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9-25 18:09:07
못생김이라는 폭력, 존엄을 지우다
-영화 <얼굴> (2025)
외모 평가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지하철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얼굴, 회식 자리에서 무심코 오가는 대화, 심지어 가까운 친구와의 농담 속에서도 '예쁘다, 못생겼다'는 말은 쉽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관찰과 장난 같았지만 사실은 잔혹한 낙인이었다. 아마 세상 어느 누구도 거기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잔인하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꽤나 쉽게 내뱉는 사회가 왠지 불편하게 느껴진다.
영화 <얼굴>은 그 불편한 진실을 응시한다. 얼굴이라는 표식이 한 사람의 운명을 규정하고, 심지어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가려버리는 사회의 폭력, 우리는 타인의 얼굴에 무엇을 덧씌우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얼굴은 어디로 밀려나는가? 영화는 알려지지 않은 얼굴을 추적해나가면서, 관객이 스스로의 습관과 죄책감을 마주하게 만든다. 무척 흥미롭게 전개되지만 점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첫 번째 감정] 동환의 당황스러움
영화의 서두에서 동환(박정민)은 얼굴 없는 엄마, 영희(신현빈)를 찾아 나선다. 그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정 속에서 계속 당황한다. 아주 갓난 아기 일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억 속엔 엄마의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엄마의 얼굴이 묘사된다. 상대방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못생겼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동환은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엄마라는 따뜻함 이름은, 못생김 이라는 나쁜 말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당황스러움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다. 혼란 속에서 동환은 엄마의 존재가 점점 멀어져 간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엄마의 얼굴을 찾기 위한 인터뷰를 시도해 나간다. 동환은 엄마를 찾으면서 동시에 ‘얼굴 없는 관계’라는 낯선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는 늘 얼굴을 통해 상대를 확인하고, 그를 인식한다. 그러나 얼굴을 상실한 순간, 관계는 공중에 매달린 듯 불안정해진다. 그 불안정을 없애기 위해, 동환은 엄마의 모습을 찾기 위한 시도를 계속 해나간다.
관객 역시 동환과 마찬가지로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계속 '못생긴 여자' 라는 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파국이 벌어지는 어느 순간에 가면 결국 자기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를 되돌아볼 수 밖에 없다. 영화는 계속 되는 당황의 연속이다. 동환과 같은 입장에서 그 모든 인터뷰를 바라보다, 세상의 추악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 불편함이 따라오게 된다.
[두 번째 감정] 사람들의 추악함
영화는 독특하게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환이 방송사 PD(박지현)와 같이 찾아간 사람들은 엄마 영희의 주변 인물들이다. 가족, 직장 동료, 고용주, 그리고 끝내 아버지 영규까지, 그들은 차례로 기억을 풀어놓는다. 그런데 그 기억은 놀라울 만큼 단조롭다. '못생겼다', '그 얼굴 때문에…'라는 말이 반복된다. 마치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영희는 한 인간이 아니라 흠집이자 조롱거리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그 무심한 태도가 당혹스럽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것은 차갑고 추악한 폭력으로 드러난다. 그 폭력의 강도는 물론 다 다르다. 가족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무관심했고, 직장 동료들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놀림감으로 사용했다. 그 놀림은 아주 단순히 동료들과의 재미를 위한 것이었지만, 받는 당사자에겐 엄청나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영희의 고통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마치 그녀가 외모 때문에 겪은 모멸과 상처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관객은 그들의 태도 속에서 인간의 잔인한 무관심을 목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버지 영규(권해효)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아니 인터뷰라기보단 아들 동환과 아버지 영규의 솔직한 대화라고 해야더 맞을 것 같다. 아버지의 고백하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에서 가장 추악하게 보인다. 피붙이마저 그녀를 존엄한 존재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추악함의 극점이다. 그런 기억할만한 것을 다 지워버린 아버지 역시 외모라는 굴레 앞에서 무너진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아버지는 눈이 안보이는 맹인 이었다는 것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보이지 않아도, 모든 인간은 아름다운 외모를 쫓아가고 맹신하는 걸까.
[세 번째 감정] 영희의 용기
그러나 영화는 절망만을 남기지 않는다. 영희는 그 무수한 상처를 받으면서도 영화 속 유일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사람이다. 그는 다른 성폭력 피해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못생긴 얼굴이라는 낙인이 삶을 내내 짓눌렀지만, 그는 그 굴레를 짓눌린 채 버티는 대신 가해자에게 저항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외부에 전하려 노력한 사람이기도 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 영규에게 먼저 다가가 그가 만드는 도장을 좋아하고, 영규가 계속 일할 수 있는 따뜻함을 전달해주었다. 그들은 결국 결혼까지 하고 아이도 낳지만 사회가 던지는 시선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본인은 외부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삶을 놀리고, 무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용기는 단순히 개인적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강자의 폭력에 맞선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영희는 사회가 ‘못생겼다’는 말로 지워버린 자신의 존재를 되찾고, 동시에 같은 고통 속에 있는 타인의 존재까지 끌어올렸다. 그래서 영화 속 영희는 가장 용기 있고 아름다운 인물이다. 그가 보여준 단호한 태도는, 얼굴이라는 폭력이 인간을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증언이다. 관객은 모든 불행을 보면서도 영희의 용기 속에서 비로소 희망을 본다.
오리지널 연상호 월드가 돌아오다
영화 <얼굴>은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외모 평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잔혹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 형식을 통해 현실의 날것 같은 목소리를 담아내고, 극적 연출을 교차시키며 관객의 불편함을 증폭시킨다.비록 영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지만, 외모에 대한 평가는 지금 현재에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외모로 상대를 평가하고, 은연 중에 무시하기도 하는 현실의 작태는 결코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음지로 파고들어 보이지 않게 진행될 뿐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상대적으로 저 예산으로 촬영했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이야기에 투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진짜 연상호 월드 속의 이야기가 탄생한듯한 느낌을 준다. 연상호 감독이 초기에 만들었던 애니메이션들에서 느껴지던 사회 비판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를 이번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절제된 표현 속에서 메시지는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특히나 얼굴을 감추고, 흔들리는 목소리와 행동으로 캐릭터를 표현한 신현빈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영희라는 인물을 잘 해석하여 영화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였다. 또한 젊은 영규와 동환을 연기한 박정민 배우의 연기도 빠질 수 없다. 안정적인 연기로 각 캐릭터들을 무척 실감나게 표현했다.
영화가 노골적으로 던지는 질문 때문에 일부 관객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영화가 의도한 지점일 것이다. ‘못생김’이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뼈아프게 체감시키는 경험,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영화 <얼굴>은 단지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담한 사회적 죄악의 기록이다. 관객들은 마지막에 묻지 않을 수 없다.우리는 과연 타인의 얼굴을 넘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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