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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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담함과 무관심의 시대에 도시 청춘들의 삶과 사랑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생판 처음 보는 여인과 소녀를 데리고 가족으로 위장한 채 프랑스에 온 된 타밀 반군의 전사였던 주인공이 거짓으로 꾸려진 가족들을 지키는 또 하나의 전투를 치르는 과정을 담은 2015년 ‘디판’을 통해 68회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올해로 일흔에 접어든 노장 자크 오디아르가 프랑스 차세대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셀린 시아마, 레아 미지위와 함께 작업한 신작 영화 파리, 13구 리뷰입니다. 배경이 되는 다인종 다문화 주거 지역의 이름 ‘Les Olympiades’라는 원제를 사용하는 만큼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을 상징하고, 특히 성적인 면에서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그들을 비춥니다. 무엇보다 흑백이라는 특징은 우리가 떠올리는 파리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꾀하면서도 반대로 어느 대표 도시에도 적용될법한 묘한 현실감을 부여해 현시대를 관통하는 시대극의 형태를 완성시켰다 할 수 있죠. 더불어 이런 시각적 효과와 현대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은 3편의 단편 그래픽 노블을 하나처럼 매끄럽게 연결시켜 충분히 매력적인 플롯을 선사합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파리, 13구 정보
난 연애할 생각 없어
일단 자고 본다는 자유로운 연애 철학의 콜센터 직원 에밀리, 할머니가 물려주신 집에 여자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내지만 이름만 여자인 카미유가 찾아오고 그의 매력에 빠져들어 사랑을 나누고 룸메이트 사이가 됩니다. 그녀는 그와 좀 더 발전된 관계를 원하지만, 그는 그저 파트너라고 선을 그어버리고 이후 같이 일하는 단기 교사를 종종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하죠. 결국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질투를 느낀 에밀리의 훼방은 그와 다툼으로 이어지고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방에서 삼촌과 부동산 일을 하다 30대 늦깎이 법대생이 된 노라, 나이가 많은 그녀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친해지기 위해 금발 가발을 하고 간 개강파티에서는 야동 사이트의 앰버 스위트라는 BJ로 오인받으며 온갖 추파와 소문에 휘둘립니다. 결국 학교 생활이 힘들어질 정도가 된 그녀는 파리에서 일을 알아보던 중 잠시 교사 일을 그만둔 카미유와 함께 부동산에서 일하게 되죠. 그러면서 자신으로 오인되었던 앰버와도 친구처럼 친해지고, 카미유와도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중국 부동산 고객이 찾아오며 카미유는 에밀리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이후 그가 지인 교사의 파티에 둘 모두를 초대하게 되면서 상황이 이상해지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LES OLYMPIADES, PARIS 13TH DISTRICT│감독 : 자크 오디아르│각본 : 자크 오디아르, 셀린 시아마, 레아 미지위│원작 :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그래픽 단편집 Killing and Dying│출연진 : 루시 장, 노에미 메를랑, 마키타 삼바 외 多│장르 : 멜로/로맨스, 드라마│상영 시간 : 105분│개봉일 : 2022년 5월 12일│국가 : 프랑스│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평점 : 관람객 7.48, 네티즌 7.67, 기자·평론가 7.0, 왓챠피디아 3.6, 로튼 토마토 신선도 82% 팝콘 60%, IMDB 7.1, 메타 스코어 76점│수상 내역: 74회 칸 경쟁부문 초청 및 사운트랙상, 57회 시카고 국제(특별언급상), 47회 세비야 유러피안(여우주연상)│시청 가능 서비스 : 현재 극장 상영 중
# 영화 파리, 13구 평점
널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하고
우리는 젊은 세대들의 데이트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접해왔기에 이런 덧없는 사랑놀이를 그리는 것에 형식적이고 진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룸메이트 여성을 찾는 중 카미유는 여자 이름만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두 사람과 성인 BJ로 잘못 식별되어 삶이 뒤틀리는 노라가 예상치 못한 우연을 빙자한 오해를 통해 관계가 형성되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일상에서 오해라는 부분들을 연속되고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하루의 또 다른 무작위적인 방향이라 생각하기에 다시 연결되고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며 각각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감독은 이러한 부분에서 문제를 삼기보단 그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시선으로 젊은이들의 성적인 활동을 단편적으로 보며 다음 번 방황이 지금보다 더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그들의 독특한 관계와 일상으로 풀어나갑니다.
충분한 학벌에도 텔레마케팅이나 웨이트리스 같은 일들을 하며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에게는 대리인을 보내고 어머니에겐 거짓 전화를 하는 에밀리, 연애의 감정은 금방 사라진다고 믿는 이기적인 교사 카미유, 30대 법대생의 부푼 꿈이 일순간에 무너진 뒤 원인이라 볼 수 있는 앰버와 뜻밖의 관계로 발전하는 노라까지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를 사용하며 옴니버스 같은 묘한 교집합으로 클리셰 한 부분을 피해 갑니다. 원작의 제목처럼 죽음과 유사한 상징의 이별, 우울, 정체성의 혼란 같은 톤을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직업에서 가져오는 13구 지역의 사회적 이미지까지 다양하게 끌고 와 외적인 확장까지 보여주죠. 더불어 솔직하게 전면으로 드러낸 성생활의 이야기와 인물 간의 대화, 흑백이라는 영상미와 감각적인 편집들, 아티스트 RONE의 세련된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사랑이 이뤄지고 사라지는 평범해 보이지만 독특한 멜로의 순간을 담아냅니다.
‘걸후드’와 ‘쁘띠 마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같은 흠잡을 데 없는 스토리를 만든 셀린 시아마와 2017년 ‘아바’로 주목받은 레아 미지위, 노장 자크 오디아르가 이루어낸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그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유지한 듯한 캐릭터들의 설정과 이를 연기한 루시 장, 노에미 메를랑, 마키타 삼바는 순간순간의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 행동들을 훌륭한 앙상블을 선보입니다. 한편으로는 투박하고 뻔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캐릭터와 배우, 스토리의 매력이 잘 어우러진 사랑에 대한 어떤 순수한 마법의 연장선상을 그릴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춘들의 사랑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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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공부보다는 음악, 예술에 더 관심이 많고, 현실적인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포커로 돈을 벌어 여자친구랑 어떻게 재미있게 놀지에 대한 고민만 하는 게으른 베짱이, 개츠비. 학교에서 학보사로 활동할만큼 똑똑하고, 얼굴도 예쁜데, 심지어 집안에 돈도 많은 애슐리.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이 두 청춘 남녀가 사랑을 공고히 하려고 방문한 뉴욕에서 파토가 나고 불타는 사랑이 차갑게 식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비가 한 번 오면 땅이 식어가면서 날씨가 살만해지는 것처럼 비오는 뉴욕을 각기 다른 이유로 헤매고 다녔던 두 남녀는 비가 그친 뒤, 개츠비는 이미 식어버린 그들의 마음을 깨닫고, 세상 쿨하게 이별을 고한다.
1. 개츠비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개츠비는 포커와 술만 있다면 이 세상에 별로 불만이 없을 듯한 잘생긴 청년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머니의 서포트를 지겨워하면서도 그 서포트를 포기할 수 없는 나약한 청춘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아리따운 여자친구 애슐리가 있는데, 영화 처음 등장하는 그의 독백을 보고 있자면 그는 그녀가 가진 배경과 그 다음 그녀의 매력, 외모 중에서 어떤 것을 1순위로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그가 살아온 뉴욕의 정취를 함께 느끼기 위해서 완벽한 플랜을 세우고, 함께 뉴욕으로 놀러간다. 포커로 딴 비싼 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한 채로. 그는 그녀가 본래 뉴욕에 온 목적이었던 한 유명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빨리 끝내기만을 기다리지만 그녀는 그를 밤까지 바람맞힌다. 결국 그들의 데이트 중에서 성사된 것이라곤 공원에서 말을 탄 것밖에 없었다.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에 그는 그의 형을 만나러 갔다가 그의 형이 결혼하기도 전에 파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황급히 빠져나오기도 하고, 재수없고 무례한 친구도 하나 만나고, 전 여자친구의 동생도 만나서 뜬금없이 키스도 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에게는 대환장파티였다. 그렇게 대환장파티 속에서 그는 전여자친구의 동생, 챈과 미술관 데이트도 하고, 엄마 때문에 가기 싫어했던 가족 모임에도 창녀 한 명을 대동하고, 참석한다. 결국 그 날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내 인생에서 나를 옥죄며 부담을 주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했던 모든 행동들이 그를 그 부담스러운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상황을 겪고 깊은 현타를 받는데, 그 현타는 그를 한층 더 어른스럽게 성장시킨다.
2. 애슐리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애슐리는 인생에서 부족한 것을 별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삶을 산다. 자신의 일에도 열정적이고, 자신이 오랫동안 팬으로 생각해온 감독의 인터뷰를 맡을 정도로 성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인터뷰 현장은 그녀의 인생에 대환장파티를 선물한다. 그 인터뷰에서 감독은 자신이 사별한 아내를 언급하며 자신의 아내와 애슐리가 많이 닮았다며 누가 봐도 개수작인데, 애슐리만 모르는 상황이 연출된다. 팬심이 그녀의 눈을 멀게 한 것일까 그녀는 그의 깊은 철학적 개소리와 겉만 번지르르한 낭만적인 멘트에 소위 말해 뻑이 가서 남자 친구와의 약속을 계속 미룬다. 그의 철학적 개소리와 낭만적인 척 하는 니글니글한 멘트는 그녀를 그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는 자리로 유도했고, 그 와중에 예술가의 변덕이었는지 갑자기 시사회를 박차고 나가는 그의 행동은 그녀로 하여금 그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옴므파탈의 매력까지 풍긴다. 순박하고 어리고, 예쁘기까지 한 애슐리는 그를 찾아 한 영화 스튜디오까지 가게 되는데, 그 스튜디오에는 굉장히 유명한 배우 하나가 그녀에게 또다른 신박한 개수작을 부린다. 애슐리의 순박함은 그의 개수작을 자신에게 보이는 순수한 호감이라고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또한, 유명한 배우라면 응당 따라다닐 파파라치들에게 스캔들거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뉴욕에서의 일련의 모든 상황이 그녀의 아름다움, 순수함을 부각하는 동시에 그녀의 대책없음, 생각없음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동안 헐리웃 배우와 밀회를 즐기는 미인대회 출신 시골 여자가 되었던 애슐리는 그녀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 헐리웃 배우가 바람피는 상황에 적극 협조하는 헐리웃 배우의 세컨드가 되었지만 헐리웃 배우의 퍼스트의 등장으로 그녀는 그의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반강제적으로 쫓겨난다. 그 날, 비가 오는 뉴욕에서 그의 집에서 훔친 트렌치코트만이 그녀를 살렸다.
3. 애슐리와 개츠비의 비즈니스 러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개츠비와 애슐리는 서로를 의무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개츠비는 애슐리의 돈을 마음에 들어하는 어머니의 압력에 못 이겨 애슐리를 사랑하고 있었고, 애슐리는 개츠비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사랑했지만 그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마치 이성적인 여자와 감성적인 남자가 만나 서로의 다른 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그 호기심이 사랑이라고 믿게 되지만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도 결국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개츠비와 애슐리는 애초에 서로가 그리 잘 맞지 않는 커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개츠비는 자신을 옥죄는 엄마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면 애슐리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이 인터뷰할 감독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영화 속 첫 장면에서 이미 둘은 서로의 이야기만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있다. 그들은 단지 혼자가 되기 싫어서 자기 주변에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의 사람을 골라 밍숭맹숭한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커플들을 보여주고 있다.
4. 우디 앨런의 자가복제적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와, 우디 앨런 진짜 천재잖아!!'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지'라는 느낌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전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와 비교했을 때, 파리와 뉴욕이라는 설정의 변화 그리고 시간여행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점을 제외하면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어서 다른 영화들도 이 두 영화들과 스토리 포맷이 비슷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서로 그렇게까지는 사랑하지 않는 커플, 그들이 서로 각기 다른 일정으로 뉴욕, 파리를 여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그렇게까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자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설정까지 너무 일치한다.
기묘하게 다른 이유로 우디 앨런의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지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별점 ***
완벽한 캐스팅이 버무려진 기묘한 이야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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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하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과의 차이
전작의 명성을 잇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작이 장르영화로서 호평을 받았을 경우에 영화는 새로운 과제를 하나 더 부여받는다. 전작이 가진 영화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후속작만의 독보적인 강점을 갖는 것.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점에서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였으나, 장르영화의 재미는 챙겼다. 다만 이 재미를 어떻게 챙겼느냐에 관하여는 관객의 몫에 달린 듯하다.
서품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악령을 퇴치하는 일에 있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유리아수녀. 그녀는 악마를 믿지 않는 담당의와 원칙을 준수하는 천주교 원로들을 뒤로하고 12형상 중 하나에 빙의된 구마자를 구해야 하는 과제에 놓인다. 구마자 희준과 유리아에게 동질감을 느낀 미카엘라 수녀는 그녀를 도와 구마의식을 돕게 되고, 수녀는 구마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두 사람은 희준을 구하고자 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요소에는 한국에서는 잘 그려내지도,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오컬트장르를 감독의 덕심하나로 성공시켰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서양의 오컬트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 그 점 그대로 잘 표현해 냈다는 점에 관객의 마음이 동했다. 어쭙잖게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어설프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감독이 본인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르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정과 이해도가 높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전작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이에 관점을 조금은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꽤 했다. 천주교 원로회로 분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도 있듯이 이 영화는 보수적인 집단에서의 두 여성이 연대하여 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성서사에 가깝다. 단순히 여성 2명이 등장하였기에 여성영화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수녀'라는 설정 자체가 어떠한 제한을 가진 여성 자체를 상징하고 있고 영화 말미에 악마를 봉인하는 의식에서는 오로지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유리아의 희생이 잇따른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검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수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나 할까.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꿰하였다는 점이나, 토속신앙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극의 내용을 풍부히 했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 이 영화는 다만 배우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송혜교배우의 전작 <더 글로리>에서의 문동은이란 역할이 수녀복을 입은 것과 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유리아수녀는 배우의 전작에 기대며 몹시도 평면적이다. 주인공인 그녀를 제외하고도 극 중 전여빈배우가 분한 미카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들의 과거사는 거세된 편에 가깝다. 이는 극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점은 그림자와 같은 과거사를 없애었더니 모든 인물이 평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충분히 입체적인 역할을 그릴 수도 있었던 극 중 주인공들은 오로지 자신이 부여받은 한 가지 목적 외에 다른 관점은 골몰하지 못한다. 종이인형처럼 극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도 같아 보이는 이들은 얼핏 열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무채색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미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부분 성공한 듯처럼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그리하여 매력적이냐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역할을 잘 수행한 것과, 어떻게 수행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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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크리에이터 '방자까'님 인터뷰
오랜 시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씨네랩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고 계신 '방자까'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눠 보았는데요. 함께한 시간만큼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그간 활동을 함께 하며, 씨네랩과 특별한 추억을 쌓아온 '방자까'님의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시죠!
크리에이터님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씨네랩에서 ‘방자까’ 라는 크리에이터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6년 차 프리랜서 작가 겸 에디터 방해리입니다. 기업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B2B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요.
프리랜서 작가로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PR 에이전시에서 퇴사하고 갭이어를 갖던 중에 프리랜서 작가 겸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완전히 맨땅의 헤딩이었죠. 제 또래엔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들도 없었고, 커리어 자체도 에디터로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마음속에는 항상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아리송함이 있었어요. 이제야 조금씩 저만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씨네랩에서는 영화 글도 쓰시잖아요. B2B 콘텐츠 말고도 영화 관련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은 영화 글쓰기가 더 먼저였어요. 대학생 때 블로그에 올리던 영화 리뷰 글을 회사에서 보시고, ‘너 글 쓰는 애구나?’ 하며 장문 콘텐츠 제작 업무를 맡기셨죠. 그게 프리랜서 작가 겸 에디터로 활동할 기반이 되어주었고요.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 글쓰기 덕분이에요.
그럼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쓰셨던 건 단순히 기록용이었던 건가요?
네, 취미생활이었어요. 학교에서 영화 속 딱 한 장면의 골라 미장센을 분석하는 과제를 받았는데,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그때 본 영화는 <캐롤>이었어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게 재밌다는 걸 느끼면서 블로그에 끄적끄적 리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도 있지만 씨네랩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면, 글을 쓰기가 막막한 영화들을 만날 때도 있잖아요. 장점을 어떻게 발굴해야 하나 싶은.
또, 영화제 같은 경우는 짧은 시간 안에 적은 양의 정보로 기사를 적어야 하고요. 그럴 때, 방자까님 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씨네랩과 함께 성장한 면이 커요. 아무래도 시사회, 영화제 등에 참석한 후에는 기한 내에 빠르게 리뷰를 써야 하잖아요. 글을 쓰게 하는 힘은 언제나 마감에서 오거든요. (웃음)
웬만하면 영화의 장점을 바라보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장점이 잘 보이지 않아 글쓰기가 막막한 영화들도 있어요. 아쉬움이 더 컸던 영화들은 그런 내용을 솔직하게 적어요. 아쉬움이 컸다는 건 기대가 컸다는 거잖아요. 기대했다는 건 가능성을 보았다는 거고요.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이런 마음들을 글에 담으려고 해요.
특별한 노하우는 아니지만, 영화를 비평하려는 마음을 접으면 마법처럼 쓸 말이 많아지기도 해요. 저는 영화 비평가나 영화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영화의 만듦새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감히 영화를 비평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 때가 있는데, 이런 욕심이 커지면 글이 안 써져요. 할 수 없는 걸 하려고 하니 당연한 일이죠.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제가 쓸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영화를 보면서 쓴 메모들을 살펴보면서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들을 곱씹어보고, 영화와 연결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떠올려 봐요. 그러면 신기하게 글이 써지기 시작해요. 영화가 던져준 생각할 거리들을 되짚다 보면, 아쉬웠던 영화가 생각보다 좋아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글들이 굉장히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감상이 달라지는 경우들도 있을 것 같아요. 방자까님도 그런 경우가 많은가요?감상이 달라지기보다는 또렷해져요. 좋았던 영화는 ‘이래서 좋았구나’, 아쉬웠던 영화는 ‘이래서 아쉬웠구나’를 확실하게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리뷰를 쓰면서 평점을 0.5점씩 올리거나 내린 적도 많아요. (웃음)
반대로 좋은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때도 있잖아요.
모든 생각을 하나의 글에 담아내는 건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그래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받아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글로 잘 써낼 자신이 없는 거예요. ‘이 영화는 5점짜리 작품인데, 내 리뷰에서는 3점 정도의 작품으로 보이면 어쩌지?’ 그게 걱정돼서 평소보다 오래 붙잡고 써요. 그렇다고 해서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서 좋은 영화를 보면 어쩐지 리뷰가 구질구질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한 마디라도 덧붙여 설명하려고 해서 미사여구가 길어져요.
방자까님이 리뷰를 작성하는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 같은 것도 있는지 궁금해요
영화를 보고 나면 꼭 리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솔직히 잘 안돼요. 그런데 제가 열 일 제쳐두고 ‘이건 꼭 리뷰를 써야 해!’ 했던 영화가 바로 <킬링 로맨스>였어요. 요즘에는 잘 만든 코미디가 정말 귀하잖아요. <킬링 로맨스>는 바로 그 귀한 코미디였거든요. 이건 좀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 너무 괜찮다고 동네방네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평상시에는 그런 마음이 잘 안 들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서 헐레벌떡 리뷰를 썼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면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가 좋다고 느껴지는 포인트 있잖아요.
방자까님만의 포인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5점 만점을 주었던 마지막 작품이 <로봇 드림>인데요.
(그동안 없었나요?(놀람))
저도 이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는데 놀랐어요. (웃음)
<로봇드림>을 보고 나서는 집에 가는 내내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어요. 하염없이 그들의 삶에 대해서 반추하게 되는 것, 저한테는 그게 바로 5점짜리 영화예요.
여담이지만 제가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에 감정 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에요. 로봇에게 감정과 마음이 있다는 설정에 약하거든요. <로봇 드림>도 그랬고,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품인 <월-E>도 그렇고요. 오늘날 인간들이 잃어버린 따뜻한 마음들을 로봇이 갖고 있을 때 저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어 버려요. (웃음)
평소에 영화를 볼 때 주목해서 보는 지점도 있을까요? 오프닝 시퀀스랄지, 연기랄지…
서사에 주목해요. 저는 남들보다 영화 음악이나 비주얼에 특별한 선호도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짜임새가 탄탄한 서사, 엔딩까지 몰입감을 유지하는 힘 있는 이야기를 만나면 만족감이 높아져요.
(글을 업으로 하시다 보니까 더 그런 걸까요?)
아무래도 글은 짜임새가 허술하면 티가 확 나거든요. 영화는 시청각 콘텐츠다 보니, 서사가 조금 허술해도 다른 요소들로 만회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서사에 특히 공을 들인 영화라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잘 짜인 이야기일수록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영화의 메시지가 더 강하게 와닿기도 하고요. 짜임새 있는 서사를 좋아해서 그런지, 특히 한 가지 사건을 여러 이해관계자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해요. 최근에 나왔던 <괴물>처럼요. 서사에 공들이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부류의 영화죠.
그러면, 마지막으로 씨네랩 관련해서 질문 몇 개 드리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씨네랩에서 3년이 넘는 시간을 활동해 주셨잖아요. 이렇게 꾸준히 오랫동안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걸까요?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장르 편식이 심한 사람이었어요. 악습은 여전하지만, 씨네랩 덕분에 새로운 작품들을 다양하게 관람하면서 편식을 많이 고쳤어요. 평소의 저였다면 감히 고르지 않았을 영화도 편견 없이 감상하고, 글을 쓰게 됐거든요. 씨네랩을 통해 리뷰를 작성하는 영화들은 좀 더 신경 써서 쓰기 때문에, 영화 글쓰기를 연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했고요.
그러니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앞으로도 씨네랩과 함께 다양한 영화를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랍니다. 아마 크리에이터분들 모두 비슷한 마음으로 활동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활동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요.
단연 202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데일리팀 활동이에요. 매일 아침 10시에 전날 본 영화 리뷰를 마감해야 하는 정말 바쁜 일정이었지만, 지금까지도 함께 데일리팀으로 활동했던 선이정님을 만나면 ‘그때의 제천’ 이야기를 해요. 제천 의림지의 분위기, 우비를 쓰고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 모두 다 너무 좋았거든요.
작년(2024년)에도 감사하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데일리팀으로 활동했는데요. 이땐 감독님들을 직접 뵙고 인터뷰하는 새로운 경험도 했어요. 씨네랩을 운영하시는 하이스트레인저가 굿즈 부스를 전담해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괜히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정말 마성의 영화제예요.
(힘든 만큼 좋은 기억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쵸.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처음 갔을 때 <봄날은 간다>를 봤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운드를 오케스트라가 실시간으로 연주를 해 주더라고요. 저는 영화 음악에 별로 개의치 않는 스타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장면에 음악이 쓰인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오케스트라가 한시도 쉬지 않고 연주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실감했죠. 이런 걸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아니면 어디서 느껴보고 경험해 보겠어요.
그럼, 앞으로 씨네랩과 함께 하고 싶은 활동 같은 것들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런 인터뷰처럼 다른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나 콘텐츠가 많아지길 바라요. 다들 비슷한 고민이 있으실 것 같거든요. 영화 전문가가 아니지만, 꾸준히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 이게 어떤 의미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또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영화 리뷰를 쓰는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알아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열렸던 오프라인 크리에이터 모임이 정말 즐거웠어요.
씨네랩에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방자까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는지, 어떤 생각을 해 주셨으면 좋겠는지 들어보고 싶어요.영화가 좋은데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을 때, 영화가 아쉬운데 뭐가 아쉬운지 잘 모르겠을 때, 제 글을 읽고 고개가 끄덕여졌으면 좋겠어요. 제 영화 리뷰를 항상 읽어주는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쓴 영화 <이사> 리뷰를 읽고 슬쩍 눈물을 훔치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글을 읽고 그 마음이 정리가 돼서 갑자기 울컥했다는 거예요. 그때 정말 뿌듯했어요. 이런 반응들이 저에게는 의미가 커요.
영화를 보기 전에 읽는 글이 있고, 영화를 보고 나서 읽는 글이 있잖아요. 제 글은 후자예요. 영화의 감상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관람객의 무릎을 치게 하는 글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웃음)
(제목부터 좋았습니다. ‘이제, 엄마랑 아빠가 같이 안 산대요’)
그것도 진짜 고민이에요. 제가 제목 짓는 걸 진짜 어려워하거든요. 제목에 한 줄 평을 적기엔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 같고, 영화 전체를 요약해서 적기엔 역량이 부족하고… 글을 다 써놓고도 노트북 앞에서 좀비처럼 앉아서 ‘제목 어떡하지, 제목 어떡하지…’ 맨날 그래요.
그 감정이 절로 느껴지는데요. (웃음) 이렇듯 깊은 고민을 가지고 글을 써 주시는 방자까님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지 또 그걸 나누려는 마음은 무엇인지 이야기 듣고 오늘 자리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영화는 혼자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의 세계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더 커져요. 저는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옛날에는 과연 이게 누군가에게 닿을지, 누군가에게 닿아서 영화의 세계를 넓혀주고 있을지 모호했는데요. 씨네랩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저의 영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고 확신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세상이요.
(영화가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맞아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매개체로 영화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도 한국에서는 대화거리에 쉽게 오르지 못하는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도 영화에서는 거리낌 없이 등장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 영화들을 통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길 바라요. 그리고 제 글이 사람들의 대화에 양분을 더해줄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웃음)
씨네랩과 영화에 보내 주시는 따듯한 시선 덕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방자까'님의 바람처럼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더욱 활발히 나누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방자까님만의 '글 쓰고 싶어지는 영화' 3편!
1. '극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는데…' 싶은 영화 _ <킬링 로맨스>(2023)
뻔한 영화는 아무리 재밌더라도 글을 쓰고 싶어지진 않아요. 하지만 영화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주는 영화, 한 마디로 뻔하지 않은 영화를 만나면 절로 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다니! 더 많은 사람이 봐야만 해.' 하면서요. https://brunch.co.kr/@hreecord/87
2. 마음이 동하는 서사가 있는 영화 _ <이사>(1993)
영화 글은 쓰지만 평론가는 아닌 제가 영화에 대해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서사예요. 그중에서도 구조적으로 훌륭한 서사보다는 마음이 동하는 서사 앞에서 말이 많아집니다. 마음을 동하게 하는 서사는 매력적인 인물과 매력적인 사건을 매력적으로 엮어요. 키보드 앞에 앉기만 했는데 절로 글이 써졌던 작품들은 대부분 마음이 동하는 서사를 갖고 있었답니다. https://brunch.co.kr/@hreecord/141
3. 소수자성을 다루는 영화 _ <플랜75>(2024)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소수자성을 갖고 살지만, 동시에 나와 다른 남을 구별하고 혐오하는 마음도 갖고 있어요. 그런 지점을 영리하게 짚어내는 영화들을 보면 할 말이 많아집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저 역시 그런 모순적인 사람인지라, 소수자성을 다루는 영화를 보고 나면 글에 반성의 말, 후회의 말, 다짐의 말, 경고의 말들을 마구 적게 돼요. 현실에서는 자꾸만 배제되는 소수자들이, 영화에서만큼은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더 많이 더 크게 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 https://brunch.co.kr/@hreecor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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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까’님 개인 SNS 페이지 https://brunch.co.kr/magazine/cinephile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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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는 방법
그러니까, 안 가면 안돼? 웃는 얼굴에 농담투로 말했지만 사실 진심이 한 9할쯤 담겼다. 그러니까 며칠 전의 나는 여자 친구가 생겨도 안 할법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것뿐일까? 난 갑자기 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런 말도 듣고 저런 말도 들었어. 아무 맥락도 없이 나는 내 장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 말의 이면에는 지질함이 배어있다. 너도 나랑 멀어지면 후회할걸?이라는 마음이 내 말 안에 담겨있는 것이다. 다 불안감 때문이다. 얘는 정말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친분이 있던 사람들 그 누구보다 얘는 잘해주고 싶은 사람에 가까웠다. 항상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에도 부합했다. 갑자기 문득 정신이 들어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안돼. 이러다간 내 장점도 다 가려질 만큼 추해질 것 같다고. 나는 내 체면을 내려놓을 만큼 나는 얘가 맘에 들었나 보다. 항상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길 바랬다. 왠지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난 아무 말이나 막 질렀다. 있던 일들이 생각났다. 오래간만에 일러스트도 켰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즐거웠다. 이 기간 동안 있던 일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분이 복잡했다. 3달이 금방 갔다.
3달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런 시간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안 하던 짓도 하게 되는 게 사람이구만. 한 200번째 느낀 교훈이지만 오늘은 더 선명히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추한 내 모습을 지우려 또 다른 깊은 생각에 빠진다. 뇌 비우고 잘해주기만 하고 싶은 사람을 참 오랜만에 만났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그분을 처음 봤을 땐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 선택은 옳았다. 근데 난 이것 빼고 나머지의 모든 걸 다 후회한다. 어렸던 시간이 자랑스럽다면 그건 소시오패스에 가까울 것이다. 난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 그런데 난 자의건 타의건 그걸 고르지 못해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았다. 이것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고맙다. 돌아오지 않는 화양연화를 한번 더 만들고 싶었던 게 원인이 되어 즐거운 추억이 또 생겼으니 말이다. 이 기억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화양연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다. 2000년대 가장 위대한 영화 손 들어보세요! 하면 대표적으로 뽑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덕인지 코로나19로 인한 왕가위 특별전이 기회가 되어 이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다. 감독 특별전이 나올 만큼 왕가위라는 이름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하다. 난 홍콩과 단 1도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왕가위라는 이름은 알았으니 말이다. 이 덕인지 기대를 잔뜩 하고 극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꾸벅꾸벅 졸았다. '왕가위 하면 미장센'이라는 말도 사실 잘 체감하지 못했다. 이런 심심함에는 영화의 내용도 한몫한다. 서로 이어져선 안 되는 남녀 둘이 만나 잊힐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이게 끝이다. 결말 부도 이 영화의 도입부만 봐도 사실 예측 가능하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왓챠피디아에 들어가 '화양연화' 탭에 들어가면 '다들 위대하다고 칭찬하는 영화인데 나는 못 느낀다'라고 답한 글이 베스트 댓글에 올라가 있다. 이 영화는 심심한 영화가 맞다. 왕가위는 다른 영화보다들보다 진중한 화법으로 과묵하게 관객들에게 접근한다. 과연 <화양연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관객에게 물으면서.
이 질문의 답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예시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감독이 생각하는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이 작품과 <화양연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이 <해피 투게더>를 한 20번 가까이 돌려보며 느낀 게 있다. 조금 과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가령 엔딩신의 이름 모를 후련함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잘 못 느낄 것 같다. 또 폭포라는 공간 설정 때문에 작은 화면에서만 보면 실감이 잘 안 날 것 같다. 이건 공간 설정의 측면을 벗어나서도 말이 된다. 시각적으로도 폭포 엔딩신의 색이 진한 느낌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큰 패드나 모니터로 보면 이 느낌이 오롯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큰 스크린에 압도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OTT로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뜻이다. 이 왕가위 영화 감상 포인트의 중요 지점인 '왜 극장에서 봐야 할까'는 그의 작품을 볼 때 굉장히 중요하다. 극장의 큰 미장센이 영화에 몰입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쉬운 몰입은 왕가위가 잘 다루는 외로움이란 감정과도 닿아있다. 이 감독이 다루는 주요 정서는 단연 외로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해피 투게더>에서는 군데군데 낡은 식당 조리실에서 춤만 춰도 이 감정이 잘 드러난다. 아무것도 없는 부엌에서 하는 행동이니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잘 부각되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극장에서 보면 보다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니 감정의 전달이 더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해피 투게더>처럼 오직 영화만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을 마지막 지하철 엔딩으로 터트릴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요되는 부분이 있었다. <타락천사>에서 감정을 표현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감독이 적절한 선을 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아비정전>을 보면 발 없는 새라는 모티프가 영화 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날개도 아니고 발이 없는 새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이게 영화의 엔딩부를 비롯해 주인공 아비의 행동으로 이어지며 결말부와 시너지를 낸다.
이렇게 왕가위는 연출 지점과 플롯, 내고자 하는 분위기를 잘 어우러지게 연출한 감독이었다. 전작을 통한 감독의 말하기 방식은 미니멀하기보단 극대화의 화법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화양연화>는 이 지점에서의 화려함이 좀 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절제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영화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연기한 두 캐릭터를 틀에 가둔다. 누군가와 통화할 때나 친구와 대화할 때 항상 주위에 뭔가가 있다. 피사체가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혼자의 모습이 세상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뜻과도 닮아있다. 이는 주인공들은 욕망을 스스로 표현할 수 없고 항상 타인이 규정한 무언가 때문에 자기 혼자서 오롯이 서있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출에 의한 두 사람의 처지를 암시하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이 과정 역시 좀 심심하게 보일 수 있다. 좁은 틈으로 서로 걸어 다니는 모습. 참깨죽을 먹고 싶어 한다는 남자의 말. 왜 오늘은 전화하지 않았냐는 애정 어린 투정까지. 이런 소소한 장면 하나하나를 왕가위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으로 그렸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은 <화양연화>다. 이 과정이 주인공들의 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뜻이다. 또 엔딩부에 자막으로 처리되듯 남자는 이 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두 주인공의 들끓는 감정에 비해서 인생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히려 소박했다는 뜻이 된다. 이 두 가지 연출법은 결국 '화양연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이뤄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됐던 사랑이었다. 이런 처지를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누군가를 깊게 생각해봤다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 것이다. 이 뿐일까?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것도 사실 둘의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돌이켜본다고 하는 건 거의 대부분 소망이 소망으로 그칠 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성공했으면 그냥 현재를 즐기면 되니까 굳이 과거를 회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화양연화는 이 상황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왕가위의 <화양연화>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추억하는 모든 순간까지 포함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지만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될 비밀이 됐고, 또 과거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이 행복이 다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이 시간들이 나에게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웃기는 일이다.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니.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이것이 생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인간이라서 모든 걸 다 잃기보다는 그런 소소한 무언가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이 오냐고? 근본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무엇이든 행복한 엔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의 끝은 좋게 끝나야 <라라랜드>였고, 초극한으로 나쁘게 끝나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이건 사랑으로 국한 지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매사가 그렇다. 근데 우리는 이걸 뻔히 다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면 어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뭐 어때. 우리는 즐거웠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고, 이것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걸 모두 다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평생 동안 그리워한다. 근본적으로 절대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자학하며 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없다면 우린 진짜 별게 아닐지도 모르거든. 다른 화양연화가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거든. 비밀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 인생 각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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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의 신념에 동의한다.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웅 스토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마블을 만난 뒤부터는 챙겨보고 있다. 마블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을 그려낸 ‘마블 코믹스’로 시작하였다. 지금은 그 캐릭터들로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선 ‘마블’ 하면 영화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마블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곳이 ‘DC’인데 슈퍼맨, 배트맨 등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
예전에 본 어떤 리뷰에 "디씨의 영웅에는 스토리가 없고, 마블의 영웅은 스토리가 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참말로 찰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캡틴 아메리카는 아직도 애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라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꾸역꾸역 챙겨보기만 한다.
사실 어벤져스에 대한 그리고 마블에 대한 리뷰는 검색만 해도 많이 나온다. 약 1,100만의 관객이 있었으니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보라색 악당인 타노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블의 전반적인 세계관이나 영웅에 대한 캐릭터 분석도 재미있지만, 환경운동가로서 타노스의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음모론이나 미스터리도 참 좋아한다. 언젠가 스쳐 지나가며 읽었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인구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행하는 자정작용 같은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나에겐 신뢰감을 주는 이야기였다. 조금 다르게 말해서 이 말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오염된 것에 대해 자정작용을 끊임없이 하고 있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면 무의식중으로 그런 행동들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도 '인재'냐 '자연재'냐의 논란이 많이 있지만 인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말을 쓰면 아주 조금은 쉬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덕적으로 혹은 인성적으로 부족한 사람의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완성형은 아니니까 하고 위안을 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말도 안 되고 아주 위험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타노스가 딱 비슷한 말을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늘어가고 격차는 심해지고.
타노스가 자신의 고향인 타이탄의 인구를 줄이는 것을 제안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고,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타노스는 (아마도)자신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지어 딸처럼 아끼는 가모라 고향과 그와 비슷한 몇 개의 별에서 인구를 줄이는 것이 답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이를 전 우주적으로 확장할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건 것뿐 아닐까?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의 지구는 타노스가 걱정하는 딱 그런 상황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몇 년 전, 아니 몇 개월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지상파의 대기업 광고에서도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이야기였던 재난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기까지 인정하게 만들게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여름 우리나라에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현상을 기후위기로 인식한 국민들이 많아졌다. 수치로 따지면 관측 이래 가장 강수량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상 기후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은 최근 10년의 어떤 해 보다도 가장 한국의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이를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이 줄어서라고 극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다시 돌아온 뚜렷한 계절의 변화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렇다고 타노스의 방식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없고, 잘살고 못살고 대단함과 비루함 관계없이 랜덤으로 반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참 우습게도 내가 사라지는 사람 명단에 있더라도 그렇게 나쁜 상황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버렸다. 타노스 역시도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을 튕겼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의 간섭이 줄면서 나타나는 다른 변화들도 있었다. 인간이 찾지 않는 해변과 도시에 야생동물이 찾아왔고, 배가 다니지 않으니 물이 깨끗해졌고, 비행기가 적게 날아다니니 하늘이 맑아졌다. 환경운동가들이 늘 말하던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게 되면 변화하게 될 자연과 환경은 증명해 보일 길이 없었는데 바이러스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 인간의 활동이 조금 줄어든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변화가 나타나는데 반이나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기대가 되기도 한다면 위험한 발상일까?
그래서 그런지 타노스는 내가 본 마블의 캐릭터 중에는 가장 영특하고 인간적이고, 대의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근데 그 목적이 개인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겉으로 표현할 줄 아는 그런 캐릭터였다. 사실 보면서는 '가식 아니야?' 했고, 그가 다른 캐릭터들을 죽이는 것에는 화가 났지만 결국엔 그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중적인 마음마저 생기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타노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떤 오두막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씬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현대인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냐며 웃었다. 퇴직하고 시골 내려가서 휴식하는 삶, 타노스, 우리의 타농부는 대의를 이루고 휴식의 정점인 귀촌까지 해냈다고 말이다.
그래서 다음 편이 기대된다. 감독(안소니 루소, 조 루소)들이 이번 편은 전적으로 타노스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했다. 이번 편에서는 타노스의 인간적인 면이 아주 조금 나타났지만 다음 편에서 분명 그 마음이 극대화될 것이고 (귀촌해서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움이 증폭될 것이라 판단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들이 그를 파멸로 이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파멸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타노스의 행복을 바라면서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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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소희 한 사람의 죽음이 드러낸 현실
?Rabbitgumi 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어요.
과거 전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요.
가슴아픈 현실을 볼 수 있는 영화에요.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콜센터 직원들의 노동 현실과 고등학교 현장 실습의 현실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누가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는 영화에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저의 간단한 리뷰를 영상에서 말씀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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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몽(幻夢) CINE 리뷰 2화_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 당신의 취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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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달소에 담긴 상징물 3가지의 의미는?
- 시달소 속 최고의 명장면과 한줄평!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시간을달리는소녀 #시달소 #호소다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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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밥 말리 : 원 러브> 메인 예고편
단 하나의 목소리! 시대의 전설이 되어 세상을 바꾸다 [밥 말리: 원 러브] 2024년 2월 극장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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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설강화> 하이라이트 예고편
정해인&지수의 [설강화 : snowdr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