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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톺아보기] 서현진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의 톺아보기 주인공은 완벽한 딕션부터 뛰어난 발성 그리고 상대 배우와 항상
케미가 좋은 로코퀸이자 믿고 보는 배우인데요.
바로 배우 '서현진'입니다!!
그럼, 바로 서현진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러 가볼까요?!
배우 '서현진' 프로필
ⓒ 매니지먼트 숲
이름 | 서현진
출생 | 1985년 2월 27일
소속사 | 숲엔터테인먼트(매니지먼트 숲)
데뷔 | 2001년 M.I.L.K
배우 '서현진' 데뷔 과정
ⓒ 매니지먼트 숲
사실 서현진 배우는 2001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걸그룹으로 먼저 연예계에 데뷔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 재학 시절 고등학교 1학년 때 SM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 되었고,
연예게 활동을 위해 압구정 고등학교로 전학갔다.
2005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걸었다.
배우 '서현진' 활동
ⓒ 매니지먼트 숲
드라마부터 영화, 뮤지컬까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입지를 다져오다 MBC '신들의 만찬'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식샤를 합시다2>에서 털털하고 귀여운 매력을 펼치며 대중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했고,
서현진 배우의 인생작이라고 할 수 있는 <또 오해영>에서 열연을 펼치며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낭만닥터 김사부>, <사랑의 온도>, <뷰티 인사이드>를 통해 로코퀸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약 1년 정도 휴식기를 가진 후 <블랙독>을 통해 평소 서현진 배우가 자주 선보였던 로맨스, 코미디 장르가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폭넓은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배우 '서현진' 대표작
식샤를 합시다 2 - 백수지
ⓒ Tving
서현진 배우는 뚱뚱한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가장 맛있는 걸로 딱 한 끼만 먹는
식사 스타일을 가진 프리랜서 작가 '백수지'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또 오해영 - 오해영
ⓒ Tving
동명이인인 같은 반 친구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었으며,
성실하며 활동적이고, 당당한 성격을 가진 외식사업본부 상품기획팀 대리 '오해영'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
낭만닥터 김사부 - 윤서정
ⓒ SBS
'민폐 의사만은 되지 말자'라는 모토를 가진
돌담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이자 흉부외과 전공의 '윤서정'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왓챠
사랑의 온도 - 이현수
ⓒ 점프엔터테인먼트
서현진 배우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드라마 작가가 되려는 '이현수'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뷰티 인사이드 - 한세계
ⓒ JTBC
서현진 배우는 한 달에 한 번 특정 주기가 되면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하는 마법에 걸린 탑 배우 '한세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블랙독 - 고하늘
ⓒ Tving
서현진 배우는 강단있는 성격을 가진
진학부 국어 기간제 교사인 '고하늘'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카시오페아 - 수진
ⓒ 네이버 영화
서현진 배우는 치열하게 삶은 사는 능력 있는 변호사에서
사고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 '수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극장
왜 오수재인가 - 오수재
ⓒ SBS
서현진 배우는 독한 성격을 가졌으면 승부욕이 강한
TK로펌 최연소 파트너 변호사이자 스타변호사인 '오수재'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곳 -------------
웨이브, 쿠팡플레이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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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 마이 카
흩어지며 죽어가는 이야기들에 숨을 불어넣는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이야기를 읊듯 시작되는 극 전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상실감에서 시작되었거나 혹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방에 자신의 증표를 남기는 것처럼 남자의 마음에도 점점 쌓인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상황들이 나도 그 사람도 볼 수 있지만 나만 보고 있는 그 거울을 빗겨나간 채 자리를 비우고 고개를 돌리며 독백이 자기 생각처럼 스며든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내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테이프는 계속 같은 음성을 뱉어낸다.
그렇게 마음을 숨긴 채 세상에 하나 남은 소중한 차를 운전하는 가후쿠는 새로운 연극에 들어가며 의도치 않게 기사를 두게 되면서 기사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미사키를 비롯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국적 / 성별 / 나이,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들과의 조우로 그의 무미건조한 삶에 약간의 파도가 친다. 다른 언어로 같은 뜻의 말을 해도 연극이 진행되는 것처럼 인생도 달리는 자동차처럼 누군가가 사라져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을 마주 보게 되고 뒤늦게 감정이 휘몰아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타인이지만 왠지 모르게 닮아있는 그를 안으며 살아갈, 살아 숨 쉴 자신을 향해 달린다.
상영 시간이 길어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테이프처럼 늘어지지도 않고 꽤 따뜻하고 단단하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품이라 좋았다. 상영 시간이 더 길었어도 좋을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작점을 어디서 잡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다른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지만,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알아야 그에 대해서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에 닿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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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웨이 스페셜(2020)> 리뷰
인간은 유사 이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 삶에 유통기한이 뚜렷이 새겨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두려움과 절망, 그럼에도 남겨질 이들을 떠올리며 점차 무력해지는 몸뚱이를 끝끝내 움직여야만 하는 운명에 대한 비참함과 서글픔. 그리고 그 사이에 스며드는 숭고함 따위를 어찌 감히 일반화할 수 있겠나.
우베르토 파졸리니의 <노웨이 스페셜>은 죽음을 목전에 앞둔 서른네 살 창문 청소부 존(제임스 노튼)과 그의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의 일상을 그렸다. 언뜻 보면 의젓한 네 살 아들과 자상한 아버지의 단란한 나날 같지만, 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이 부자父子의 삶을 자꾸만 촉박하게 만든다. 특히 창문을 닦는 일조차 점차 버거워지는 존은 아들 마이클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나날에서 얼룩을 지우는 막중한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는 영국의 입양법에 기반한 공공기관을 통해 적당하고 새로운 가정을 소개해주려 애쓰지만 그 일은 존의 예상보다도 힘들기만 하다.
※ 이하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배경이 북아일랜드이며 위에서 말했듯 아버지 존의 직업이 창문 청소부라는 점에서 <노웨어 스페셜>은 소외된 자들을 조명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존이 공공기관을 통해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은 갈등들을 겪는 장면이 함께 있어서, 나는 영화를 감상하던 도중 켄 로치를 몇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베르토 파졸리니의 영화는 켄 로치의 것보다는 죽음을 앞둔 젊은 아버지의 심리라는 사적인 영역에 보다 집중한다.
입양 희망자에 대한 면담, 적절성 평가, 사무적인 태도 등이 비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존에겐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쇼나(에일린 오히긴스)가 있다. 마이클을 입양하고자 하는 이들은 여럿이며 나름대로 (자신들이 믿는)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 정부가 개입해 입양 희망자들을 분류하는 것이 아주 그른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일부 들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존이 마이클의 예비 가족을 만날 때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존의 내면 변화이다. 그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입양이 무엇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대답을 해줘야만 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담는다. 또한 존은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아들의 가족을 대신 선택해 줄 만큼, 마이클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존의 모습은 그가 진실로 마이클을 사랑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그는 끔찍하리만큼 진실된 사랑을 한 이에게만 허락되는, 가슴 아픈 성취를 획득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존은 자신에게 닥친 허무를 수용한다. 아이에게 자신을 그저 창문닦이로 소개하면 그만이라고 말하거나, 굳이 뿌리를 알려야 하느냐고 손사래를 쳤던 영화 초반과 달리 존은 미래의 마이클이 열어볼 수 있도록 기억 상자를 마련한다. <노웨어 스페셜>은 전반적으로 톤이 일정하며, 등장인물들이 과할 정도로 오열하는 장면은 없다. 손때가 묻은 물건을 넣고, 우연히 찾은 생모의 사진을 넣는 장면조차 더욱 드라마틱하게 진행할 수 있었음에도 별달리 극적인 효과가 개입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 그저 애달픔만으로 속이 이렇게까지 상할 수 있구나, 싶은 느낌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한다. 존의 직업이 창작에 기반한 것이라면, 나는 영화 제작진이 굉장히 영리했다고 말하고 싶다. 창문을 닦는 행위를 통해 존은 한 걸음 밖에서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될 뿐만 아니라 유리는 그가 보지 못한 세상의 이면을 비춰줌으로써 , 존이 처한 상황과 자연스러운 접점을 형성한다. 또한 아버지 존의 이름은 너무도 평범한 것으로, 그의 슬픔이 사실 원치 않는 상황에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는 모든 이들의 상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 남기는 아들 마이클은 미카엘 천사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떠나는 이들에게 당신이 세상에 남기는 희망은 곧 빛이 되지 않겠냐며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작중 네 살 마이클의 캐릭터다. 특별히 조숙하다는 설정을 넣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많은 것을 알며 종종 어른보다 현명한 태도를 보인다. 표현은 미숙할지 몰라도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마냥 어리게 볼 수밖에 없고, 걱정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의 시선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나, 마이클이라는 캐릭터를 지금보다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지.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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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언제 진짜입니까
*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미국 / 드라마 / 96분
감독: 코고나다나는 언제 진짜입니까, <애프터 양>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4인 이상 가족만이 도전할 수 있는 월례 댄스 대회에 참가 중인 가족들. 그중엔 제이크의 가족도 포함되어있다. ‘제이크’와 ‘키라’가 입양한 딸(‘미카’)과 미카의 문화와 유산을 잇기 위한 안드로이드 ‘양’으로 구성된 4인 가족. 안드로이드가 가족 구성원이라는 설정에서 느껴지듯, <애프터 양>의 세계관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테크노 사피엔스 말고도 많은 복제인간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인간은 위대한 종족으로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안드로이드와 복제인간과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안정을 찾는 평범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우리가 단순히 필요 때문에 무선 로봇청소기를 사는 것처럼, 그들도 같은 목적으로 안드로이드와 복제인간을 구입하고 사용한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들에게 원하는 서비스엔 ‘가족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양이 문화와 유산을 이을 미카의 동반자이자 보디가드, 베이비시터, 그리고 둘도 없는 친오빠로 사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가족이 되는 데 필요한 요소는 <애프터 양>에서만큼은 조금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혈연? 그런 건 처음부터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의미 없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양은 항상 바쁜 키라와 제이크를 대신해 미카의 옆을 지켜준다. 입양아란 사실에 미카가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단단한 뿌리가 미카에게도 존재함을 알려준다. ‘진짜’ 아빠, ‘진짜’ 엄마가 가진 의미를 다시 정의해주며 미카에게 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미카에게 양은 안드로이드 그 이상의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양이 댄스 대회를 마친 후 깨어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양의 고장으로 제이크는 당황한다. 학교를 잘 다니던 미카는 등교를 거부하고, 아내는 늘 언급했던 문제를 다시 또 꺼내 든다. 양에게 의존했던 부모의 역할을 이젠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미카가 잊지 말아야 할 문화와 유산을 계속 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양이 없어도 되는 가정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양을 고치는 걸 택한다.
새 제품으로 샀다고 생각했던 양은 사실 쓰였다가 온 제품이었다. 한 번도 꺼지지 않은 채 수면 모드 상태에서 여러 고객의 '무엇'으로 살았던 것이다. 제이크는 너무 비싼 수리비에 고민하다 양의 중심부가 문제라는 말에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으로 향한다. 관장은 양의 중심부에 들어있는 기억장치를 발견하고, 귀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라며 제이크에게 양을 기부해 달라고 부탁한다. 제이크는 확답을 미뤄두고 양의 기억장치를 들고 집에 온다. 홀로 소파에 앉아 양의 비밀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제이크. <애프터 양>의 진짜 이야기는 그가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화면 가득 채워진 검은 하늘과 산발적으로 퍼진 빛나는 별들. 끝없이 아름다운 우주에서 각각 독립된 세계로 살아있는 기억들. 양의 과거는 그 추억 속에, 시간 속에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이크는 별 하나하나에 깃든 양이 담은 시선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몰랐던 양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양과 함께한 시간을 의미 있게 생각했는지 깨닫는다.
양의 기억의 조각들엔 공통적인 물음이 들어있다.
계속 눈으로 세상을, 사람을,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이유를 찾고 있다는 것. 양은 틈만 나면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란 존재를 마주했다. 차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좋다는 제이크의 말에 “제게도 차가 그냥 지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툭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끝은 시작이란 말을 믿는지 묻는 키라에 “모르겠어요, 그런 믿음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아서”라며 인간의 씁쓸함 같은 것을 표현한다. 솔직히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며 웃지만, 슬픈 적도 있었냐는 물음엔 자신이 느낄 수 없는 슬픔에 대해 고심한 흔적을 보인다. 슬픔, 기쁨, 외로움, 허망함, 분노‥ 그에게 인간의 감정은 딱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아무리 찾아봐도 안드로이드가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 무가 없으면 유도 없으니까요.”
고민하다 키라에게 답한 양의 말. 그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에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생산한다.
양은 ‘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까. 아무것도 없음이, 단순히 손에 잡은 게 없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주입된 정보였을까? 그는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 인간처럼 살고 싶었던 걸까? 양은 왜 갑자기 멈췄을까. 스스로의 의지였을까? 그게 가능은 한 걸까? 테크노 소재를 다루는 영화와 비교해 <애프터 양>이 훨씬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양의 목적이 ‘인간으로 살고 싶다’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양은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양은 끊임없이 ‘진짜’를 찾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만의 언어로 말이다. 그만의 시선으로, 그만의 기억법으로, 그만의 관계로 ‘내’가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진짜’를 발견하고자 했다. 테크노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하거나, 사랑을 할 수 있냐는 물음은 인간의 관점에서 출발해 인간의 관점 밖으로 나가지 못한 질문일 뿐이었다. 에이다가 제이크에게 인간만이 가진 마땅한 우월함을 꼬집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양은 인간으로 사는 일을 열망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진짜를 찾는 ‘방법’을 궁금했다. 존재의 의무만으로 인간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듯, 양에게도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했다. “행복해?”란 질문이 자신에게 맞는 질문인지 되묻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비를 좋아하는 중국인이라서 나비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나비를 수집하고 싶은 것처럼. 양은 자신이 저장한 기억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떤 감정으로 저장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감정의 총책인지, 덩어리인지 그리하여 진짜 피부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인간 같은 테크노여서가 아니라, ‘양’이란 유일무이한 개체로서.
왜? 양은 어느 순간부터 누가 묻지도 않은 것들에 의심하기 시작했고, 의문을 품고서 자꾸만 안드로이드인 자신을 봤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은 의심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의심으로 인해 생긴 믿음으로 진짜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짜는 평생 나의 존재를, 의미를 만드는 데 계속 작용된다. 거울이 시작이었을 수도 있고, 가족사진을 찍기 바로 직전 어딘가를 응시하던 순간, 복제인간으로 탄생한 에이다의 웃음, 새벽마다 속삭이는 미카의 목소리, 제이크와 키라의 물음이었을 수도 있다. 우린 무엇이 양의 기억장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양이 진작부터 사진만 찍어대는 셔터의 역할에서 이탈해 있었다는 걸 인지할 뿐이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양이 미카에게 좋은 오빠가 되어준 것처럼, 자신과 아내에게도 좋은 아들, 나아가 친구였다는 걸 몸소 체감한다. 마치 진짜 가족을 영영 떠나보내는 것처럼 그는 키라와 함께 양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논의한다. 양의 기억은 인간에게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면서,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양을 주지 않으려는 기술자에게 내 것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딱 잘라 말했던 제이크가 변한 것이다. 미카가 양이 테크노여서 사랑한 게 아닌 것처럼, 양이 미카에게 저장된 뿌리가 아니라 진정한 뿌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처럼. 두 사람에게 양은 테크노로 기능하지 않은 순간부터 귀중해졌다.
본래 양은 인간이 원했기에 만들어졌다.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이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 한계를 거뜬히 뛰어넘는 힘, 테크노와 복제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들의 분명한 목적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손을 떠난 것들을 결코 좌지우지할 수 없다. 만들고 생산하고, 세상에 내놓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이후엔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어떠한 말로 대체할 필요도 없다.
양의 중심부에 문제가 생긴 건 인간의 계획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발생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 양은 죽었지만, 양의 언어론 그는 살아있다.
양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의 가슴에 귀를 대보는 에이다의 행동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도 그래서 당연하다. 양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짜’를 두고 우린 또 우리의 언어로 해석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고찰하는 방식과 같다 하겠지. <애프터 양>은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양의 기억을 끄집어낸 게 아니다. 인간의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 해서 인간의 시각으로 읽히는 게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양만의 이야기와 양만이 해내고자 하는 지점이 충분히 존재함을 알려주고자 한다. 양은 독립된 대상으로서 나의 진짜를 찾고 싶은 테크노이자, 테크노가 아닌 ‘양’이다. 양의 기억장치는 기계적으로 ‘저장’한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품고’ 있었던 감정의 소용돌이고, 그 속으로 <애프터 양>이 관객을 초대한 것이다.
감독은 <콜럼버스>를 통해 비대칭에서 각자의 균형을 찾는 법을 공유했었다. 그 안에서 각자의 치유의 공간을 찾기를 바랐다. <애프터 양>을 통해선, 존재의 다름과 존재의 존재 이유를 함께 고민해보길 원한다. 코고나다 감독만의 낯설지만, 감각적인 표현방식이 한층 더 세밀하고 섬세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진짜’를 갈망하는 양의 우주가 내게로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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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드 헤인즈의 <메이 디셈버>
본 글은 씨네랩을 통한 시사회 관람 후 리뷰를 요청받아 쓴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6년 여교사가 당시 만 13세 남학생과 성관계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여교사는 2급 아동 강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개월 후 조기 석방되었다. 하지만 다시 남학생을 만나 관계를 가진 것이 적발되었고 최종적으로 7년 징역을 살았다. 더욱 충격(?) 적인 것은 여교사는 남학생과의 사이에서 딸 2명을 낳았다. 복역 중 첫째 딸을 낳고 가석방되었고, 두 번째 복역 중 둘째 딸을 낳았다. 출소 후 여교사와 남학생은 결혼하며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2017년 그들은 이혼을 했고, 2020년 여교사는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남학생과 두 딸이 곁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토드 헤인즈의 신작 <메이 디셈버>는 위에 언급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아무래도 토드 헤인즈는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해외의 경우 아동 성범죄는 아주 심각한 범죄로 취급된다. 특히나 최근의 국내 경향으로는 이 영화가 개봉조차 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개봉을 하는 것은 토드 헤인즈라는 명성과 스타 배우들의 출연이지 않을까. 여하간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아동 성범죄라는 소재는 무시할 수 없는 소재인 건 분명하다.
우선 토드 헤인즈라는 감독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감독은 아니라는 걸 밝혀야겠다. 기억도 잘 나진 않지만 <파 프롬 헤븐>, <캐롤>로 이어진 멜로드라마 감독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 사이사이엔 다른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경력이 있지만 난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영화의 연장으로 <메이 디셈버>를 읽었다. 즉, 멜로드라마로 이 영화를 접근한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더 이상의 멜로 드라마가 가능한가.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어원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글라스 서크로 상징되는 그 멜로드라마가 2024년에 가능하냐는 문제다. 멜로드라마는 아주 단순한 구성을 취한다. 남녀가 사랑하지만 어떠한 장애물이 그 사랑을 막는다. 더글라스 서크의 걸작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에서는 계급과 나이가 주인공들의 사랑을 가로막았다. 아주 오래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이 사랑을 가로막았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사랑을 가로막을 게 없어서 죽을 병에 걸린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물론 간혹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같은 장애라는 요소나 혹은 <건축학개론>에서는 이 장르적 요소를 훌륭하게 지역 정치학으로 엮는 경우도 있다. 토드 헤인즈는 <메이 디셈버>에서 그들의 사랑을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으로 진행시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둘의 나이차는 무려 23살이니까. 하지만 토드 헤인즈는 멜로드라마 장르 공식으로 이 영화를 풀어가진 않는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사건의 여교사 그레이시라기보단 그들에게 접근한 엘리자베스다. 그레이시와 조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그 영화에서 그레이시 역을 맡은 게 바로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연기할 실제 인물 그레이시를 관찰하기 위해 접근한다. 극중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연기할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인물을 고른다는 말을 한다. 게다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더 흥미롭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엘리자베스는 상당히 거만하다. 즉, 영화는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는 당연히 뒤따르는 문제가 생긴다. 엘리자베스와 관객을 동일선상에 놓고 영화를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물음. 관객들이 엘리자베스를 계속 쫓아가며 그녀가 얻는 사실과 힌트들로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게 할 것인가. 흔히 플롯을 구성할 때 아주 많이 쓰이는 방법이지만 토드 헤인즈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법적으로 그레이시는 아동 성범죄자다. 바꿔서 이야기해 보자. 그레이시는 스물세 살 연하 남자를 서른여섯에 만났다. 그리고 섹스를 했다. 당신은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건 첨예한 문제다. 미성년자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심지어 할리우드 감독들과 배우들의 연인들을 이해하는 것도 힘든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미성년자다. 그것도 만 13세.
아마 단순히 나이차를 두고 그 연인들을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내면을 깊게 들어가서 이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질문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사기꾼이거나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간일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토드 헤인즈는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하기 위해 그레이시와 주변 인물들을 만나는 동선을 따라가는 방향과 관객들이 그레이시와 조를 따라가는 하나의 방향으로 총 두 개의 방향성으로 진행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방향성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먼저 엘리자베스 쪽을 살펴보자. 엘리자베스가 등장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똥과 함께 등장한다. 혹은 엘리자베스는 똥을 들고 등장한다. 여하간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이해하는 쪽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시를 연기하려고 하는 점은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태도는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 자신이 흥미로운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전 남편과 변호사 등을 만나면서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본다. 중요한 장면으로 그레이시가 조와 처음으로 섹스한 곳에 가서 자위를 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메리의 학교에 가서 연기에 대한 강의를 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는데 그 강의에서 엘리자베스는 연기와 실제가 뒤섞이는 그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기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 물론 토드 헤인즈는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연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엘리자베스는 배우로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장면을 보면서 엘리자베스의 결과는 결코 좋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엘리자베스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엘리자베스 본인을 당시 그레이시의 상황에 놓는 것에 불과하다. 즉, 그레이시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다. 인간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영화의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엘리자베스란 인간은 자신의 배역을 위해 남의 남자랑 섹스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건 엘리자베스란 인간에 대한 일부의 이해다.
그런 다음 엘리자베스는 카메라와 정면으로 대응한다. 이 장면은 나탈리 포트만의 아주 인상적인 연기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딘가 부족한 연기라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어딘가 부족한 연기를 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건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아니라 토드 헤인즈의 연출이다. 영화가 이끌고 온 서사와 카메라의 위치가 지금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절대적으로 관객들이 따라갈 수 없는 연기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본인이 찾던 결론에 도달한다. 그레이시가 어렸을 때 오빠들에게 성추행을 당해서 비뚤어진 성관념이 생겼다는 정보를 듣는다. 그는 그레이시를 이해할 핵심적인 단서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사건이 인간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프로이트에게 배웠다. 최근 들어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박하거나 프로이트는 사장된 인물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책을 보거나 의견을 들으면 결국 다시 프로이트 이론 안에서 그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본다. 프로이트의 일부 이론이 틀리거나 부정당할 수는 있지만 결국 다시 프로이트라는 점은 아직까지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은 토드 헤인즈가 함정을 파두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성추행의 결과로 그레이시가 조와 섹스를 했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훗날 그레이시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런 일은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비웃는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영화를 찍는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연기하는 그레이시는 마치 삼류 연기자가 연기하는 에로 영화 같은 느낌이 풍긴다. 심지어 사실관계조차 알지 못한 채로 영화를 촬영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걸 밝혀냈으며 인간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부분을 밝혀낸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업적은 엄청난 것이지만. 하지만 분명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무엇이 인간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고, 무엇의 항목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이제 그레이시와 조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그레이시와 조는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고 소시지가 없다는 사실에 그레이시는 충격을 받는다. 이때 심각한 음악은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느껴진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장면은 조가 자려고 누워있는 그레이시 옆에 누웠을 때 그레이시가 냄새난다고 씻고 오라고 이야기한다. 극장에서 이 장면이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단순히 웃기는 장면은 아니다. 이 전 장면이 조가 TV를 통해 세수를 하는 여자가 나오는 광고를 보았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그 장면과 이 장면은 같이 연결해야 한다. 조는 왜 깨끗하게 세수하는 여자를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는 것일까. 그리고 그레이시가 씻으라고 말할 때 왜 상반신에 물만 살짝 묻히고는 마는 걸까.
조의 그런 심리에 대해 알 턱이 없지만 추론해 볼 수는 있다. 조와 그레이시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더럽다이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조는 자신이 더럽지 않다는 걸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더럽지 않기 때문에 씻을 필요가 없는 건 아닐까? 물론 이는 추론이다.
내가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한 가지는 영화가 시작하고 난 다음 그레이시와 조가 마주치는 장면이다. 부엌에서 둘이 마주쳤을 때 쇼트의 배열이 약간은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확신했던 것은 그레이시와 조의 대화를 샷 리액션 샷으로 이어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조와 그의 아들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정확하게 엿볼 수 있다. 그레이시는 정면에 가까운 위치에 카메라가 위치하지만 조를 보여줄 때는 아들의 정면 가까운 곳에 카메라가 위치한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그레이시와 조가 이야기를 해도 둘의 시선을 일치시키지 않는다.
영화가 그 시선을 일치시키는 장면은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전 남편을 만났을 때나 변호사를 만났을 때 완전히 일치시킨다. 또한 조가 지붕에서 아들과 함께 대마를 피우는 장면에서 시선은 일치한다. 시선을 일치시키는 문제는 보편적인 영화에서는 아주 익숙한 문법이지만 이러한 문법 자체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감독들이 있다. 이 영화도 그런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는 아들과 대화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주변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 하지만 그레이시와 조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둘의 시선이 일치하는 부분은 영화 후반부에서 조가 그레이시에게 자신이 너무 어리지 않았냐고 물을 때다. 조가 대화를 시도하자 카메라는 둘의 시선을 일치시킨다. 하지만 이내 그레이시는 대화를 거부하면서 장면은 끝난다.
그레이시는 딸 메리의 졸업식에 입을 드레스를 고르는데 영향을 주고, 자신에게 케이크를 주문하지 않게 된 이웃이 생기자 오열한다. 이따금 이유 없이 울기도 한다. 우리는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문제가 명확하게 어떤 건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레이시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앞부분 소시지가 없을 때의 음악과 딸 메리의 의상을 고르는 장면을 보면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레이시의 문제가 명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몇몇 부분으로 그녀를 추론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버지와 굉장히 서먹하다. 아버지를 만나서 줄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면 그 또한 추론할 수 있지만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린 알 수가 없다.
관객들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와 조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의 전 남편 대화를 살펴보면 전 남편이 당시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건 그의 입을 통해 증언되기 때문이다. 변호사 또한 마찬가지다. 변호사는 그레이시를 보고 범죄자라고 일갈하며 그레이시는 당시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한다. 그렇다. 그레이시는 조와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별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레이시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리가 없다.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 상태를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그레이시의 말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그레이시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 그레이시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우리의 상식이 잘못되었거나 그레이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상식이 잘못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즉 36살의 여교사가 13살의 남학생을 사랑하고 그래서 섹스했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녀가 아이를 낳았고, 복역 후 그와 결혼을 했으며 이후로도 같이 살았다는 사실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나탈리 포트만의 독백 연기도 아니고 마지막 장면의 엘리자베스의 오만함도 아니다. 조가 지붕에서 아들과 함께 대마를 피우는 장면이 왜 잊히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만 13살의 아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감정이 타인에 의해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가 되면서, 자신의 사랑이 범죄 행위가 되며 정상적인 성장을 밟지 못한 것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버지가 되어서야 자신의 10대를 다시 새롭게 경험하는 그 순간이 인상적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장면은 조와 엘리자베스의 섹스다. 이 장면을 설명해야만 한다. 이 영화 속에서 그레이시는 어떤 변화도 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일하게 변화하는 건 조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나타나고 나서 조는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아니 심경의 변화를 알아차렸다고 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조는 처음으로 그레이시에게 자신이 너무 어렸던 거 아니냐고 묻는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부인하는 그레이시의 행동과는 다르게 조는 그 손가락질에 대해 그레이시와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조는 10대 때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하는 중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하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자베스와 섹스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명백하게 자신의 역할을 위한 섹스다. 그러니까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레이시의 입장에서 조를 품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영화는 마치 성기 삽입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연출했다.
하지만 조의 입장은 약간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엘리자베스와 섹스를 했다. 이 또한 추론일 뿐이지만 천천히 다시 한번 살펴보자. 엘리자베스는 지금 서른여섯의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입장이다. 즉 당시의 그레이시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 13세 이후의 삶을 다시 겪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생활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당시의 편지를 꺼내보고 딸의 졸업식을 준비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는 당시의 그레이시와의 섹스를 다시 해본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물론 추론이다. 여기에는 이 영화의 인서트로 계속 등장하는 나비와 애벌레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영화가 시작하면 나비가 나온다.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인서트에서는 애벌레가 등장한다. 생각해 보면 순서가 뒤집혀야 맞는 거 아닌가. 그러므로 이미 나비가 된 조가 다시 애벌레부터 시작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변호사를 만나는 장면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밖은 부드러운 빛이 내리쬐고 안은 어두컴컴하다. 바깥은 녹음이 드리워진 공간이다. 이는 마치 인상주의 화풍처럼 느껴진다. 인상주의가 등장했을 때 누구나 아는 것처럼 그리다 만 그림이거나 혹은 그림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작자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비판이 쏟아졌었다. 미술사 고전기에 원근법이라는 개념과 현실의 모방이라는 아주 중대한 부분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였다. 세상의 비밀을 파헤친 것만 같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이어 인상주의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의 인상들을 그리면서 회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나는 이 점이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하는 태도가 결국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결론에 다다르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도 있었을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멜로드라마의 감독 답게 토드 헤인즈는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탁월하게 연출했다. 특히 그레이시가 엘리자베스에게 화장해 주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장면은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 모두 옆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빛을 정확하게 볼 수는 없다. 이는 분명 엘리자베스의 독백 장면과 대비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에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낀다. 반면 그레이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느낌은 약하다. 즉 이 장면은 분명한 디렉팅이 들어간 것 같다. 이 순간 마치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에게 입을 맞출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충동의 감정에 솔직했다면 어쩌면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이해할 수 있는 뭔가를 얻지 않았을까. 물론 난 엘리자베스를 모르지만 말이다.
2024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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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박스오피스를 부활시킨 영화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주도하는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이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할리우드 주요 영화 스튜디오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의 현충일, ‘메모리얼 데이’는 북미 주요 국경일로써,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공휴일 중 하나로, 이번 연휴를 노리고 개봉한 두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인하여 극장이 오랜만에 매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본 기록이 북미를 비롯한 전세계 박스오피스 시장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는, 이번 박스오피스 수익이 팬데믹 이전의 박스 수익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전편인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2018년 4월 개봉 당시 5020만 달러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였는데요. 이는 제작비 1700만 달러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의 예측하지 못한 흥행이었기에, 제작사는 곧바로 속편 제작에 착수하였고, 전편보다 훨씬 큰 제작비인 6100만 달러를 투자하여 2편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극장 매출을 개봉 일주일 만에 벌어들인 것이죠.
<콰이어트 플레이스 2>와 같은 날 개봉한 디즈니의 <크루엘라>의 경우, 북미에서는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와 동시 개봉을 택했는데요. 디즈니+에서 극장 티켓가보다 비싼 30달러에 대여되고 있는 <크루엘라>는 OTT와 극장으로 관객이 양분된 상황 속에서, 오프닝 스코어 2130만 달러 (약 237억 원)을 기록하며 분전하였습니다.
현재, 약 75%의 극장이 가동되고 있는 북미 시장은 극장 좌석 수가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힘겹게 극장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한 미디어 분석가에 의하면 “본 연휴를 맞아 개봉한 두 편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크루엘라”)는 관객들의 대작에 대한 꺼지지 않은 관심을 다시 한 번 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고 하는데요. 국내에서도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개봉 2주 만에 관객 수 200만에 육박하는 기록을 써가고 있는 걸 보면, 개봉이 연기되고 있는 블록버스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이 기세를 몰아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6.4 북미 개봉), <인 더 하이츠> (6,11 북미 개봉), <히트맨의 보디가드 2> (6.16 북미 개봉),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6.25 북미 개봉) 등 매주 각 영화사의 텐트폴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될 예정인데요.
북미뿐 아니라, 전 세계 박스오피스가 가장 활발한 ‘여름’ 시장이 올해는 정말 ‘활발’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 하루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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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시의적절한 가족 영화 해피엔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신작, 해피엔드가 개봉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2년 연속으로 '가족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점, 그리고 칸이 사랑한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신작이 '가족영화'라는 점이 참 재미난 관람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관람하시고 시청해주시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콘텐츠도 재밌게 시청해주세요!제작지원 : 그린나래미디어
#해피엔드 #미카엘하네케 #영화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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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드> 메인 예고편
아침에는 아이, 오후에는 어른, 저녁에는 노인
죽음은 시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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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30초 리뷰 예고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텐 링즈'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
'샹치'는 아버지 '웬우'의 밑에서 암살자로 훈련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샹치'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가 남긴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신비한 힘을 일깨우게 된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자,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아버지 '웬우'를 마주해야 하는 '샹치'.
악이 될 것인가? 구원이 될 인가?
마블의 새로운 시대, 세상에 없던 힘이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