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ofilm2021-07-14 15:20:58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2021)
노인이 되어 되돌아본 삶과 회한
* 이 리뷰는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정보
감독: 오키타 슈이치 (요노스케 이야기, 모리의 정원)
출연: 다나카 유코, 아오이 유우, 히가시데 마사히로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38분
국가: 일본
노인에 찾아온 홀로 라이프, 자유를 통해 되돌아본 나의 과거
일흔 다섯의 노인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남편 "슈조(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먼저 떠나보낸 후,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도서관과 병원을 순회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삶은 특별함이나 흥미로울 것이 전혀 없다. 모모코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는데, 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고 딸도 함께 살고 있지 않아 그녀는 줄곧 혼자다. 그래서인지 영화 초반의 모모코는 어딘가 아프고 우울해 보인다.
말년에 혼자가 된 사람들의 외로움을 반영하듯 모모코의 혼잣말, 또다른 자아를 의미하는 듯한 세 남자의 환영이 등장한다. 이들과 모모코의 대화는 곧 내적 대화를 의미하며 그녀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이들이 나타난다. 모모코는 정략결혼을 피해 고향에서 도시로 도망온 자신의 과거부터 남편과의 연애, 결혼 생활 등을 떠올리며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다시 마주한 지금, 그녀는 자신의 뜻대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 의식의 흐름에 따른 회상의 연속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70대의 모모코 역할을 연기한 '다나카 유코'와 20대 시절을 연기한 '아오이 유우'가 교차되어 등장한다. 과거 회상 장면들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기 보다는 무작위로 떠오르는 모모코의 기억이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가기 때문에 전개 방식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대의 모모코는 정략 결혼을 뿌리치고 가족과 고향을 버려둔 채 무작정 짐을 싸서 도쿄로 떠났다.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분명 신여성적인 행동이었고 그녀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꿈꾸며 일자리를 구하고 주도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게 하는 슈조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버렸고 결국 자신의 꿈을 뒤로한 채 사랑을 택한다.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결국 평생을 주부로 살았고, 남편이 죽은 후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인생이 마냥 행복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오이 유우'와 '다나카 유코'는 주체적인 성향의 모모코와 수동적인 현실 삶에 무력화 된 노년의 모모코를 대비토록 하며 모모코가 걸어왔을 세월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젊은 시절의 모모코가 굉장히 밝고 적극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과거의 퍼스널리티를 잃은 현재의 모모코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긴 러닝타임 속 다소 지루한 전개
본작은 취향을 강하게 탈 만한 영화다. 일본 영화 특유의 오글거림과 유치한 감성이 깃들어 있으며 전개 속도도 굉장히 느리고 시종일관 잔잔하다. 특히나 모모코의 머릿 속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어린 장면들은 일본식 B급 코미디의 성격이 강한데, 해당 시퀀스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다. 평이한 전개 속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 위해 가미된 장면들이었을 테지만 적어도 내겐 작위적이고 재미도 없었다.
70대 노인이 자신이 여태껏 살아온 흔적들을 돌아보고, 외로움을 견뎌내 가는 과정은 작품의 느린 전개를 동반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지루해질 수 있는데, 2시간 2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인해 따분함은 배로 늘어난다. 시퀀스 하나하나가 길게 늘어지고 불필요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굳이 러닝타임을 이렇게까지 길게 설정해야 했는지 의문점이 생겼다. 전개가 늘어지기 때문에 감동이나 여운을 느낄만한 스토리가 있더라도 감성에 젖어들기가 쉽지 않다.
고령화+1인 라이프 시대, 당면한 미래의 모습들
영화 줄거리 자체에 대해서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영화 전반에 걸쳐 흩뿌려진 일본식 감성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주인공 모모코가 처한 삶의 모습은 고령화 시대로 향하고 있는 현 사회의 양상과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은 물론, 현재의 젊은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삶을 맛보기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유발한다. 실제로 1인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노년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모모코와 같이 외로움과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물론 모모코처럼 가족과의 시간을 오래 보낸 후에 혼자가 된 것이 아닌 젊은 시절부터 1인 라이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노인이 됐을 때의 우울감이 적을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과 나이 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극 후반부에 새로운 결심이라도 한듯 취미를 찾아가고 삶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모모코의 모습은 고령화 시대 속 그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를 자극한다. 물론, 현재의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변화를 위한 의지를 발휘할 힘이 남아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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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의 사랑’을 ‘보편의 사랑’이라 말하지 말 것
7★/10★
울리히 슈미트가 쓴《동물들의 비밀신호》에는 ‘코끼리 떨림’이라는 말이 나온다. 코끼리를 사냥하기 전, 사냥꾼들의 몸이 덜덜 떨리는 현상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코끼리를 향한 공포, 경외, 정복욕 등을 포괄하는 신비한 경험을 일컫는 단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코끼리 떨림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동물학자들은 코끼리가 우거진 수풀을 거뜬히 통과하는 강력한 음파로 최대 10킬로미터 떨어진 무리와도 소통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코끼리가 뿜어내는 음파가 인간의 가청한계에 미치지 못하는 13~24헤르츠였기에 코끼리 사냥꾼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떨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캐롤〉을 다시 보며 《동물들의 비밀신호》가 떠오른 이유가 있다. 〈캐롤〉은 이성애가 규범인 세상에서 위태로운 사랑을 이어가는 두 여성 퀴어의 이야기다. 퀴어와 동물은 남들이 모르는 자신들만의 소통 방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코끼리 떨림은 코끼리들의 정교한 의사소통이지만 이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인간에게는 공포심을 남긴다. 퀴어도 마찬가지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가능한 조심스레 진행되는 퀴어들의 정교한 의사소통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남긴다. 두 공포심 모두 코끼리의 언어와 퀴어의 정교하고도 비밀스러운 의사소통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능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와 퀴어를 비난한다. 왜 자신에게 불쾌한 공포감을 심어주느냐는 불만이다. 이들의 선택지에 타자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없다. 그들이 가장 힘 있는 존재이고, 모두가 그들의 말을 알아서 해석해주기에 타자의 언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캐롤〉을 비롯한 웰메이드 퀴어 영화가 곧잘 마주하는 평이 있다. ‘퀴어의 사랑은 외피일 뿐, 이 영화는 보편의 사랑을 말한다’라는 평 말이다. 이런 유의 평가는 종종 ‘이 영화는 퀴어 영화가 아니다’라는 말로도 이어진다. 분명 ‘칭찬’이다. '특수한 소재'를 잘 파고들어 '보편적 메시지'를 전했다는 긍정적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특정 소재에 천착한 영화가 ‘보편적 울림’을 준다고 느껴 감동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늘 세심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특수’한 자들이 보내는 ‘비밀신호’가 제대로 독해되기도 전에 ‘보편’을 운운하면 의도와 상관없이 보편이 특수를 삼켜버리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캐롤〉이 개봉했을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레즈비언 로맨스라는 소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두 주인공이 나누는 사랑 자체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감상하자는 유의 주장이었다. 퀴어가 주변부에 자리하는 사회에서 이런 주장은 대개 영화의 퀴어적 성격을 재빠르게 삭제하는 효과를 야기한다. 레즈비언 로맨스여야만 가능한 장면과 감정이 있는데 이를 깊이 있게 해석하는 대신 ‘위대한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캐롤〉을 다시 보며 두 주인공 캐롤과 테레즈가 퀴어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주목했다. 쇼핑할 때면 긴장하는 귀부인 캐롤(쇼핑하며 긴장하는 귀부인이라니 얼마나 ‘이상’한가!), 책을 ‘과하게’ 많이 보는 테레즈, 결혼한 여성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누군가의 ‘처’라고 부르는 걸 견디지 못하는/본인이 좋다는데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게 뭐가 어떠냐는 캐롤(이 말이 얼마나 당대 윤리 규범에 비추어 얼마나 ‘이상’한지 생각해보라!), 벨리벳이라는 체코풍의 ‘특이한’ 성을 쓰는 테레즈와 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 캐롤, ‘당신은 못할 짓이 없는 여자야’라는 캐롤 남편의 말(즉 캐롤이 ‘위험한’ 여자라는 말), 이성애 가족의 가치를 행복하게 묘사하는 라디오를 꺼버리는 캐롤, 레코드숍에서 캐롤을 위한 선물을 고르는 테레즈를 노골적으로 응시하는 레즈비언 커플, 린치 당한 후 나무에 매달린 흑인을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이라고 은유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앨범을 캐롤에게 선물하는 테레즈……. 요컨대 (위험하지만 우아하고, 도전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캐롤과 (레즈비언 이미지로서의 캐롤을 흑인 인권운동의 연장선에 위치시키려는) 선물이 있다. 이외에도 테레즈와 캐롤이 ‘이상하고 특이한’ 존재, 즉 퀴어임을 보이는 설정과 장면은 영화에 무수히 많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캐롤과 테레즈는 서로에게 사랑에 빠진다.
여행을 떠난 둘이 길고 긴 탐색전 끝에 마침내 섹스하는 장면을 보자. 이들이 이성애 커플이었다면 섹스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다(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침대로 달려가는 영화 속 수많은 이성애 커플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둘은 그럴 수 없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성애적 암시를 가졌는지를 신중히 살펴야 한다. 혹시라도 오해해서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다. 이들의 베드신이 아름다운 건 이 때문이다. 그토록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탐색전 끝에야 마침내 서로가 같은 욕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애타는 감동이 둘의 베드신에서 전해지는 것이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테레즈가 캐롤의 모습을 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이성애자로 살았던 테레즈는 레즈비언 로맨스 덕에 알게 된 새로운 세계의 미학적 상징으로서 캐롤의 아름다움에 몰두하며 그녀를 촬영한다. 즉 테레즈에게 캐롤의 사진을 찍는 일은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하는 욕망인 동시에 여태 알지 못한 미학을 적극적으로 탐닉하는 레즈비언 신참자의 열정이기도 하다.
〈캐롤〉을 레즈비언 선배가 신참자를 못살게 구는 영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 풍부한 레즈비언 로맨스 경험, 재력, 연륜을 갖춘 캐롤은 이제 막 레즈비언 로맨스에 눈을 뜬 테레즈에게 여행을 제안하고, 사랑을 나눈 후, 자신의 사정 때문에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테레즈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레즈비언인 캐롤이 이성애 결혼 제도 안에서 양육권과 이혼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낸 건 사실이지만, 그녀가 자기 마음대로 테레즈에게 접근했다 버리는 등 멋대로 구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해석을 위해서는 레즈비언 로맨스의 신참과 고참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 격차에 대한 이해와 이성애 규범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레즈비언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이런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관계의 복잡한 맥락을 뭉뚱그려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캐롤〉에는 두 주인공이 레즈비언이었기에 가능한 여러 복잡한 감정선들이 나온다. 〈캐롤〉을 비롯한 웰메이드 퀴어 영화를 ‘보편적 사랑’에 관한 영화라 상찬하기 전에, 왜 이들 영화가 퀴어의 사랑에 천착했는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주변부로 밀려난 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류와는 다른 아름다운 관계의 문법을 창조해낸다. 이러한 권력관계에 대한 인식 없는 퀴어 로맨스 상찬은 퀴어를 계속 주변부에 두겠다는 무의식의 표현에 불과하다. 퀴어 영화를 ‘퀴어’하게 보자. ‘보편적 사랑’ 운운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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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엄마는 엄마가 아니잖아
벌써 20년이 넘도록 은퇴를 번복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마 그의 최고 문제작이 될 듯하다. 난해하다는 평가부터, 최고라는 극찬까지 사람들의 해석도 제각각이다. 심지어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시사회에서 "나도 무슨 얘긴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언급을 했다. 그만큼 이 애니메이션은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숨겨진 뜻을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애니메이션처럼 동화를 보는 기분으로 따라가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세계물일 뿐이다. 그래도 역시, 이야기는 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싶어 지는 것들 투성이다. 특히 가장 중심인물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스튜디오지브리, 나아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상징하는 이야기들로 꽉 차있고 그 안에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장부였지만 결핵으로 평생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어머니와,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대부분 애니메이션에는 그래서 마더 콤플렉스, 강인한 여성상, 20세기 초 전투기에 대한 로망 등이 가득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 마히토는 엄마가 있던 병원이 불타 엄마가 돌아가시고, 도쿄대공습을 피해 시골 공장 근처로 이사 간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곳에서 몇 년을 보내는 도중, 집 근처 신비한 탑과 집 근처에 사는 왜가리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렇게 도쿄대공습을 피해 공장 근처 시골집으로 이사 가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시골집으로 가서 이상한 세계로 가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실제 어머니는 병원이 불타 일찍 돌아가시진 않았고 오래 사셨다.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드는 아버지가 그대로 나오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마을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애니메이션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최대한 전쟁에 대한 언급이나 일본의 피해를 강조하진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자해를 했는데도 다른 아이들이 그랬을 거라 철석같이 믿는 아빠가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가져와 집안에 늘어놓는 비행기의 유리덮개들은 줄지어있는 유리관 같은 모습이다. 이렇듯 자국민들도 죽음으로 내몬 전쟁의 실체를 은근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로 종종 일본의 제국주의가 타국에 남긴 상처를 비판했고, 군수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전쟁부역자라 부르며 싸우기도 했다.
스승과 친구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시대적 상황이 상황인지라 드러나는 정도일 뿐이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승이었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인 스즈키 토시오에 대한 이야기다. 스즈키 토시오가 개봉 전 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본인이다. 자신과 했던 대화들이 그대로 애니메이션에 녹아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는 애증의 관계다.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의 기자였던 스즈키 토시오가 미야자키 하야오 특집기사를 내려고 찾아갔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시하며 문전박대한 일은 유명하다. 마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끈질기게 마히토를 찾아오는 왜가리와 흡사하다. 왜가리가 이상한 유언비어를 떠들고 다녀서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비슷하다.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 만든 <게드전기> 홍보를 할 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로 홍보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분노한 적이 있다. 여러 루머와 안 좋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스즈키 토시오가 지브리 초창기 작품들을 히트시킨 프로듀서임에는 분명하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걸 알고 애니메이션 속 마히토와 왜가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자기 길을 가려는 감독'과, '감독을 속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이용해먹기도 하는 프로듀서'의 밀당이 느껴진다.
또 애니메이션 속 큰할아버지는 타카하타 이사오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토에이 동화'입사 선배로,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적인 내러티브와 훌륭한 미장센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으로는 <반딧불이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 군>,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내러티브가 잘 잡힌 미야자키 하야오의 20세기 작품들은 전부 타카하타 이사오가 조언을 하거나 참여한 작품이다. 그만큼 그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와 구성 미장센 등의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령공주>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오로지 자기 멋대로 내달리는 작가주의적 작품이 되는 건 그래서다. 이것을 알고 애니메이션 속 큰할아버지의 대사나 행동을 잘 살펴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를 얼마나 존경했었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 도중 사망했다.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탑 안의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키리코는 그의 그림스승이었던 천재 작화감독 오오츠카 야스오일 것 같다.(지브리의 채색 담당인 야스다 미치요라는 이야기도 있다) 키리코는 불꽃이 나오는 막대기로 선을 그리며, 그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오오츠카 야스오도 단순한 그림 스승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험난한 애니메이터 인생을 이끌어준 선배이기도 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숲으로 들어가 사라진 마히토의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마히토는 탑으로 들어간다. 불에 타 죽은 마히토의 엄마가 살아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왜가리를 따라서. 그 탑은 원래 우주에서 떨어진 물건으로, 아주 이상한 것이라고 한다. 큰 할아버지는 그 밖에다 건물을 만든 것이라고. 탑의 속 안으로 빨려 들어간 마히토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이한 일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젊은 시절의 엄마와 하녀 키리코도 만난다. 탑 속의 세상 역시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이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스즈키 토시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인연을 담고 있는 만큼 이 세계가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마주하는 황금문에는 '나를 배운 자는 죽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거대한 무덤이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는 상업미술 업계 중에서도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같은 사람을 수없이 반복해서 그려야 하는 일,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관객에게 이해시키도록 변형해서 멋있게 만드는 일, 내 그림이 아닌 그림을 수천 장씩 그려야 하는 고통,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중노동이다. 심지어 박봉. 나 역시 디자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므로 그 고통을 어느 정도는 안다.
내가 대학생 때, 같이 날밤새며 과제를 해 추레한 모습으로 과실을 나서는데 원서를 내러 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난 친구들과 이렇게 소리쳤다. "여긴 지옥이야! 도망가려면 지금이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황금문의 문구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어리둥절하는 마히토는 펠리컨들에게 떠밀려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가지고 온 유일한 무기인 활은 다 망가져버렸다. 그래, 그렇게 멋모르고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되는 거야. 게다가 그 망가진 활처럼, 네가 기존에 배운 건 다 쓸모없거든. 다시 배워. 애니메이션을 배운다고? 넌 이제 죽었다.
젊은 키리코는 '와라와라'라고 하는 생명을 돌보고 있다. 이 세계에서 그가 하는 일은 무덤을 지키는 것과, 와라와라에게 먹을 것을 팔아 그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돕는 일이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게 생명을 주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반복된 그림 몇 장을 그렸을 뿐인데, 그 그림은 살아서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스승인 오오츠카 야스오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진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다. 비록 그 일을 배운 너는 죽겠지만. 응.
그러나 이 세계에도 위험한 존재가 있다. 펠리컨들과 앵무새들이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먹어치우는데 몰두한다. 펠리컨은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생명인 와라와라를 먹어치운다. 앵무새들은 뜨거운 숨을 훅훅거리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펠리컨은 갈라파고스화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상징한다. 후대 양성의 실패, 보수적인 정치환경, 국내 내수만으로도 돌아가는 경제, 오타쿠 문화의 확산 등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침체되게 만들었다. 와라와라처럼 생명력 있는 애니가 태어나는 것을 갉아먹는다. 80~90년대만 해도 정말 독창적이고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예전 황금기 같은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다. 또한 제살을 깎아먹는 업계는 스튜디오 지브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수많은 재능 있는 애니메이터를 키워냈지만, 정작 모회사나 제작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만 감독으로 원하기 때문에 제자들이 감독으로 데뷔할 기회를 주지 못했다.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는 늙고 죽어가고 있다.
앵무새는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존재다. 큰 덩치에 식욕에 침잠되어 훅훅거리는 모양새. 앵무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토록 혐오하던 오타쿠들과 흡사하다. 앵무새들은 '애니메이션을 배운자'즉 애니메이터들을 먹이로 삼는다. 그들의 삶을 갈아 만든 모에화, 먹잇감에만 관심이 있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업계가 똑같은 성적 모에화 대상물만 만들게 한다. 그리고 오타쿠는 대체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만든 것에 열광하고 남이 만든 걸 보고 만드는 2차 창작(팬픽)에 열광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타쿠를 치가 떨리도록 싫어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
하지만 이런 위태위태한 세상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균형을 맞추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큰 할아버지, 타카하타 이사오다. 돌들을 깎아 만든 블럭을 아주 세밀하게 쌓아 만든 균형. 타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은 그런 느낌이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그 블럭을 물려주고, 이 세계, 애니메이션의 균형을 지키게 하고 싶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멘토로 참여했던 작품들은 망상이나 상상보다는 현실적인 내러티브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잉꼬대왕, 오타쿠들의 대왕은 성격이 급해서 그 유산이 전달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결국 블럭을 쪼개버리고, 큰할아버지가 유지하던 세상은 무너져버린다.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한 유산은 사라져 버린다. 스튜디오 지브리도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물려받지 못해, 지난 9월 닛폰 테레비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사람들은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하지만, 둘은 연출방향 자체가 다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참여하지 않은 후기작들이 급격히 망상적인 작가주의적 애니메이션으로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타카하타 이사오가 물려주려고 한 것들을 다 물려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큰 할아버지가 물려주려고 한 블럭들 중, 그 난리통에 한 개만 겨우 가지고 나왔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전 세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지 못한 불완전한 세계였던 셈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제 자신의 친구와 스승들이 죽어가고 자신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마땅한 자신의 후계자가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 지브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자신의 블럭을 펠리컨과 앵무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팬들은 또 다음 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느꼈던 생명과 감동을 느껴야 할까. 이것에 대한 답은 바로 새엄마 나츠코와의 일화가 말해준다. 마히토는 엄마가 죽고, 엄마의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새엄마로 들어온 나츠코와 데면데면하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새엄마를 엄마로 인정하고 엄마라고 부르는 일은 쉽지 않다. 마히토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츠코는 이미 아버지의 아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나츠코가 숲 속 탑 안으로 들어가 산실에 들어가 힘들어하고 있는 장면은, 아직 관객들에게 '진정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래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만든 첫 작품 <게드전기>는 엄청난 혹평속에 팬들은 그 작품을 인정조차 하기 싫어한다. 게다가 최근 고로의 작품은 3D 애니메이션이었다.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선 정말 파격적인 행보인 셈이다.
위에서 말한 애니메이션 업계의 펠리컨들, 여러 사정으로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은 아버지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미야자키 고로밖에 없게 되었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사망한 지금 앞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마저 사망하게 된다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으로 나올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고로가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행보를 보니 3D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그것을 지브리의 팬들이 받아줄 것인가? 고로의 애니메이션을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라 인정할 것인가? 엄마가 죽어서 갑작스레 새엄마가 된 나츠코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죽은 엄마를 살릴 수는 없다. 죽음은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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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새엄마를 받아들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고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흉내 내는'것을 싫어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격을 존중한다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도 역시 이전 세대의 유산을 다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온전하게 애니메이션 세상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좋든 싫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떠나게 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세상, 그대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자, 그대들이여.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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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나오는 리뷰들을 보니, 충격적 이게도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 미화로 알려지는 것 같다. 일단, 지브리의 타카하타 이사오는 일본 공산당 출신으로 제국주의 비판하는데 앞장서는 인물이다. <반딧불의의 묘>도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내용을 보면 일본의 제국이 '자국민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비판하는 이야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공산당원은 아니지만, 공산당지에 만화를 연재한 경력이나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일본의 좌파는 자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지브리의 두 거장이 그런 성향이니 지브리 전체는 사실 말할 것도 없다. 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역시 도쿄대공습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거나 무서운 모습보다는 병원이 불타는 모습이 보일 뿐이고, 도쿄대공습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전쟁에 대한 피해나 반성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냥 반전영화가 되어버리므로, 그걸 최대한 피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에 집중한 것이다. 다음 장면은 그것을 더 잘 드러낸다.
마히토가 이사 간 시골 학교의 아이들과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가 죽을뻔했다는 피해를 강조하기 위해 돌로 자기를 쳐서 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한 게 아니라 넘어져서 그랬다고 하지만, 군수공장을 하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그랬을 거라며 범인을 찾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장면은, 도쿄대공습이나 원폭이 일본의 자해와도 같은 원죄이며 제국이 그것을 남탓하고 있고,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변명하지 않는 일본국민을 비유하는 장면이다. 마히토는 아니라곤 하지만 거기서 더 강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마히토는 상처를 스스로 냈다고 큰할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이런 지브리가 제국주의 미화라니, 그건 좀 억측이라 생각한다. 전작 <바람이 분다>도 일본 내부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것에 전쟁미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오히려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전쟁무기 광인 자신을 비판한 내용이다.
진짜 제국주의 미화는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을 은근하게 깔고 있는 <크리에이터>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슈도 안되었던 점이 사실 더 의아하다.
*키리코 캐릭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오오츠카 야스오이길 바랬으나, 이전 스즈키 토시오의 언급에 의하면 지브리 채색 담당이었던 야스다 미치오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우'라고 부르기도 했던 야스다 미치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바람이 분다>까지 거의 모든 지브리의 작품에 채색을 담당해왔었다. 사실 오오츠카 야스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스승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맞으나, 지브리가 만들어질 때 합류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이 일하면 몸이 너무 힘들어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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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연말 시상식이 기대되는 배우
"미생이네요"
임시완 배우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현대인의 삶을 담아낸 화제의 드라마 [미생]에서 직장이라는 낯선 공간에 홀로 내던져진 사회초년생 '장그래'역을 맡으며 첫 주연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며 단숨에 20대 대표 배우로 떠올랐는데요.
이후,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변호인>과 칸 영화제 초청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며 다양한 장르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입니다.
그런 그가, 2022년엔 더 바쁜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현재 촬영중에 있는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드라마 [트레이서]가 곧 공개되며, 3개의 영화가 크랭크업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2022년 연말 시상식에서 좋은 소식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개봉을 기다리는 임시완 배우의 출연작은 어떤 작품일지 지금부터 같이 알아볼까요?
잇츠 CINE PICK!!
비상선언 (Emergency Declaration)
드라마 | 한국 | 141분
감독 : 한재림 | 출연 :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촬영 기간 : 2020.05.31 ~ 2020.10.24
개봉 : 2022.01 예정
베테랑 형사 인호(송강호)는 비행기 테러 공격에 대한 어떤 남자의 제보를 받고 조사하던 중,
용의자가 KI501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행기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재혁(이병헌)은 딸의 건강을 위해 하와이에 가기로 결심한다.
공항에서 주위를 서성거리는, 위협적인 말투의 수상한 남자 때문에 정신이 없다.
KI501기는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하와이로 향하지만, 곧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고
이에 공포와 혼란의 상황은 기내 뿐만 아니라 지상에도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국토교통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이 소식을 듣고 대테러 대책본부를 꾸려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KI501기의 착륙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씨네 pick : 대한민국 대배우 총집합 영화로 제작 이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250억 대작입니다. 필승 소재 '재난'이지만 항공기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색다른 매력을 보일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우아한 세계>부터 <관상>까지 송강호 배우와 함께해온 한재림 감독의 장편 영화로, 2021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며 기대감을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임시완 배우는 홀로 비행기에 오른 승객 '진석'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고 하는데요. 코로나19의 여파로 개봉이 미뤄지던 대작이기에 다음 달 개봉이 기다려집니다.
보스턴 1947 (Boston 1947)
드라마 | 한국
감독 : 강제규 | 출연 : 하정우, 배성우, 임시완
촬영 기간 : 2019.09.09 ~ 2020.01
개봉 : 2022 예정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열린 국제 마라톤 대회인
1947년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이야기.
씨네 pick :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강제규' 감독의 연출작으로 일찌감치 큰 기대를 모은 작품입니다. 1947년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던 인물들을 다룬 영화로, 하정우 배우가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를, 배성우 배우가 1936 베를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선수를 그려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임시완 배우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거머쥔 '서윤복' 선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Stolen Identity)
사진제공 : CJENM
스릴러 | 한국
감독 : 김태준 | 출연 : 천우희, 임시완, 김희원
촬영 기간 : 2021.03 ~ 2021.06.27
개봉 : 2022 예정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분실한 뒤
일상 전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며 발생하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현실 밀착 스릴러.
씨네 pick : 시가 아키라의 소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원작으로 한 스릴러 영화로, 일본에서도 이미 한 차례 영화화되었을 정도로 짜임새 좋은 작품이기에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후 일상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직장인 '나미' 역을 맡았고, 김희원 배우는 이를 추적해가는 형사 '지만' 역을 맡았는데요. 임시완 배우는 휴대폰을 분실한 나미와 우연히 얽히게 된 휴대폰 수리기사 '준영' 역을 맡아 신선함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청춘의 모습을 연기해온 임시완 배우는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트레이서>에서 실력은 물론 남다른 뻔뻔함과 똘끼로 국세청을 발칵 뒤집는 조세 5국 팀장 '황동주' 역을 맡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사이다 같은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2022년 더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반전 매력을 선보일 임시완 배우의 활약을 기다리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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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디어 조이, 디어 재클린
편지로 영화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만, 당신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명명해 주었듯이.
우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감히 추측해보자면 수상이 당신들의 일과에 큰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이는 여전히 매일 세이블 섬의 해안에서 죽은 새를, 말똥을, 쓰레기를, 물범을 살피겠죠. 재클린 당신도 어디선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끌어내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며 작업을 계속할 같습니다. 우리 셋(이라고 묶어도 된다면) 중 이런 소식에 연연하는 사람은 저뿐일 것 같네요. 이 영화와 가장 무관한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이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무작정 주장해 봅니다. 아무튼 기뻐요. 결과를 예상하고 예매한 건 아니었지만요. 뭐가 경쟁 부문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저의 일정과 영화에 붙은 짧은 소개글만을 보면서 영화를 고르거든요. 참고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들의 영화는 한국어로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의 외딴곳, 세이블 섬에 두 여성이 있다. 환경 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는 1970년대에 처음 이 섬에 당도했을 때 미술학도였다. 조이가 이 가느다란 땅에서 지낸 세월은 벌써 수십 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다."
"70년대 미술을 공부하던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 세이블 섬을 방문하고, 이후 그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섬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카메라는 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배회하는 야생마들을 비춘다. <고독의 지리학>은 감독과 그의 관찰 대상인 루커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을 내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해 장인 못지않은 헌신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면서 기쁨을 찾는 두 여성의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이런 삶이 외로움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문성경]"
노바스코샤는 제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의 출생지예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은 그가 자란 곳이고, 부모님이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기 앤은 노바스코샤에 있었죠. 게다가 야생마라니. 저로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말과 책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사랑스러운 십대 시절의 그를.
내 어딘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를 불안해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며, 꿈이 많았던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앤과 조 마치를 그려봅니다.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 여성"의 삶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깝게 느껴요. 그래서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끌렸고, 이어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당신은 왜 그 섬에서, 왜 그 연구를 할까? 당신은 왜 거기서 그 모습을 촬영했을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언제부턴가 "이제 어디로 가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길 중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요. 정답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건 처음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생을 톺아보다 문득, 지금이 나의 최전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동안 매일 마찬가지였는데 참 새삼스럽지요.
삶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익숙하지요? 거긴 어떤지 몰라도 여긴 나이에 따라 할 일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부터, 내 선택을 행복과 성공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솔직히 저는 스스로가 아주 이상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범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인생 전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던 제 자신이 불안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요.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밑그림을 잡아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종종 입에 오르고, 주변에서는 결혼 계획을 묻습니다. 질문이 늘어갈수록 가볍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 없이 취미에 몰두하는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른들이 인생의 지혜로 하는 말들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불안과 질문이 삶의 전방위로 거미줄처럼 뻗어갑니다.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내가 한 선택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멋대로 기대해서 미안합니다만, 영화 속에 확신에 찬 당신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는 질문들 앞에 이 영화를 방패처럼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들어선 영화관에서,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파도가 깨진 자리에 빛이 튀기고, 바람이 풀밭을 쓸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전에 좀 보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 볼 수 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별빛에 노출시키고 해초로 현상한 필름. 말똥에 묻었다가 들풀로 현상한 필름.
작업하면서 둘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애정의 시간. 동시에 단조롭고 이따금 지치는 노동의 시간. 생이란 본디 그런 것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용한 것들이 정말 무용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에 자꾸 "왜?"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말똥 속 벌레를 왜 잡아서 보는 거지? 물범이 새끼를 뱄는지 왜 살피지? 그걸 어디다 쓰지?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나는 그걸 왜 묻지?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구난방의 삶을 어떻게든 그럴듯해 보이도록, 멋진 일직선의 설계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매 순간 저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해도 되나? 왜 하려는 거지? 대신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의 작업물에는 "왜"가 없었습니다. 단지 앎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기반으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자잘한 선택들이요.
미대생이었던 조이 당신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그저 이 섬이 좋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오늘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중첩되었을 뿐.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3년용 프로젝트로 지은 집이 20년을 버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꾸기도 하죠. 그러니 저는 예상할 수 없는 이 삶의 여정 각 단계를 설계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오래 바라봐도 지치지 않을 방향이 어디인가, 조용히 묻고 답을 찾으면 그만이었던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재클린 당신은 또 어떤가요. 나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누가 개미의, 달팽이의, 딱정벌레의 음악을 전달해 주겠어요.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죠. 요즘 케이팝은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곡을 믹스해 내기도 한대요. 그러다 보니 같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딱 케이팝이 복잡해진 만큼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이런 단어까지도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포모"로 살아왔네요.
재클린, 당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이 포모가 아니었음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일단 해보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가장 고유한 음악을 (저작권료 지불도 없이!)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음악의 역사에 정통할 필요도, 지식을 섭렵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결국 세상이 뭐라든, 뭐가 어떻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더 손쉽고 덜 외로운 해답이 뿅 나와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깊은 생각 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고. 당장은 에둘러 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고. 굵직한 일 없어도 단지 계속하는 게 얼마나 강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개 연구 모임에 취사 담당으로 자원해 세이블 섬을 다시 밟았던 조이, 당신이 지금 거기 남은 유일한 사람이듯이.
그 섬을 집이라 부르기까지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도 물론 많음을 인정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그걸 인정하는 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 끝에,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는 거겠죠.
저는 이제 저에게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걸 해서 뭐에 쓸 거냐는, 생산성의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무실의 일에서처럼 전체를 가늠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 인생을 대상으로도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지 바라볼 겁니다. 풀숲에 앉아서, 풀잎과 바람 속에서 녹색 바다를 보는 눈이 있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오늘의 쓰레기를 줍고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조이 당신처럼 장미와 향나무 냄새를 느끼겠지요. 그거면 돼요.
재클린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사랑으로 한 일a lavour of love"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첩첩 쌓이다 보면 상당한 무게가 생기고, 무게가 생긴 것들이 어디로 기우는지 보면 되겠죠. 놓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겁니다. 방목되다가 잊힌, 연안의 섬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은 멋졌으니까. 제 삶에 그런 말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끝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들의 세이블 섬처럼. 직접 만든 드림캐처와 엽서가 가득 붙어 있는, 그 멋진 책상 위처럼. "일단 해본" 그 모든 아름다운 필름 위처럼.
거기서 다시 만날게요. 고독의 지리학도들에게 소실점은 그곳일 테니까.
전주국제영화제 정보
▶ 아쉽지만 이번 영화제의 모든 상영이 끝났어요.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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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진짜 그렇게 별로였어?
그가 돌아왔다! 최동훈 감독이 돌아왔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을 내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냈으며 홍상수 감독이 <소설가의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내고 나서야 그가 신작을 발표했다. 제목은 <외계+인>. 우리나라 충무로의 슈퍼스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려 김태리, 류준열, 김우빈이다! 최근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호평을 받았던 두 배우와 류준열이라는 스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감독이 최동훈인데 믿고 보는 배우 세명이 등장했다. 이거 실패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영 시원찮다. 시사회 평부터 관객 평까지 안 좋은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이를 증명하듯 관객수도 200만 명이 안 된다. 손익분기가 700만 명인데 관객수가 200만이다. 또 다음 주에 <한산 : 용의 출현>부터 조던 필 감독의 <놉>까지 기대작이 주마다 한 번 있기 때문에 여기서 터트려야 관객을 더 모을 수 있다. 그런데 영 답답한 흥행성적은 아쉽기만 하다. 나는 이 영화가 좀 아쉽다. 근데 이 정도면 여름 한국영화 대작 상영회의 좋은 스타트를 끊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기대했던 신작이 지금 극장에 걸려있다. 1380년의 고려와 2022년의 대한민국으로 날아간다. <외계+인>이다.
두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가드는 일을 하고 있다. 가드가 하는 일은 탈옥한 외계인을 잡아 포획하는 것. 고려시대의 어느 시기로 돌아간 가드. 도착하니 한 여자의 몸이 부유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같은 여자. 이미 죽은 여자를 뒤로 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썬더가 가드를 멈춰 세운다. 아이 한 명이 저기서 울고 있다는 썬더. 아이를 해치려는 불량배들을 손쉽게 때려잡고 다시 현재로 돌아간다.
어느덧 현재. 아이는 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깔끔한 슈트를 입고 아버지처럼 교장실에 앉아있는 가드. 딸이 경찰에게 아버지를 신고했던 것 같다. 뇌를 자극해 실험 개체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폭로한 것 같다. 황당할만한 이야기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다. 로봇이라 그런가? 아무렇지도 않게 썬더에게 영상 삭제를 주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 가드에게 누군가가 말을 간다. 아마 같은 학부형인 것 같다. 누가 봐도 가드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할 일이 또 생겼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차를 탄다. 썬더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외계행성이 침입해 인간의 몸에 침투하려는 일을 계획하는 것 같다. 모든 인간들을 서서히 포박시켜 일을 벌이는 외계인. 그런데, 가드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일어났다.
시점은 과거로 돌아간다. 도사 무륵은 동네 주막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냥 조용히 도술만 부리고 사는 게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도술을 뽐내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무륵. 무륵은 현상금 사냥꾼이다. 어느 날 현상금이 꽤 달려있는 여인과 신검이라는 무기를 보게 된다. 엥? 이 정도나 해? 개똥이를 찾아가 신검에 대해 묻는 무륵. 신검은 개성에 있는 현감 도사에게 있었고 이를 찾기 위해 수도에 도착한다. 그렇게 만난 현감의 집에서 21세기의 수트를 입은 남자를 찾은 무륵. 저 놈 뭐지? 금세 남자는 현감을 살해하고 신검을 찾아 도주한다. 무륵을 어렵지 않게 제압한 현감 도사이기에 무륵 일행은 놀란다. 그렇게 신검을 찾는 모험을 떠나는 무륵. 여행을 지속하면 할수록 이상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7년 만에 돌아오다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영화 만들기로는 서러운 최동훈 감독이다. 타짜>부터 <도둑들>까지 캐릭터 설정과 서스펜스 만들기로는 둘째 가기론 서럽다. 이 감독 손 아래에서 만들어진 밈도 굉장히 많다. 오래전 밈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부터 비교적 최근 것인 ‘묻고 따블로 가!’까지 섹시한 대사 작문법이라고는 우리나라 최고다. 또 캐릭터 간 갈등 구성을 잘 만들었다. <도둑들>에서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짜인 갈등이나 <도둑들>에서 나온 친일파 처단 서사는 흥미롭다. 친일파 처단 서사는 안성탕면 같은 느낌이다. 사실 너무 많이 나온 이야기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제의 만행에 분노했던 적이 한번쯤 있기 때문에 알면서도 시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이유는 당연히 감독의 연출 능력 때문 아니겠어? 염석진 캐릭터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는 건 이 인물이 무작정 악하다는 식의 묘사가 아닌 인간적으로 나쁜 내면을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는 맛’을 맛깔라게 살린 후반부의 ‘그리 될 줄 몰랐으니까!’와 함께 시너지를 낸다.
또 기존 배우들의 다른 면모를 뽑아내는 시각 역시 최동훈 감독의 특장점이다. 이정재 배우가 <암살>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상한가를 제대로 치고 있었다. <관상>에서 수양대군을 맡아 악한 캐릭터도 잘 소화했고, <도둑들>에서도 뭔가 찌질해 보이는 나쁜 놈 역할을 잘 묘사했다. 근데 이 두 악역과는 살짝 결이 다른 염석진 캐릭터로 이정재 배우의 (당시까지) 최고작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친일파 서사는 다 아는 맛이다. 그 아는 맛이 시원하긴 한데 전형적인 느낌이 강하단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이정재 배우에게 특별히 악한 캐릭터를 덧붙인 최동훈 감독의 개인 역량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당시 라이징 스타 바로 직전이었던 김수현 배우를 섹시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를 부여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 <전우치>에서 강동원 배우가 맡은 전우치 역도 이 배우가 아니면 소화하기 어렵다. 일단 잘생겨야 하며 액션 연기도 괜찮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조건에서 벗어나 꼼꼼한 설정을 잘 소화했으니 전형성에서 벗어나 임팩트 있는 인물을 만든 건 감독의 특장점 중 하나다.
그리고 이 감독은 근본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이야기 잘 만든다. 흥행이 잘 된다? 대중적인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말이 된다. 평균 관객 810만 명대의 수치가 증명한다. 이 이야기 만들기의 최고 강점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뭐 없는데 이야기랑 대사만으로도 빨려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만드는 최동훈 감독. 자타공인 영화 덕후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호불호가 안 갈리게 추천할 수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다. 이 <외계+인>에서도 세 장점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희미하게 박혀있는 인장
그의 장점을 역시 영화에서 확인할 수는 있다. 일단 캐릭터 설정이다. 조우진, 염정아, 김의성 세 배우의 열연은 대단하다. 일단 이 세 배우들은 충무로에서 입증이 된 배우들이다. 근데 뭔가 내 기억 속에 이 배우들이 전형적인 조연은 맡은 적 없던 것 같다. 그나마 <부산행>에서 본 느낌? 이 영화에서 세 배우가 맡은 캐릭터들이 어느 정도는 뻔함에도 불구하고 개성이 있고 생생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최동훈 감독이 장점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우진, 염정아 배우는 시종일관 빛난다. 뭔가 루즈한 부분 부분마다 적절하게 등장해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후술 하겠지만 뭔가 좀 달라붙지 않는 대사 톤을 이 둘의 개인기로 주파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 김의성 배우가 맡은 역도 연기에 페널티가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다른 역으로 소지섭 배우가 맡은 역할도 초반부가 좀 많이 어색해서 그렇지 중후반부 이야기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준다. 뭔가 네 배우가 이런 역을 잘 맡았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막상 하니 너무 잘해서 오히려 그게 신선한 느낌? 조연진이 아니더라도 류준열-김태리-김우빈 배우는 개성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배우들이 얼마나 뛰어나냐! 의 차원이 아닌 캐릭터의 개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세 배우는 기억에 남는다. 특히 김우빈 배우는 정말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이 캐릭터 설정이라는 장점이 뒤돌아와서 단점으로 작용됐다. 바로 썬더 역이다. 극의 설정상 썬더는 목소리 더빙으로만 출연한다. 이 목소리 더빙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담당 배우가 중성적인 톤이라서 넣은 것 같은데 기계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연기 디렉팅도 어색했다. 이게 단순히 디렉팅의 문제로 끝나면 다행인데 이는 극에서 번갈아 제시되는 현대 서사의 응집력까지 깨버린다. 대비가 될 정도로 고려시대 서사에서 잘 된 집중을 썬더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전부 해체시킨다는 건 이 영화의 접근 장벽을 높이는 장애물이 된다. 이 단점은 유머가 재미없다는 것과 이어진다. 현대 시점의 유머는 재미까지 없고 어색한 썬더의 목소리 톤 때문에 산만하기까지 하다. 이 현대시점의 영화의 요소들끼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안 그래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액션신에 불호 요소를 덧붙히기까지 하니 말이다.
또 이야기 구성 역시 잘 짰다. 이 영화의 장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스릴러, 미스터리, sf, 다크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 액션, 로맨스, 드라마까지 여러 요소를 붙여놓은 것이 이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겠지만 사실 겉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지 영화는 자체는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SF 탈을 쓴 미스터리 영화다. 부차적으로 코미디 요소가 들어가거나 로맨스 코드가 들어가긴 하지만 극을 이끄는 원동력은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로 밀어붙이는 힘 자체는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여러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가 된다. 감독의 연출력이 발휘된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단점으로 발현된다. 일단 이야기에 떡밥이 너무 많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MCU 영화들도 다른 작품에 대한 떡밥이 많다. 일단 글을 쓰며 갑자기 생각나는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팔콘 앤 윈터 솔저>다. 마블 코믹스 원작에 '썬더볼트'라는 조직이 있다. 어쩔 땐 빌런이 되고 히어로가 되는 조직이다. 이 팀을 조직하는 건 헬무트 제모다. 제모는 끊임없이 <썬더볼츠> 떡밥을 던졌다. 그리고 이 떡밥은 실현된다. 차후에 mcu에서 <썬더볼츠> 관련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mcu도 떡밥을 천천히 던진다. 앞에 쓴 <시빌 워>에서도 후반부 반전 요소도 mcu의 다른 영화들 속에서 끊임없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의 서사 + 신검의 용도 + 외계인들의 목적까지 2시간에 다 때려 박았다. 이 때려 박은 떡밥들이 중후반부에서는 어느 정도 치환되긴 하지만 좀 영화가 급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 떡밥을 전부 소화시키기 위해 극이 너무 친절하기까지 하다. '전투 승리까지 1%, 2%' 식의 대사는 거의 한 4년 만에 들은 대사 같다. 의도가 보였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2부 흑막과의 대결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점도 분명하고 단점도 명확했던 셈이다. 물론 이런방식과 퀄리티도 최동훈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조급했는지 마블이 서서히 쌓아 올린 이야기를 너무 간단하게 접근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단점은 앞에서 쓴 '대사 톤이 따로 노는 것'과 어울려서 불호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한다. 심지어 유치한 대사들이 도드라지기까지 하니 최선의 선택지에 딸려온 단점이 되는 셈이다. 분명 이야기는 재밌다. 잘 만들었다. 근데 안 좋은 것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이런 불호 요소가 모이다 보니 영화 자체가 2부를 위해 소모적으로 쓰인 느낌이다. 영화가 왜 유치하냐. 이 세계관을 확실하게 설명해야 하니까. 왜 코미디 요소를 넣었냐. 대중적인 코드를 공략해야 2부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으니까. 떡밥 왜 많냐. 자신 있으니까. 다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런 극의 방향성이 2부의 완결성을 위해 제시됐다는 느낌이 강하니 이런 표현방식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다. 영화 재밌었다. 근데 아쉬운 게 너무 많다. 돈 많이 쓴 티 난다. CG도 좋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하나로 해소되는 쾌감도 좋다. 그런데 이게 정말 최선일까? 싶은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나의 이 영화 총평은 '재밌었다'다. 엄청 잘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액션/sf 영화로 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여름 기대작 4편의 스타트를 잘 끊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게 가하는 혹평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분명히 단점이 맞다. 이 사람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유치함은 크리티컬 하다. 그런 안 좋은 평에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 가치는 있다. 섬세하게 끝내지는 못했어도 단점들에 대한 성찰이 보이기는 하며, 감독의 장점도 발휘되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7월 27일) 개봉하는 <한산 : 용의 출현> 평가가 지금 심상치 않다. <명량>에서 제기됐던 악평을 보완한 좋은 영화가 나왔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탑건 : 메버릭>과 <헤어질 결심>의 뒷심이 무서워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흥행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런 혹평에도 이 영화의 장점이 외면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재미있다. 기대치를 높이던 안 높이던 보기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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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아메리카 4 | 반등했지만 비상하지는 못한 MCU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방패를 물려받고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샘 윌슨'(앤서니 매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어벤져스를 궁지에 몰았던 '로스'(해리슨 포드) 장군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로스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티아무트 섬에서 채굴된 새로운 금속 아다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목으로 샘에게 어벤져스 재창설을 제안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하지만 둘은 쉽사리 손잡지 못한다. 백악관 테러의 배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수사에 나선 샘은 이내 '리더'(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를 발견한다. 뇌에 스며든 헐크의 피 덕분에 초인적인 계산 능력을 얻은 그가 약속을 안 지킨 로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 그 사이 티아무트 섬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분노를 참지 못한 로스는 '레드 헐크'로 변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MCU, 마침내 반등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MCU 복귀 뉴스는 멀티버스 사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캐릭터를 못 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주요 캐릭터의 후계자 중 자기만의 서사와 매력을 보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이전 작품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후속담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였다.
MCU만의 매력도 잃었다. MCU의 핵심은 시리즈 간의 연계였다. 한 영화 속 사건이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작용은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멀티버스 사가는 각자 자기 일을 해결하기 바쁜 영웅들만 비췄다. 토니 스타크처럼 시리즈를 오가는 구심점도, 인피니티 스톤이나 타노스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개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상술한 두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차별화된 매력과 상징성을 증명하며 성공적으로 재데뷔했다. 미국 대통령이 된 로스는 흩어진 MCU의 이야기 중 일부를 묶어냈다. 이에 힘입어 MCU도 마침내 반등의 기틀을 마련한 듯 보인다.
샘 윌슨의 증명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유',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하이드라에 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2편 <윈터 솔져>에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 하이드라와 맞서 싸웠다. 3편 <시빌 워>에서도 미국 정부와 유엔, 동료 절반과 척을 지면서까지 어벤져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즉, 스티브 로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정부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비록 이름은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의 하수인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는 개개인의 자유가 최우선 가치였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도 개인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부의 개입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슈퍼히어로였고,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어벤져스의 이상을 상징했다.
샘은 자신이 스티브의 신념과 이상을 계승했음을 증명해 낸다. 일례로 로스가 어벤져스 재창설을 부탁했을 때도 샘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를 무작정 백악관 테러 범인으로 몰아간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샘이 리더의 음모를 알아채고, 전쟁을 막은 것 역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로스 대통령의 압력에 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리더의 계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샘이 저지하는 장면 또한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자격을 증명한다. 샘은 레드 헐크 안에 있는 로스의 자유의지를 신뢰했다. 로스가 헐크에게 저지른 과오를 씻고, 딸 '베티'(리브 타일러)에게 속죄하려는 열망이 진심이라고 믿었기에 레드 헐크를 설득해 로스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윈터 솔져>에서 버키를 믿고 그에게 자기 목숨을 맡겼던 스티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같게 또 다르게
그와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 4>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입을 빌려 샘 윌슨만의 상징성과 매력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스티브 로저스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윈터 솔져>에서 쉴드의 일반 요원들은 그의 연설에 용기를 얻어 하이드라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다른 히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샘 윌슨은 다르다. 그는 혈청도 맞지 않았고,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니지도 못한 평범한 군인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티브를 도우며 옳다고 믿은 신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다. 즉, 그는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리더였던 스티브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액션 스타일은 두 캡틴 아메리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패를 활용한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더 아크로바틱 한 액션은 차이점을 암시한다. 대인 액션 시퀀스에서 샘은 스티브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스티브와 달리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 슈퍼 솔저는 아니어도 스티브의 신념을 이어가려는 샘의 노력이 액션의 차이점에도 녹아있는 셈이다.
로스라는 연결고리
샘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이, 로스 대통령은 MCU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플롯은 샘과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로스는 헐크에게 군대를 보내고, 어벤져스를 감옥에 보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변화는 정치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4>는 서로 다른 시리즈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던 과거 MCU를 연상케 한다.
로스의 플롯 중 정치적 측면은 <이터널스>의 후폭풍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인도양의 섬이 되어버린 티아무트에서는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이 발견된다. 이에 로스는 일본, 인도, 프랑스 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티아무트 섬을 남극처럼 중립지대로 놔두고, 아다만티움을 지구촌이 공유하자는 것. 로스는 호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백악관 테러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조약을 체결하고자 애쓴다.
로스의 변화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유산을 활용해 그의 부성애를 부각한다. 로스는 한때 브루스 배너의 연인이었던 딸 베티와의 화해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리더에게 심장병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계략 때문에 레드 헐크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그에 맞는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히어로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즉,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이자 멀티버스 사가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마침내 MCU다운 영화를 보는 듯하고, 극 중 삽입된 여러 복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재창설이라는 떡밥이 등장하고, 쿠키 영상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를 암시함에 따라 마침내 멀티버스 사가의 목적지가 보이기 때문. 마치 10여 년 전 MCU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다.
양날의 검
그러나 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진입장벽을 높인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와 <팔콘과 윈터 솔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제는 두 작품 모두 접근성이 낮다는 것. 전자는 MCU가 인기를 얻기 전인 2008년에 개봉했고, 후자는 디즈니+ 드라마이기 때문. 초반부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두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극 중 상황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밀도도 낮춘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이 고조될 때 클라이맥스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샘과 리더는 각자의 이유로 로스와 갈등을 빚을 뿐, 정작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아무트 섬에서 샘과 로스의 대립이 일단락된 순간, 영화는 긴장감이 꺾인다. 로스와 리더의 플롯이 남은 가운데, 샘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 그 결과 레드 헐크와 샘의 충돌도 비록 눈은 즐겁지만, 뒷북처럼 느껴진다.
리더와 <시빌 워> 속 제모 남작을 비교해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두 빌런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가짜 미끼를 던져주고, 주인공끼리 싸우게 만든다. 그러나 리더와 달리 제모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와 아이언맨을 분열시키는 전개는 복수라는 맥락 안에서 개연성이 있었고,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확히 <캡틴 아메리카 4>에서 빠진 스토리라인이다.
더 나아가 기시감도 극대화된다. 영화가 늘어짐과 동시에 지난 시리즈를 답습한 장면이 드러기 때문. 일례로 백악관에서 이사야가 도주하는 시퀀스의 연출과 타이밍은 <윈터 솔져>에서 버키가 닉 퓨리를 저격한 후 도주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사이드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도로에서 샘을 급습하는 장면, 리더가 군사 기지 지하에 숨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마주를 넘어서서 자가복제에 가까워 보인다.
비상까지는 부족한 한끗
그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한끗 부족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물론 확실한 장점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이 일본 해상자위대 및 세뇌된 미 해군과 펼치는 공중전에서는 최근 MCU에서 보지 못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과 레드윙을 활용한 신선한 연출 덕분이다. 레드 헐크도 <어벤져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헐크의 위용만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비하면 전반적인 액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대인 액션, 육박전 장면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 속도가 한 템포씩 늦다 보니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박력이 덜 강조된다. 군사 기지 지하 복도에서 군인들과 샘, 호아킨, '루스'(쉬라 하스)가 한 데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윈터 솔져>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와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숱한 재촬영의 여파도 가리지 못했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는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일례로 로스의 안보 보좌관이자 레드룸 출신 블랙 위도우인 루스는 스티브-샘-나타샤처럼 샘, 호아킨과 팀을 이루는 데도 활약이 미미하다. 전개도 편의적이다. 레드 헐크가 샘에게 갑자기 설득되거나, 사이드와인더가 손쉽게 샘에게 협력하는 식이다. 기존 촬영분과 재촬영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후반부 전개를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흔적이다.
종합하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새로운 <퍼스트 어벤져>에 가깝다. 기존 클리셰에 기대면서 완성도는 일부 포기하더라도, 세계관의 핵심 인물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시리즈와 유니버스의 기반을 다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등에 성공했을 뿐,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후속 타자,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날아오르기에는 아직 출력이 부족한 캡틴 아메리카와 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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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그레이트 샤크> 메인 예고편
행복한 휴가를 떠난 5명의 여행객.
그러나 우연히 상어에 의해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그들의 여행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높아지는 불안감 속에 급히 수상 비행기에 오르지만
굶주린 상어 떼의 습격으로 망망대해에 조난 당하고 만다.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탔지만
그들 주위를 맴도는 식인 상어 떼로 인해
점점 두려움이 극한으로 치닫는데…
극한의 공포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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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메인 예고편
?️어제를 버티고?️ ☂️오늘을 살아낸☂️ ⛅내일의 나에게⛅ 새봄처럼 찾아온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성장담 [태어나길 잘했어] 메인 예고편 공개! 4월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