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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2025-08-25 17:48:56

나는 생존자다 | 때로는 지옥을 재현할 필요도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나는 생존자다> 리뷰

 

 

같은데, 달랐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생존자다>가 다룬 4개의 사건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정보가 이미 많았으니까. JMS 사건의 후일담은 재판 진행 과정이 꾸준히 보도된 상태였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지존파 살인 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도 이미 그 실상이 여러 차례 다른 프로그램에서 밝혀진 바 있었다. 유튜브만 검색해도 사건들의 발단, 책임 소재, 정치권의 결탁 문제 등을 다룬 수많은 관련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충격적이었다. 이미 아는 사건을 다시 보는데도 이전과는 다른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각인됐다. 특히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을 다룬 첫 두 에피소드는 말로 쉽사리 표현할 수 없는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당시 숙소를 재현한 공간에서 실제로 입었던 것과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생존자들의 인터뷰는 마치 <오징어 게임>의 실사판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연출은 과연 적절할까?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나는 신이다>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묘사로 논란이 되었듯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2화까지만 봐도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옥이나 다름없던 광경을 재현하고 보여줄 때만 발생하는 독특한 효과와 반향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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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된 지옥이 특별한 이유

 

상술한 세트나 복장 외에도 <나는 생존자다>의 사건 묘사 수위는 분명 충격적이다. 출연한 피해자들과 충분히 협의한 결과물이겠지만, 인터뷰 내용이 특히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성폭행당한 순간, 강요를 이기지 못해 누나에게 쌍욕을 해야만 했던 순간을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려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역 배우를 써서 재현하는 것과는 달리, 눌러 담은 회한이 느껴지기에 더 고통스럽다.

 

 

 

박인근 원장의 가족들과 피해자가 대면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를 웃으며 무시하고, 피해자가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광경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포착된다. 머리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적나라해야만 하는가 싶은 순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생존자다>는 차별화된다. 고통의 기억을 돌려 말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힘을 획득한다. 단순히 선정성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고통의 경험을 재현할 때 형성되는 종교 문화적 효과 덕분이다. 문화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에 따르면 "종교적 관점에서 고통의 문제는 모순되게도 어떻게 그것을 피하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당하냐"에 있기 때문이다.

 

 

 

 

 

고통의 종교적 승화

 

기어츠는 ‘당할 만큼 의미 있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to make suffering sufferable)이 종교적 고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경험과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고통을 감내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확립하면 종교라는 일종의 문화적 시스템이 탄생한다는 것. 실제로 세계적인 대형 종교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도적으로 재현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식을 채택하곤 한다.

 

 

 

국민의 80%가량이 천주교 신자인 필리핀의 경우에는 부활절을 앞두고 독특한 의식이 진행된다. 부활절을 앞둔 목요일은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 목요일’인데, 이날 빨간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들은 자신을 채찍질하며 속죄 의식을 치르곤 한다. 이는 예수가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메고 가서 못 박힌 것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 그 고통을 부활의 환희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아파 무슬림도 '아슈라' 날에 유사한 의식을 진행한다. 아슈라는 시아파의 세 번째 이맘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이 수니파 무슬림의 습격으로 죽은 참극을 애도하는 날이다. 이날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거리 행진을 하며 가슴을 주먹으로 치거나 채찍이나 칼로 자해한다. 최근에는 헌혈 행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이 역시 고통의 기억을 재현 및 전시하여 다른 의미로 승화하는 의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고통의 재현과 전시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는 예술가들을 목격할 수 있다. 세르비아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고통을 통해서 내면을 변화시키고, 몸의 경계를 초월하며, 터부를 무너뜨리려는 예술적 지향을 추구한다. 자신을 극한의 신체적 고통의 상황에 놓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종교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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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해서 달랐다

 

<나는 생존자다>도 마찬가지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자극적으로 범죄 사건을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다. 생존자들이 직접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면서 종교적 영성을 획득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거친다. 이 의례의 끝에서 그들의 아픔은 트라우마로 남는 대신, 사회 정의를 위한 고발의 증거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에 더해 시청자들도 피해자들의 증언을 매개로 삼아 일종의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마치 자기 몸과 마음이 다치는 것처럼 간접적으로 고통을 경험한다. 단순히 과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 이상으로 분노하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행위 자체가 고통의 기억을 공유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공동체의 아픔으로 변화시키는 일종의 시청각적 자해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현황에 대한 관심과 보도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를 방증한다. 2023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국가 책임을 처음 인정하며 피해자들에게 145억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뒤로도 국가 배상 판결은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법원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652명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111건 재판이 접수돼 있다. 모두 <나는 생존자다>가 공개 전까지는 대중의 이목에서 벗어나 있었던 소식들이다.

 

 

 

 

 

<나는 생존자다>를 향한 바람

 

한 가지 지점은 아쉽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에피소드는 피해자들이 피해 보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정부에서 항소했다는 자막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 5일 상소취하 결정을 내렸다. 물론 공개 직전에 이뤄진 방침 변화를 즉각 작품에 반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뉴스까지 같이 보여줬다면 분노와 충격을 안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정의를 향한 한 가닥 희망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 이 사건과 동시에 화제가 된 JMS 사건 모두 사이비 종교인들이 가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의 의미와 가르침을 왜곡한 이들로 인해 피해자들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나는 생존자다>는 그들이 가장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방식으로써 고통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음을 보여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묘하게 대조한다.

 

 

 

이 시리즈는 시즌 3, 4로 이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 다룰 사건이 없는 게 최선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새로운 시즌이 나올 때마다 선정성과 잔혹성 논란이 일더라도, 초심을 유지했으면 한다. 비록 보고 듣기조차 힘들어도, 그 정도로 고통스러운 묘사가 없이는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지금처럼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98290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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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쿠니
    2020.10.13. 19:14

    반전포인트와 소소한 스토리

    쿠니
    2020.10.13. 19:14

    11.01 에 본영화 .배우들의 다양한 배역과 입체적인 캐릭터, 90년대 후반의 시대를 엿보는 맛은 쏠쏠하지만,다른 성별이 판단한 여자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참으로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몇 가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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