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2023-06-17 15:34:41
영화 클로즈
영화 <클로즈> 리뷰
#클로즈
감독_루카스 돈트,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목 끝까지 잠겨오던 서러움을 애써 삼키다 결국 터뜨리고야마는 울음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섞여있는가. 어느 날, 문득 닥쳐온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진작에야 꺼냈어야하는 말들은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당사자의 가슴속에 침전해버린다.
감독은 “다정함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 다정함의 상실이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10대 시절 꼭 붙어다니던 두 소년 레오와 레미. 둘은 점차 멀어지게 되고, 결국엔 어느 것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잃게 되는 것, 잃어버리고야 마는 것. 레오와 레미의 우정이, 사랑이,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무너지는 과정이 마음 아팠다. 그 시절에 존재하던 다정함이 이제는 무형의 것이 되었기에. 레오가 꽃냄새 자욱한 벌판을 뛰어다니다가 뒤를 돌아봐도, 레미는 그곳에 없을 것이기에.
두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던 영화. 눈빛에 담긴 섬세한 감정선이 탁월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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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심과 확신이 부족했던 항일운동의 재해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활동 중이던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 '유령'. 그는 새롭게 부임하는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총독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까지 성공한다. 이에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박해수)'는 조선총독부 내에 숨어든 유령을 잡기 위한 덫을 놓는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설경구)', 암호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 비서 '요시나가 유리코(박소담)', 암호 해독 담당 '천경호(서현우)', 통신과 직원 '이백호(김동희)'는 유령으로 의심고 벼랑 끝 호텔에 갇힌 채 추궁당하기 시작한다. 하루 안에 유령을 찾으려는 다카하라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유령은 호텔에서 탈출해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삼는 한국 영화가 많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어필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단 반일 정서를 겨냥해 관객들의 감정선을 공략하기 쉽다. 장르적으로도 운신의 폭이 넓다. 독립군을 다룬다면 블록버스터 영화를, 의열단이나 한인 애국단 같은 항일 운동에 초점을 맞추면 첩보 스릴러나 누아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봉오동 전투>가 전자라면, <암살>이나 <밀정>은 후자다.
특히 이야기의 기본적인 얼개와 제시되어 있어서 재해석이 용이하다. 역사적 사실을 도구 삼아 이야기의 구조나 흐름을 수월하게 조직하고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대개 특정 사건을 스크린에 옮기거나, 역사적 인물을 각색하는 팩션(faction) 영화다. 예를 들어 <밀정>의 모티브는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이다. <암살>은 실제 인물인 김원봉과 염동진을, <영웅>은 안중근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만 이는 단점도 명확하다. 사건이나 인물의 재해석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전달의 수단으로 변질되면 재미와 완성도가 떨어진다. 언제나 고증과 역사 왜곡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부담도 피할 수 없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 <유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중국의 소설가 마이지아의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유령>에는 다른 작품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작중 익숙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흑색단이라는 이름의 항일 조직은 물론 신임 총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이 허구다. 흑색단의 첩자로 의심받는 주인공도 가상의 인물이다. 즉, <유령>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처럼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을 빌려 허구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데 주력한다. 이 발상은 꽤 흥미롭다. 스크린 위에 인상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마지막까지 부각할 뚝심은 부족해 보인다. 그 결과 <유령>은 신선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유령>은 역사를 재현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실제 인물을 기록하거나 잊혀 가는 사건을 상기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시대를 재현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의 삶을 스크린에 띄운다. 재력가 딸이지만 조선총독부에서 암호문 기록 담당으로 일하는 박차경과 조선인인데도 정무총감의 직속 비서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유리코. 암호문 해독에 재능을 지녔지만. 결벽증을 지닌 채 소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천은호. 조선인 어머니를 둔 것을 부끄러워하며 유령을 잡아 공을 세우려는 데 혈안이 된 무라야마. 조선인 피가 섞인 학교 선배를 무시하는 다카하라까지. 영화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제각기 남다른 사정을 품고 있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다.
중요한 건 영화가 오프닝부터 누가 유령인지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미 유령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캐릭터 사이에서 누가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는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마피아 게임 같은 추리극이나 심리극을 예상케 만드는 포스터나 홍보 문구만 믿었다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각 인물의 목적이 명확하기 때문에 속고 속이는 서스펜스는 매력적이지 않다. 또 다른 유령이 등장하는 반전도 효과적이지 않다. 총독부의 암호문이 흑색단의 극장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 이미 또 하나의 유령이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인물 간의 관계는 눈길을 끈다. 유령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카하라에게 결백을 주장해야 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기에 그들 간의 차이점은 자연히 두드러진다. 이 관계는 결국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수단이 된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인물은 누구보다도 '내선일체'라는 일제의 프로파간다에 충실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은 그를 배척하기도, 포용하기도 한다. 조선인 중에는 온몸과 마음을 던져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시민적으로 항일과 친일을 모두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 중간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하기도, 순응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 덕분에 허구의 세계를 항해하는 <유령>은 현실에 닻을 내릴 수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면 살아있는 캐릭터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유령은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클라이맥스는 극장에서 펼쳐지고, 영화관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영화관은 허구의 공간이다. 스크린 위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온갖 사건이 벌어지지만, 스크린 속 주체와 사건은 물리적으로 실체가 없다. 반면에 극장은 실체가 있는 공간이다. 실제 인물인 배우가 무대 위에서 움직일 때 이야기는 진행된다.
공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유령과 흑색단은 지령을 전달하고 비밀을 공유한다. 그들의 신념은 아직 그들의 가슴속에만 존재할 뿐, 총독 암살과 같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반면에 유령은 극장에서 직접 움직인다. 무대와 커튼 뒤에서 혈투를 펼친 끝에 자신의 희생과 피해가 헛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덕분에 더 강한 의지로 영화관에서 지령을 내리며 총독 암살을 시도할 수 있다. 신념과 이념에만 갇혀 있지 않고 행동을 통해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유령>의 각오와 궤를 같이하는 듯 느껴진다. 기록과 영상으로 남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대신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을 앞세워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항일 투쟁을 다루는 영화인데도 담배를 매개로 연결된 두 여성의 처연한 사랑과 유령 간의 애절한 동지애가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유령>은 장르가 급변하는 순간부터 매력이 급감한다. <유령>은 감독의 전작인 <경성학교>처럼 중반부부터 장르를 전환한다. 추리극은 또 한 명의 유령이 정체를 드러내자 액션 영화로 탈바꿈한다. 그 이후로 영화는 철저히 액션의 쾌감에 집중한다. 두 유령이 힘을 합쳐 호텔에서 탈출하는 과정은 온갖 폭발음과 불길로 가득하다. 다카하라가 흑색단을 잡기 위해 함정을 펼쳐둔 극장에서는 치열한 총격과 저돌적인 맨몸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으로 기관총을 든 박차경이 연인이었던 '난영(이솜)'의 못다 이룬 총독 암살을 대신하는 장면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난장판 마무리도 스쳐 보인다.
문제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낭비되는 캐릭터가 너무 많고, 그로 인해 <유령>만의 특색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점이다. 가장 보편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 천은호 계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령을 찾아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모든 상황을 외면하며 피하려 한다. 그러나 두 유령의 활약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는 '평범한 시민 1'이 되어 바로 이야기에서 삭제되어 버린다. 무라야마의 후배 경관 역시 그 시대를 보여주는 독특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무라야먀의 어머니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이내 무라야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혈통과 관계없이 그를 좋은 선배이자 좋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도 결국에는 유령과 흑색단을 잡겠다는 무라야마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허구의 시공간 안에서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역동적인 역사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꺾이고, 현란하고 단순한 쾌락이 그 자리를 대신해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힘을 잔뜩 준 액션 연출이 인상적인 것도 아니다. 일례로 작중 일본군은 놀라울 정도로 무능하다. 그들은 박차경과 유리코의 액션을 빛내주기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할 뿐, 유령들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거나 위기에 빠뜨리지 못한다. 붙잡은 포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탈출하는 걸 구경한다. 마치 <스타워즈> 속 제다이와 스톰트루퍼의 추격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주인공들이 위험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다만 <스타워즈>에서는 '포스가 함께 한다'는 핑계라도 있다면, <유령>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두 여성의 액션은 그 자체로 통쾌하거나 박력 있을지 몰라도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은 뽐내지 못한다.
필요한 디테일을 지나치게 생략하기도 한다. 멋진 액션 시퀀스는 많은데, 그 사이가 비어 있어서 의문점을 남긴다. 후반부 극장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분명 관객의 이목을 끌만하다. 무라야마가 흑색단 총책과 연락책을 체포하여 남은 인원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대목,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루어진 유령들의 역습, 무대 뒤 커튼 사이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추격전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는 설명이 없다. 무라야마가 어떻게 흑색단 일부를 체포했는지, 유령들은 어떻게 그 타이밍에 발맞춰서 경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는지 등 액션이 등장하기 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이처럼 의문이 뒤따르다 보니 액션에 푹 빠져 즐기기도 어렵다.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선사하는 시각적인 쾌감만큼이나 극적 순간을 조성하려는 무리수가 커 보이는 이유다.
그 결과 <유령>의 도전은 끝내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장르적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거부한 도전과 의도를 밀고 나갈 줄 아는 뚝심은 비록 산만하기는 해도 생동감 넘치는 영화의 전반부를 만들어냈다. 반면에 더욱 드라마틱한 몇몇 순간을 꾸며내기 위한 변화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매력까지 까먹어 버렸다. 영화 중반부 이후 액션영화로의 전환이라는 변화구를 던지는 대신 캐릭터 간의 심리극이라는 직구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P(Poor, 형편없음)
변화구 대신 직구였다면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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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잔인함과 추악함은 영상과는 달라
개봉: 2024.05.15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다큐멘터리
국가: 미국
배급: 찬란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
출연: 낸 골딘
시놉시스
퍼듀 파마라는 거대 제약회사가 만든 옥시콘틴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로 미국에서 이때까지 50만 명이 사망했다. 퍼듀 파마를 만든 새클러 가문은 옥시콘틴을 팔아서 떼부자가 되었다. 새클러 가문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여러 미국의 명문대에 자선 사업을 했고 그로 인해 새클러 가문의 인장이 세워졌다.
하지만 의사가 처방해준 옥시콘틴이라는 약에 중독되어 삶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낸 골딘은 그들과 함께 P.A.I.N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4년간의 긴 사투를 벌이는 P.A.I.N 모임과 새클러 가문 중에 법은 누구에게 편을 들어줬을까?
낸 골딘의 우울한 가정사와 굴곡진 인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낸 골딘은 어렸을 때 자신의 언니인 바버라를 잃었다. 그 후로 낸 골딘이 사진작가로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은 바버라가 1살 때 부모님의 학대로 입막음을 당했다. 바버라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켰으며 그걸 보고 자란 낸 골딘은 불안해했다. 그래서 집에서도 유대인 가정으로 입양을 보냈고 히피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곳에서 15살에 만난 데이비드 암스트롱은 낸 골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말문을 열어주는 사람이었다.
낸 골딘이 성인이 될 무렵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는데 쿠키라는 여자 배우와 영화 제작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서로 모여서 뉴욕에서 예술인들의 모임에서 활동한다. 경찰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낮에는 나가지 않고 밤에 돌아다니며 불량스럽게 놀았다. 그런 그녀도 또 다른 억울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성매매와 출세를 위한 매춘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휘두른 심한 폭력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첫 인트로 영상에서 낸 골딘이 현실은 추악하고 냄새나며 단순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P.A.I.N 모임에서 볼 수 있듯이 옥시콘틴이라는 약물로 사랑하는 자식이 세상을 떠나거나 중독되어 삶이 망가진 사람들이 거대 제약 회사의 가문과 맞붙어도 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드라마나 영화에 비하면 현실은 정말로 닫힌 결말로 끝날 수 없는 곳 같다.
P.A.I.N 모임은 4년간 새클러 가문이 자선 사업을 한 미술관과 대학들을 찾아가며 단체 시위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새클러 가문을 저격하는 구호를 외치며 약통들을 바닥에 던지고 죽는 시위를 하는데 옥시콘틴의 사망자들을 비유하는 듯하다. P.A.I.N 모임이 4년간의 투쟁 끝에 마침내 새클러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퍼듀 파마가 파산을 하면서 여러 미술관에서 새클러 가문의 이름이 지워졌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P.A.I.N 모임이 원하는 건 단지 피해 자금을 원하는 게 아니라 후세까지 안전하고 옥시콘틴으로 인해 죽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 잘못된 약 복용으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옥시콘틴 처방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사람들이 모인 P.A.I.N 모임이 가진 의미!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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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핵심 사건은 엄마의 죽음과 뫼르소의 살인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해변에서 동료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한 아랍인 남성을 총으로 쏘는데 재판에서 핵심이 되는 건 살인 행위가 아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대체로 시큰둥한 태도였고, 바로 다음 날 애인을 만나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눴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카뮈가 고발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부모자식 관계를 비롯한 일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권태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방인》에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죄’로 여기고 응징한다. 카뮈의 말마따나 ‘부조리한’ 세상이다.
영화 〈썬다운〉은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다. 런던에서 거대 육류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닐과 그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앨리스의 두 자녀가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고급 호텔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던 그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앨리스와 그 자식들은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닐도 그에 동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닐은 공항에서 여권을 놓고 왔다며 다음 비행기로 런던에 가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독히 평온한 표정으로 허름한 호텔로 가 다시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는 닐. 런던으로 돌아간 앨리스는 계속 그에게 전화하여 여권은 찾았는지, 언제 비행기에 탈 것인지를 묻는다. 닐은 계속 거짓말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멕시코인 여자친구를 사귀기까지 한다.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 듯한, 그러나 동시에 자유가 깃든 닐의 표정이 압권이다. 닐의 얼굴은 해방과 자유가 반드시 환희를 동반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닐이 보여주듯, 해방과 자유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평온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폭발한 앨리스는 직접 멕시코로 닐을 찾으러 오고 그에게서 적당한 연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회사 경영권과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받는다. 사실 이는 앨리스의 요구가 아닌 닐의 제안이다. ‘상식’의 세계에 속한 앨리스는 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닐의 제안에 ‘만족’한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택시기사가 앨리스를 강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닐은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가 앨리스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은 그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주요 ‘근거’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쓰러진 닐은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 홀로 병원을 걸어 나온다. 닐은 돈도, 가족도, 여자친구도 버리고 떠난다. 여전히 예의 그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그러나 이제는 자유를 갈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점에서) 동시에 소극적이기도 한(모든 것에서 그저 도망칠 뿐이라는 점에서) 닐의 저항은 일상의 부조리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닐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 듯 다르다. 바닷가에서 친구와 신경전을 벌이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아랍인이 지니고 다니는 칼에 비친 태양 빛에 이끌려 그를 살해한다. 《이방인》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장면이다. 〈썬다운〉에도 뫼르소가 보았을 태양 빛을 담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그 태양빛은 닐을 살인하게 하지 않는다. 닐의 자유는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는 자유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음에도 엄마의 장례식을 트집 잡는 사회에 부조리를 느낀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의식의 깊이를 더해가며 자유에 도달한다. 여기서 아랍인은 그의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도구화하지 않는다. 내내 계급적 조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닐이 가진 재산에 비해 그가 연금으로 요구하는 돈은 ‘소탈’해 보이기까지 하다. 닐의 자유에는 《이방인》에서 도드라지는 여성혐오도 없다. 멕시코 출신의 미셸 프랑코가 〈썬다운〉에서 그린 자유는 분명 《이방인》의 자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뫼르소, 닐…. 카뮈가 쏘아 올린 자유의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내가 센 것이 맞다면 총 여섯 번이다.
**카멜 다우드는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문예출판사, 2017)에서 아랍인의 관점으로 《이방인》을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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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Capernaum/2018/레바논, 프랑스)
-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무정지옥(無情地獄)>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북부의 도시이름이다. 예수 당시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도 있어 제법 큰 도시였다. 예수가 이곳에서 가르침과 기적을 많이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예수는 가버나움의 멸망을 예언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은 가버나움이 아니라 레바논의 빈민촌이다. 멸망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렇게까지 가난하고 피폐할 수 있을까 싶은 동네여서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 같다.
빈민촌의 한 소년이 친부모를 고소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소년의 이름은 자인. 출생증명서가 없어 존재와 삶이 입증될 수 없는 어린 아이.
원고와 피고, 피고의 변호사 등이 법정에 속속 도착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법원은 취재진들로 둘러싸여 이 재판이 세간의 눈길을 끄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자인의 부모는 무지하고 무능하며 가난하다. 7-8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을 정도. 자인은 약국을 전전하며 거짓으로 약을 처방 받아 동생들과 함께 '마약주스'를 만들어 판다. 그리고 자인의 집 주인인 아사드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 그의 몸무게 보다 더 나갈 듯한 가스통을 끌차에 싣고 힘겹게 끌며 이리저리 배달하는 자인의 뒷모습은 비극 그 자체이다. 언뜻 보기에 아사드가 자인에게 친절한 것 같지만 그에게는 속셈이 있다. 자인의 어린 여동생 사하르를 탐내고 있었던 것. 이것을 이미 눈치 챈 자인은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하게 되자 동생의 앞날이 걱정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선물로 닭을 들고 자인의 집에 들른 아사드는 집세를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사하르를 요구하고 자인의 부모는 이를 수락한다. 싫다고 울며 부르짖는 사하르를 강제로 아사드에게 보내는 부모에게 격분한 자인은 가출을 하고 만다.
집과 멀리 떨어진 좀 번화한 동네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미성년인 자인에게 차례가 올 리 없다.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에티오피아 여성 이주 노동자 라힐을 만난다. 라힐에게는 젖먹이 아들 요나스가 있었다. 테마파크의 잡역부로 일하던 그녀는 짐에 숨겨 아들을 일터에 데려가 화장실에 가둬놓고 몰래 젖을 먹이며 키우고 있었다.
라힐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자인이 그녀의 판잣집에서 요나스를 돌보기로 하고 함께 지내게 되지만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가짜 체류증이 만료되어 새 체류증을 만들어 보려고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그녀는 불법체류자로 체포되고 만다.
라힐이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자 집에 있는 것들을 팔고 마약주스도 만들며 자인은 버텨보지만 집세가 밀려 쫓겨나고 보니 도무지 헤쳐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장통에서 만난 난민 소녀에게 돈이 있으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불법 체류증을 팔면서 인신매매를 하던 시장의 상인 아스프로가 집요하게 요나스에게 눈독을 들이며 감언이설로 자인을 꼬드기자 해외로 나갈 돈이 필요했고 요나스를 돌보기에 힘이 부쳤던 자인은 요나스를 아스프로에게 넘긴다.
해외로 가려면 출생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아스프로의 말에 서류를 가지러 집에 들른 자인은 동생 사히르가 너무 어린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합병증으로 죽고 말았음을 알고는 아사드를 칼로 찌르고 체포되는데 바로 그 구치소에서 라힐을 만난다. 자인의 끔찍한 삶이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었을 때 그에게 소원을 묻는 진행자에게 자인은 '내 부모를 고소하는 것'이라는 답을 하게 되어 그의 비극적인 삶이 법정에서 파헤쳐지게 된것이다.
<가버나움>은 무정한 사회에서 어린이라는 약자가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을 그린 사회고발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역할에 해당되는 일들을 실제 경험한 비전문 연기자들이라고 하며 감독 나딘 라바키는 "가버나움재단"을 세워 이 비전문 연기자들의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니 그녀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상주의자인 모양이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서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이 없으니 가난의 자리에 주저앉게 되고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로 감독은 자식이 친부모를 고소한다는 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라고 하여도 부모가 자식을 팔며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는 상황만큼 무정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자식이 열 두 살인지, 열 세 살인지도 모르는 부모.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돌봄도 받지 못해 비쩍 마른 몸으로 생계의 전선으로 내몰리는 어린 소년. 생리를 시작하게 되자마자 준비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이름아래 팔려가는 어린 소녀. 난민들에게는 구호단체의 손길이라도 미치지만 보호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국의 어린 아이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딜 수 밖에 없다는 감독의 직설적인 고발이 비현실로 다가와 죄책감이 들 정도이다.
도시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옳으냐.
앵벌이나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옳으냐.
관료주의적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옳으냐.
이러한 의문이 타인을 돕는 행위를 가로막는 질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보다 힘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편이, 답하기 어려운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인간적이지 않을까(©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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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뽑은 올해 탑 10 영화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올 한 해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코로나19라는 환경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낸 감독과 배우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근데 아쉬운 건 우리나라의 개봉 작품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구체적인 근거 있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뭔가 체감상 그런 느낌이다. 내년에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개봉이 연기되거나 촬영이 중단 된 작품들이 많이들 상영되길 바란다. 기준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며, 많은 이들이 이 작품들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10. <세 자매> / 이승원
문소리-김선영 배우가 청룡영화상 주조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난 문소리 배우하면 생각나는 되게 전형적으로 연기하는 이미지가 있다. 똑순인데 씩씩하게 사는 허당 역할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느낌? <메기>와 <하하하> <여배우는 오늘도>같은 작품들이 되게 한 갈래같이 느껴졌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되게 문소리 식 연기를 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곪을대로 곪은 중년 여성의 내면을 완벽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겉으로 드러낼 순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트라우마를 종교로 귀결 낼 수 없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데, 분출하는 분노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괴리를 모두 살리는 괴력을 보여준다.. 이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는 김선영 배우였는데, 엄마 연기 달인 다운 면모가 있다. 딸래미한테도 핍박받고, 남편한테도 쿠사리먹고, 온 세상이 함부러 대하는 소심한 어머니상을 손짓 하나 표정 하나로 구현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자매인 장윤주 배우의 연기나 현봉식 배우의 연기도 다 좋았지만 이 둘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코미디로서, 또 드라마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후반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읭? 스러운 선택지를 고른다는 점이나 전체적인 설정이 좀 과하다는 점은 아쉽긴 한데 보는데 큰 무리는 없을듯. 마음 속의 억눌린 무언가가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왓챠에 있음.
9. <랑종> / 반종 피산다나쿤
개인적으로 <티탄> 만큼이나 문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난 진짜 극장 뛰쳐나오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반해 몇몇 분들은 재미 없었다고 하니 그 선명한 호불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페이크다큐라는 장르적인 허점이나 굳이..? 싶은 부분까지 만든건 몰입을 깨는 요소가 맞다고는 생각하나 님 역 배우의 중후반까지 끌고가는 카리스마나 촬영한 장소, 태국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나홍진식 염세주의의 글로벌화(?)를 이끌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간략하게 더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흔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클리셰라고 한다. 그 클리셰라고 하는 게 ‘아 또 이 짓거리 하네 뻔하네 ㅋㅋ’ 싶으면 흥미가 떨어지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그게 좋은 쪽으로 발휘가 되곤 하는데, 난 랑종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정말 여기까지 갈 것인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운명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표현한 호러영화다. 아시아 공포영화 수작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넷플릭스에 있음.
8. <바쿠라우> / 클로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브라질 영화임. 한 정치인이 있다. 이 사람은 시장직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근데 또 이 인물은 반지성주의자라 책도 지식도 전부 부정한다. 이 인물이 한 마을의 지지를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자, 바쿠라우라는 이 가상의 도시에 보복하고자 하는 내용을 플롯으로 담았다. 올 해 개봉했던 <레 미레자블>의 광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내 폭주하다 결국 파국으로 가는 영화였다. 나는 이 <레미레자블> 영화의 에너지가 ‘빨리 달린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바쿠라우>는 살짝 다르다. 광기에 씌인 채로 달린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게 있으면 그걸 다 부숴가며 달리는 느낌인 것이다. 이렇게 현재 브라질이 처해있는 원주민과 개발자들간의 갈등을 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비틀어 영화화 한 작품이다. 슬래셔 호러나 스릴러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네이버에 있다.
7. <루카> / 에린코 카라로사
난 항상 왕따였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도 내 공감을 오롯이 받지 못했기도 하고. 부족한 사회성 탓에 난 항상 모난 돌이었어서 세상에게 딱 미움 받기 좋은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론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미움을 당연히 받아서는 안되는게 맞고, 왕따의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모든 축복을 비는 건 여전하지만 난 아픔에서 나아가기 보다 내가 세상을 먼저 따돌리던 쪽에 가깝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외로워서 그랬던 거지. 이런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 누구에게 든든한 어깨가 될 수도 있고 푸근한 품이 될수도 있다. 이 <루카>는 든든한 품같은 이야기다.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 사이에서 세상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따뜻하게 품는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디즈니플러스에 있음.
6.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존 왓츠
블랙 위도우 - 샹치 - 이터널스로 올해 좀 심심했던 마블이 힘 좀 준 작품이다. 12월 15일 개봉 이후 스포가 사골국같이 우려졌을 것 같아 굳이 더 이야기를 쓰진 않아도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톰과 파이기가 아카데미 의식을 하지 않아도 MCU가 극장에서 준 전율과 감동을 믿는다. 그건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그에 걸맞는 훌륭한 3부작 마무리다. 현재 상영관에 걸려있다.
5.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 도이 노부히로
사람은 누구와 사랑에 빠질수도 있고 또 헤어질수도 있다. 그건 당연한 것. 근데 그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게
있는거 같다.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사람이라면 겪을 성장통과도 같은 뭐 그런 것이다. 이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또 겪을 수 밖에 없는 감정과 과정을 그린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것 없이 사랑에 빠져 아름답게 불태운 지나간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영화인 셈이다. 보내기 싫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품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그게 누군가의 심각하게 상처를 준 일(데이트폭행, 바람 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면 가끔은 그들에게 고마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향기롭게 시드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박평식 평론가의 평가가 생각나네. 올 해 나온 로맨스코미디 영화중 단연 최고다. 네이버에 있음.
4.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영화는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거 같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던가, 예전에 썸타던 여자가 1년만에 유학 돌아와서 사귄다는가 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별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지 않나. 몇몇의 바람과는 반대로 이별과 재회는 항상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이 <노매드랜드>는 이 이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플롯이 영화같지 않은 하루로 가득찼다. 근데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을 이야기한다. 이별, 참 어렵다. 보낸다는 건 그 사람과 행복했던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근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진짜 이별의 가치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보내지 않았기에 사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영원한 안녕이란 없으니까. 네이버에 있다.
3. <당신얼굴 앞에서> / 홍상수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홍상수는 영화에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같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비꼬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그 사건 이후 홍상수는 자기의 심리상태를 은연중에 투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혼자’라는 제목을 통해 모든게 끝나고 나서의 자기와 김민희 배우의 모습을, <강변호텔>은 삶의 동기부여가 사라진 인물의 욕망 발현을, <풀잎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소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세 작품 다 ‘한 사건이 있고 나서 느낄 수 있거나 경험하고 있는 순간’ 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시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혐오가 아닌 순수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그런 시도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이제 홍상수는 더이상 무언가가 끝나고 난 다음이 아니라 얼굴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찌질함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적으로 보이는 상황에게 신뢰를 주려고 하는게 아닐까. 묘한 위로감에 감사했던 영화다. 네이버에 있다.
2. 소울 / 피트 닥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사실 세상에게 할 말이 없다. 내 동기부여의 본질을 깨달았거든. '정공'이라 사람들을 욕하는 미친 세상에서 군 문제도 공익으로 빼고 1인분 하는 것도, 토익 900점도, 수많은 경험치와 내 능력도 다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것도 몰라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멀어지는게 두려운게 요즘의 나다. 그 덕에 나한테 일어난 일도 아닌데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무례한 어떤 이를 미워하다가 오바하는게 맞는거 같아 실제로 표현하기엔 소심해지고, 어려운 현실에서 잘 개척해냈다는 확신은 있지만 왠지 인스타 좋아요 개수부터 사람들에게 비호감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에 헤어나오질 못했던 것 같다. 소울은 이런 회의감에 대한 영화다. 과연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했을 때, 미래가 달라질까? 내가 친구가 많아진다고 또 돈이 많아진다고 행복해질까? 아닐수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그 다음의 순간이다. 정말 삶에서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작은 순간들이 아닐 지. 삶의 동기부여를 잃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보다 색다른 접근법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디즈니 플러스에 있음.
1.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이해. 난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일까? 확신 할 수 없다. 나는 사실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지 깨달은 사람인 듯 하다. 그리고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공허함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다는걸. 난 이제까지 헛걸음을 했다는 걸. 그리고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늘 외롭고. 뭘 원하든 그걸 가져다주지 않고. 또 이게 당연한 사실인데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또 방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꺼냄으로서 치유받는 것이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3시간동안의 운전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 들었던 애매묘호한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올해의 영화.
번외
<해피 투게더> / 왕가위
코시국으로 인해 극장가 재개봉 메타가 불었고, 왕가위 특별전이 열리면서 다시 상영관에 걸린 작품.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과연 중요한게 무엇일까? 새로운 걸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들만 찾아 다른 길을 떠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해에는 온 몸을 부딫히며 사랑해야지. 어떤 순간이든 행복한 채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게끔. 올해 재개봉 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았으며 내 인생영화이기도 하다.
올해의 배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올해 4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게 사람이냐 소냐? <파워 오브 도그>로 아마 아카데미에 한발 더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스파이의 아내>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의 각본을 담당함. 대체 뭘 먹고 살아야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 것일까? 단 3편만으로도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츠, 아니 '하마구치 류스케'가 유력하니 그 클래스가 어마어마하다. 시간 나는 분들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정주행 해도 꽤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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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영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결정의 순간을 맞이한다. 갓난아기 시절에는 먹을지 말지, 싫은지 좋은지로 의사를 표현하지만 조금씩 많은 것을 거부하고 결정해나간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에 대한 의견 표시를 부모에게 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그 결정을 보조해주지만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면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특히나 입시 시험은 수많은 문제의 답을 결정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성적에 따라 어떤 대학에 갈지를 결정한다. 수없이 이어지는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외의 문제들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그 결정 이후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주어질지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결정을 하지 않으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데시벨>은 한순간의 결정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초반에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해군 잠수함 안을 보여준다. 부함장(김래원)을 중심으로 훈련을 진행하던 중 정체불명의 어뢰 공격을 받고 바닷속에 잠기게 되는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시점을 이동해 현재 부함장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부함장은 폭탄 설계자(이종석)의 전화를 받고 설치된 폭탄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된다. 폭탄 설계자는 왜 폭탄을 설치했는지 초반에 설명해주지 않고 첫 번째 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시작으로 두 번째 폭탄, 세 번째 폭탄으로 긴박하게 시선을 돌리려 노력한다.
어떤 결정을 한 이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잠수함 부함장의 이야기
사실 현재 시점의 부함장은 과거 잠수함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잠수함이 가라앉았을 당시 그는 선원들을 최대한 살리려는 결정을 했지만 그 결정은 죽은 선원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선원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결정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부와 사회는 그를 일부 선원이라도 살린 영웅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함장은 트라우마와 함께 죄책감을 같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폭탄 설계자가 그를 이끄는 곳은 바로 과거 잠수함의 트라우마 속이다.
영화에서 부함장은 시종일관 테러범에게 끌려 다닌다. 도움을 받기 위해 우연히 만난 취재기자(정상훈)와 함께 폭탄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정작 폭탄을 찾고 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사람을 대피시켜도 폭탄을 터뜨린다는 테러범의 말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부함장과 그와 관련된 사람의 트라우마를 영화는 드러내 이용하려 하지만 그것이 왜 폭탄 테러와 연결되어야 하는지 영화는 설명해내지 못한다.
부함장이 가진 트라우마는 사실 테러범인 폭탄 설계자의 정체를 파악하고 만나게 된 순간 더욱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 속에서 크게 폭발력이 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폭탄 설계자가 굳이 소음 폭탄을 이용해야 했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과거 전문가가 아니었던 폭탄 설계자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복잡한 폭탄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저 그가 멘사 회원이라는 아주 얕은 이유만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부함장의 아내(이상희)가 등장한다. 폭탄 해체반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유일하게 폭탄을 해체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부함장은 그와 어떤 상의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취재기자와 뛰어다닐 뿐이다. 또한 영화 속 취재기자도 어설픈 모습만 보여주며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개그를 선보인다. 부함장의 아내와 취재기자 모두 영화 속에 겉돌기만 하고 부속품으로 활용될 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긴박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김 빠지는 캐릭터와 이야기
종합해보면 부함장은 폭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폭탄을 찾아 뛰어다니고, 그의 주변 인물들은 폭탄 해체에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그저 소비되고 만다. 다른 무엇보다 폭탄 설계자가 왜 부함장을 괴롭혀야 하고 테러로 다른 사람들, 특히 부함장의 가족까지 희생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무척 공허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이미 많은 폭탄 테러 영화, 잠수한 영화 등에서 보아왔던 장면들이 떠올라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영화가 꽤나 낡은 이야기와 액션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소리를 이용한 폭탄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사용하고도 전혀 신선함을 느낄 수 없게 구성된 이야기와 캐릭터는 무척 실망스럽다.
결국 이 영화는 부함장의 결정에 의해 발생한 트라우마와 영향을 다루는 이야기다. 영화의 과거 사건인 잠수함에서 살아남은 이가 그 결정을 한 부함장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노력이다. 부함장은 자신의 결정의 죄책감을 마음에 담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때 살아남은 선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선원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챙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정을 반대했던 사람은 그에게 반기를 들고 테러로 공격을 한다. 그 결정이 이 영화의 비극을 낳게 되었지만 부함장은 자신의 힘으로 그 방법이 잘못된 길임을 알려주려 영화 내내 노력한다.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부함장 역할을 맡은 김래원과 폭탄 설계자 역할을 맡은 이종석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두 인물이 가진 분노와 상실감을 무척 잘 표현하고 있다. 각자가 잘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 취재기자 역할을 맡은 정상훈의 연기도 나쁘지 않지만 이 영화의 상황에 맞지 않는 연기톤 때문에 돋보이지 않는다. 영화 <데시벨>은 기발한 폭탄에 대한 아이디어와 배우들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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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복 하나씩 교환하자!” 엄마의 강요로 대만 최고의 명문인 제일여고 야간반에 입학하게 된 ‘아이’는 짝퉁 엘리트가 된 것 같아서 부끄럽다. 학교의 전통에 따라 같은 책상을 공유하는 주간반의 책상 짝꿍 ‘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던 중, ‘민’이 주간반과 야간반의 교복을 교환해 함께 땡땡이를 치자고 제안한다. 평범한 자신과는 달리 공부도, 놀기도 잘하는 ‘민’과 어울리며 다채로운 세상을 경험하던 어느 날, 첫눈에 반한 제일고의 인기남 ‘루커’를 ‘민’ 역시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 사람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만 같은 못난 열등감에 ‘루커’의 앞에서 주간반 행세를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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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오프닝 초반 장면 리뷰
+ 모달 MODAL 101 / 그 외의 상징 해석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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