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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AB2021-05-24 11:35:04

폭력적인 세계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일

푸른 빛의 상흔, 지워지지 않는 블랙 <문라이트>.

영화 <문라이트>를 두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다는 것은 작품을 겉도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문라이트>는 서정성 짙은 퀴어 영화로, 이 영화가 서정성 짙은 퀴어 영화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있습니다. 때문에, 굳이 저까지 이미 나와있는 수많은 좋은 평론들위에 비슷한 한마디를 거드는 것보다는 비록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훌륭한 작품은 답을 정해놓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며, <문라이트>는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이미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는 훌륭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 방임된 채로 자라는 빈민가의 아이들, 다름의 이유로 받는 차별의 시선과 폭력, 그리고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문라이트>를 이야기할 때 다룰 중요한 이야기들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이 영화의 화두는 ‘정체성’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정해주는 ‘나’, 내가 정의하는 진짜 ‘나’에 관한 정체성말입니다. 

 

영화는 이 정체성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졌습니다. Nomen est omen, 이름은 곧 운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문라이트>는 주인공 샤이론의 성장과정을 세 시기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이 세시기에 샤이론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세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인공 ‘샤이론’과 각각의 삶을 보자면, 각각의 샤이론과 그에게 붙여진 이름을 통해서 샤이론이 폭력적인 세상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ⅰ, Little

 유년기의 샤이론은 가장 작은 존제, ‘Little’이란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덩치도 작고 키도 작은 샤이론은 또래 아이들에게 쫓겨 마약 소굴인 15번가로 도망쳐 온 후 어두운 폐가에 숨어듭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폐가로 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숨은 샤이론. 그리고 그런 폐가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돈 후안(마허샤마 알리)입니다. 이 시기 샤이론은 특히 말이 없습니다. 가장 작은 존재이자 약자인 샤이론이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침묵을 지키면서 세상을 관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Little’은 그의 또래들 사이에서 샤이론을 부르는 별명인데, 이 별명은 또래들보다 덩치가 작은 샤이론을 빗대어 비하하는 말입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은 샤이론을 낮춰 부르지 않고 그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줍니다.

 

케빈

 그는 샤이론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Little’이라고 부르지만, 그 목소리는 어떤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우정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샤이론의 친구 케빈입니다. 케빈은 영화 <문라이트>에서 샤이론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인데, 이 시기 케빈이 샤이론에게 해준 “왜 당하고만 있어?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라는 말은 샤이론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돈 후안.

 돈 후안과의 만남은 첫 만남이후로도 계속됩니다. 유년기 시절 돈 후안과의 짧은 만남과 교류는 영화 <문라이트>를 관통하는 주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특히 해변가에서 둘이 나눈 대화는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유년기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 만난 돈 후안은 아버지가 없는 샤이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며,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마.”

 

 

D : “한번은 어떤 할머니를 지나쳐 가고 있었어.”

D : “미친 듯이 들떠서 뛰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나를 잡고는 말했어.”

D :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C : “그럼 아저씨의 이름은 블루인가요?”

D : “아니...”

D :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마.”

 

 

 

 

 

 

ⅱ, Chiron

 청소년기의 샤이론입니다. 샤이론은 이제 ‘리틀’이라는, 자신을 놀리는 말을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샤이론’으로 불려지길 원합니다. 샤이론은 성장했고, 이제 세상 모든 일에 침묵으로만 일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르고 약해보이는 몸은 여전합니다. 때문에 차별의 시선과 폭력앞에서 샤이론의 저항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이름, ‘샤이론’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샤이론. 그것은 샤이론의 이름이긴 해도 샤이론이 선택한 이름은 아닙니다. 때문에, 샤이론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성장의 과도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중반에 있기에 적합할 것입니다.

 

케빈

 이 시기 만난 케빈은 샤이론과 깊은 관계로 진전됩니다. 우정처럼 보였던 케빈과 샤이론의 관계는 이 시기에 애정으로 변합니다. 샤이론에게 학교에서 관계를 맺었다며 가볍게 말하는 케빈의 눈빛은 가볍고 철없으며, 목소리와 성대모사는 경박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남성성을 과장하여 드러내어, 또래들에게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하지만, 샤이론을 대할때만큼은 케빈의 눈빛은 깊고 진지합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 이 시기 샤이론을 괴롭히는 동급생, 테렐은 케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옵니다.

 

 

블랙.

 학교의 화단 앞. 테렐은 궁지에 몰린 초식 동물을 공격하려는 맹수처럼 누군가를 응시하며 그 누군가를 중심으로 한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렐이 이빨을 들어내고 달려든 것은 샤이론이 아닌 케빈입니다. 

 

“이봐 케빈. 저 새끼 갈겨. 패버려.”

“그래 저 호모새끼말이야.”

 

테렐은 겁먹은 케빈을 다그칩니다. 케빈의 앞에 서있는 것은 샤이론입니다. 케빈은 테렐과 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반면, 샤이론은 고개를 높이 들고 그들 앞에 당당하게,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샤이론은 케빈에게 맞을때마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지만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서 똑바로 일어서서 자신을 향한 폭력과 차별의 시선에 마주합니다. 아마 이 순간에, 샤이론은 이제 자신이 겪은 아픔의 크기만큼 성장했을 것이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블랙. 냉수에 얼굴을 담았다가 고개를 들어올린 샤이론의 모습은 말 그대로 블랙입니다. 상처에서는 선혈이 붉게 빛나고, 피부는 검정색이지만,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투영되는 샤이론의 영혼이 가진 색은 더없이 맑고, 밝게 빛납니다. 그의 빛나는 눈빛에는 순수한 결연함과 용기가 녹아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자신의 운명을 찾은 것처럼, 그의 눈빛은 진중합니다.

 

 

 

 

 

 

ⅲ, Black

샤이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고, 해야 할 일을 하기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테렐을 향한 폭력은 단순한 복수의 감정도 있지만, 케빈을 위한 희생이자 용기이기도 합니다. 케빈은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보이는 세상과 시선에 주눅들어 자신을 감추는데 급급했던 반면, 샤이론은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했고, 케빈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냈습니다. 그래서 당시 경찰에게 연행된 샤이론과 케빈이 나눈 시선에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과 맞선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케빈의 시선에는 어떤 분함이, 샤이론의 시선에는 흐릿한 안정감과 평화가 언뜻 읽히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샤이론은 이젠 완벽한 성인이 되었고, 이 시기는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시작하는 한편의 꿈. 유년기 시절 ‘폴라’가 샤이론에게 했던 말, “쳐다보지 마!”라는 고함과 함께 잠에서 깨며 블랙의 삶이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꿈에서 깬 블랙은 세면대에 받아놓은 얼음물에 얼굴을 담았다가 꺼내는데, 이때 그의 피부는 달빛이 아닌 인공 조명의 빛을 받아서 푸르게 빛납니다. 이 두 개의 컷은 샤이론이 더이상 과거와 같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습다. 이 두 장면은 자신의 검은 피부를 인공 조명의 푸른 빛으로 물들이는 ‘부정’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푸른 빛을 뒤집어 쓴 샤이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푸른 빛은 그의 본래 색위에 덮어 씌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가 가진 본래의 피부 색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겉모습을 근육질로 다부지게 만들어도 오랜만에 만난 옛 사랑과 엄마의 말 몇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변하지 않는 여린 내면처럼, 지워질 수 없는 그의 검은 피부색 위에 블랙은 푸른색을 덧칠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이름.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 푸른 바다, 푸른 달빛. 도대체 누가 푸른 달빛아래에서 흑인아이들도 모두가 푸른 빛을 낸다고 했던가요? 아이들은 푸른 세상에서 모두가 자신의 색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연스럽게도, 푸른색이 그보다 더 짙은 검정색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죠. 이 잔상은 샤이론이 점차로 세계속에서 자신의 색을 되찾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되찾은 색은 그의 이름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누군가가 지어준 것이지만, 동시에 그가 선택한 이름입니다. 바로 케빈이 샤이론을 부르곤 했던 별명, ‘블랙’입니다.

 

영화는 샤이론의 세 시기를 보여주며 그의 성장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시기, 샤이론을 칭하는 이름의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리틀’은 샤이론을 둘러싼 세계가 정해준 이름. ‘샤이론’은 태어나기전부터 부모가 정해주었으며, 샤이론 역시 옳다고 생각하는 이름. ‘블랙’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어준 이름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며 선택한 이름입니다.

 

영화 <문라이트>가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사랑’의 역할이 크다는 데에 있습니다. 리틀은 돈 후안과 테레사의 사랑으로 샤이론으로 성장했고, 샤이론은 케빈과 테레사의 사랑으로 성장했으며, 블랙은 폴라와 케빈의 사랑으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정의하는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며, 그들의 사랑속에서 위로받고 한 뼘 더 성장해갈 것입니다. 

 

 

푸른 빛의 상흔, 지워지지 않는 블랙

이 영화는 어린 리틀을 다시 호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푸른 달빛아래,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온통 푸른 세상속에서 홀로 서 있는 아이. 온통 푸른 세상이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여전히 자신의 색을 유지하고 꼿꼿이 서있습니다. 군데군데 푸르게 빛나는 아이의 피부는 아름답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푸른 빛이 아이가 가진 검은색의 피부위에 침투해있기에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아니, 그렇기에 아름다울지도 모르죠. 검은 피부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것은 세상이 애정어린 손길로 샤이론에게 칠해준 아름다운 반사광이 아닌, 세상이 폭력적으로 모두에게 칠해버린, 일종의 상흔입니다. 

 

 

 

 

때문에, 달이 세상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칠해놓은 푸른 빛과 자신의 본연의 색을 함께 갖고 있는 샤이론의 모습을 담은 <문라이트>는 폭력적인 세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지켜내는 인간상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온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보다 서정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문라이트>의 이전과 이후로 한동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데미안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작성자 . CINELAB

출처 . https://brunch.co.kr/@yetvain/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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