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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5-10-03 14:19:57

[30th BIFF 데일리] 지금도 울리는 목소리

영화<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 세피데 파르시 감독 인터뷰

2025년 5월, 칸영화제 개막 직전. 영화인 380여 명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집단 학살에 침묵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잔 서랜든, 마크 러팔로 등 할리우드 배우, 페드로 알도모바로를 비롯한 유명 감독,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오스카상 수상 직후 떨리는 손으로 가자지구를 언급했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이름도 들어갔다. 이 이름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름에 마음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사진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파티마 하수나.

 

파티마 하수나의 이야기는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라는 다큐멘터리 작품에 담겨, 칸영화제 독립영화 병행 섹션(ACID)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다. 이 영화의 연출자 세피데 파르시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이란 출신이자 혁명과 투옥의 현대사를 겪고 18세에 프랑스로 떠나야 했던 사람이자, 파티마 하수나의 친구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담아야 최선일까 많이 고민했지만, 이례적으로 이번 인터뷰는 들은 이야기를 전부 고스란히 담아 넣고 싶었다. 아주 긴 글이 되겠지만, 어떤 이야기는 아무리 길더라도 반드시 약 달이듯 뭉근하게 끓여 찬찬히 마셔야만 하기에.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일들에 마음이 상한 당신,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하고 무력감을 느껴본 당신이라면, 기꺼이 이 긴 글을 읽어줄 거라 기대하기에.

 

세피데 파르시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뵙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어제 첫 관객과의 대화를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정말 좋았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적극적이었어요. 한국 관객에게 영화를 선보이는 것도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세계 곳곳의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 아시아 특히 한국에는 처음이네요.

 

한국도 역사적인 아픔을 겪은 적이 있어 관객들이 이 영화를 가깝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확히 그렇게 느꼈어요.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억압과 고난, 기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GV에서 나누었습니다. (영화 속 가자지구의 상황과)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해서 보신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결말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결말을 미리 정할 수 없는 게 다큐멘터리의 특성이겠지만, 특히나 마음이 무거운 결말이 되고 말았어요. 기획의도에 없는 결말인데, 처음 시작하실 때에는 어떤 방향으로 기획하셨는지요?

영화의 마지막 몇 분은 나중에 덧붙인 것이고, 그 앞부분까지는 기획대로 마무리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그 직전 장면이 원래 계획된 결말이었던 거죠. 파템(저는 파트마를 친한 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인 ‘파템’으로 부릅니다)이 보내준 영상을 본 순간 이 장면이 이 영화의 결말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파템과 1년 정도 함께 작업했지요. 영상통화로 연결된 사이지만,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우리는 순식간에 친해졌습니다. 한 해 동안 저는 파템과 더불어 살다시피 했고, 영화의 틀도 금방 잡혔어요. 인터뷰 형식이지만 사실 우리가 한 건 인터뷰라기보다 대화였거든요. 우리 대화가 영화의 중심축이 됐고, 편집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칸영화제에 출품한 게 이른 봄이었어요. 칸영화제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파템에게도 전했는데, 바로 다음날 파템이 살해당했죠. 사실 이 살해는 이스라엘군의 암살이었습니다. 암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밀 조사를 통해 파템이 표적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에요. 팔레스타인의 다른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표적 살해와 동일한 방식이었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영화 내용을 바꿀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무엇도 바꾸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의 대화 장면만 붙여 그대로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암살이라는 표현 뒤에는 후술할 정밀 조사 결과가 있다. '랜덤 타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전에, 랜덤 타격으로 사망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미친 폭격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질베르 아슈카르는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서 2023년 11월 25일 뉴욕 타임스 지의 기사를 인용하여, 10월 7일 이후 휴전이 선포된 때까지 15,000회에 달한 폭격을 설명한다. 양도 양이지만 얼마나 의도적으로 잔인했는지를. 너무 큰 숫자라서 감이 오지 않는다면, 아래 내용을 보자. 파템의 세상이 어떤 곳이 되어 있었는지를.

 

“2차 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2,000파운드(900킬로그램) 짜리 폭탄을 이스라엘이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인용하는 미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세기 들어 이 정도 구경이 사용된 적은 거의 없으며 심지어는 500파운드짜리 폭탄도 피하는 추세다. ISIS와의 전쟁 때 이라크의 모술이나 시리아의 라카가 그랬듯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에 떨어뜨리기엔 500파운드 폭탄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에 시작되어 아홉 달간 이어진 모술 전투 때 ISIS와 미국이 주도한 국제 연합군 양측을 통틀어 약 10,000명이 살해되었다. 이는 7주가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으로 가자에서 살해된 사람 수의 3분의 2 정도다.
이 수치를 더욱 위험하고 끔찍하게 마드는 것은 가자에서 시온주의 학살 기계에 희생된 이들의 약 70퍼센트가 여성과 어린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현대의 어떤 전쟁과도 비할 바 없이 높은 비율이다. 『뉴욕 타임스』 기사는 지난 7주간 이스라엘 폭격 사례에 사망한 어린이 수가 지난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들(2022년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해)로 살해된 어린이 수 전체를 상회한다고 밝혔다.”    _《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질베르 아슈카르.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기반 NGO ‘포렌식 아키텍처’의 정밀 조사 결과가 있어요. 이 단체는 여러 나라의 불법 처형, 살해 사건들을 조사하는데,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에서도 많은 연구를 했거든요. 파템이 세상을 떠난 후 촬영된 집 사진과 영상을 확보해, 탄도학적 분석과 3D 모델링 등을 동원해 검토한 끝에, 표적 살해였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드론을 띄우고, 드론이 파템이 살던 건물에 미사일 2기를 떨어뜨렸어요. 이 미사일들은 건물 옥상에 닿았을 때 터진 게 아니에요. 여러 층을 더 내려와서, 파템이 살던 2층에 정확히 도달한 후에 터졌죠. 사진을 보면 건물의 다른 층은 멀쩡해요. 파템이 살던 층에는 콘크리트 기둥이 휠 정도로 큰 충격이 있었고, 집안 전체가 무너졌는데도요.

파템의 어머니 한 명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사망했습니다. 그냥 무작위 포격이 아니었어요. 모두가 사망할 거란 결과를 예측해서, 정밀하게 계획해서 한 일이에요. 너무 끔찍하고 사악한 행위라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합니다.
파템이 그동안 올린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선정되었다는 걸 어떻게든 알고 그런 건지, 그건 모르겠어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동안 파템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거든요. 영화에서 보신 장면처럼,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파템을 외부로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죠.

 

폭격을 당한 파템의 집. 2층이 파템 가족이 살던 곳이었다. (출처: 포렌식 아키텍처 보고서 https://share.google/LAJxPYmphqVIqnDk2)


언론인 표적 살해에 대한 기사를 여러 번 보기는 했지만, 집을 알아내어 그곳을 포격하는 정도로 막연히 생각했다. 그것도 끔찍한데... 누군가의 죽음을 이토록 정밀하게 계산해서, 의도를 정확히 반영해 기술을 구현하는 건 너무 끔찍해서 잠시 멍해졌다. 이 작전을 실행한 자는 알까? 자신의 손이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없는 ‘악의 평범성’을 구현했다는 걸.

역사는 왜 끔찍한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나.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던 여성의 일기를 읽던 사람들은 이제 “그저 가자지구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여성의 눈망울을 보았다. 게다가 이 끔찍한 반복은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감독님은 파템에 대해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도 그 점이 느껴졌어요.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감독님과, 나고 자란 곳을 떠날 수 없는 파템의 모습 또한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울 같은 파템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영화 시작 부분의 대화 장면은 실제로 저희가 처음 나눈 대화인데, 우리가 서로 안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봤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감정적으로는 바로 느껴졌어요.
 내 나라 내 땅에서 갇혀 있다는 감각이 어떤 건지 저는 알거든요. 제가 16살 때 거의 1년가량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고, 풀려난 후에도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집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한 주 한 번씩은 이슬람혁명수비대를 찾아가 서명을 하고 내가 한 주 동안 뭘 했는지 보고해야 했죠. 18살 때 가까스로 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살았어요. 2년 이상을 갇힌 사람으로 산 거예요. 처음엔 감옥에서, 나중에는 집에서도 투옥된 사람처럼. 그래서 갇혀 있다는 감각을 피부로 알아요.

오래전에 있던 일이고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과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경험의 감각을 갖고 있는 거죠. 그리고 저도 16살 때 사진을 시작했거든요. 이런 공통점들로 파템과 연결되는 기분을 금방 느꼈고, 파템도 비슷하게 느껴서 제게 빠른 시간 안에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요.

 

두 분의 연결된 마음이 관객에게도 잘 보였어요. 또 하나 거울처럼 느껴진 부분은, 감독님이 영화를 매개로 세계 곳곳을 많이 다니시는데 그곳들은 영화에 크게 그려지지 않고, 주로 스크린을 많이 담으셨어요. 반대로 파템이 사는 가자지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닫혀 있는 곳이지만, 파템의 사진을 통해 거리 곳곳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그 또한 거울로 반전된 현실처럼 느껴졌고, 파템의 세계를 영화 속에서나마 확장해 열어 주는 느낌이 들어 뭉클했습니다. 파템이 여행을 많이 가고 싶어 했고, 놀이동산이나 로마처럼 가고 싶은 곳들을 언급하는데요. 파템이 언급한 곳들 외에, 만약 감독님이 파템을 어디론가 데려갈 수 있다면, 어디에 함께 가고 싶으신가요?

파템에게 저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 자신도 테헤란에 갈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테헤란도 함께 가고 싶었고… 가자지구에 가고도 싶었습니다. 실제로 같이 계획했던 일이기도 하고요.
이런 영화제에도 정말 데려오고 싶었어요. 칸영화제에는 같이 갈 계획이기도 했고요. 파템이 두 눈으로 보았으면 했어요. 물론 파템이 알아온 세계와 너무 선명하게 대조적이라 충격이 클 거라 걱정도 되지만, 살다 보면 다 그런 것이고… 가자지구 외부 세계를 마주하도록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거의 코앞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두 분의 소중한 관계인 동시에, 두 예술가의 대담이자 이 시대의 광기에 대한 기록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가 이런 광기를 목도하고 경험하는 건 처음이 아니죠. 이런 상황에서, 감독님의 지금까지의 삶과 경험을 생각하면서, 앞선 세대에게 다음 세대로서 묻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역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시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41년 전에 프랑스에 도착했어요. 그때만 해도 유럽은 “자유로운 유럽!” 느낌이었죠. 1930-40년대가 지났고 더 이상 독재나 파시즘은 없는 사회, 많은 것들에 열린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유럽에서 이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의 한 일원으로 환영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유럽, 프랑스만 봐도... 자유의 영역이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유럽의 문이 닫히고 있고, 사실 세상 곳곳이 많이 그렇죠. 제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고, 한국에서 작년 계엄령에 맞서 즉각적으로 일어나 저항하고 막아낸 것처럼 정말 대단한 일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럽과 서구 세계 곳곳에서 이런 감각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아요. 미국도 보수와 보호를 말하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스탠스로 경직되고 있죠.
인류에게 엄청난 기술, 지식, 부와 자원이 있지만… 그 자원이 적절히 분배되고 있나 하면 아니죠. 사회적인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집니다. 한쪽에서는 전쟁과 분쟁, 집단 학살이 일어납니다. 기술과 자원이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하는데, 반대로 사람을 짓누르는 데 쓰이고 있어요.
특히 유럽은 제가 쭉 살아온 곳이고, 유럽적인 가치에 대해 그동안 알아왔던 내용이 매우 공허한 것이었나 싶어, 이 언행불일치에 마음이 많이 복잡합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요. 깨어나야 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부와 정치인들은 반대로 가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응답해야 합니다.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세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못 본 척하고, 기회주의적으로 반응하죠.
어쩌면 이 시대에 정치란 하나의 직업, 비즈니스나 커리어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정치가 일종의 신념 표현이었는데 말이에요. 물론 모든 정치인이 다 위대하다는 건 아니고, 부패한 정치인은 언제나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늘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실망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정치인들을 보면 그렇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더 목소리를 내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도 프랑스 배우 아델 에넬이 가자지구를 위한 함대에 올랐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델 에넬처럼 즉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이 너무 끔찍하고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자지구를 언급하기만 해도 정치적인 해석이 붙어 움직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만 예외인 것처럼 믿게 됐어요. 팔레스타인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세계 어디서든 아이들을 죽이고, 아무 잘못이 없는 일반 시민과 민간인을 죽이고, 언론인을 죽인다면 그건 전쟁범죄입니다. 살해당한 사람이 누구든 똑같아요. 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거니까요.
지금 전 세계가 가자지구에서 보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만, 팔레스타인만 예외 취급을 받는 것.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해당하면 그건 다른 국적자의 죽음보다 “덜 나쁜”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사람을 죽이면 “그래야 하니까 죽인 것”, “자기 방어를 위한 권리”가 됩니다.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게 있었던 일(홀로코스트)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지만, 학살 피해를 한 번 당했으니 가해를 한 번 허용하자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있었던 일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본질적으로 같아요. 게다가 더 끔찍한 건 전 세계가 라이브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저는 우리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자지구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NGO를 찾아 기부할 수도 있고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주변과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쓸 수도 있어요. 뉴스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무언가 해야 한다고 촉구할 수도 있죠. 정부에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시위가 있다면 나갈 수도 있고요. 쉬운 일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걸 멈추는 건 쉬웠을까요? 미국정부가 스탠스를 바꿀 때까지 사람들이 정말 오래 투쟁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또한 수십 년이 걸렸지만 끝내 싸워서 변화를 만들어냈죠.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멀리 떨어진 유럽에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미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목소리를 낼 때나 이란의 (히잡 시위 이후)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를 부르짖을 때도 많은 지지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더 필요하지만요. 팔레스타인을 위해서도 다르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지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저도 그렇고 기존에 하던 일 바깥의 다른 일을 상상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운 것 같지만, 인류가 겪은 일들 안에 이미 참고 삼을 이야기가 많이 있네요. 감독님이 이런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파템의 경우에는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capture)!’라는 목소리가 있다고 했는데, 감독님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뭐에 씐 것처럼 매달리게 돼요. 팔레스타인의 경우, 주류 미디어에서 펼치는 담론이 너무 불편했어요. 마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말죠. 그들의 권리가 철저히 무시되었고, 당사자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로 대체됐어요. 하다못해 희생자 가족들에게 심경을 묻는 인터뷰조차 하지 않았죠. 다른 사람들만 계속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끝인 거예요. 그게 너무 불편했어요.
 그동안 유럽이나 미국의 미디어가 이란을 그런 식으로 다루는 걸 많이 봐왔어요. 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추정해서, 우리 대신 그들이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생각이 꽉 차올라서, 저 자신을 위해 개인적으로 답을 좀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 제 개인적인 필요에서 기인했지만,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죠. 대부분의 작업이 이런 식이에요. 제 마음과 본능이 향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그 과정과 결과물은 세상과 공유하는 거죠.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나눠 주신 것 같습니다. 그 마음과 질문이 제 마음에도 전해져 있어요. 마지막으로 파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묘사해 주세요. 파템에 애정을 가진 감독님의 표현이 관객들 마음에 함께 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도 아직 영화를 볼 때마다 파템이 살아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직 이 세상에 살아서,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 파템에 대해 과거형으로 말하는 게 아직 어렵네요. 파템은 신을 믿는 사람이었으니까 부디 그 믿음대로 영원히 살아서, 이 모든 걸 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파템은 정말 태양 같은 사람이에요. 파템을 생각하면 저에게는 빛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희망과 회복력을 가득 품은 사람이라서요. 그리고 굉장히 섬세한 눈을 가졌습니다. 파템이 자기 나라와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시각과 부드럽게 품는 시각이 동시에 느껴져요. 파템의 작업물에서는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룹니다. 시도 잘 썼죠. 종종 시를 써서 보내줬는데 정말 좋은 게 많았어요. 영화에 넣은 시도 있고요.
저는 파템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호기심도 많고 여행도 하고 싶어 했어요. 마음도 열린 사람이었어요. 파템은 신을 믿는 무슬림이고 저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런 차이 때문에 거리끼는 기색은 한 번도 없었어요. 우리 사이에 굉장히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그런 차이 때문에 어려웠던 적이 없어요. 삶의 모양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이었어요.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 동시에 평범한 젊은 여성이기도 했어요. 그 나이대에 흔히 갖는 소망을 가진, 그냥 그 나이대 여성… 그러고 보니 어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가자지구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질문 주신 한국인 여성 분이 자기가 파템과 동갑이라고, 파템에게 일어난 일이 더 와닿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삶에서 박탈당한 것들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삶에서 누리고 있어요.
파템은 2000년에 가자지구에서 태어나, 2025년에 가자지구에서 살해당했어요. 그 조그만 땅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죠.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라면 가자지구는 아주 작은 쪽방일 텐데, 그 조그만 공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 세상에 많은 걸 주었어요. 자기가 한 일, 자기가 배운 것, 다 주었어요. (방에 대한 비유는 파템이 쓴 시에서 사용한 표현이에요. 그 시도 정말 아름다워요.) 우리는 위대한 사람을 잃었어요.

 

 


파템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파르시 감독의 눈에서 깊은 애정과 슬픔이 읽혔다. 몇 년 전 영화 <너와 나>를 보고 한 주 정도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잠을 청하려고 누웠다가도 ‘아니 내 사랑이 저 바다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켜 질질 울던 날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감각 안에서 수년을 살아왔음을 절감했던 시간이,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를 통해 파템과 또 파르시 감독과 눈을 맞추는 동안 되살아났다. 어쩌면 이 날 함께 만나 환한 미소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던,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이미 내 친구처럼 느껴지는 파템을 생각한다. 영혼을 손에 품고 걷듯 카메라를 품고 가자지구 골목골목을 걷던 그를 마음으로 그려본다. 세상에 울림을 주고 싶었던 그의 목소리, 아직 남아 쟁쟁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글을 쓰고 읽는 일 또한 그 목소리에 응답하는 메아리라고 믿는다.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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