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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2021-07-03 21:18:39

동심이든 현실이든 하나만 해.......

웬디 리뷰

경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벤 자이틀린 감독의 <웬디>를 씨네랩의 초청 덕에 보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웬디>가 최신 기술을 앞세워서 동심의 세계를 펼칠 거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만든 <피터 팬>을 어릴 적에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다. 그러나 내 눈에 펼쳐진 것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약칭: <매드 맥스>)에서 볼 수 있을법한 황량한 네버랜드와 흑인으로 변한 피터 팬이 어떤 아이가 손이 말라가는 것을 보고 그걸 잘라버린(!)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피터 팬>에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부셔버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피터 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고 싶었는지 여전히 동심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준다.

 

<웬디> 속에서 동심을 대표하는 인물은 피터 팬(야슈야 막)이다. 이미 알고 있던 대로 네버랜드를 책임 지는 꼬마이다. 그런데 그 꼬마의 마음 속에는 네버랜드에는 동심밖에 없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네버랜드의 황량한 모습만 <매드 맥스>를 닮은 줄 알았더니, 피터 팬의 성격도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메인 빌런이자 독재자인 임모탄 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 탓에 그는 조금이라도 늙은 티가 나는 아이들은 가차없이 내쫓는다. 이들은 노인이 되어 동심을 되찾기 위해 아이들을 위협하는 적이 되고 만다. 충격이었던 것은 디즈니 버전 <피터 팬>에서 멋있는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르고, 손에 낀 갈고리를 뽐내는 후크 선장이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

 

여기서 웬디(데빈 프랑스)는 피터를 비판하는 역할을 새롭게 부여 받았다. 공교롭게도 이 점도 <매드 맥스>와 똑같다. <매드 맥스>의 주인공도 퓨리오사(샤릴리즈 테론)라는 강인한 여성이었으니. 그녀는 피터가 본색을 드러내자 노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그리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피터와 노인들의 화해를 주선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노인들이 다시 아이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건 덤이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웬디의 어릴 적 사진들이나 어른이 된 웬디가 기차에 올라탄 피터 팬을 쫓아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왜 기껏 웬디를 어른이 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사람으로 삼아놓고 여전히 동심을 잊지 못하는 캐릭터로 결론 짓는지 모르겠다.

 

<웬디>의 문제는 디즈니 버전 <피터 팬>과 다른 결을 보여준 점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재해석은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웬디>가 동심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으면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결말이 갑자기 방향을 정반대로 틀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니 화려한 CG가 만들어준 몰입도 모두 산산조각났다. <신과 함께>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부터 몰입이 안 되는데, 눈요기를 제공해줌으로써 그걸 무마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요한 설정으로 나오는 '어머니'라는 물고기는 왜 나왔는지, 왜 노인들이 '어머니'를 잡으려고 안달을 했는지 모르겠고. 영화를 봤을 때 처음 느낌은 좋았지만 그 경험을 곱씹을 수록 아쉬움만 남게 되는 영화였다.

작성자 . 박지수

출처 . https://brunch.co.kr/@komestan/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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