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파로2023-06-06 06:12:53
배우들의 앙상블로 이끄는 대환장 축제 한마당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
“망진이랑 이거 하나만 하고 빠이 할 거야?”
개최 일주일 전 갑자기 정종 문화제에서 연산군 문화제로 바뀐 망진의 지역 축제를 성공적으로, 그리고 무사히 끝마치려는 축제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와 어쩌다 팀원들이 된 그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예고편│Trailer
영제: Extreme Festival│감독·각본: 김홍기
출연진: 김재화, 조민재, 박강섭, 장세림 외 多
장르: 코미디, 드라마│상영 시간: 94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평론가 6.8
제작: 비리프, 실버라이닝 스튜디오│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개봉일: 2023년 6월 7일
“난장판 축제 현장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역 축제를 맡아 어떻게든 현생을 이어가려 고군분투하는 대행사 대표 혜수의 하드캐리는 눈물겹다. 함께할 직원 하나 없는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연명하는 작가인 애인 상민은 능청스러운 한량짓에 여념이 없다. 퇴직한 직원 래오를 알바로 데려오는가 하면, 설상가상으로 알바로 뽑은 처음 본 은채를 인턴으로 채용하는 대 환장할 짓까지 벌이고 초대가수는 사기를 당한다. 이 정도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망하게 하겠다는 건지 의심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혜수에겐 다음 밴댕이젓 축제의 칼날을 쥐고 있는 군수의 비위를 맞춰 어떻게든 잘 마무리해야 하는 궁극적이고 초단기적인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익스트림 페스티벌’이라는 영화 제목 그대로 가상의 지역 문화축제를 진행하며 생기는 별의별 일들을 그린 한국 코미디 드라마였다. 망할 망을 뜻하는 건 아니겠지만 지역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망진군의 아주 소규모 축제를 진행하는 대행사 ‘질투는 나의 힘’ 대표 혜수를 통해 고달픈 K-직장인과 자영업의 현실도 관객의 뼈를 때린다. 등장인물 개개인이 가진 작은 문제부터 지방행정의 탁상공론식 실태는 물론, 마지막엔 소규모 연극집단이 가지는 예술적 고뇌까지 수렴한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극본에 참여했던 김홍기 감독인 만큼 축제를 진행함에 있어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채워나가며 젊은 감독의 패기 넘치는 풍자와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작은 에피소드들이 계속 연계되며 다소 산만할 수도 있지만, 축제라는 큰 틀안에서 소소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역할을 망론하고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내뿜는 김재화는 인턴보다 더 눈물 나는 대표 혜수를 미친듯한 원맨쇼로 채우고, 사고뭉치 월급루팡 이사 상민을 맡은 조민재는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잔망스러움을 선보인다. 그나마 멀쩡해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 발언으로 막장드라마를 만들어버린 래오의 박강섭은 강렬한 한방을 남기고, 인 서울을 꿈꾸며 지른 인턴 지원 생활이 물거품 된 은채의 장세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더불어 기자처럼, 간호사처럼, 불륜처럼, 뭐 하는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의문의 커플도 매 장면마다 등장해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리프레시는 물론,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이처럼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진짜 지역축제의 하루를 진행하고 참여하며 체험하는 여러 인물들을 교차시키면서 현실 공감적 상황을 이끌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그들의 말이 씁쓸하지만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 줄 평 : 정신없지만 공감가는 재기 발랄한 풍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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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지 않는 악만큼 중요한 것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라사와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 딸과 살고 있는 남자 타쿠미(오미카 히토시)다. 조용히 일 하는 중인 타쿠미. 장작을 열심히 팬다. 톱으로 나무도 자른다. 일하다 담배 한 번 피워준다. 이런 타쿠미에겐 일행이 있다. "타쿠미 상!" 타쿠미에게 다가오는 타쿠미의 친구. 타쿠미는 친구에게 자연물의 많은 것들을 알려주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 '땅와사비' 하나를 뽑는 타쿠미. 친구에게 "너희 우동집에 이거 넣어서 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니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그런데, 딸 하나(니시카와 료)는요?" 사실 타쿠미는 건망증이 심하다. 하나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때가 오면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내 정신 좀 봐! 사랑하는 딸을 데리러 가는 타쿠미. 그러나 친구가 타쿠미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넨다. "오늘 우리 동네에 글램핑을 짓겠다면서 워크숍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 올 거죠?"라고 묻는 친구. 타쿠미는 "간다"라고 답한다. 모든 것이 상류에서 하류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영화는 서늘하게 이 마을에 일어나는 일들을 비추고, 특별한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일반적이지 않다. 영화의 느릿느릿한 템포때문에도 그렇고, 인물의 감정선엔 특히 더 그렇다. 영화의 많은 것들은 상황만 몇 개 보여줄 뿐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 덕에 영화가 좀 뭉뚱그려진 채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왜 타쿠미는 타카하시를 죽인 거야? 하나는 어떻게 된 거야?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 의문점만 생긴다. 단순히 줄거리와 결말만 그럴까? 영화의 어떤 장면들은 기이할 정도로 길어서 어느 부분에서 장면이 끊길지 예상이 잘 안 간다. 단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직관적으로 들어와서 '이 영화가 복잡다단한 인간성을 보여주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엔딩에서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공격하는 일이 영화 내내 반복됐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몇 키워드에 대해 써 볼 것이다.
첫 번째 키워드는 단절이다. 글쓴이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단절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다. 이 팬데믹 사태는 영화에서 두 사건에 개입하며 인물 간의 갈등을 드러낸다. 우선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마을의 어느 곳에 글램핑 터를 짓는 것이다. 이 글램핑 터를 짓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영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으니 정부에 보조금을 받기 위해'다. 이 공사는 곧 양 측을 갈라놓는 계기가 되어 중반부까지 인물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또 다른 단절은 의사소통의 단절이다. 워크숍에서 박살이 난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주민들에게 "사장에게 말하고 오라"라는 피드백을 듣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사장과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 의사소통은 무언가 특별하다. 바로 줌(zoom)으로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 역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보기 어렵다. 타카하시와 마유즈키의 상사는 두 사람의 주장을 별로 귀담아 안 듣고 그냥 무작정 "선주민 남자(타쿠미)에게 글램핑 터 부지의 관리인 직을 제의해라"라고 말한다. 이 대화는 방식의 측면에서도 제약이 많은데 내용도 알차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타카하시와 마유즈키 - 둘의 상사 간의 대화가 단절됐다는 것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연출이다.
두 번째로 암시하고 있는 이 영화의 단절은 건망증이다. 타쿠미는 뭐든 잘 잊어버린다. 영화 초반부에 딸 하나를 데리러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 친구 덕에 그 약속을 떠올린다. 사실 처음 볼 때 이 장면을 그냥 별 것 없다고 넘겼다. 깜빡 잊어버리는 건 그냥 우연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잊어버린다'라는 모티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본다면 분명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타쿠미는 앞과 뒤에 일어난 일 중 먼저 발생한 사건을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가 (후술 하겠지만) 자연의 순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특별하다. 타쿠미는 전을 잊어버리고 이후에 일어난 일만 기억했다. 이 결과로 딸 하나를 데려오는 걸 잊어버렸다. 영화가 전에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 자에게 소소한 벌을 내렸다고 볼 수 있고, 역시 타쿠미는 사건의 전부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아 '단절'을 체화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를 둘러싼 단절도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초반부에 하나는 사슴의 사체(뼈)를 본다. 아빠에게 "얘는 총에 맞았다"는 말을 들은 하나. 이 하나는 연이어서 사슴을 목격한다. 초반에 사슴이 죽은 걸 봤다. 그다음 장면은 사슴이 살아있는 장면이었다. 그다음의 다음 장면은 하나가 사슴에게 공격당한 뒤의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시간 순서대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글쓴이가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두 번째 장면이 진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니는 모습만 나온다. 이야기를 이끄는 동력도 뭣도 없는 채 신화의 한 장면 같은 장소를 돌아다닌다. 하나가 공격당했다는 묘사가 있을 리가 없다. 엔딩에서 코피 흘리는 하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신기루 같은 하나의 행보를 더 신비롭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소파에서 잠을 자는 하나. 카메라는 아버지 타쿠미가 하나를 업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이 끝나면 다시 하나가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과연 뭐가 진짜일까? 어떤 장면이 영화의 메인 플롯인지는 하마구치 류스케도 모를 것 같지만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와 관련된 몇 장면들은 순리를 벗어나는 연출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나는 "숲 깊은 곳에 들어가면 사슴에게 공격당할 수 있어"라는 경고를 무시한다. 종합해 보자. 하나는 섭리를 어기는 존재다. 이를 영화 안의 이야기로, 또 연출로 보여주고 있다. 단지 하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그 모든 모순을 이을 뿐이다.
단절 다음으로 설명하고 싶은 키워드는 양 측간의 갈등이다. 영화는 성실하게 두 집단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한다. 이 소시민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우선 전반부. 영화의 주인공이 타쿠미이기 때문에 타쿠미 쪽 서사가 나온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귀여운 딸 하나와 함께 산다. 어떤 장면에선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길을 걷는 장면이나 자연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있다. 인물의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사실 영화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쿠미한테 어떤 사정이 있건 없건간에 살인자는 살인자 아닌가? 하지만 이 묘사는 후반부에 타카하시와 마유즈키가 자동차에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차 안 대화 장면은 사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서 자동차 안의 대화를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과정으로 소화했다. 이 장면은 그 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역시 적용된다. 관객들도 인물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 장면의 역할까지 본다면 두 세계에 정을 붙인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소개팅 앱이나 마유즈키의 직업이 요양보호사였다는 사실이 굳이 들어간 이유는 역시 이 둘(타카하시, 마유즈키)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차 안 대화 장면이 들어간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야기의 중후반인데, 이 영화가 가령 <매그놀리아> 내지는 <도그데이즈>(2024)같이 각자의 입장이 중요한 옴니버스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 타카하시-마유즈키의 인간적인 면모는 초반부에 들어가야 적절하다. 왜? 이 둘에게도 마음을 열 만한 가치가 충분하고 역시 주인공이니까.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과감하게 중후반부에 배치한다. 이 장면 이후 '하나가 실종되고 - 타카하시가 살해당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을 통해 그린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지 느껴지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전적으로 동격에 놓인 선량한 사람이다. 악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 영화의 살인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더 직설적으로, 우리는 이 영화 하이라이트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100%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 있는 다양한 것들이 서로 충돌하며 작용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위에서 단절과 양 측의 갈등에 대해 서술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필연이다. 사실 글쓴이가 쓰지 않은 부분이 있다. 단절과 갈등에 대한 부분을 더 깊게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위에서 쓴 '단절'과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은 필연이라는 키워드 하에 묶여있다. 첫 번째 예시. 마유즈키가 팔을 다치고 하나가 공격당한 사건이다. 이 둘은 전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다. 마유즈키는 집에서 쉬는 걸 선택했고 하나는 촌장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공통점을 가지며 반복된다. 두 인물은 자연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두 인물에게 공통된 필연이 주어졌고 이 필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점이 갈린 것이다. 두 번째 예시. 주인공의 집에 회장님이 와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후반부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엇으로? 마유즈키와 타카하시가 상사와 비대면으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둘은 겉으로 보기에 목적과 내용이 아예 다르다는 점에서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대화는 상호 간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일이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각기 다른 입장에 놓인 인물들이 당연한 순리를 거치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과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잊어버린 것 역시 상호 충돌한다. 하지만 둘이 별개의 것인 거랑 이 두 사건은 하나의 키워드로 엮인다. 타쿠미가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그 줄기다. 이렇게 두 별개의 사건이 하나의 필연으로 이어진다는 방식은 영화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과도 이어진다. 바로 초반부 타쿠미와 하나가 사슴의 뼈를 보고 "총을 맞았다"라고 말하는 장면과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둘은 별개처럼 보인다. 이것은 이 장면을 묘사하는 전후의 톤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전반부는 다큐 같은 템포였지만 후반부는 판타지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건은 별개의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 같다. 하지만 이 두 장면 역시 공통점이 있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장면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이 간다. 명확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이럴 땐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연적인 일들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필연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것들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가 존재해서 이 사건을 연결시킨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단순히 플롯에서만 이런 맥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향이나 편집, 촬영 같은 것도 이 충돌을 시청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초반부. 아버지 타쿠미가 딸 하나를 업고 걸어가고 있다. 영화가 있는 그대로 보여줄 거면 하나를 만나고 업히고 하는 장면을 보여줘도 된다. 하지만 영화는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해서 부녀를 보여준다. 이러면 뭐가 생기냐. 이야기가 초장부터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기이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이 장면에 들어가는 음향은 역시 이 연출의 연장선상이다. 사운드가 부녀간의 감정을 쭉 보여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끊는다. 단절이다. 우리가 영화까지 가는 감정선은 단절되지만 영화 안의 내적논리는 그 순간에도 재생되고 있다. 심지어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들리다가 끊기는 형태는 반복된다. 단절의 이미지를 하나로 이어서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영화의 편집 역시 이상한 리듬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마치 사운드가 들리다가 끊기는 것처럼 영화가 테이크를 길게 뺄 때의 규칙이 안 보인다. 가령 초반에 주인공이 물통에 물을 채울 때를 본다면 그냥 물만 길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고 지나가는 것까지 다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한다. 또 어떤 장면에선 두 사람의 시점을 고의적으로 충돌시키는 편집까지 보여준다. 가령 주인공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을 보면 재미있다. 카메라에서 땅와사비 뽑는 장면을 보면 땅와사비의 시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이 땅와사비를 뽑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은 자연물을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자연물의 시점을 동시에 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타쿠미가 자동차를 끌고 주차하는 장면을 보면 초반에는 타쿠미의 차량을 보여주다가 후반에는 차 뒤편에 있는 여자를 카메라가 보여준다. 이 주차 장면이나 땅와사비 장면이나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 안의 누군가도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이야기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두 사건에 묘한 선후관계를 제시해서 필연으로 만든 걸로 모자라 카메라워킹으로 영화 안에 존재하는 3자를 등장시킨 것이다. 악인이 존재하지 않지만 3자는 존재하다는 것. 그리고 이 3자가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3자는 무엇일까? 영화의 첫 장면과 가장 마지막 장면이 아예 다른 맥락임에도 이야기의 틀을 이룬다는 점에서 수미상관처럼 느껴지고, 엔딩에서 새끼 사슴과 하나를 동일시시키고, 이 폭넓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영화 등장인물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묻게 하는 것. 그게 무엇일까?
글쓴이는 이 엇갈리지만 영화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을 한 단어로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쓰다가 갑자기 네이버 검색창에 '순리'라고 검색하면 '순한 이치와 도리, 또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라는 의미가 나온다. 이치와 도리. 당연하게 당면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 하나처럼 영화 안에서 독립된 사건으로 움직이는 인물들도, 타쿠미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도, 타카하시처럼 사람은 착하지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들도 이 순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 생각은 영화에서 하나가 실종되면서 시작되는 장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장면의 시작을 잘 보시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쪼르르 흘러가는 장면이 기점이다. 이 장면은 영화 안에서 맥락이 생기기도 한다. 워크숍 장면에서 마을회장 할아버지는 "상류에서 만들어진 일이 하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하류의 사람들이 상류의 주민들을 원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에 힘입어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말한다. 영화 안에서 개입을 지양하고 순리에 따르자는 논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하나의 실종도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맥락이라는 걸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하나의 실종이 순리에 따른 결과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물론 영화는 하나의 실종만을 순리로 단정짓지 않았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들은 영화 전,후반부에 두 개나 있다.
순리에서 벗어난 것,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벌인 각각의 실수는 인물들에게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실수를 저지른 인간들은 영화 안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 첫 번째 실수는 타카하시의 것이다. 그 질문이 뭐냐. 영화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는 "사슴은 그래서 어디로 가지?"라는 질문이다. 타카하시는 이 질문에 그냥 대충 얼버무린다. 인간의 개발을 위해서라면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 위협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 사슴의 생사에 대해 깊게 탐구하지 않은 인간의 벌이 뭘까? 타쿠미에게 글램핑 터의 관리자 역할 같은 걸 대안으로 내민 벌은? 살인이다. 목숨을 잃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필연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고 길게 쭉 썼다. 이 필연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인간의 개입에 대해 경고하는 자연을 무시하고 대충 얼버무리다 처형당한 인간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까? 자연에 의해 팔을 다친 마유즈키는 타쿠미의 집에서 쉰다. 경고를 마지막엔 받아들인 마유즈키는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만약 타쿠미와 동행했다면 마유즈키가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실수에 의한 처벌'이라는 부분에 근거를 하나 더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두 번째로 범한 실수에 대해 적는 것이다. 영화가 두 상황을 필연으로 잇는다고 길게 써왔다. 그럼 이 것(타쿠미의 살인)과 유사한 상황이 영화에 있다는 뜻이겠지? 글쓴이는 총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 총성이 탕 울린다. 이 총성 때문에 사슴이 죽었다는 걸 타쿠미는 이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관한다.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소리지만 원인을 규명하지 않는다. 이는 곧 타쿠미도 타카츠키와 유사하게 자연의 경고를 방관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에 노력하지 않은 것. 이는 영화 후반부 타카츠키가 의무를 포기한 것과 겹쳐 보인다. 그럼 어떻게 돼? 당연한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나태한 인간이 방관한 탓에 애 먼 사슴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슴은 총을 쏜 인간에게 분노해서 하나를 공격했다. 심지어 하나는 마유즈키처럼 자연의 경고, 그러니까 회장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조건이 충분하다.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자를 보여주면서 순리를 묘사하는 만큼 엔딩에서 타카하시가 살해당하는 장면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하나가 공격당한 것 내지는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심지어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대신 그 이유를 뭉뚱그려 보여준 것이야 말로 영화의 기획의도를 살리는 좋은 선택이다. 애초부터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면 자연 그 자체지 인간이 아니다.
카메라와 편집도 이 이야기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그대로 구현한다. 하나 보여준 다음 사슴 보여주고 사슴의 피살 보여준 다음 하나를 비춘다. 이건 편집이 의도적으로 두 존재를 동일시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살인을 저지르고 하나와 함께 도망가는 타쿠미를 먼발치서 익스트림 롱쇼트로 찍는다. 어느새 형상조차 보이지 않으면 의식이 흐릿한 타카하시가 몸을 비틀거리면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중후반부 차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가락국수집에서의 장면을 통해 강박적으로 대칭을 이룬 것과는 대비된다. 균형을 어긴 인간이라는 걸 영화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그냥 뚝딱 만든 각본 같아 보이지만 영화 안에 잡혀있는 내적 체계가 굉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영화 안에서 구현하는 것. 이거야 말로 영화의 목적이자 모든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천천히 쌓아 올려 한 번에 터트렸던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정성이, <우연과 상상>에서 인간이 서로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묘한 스파크가 터졌던 그 순간을 엔딩으로 치환시켜 관객에게 강력한 충격을 선사한다. 또한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예술의 속성과 동일시했던 것이 굉장히 신선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우리 세상에 살고 있는 무형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괴력을 보여준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치를 거부한 인간에게 응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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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왜곡되어 보게 만드는 내면
누구나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론 대화하며 살아간다. 나의 심리 상태는 외부의 시선을 형성하는 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기분이 좋을 때 바라보는 세상과, 기분이 나쁠 때 바라보는 세상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외부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다. 좋은 기분일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나쁜 기분일 때는 모든 것이 괴상하고 기이하게 보인다. 이건 개인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조정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조절되는 건 아니다. 특히나 우울증 증상이 심각해졌을 때는 자신은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영화 <스마일> 1편은 개인의 심리가 외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포 스릴러 형식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등장인물들은 괴상한 스마일 전염병에 걸리며 웃음을 지은 채 자살하고, 이를 목격한 사람이 다시 감염된다. 마치 우울한 사람과 자주 접할수록 그 감정이 전염되듯이, 영화는 감정의 전염을 무척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공포 장르의 틀 속에 있으면서도 심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개봉한 <스마일2>는 음주운전과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가다가, 다시 재기하려는 스타 가수 스카이(나오미 스콧)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첫 번째 감정] 스카이의 아픔
스카이는 음주 운전 사고로 남자친구가 죽는 것을 옆에서 목격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스타 가수였지만, 그 사고로 인해 심리적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비난도 받아왔다. 스카이는 사고 이후 육체적인 후유증과 더불어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고통은 점점 심해져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찾게 된다. 그녀의 아픔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넘어 심리적인 문제와 깊이 얽혀 있어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스카이는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소속사와 어머니의 압박 속에 무리하게 복귀를 준비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며 성공과 재기를 강요한다.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스카이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그녀를 밀어붙인다. 스카이는 심리적으로 안식할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그녀의 아픔은 외면받고, 고통은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어간다.
스카이의 아픔은 단순히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선다. 그녀는 과거의 실수로 인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주변의 기대와 압박은 그녀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점점 더 깊은 상처로 변해간다. 스카이는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려 하지만, 그 고통은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삶을 갉아먹는다. 영화는 이러한 스카이의 심리적 고통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의 고통을 공감하게 만든다.
[두 번째 감정] 스카이의 우울
스카이는 영화 내내 불안정하고 불안해 보인다. 죄책감, 압박감, 자기 자책 등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혼자 떠안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들은 그녀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든다. 스카이는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점점 더 많은 환상과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환상의 순간들은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그녀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스카이가 자신의 심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과정을 기괴한 이미지로 표현하며, 그녀가 점점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스카이는 여러 번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그녀의 우울은 정상적인 시도를 무력화시키며 계속해서 그녀를 어둠 속으로 끌어내린다. 결국 스카이의 심리 상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그녀 자신마저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스카이는 자신의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여러 번 노력하지만, 주변의 환경과 내면의 고통이 그녀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그녀는 다시 노래를 부르고, 팬들 앞에 서며 정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녀의 우울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그녀의 내면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이러한 스카이의 우울한 감정을 다양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강조한다.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과 그녀의 흐릿한 눈빛, 환각 속에서 보이는 기괴한 이미지들은 스카이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의 고통을 더욱 깊이 느끼게 만든다.
[세 번째 감정] 스카이의 감정전파
스카이는 몰락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단한 팬층을 보유한 스타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스타들이 많다. 십대들은 그들을 보며 꿈을 키우고, 그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스마일2>는 한 스타의 몰락이 수많은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스카이의 모든 행위는 미디어를 통해 팬들에게 전해진다. 그녀가 콘서트장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팬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그녀의 우울은 무의식중에 팬들에게도 전염된다. 스카이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우울을 추스르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절망과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이 과정이 무척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표현되며, 팬들에게도 충격을 준다.
스카이의 감정전파는 단순히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개인적인 행동과 그녀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매우 현실감 있게 묘사하며, 스타의 감정이 팬들에게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팬들은 스카이의 몰락을 보며 그녀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녀의 우울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스카이가 느끼는 절망과 공포는 팬들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지며, 영화는 이러한 감정 전염의 과정을 공포스럽고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스카이의 몰락은 단지 한 사람의 추락이 아니라,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사건임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의 심리 속에 들어간 듯한 기괴함
<스마일2>는 공포 장르를 통해 우울하고 불안정한 사람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심리학 소설을 읽는 것처럼 불안정한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고 망상을 겪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감정이 전염된다는 설정은 1편에 이어 계속되며 무척 신선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현대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우울한 감정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영화는 이러한 현대인의 우울과 불안을 스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스카이는 개인의 불안과 우울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몰락은 단순히 한 사람의 추락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된다.
<스마일2>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과 우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감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영화는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감정적 연결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의 우울함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왜곡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때로는 우리의 내면을 왜곡시킬 만큼 강력하다. <스마일2>는 이러한 감정의 힘과 그 전염성을 무섭도록 현실감 있게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의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주변의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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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함으로부터의 구원
*본 영화의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더 웨일> 줄거리
처음 시작부터 강렬하다. 우연히 들른 집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찰리의 모습을 본 토마스에게 찰리는 종이에 적힌 글을 읽어달라고 한다. 그 글이 도대체 뭐길래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응급조치가 아닌 읽어달라는 부탁을 한 것일까?
자신의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가 도착하고 나서야 진정된 찰리에게 토마스가 왜 이 글을 읽어달라고 했는지 물었을 때 그 의문이 해결된다.
'이것을 들으며 죽고 싶었다.' 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여기서 죽음을 목도에 둔 찰리를 발견한 토마스를 살펴보자. 토마스는 왜 연고도 없는 찰리의 집 문을 두드린 걸까?
그는 새생명 교단의 선교사이다. 집들을 방문하며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려는 다르게 말하면 타인을 '구원'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찰리라는 인물이 눈에 띄었다.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면서도 자신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에세이 하나를 읽어달라고 하는 인물이 말이다. 그래서 찰리는 그를 '구원'해주기로 한다.
하지만 구원에 회의적인 찰리의 태도뿐만 아니라 찰리의 친구인 리즈는 새생명 교단에 적대적이까지 해 그의 구원은 순탄치 않다.
그들의 태도는 언뜻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 같지만 자세히 들여보면 사연이 있다.
리즈의 오빠이자 찰리의 연인이었던 이는 새생명 교단에 속해 있었지만 내쳐졌고 결국 끝은 죽음이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오히려 토마스를 반기는 찰리가 이상할 정도이다.
하지만 리즈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토마스는 계속해서 찰리를 찾아오고, 찰리는 친절하지만 선을 긋는 듯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토마스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찰리의 딸, 엘리이다. 찰리에게 소중한 존재 중 하나인 엘리의 등장은 곧 그에게 ‘구원’이 내려올 것이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만든다.
엘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찰리를 증오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엘리가 가장 솔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찰리는 에세이를 쓸 때 솔직함을 강조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고, 리즈는 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가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토마스는 사실 교단의 돈을 훔치고 도망친 자신의 의견대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모순 투성이인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솔직함을 가지고 있는 엘리는 파란을 가져온다.
엘리는 끊임없이 찰리의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부분을 건드렸고, 종국에는 찰리를 비롯한 리즈, 메리(리즈의 엄마), 토마스까지 파멸로 이끈다. 아니, 이끄는 듯하다.
엘리에 의해 찰리와 다시 만난 메리는 찰리에게 숨기던 엘리의 탈선을 들켜버린다. 또한 리즈는 자신을 속이고 엘리를 위한 돈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엘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토마스의 말을 녹음해 토마스의 부모님과 교단에 보낸다. 이런 행동은 이들을 파멸로 이끄는 듯 보이지만 메리는 찰리와의 대면을 통해, 리즈는 실망하여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면, 또 토마스가 흥분한 듯 찰리에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도리어 엘리의 솔직한 행동이 그들을 구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찰리의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리는 엘리의 행동을 시작으로 찰리는 각종 외부에서 오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온몸으로 받게 된다. 자신이 자주 시키던 피자집의 배달원의 놀라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토마스가 자신에게 구원을 내리기 위해 찰리의 사랑을 부정하다 끝내 숨겨놨던 찰리에 대한 혐오감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자기혐오를 터뜨려 버린다. 자신의 강의를 듣던 학생들에게 카메라를 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지나가는 새들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주던 심성을 가진 이었다. 즉, 찰리는 다들 악마라고 하는 엘리의 행동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엘리의 솔직함이 다른 이들에게 구원이 됐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자신 역시 남에게 가감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도리어 솔직함을 드러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깨달은 찰리는 엘리에게 계속해서 그가 완벽하다 말해주고, 끝끝내 엘리가 읽어주는 엘리 자신이 쓴 '모비딕'에 대한 에세이를 들으며 자기혐오를 버리고 엘리에게 직접 걸어감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한다.
이 영화 속 찰리는 '모비딕' 속 에이허브 선장이 되기도 하고 모비딕이 되기도 한다. 에이허브 선장이 복수심에 불타는 것처럼 자신(모비딕)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결국 엘리가 지신의 에세이 속에서 불쌍하다 평했던 에이허브 선장(찰리)은 결국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모비딕(찰리)에 대한 혐오를 버리며 스스로를 구원하게 된다. <더 웨일>은 결국 구원은 누구에게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솔직함에서 나오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 영화의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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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깊은 늪으로 빠져버린 마블
자신에게 엄청난 힘이 생기면 무엇을 하게 될까. 그런 힘이 있다면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주변 사람을 돕는다. 일단 그렇게 만들어진 하고 싶은 일 리스트는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나 개인이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자기 자신이 판단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대부분을 스스로 혼자 결정하고 판단하게 되면서 거기에는 조금씩 오류와 오판이 생기기 시작한다. 절대적인 힘이 내 손안에 있더라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마블의 히어로인 <캡틴 마블>은 의도치 않게 엄청난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 캐롤(브리 라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캡틴 마블>에서의 캐롤은 가족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상실감과 조직에 대한 배신감으로 힘들어하다 우연히 이 에너지를 얻었다. 거의 무적에 가까운 힘으로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복수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대결을 벌인다. 그리고 우주로 나아가 우주에서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을 위해 힘을 쓰기 시작한다.
과거의 잘못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캡틴 마블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우주의 여러 행성과 생명체들을 돕게 된 캡틴 마블의 행위는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는 캡틴 마블의 모습이 후속편인 <더 마블스>에 담겼다. 이번 영화에선 크리족의 리더 다르-벤(자웨 애쉬튼)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한다. 과거 캡틴 마블은 AI의 지배를 받던 크리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AI를 파괴했었다. 하지만 크리족에게 캡틴 마블은 자신이 모시던 신과 같은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린 파괴자와 같은 존재로 느낀다. 그러니까 캡틴 마블의 선한 의도가 완전한 악의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크리족이 원하는 복수의 방향은 캡틴 마블과 가까운 행성이나 존재들이 있는 곳을 향한다. 그 작업을 위해 우주 여러 곳에 타임 포탈을 만들게 되는데 그 부작용으로 캡틴 마블/캐럴과 미즈 마블/카말라 칸(이만 벨라니) 그리고 모니카 램보(타요나 패리스)는 자신들의 능력을 쓸 때마다 위치가 바뀌게 된다.
<더 마블스>는 이렇게 세 명의 히어로를 서로 연결시켜 일종의 제약을 만든다. 이것은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캡틴 마블에게 큰 장애물을 줌으로써 세 명의 팀업으로 상황을 이겨내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야기의 초반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위치가 바뀌면서 벌어지는 액션장면은 꽤 신선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이것 자체가 각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또한 새로운 히어로인 미즈 마블의 능력과 모니카의 능력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초반 액션 장면이 지나고 중후반부에 세 명의 히어로가 직접 만나서 벌이는 액션과 상황들은 대부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치가 바뀌면서 잠깐의 긴장감을 만들지만 가장 강한 능력을 가진 캡틴 마블이 종횡무진 해결하면서 세 명의 힘이 균형 있게 발휘되지 못한다. 특히나 영화의 빌런인 다르-벤은 마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약하고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는 가지고 있는 팔찌 뱅글로 캡틴 마블의 힘을 흡수하여 복수를 감행하려 하지만 자신의 진짜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화면에서 사라지고 만다.
새로운 히어로들의 등장과 신선한 초반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히어로들의 존재감도 차이가 크다. 캡틴 마블은 여러 마블영화에 등장했고, 독자적인 솔로 영화로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미즈 마블인 카말라 칸이나, 모니카 램보는 영화만 보던 마블 팬들에게는 생소한 캐릭터다. 카말라 칸은 디즈니+의 시리즈 <미즈 마블>에서 소개되었고 모니카 램보는 디즈니+의 시리즈 <완다비전>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니까 디즈니+를 구독하지 않았던 관객들에게는 전혀 알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이야기 속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응원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 내내 이들의 존재감은 캡틴 마블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캡틴 마블이 과거에 했던 실수를 만회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끌려들어 온 미즈 마블과 모니카의 모습은 캡틴 마블의 심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큰 이유 없이 더 마블스라는 팀을 구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캡틴 마블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다르-벤의 악행에 왜 팀이 필요한지를 영화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캡틴 마블의 광팬은 미즈 마블과 가족과 같은 존재인 모니카의 등장은 영화에 진짜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캡틴 마블의 감정적 고뇌를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한 양념처럼 쓰였다.
다르-벤이 자신의 행성에 물이 필요하게 되자, 물을 빼앗아가기 위해 방문하는 행성이 있다. 바로 얀 왕자(박서준)가 다스리고 있는 행성이다. 이 행성에서 캡틴 마블은 얀 왕자와 혼인 서약을 맺은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별도의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노래로 대화하는 이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은 영화 전체의 서사에서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한국 배우인 박서준의 존재감도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더 마블스>이후 마블 영화 시리즈는 반등할 수 있을까
<더 마블스>는 마블 페이즈 5의 세 번째 작품이다. 신인 감독인 니아 다코스타에게 연출을 맡겨 반등을 하려 했지만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 마니아>의 실패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의 흥행으로 만회되는 듯했지만 이번 <더 마블스>에서 반등하지 못한 채 관객에게 실망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과거 마블 영화하면 느껴졌던 기대감이나 만족감이 많이 사라진 이번 영화 이후 마블은 현재 고수하고 있는 시리즈와의 연계성과 매력 없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캡틴 마블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아주 간단하게 힘을 들여 크리족의 행성에 없어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이번 영화 속에서 캡틴 마블의 심적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캡틴 마블이라는 이름아래서 캐럴 댄버스라는 인물은 어쨌든 심적 성장과 삶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엔 그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미즈 마블과 모니카가 옆에서 심적 안정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도 캡틴 마블은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로서 마블 영화에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비록 영화와 이야기의 완성도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강력한 히어로로서 마블 영화 시리즈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여러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야기와 완성도를 가진 마블 영화 속의 캡틴 마블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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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태워 재가 될지, 숯이 될지?
흥행을 떠나 현재, 국내 극장가에서 <킬링 로맨스>의 화제성이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사용설명서, 2013>와 <상의원, 2014>을 연출한 "이원석"감독의 신작 <킬링 로맨스>는 자신의 취향을 꾹꾹 담아낸 작품이다!
태워서 버티면 숯이 되는 것이고, 못 버티면 잿가루가 되듯이 <킬링 로맨스>는 극과 극의 반응들을 만들고 있다.
'나는 숯인지 아니면, 재가 될지?', 그게 궁금해 비싼 돈을 들여가며 극장으로 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대한민국의 톱스타 "여래"는 단, 한 번의 발연기로 잠적하고 그 사이에 "콸라섬"에 "조나단 나(aka. 존나)"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온 가족이 "서울대" 출신의 4수생 "범우"는 자신의 최애 "여래"가 옆집에 이사를 온 것을 알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여래"가 "조나단 나(aka. 존나)"과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범우"는 "여래"와 위험한 계획을 짜는데...1. 숯 같은 내 취향!
앞서 말했듯이 영화 <킬링 로맨스>는 취향이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캐릭터의 이름부터 "존나"라는 것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지만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동화책"이라는 소재에서부터 배우들의 비현실적인 외모, 그리고 "뮤지컬"은 "디즈니 프린세스"가 겹쳐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조나단 나(aka. 존나)"의 모습은 <라푼젤, 2011>를 비롯해 주인공을 가두려는 "계모"가 보이며, "범우"는 그런 "여래"를 구하는 왕자가 보인다!하지만, <겨울왕국, 2014> 이후 "디즈니 프린세스"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다.
그 이전에는 "왕자"와 같은 구원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위치였다면, 이제는 직접 움직이는 능동적인 위치로 바뀌었다. - <겨울왕국2014>만 본다면, "한스(왕자)"는 악당으로 역할이 바뀐다!
그런 점에서 이후 "범우"를 주도하는 "여래"의 변화는 예상 가능하나 그 범주가 "살인"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으로 느껴진다.관건은 이런 과정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의 연출 방식이다.
"훅쉿팍쿵"은 물론이고, 노래방, 그리고 케이블 TV에서 볼법한 광고까지 난데없이 나오는 "뮤지컬"까지 호불호를 떠나 '대다수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생각이 앞설 따름이다.
이를 감독 본인도 이를 알았는지 마지막 "여래"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 장면에서 극과 극의 반응으로 갈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좋게 보인다면 한없이 이뻐 보이겠지만 나쁘게 보인다면 그만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킬링 로맨스>이다.· tmi. 1 - 당초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에서 제작된 영화였으나 투자 철회로 상영이 보류되었던 작품이었다.
· tmi. 2 - 극 중. "여래이즘"은 아시다시피, "비"의 "레이니즘"을 개사한 곡인데 실제로, 무보수로 불러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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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영속하는 사랑의 힘
DIRECTOR. 에밀리 므크르티치안
CAST. 시라누시 사르크샨, 스베틀라나 하루투냔, 가야네 함바르줌얀, 소세 발라사냔
SYNOPSIS. <사라진 공화국>은 전쟁의 여파와 또 다른 위협에 직면해 있는 미승인 국가 아르차흐의 네 여성을 따라간다. 그들이 새로운 삶을 일구어 가던 중 다시 발발한 전쟁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이 영화는 그들의 생존과 회복력뿐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을 지키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영속적인 힘을 포착한다.
이 영화 제목을 처음 인지한 건 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는 메일이 수백 통씩 전주국제영화제로 날아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대체 뭐길래? 프로그램 노트에 "아르메니아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반영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던 영화였다. 다시 말해 이 영화를 보기 전후로 많은 조사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의미였으므로, 한정된 시간 안에 볼 영화를 고르다 보니 일단 지나쳤던 영화였다.
두 번째로 인지한 건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지인들이 A4용지 한 장씩을 쥐고 착잡한 표정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당연히) 상영을 중단하지 않았다. 민성욱 집행위원장의 말마따나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여러 분쟁 지역의 영화를 상영할 때도 상대국에서 이처럼 행동했던 적은 없었다". 아제르바이잔 대사관과 잘 조율하겠다는 말이 결국 입장문 한 장을 배부하는 선으로 결정된 모양이었다. 친구들이 보여준 A4용지에는 다소 묵직한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이 영화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보존과 주권을 훼손하고 아르메니아의 영토적 주장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아르차흐’라는 명칭으로 언급되는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국제법의 기본 규범과 원칙에 위배되며, 가라바흐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의 불가분의 영토로 인식해 온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도 맞지 않습니다. 이는 심지어 아르메니아에 의해 불법 점령되었던 시기에도 일관되었던 입장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영화는 반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선전내용을 담고 있으며, 민족주의, 분리주의, 극단주의, 군국주의, 복수주의 등을 조장합니다.대체 뭘 어떻게 하면 '민족주의, 분리주의, 극단주의, 군국주의, 복수주의'를 조장할 수 있나? 굉장한 영화다. 그래서 봤다. 알지도 못하는 국가의 이야기를 그렇게 보게 되었다. 1991년,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나보다 일찍 저물어 버린 나라. 그리고 거기 살아가는 놀라운 여자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할 때 어떤 생각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 완성물과 꼭 같은 형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촬영 도중에 전쟁이 터졌고 나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미래를 맞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이다.
영화는 여성 4명을 따라간다. 지뢰와 불발탄을 제거하는 NGO에서 일하면서 두 딸을 키우는 스베타. 시장 출마에 처음 도전하는 정치인 시라누쉬, 여성 센터를 운영하는 가야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유도선수 소세. 네 사람의 삶은 각자의 방식으로 분주하고 또 아름답다.
스베타는 비록 업무 현장에서 매일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리지만 (불발탄 제거 작업은 기계로 할 수 없다. 하나하나 수작업이다.) 딸들과 함께 농담을 하고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낸다. 시라누쉬는 카메론 디아즈 닮은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선거 팸플릿을 나눠주고 사람들을 만나지만, 해당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은 0명이다. 가야네는 의자 뺏기 게임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있는 행사 현장에서도 심각한 내용의 여성 사례 상담 전화를 받고 있으며, 이따금 협박의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계속할 거냐는 물음에는 채 눈물도 못 닦은 얼굴로 '그럼요'라고 답한다. 줄줄이 달린 메달과 함께 슬플 때 꼭 함께한다는 인형을 보여주는 소세의 모습은 그의 굳건한 정신이 동시에 섬세하고 소소한 것들에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괴로움과 불안이 섞여들어 있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유영하는 강인함이 보인다. 강철 같은 강인함보다는 강물 같은 강인함이다. 하지만 이들의 그 강인한 일상은 전쟁으로 휘청인다.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정리해 보자. 아르차흐는 고대부터 아르메니아 왕국의 일부로 존재해 왔던 땅이다. 그러나 소련은 아르차흐를 아제르바이젠의 지방으로 편입해 버린다. 거대한 소련의 붕괴가 다가올 즈음, 그러니까 1988년부터 아르메니아계 주민들과 아제르바이젠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991년 아르차흐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1994년 이제 더이상 소련이 아닌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이 되었으며, 이후 아르차흐 지역은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기를 쥔 지역이 되었다.
이들은 아르차흐 공화국을 선포했고, 정부, 군대, 선거 제도를 별도로 운영했다. 여기에는 아르메니아의 실질적 지원도 있었다. 그러다 이 영화가 촬영되던 중인 2020년,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의 공격과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주둔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아르메니아로 피난 길에 올랐다. 2022년 아제르바이잔은 수도를 봉쇄했고, 거의 1년에 가까운 봉쇄 끝에 2023년 9월 군사작전이 마무리되었다. 202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모든 헌법과 기관들이 해체된다는 선언이 나왔고, 2023년 아르차흐는 더이상 국가가 아니게 되었다.
많은 경우 분쟁의 씨앗은 당사자가 아닌 타의, 주로 거대한 힘에 의해 뿌려지는 듯하다. 이 경우에도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소련이 멋대로 그은 선에 당한 셈이고, 아제르바이잔도 한번 국경선에 들어온 지역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소련은 붕괴되었고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르차흐는 현실 주체로서 힘을 잃었다.
삶과 사람과 도시를 사랑했던 여자들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죽음의 가능성을 가까이서 느꼈기에 소중한 이들을 잃을까봐 약해져 있던 스베타는 다시 딸들을 지키기 위해 직업을 찾고 있고, 시라누쉬는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며 마이크를 들다가 이제는 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집회에서 외치는 첫 마디가 전쟁 규탄이 아닌, 우리의 존재를 인지recognize하라는 명령인 것은 마음이 아프다.) 가야네는 여전히 여성 센터를 운영하지만, 상담 상대들의 반응은 달라졌다. 가정 내 차별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내담자의 첫 문장이 "도시를 그렇게 잃어버리고 나서..."인 경우가 많아졌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소세의 삶이다. 인형과 메달을 가까이 하던 유도선수, 메달리스트를 꿈꾸던 여자는 이제 총을 가장 가까운 친구 삼은 군인이 되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얼굴에 눈물이 흐를 때, 감독은 소세를 깊이 끌어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의 역할처럼 보였다. 아름다웠던 과거를 되돌려 보여주고, 우리가 갈 미래가 그 과거와 닮아 있길 바라며 길을 보여줄. 그렇게 끌어안아 위로해줄. 현실 주체의 힘은 약해져도 이야기는 영속한다. 여자들의 삶도 이야기 안에서 사랑의 빛을 덧입을 것이다.
그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 영화에 있었다. 노란 양초였다. 스베타가 착잡한 얼굴로 하나하나 불을 밝혀 컵에 넣던, 노랗고 길다란 양초. '더 이상 기도하고 싶지도 않고, 꿈도 없다'고 말하는 소세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던 장소에도 똑같은 양초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촛농과, 그럴 때마다 하나씩 더해지는 빛. 거기서 느껴지는 곡진한 사랑. 세상 곳곳에서 분쟁 소식이 매일 더해지는, 이 야만의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어쩌면 더없이 촛불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미친 세상에서 우리는 나날이 기억해야 한다. 파워게임의 주체가 아닌, 사랑이 담긴 이야기만이 영속한다는 사실을.
2025.05.02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2025.05.03 CGV전주고사 8관
2025.05.07 CGV전주고사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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