확한 명칭은 다를 수 있다. 정말 영화 내내 이 주문을 외치는 데 도대체 무슨 이름이길래 이렇게 외쳐대는 걸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본 영화가 칠레 영화이고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는 만큼 멕시코, 칠레, 혹은 스페인쪽의 이런 의미가 있는 영적 주문이 있는가 했었다.
영화 후에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GV)에서 그 정답을 알 수가 있었는데 이는 사실 여주인공 ‘디나’가 마법 주문을 걸 때 어떤 말을 할 것 같냐는 감독의 질문에 답한 주문이었다. 마치 ‘아브라카다브라’처럼 그녀의 할머니가 그녀에게 가르쳐준 마법 주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 알아봤더니 멕시코에 있는 어떤 화산이 있는 마을의 이름인데 영화 속에서 주문으로 낙점된 것이다. 이를 보고 감독은 창작과정에서 주는 아이의 창의성과 기발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언급했다.
이 영화는 아이가 주인공이고 어린아이들이 주는 천진난만함과 모험심 등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촬영 중에도 어린 배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을 터, 그런 점에서 감독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그들이 말하는 바를 하나하나 기록해 작품 속에 녹여내 이 영화가 얼마나 세심하게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게 도왔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2023년 9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롯데시네마 은평, 은평문화예술회관, 은평한옥마을 등에서 진행됩니다.
*본 포스팅은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랩〉의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프레스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 반복되는 재회, 그리고 이별
김고은과 정해인이 커플로 나오면서 그 케미가 얼마나 좋을지 기대를 하게 만들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개봉 당시 봉오동전투를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를 계속 차지했던 작품이어서 기대를 했었지만 과연 그만큼 인기가 있었어야 했을 작품이었는지는 의문이 남은 작품이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시놉시스
"오늘 기적이 일어났어요."
1994년 가수 유열이 라디오 DJ를 처음 진행하던 날, 엄마가 남겨준 빵집에서 일하던 미수는 우연히 찾아 온 현우를 만나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게 된다."그때,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기다렸는데…" 다시 기적처럼 마주친 두 사람은 설렘과 애틋함 사이에서 마음을 키워 가지만 서로의 상황과 시간은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계속되는 엇갈림 속에서도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과 함께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는 두 사람. 함께 듣던 라디오처럼 그들은 서로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까?
* 해당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운명인건가?
이어질 사람은 이어진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다 라는 말을 여실이 보여주는 작품이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어쩜 저렇게 우연히도 계속 마주치는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없는데 말이다.
소년원에서 나오고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현우가 떠난 뒤 우연히 빵가게 앞에서 다시 만나고 그렇게 군대를 갔다가 헤어지고 이메일 비번을 안 알려줘서 연락을 못하다가 미소가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가며서 기적적으로 다시 연락이 되고 그런데 하필 사고가 터져서 못만나다가 미소가 일하는 출판사 윗층에서 작업을 현우가 하게 되면서 다시 만나고 이 무슨 기적같은 우연인가? 영화기에 가능한 것인가 싶으면서도 10년에 해당하는 시간은 2시간 안에 압축시켜서 보다보니 여러번의 우연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좋았던 작품
스토리 전개가 5년 단위로 진행되다 보니 조금씩 뚝뚝 끊기는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 스토리 전개를 이겨낸 김고은과 정해인의 연기력에는 박수를 보낼만 했다.
정해인은 그간 바른생활 사나이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소년원을 다녀온 캐릭터가 어울릴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괜찮게 어울렸던 것 같다. 김고은 역시 헤어지는 여자의 마음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을 때의 설렘을 정말 잘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현우와 미소가 헤어지고 미소가 편집장의 차를 타고 떠날 때 그 무너지는 감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서 같이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작품이었나?
그러면서도 의문이 드는 점은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만큼 작품성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걸작은 아니었다. 감수성을 충분히 자극할만큼의 연출이 뛰어났던 작품이라고 느껴질 만큼 무언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러한 일상이 사람들에게 평범함으로써 인기를 끈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스펙타클하고 화려한 다른 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담백한 작품이어서 그런것인가? 솔직히 김고운과 정해인이라는 배우 덕에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던 작품이었다.
개봉 당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었을 이유를 못찾은 작품이다.
-
-
-
- 넷플릭스 <트랜스포머: 워 포 사이버트론 트릴로지 - 그들의 왕국>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29일, 넷플릭스 공개]
누가 먼저 사라진 올스파크를 찾을 것인가.
이제 오토봇은 맥시멀과 힘을 합쳐, 프레데콘과 팀을 이룬 디셉티콘에 맞서야 한다.
하지만 메가트론과 개인적으로 연관된 미스터리의 유물인 황금 디스크를 갖고 있는 프레데콘.
메가트론은 상대인 옵티머스 프라임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후의 결전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결정할 마지막 싸움이 시작된다.
-
- 넷플릭스 <한마 바키> 공식 예고편
지상 최강의 격투가, 아니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는 한마 유지로.
하지만 한마 바키에겐 아버지란 이름의 벽일 뿐.
지금 이 벽을 넘어서기 위한 바키의 특훈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