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1-07-30 21:52:39
<우리, 둘> -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우리, 둘 (Deux, Two of Us)
개봉일 : 2021.07.28 (한국 기준)
감독 : 필리포 메네게티
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레아 드루케, 제롬 바랑프랭, 허브 소근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젊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생의 한순간, 우리, 둘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순간. 니나와 마도는 당신을, 나를,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 둘>은 노년에 접어든 한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며 올해 5월 개봉했던 <슈퍼노바>가 함께 떠올랐다. 모두가 찬란하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느낌이 드는 노년의 사랑.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동성 간의 사랑.
우리가 사랑하고, 너와 내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완전하게 무시하기엔 우리 앞에 놓인 것이 너무도 많기에, 우리를 가릴 수 있는 그늘막 밑으로 숨어들게 되는 사랑. ‘아름다운 우리’가 있지만 당당할 수 없었던 사랑. 늦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행복한 사랑. 자주 다뤄지지 않는 색을 띤 사랑이지만 이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임은 틀림없다.
조금 방심한 채 상영관에 입장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후엔 꽤나 긴 여운에 사로잡혀 니나와 마도의 사랑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니나와 마도에겐 전부인 사랑이지만 누군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세상은 변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사랑에 큰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외치지만 여전히 짊어지기엔 버거운 사랑과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니나와 마도의 눈빛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흔들림 없이 행복하다기보단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사랑하기에 지켜내야만 하는 우리, 둘. 천천히, 끊임없이 이어지는 니나와 마도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몸짓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니나와 마도의 사랑이 무한하다 한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에,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더욱 숭고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우리, 둘 시놉시스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와 마도.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 가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마도의 생일, 쉽지 않은 고백 과정에서 그녀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니나는 가족으로부터 마도를 되찾을 플랜을 짜기 시작하는데…
온 세상을 떠나보내도 함께하고 싶은 두 여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 이야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니나와 마도는 서로를, 함께하는 우리를 사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니나와 마도를 제외한 세상은 둘을 ‘오래된 이웃’으로만 알고 있다. 마도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사랑을 숨겼고 프레드릭과 앤은 엄마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삶이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랑하는 우리, 둘.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우리, 둘의 사랑. 두 사람은 짧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사랑을 속삭인다.
니나와 마도는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 인생을 실감하며 이제 은퇴를 했으니 둘이 처음 만났던 로마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자녀를 두지 않은 니나는 다른 고민 없이 빠르게 집을 팔고 떠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마도는 프레드릭과 앤에게 이사 계획을 밝히려고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요?”
마도의 생일날, 마도는 비밀을 털어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할머니의 미묘한 불안감을 느낀 손자 테오가 이렇게 묻는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요?”
이 사랑은 불안하다. 사실 이 사랑은 언제 끝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나이와 사회적 시선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내일 당장 갑자기 이별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다.
똑딱똑딱 움직이는 마도 남편의 시계 소리, 브레몬트와 니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점점 빠르게 들려오던 세탁기 소리, 프라이팬이 타들어가는 소리, 니나가 찻잔을 톡톡 때리는 소리, 마도가 없어진 날 주위에 들려오던 어지러운 사람들 소리가 주던 불안감. 행복하고 부드럽게 흐르기보단 긴장되고 초조하게 흐르던 순간들. 마도가 쓰러지던 날, 평온했던 두 사람의 시간은 잠시 멈췄다 이내 경직된 상태로 가쁘게 흐른다.
“미안해. 내가 한 말, 진심이 아니었어.”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날, 니나는 마도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친한 이웃일 뿐인 니나는 마도의 옆을 지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니나의 집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오래 쓰지 않은 느낌의 침대, 텅 비어버린 냉장고, 깔끔하다 못해 허전한 느낌의 거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마도의 방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흐르는 방 안에서 니나는 여느 날보다 더 길고 느린 밤을 보낸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나고 마도가 돌아왔음에도 니나는 마도를 가까이서 만나지 못한다. 니나는 현관문 구멍으로 간병인 뮤리엘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몰래 들어가 겨우 마도의 손을 잡아본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사과와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봐도 마도는 반응이 없다.
“기억 안 나? 우리야.”
가족들은 마도에게 간병인을 붙이지만 마도의 상태는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를 만나기 위해 매일 문을 두드린다. 마도가 산책 나가는 날, 타이밍 좋게 함께 집안에 들어간 니나는 뮤리엘에게 신발을 건네받아 마도에게 신겨준다. 애정이 가득한 정성스러운 손길에 신발은 부드럽게 마도의 발에 맞아들어간다.
뮤리엘에게 마도는 돌봐야 하는 환자고, 니나에게 마도는 사랑하는 연인이다. 뮤리엘이 아무리 오랜 경력의 간병인이라 해도 뮤리엘과 니나의 행동과 눈빛엔 각자 다른 마음이 담겨있다. 그 차이 때문일까, 마도는 니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스스로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된 마도. 두 사람에게도 어슴푸레 희망이 보이는듯했다.
“내가 마도의 유일한 사랑이죠”
앤은 엄마(마도)의 유일한 사랑이 오래전에 떠난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와 결혼을 했고,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밝혀진 엄마의 비밀은 앤을 혼란스럽게 했고,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앤은 마도를 호스피스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니나는 한순간에 마도를 빼앗긴다. 마도의 ‘진짜 유일한 사랑’은 니나인데.. 마도의 남편이 책장에 장식되어 있는 오래된 장식용 시계와 같은 인연이라면 니나는 그 시계를 대신할 모든 것인데, 앤과 프레드릭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노년의 나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사랑에 목숨을 걸고 영원을 맹세하기엔 늦은 순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니나와 마도는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둘은 어떻게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호스피스에 들어간 마도는 빙고판을 보며 니나의 번호를 정확히 떠올리고 전화를 건다. 겨우 호스피스 탈출에 성공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문안엔 희망이 아닌 허망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스 안에 들어있던 돈은 뮤리엘이 훔쳐 갔고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로마로 떠나기는커녕 당장 내일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상황. 니나와 마도는 절망적인 현실을 뒤로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20년 전과 같은 음악, 그때처럼 마주 잡은 손. 20년이란 시간에 맞춰 늙어버린 몸은 전보다 무거워졌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마도는 느린 걸음으로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닫는다. 앤이 선물했던 고양이가 복도로 쫓겨나고, 두 사람을 방해하는 현실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다. 니나의 집안엔 이제 마도와 니나뿐이다. 희망도 탈출구도 보이지 않지만, 니나와 마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는 한 그저 서로를, 우리를 사랑할 것이다. 나의 유일한 사랑인 그녀가 내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이자 의미니까.
우리는 연애를 하며 현실적 문제를 맞이했을 때 현실을 따라 사랑을 포기할 것인지, 조금 힘들어도 사랑을 붙잡을 것인지 수없이 고민한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사랑’을 포기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은 끝에 결국엔 후회에 도달했다. 사랑을 지키는 힘은 젊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상대와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 둘>을 보며 한 번 더 느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사랑,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랑. 서로의 등을 감싸 안은 팔을 절대로 풀지 않을 사랑. 유한함을 마주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무한한 사랑. 물리적 한계를 마주하기 전까진 이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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