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eze2021-02-11 00:00:00
가버나움(Capernaum/2018/레바논, 프랑스)
무정지옥(無情地獄)
<무정지옥(無情地獄)>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북부의 도시이름이다. 예수 당시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도 있어 제법 큰 도시였다. 예수가 이곳에서 가르침과 기적을 많이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예수는 가버나움의 멸망을 예언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은 가버나움이 아니라 레바논의 빈민촌이다. 멸망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렇게까지 가난하고 피폐할 수 있을까 싶은 동네여서 '가버나움'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 같다.
빈민촌의 한 소년이 친부모를 고소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소년의 이름은 자인. 출생증명서가 없어 존재와 삶이 입증될 수 없는 어린 아이.
원고와 피고, 피고의 변호사 등이 법정에 속속 도착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법원은 취재진들로 둘러싸여 이 재판이 세간의 눈길을 끄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자인의 부모는 무지하고 무능하며 가난하다. 7-8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을 정도. 자인은 약국을 전전하며 거짓으로 약을 처방 받아 동생들과 함께 '마약주스'를 만들어 판다. 그리고 자인의 집 주인인 아사드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 그의 몸무게 보다 더 나갈 듯한 가스통을 끌차에 싣고 힘겹게 끌며 이리저리 배달하는 자인의 뒷모습은 비극 그 자체이다. 언뜻 보기에 아사드가 자인에게 친절한 것 같지만 그에게는 속셈이 있다. 자인의 어린 여동생 사하르를 탐내고 있었던 것. 이것을 이미 눈치 챈 자인은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하게 되자 동생의 앞날이 걱정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선물로 닭을 들고 자인의 집에 들른 아사드는 집세를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사하르를 요구하고 자인의 부모는 이를 수락한다. 싫다고 울며 부르짖는 사하르를 강제로 아사드에게 보내는 부모에게 격분한 자인은 가출을 하고 만다.
집과 멀리 떨어진 좀 번화한 동네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미성년인 자인에게 차례가 올 리 없다.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에티오피아 여성 이주 노동자 라힐을 만난다. 라힐에게는 젖먹이 아들 요나스가 있었다. 테마파크의 잡역부로 일하던 그녀는 짐에 숨겨 아들을 일터에 데려가 화장실에 가둬놓고 몰래 젖을 먹이며 키우고 있었다.
라힐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자인이 그녀의 판잣집에서 요나스를 돌보기로 하고 함께 지내게 되지만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가짜 체류증이 만료되어 새 체류증을 만들어 보려고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그녀는 불법체류자로 체포되고 만다.
라힐이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자 집에 있는 것들을 팔고 마약주스도 만들며 자인은 버텨보지만 집세가 밀려 쫓겨나고 보니 도무지 헤쳐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장통에서 만난 난민 소녀에게 돈이 있으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불법 체류증을 팔면서 인신매매를 하던 시장의 상인 아스프로가 집요하게 요나스에게 눈독을 들이며 감언이설로 자인을 꼬드기자 해외로 나갈 돈이 필요했고 요나스를 돌보기에 힘이 부쳤던 자인은 요나스를 아스프로에게 넘긴다.
해외로 가려면 출생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아스프로의 말에 서류를 가지러 집에 들른 자인은 동생 사히르가 너무 어린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합병증으로 죽고 말았음을 알고는 아사드를 칼로 찌르고 체포되는데 바로 그 구치소에서 라힐을 만난다. 자인의 끔찍한 삶이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었을 때 그에게 소원을 묻는 진행자에게 자인은 '내 부모를 고소하는 것'이라는 답을 하게 되어 그의 비극적인 삶이 법정에서 파헤쳐지게 된것이다.
<가버나움>은 무정한 사회에서 어린이라는 약자가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을 그린 사회고발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역할에 해당되는 일들을 실제 경험한 비전문 연기자들이라고 하며 감독 나딘 라바키는 "가버나움재단"을 세워 이 비전문 연기자들의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니 그녀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상주의자인 모양이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서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이 없으니 가난의 자리에 주저앉게 되고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로 감독은 자식이 친부모를 고소한다는 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라고 하여도 부모가 자식을 팔며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는 상황만큼 무정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자식이 열 두 살인지, 열 세 살인지도 모르는 부모.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돌봄도 받지 못해 비쩍 마른 몸으로 생계의 전선으로 내몰리는 어린 소년. 생리를 시작하게 되자마자 준비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이름아래 팔려가는 어린 소녀. 난민들에게는 구호단체의 손길이라도 미치지만 보호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국의 어린 아이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딜 수 밖에 없다는 감독의 직설적인 고발이 비현실로 다가와 죄책감이 들 정도이다.
도시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옳으냐.
앵벌이나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옳으냐.
관료주의적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옳으냐.
이러한 의문이 타인을 돕는 행위를 가로막는 질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보다 힘들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편이, 답하기 어려운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인간적이지 않을까(©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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