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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글다2025-09-25 14:47:34

[30th BIFF 데일리] 장미의 가시는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

영화 <말리카(Malika)> 리뷰

Director: Natalia UVAROVA 나탈리아 유바로바

Cast: Izabella KHAMPIEVA, Marena KHARSIEVA

 

Program Note

이혼한 엄마와 함께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던 12세 소녀 말리카는 어느 날, 엄마의 연애 소식을 듣고 들이닥친 아빠로부터, 엄마가 재혼하면 말리카의 양육권이 아빠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엄마와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된 말리카는, 대가족과 자연 안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엄마의 재혼이 현실화되면서, 말리카의 불안도 고조된다. 카자흐스탄의 잉구셰티아계 소수민족이면서 보수적인 이슬람교도인 말리카의 가족들에게, 여성의 재혼과 양육권 문제는 전적으로 남성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말리카의 실존적 불안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엄마의 무기력감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탈리아 유바로바 감독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통해 말리카의 고난과 성장의 서사를 솜씨 좋게 풀어냈다. (박선영)

 

 

 

재혼하면 아이를 강제로 뺏겨야 한다니, 2025년에 가당키나 한 것인가. 영화 <말리카>는 여자가 재혼하면 자식의 친권은 아빠에게 가는 (한국인 아니 대부분의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무슬림 율법 때문에 이별을 겪는 ‘말리카’와 엄마 ‘로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법이 카자흐족은 해당되지 않고, 잉구셰티아족에는 적용되는 나름 아주 세세한 기준이 있는 이슬람교 문화에서, 오랜만에 만난 12살짜리 딸에게 “차 좀 내와라.”라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곳에서 여성을 둘러싼 분위기를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친권에 대한 회의에서도 여성은 참여할 수 없다. 두 모녀는 유리 중문을 넘지 못한 채, 코란과 남성들이 정한 통보가 나오길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들을 회의에서 밀어내는 반투명한 유리 중문은,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며 여성에게 결정권과 발언권조차 허락하지 않는 벽이 된다. 얇디얇은 유리 하나를 뚫지 못하고 실 양육자와 당사자의 목소리는 무시된다. 목소리를 빼앗긴 데서 비롯된 분노와 울분은, 수세대를 거쳐 두 사람에게 오직 무력감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엄마의 재혼이 가까워지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둘의 관계는 극에 달한다. 말리카는 옥수수밭에 휴대전화를 버리기도 하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틀어지게까지 했음에도 재혼을 선택하려는 엄마가 밉기만 하다. 재혼이라는 선택이 자신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말리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짐만 늘어나기만 한다. 자신을 버리는 듯한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들을 참다못한 말리카는 결국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내 엄마는 죽었어”라 말하기까지 한다. 모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은 근원에 다가가지 못하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어두운 사각지대를 비판한다.

 

영화 속 장미는 말리카가 어설픈 거짓말로 지켜주려 하고, 분노에 휩싸여 불태운 대상이자, 엄마 로자(Rosa)이다. 쉴 새 없이 꼬이는 벌들 사이에서 장미는 사랑하는 곰 젤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시를 날카롭게 한다. 말리카도 그저 장미를 사랑하는 서툴고 과격한 사춘기 소녀이다. 그러기에 소녀는 성장한다. 소녀가 버려진 장미를 주워 가시를 자르고, 다듬는 과정과 선택은 지켜보는 모두의 눈시울을 붉힌다. 이제 장미는 가시가 없어도 되는 화병 속에서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장미의 꽃내음을 기억하며 말리카도 계속 자라날 것이다.

 

상영 스케줄

09-21 20:2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09-23 12: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09-24 13: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09-25 17:30 CGV센텀시티 4관


작성자 . 맹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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