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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부른다는 것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레이디 버드>의 스포일러가 불친절하게 마구잡이로 들어 있습니다.
짙은 녹색이 산마다 성큼성큼 내려앉던 여름 내내, 그 폭염 속에서 어쩐지 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건 4월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마음에 몇 달씩 이어지는 그림자를 남길 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였다.
1983년 여름날, 이탈리아에 있는 별장에서 엘리오(티모시 살라메)는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교수인 아버지, 여러 가지 언어를 섞어 말하는 가족들... 상당히 지적인 분위기에서 엘리오 또한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수영도 하면서 나른한 여름을 하루하루 채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를 도울 연구원으로 올리버(아미 해머)가 찾아오고, 한 계절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이 전개된다. 그러는 내내 등장하는 건물이며 호수, 햇살과 나무, 교수인 아버지 때문에 등장하는 슬라이드, 녹슨 유물들... 영화에 쓰인 소품이나 배경이 풍겨내는 아우라는 어마어마하게 우아하고 압도적이어서 보는 마음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아미 해머의 얼굴은 80년대 화보에서 튀어나왔다 싶을 만큼 아름다웠고, 티모시 살라메에게서는 옛 유럽 명화를 볼 때 들었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비단과 진주, 모피와 비싼 물감 재료 같은 것들이 오가는 곳에서 초연하게 앉아 있을 것 같은 귀족적인 분위기.
영화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 로맨스가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을 배경이었고, 다소 짓궂은 성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고고해 보이게끔 하는 힘이 있었다. 영화가 여성 배우를 다루는 방식을 비롯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몇 개나 꼽을 수 있는 내 마음에조차, 아름다운 풍경과 선명한 상징들이 움푹 자국을 남기는 영화였다.
그러니 여름 한 철의 열매처럼 부드럽게 익었다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첫사랑의 조각이 내 마음도 스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계속 윙윙거리던 파리가 마지막까지 티모시 살라메의 몸에 들러붙어 있던 것처럼, 극중 엘리오의 마음만큼이나 내 마음에도 이 영화는 진득하게 윙윙거렸다. 영화에서 느껴지던 여름의 열기를 현실에서 느낄 때면, 그 여름 한가운데서 어느 책이든 책 한 권을 펼칠 때면 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곤 했다.
고요하지만 깊이 파고든 엔딩 장면만큼이나 마음을 건드린 부분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네 이름으로 날 불러, 난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라는 대사였다. 엘리오와 올리버, 올리버와 엘리오. 어딘가 비슷한 음운이 많이 들어있는 두 이름이 부드럽게 섞이는 것도 좋았다. 이름이란 얼마나 그 사람을 다 담고 있는 것인가. 이름을 주는 것이 마치 다 주는 것처럼 여겨져서, 미성년자 건드린다고 언짢아하던 와중에도 그 대사에서만큼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름을 준다는 것에서 심장이 내려앉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분명 이름은 정체성을 드러내고, 반대로 정체성을 빚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작명소에 돈 주고 지어 왔다는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민지, 지혜, 유미 같은 이름들처럼 주변에 많이 보이면서 나긋나긋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유니크한 이름도 아니었다. 주류에 속하지도 홀로 고고하게 서 있지도 않는, 이도저도 아닌 모습이 정말로 나 같이 느껴져 더욱 싫었다. 내 이름을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된 건 내 나름대로 의미 부여를 한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내 이름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이름으로 대표되는 나의 세계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비단 과거의 나만은 아닐 것이다. 어디 가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소시민적 삶을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거의 인류 보편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흔한 경험이다. 그리고 이 흔한 사춘기를, 흔한 경험을 반짝거리는 이야기로 묶어낸 이름이 <레이디 버드>다.
특이한 경험을 그려낸 영화를 낮잡아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세상 어딜 가도 두 번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독특한 사건이란 극보다 더 극적이어서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쉬이 눈길을 끌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이야기를 묶으면서도 사랑스럽고 눈에 띄게 그려낼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재능이 아닐까? 훌륭한 배우, 훌륭한 극작가에 이어 훌륭한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린 그레타 거윅은 본인 경험과 배경을 상당수 녹여내면서도 인류 중 상당 비율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시얼샤 로넌이 분하는 "레이디 버드"는 누가 봐도 절대 본명이 아니다. 크리스틴이라는 멀쩡한 (그리고 아마 어른들이 "분별 있는 이름"이라 하실 법한) 이름을 두고 스스로의 이름을 만든다. 실제로 레이디 버드가 재조립하고자 했던 건 이름뿐 아니라 그 이름 뒤에 있는 생활 그 자체였다. 자신이 사는 동네, 가족의 자산 규모, 학교에서 자신의 위치, 어머니나 친구나 다양한 주변인들과의 관계... 영화는 레이디 버드라는 단 한 사람의 주인공을 세우고, 주변인과 그 동네를 촘촘하게 보여주면서 레이디 버드의 세계에서 우리의 10대를 끌어낸다.
지루한 고향을 떠나 어딘가로 떠나기를 동경하는 삶,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 빚부터 직업까지 수많은 역할들로 짓눌려 있는 엄마의 삶을 볼 때마다, 도저히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오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이 다니는 가톨릭계 학교의 면면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과 친구처럼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 자신과 친구를 볼 때마다, 레이디 버드는 격렬하게 반응한다.
차에서 뛰어내리고, 이름을 지어내고,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여러 가지 거짓말을 타래로 엮어가며 자기 눈에 반짝거리는 것들로 자신을 만들어간다. 자신만의 성(城)을 쌓아 올리는 소녀의 모습은 분명 허영에 가깝지만 딱히 얄미울 것도 심각해질 것도 없다.
왜냐하면 딱히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는 0으로 수렴하는 수학 점수를 받으면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겠다고 한다든지, 온통 수녀님뿐인 선생님 차를 신혼여행 떠나는 웨딩카처럼 장식한다든지, 의외로 보기보다 대담하게 사고를 계속 쳐대면서 도저히 이 곳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10대의 학교에 선생님으로 계신 수녀님의 눈에는 보인다. 레이디 버드가 실은 새크라멘토를 꽤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물론 레이디 버드 본인도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시얼샤 로넌, 그레타 거윅영화의 배경인 새크라멘토가 그레타 거윅 본인의 고향인 데다가 레이디 버드의 본명인 크리스틴은 그 어머니의 이름이라고 하니,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은 본인과 본인의 고향을 참고해서 만들었을 뿐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와 친구는 나오면서 "그냥 창피해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본인 얘기 맞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분명 레이디 버드가 하는 행동들은 보편적인 누구의 경험이라기엔 좀 특이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인간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 같다.
결국 다른 우리 모두처럼, 즉 어른이 된 과거의 소녀들처럼 레이디 버드 또한 벗어나려던 모든 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프롬 파티에 함께 갈 멋진 남자친구와 학교에서 제일 "쿨한" 친구 대신, 파티 날 집에서 울적하게 앉아있던 친구와 만나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파티를 즐긴다. 집을 떠나 멀리까지 대학을 가지만 결국 그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본 후에 전화를 거는 곳은 집이고, 전화해서 하는 첫 마디는 "나 크리스틴이야"라고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중에는 자기의 것들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지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벗어나려는 자신을 끊임없이 받아들여주는 끈을 촘촘히 확인하려는 마음도 있다. 너무 사랑하고 또 너무 가까운 이들과 나 사이에는 그런 원심력과 구심력이 공존한다. 엄마에게 쾅쾅 소리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조용히, 지금 이 모습이 나의 베스트라고 해도 나를 사랑할 거냐고 빤히 묻는 레이디 버드의 눈에는 그 마음이 정직하게 어려 있다.
원심력과 구심력은 힘의 크기가 같아서, 어느 하나가 이기는 일이 없다. 우리 모두와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레이디 버드의 사춘기도 그렇게 팽팽한 원을 그리며 지나가지만 그런 날도 언젠가는 느슨하게 풀어진다. 조수석에서 짜증을 내다 차에서 뛰어내리던 레이디 버드가 운전석에 올라보고서야, 엄마가 운전할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풍경을 바라보았을지 톺아보듯이. 그렇게 새크라멘토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꼭 닮아 있는 엄마와 딸의 얼굴이 나란히 스크린 위에 그려지듯이.
비로소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는 레이디 버드처럼 나도 내 이름에 나름의 의미를 붙이고, 입 속의 혀처럼 너무 당연하던 주변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마음이 든 후에야 나를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돌아와 일기에 다정하게 내 이름을 괜히 한 번 써보았다. 몇 글자 되지도 않는 이름 하나에는 나를 둘러싼 이들의 애정이 들어있고, 타자이면서도 나 자신 못지않게 가까운 위치에서 애정을 보내주는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내 자리를 찾아 헤맸던 어린 시절이 들어 있었으므로. 레이디 버드는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름이다.
너를 사랑해,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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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의 아들 / Son Of Saul
/ 줄거리 /
시체처리반 일명 '존더코만도'인 사울은 주검이 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고
아들의 장례를 제대로 치뤄주기 위해 시체를 빼돌리고, 랍비를 찾아나선다.
/ 영화의 특징 /
이 영화는 1.37:1 비율의 화면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은 사울의 뒷모습을 쫓는다.
이러한 화면의 비율은 나치수용소의 폐쇄적인 느낌을 극대화시켰으며
사울의 뒤를 쫓는 카메라워킹은 우리가 사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체들을 계속 '토막'이라고 칭하며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이 없는
나치수용소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다.
/ 간단한 고찰 /
1. 사울은 왜 그토록 아들의 장례를 치루어주기 위해 노력했는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나무토막다루듯이 처리하던 사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을 위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 줌으로써 평소 갖고 있던 죄책감을 덜고,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들을 위한 기도와 장례지만 그 사이에 평소에 자신이 처리해 왔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무고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다.
2. 그 아이는 진짜 사울의 아들일까?
영화를 보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들의 장례를 치루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지지만, 이게 과연 부성애일까?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영화 중간중간에 사람들은 사울에게 '너는 아들이 없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에 사울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회파하거나, '아니, 지금 내 와이프의 아들은 아니고 중얼중얼' 하며 횡설수설한다.
또한, 수용소의 특성상 그리고 사울의 처지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무리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여도, 아들이 다시 죽임을 당할 때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은 왜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고, 장례를 치루어주기 위해 자신뿐만아니라 동료들 마저 희생시켰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그리고 '아들의 장례'라는 것이 사울에게 있어서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삶의 목표의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3. 마지막장면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은 이유?
위에서 말했다시피, 아들이 사울의 진짜 아들이 아니었다면
사울이 장례를 치루어 주고자 한 아이는 사울의 죄책감과 목표의식등이 투영된
대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꼭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투영가능하지 않을까.
따라서 내 생각에 그 아이는 강에서 감정투영의 대상이었던 아이를 잃고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사울에게 보여진 새로운 감정투영의 대상이었고,
사울의 의미 모를 환한 미소는
' 너라도 탈출할 수 있어서 (혹은 살아서) 다행이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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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로애락이 교차되어 빛나는 삶의 순간
2007년 장편 데뷔작 ‘모두 용서했습니다’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 세자르상 최고데뷔작상 후보에 올랐고,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2009년 ‘내 아이들의 아버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2015년 ‘다가오는 것들’ 등 섬세한 연출로 사랑받는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을 보고 왔습니다. 2021년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베르히만 아일랜드’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오른데 이어 마침내 제75회 칸영화제 독립 부문 감독주간 최우수유럽영화상을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표 감독으로 우뚝 선 그녀의 최신작이죠.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는 그녀의 시선 덕분에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해 지난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이 밖에도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과 화제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작품입니다. 근래 극장가가 조용한데, 얼마나 관람하실지 궁금해지네요.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요양원의 할아버지보다 이 책들에서 할아버지가 더 느껴져”
시놉시스: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예고편│Trailer
원제: Un beau matin, 영제: One Fine Morning│감독·각본: 미아 한센-로브
출연진: 레아 세이두, 멜빌 푸포, 파스칼 그레고리, 니콜 가르시아, 카미유 르방 마르탱 외 多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상영 시간: 113분
국가: 프랑스, 영국, 독일│등급: 15세 이상 관람가│수입·배급: 찬란
평점: 평론가 7.0, 왓챠피디아 3.3, 로튼토마토 신선도 92% 팝콘 69%, IMDB 7.0, 메타 스코어 86점
개봉일: 2023년 9월 6일
“삶은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스타일이 늘 그러했듯, 이번에도 파리에 사는 주인공 산드라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희로애락을 이끌어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은 상실과 슬픔이 존재하고 다른 쪽에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상반된 감정선이 흐르는 그녀의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죠. 자전적 경험을 확장시키는 그의 스타일상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을 상기시키는데, 이번에도 ‘베르히만 아일랜드’ 집필 이후 깊어지는 아버지의 병세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깨달은 가치와 진심을 담은 스토리는 더욱 친밀하게 와닿습니다.
한동안 ‘007’ 시리즈, ‘프렌치 디스패치’, ‘프랑스’, ‘디셉션’, ‘내 아내 이야기’까지 뇌쇄적이고 몽환적이며 혹은 화려하고 강렬한 인물을 연기했던 프랑스 대표 배우 레아 세이두는 주인공 산드라로 변신해 자신의 가치를 빛냅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를 맡아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까지 생생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그녀가 겪는 슬픔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줍니다. 기본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듯 수수한 스타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싱글맘으로 변신해 매 순간 변화를 맞이하는 산드라의 심경을 전달합니다. 배우 본연이 가진 신비로운 눈빛과 말투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감정의 연장선을 더욱 깊게 연결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만큼 산드라로 분한 레아 세이두의 연기가 친근함, 그 이상을 이끌어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삶에서 찾은 작은 변화로 상실의 빈자리를 극복해 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완성한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이었습니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 놓인 평범한 일상이 담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통해 여러 순간들을 거쳐 위로와 희망을 얻고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죠. 노쇠한 아버지를 향한 상실감, 새로운 연인 클레망과의 사랑 등 쓰디쓴 인내의 시간을 지나 다시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내일을 향한 기대와 위로를 전하면서 말입니다. 관객과 함께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공유하는 미아 한센-러브, 다음엔 또 어떤 장면을 담아줄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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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I want to know your parents, 2022
2017년.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가 최종 결정되며 한국 영화의 투자도 자연스레, 철회되었다.
2016년 <곡성>을 제외하고는 흥행작이 없었으나 <황해, 2010>을 비롯해 <런닝맨 - 슬로우 비디오 - 나의 절친 악당들 - 대립군>까지 만든 것을 보면, 외국 회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었으니 아쉬움이 컸다.
그렇게, 마지막 작품으로 예고되었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개봉이 취소되었다.이런 이유에는 주연 배우 "오달수"분의 "미투"였고 "재촬영"까지 고려되었으나 결국, 이를 포기했다. (이미, 사업에서 손을 떼었으니...)
이후 "김지훈"감독은 작년 <싱크홀, 2021>로 <타워, 2012> 이후 9년 만에 복귀했으며, 이 작품으로 처음으로 합을 맞춘 "설경구 - 천우희"는 나중에 찍은 <우상, 2019>이 개봉하기도 했다.
아무튼, "신세계"의 자회사 "마인드 마크"에 이관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4년 만에 극장에 걸게 되었다.1. 그가 쭉 만들어왔던 작품
앞서 말한 <싱크홀, 2021>과 <타워, 2012>말고도, <7광구, 2011>와 <화려한 휴가, 2007>까지 "김지훈"감독은 큰 규모의 영화들을 만들어 온 연출가이다.
무엇보다 해당 영화들은 재난 및 사고들을 소재로 만든 작품들로 이번 작품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제작 규모는 작을지언정, 그가 만들어왔던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가 '보여줄 사고는 어떨지?'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공존했다.해당 작품은 한 아이가 "학교폭력"에 의해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부모들로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소위, "고구마"와 같은 전개에 많은 걱정도 있을 텐데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은 가해자들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이에 답답함은 더 배가 되지만, 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보다 "제3의 입장"을 취하게 만들어 객관성을 갖추게 한다.2. 늑대는 했지만, 부모님은 못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2013>도 적법한 행위를 저지르는 캐릭터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에서는 "데드풀"처럼 "제4의 벽"을 깨는 방법까지 추가해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데, 이로써 얻어 가는 것이 뭘까?
'그들보다는 낫다'라는 "도덕적 우월감"이 우선되겠지만, 위법한 행동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배덕감"은 오묘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의 자세는 두 번째까지 이어지지 않는다.이런 이유에는 해당 작품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담임교사 "정욱"과 피해자 "건우 엄마"의 시점에 있다.
앞서 가해자들에게는 관객들의 몰입보다 "제3의 입장"으로 객관성을 갖추게 하는 것과 달리, 몰입시키려는 카메라를 보여줘 논리보단 감정을 먼저 읽게 만드는 일정하지 못한 설명은 답답함으로 연결된다.
이런 가운데, 영화의 설명력은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한다.3. 아쉬운 설명들과 장면들
여기, 설명의 차이 외에도 해당 가해자들의 부모가 "병원 이사장 - 변호사 - 전직 경찰청장 - 교사"와 다르게 피해자의 부모는 "사회 배려자"로 소개된다.
그러면서, 이들의 논리는 '약자는 무조건 선(善)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惡)하다'는 "언더도그마"로 보인다.
물론,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선 그들의 행동에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척점에 서있는 입장에도 우는 것이 전부일만큼 할애되지 못한 분량과 설명력은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운 현 모습이 아닌가?결국. 영화는 가장 눈살이 찌푸리게 만드는 "학교폭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해당 작품의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불가피한 부분이겠지만, 고통을 가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설명이 설명으로 쌓여질까?
앞서 말했듯이 눈살이 찌푸려지듯이 불쾌한 감정부터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장면들이다.
이미, 영화의 첫 시작에서 물에 건져낸 "건우"와 병상에 누워 관들과 몸에 있는 상흔만으로도 유추도 가능한데도 말이다. - 너무 친절하다.4.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이라는 뜻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
명경지수(明鏡止水), 한자사전앞서 "건우"를 건져올린 강부터 "조정"과 '다 같은 배를 탔다'라는 비유까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 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재밌는 건 "물"은 식물들을 성장시키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 요소임에도 "공무도하가"와 "스틱스 강" 등의 일부 문학과 설화에선 "죽음"을 뜻한다.여기, '씨도둑은 못한다'라는 어른들의 말은 점점 닮아가는 외면도 있지만 자식들이 보여주는 행동에도 있다.
이런 이유에는 자녀들은 부모들을 보면서 그 행동을 따라하기 때문이다.
결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마지막 거울과 같은 뿌연 물속에서 "호창"이 바라본 건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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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이 낳은 거짓의 왕국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 (Inventing ANNA, 2022)
채널 : 넷플릭스 시리즈, 9부작 완결 │ 장르 : 미국, 범죄·드라마
제작 : 숀다 라임스 │ 출연 : 줄리아 가너(애나), 애나 클럼스키(비비안), 아리안 모아이드(토드), 케이티 로우즈(레이첼) 외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델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결핍은 양날의 칼 같다. 어떤 결핍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어떤 결핍은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기도 하니까. <애나 만들기>의 ‘애나 델비’는 단연 후자의 경우다. 애나 델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에서 금수저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았던 실제 인물이다. 본명은 ‘애나 소로킨’. 금수저 상속녀는커녕 실제로는 트럭 운전수의 딸이었다. 사실상 무(無)수저에 가까웠던 애나는 어떻게 ‘찐’ 금수저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일화를 하나씩 양파 까듯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최대 재미 요소다.
애나는 사교계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미술과 패션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언변 또한 그에 못지않게 화려했으며 성격도 화통해서 인맥 넓히기에도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사기꾼의 삼박자를 완벽히 갖춘 셈.
애나는 그렇게 뉴욕 사교계를 발판으로 하여 조금씩 인맥을 넓혀나갔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모두 그녀를 독일인 상속녀라고 믿었다. 그럴수록 애나는 대담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200억 규모의 대출을 신청하게 되는데… 결국엔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며 애나의 시대도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내로라하는 은행가와 기업인들 모두가 애나를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가히 놀라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모두가, 애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세상엔 왜 이런 캐릭터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까. 사람이 얼마나 결핍이 심하면 이토록 제 삶을 송두리째 꾸며내게 되는 걸까. 드라마는 그 화두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애나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녀가 당신들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 말한다. 애나 델비는 두말할 것 없이 돈이면 다 되는 이 자본주의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만 치부하기에 애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롭던가. 애나의 이야기에는 실로 수많은 사람이 걸쳐져 있었다. 애나를 금수저라고 믿었던 각종 유명인사들. 그들이 애나를 곁에 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이익과, 그 배경에 깔린 저마다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했다. 애나를 거대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데에 과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례로 ‘레이첼’을 들어보자. 그녀는 애나의 사기행각을 맨 처음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이자, 애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여성이다. <베니티 페어>에 근무하던 레이첼은 애나와 어울려 다니며 자신 또한 얻은 것이 상당했다. 함께하는 동안 많은 비용을 애나가 지불했고, 때로는 옷도 얻어 입었으며, SNS에 자랑할 사진과 럭셔리 라이프와 인맥과 기타 등등을 상당 시간 애나가 제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둘의 우정이 끝난 건 함께 떠난 모로코 여행에서였다. 그때 애나를 대신해 큰 여행비용을 레이첼이 결제했는데 그 돈을 애나가 갚지 않으면서 관계가 깨진 것이다. 레이첼은 실은 애나가 빈털터리였던데다 자신이 돈까지 낸 게 몹시 억울하고 빡이 쳤다. 그런데 그 말을 비틀자면, 레이첼에게 애나는 금수저일 때만 의미있는 친구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이 모든 순간 투명한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마음을 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금전 등의 이익 때문에 맺는 인간관계도 있을 테다. 그걸 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애나 소로킨이라는 정신 나간 여자가 금수저 연기를 하다가 뽀록이 났다’라는 한 줄의 줄거리 이면에는, 애나와 다를 것 없는 욕망으로 꿈틀대는 인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애나가 물질의 결핍에 의해 사기꾼이 된 것처럼, 그들 역시 물질을 이유로 애나를 곁에 둔 사람들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욕망에 의해 관계한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실제 '애나 소로킨' (사진출처:연합뉴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애나는 여러 사기행각을 죄목으로 12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2021년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애나의 이야기는 넷플릭스가 32만 달러, 한화로 약 4억을 주고 사들여 현재의 드라마로 만들게 되었다고. 자신을 상품화해 이목을 끄는 그녀의 재주는 감히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런 재능만큼은 애나가 가진 ‘진짜’가 아니었을까. 그 천부적 재능을,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쌓아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이 있다. 누군가에겐 그게 돈이고, 명예고, 학업이고, 인맥일 뿐. 애나는 화려하고 부유한 척을 하자 사람들이 보여왔던 그 관심과 호의에 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트럭운전수라고 할 때보다 외교관이나 석유 재벌, 태양열에너지 사업가라고 할 때 보여왔을 사람들의 눈빛, 자신의 몸에 두른 옷이 초호화 명품일 때 사람들이 보내온 동경. 그런 것들이 보잘것없이 고달픈 자신의 현실을 잊게 했는지도 모른다. 뒤틀린 결핍이 낳은 4년의 가상 세계에서 애나는 행복했을까. 그녀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괘씸해 마지않아야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또한 쉬이 접을 수는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존중
실제 일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는 이런 씬이 있다. 애나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던 기자가 교도소로 애나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애나는 기자에게 ‘당신이 입은 옷은 싸구려’라며 무시하다가도,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묻는다. “면회, 또 올 거죠?” 그때의 애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수많은 부자 친구들을 거느렸지만, 모두가 그녀를 필요로 하고 동경했었지만, 번번이 얻을 수는 없었던 사람의 진짜 온기를. 삶에 있어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래서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 해도, 누군가가 그 자체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해준다면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무수저 트럭운전수의 딸 애나 소로킨을 긍정해주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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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과 유년기에 관한 보편적 호소
온 동네 사람들이 친밀하게 엮인 정다운 마을에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을 주동한 자들은 개신교 민병대로, 그들은 마을에 있는 가톨릭교도들과 그들의 집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화염병, 자동차 폭발 등이 일어나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골목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생기고 총을 든 군인이 수시로 마을을 순찰한다. 이곳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9살 소년 버디가 사는 마을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종교를 앞세워 갱단처럼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지만, 그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북아일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실업률로 고생 중이고, 경제 위기의 여파는 벨파스트를 비껴가지 않았다. 세금 문제와 수입 감소로 골머리를 썩는 버디 부모님의 갈등이 잦아지는 이유다. 아빠는 미래를 위해 벨파스트를 떠나자 하지만, 엄마는 삶의 모든 것이었던 벨파스트를 떠나고 싶지 않다. 감당하기 벅찬 여러 문제를 동시에 마주한 버디네 가족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이들은 눈이 뒤집힌 채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은 무섭고 긴장도 되지만 늘 그랬듯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말썽을 부리는 일상을 이어간다. 버디는 따뜻한 말과 사랑을 주고받는 조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엉뚱한 방식으로 마음에 둔 여학생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버디는 벨파스트가 오래도록 쌓아온 아름다운 관계의 성취를 듬뿍 만끽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멀어질수록 영화의 긴장감은 커진다. 어른들의 혼란과 아이들의 천진함이 동시에 포개진 벨파스트라는 모순은 점점 첨예해지며, 따로 존재하는 게 좋았을 두 세계를 결국 부딪히게 하고 만다. 동네 친구와 비밀서클을 만들어 놀던 버디가 얼떨결에 가톨릭교도를 응징하러 가는 개신교도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약탈하듯 상점을 헤집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에게 선물할 세제를 챙긴다.
그러나 일은 버디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버디의 엄마는 기뻐하기는커녕 크게 화를 내며 다그치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자며 상점으로 버디를 데리고 간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꼬여만 간다. 폭도들이 왜 가톨릭교도에 이로운 짓을 하냐며 버디 모자를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개신교도임에도 평소 자신들에게 거리를 두던 버디 가족을 인질로 잡아 군인들과 인질극을 벌이기까지 한다. 엄마를 위한다는 순진한 동심이 어른들의 혼탁한 세계와 만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다행히도 버디가 일으킨 소동은 파국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버디 가족은 오랫동안 망설였던 영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떠나는 버디네 가족을 보며 할머니가 당부하듯 혼잣말로 건네는 말을 들어보자. “가거라. 지금 가거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랑한다(Go. Go now. Don’t look back. I love you so).” 할머니는 이제 벨파스트가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아님을 안다.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인 남편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기에 버디 가족마저 떠난다면 지독히 외로울 테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볼모로 자식들을 붙잡을 수 없는 그녀는 슬픔이 깃든 결연한 표정으로 벨파스트를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한다.
이것이 〈벨파스트〉가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과잉 낭만으로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영화의 방식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벨파스트〉는 다소 성급하고 단조로운 방법으로나마 우리가 지나온 것에 대한 보편적 호소를 만들어낸다. 모든 고향과 유년기에는 고유한 색채가 있다. 지역, 시대, 성별 등에 따라 그 색채는 무한히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 시기를 거쳐왔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버디가 벨파스트를 폭력이 난무하던 곳으로 기억할지, 정情이 넘치는 따뜻한 곳으로 기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떤 곳이었든 벨파스트가 그의 원점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사실로 남는다. 종교와 경제, 폭력과 온정이 들끓으며 뒤섞였던 1969년의 '벨파스트 출신 버디'가 자식들을 멀리 보내는 할머니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연결되기를, 그가 언젠가 다시 벨파스트로 돌아와 할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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