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2021-03-08 00:00:00
타국에서 홀로 자생하는 미나리들에게
<미나리 리뷰>
다우징 로드를 들는 노인의 뒤를 제이콥(스티븐 연)과 데이빗(앨런 김)이 조용히 따른다. 수맥을 찾아 우물을 만들 예정인 제이콥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농장 경영을 위해 가족들과 아칸소로 이사를 결정했다. 병원을 가는데만 1시간이 넘는 변두리에 위치한 집을 본 모니카(한예리)는 심장이 약한 데이빗이 걱정이지만 제이콥은 농장일이 크게 성공할 거라 믿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던 마음속 앙금은 임계점을 맞아 폭발하게 되고 부부는 쌓인 감정을 서로를 향해 분출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싸움을 멈추고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이들이 화해의 비행기를 날려보지만 화산같이 폭발하는 감정들에 의해 좌초되고 만다. 치열한 공방이 있은 후 부부는 모니카의 어머니자 아이들의 외할머니(윤여정)를 집으로 모시기로 결정하면서 이야기는 변곡점과 마주하게 된다.
<미나리>와 <페어웰>
<미나리>는 수많은 이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낯선 타국의 땅으로 향했던 시절의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민과 가족 그리고 정체성이란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룰루 왕 감독의 <페어웰>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두 작품 모두 봉준호 감독의 호평을 받았다). <페어웰>의 빌리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정립된 정체성과 중국의 뿌리 깊은 관습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데이빗은 할머니가 가족을 찾게 되면서 생전 처음으로 한국의 냄새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들의 침투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다.
작지만 강한 미나리
제이콥과 모니카는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들을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해 가족이란 공동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된다. 위기의 순간 찾아온 할머니에게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는 말을 한다.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이라 치부할 수 있는 말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한다. 데이빗은 미국에서 자란 아이지만 제이콥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의 정서를 주입받게 된다.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 세상을 보는 데이빗에겐 쿠키조차 굽지 못하는 할머니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데이빗은 자신 안에 점점 커져가는 할머니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하지만 연배 짙은 할머니의 노련함엔 대적할 길 없다. 그런 데이빗에게 할머니는 넌지시 미나리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미나리는 약이든 요리에든 어디에든 쓸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라고...
<미나리>는 매일 우리 옆에 있는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세상에 자기를 증명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제이콥의 모습이 위선적 일지 모르나 공감 가는 이유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한국을 넘어 타국에서도 이어지는 현실이 우리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미나리>는 가족이란 개인의 능력을 증명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할머니가 뿌린 미나리 씨앗은 낯선 토양과 물에서도 자연스레 숲과 같이 큰 군락을 이룬다. 이렇게 큰 집단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씨 하나하나의 우수성보다 같은 공간에 다 같이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쓸모를 바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 한다. 그리고 가족이란 때론 피가 섞이지 않는 우리들의 이웃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소소한 사실 또한 잊지 않는 배려를 보인다.
Relative contents
-
- 정치 드라마 3스푼 인간 관계 탐구 7스푼
마음과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할까? 인간관계가 넓지 않아 고민인 나는 이 답이 상당히 어렵다. 일단 유튜브에서 한 강사가 말한 것을 참고하기로 한다. 절대 상대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줘선 안된다. 그러니까 타인이 '넌 뭘 할 수 없다'식의 이미지를 갖게 하면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한다. 다음. 어느 때나 씩씩하게 인사하기. 특히 윗사람일수록 호감을 얻기 쉽다고 한다. 다음. 상대방 말 기억하기. 섬세한 눈빛이야 말로 사람의 믿음을 사기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이 강사만 이런 말을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사람마다 다른 의견이 있으니 '신뢰 사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릴 때는 같은 반 학생들 모아놓기만 해도 관계가 쉬웠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근데 이런 관계 맺기의 조건이 정치라는 분야에 적용된다면 더더욱 어려워지기 생각한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학' '심리학' 뭐 그렇게 학문으로도 세분화가 되어있지 않나? 이 학문들은 답이 없으니까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끔 보면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됐다'식의 공식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그 유행에 맞게 행동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걸 잘 짜 맞춘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식 같은 건 새삼스럽게도 실존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대사에는 그동안 공식처럼 전해지던 선거 공식이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이길 것인가'로 이어진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다음의 대한민국으로 가보자. 또 마스크를 끼고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극장으로 달려가 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우리의 근현대사는 그동안 수많은 굴곡을 거쳐왔다. 난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던 시기에 태어나서 대통령이 탄핵까지 되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 역사를 오며 가며 봐온 게 있다. 바로 특정 지역에 몇몇 정당이 의원 수를 독점하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저게 왜 저럴까? 궁금했던 적 많다. 이 영화는 이 '왜 그럴까?'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다. 다른 말로 하면, 지역감정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위해 이 영화는 초입부에 김운범이라는 정치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김운범을 좋아하는 한 전략가가 그 정치인에 대한 존경심을 시작으로 어떻게 그가 선거판에서 승리해왔는지를 그린다. 그 과정을 보다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떤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했던 실수들에 대해서도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많았다. 그거야 당연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자국의 한국사를 다루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다. 근데 더 중요한 건 우리 역사가 극적인 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남산의 부장들>, <1984> <그때 그 사람들>, <변호인>, <택시운전사>가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두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둘이 긴 기간을 집권했고 이를 위해 온갖 사회 부조리는 다 만들고 다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굉장히 합리적이다. 또 이들의 폭력행위는 절대로 변호받아선 안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절망적인 사회 속에서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클리셰에 가까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이 있는 것 같다. 독재정권의 몰락을 위해 용기를 바쳤던 분들에게 바치는 존경이야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일이지만 예술가들이 그동안 너무 이들의 숭고한 희생에만 집중해온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독재정권을 이끌었던 그들에게 적절한 비판과 다시 반복되선 안된다는 약속을 우리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변성현 감독은 영화에서 좀 다른 부분을 조명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그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당연한 결함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이 불완전성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 문단에서 썼다시피 그들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한다는건 당연하다.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 영화는 이 전제조건을 당연하게 깔아 정치인 김운범, 김영호, 이한상과 강인산이라는 당시 야당 정치인들이 어떻게 이해관계에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 이 네 정치인들의 대립을 싣기 이전에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7년 동안 4번 낙선한 김운범이 서창대라는 인물을 만나 민주당의 유력 대권후보로 발돋움했는지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첫 번째 '어떻게 김운범이 정치인으로서 성장하는가'와 두 번째 '김운범이 이기기 위해서 어떤 방식을 쓰는가' 세 번째 '과연 역사 속 선택 중에서 모두가 합리적인 방식만을 사용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네 번째, '과연 대의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양보하고, 이해하고, 품어야 하는 것인가'다. 이를 질문하는 것은 다른 두 물음과 이어진다. 누구의 대의는 착한 대의고. 어떤 대의는 나쁜 대의고. 우리는 함부로 서로를 판단할 수 있을까? 또 그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든 용인될 수 있을까?-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선에서라면- 실존인물에 기반한 영화고 어느 정도는 실화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물음이 우리의 머릿속을 스친다. 연출이 잘 짜였기 때문에 김운범을 절대선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 난제에 대한 답을 관객들이 세우게 도와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질문하는 영화인 셈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 물음에 조금은 내 답을 세운 것 같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미장센이다. 변성현 감독은 전작 <불한당>에서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불한당> 좋아하는 팬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 작품이 그렇게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변성현 감독이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불한당>의 방식과는 살짝 다르다. 이 영화는 그림자를 사용한다. 그림자를 사용해 빛에는 당연하게 따라올 수밖에 없는 암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불완전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던 약점을 명과 암의 대비라는 연출법과 함께해 나름 시너지가 난다고도 생각한다.
두 번째는 균형감각이다. 2에서 썼던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는 네 가지 키워드로 극을 이끌어간다. 구체적으로 1) 박정희와 당시 안기부의 방식이 잘못된 건 당연함. 2) 그러나 김운범을 위시로 한 당시 야당 정치인들이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서창대를 대한 건 아님. 김운범-김영호 역시 결함이 있는 인간임. 3) 그렇다고 서창대의 방식이 다 옳았냐? 그것도 아님. 4) 또 '두 대의'에서 어떤 것을 취사선택해야 하는가의 딜레마다. 이 작품은 이 네 가지의 밸런스를 잘 지킨다. 그래서 대선시즌에 나온 영화라 '이거 의도가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 의견을 바꿀 것 같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그냥 무난한 정치 스릴러다.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극 초반부 이선균 배우의 대사가 잘 안 들린다. 그것만 염두하고 가시면 될 듯.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사실 3번 탭에서 쓰려고 했던 부분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설경구와 이선균, 조우진, 유재명 배우는 국가대표급 배우 아닌가? 다 한국 국가대표급 배우들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선균 배우는 완전 한국의 아담 드라이버다. 어느 장르에도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또 조우진 배우는 이렇게 좀 비열한(?) 캐릭터가 잘 맞는 것 같다. 유재명 배우도 실존인물을 연상케 하는 좋은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중요한 건 김운범 역의 설경구 배우다. 이거 이 김운범의 실존인물 말투랑 정말 비슷하다. 또 김운범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어느 정도의 이중성 묘사도 탁월했으니 올해도 아마 국내 시상식에서 설경구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외에도 <오징어 게임>의 김주령 배우나 내가 좋아하는 김새벽 배우가 나온다. 김주령 배우는 <오징어 게임>에서 대사 치는 톤이 너무 억지 같아서 어색했는데 이 영화에선 연극배우의 경험치가 오롯이 드러난다. 아마 황동혁 감독이랑 잘 안 맞았던 게 아닐까? 그리고
김새벽 배우는 너무 작은 역을..크흠..6.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유튜브에 '엄창록의 지역감정'을 검색하면 방송사들이 만든 영상들이 있다. 그것 보고 가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또 극 자체가 줄거리를 꼬고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는 익숙한 분들이 가야 받아들이는 게 용이할 것 같다.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한국형 정치 스릴러를 좋아했던 분.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을 좋아했던 분. 설경구, 이선균 배우의 팬. 또 가족끼리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
- 완벽한 타인
스포가 있습니다.
*
2018년,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건 '우리는 저런 게임 해도 광고나 게임초대 밖에 안 온다'는 후기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월식이 일어나던 날, 호수이자 바다인 영랑호에서 불장난(사실 얼음낚시이지만)을 하다 주먹다짐을 했던 어린이들은 약 40년 뒤, 또 다시 월식이 일어나는 날 석호와 예진의 집들이에서 새로운 불장난을 한다.
40년 지기 친구들과 그 아내들이 휴대폰으로 오는 모든 알림들을 공유하는 게임.
이 영화는 낯선 게임의 형식을 빌려 내부의 클리셰들, 너무 흔한 가정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배신과 타자성 보다는 오히려 풍자에 가깝다.
더 바랄 것도 없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석호-예진 부부. 그들의 공부 잘하고 착한 딸.
유방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는 자상하고 가정적이며, 정신과 의사 예진은 딸에게 엄격한 엄마다.
대학생 때 혼전임신으로 낳은 딸인 만큼 딸이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진의 아버지도 의사인 걸로 보아, 처음부터 석호가 결혼을 승낙받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석호는 예진 몰래 투자한 속초 리조트에 사기를 당한다. 정신과 의사인 예진은 성형을 정신적 문제라고 인식하고,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는 정신과 의사를 꿀 빤다고 여긴다. 하지만 예진은 가슴 성형수술을 예약했고, 석호는 정신과 치료 6개월차다.
한국 영화, 아니 한국 가정의 클리셰들을 몽땅 모아둔 것 같은 태수-수현 부부를 들여다 보자.
고시 뒷바라지 해서 변호사 만들어 놓았더니 이제는 식모 취급하는, 보통 성격 아닌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만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를 외치는, 아내 모르게 다른 여자와 야한 사진을 나누는 태수. 친구 아내의 옷차림을 보고 "너무 꽉 끼는 거 아니야?"라며 평가질까지.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면서 자존감이란 자존감은 뉘집 개나 준 듯한 수현.
문학반 수업을 들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레파토리는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문학반 다니는 사람에게 예진을 험담하는 것도 낮은 자존감에서 온다. 자기 자신이 없으면 남이 기준이 되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음주운전 후 수현 대신 태수가 자수을 하면서 죄책감까지 가중된다. 죄책감과 자존감은 디커플링.
거기다 슬쩍슬쩍 몰래 술도 마신다. 알콜중독과 자존감은 커플링.
준모-세경 부부를 보자. 준모는 부잣집에 맨몸으로 장가간 남자의 전형이다. 사업병에 걸려 온갖 사업을 벌이고, 망하고, 그리고 또 하고.
뒤에서 호박씨 까면서 앞에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사랑꾼인 척. 사업장의 어린 알바생과 바람피우는 것까지 완벽하다.
그러면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늘 무시받는, 사업이라도 해서 '사장님' 소리를 들어야만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한없이 약한 존재.
한편 세경은 여기서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세경은 말한다. "결혼할 생각 없었어요. 저 인간이 하자고 하자고 해서"
마지막으로 애인 '민서'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지만 몸이 아프다며 혼자 온 영배.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사싱 잘리고), 친구들끼리의 골프 약속에도 소외된다. 40년지기 친구에게도 사실 애인은 민서가 아니라 '민수'임을 비밀에 부친다.
게임은 점점 과열되고, 그만 두자고 하는 사람과 한번 폭로되면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다.
서로를 속이고, 속였다는 것이 발각되는 걸 관음하는 것이 관객의 역할이다.
게임-스릴로 흥분되는 순간은 잠깐이다. 그 이후는 타인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는 관음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메타포다. 마치 타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화려한 생활을 관음하며 그 뒤에 어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행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완전무결하지 않은 타인에 대한 비난은 너무도 쉽다.
그렇기에 기존 포스터에서 차용하지 않는 방식인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는 마치 "너, 나 보고 있었지?"라고 말하는 듯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훔쳐보고 있는 걸 다 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동성애자.
자존감이 낮은 이가 SNS에서 화려한 삶을 거짓으로 꾸미듯이ㅡ물론 자존감도 높고 화려한 사람도 있겠다만은ㅡ세경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사회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영배와 보통 수준의 자존감을 가진 세경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결핍 그 자체다.
인정받고 싶지만 능력이 없는 준모, 책임감 없지만 책임감 있는 척 해야 하는 태수, 아내에게 금전적으로 달리는 석호, 자신을 잃어버린 수현, 성(性)적으로 억압된 예진.
예진의 억압된 성은 희한한 방향으로 가지를 친다. 첫째가 딸 소영에게 보이는 반응이 그렇다. 스무 살이 넘은 딸의 연애사를 일일이 간섭하며, 딸의 가방을 뒤져 기어이 콘돔을 찾아낸다.
딸이 만나는 남자를 격렬하게 거부하며 딸에게 순결을 강요한다. 둘째로는 유방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으로 말미암은 신체 컴플렉스다.
성형은 정신적 문제임을 인지하지만, 결국 가슴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의 두 가지 요소는 자신의 삶과 몸을 완전히 부정한다.
마지막으로 준모와의 관계다.
<인셉션>에서처럼 세경이 빼 놓은 반지가 테이블 위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그 순간 관객들은 이 모든 일이 가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영화 끄트머리에서는 게임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가는 차 안, 준모는 예진에게 온 문자를 확인한다. '자기랑 있고 싶었어'
하필이면 준모일까. 남편은 의사고 태수는 변호사, 준모는 사업병 걸린 백수다. 그럼에도 준모를 선택한 것은, 억압된 욕망의 육화 그 자체가 아닐까.
계산 없이 몸만 생각할 수 있는 상대.
마지막까지 관객의 관음 욕망을 채워준다. 이로서 가상이라고 여겨졌던 1시간 50분을 진짠가, 가짠가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진짜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라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태수의 말처럼 누구나 '공적인 삶, 개인의 삶, 비밀의 삶이라는 세 가지 삶'을 살고 있음이 영화의 주제일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옆에 있는 타인들을 속이며 '완벽한 타인'들로부터 결핍을 채워가는,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영랑호에서의 불장난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한강이 보이는 서울 고급 아파트에서의 불장난으로, 친구 아내와의 불장난으로ㅡ불장난이라 순화하고 싶지는 않지만ㅡ 끝난다.
어쩌면 '완벽한 타인'이라는 제목은 40년지기 친구도, 가족도 아닌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
- 1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2025년을 맞이한 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신년을 맞은 극장가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주에는 대작 영화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감독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부터 ‘천재 작가’라고 불리우는 아사노 이니오의 SF 만화를 원작으로 한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히든페이스>에 이어 빠르게 차기작으로 돌아온 박지현 주연의 <동화이지만 청불입니다>, 세계적인 팝 스타 퍼렐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레고 무비로 담은 <피스 바이 피스>까지 고루고루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관객의 선택을 받게 될 영화는 무엇일까요?
페라리
FERRARI
개요: 드라마 | 미국, 이탈리아, 영국 | 131분
감독: 마이클 만
주연: 아담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쉐일린 우들리
개봉: 2025.01.08.
배급: CJ ENM
줄거리
1957년, 전세계를 뒤흔든 '페라리'의 충격 실화가 드러난다!
파산 위기에 놓인 '엔초 페라리'. 회사 존폐의 기로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아내 라우라. 아들 피에로를 페라리 가로 인정하라고 압박하는 또다른 여인 리나.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인 1957년 여름,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광기의 1,000마일 레이스 '밀레 밀리아'에서 엔초 페라리는 판도를 뒤집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데...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Dead Dead Demon's Dededede Destruction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20분
감독: 토모유키 쿠로카와
주연: 이쿠라, 아노, 타네자키 아츠미, 시마부쿠로 미유리, 오오키 사에코, 와키 아즈미, 시라이시 료코
개봉: 2025.01.08.
배급: (주)올랄라스토리,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줄거리
정체불명 초거대 우주 모함 도쿄 상공 출현! 내일 지구가 폭망해도 오늘을 즐기는 하이텐션 고교 라이프! 3년 전 그날 이후 조용하지만 착실히 멸망은 진행 중…
아이도 어른도 아닌 우리, 일상도 비일상도 아닌 그때.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선명했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절대적’이란 것!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FORBIDDEN FAIRYTALE
개요: 코미디 | 대한민국 | 109분
감독: 이종석
주연: 박지현, 시원, 성동일
개봉: 2025.01.08.
배급: ㈜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줄거리
동화 작가가 꿈이지만 현실은 불법 음란물 단속팀 새내기인 ‘단비’는 스타 작가를 찾던 성인 웹소설계 대부 ‘황대표’와 우연한 사고로 노예 계약을 맺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19금 소설을 쓰게 된다.
생전 접한 적 없는 장르를 집필하는 데 난항을 겪던 ‘단비’는 음란물 단속을 하다 권태기에 빠진 선배 ‘정석’의 응원과, 친구들의 생생한 경험담에 힘입어 어느새 자신도 알지 못했던 성스러운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데…
피스 바이 피스
Piece by Piece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93분
감독: 모건 네빌
주연: 퍼렐 윌리엄스, 스눕 독, 스웬 스테파니, 켄드릭 라마, 저스틴 팀버레이크
개봉: 2025.01.08.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제 이야기를 레고로 만들면 쩔거 같지 않아요?”
창조의 귀재, 현존 최고의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 제이 지, 켄드릭 라마, 저스틴 팀버레이크, 스눕 독의 샤라웃을 받은 음악의 신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모두 작품이 된다!
레고로 그려내는 ‘퍼렐윌리엄스’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가 온다!
-
- 벤 위쇼의 방
-벤 위쇼(Ben Whishaw) 배우론
* 언급하는 작품들의 핵심 전개 포함
* 2022년 5월에 완성한 글입니다.
벤 위쇼의 주인공들은 좀처럼 ‘세계’와 화합하지 못했다. <향수>(2006)나 <아임 낫 데어>(2007)의 ‘반사회적 예술가’(오정연, 2008.05.29. [씨네21])에서 시작해, <할로우 크라운>(2012)에선 한 나라의 ‘주인’이 돼서도 예정된 실패를 맞이하고 눈물을 흘렸다. <크리미널 저스티스>(2008)와 <런던 스파이>(2015)에선 ‘로맨스에 휘말려’ 누명을 쓴 청년, <브라이트 스타>(2009)에선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요절한 시인 존 키츠였다. 이는 인물의 소수자성과 연결되기도 했는데-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2008)의 세바스찬은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정체성을 부정 당하다 알코올에 중독됐고,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속 로버트 역시 남성에게 끌린다는 까닭으로 협박 당했으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노만의 사랑과 존재는 불법이었다.
허면 무대 위 벤 위쇼는 늘상 보편에 속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대상이었는가? 그의 연기를 목격했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테다. 앞서 부러 표면적으로 요약했으나, 그의 주인공들은 늘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에 맞서며 중심을 지켜냈다. 몹시도 흔들리며 괴로워하더라도, 여린 눈빛과 신체가 파헤쳐진 밑바닥엔 항상 꺾이지 않는 ‘곤조’가 있었다. 그게 사랑이건 정의건 예술이건, 넘어져도 놓지 않고 ‘세계’에 저항함으로써 주제를 관통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배우가 지은 독특한 감정의 집과 만나 탄생한 캐릭터성이었는데 -벤 위쇼의 인물들에겐 ‘벤 위쇼’가 가득했다.
연기법에 메소드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는 지났고, 그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표하는 배우들도 있으나, 여전히 메소드는 ‘serious acting’의 가장 추앙받는 방법론이다. 다만 현대에는 오프라인 GV나 인터뷰는 물론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관객이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크린 밖의 배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미디어는 대중이 배우의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그가 자신과 아주 다른 이 인물이 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노력했는가’를 화제로 삼는다. 한편으로는 ‘배우 본인’의 모습만으로 팬덤이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공개하고 닮은 역할을 맡음으로써 스크린에 자리 잡았다.
벤 위쇼의 케이스는 조금 특이하다. 스크린 밖의 모습은 공개하기를 꺼리면서 연기에는 그 자신이 묻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 개인을 알지 못함에도 관객은 (이상하게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앞에 언급했듯 인물의 특징에 유사성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성, 포지션을 막론하고 스크린 속에서 ‘자신’이 되곤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 인물(:타인)이 되고 관객에 닿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기능적 조연일 때조차 어느 정도- 벤 위쇼는 화면에 마련한 제 방에서 주변 인물이나 서사와 소통하며 재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영화/TV시리즈/연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그 범위를 넓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신체보다는 두뇌/‘심장’에 재능이 있는 자가 되었던 벤 위쇼는, 오히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그 예리함을 입는다. 눈을 굴리는 건 남들의 눈치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내면의 고민이나 불안, 혹은 오감으로 흡수되는 다량의 정보나 빠른 머리 회전 때문이다. 고개나 손목을 꺾는 것은 특정 이미지를 내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감각이 신체에 묻어 절로 그리 된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느끼느라 외부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그렇다 하여 그들 모두가 저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임 낫 데어>(2007)
‘세계’와 불화하며 비범하게 존재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 앞 문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향수> 속 벤 위쇼의 그루누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행동의 폭력성과는 별개로 스크린 속 그의 몸짓은 오히려 남성/여성을 초월한 기이하고 불온한 선지자의 그것에 가깝다. 단편 <더 뮤즈>(2014), 뮤즈에게 집착하다 결국 익사하는 남자의 변태적 우울에도 닮은 데가 있다. 이들이 궁금해지는 것은, 그 ‘괴상한 욕망’이 벤 위쇼의 피부에 안착함으로써 ‘어느 정도’ ‘시대와 불화한 비범한 예술’의 정서를 입는 까닭이다.
<아임 낫 데어>, 덥수룩한 머리의 젊은 ‘시인’. 담배를 물고 삐딱하게 카메라를 향하는 그의 눈빛도 불온하다. 언뜻 ‘메인 롤’은 케이트 블란쳇의 ‘록스타’나 히스 레저의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무법자’ 등 비중과 활동성이 높은 자들의 몫인 듯하지만, 흑백 화면에서 한 공간에 머무르며 말을 이을 뿐인 ‘시인’이야말로 가장 자유롭다. 그의 뾰족한 신체는 플롯들 사이의 중심을 잡고, 대사는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유사하게, <클라우드 아틀라스> 속 로버트 프로비셔의 편지는 정교하게 뒤섞이는 서사의 기준을 잡고, 곡은 화면을 아우른다. <브라이트 스타>, 존 키츠의 운명이자 고통인 시 또한 사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작품 전체에 흐른다.
존 키츠는 화면에 잡히지 않은 채 타인의 언어를 통해 등장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집구석에 박혀 있는’, ‘요새 슬픈 생각을 많이 하는’ 따위의 말이 불러일으킨 예상을 깨며- 세상 맑은 얼굴로 평가를 백지화했다. ‘날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듯 첫인상을 남겼다. 병이 목숨을 앗아가기 전 이미 연인과 작별의 밤을 보내며 차분히 죽음을 예견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실패작’으로 여기더라도 사랑과 예술에 대한 확신만은 뚜렷한 채였다. 로버트 역시 스스로 마지막을 만든다. 유서 격의 편지와 함께 등장하기에 관객은 자연히 그가 삶을 ‘포기’하게 된 과정을 궁금해하게 되는데, 이 자살은 사실 ‘포기하지 않음’에 가깝다. 세상이 정한 바운더리에 속하지 않기에 무시당하고 협박당하지만, 제 존재를 의심치 않는다. 죽어가는 영혼을 곡에 담는 모습에는 절망이나 파멸의 정서가 없다. 초월적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자, 자신을 짓누르는 세계에 순응하느니 존엄하게 사라지겠다는 선언이다, 그가 편지에 적은 대로. (“진실된 자살은 세심한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야.”,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어, 먼저 가 있을게.”)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 세바스찬은 가난한 예술가가 아닌 귀족가 도련님이었으나, 세상에 ‘fit in’ 되지 못했다. ‘남색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관람되며’ 처음 등장하는데, 그 역시 편견에 빼앗긴 첫인상을 제 언어로 재정립한다. 꽃다발과 편지, 이어 테디 베어와 행복에 대한 의심으로. 가족과 자신을 단호하게 분리하며 이방인을 자처하는 세바스찬의- 텅 빈 저택을 휘감는 위화감은, 미묘하게 구르는 벤 위쇼의 눈동자로 완성된다. 미래의 불행을 확신하고 ‘죄인’이 되어 슬픈 얼굴로 기도하면서도 절대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Just to fit in.그냥 너한테 맞추려고.”이라던 찰스에게, 그는 “Well, than don’t!그럼 하지 마!”이라고 말했다. 저들의 ‘선의’에 흔들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망가지고 고립되기를 택했다. 사과하는 찰스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그는 작별의 순간 “Not a word.한 마디도 하지 마.”라고 선을 긋던 존 키츠와 겹친다. 타인의 죄책감이 되거나 ‘구원’되기를 거부하며, 연약하나 평온한 모습으로 원하는 순간 이별(퇴장)을 선언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침착하게 각도를 맞춰 입에 총구의 자리를 만드는 벤 위쇼의 동작은 분명한 정서를 섬세하게 전달했다. 시대의 룰에 억압당한 그의 인물들은 -병으로 인한 죽음이든, 권총 자살이든, 이민이든- 결국 제 식대로 ‘세계’와 헤어지기를 택하며 고유의 언어로 존재를 정의했다. 이 남다른 자들이 거의 거리감 없이 관객에게 닿았던 것은, ‘두꺼운 피부나 굳건한 심지로 대수롭지 않게 억압을 받아치거나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숨길 요령 없이 최전선에 던져져 끊임없이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존재를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캐릭터 묘사의 일등공신은 절대 벤 위쇼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평범하고 무해한 마스크 속 내면의 힘
단편 <러브 헤이트>(2008) 속 ‘착하지만 수완 없는’ -증오조차 ‘제 hate에게 휘둘려’ 어설프게 표출하며, 욕이 가득한 메일을 쓰며 울먹이거나, 사람을 ‘죽이려’ 나서서도 주먹 한 방에 자빠지고 마는- 톰처럼, 벤 위쇼의 어떤 주인공들은 가장 평범하고 순수한 영혼이었다. 대개 사람이나 상황에 ‘말려’ 곤경에 처하고 위험에 노출되었는데- 그 ‘순수’는 대다수의 사람이 지닌 것은 아니어서, 관객은 이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고’ ‘구해지기를’ 바라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 받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끝내 스스로를 구한다.
<크리미널 저스티스>, 벤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말한다, “Be yourself, Ben.네 모습 그대로 있으면 돼, 벤.” 벤 위쇼의 얼굴은, 작품이 ‘크리미널 저스티스’의 모순과 부정의를 강조하는 제1의 방법이다. 메시지를 분명히 하려면 주인공의 캐릭터성에 물음표가 생겨선 안 되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 속 카세 료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의 ‘무해한’ 인상은 의심의 여지를 효과적으로 지웠다. (‘매력적인 보호자’와 로맨틱한 긴장감을 유지하다 ‘구원’되는 연약한 주인공의 남성형인 듯 하다 그것을 ‘배반’하기도 하는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제스처였음을 전하는 것도 벤 위쇼다.) 후반부 결코 전처럼 해맑지 못한 눈빛은 시스템에 의해 개인의 마음이 조각난 모양을 빚어낸다. 최종적 설득력은 대사나 행동 자체보단, 섬세하고 개인적인, ‘두려움을 내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에 있었다. 특수한 상황임에도 인물과 같은 것을 겪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몸도 마음도 최대한으로 여린 듯 보이나 숨겨진 내면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는 캐릭터들. 연인의 죽음 이후 누명을 쓰고 괴로움과 혼란에 휩싸이지만 진실을 알아내려 애쓰는 <런던 스파이>의 대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노만 스콧 또한 그 맥을 잇는다. 벤과 노만 모두에겐 법정에 서는 장면이 있는데, 강압적인 시선 한가운데 자리한 무방비한(무방비하나 무력하지는 않다.) 이미지가 이미 ‘결백’을 주장한다. 벤 위쇼는 ‘연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모든 자극을 견뎌내며, ‘울음을 계속 참고 있는, 그러다 참지 못하기도 하는’ 모양을 유지한다. 그 터질 듯한 상태 그대로 결국 말들을 당당하게 뱉어내는 모습은, 고통스럽고 벅찰 수밖에.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경우 노만 스콧의 특수한 서사, 복합적인 내면과 매력을 드러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 벤 위쇼는 조심스러우나 방어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를 수행한다. 노만은 제레미 소프의 서술을 통해 일종의 ‘안타고니스트’ 포지션에서 시작하지만, 짐작은 곧 깨진다. 감정과 ‘약점’을 다 드러내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 속수무책의 순수. 모델로서 포즈를 취할 때도 어느 정도 수줍고, 협박을 해도 어설프다. 내내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즐겁고 당당하게 세상에 외칠 때, 엉엉 울고 나서도 활짝 웃을 때, 관객은 이것이 ‘노만 스콧의 이야기’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비범하나 보편적인, 평범하여 특별한.
‘천재’라는 수식에 기자는 어울리는 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 아워>(2011-2012) 프레디의 재능은 절대로 비범하다. 그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지만, ‘안 예쁜 태도’에 대해서도 모두 입을 모은다. 열변을 토할 때 그의 표정은 ‘관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굳어진다. 프레젠테이션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제 평판보다 진실이 중요해서다. 모두 어느 정도 연기하며 사는 세계에서, 홀로 연기할 생각을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기꺼이 골칫거리가 되는 자. 프레디가 맘에 없는 말을 하는 대상은 벨 하나다. 감정을 덮으려 부러 장난을 걸거나 상대를 깎아내리지만, 아련한 눈빛이 진심을 다 드러낸다-기보단 숨기지 못한다. 외부 압박에 타협하지 않는, 남달리 똑똑하고 위트있는, 그러나 로맨스엔 젬병인- 주인공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프레디 라이언은 유일하고 그 까닭은 벤 위쇼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He sees extraordinary in ordinary.그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봐요.”(벨 롤리) 프레디가 그렇듯 벤 위쇼도 그렇다.
1화 첫 장면은 대뜸 클로즈업된 벤 위쇼의 얼굴, 거울을 보고 연설문을 읊는 모습이다. 따라서 관객이 보고 있는 상은 프레디 본인의 눈에 비친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작품은 자주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그 뛰어난 감각이 인식하는 바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벤 위쇼가 샅샅이 드러내는 보편적인 감정의 떨림 덕이다. 그러고 보면 프레디는 여성을 ‘구하는’ 강하고 멋진 남성이기보단, 루스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늘지거나 잔뜩 얻어맞고 벨에게 발견되는 자다. 인간적인 ‘보통’의 정서를 지님에도 물러서지 않기에 더 ‘보통이 아닌’- 이 위대한 기자의 여정을 그저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입해 가슴을 졸이며 응원할 수밖에. 비범하면서도 보편적인, 평범하기에 특별한. ‘세계와 불화하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힘을 벤 위쇼는 오롯이 소화해 전했다. 그 컴플렉스complex함을 절대 단순화하는 법 없이.
어떤 인물들: ‘유해한 세계’에 벤 위쇼가 편입되는 법
아르튀르 랭보, 존 키츠, 노만 스콧, 리처드 2세와 최근의 아담 케이까지. ‘실존 인물’에 그를 캐스팅하며 외모의 유사성은 애초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을 테고, 기대한 바도 완벽한 ‘재현’과는 멀었을 것이다. 그가 ‘벤 위쇼 아닌 자’이려면, 애니메이션 곰이 되거나, 판타지적 디스토피아의 무감정이라도 입어야만 했을테니. 그러나 <패딩턴>(2015), 마음껏 정신없이 명랑했다가도 풀이 죽어 무방비하게 처량해지는 벤 위쇼의 정교한 미성이 사고뭉치 패딩턴을 ‘지구상 가장 순수한 생명체’로 만드는데 필수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듯- ‘기능적 조연’들 역시 벤 위쇼를 통함으로 인해 달라진다.
<007> 시리즈나 <제로법칙의 비밀>(2013) 속 ‘박사들’ 외에 그가 맡은 일부 조연들은 어쩐지 의외다. 빈민가 소년, 시인, 기자, 귀족 자제, 심지어는 왕의 모습으로-세계의 법칙이/을 거부하는 자였던 벤 위쇼는, 몇 년 후 여성 주연 작품들에서 ‘유해한 규범을 기꺼이 따르고 재생산하는 남자들’이 되었다.(‘절름발이 남자’는 규칙을 어기지만, 세계에 편입되기 위함이었다.) 맡는 역할의 범위를 넓히며 늘 ‘특정한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캐스팅으로 ‘효과’를 본 것은 사실 배우보다는 작품이다. ‘규범’이 현실적인 경우 개인이 아닌 불평등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면, ‘영화적일’ 때는 화면에 미묘한 불쾌감을 부여한다.
<서프러제트>(2015) 속 남성의 유형은 다양하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즐기는 자, 권력을 쥐고 놓지 않는 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법을 집행하는’ 자, 아내를 지지하는 자- 그들 모두가 ‘악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며, ‘대표적’ 가부장의 마스크를 벤 위쇼가 가져가며 이는 최대한으로 어필된다.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착실한 남자’로 등장한 소니는, 모드가 여성 참정권 집회에 나가도 먼발치에서 예민하게 주시하거나 부드러운 말투로 걱정을 내비치는 정도였다. 그 ‘배려’의 정체는 인물의 불안과 함께 밝혀지고, 카메라는 그가 ‘자상한 남편’, 이어 아버지이기를 포기하는 순간을 노린다. 악의 없이 울먹이며 흔들리는 낯을 잠시 클로즈업함으로써, 이 남자가 그저 평범하고 유약하며 특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가부장임을, 그 무책임한 몰인지가 그의 잘못이며 폭력과 차별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더 랍스터>(2015)는 남다른 이입이 특기인 벤 위쇼에게 언뜻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연기 스타일이 일정함에도, 이곳의 배우들은 의외로 ‘텅 비지’ 않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연출을 거듭할수록 더) 배우의 개성을 지우기보다 ‘세계’의 룰에 맞게 돋보이도록 조율하며, 행동과 정서가 뻔하게 이어지지 않도록 활용해 장면을 ‘흥미롭게’ 만든다. ‘비정한 여자’가 안젤리키 파풀리아의 얼굴을 통해 기본적 우울을 입듯,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절름발이 남자’의 바탕에 있는 불안은 벤 위쇼의-기계적인 톤을 적절히 입고도 예민하게 구르는 눈동자를 통해 드러난다. <리틀 조>(2019), 크리스의 변화를 미묘하고 ‘극적’으로 드러내기에도 그는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주인공 여성을 사로잡는 매력적 남성의 전형이 아닌, 잔뜩 긴장해 머뭇머뭇 데이트를 신청하는 소심한 연구원. 그 조심스러움, 어색함과 함께 무해함이 사라지고 결국 무감정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크리스가 지닐 기이함을 예시카 하우스너는 벤 위쇼의 실루엣에서 찾았다. ‘변화’ 이후의 폭력성 역시 계산된 각도로 침착하게 주먹을 뻗는 종류의 것으로, 색다른 공포와 불쾌감을 야기한다. 엄격한 디스토피아에 편입되는 남성들, 그 유해함마저 벤 위쇼만의 것이었다. 특정한 ‘악인’이 되려 애쓰지 않고 ‘세계’를 거역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위치를 찾는다.
<리틀 조>(2019)
예민함이라는 재능: 타인의 얼굴로 가장 솔직한 자신이 되다.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닌 ‘가녀린’ 실루엣, 쉽게 긴장해버리는 근육.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동세대 잉글랜드 배우들: 톰 히들스턴(<할로우 크라운>)이나 짐 스터지스(<클라우드 아틀라스>), 매튜 구드(<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와 같은 ‘남성 리드’가 되기 어려운 이미지고,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의 ‘무던함’도 없다. 유사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천재’ 타이틀을 유독 많이 달았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뭐든 가능한’ 마스크도 아니어서, 드물게 이성애 로맨스 서사의 주인공이 될 때도 제 1화자나 ‘관계의 리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많은 동료 배우와 평론가, 관객들로부터 ‘동세대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받는 까닭의 핵심은 이 ‘예민함’에 있다. “주변 사람들보다 피부를 한 겹 덜 가지고 있는 것 같은”(트레버 넌),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을 전제하는 천재성,은 ‘축복’이라고 하기엔 망설여짐에도- 그의 예민함은(‘예리함’으로 바꿔 적어서도 안 된다) 절대로 ‘결점’이 아니다.
“세 시간 만에 모든 인생사를 겪고 자살을 결심하는 젊은이”(벤 위쇼, 2004.04.29. [인터뷰: AP Archive]), 비니에 후드티 차림으로 약병과 주머니칼을 꺼내며, ‘사느냐 죽느냐’를 논하-기보다 온몸으로 겪-는 트레버 넌의 ‘뉴 햄릿’은, 벤 위쇼의 운명과도 같았다. 아니, 이 역할의 운명이 그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이 주연 데뷔 퍼포먼스로 그는 수없이 공연되고 인용됐던 대사가, 관념에서 떠도는 대신 관객의 가슴에 내려앉게 하고 말았다. <할로우 크라운>, 리처드 2세의 슬픔이 밴 엷은 미소에는 귀족과 군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분투했던 열 살의 어린 왕마저 비친다. 그는 짓무른 눈가에 자기파괴적 저항과 조롱의 뉘앙스를 드리우고 스스로 ‘폐위’ 씬을 써내려가며 ‘텅 빈 왕관’의 의미를 들이밀었다.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외치며 안경을 든 손을 섬세하게 놀리던 브루투스가 그랬듯, ‘폭정’으로 수식되기도 하는 리처드 2세의 말년 역시, 벤 위쇼와 만나 풍부하고 ‘현대적’이기까지 한 정서를 입었다. 현대의 일반인과는 한참 먼 이 셰익스피어의 남자들이 벤 위쇼와 만나면, 어찌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버리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되고 싶지 않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던 그는, ‘모순적’이게도 스크린을 통해 가장 적나라한 자신이 된다. ‘연기하지 않는’ 이들을 연기하는 벤 위쇼는 그들인 동시에 ‘벤 위쇼’이며, 보고 있는 관객 하나하나다. 그가 불어넣는 개인적 에너지는 작품 전체로 확장되어 관객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평범과 비범, 특수와 보편을 가리지 않는다. 중세 왕의 대사조차 개인적 감성을 완벽히 드리워 읊어버리고, ‘특별할 것 없는’ 청년일 때도 남달리 고통 받는다. 어떤 전형성조차 저다운 방식으로 수행한다. 배우로서 ‘이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특징을- 벤 위쇼는 애써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타인/인물이 자신의 피부에 착륙하여land on one’s skin 파고들도록 허락한다.
배우가 게이인 캐릭터를 연기하면, ‘OOO게이’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따라붙고, ‘아니라는 부정’이나 커밍아웃에 대한 기대(유명인의 커밍아웃은 퀴어의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고 인식을 향상시킬 가능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여기서 ‘기대’는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한 종류의 것이 아닌 단순 가십을 위한 ‘기대’를 일컫는다.)가 뒤따른다. 벤 위쇼 역시 그에 시달렸고 아웃팅outing으로 성 지향성이 대중에 알려졌으나, 이후로도 소수자적 정체성을 ‘공개’하거나 숨기려고 애쓰지 않았다(벤 위쇼, 2016.04.03. [인터뷰: The Guardian]) 이미지가 굳어지기를 걱정해 의식적으로 ‘다른 방향의’ 배역을 맡지도, 반대로 전략적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대중에 ‘어필’하지도 않았다. “배우들은 어떤 것이든 구현하거나 표현할 수 있고, 그 자신이 무엇인가,로만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벤 위쇼, 2019 골든 글로브 백스테이지 인터뷰)고 벤 위쇼는 말했다. 그의 인물 중엔 게이도 바이도 스트레이트도 있으며, 이는 표현의 깊이나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스스로 ‘양쪽 모두의 에너지에 매료된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고 말하기도 했듯,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전형을 답습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깨트린’다기보다는- 다만 가장 정직한 인간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무방비해지는 그 솔직함과 용기 역시 재능이다. <리틀 조>의 서사를 가져온다면, 그야말로 가장 ‘리틀 조 행복 바이러스’에 덜 감염된 사람 중 하나일 테다.
아르만도 이안누치식 찰스 디킨스 각색에서 ‘밉상 빌런’ 유리아 힙의 옷을 입기도 했던 그는, <파고>(시즌4, 2020)에서는 총을 겨누고 협박하다가도 “내겐 아내가 있어요.”, “난 아내가 없는데 내가 죽으면 개밥은 누가 줘요.” 따위의 말에 눈가를 떨고 마는 ‘정이 가는 범죄자’ 라비 밀리건의 복잡한 캐릭터성을 한 톤 낮춘 목소리에 드리웠다. 프로듀싱을 겸한 <디스 이즈 고잉 투 허트>(2022)에서는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unlikable’’(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 프로타고니스트 아담 케이가 되어 바쁘고 예민하게 이 병실 저 병실을 오가거나 우울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벤 위쇼는 여전히 범위를 제 식대로 넓히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연예술계에 혈연이 없음에도 젊은 나이에 무대 정가운데에 올랐던 그의 연기에는 초반부터, ‘타고난 천재성’ 따위 문구 없이는 수식하기 힘든 완전함과 특별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흔치 않은 재능’이란 흔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것 역시 안 될 말이다. 그가 지나온 예술의 여정엔 소수적 정체성을 지닌 내성적 남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의 과정, 그것을 드러낼 용기와 감수성, 인물을 존중하는 섬세한 접근법, 어느 하나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배우로서의 프라이드와 철학이 녹아 있다.
연기는, 벤 위쇼가 타인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화면 밖의 그를 궁금해할 필요나 권리는 없다. 그는 어느 정도, 데뷔 초부터 그 선언을 마쳤다. 연기예술가 벤 위쇼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예술을, 픽션의 옷을 입은 채 내보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면 된다. “Give him a mask, and he’ll tell you the truth.가면을 씌워 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거야.” (1998, <벨벳 골드마인>, 오스카 와일드 재인용)
* 주 참고 인터뷰
-
- 성공한 마에스트로의 이중성
모든 것이 다 잘될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성취했고,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 서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좀 더 완벽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려 할 것이고 조금은 탐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 나갈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거만하게 주변에 자신감을 비추면서 자신이 일하는 스타일 대로 밀어붙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올라간 위치가 그 사람의 성향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 거만함 자체는 이미 마음속 깊이 내재된 나만의 욕망이다.
그 욕망은 성공을 위한 욕망과는 다를 것이다. 이미 성공한 이후에 찾아오는 욕망은 좀 더 직접적이다. 안정적인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고 또 데이트를 하고 다른 사람을 낮게 깔보면서 그런 욕망을 채워나간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돕던 다른 사람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발견되면 그 사람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을 찾는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성공 후에 찾아오는 이런 거만함과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공한 마에스트로 타르의 멋진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영화 <타르>는 성공적인 위치에 있는 타르(케이트 블란쳇)가 가지고 있는 거만함을 천천히 보여준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지휘자다. 무대를 휘어잡는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그의 모습은 무척 자신감 넘치고 위트 있다. 그가 하는 긴 인터뷰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해 냈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확고한 의견을 내세우고 위트 있게 청중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무척 멋져 보인다.
영화가 두 번째로 보여주는 타르의 모습은 강의실에서 특강을 하는 장면이다. 타르는 한 학생을 타깃으로 여러 질문을 하며 작곡가의 개인적인 성향과 음악 작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척 단호하게 학생의 말에 반박하던 타르는 그 장면에서 학생에게 무안을 주고 결국 그가 교실을 나가게 만든다. 첫 인터뷰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강의 장면은 타르라는 캐릭터가 능력을 중시하고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견해가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동성애자로서 아내(니나 호스)와 함께 살면서 입양한 것으로 보이는 딸을 키우고 있다. 아내는 타르와 같이 필하모닉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같이 일을 하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생활해 나가는 것 같지만, 타르는 이상하게 새로운 연주자에게 관심을 돌린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타르의 진짜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긍정적인 성취와 성향을 보여주는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서서히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바다 위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빙산 조각을 먼저 보여주고 점점 바닷속 어두운 곳에 있는 거대한 빙산의 뿌리 쪽으로 내려가면서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서서히 드러나는 마에스트로의 진짜 모습
다르게 이야기하면 타르의 이중성에 대한 것이다. 타르는 직업적인 성공 이후 마음에 들지 않는 조력자가 직원을 한순간에 교체하고 또 상처를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퇴사한 직원이 다시 취업할 수 없도록 모든 관련 악단에 메일을 보내 해당 직원의 정신적인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런 타르의 행동은 그가 가진 자만심과 자신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바로바로 쳐내기 바쁘다. 특히나 부단장이나 그의 비서(노에미 메랑)를 쳐내는 모습이 그가 주변사람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시작해 무척 빠른 속도로 결말에 이른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역겹게 느껴지는 타르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가 초반에 보여줬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인식 그리고 위트 있는 모습은 후반부의 진짜 모습 속에 완전히 묻혀버린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꽤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끝까지 자만심으로 가득한 주인공 타르를 자연스럽게 비웃게 만드는 멋진 장면이다.
영화 속 타르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 있는 성공한 위선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공의 과정에서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에게 소홀해지고 외면한다. 완전히 자신만이 중요해지는 자아도취의 마약은 계속 자만심과 자신감 속에서 살고 싶게 만드는 욕망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고 성공한 예술가인 그들은 다양한 매체에 등장해 긍정적인 이미지와 말들을 전달하지만 그 모든 공을 자기 자신이 가져간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타르는 그 자만심 가득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즉, 한 번 크게 성공한 그 인물이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경력을 포함해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그는 자신이 겨우겨우 다시 맡은 오케스트라 앞에서 거만하게 연설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실패 앞에서도 그가 가진 욕망은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관객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온 세상 성공한 위선자들에게 전하는 일침
타르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은 그가 왜 최고의 배우인지를 보여준다. 성공적인 경력을 가진 자신감 넘치는 마에스트로와 굉장히 잘 어울리고, 그런 그가 조금씩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초점을 잃어가는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그렇게 초점을 잃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을 과시하려는 성향을 지우지 못한 타르를 무척이나 잘 표현해 냈다. 영화를 연출한 토드 필드 감독이 타르 역에 케이트 블란쳇의 캐스팅만을 생각하면서 각본을 쓴 것이 충분히 이해 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꽤 길다. 158분의 러닝타임이 초반에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진짜 타르의 모습이 드러나고 과연 타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게 될지를 쫓아가는 후반부는 꽤 긴장감 넘치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타르가 가진 잘못된 욕망의 표현 방식과 거만함은 그의 주변에서 모든 사람을 떠나게 하고 관객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다. 어쩌면 이 영화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위선자들에 대한 권선징악의 결말을 대리체험하게 하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영화같은 일은 사실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편
쫑알쫑알
쫑알쫑알. 주인공 잭의 집에는 소음이 잦아들지 않는다. 말 겁나 많다. 수다 떠는 아이들. 잭에겐 아이들이 세 명 있다. 부인까지 다섯 명인 가족. 남편의 직업은 대학교수다. 히틀러를 연구하고 있는 아버지 잭. 학교에 출근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내는 전업주부로 별다른 직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자인 아버지를 둔 때문인가. 잭의 가족은 사이가 다들 좋지만 대화할 때마다 ‘왜?’에 집착하며 말꼬리를 잡고 있다. 이 ‘왜?’라는 질문은 거의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아마 답을 정해놓고 서로 질문을 하고 때문은 아닐까. 인생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그런데 항상 부정적인 일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잭의 가족은 항상 ‘왜?’를 물으며 산다.
그날은 다른 날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아버지 잭은 동료 교수의 부탁을 받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열변을 토하고 집에 온 날이었다. 가족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만약에? 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며 살고 있었다. 갑자기 사고가 일어난다. 독극성 물질이 탄 차량에 추돌사고가 일어나 미국이 위험에 빠졌다. 당황하는 사람들. 공기에 길게 노출되면 생명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야 할 것 같다. 끔찍한 재난.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잭 가족이 위축되는 것이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 지금 잭 가족은 처해있는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잭은 과연 그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불안함에 맞대응할 수 있을까?
제목 값 톡톡히
영화에서 귀가 트였던 건 소음 연출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소음을 묘사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단어는 '만약에' 그러니까 불안이다. 또 군중이라는 키워드다. 둘의 종속관계를 이야기해보면 '불안하기 때문에 군중이 된다'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일단 주인공 잭에게 의미가 있는 세팅은 두 인물이다. 히틀러를 연구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라는 설정이다. 전자는 나치라는 군중을 이끌어 전 세계를 비극에 몰아넣었던 인물이다. 후자는 자기를 지지하는 군중으로 만든 인물이다. 이 둘 아니어도 군중을 만들 수 있는 집단은 계속해서 묘사된다. 일단 영화에서 언론이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된다. 자동차로 가득 찬 도로를 봐도 군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생들도 군중이다. 이 인물들은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함께 모인 것으로 보인다.
또 불안이라는 소재는 극에서 노아 바움백의 창의성이 부여된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부부터 끝까지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초반부 그레타 거윅이 맡은 '바바'는 불안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냥 아무 일도 없이, 권태로 지속되는 삶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바. 바바는 이 주인공 가족 중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겉으로 드러내는 빈도수는 적지만 이를 연출이나 연기에서 힘을 주는 지점이 있다. 바바가 불안함에 떠는 방식은 능동적인 불안이라고 칭할 수 있다. 불안하기 때문에 직접 행동으로 옮겨서 해소하려고 하는 문제 해결 방식이 극에서 반복된다. 이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핵심 소재와 가장 큰 관련이 있다. 또 빈도수가 가장 많은 불안에 떠는 인물은 잭과 바바의 아이들이다. 정말 하루도 쉴 틈 없이 계속 같은 패턴의 이야기만 반복한다. 이는 영화에서 두 부부와 관련된 기저에 깔린 불안을 묘사하는데 효과적이다. 아이들 캐릭터가 하는 말을 들으면 되게 말장난 같아도 어느 정도는 기괴한 이미지를 풍기던 것이 이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두 인물과는 다르게 잭이 겪는 불안은 지식인형 불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편으로는 이성에 근거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불안함의 실체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이에 대한 인물의 이중적인 태도를 묘사하려고 한 시도가 보인다. 환영 연출이 그에 대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소재가 갖는 힘
영화에서 긍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은 소재가 갖는 힘이다. 영화에서 주제를 나타내는 키워드로 불안과 군중이 뽑혔다면 이야기 전개를 위한 소도구로는 역시 '알약'과 '죽음'을 꼽고 싶다. 전자 알약은 영화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주원인이 된다. 알약을 먹는 모습을 보고 엄마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의심하는 아이들. 아닌 척 하지만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내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의심하는 남편. 그리고 왜 아내가 알약을 먹을 수 없었는가? 에 대한 이야기까지. 후반부에는 남편이 이 알약을 왜 얻고 싶어 했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한다. 이는 알약이라는 소재에 대한 이해도와 상상력을 적절하게 잘 구현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영화의 강점이라 생각이 든다.
또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이중적인 느낌이 있다. 죽음이 뭘까? 여러분도 알고 글쓴이도 알다시피 사람의 삶을 마감하는 일이다. 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좋을 리가 없다. 아직 우리 삶엔 남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인물의 속성은 극에서 서스펜스가 되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제시한다. 또 반대로 코미디로 작동하는 부분도 있다. 극에서 인물들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왜? 이는 독성 물질이 공기 중에서 떠다니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혹시나'가 실제가 되어버린 상황. 이 덕에 부정적인 생각이 그대로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인물들이 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글쓴이 입장에선 재밌었다. '너도 저 입장에 처하면 저렇지 않을까요?' 아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인물들이 겪고 있는 불안이 과연 이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환경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이 인물들은 그냥 원래부터 그런 변화에 예민한 사람인 것이다.
섬세한 손길
극에서 좋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영화의 섬세한 연출 덕이었다. 영화 초반부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잭이 동료 교수의 초대를 받고 강의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촬영이나 대사를 주고받는 방식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히틀러의 공통점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연출이 돋보였다. 두 인물이 각기 다른 갈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 둘의 차이점이 군중들의 차이점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또 영화 전반적으로 인물의 의사소통 방식이 '만약에'를 전제로 깔고 있다는 것은 각본가의 집중력이 나타나는 부분이었다. 시각적인 묘사가 아니더라도 인물들의 대사로 극의 긴장감을 이끄는 뚝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섬세한 연출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바 캐릭터의 묘사 방식이다. 바바라는 캐릭터는 마음씨가 약한 캐릭터다. 사실 마음 약한 캐릭터는 길거리에 나가도 흔히 찾을 수 있는 인물의 특성이다. 그러나 왜 이 인물이 마음씨가 약하나? 와 영화의 핵심 소재를 흡착한 방식은 확실히 색다르다. 정말 엉뚱하지만 철저하게 인물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그레타 거윅의 역량이 돋보인다. 감독 출신이라 그런가? 그러나 섬세한 터치가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잭 캐릭터다. 잭의 감정선이 극후반부에 갑작스럽게 마무리된다고 생각들 기도 했다. 아주 조금의 설명이라도 더 붙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또 극에서 아이러니를 다루는 방식도 좋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여러 종류가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한 아이러니, 가족관계에 대한 아이러니, 재난을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아이러니, 군중의 속성에 대한 아이러니까지. 영화에서 끝없이 제시되는 아이러니는 이야기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아마 여기일 것으로 보인다. 이 역설을 '작위적이다' 혹은 '자연스럽다'라고 느낄지가 극 관람에 주요 포인트가 생각해본다. 작위적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영화의 감상 난이도가 올라갈 것이다. 또한 후반부에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서히 쌓아 올린 아이러니는 극후 반부의 특정 장면을 통해 해소된다. 아이러니가 겹겹이 쌓여있는 것을 영화에서 반복되는 한 소재로 주파한 것이다. 이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섯 명의 얼굴이 기억나는 이유기도 하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태어난 이상 사람들은 다 죽게 되어있다. 예외는 없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 걱정이 많은 우리. 어떤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삶이 허무해진다. 어차피 다 죽을텐데. 그런데 영화는 이 허무한 명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한다. 그 반대로 이 두려움과 허무함에 대응하는, 우리 일상의 한 구석을 확대해서 묘사한다. 일상은 프라이드 치킨같은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먹는 것 자체로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것.
-
- 고소공포증을 증발시킨 곧 역주행을 불러올 실화 영화[결말포함]
-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
- 할리퀸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 캐릭터와 스토리 완벽정리
"수어사이드 스쿼드" 느낌이 팍팍 나는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Birds of Prey, 2020) 예고편 분석 및 감상 영상
감독: 캐시 얀
각본: 크리스티나 호드슨
제작: 마고 로비, 수 크롤, 브라이언 언클레스
출연: 마고 로비,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저니 스몰렛, 이완 맥그리거 외
장르: 슈퍼히어로 영화, 액션
음악: 대니얼 펨버턴
촬영기간: 2019년 1월 14일 ~ 2019년 4월 15일
제작사: DC 필름스, 럭키챕 엔터테인먼트, 크롤 & 코 엔터테인먼트, 클럽하우스 픽쳐스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2월 7일 예정#버즈오브프레이 #버즈오브프레이예고편 #할리퀸영화
-
- 영화 <해적 : 도깨비 깃발> 티저 예고편
“가자, 보물 찾으러!” 드디어 출항! 2022년 극장가를 평정할 해적이 온다? 역대급 스펙터클 어드벤처 [해적: 도깨비 깃발] 티저 예고편 대공개✨
-
- 영화 <문폴> 티저 예고편
지구와 달이 충돌한다!! ☄ [2012] [투모로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역대급 재난 블록버스터 [문폴] 티저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