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9-13 11:44:05
베테랑 2 | 전편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속편
<베테랑 2>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 챙길 시간도 없이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받는 범죄자, 일명 '해치'다. 서도철은 수사 끝에 해치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하는 일종의 자경단임을 파악한다. 때마침, 해치도 인터넷에 새 예고편을 공개한다. 서도철에게 한 번 체포됐었고, 임산부를 죽인 범죄자 '전석우'(정만식)를 다음 살해 대상으로 지목한 것.
이에 형사들은 전석우 보호 작전을 개시하고, 전석우 집 앞에서 분노한 시위대와 대치한다. 그 과정에서 서도철은 칼을 꺼내든 인터넷 방송인을 거침없이 제압하는 순경, '박선우'(정해인)를 만난다. 범죄자에게 무자비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 서도철은 박선우를 팀에 합류시킨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해치의 범행이 더 대담해지고 경찰이 그에게 농락당하자, 서도철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박선우를 받아들인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를.
<베테랑>의 의문, <베테랑 2>의 대답
2015년 여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연도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흥행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통쾌함'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재벌 악역 클리셰의 집합소인 '조태오'(유아인)를 비판하는 전개와 때리는 액션의 타격감은 OST만큼이나 경쾌하고 시원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선구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은 물음표도 남겼다. 주인공 서도철의 행적을 곱씹을수록 그 물음표는 커진다. 그는 사람 패려고 경찰 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먼지를 묻힌 무기를 쥐어준 뒤 정당방위라며 범죄자를 때리는 장면은 코미디이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섬뜩하기도 하다. 단지 형사라는 이유로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암시처럼도 보이니까. 그 폭력이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9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통쾌함에 가려진 이 딜레마를 고찰한다. <베테랑 2>는 사적제재라는 프레임 안에서 범죄자를 향한 폭력과 응징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결과 오락성과 대중성은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확실하다. 전편에서 확립한 성공방정식을 답습하는 대신 도전을 선택한 덕분에 <베테랑 2>는 품격 있는 블록버스터로 거듭났고, 3편까지 기대케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도철이라는 물음표
사실 <베테랑 2>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되려 늦었다. 자경단원의 사적제재를 묘사한 작품은 <열혈사제>, <빈센조>, <빅마우스> 등 차고 넘친다. 자경단원 경찰도 이미 <비질란테>에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신입 형사 박선우가 사실 자경단원이고 악역이라는 사실은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만 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대신 <베테랑 2>는 관점을 달리하여 뒤늦은 도착, 식상함이라는 한계를 돌파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자경단원의 이야기와 사연에 집중하는 반면, <베테랑 2>는 자경단원을 관찰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서도철이 있다. 특히 서도철의 직위와 성향이 서로 어긋나는 모순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서도철의 언행은 거칠다. 전편에서 체포한 전석우가 주취감경 판결을 받아 이르게 출소하자 그런 범죄자는 때려죽여도 시원찮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해치를 쫓으면서도 내심 그가 왜 더 악독한 범죄자를 죽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그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준다. 마치 자경단이 공권력을 대신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듯이. 이처럼 경찰답지 않은 언행은 박선우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기제처럼 느껴진다.
전편보다 분량이 늘어난 서도철의 가족 이야기도 그의 모순된 언행을 강조한다. 그의 아들은 꾸준히 교내 폭력 사건에 휘말렸고, 다른 애들에게 맞으며 지내던 피해자였다. 하지만 서도철은 아들의 피해 사실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애들은 서로 싸우며 크는 거라며 방관한다. 이는 그의 폭력적인 일면, 더 나아가 그와 박선우가 본성적으로는 결이 다르지 않은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해치 덕분에 찾은 답
하지만 <베테랑 2>는 서도철의 모순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뒤쫓는다. 서도철은 경찰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먼저 변한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자신이 무시한 '애들 싸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소해 보이는 애들 싸움이 도를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비로소 그 결과를 실감한다. 정당방위라는 명분만 있으면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마침내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눈을 뜬다.
그제야 서도철은 박선우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고, 그를 의심한다. 이는 영화가 박선우의 정체를 굳이 숨기지 않는 이유다.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었고, 그의 정체를 미스터리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 2>는 박선우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그와 서도철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슷한 결을 지닌 듯 보이던 그들이 대립하게 되는 계기가 등장할 때까지의 긴장감을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몇몇 카메라 구도나 연출은 유달리 눈에 띈다. 일례로 박선우의 옆얼굴과 서도철의 정면 얼굴, 혹은 그 반대를 동시에 한 화면에 잡으면서 그들의 관계성을 부각한다. 직선으로 자르지 않은 화면 분할도 독특하다. 서도철은 검은 마스크를 쓴 박선우의 얼굴 앞에 작게 위치한다. 마치 그가 박선우의 계략에 집어삼켜지는 듯하게. 그 덕분에 차도철이 형사이자 아버지로서 고통받는 이야기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그 결과 <베테랑 2>는 마치 류승완표 <다크나이트> 같기도 하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너와 나는 같다"라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법을 가볍게 어긴다는 점에서 그들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 배트맨 역시 조커를 거울삼아 자기 정체성에 관해 고민한 끝에 '다크나이트'가 된다. 이러한 둘의 관계성은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와 유사하다. 서도철 또한 박선우를 거울삼을 때 성숙한 '베테랑' 형사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액션이라는 느낌표
이 지점에서 <베테랑 2>는 액션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써 영리하게 활용한다. 액션은 리트머스 종이 같다. 더 잔혹해진 연출로써 차도철과 관객을 동시에 시험에 빠트린다. 액션의 중심에 박선우를 위치시켜 정의 실현과 사적제재의 선을 넘나드는 불편함을 유발하고, 경찰이라기에는 과한 그의 대응을 어디까지 용인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이 순간 관객과 서도철의 시선은 일치를 이룬다.
액션 시퀀스의 배치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액션만 따라가도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도박장을 습격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전편처럼 경쾌하다. 반면에 자극적으로 연출된 남산과 약쟁이 골목 시퀀스는 질문을 던진다. 박선우의 범죄자 제압 방식을 보다 보면 그가 자기 과라고 확신한 서도철의 판단이 과연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클라이맥스에서는 서도철과 박선우를 가르는 경계선을 보여준다. 뻔할지도 모르지만, 그 선은 살인이다. 다만 살인이라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한 서도철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자칫 식상할 뻔한 대답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박선우를 제압하는 액션보다 그를 살리려는 액션이 눈에 띄기에 더 독특한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액션 자체의 질이 상당하기에 액션에 담긴 스토리텔링은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공간의 특성을 이용한 장면이 뇌리에 박힌다. 복도처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전과 그 이후 갑작스레 등장하는 넓은 공간에서의 격투라는 패턴이 반복된다. 그런데 액션 합의 타격과 속도감이 뛰어나다 보니 넓은 공간에서 액션이 펼쳐질 때 장점은 극대화되고, 부딪히는 인물들의 갈등도 덩달아 극대화될 수 있다.
형보다는 부족한 짜임새
다만 <베테랑 2>의 만듦새는 아쉽게도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일단 여러 층위의 플롯을 쌓아가는 전개가 매끄럽지 않다. <베테랑 2>는 서도철의 가족사나 해치와의 추격전 등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한 데 모여서 터지는 구조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다 보니 전편에서 비해 폭발력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은 악역의 존재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서도철의 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박선우의 서사는 빈약하다. 개인적인 동기도 제대로 못 보여주니 매력은 부족하고, 그저 서도철을 각성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결국 선한 마스크와 대비되는 광기 어린 눈빛을 보여준 정해인의 연기와는 별개로, 박선우는 조태오만큼 부각되지 못한다. 자연히 <베테랑 2>는 구심점 하나를 잃은 듯 보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활용하는 방식도 문제다. 물론 개인 방송을 등장시킨 이유는 납득할 수 있다. 이는 사적제재가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다. 근래에 밀양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되고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듯이, 사적제재가 유발할 수 있는 폐해를 경고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다만 지금의 방식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개인 방송의 일부를 스크린에 직접 띄워서 보여주데, 그럴 때마다 분위기가 끊기고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톤과 매너가 근본적으로 다른 영화와 인터넷 방송이라는 매체 간의 괴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베테랑 2>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영화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보이기 때문.
시리즈라서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베테랑 2>는 여전히 칭찬이 아깝지 않다. 시리즈인데도 1편의 성공 공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전편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전편이 남긴 의문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다른 맛과 재미를 갖춘 속편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그 결단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는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범죄도시>가 2편부터 4편까지 관성에 의존한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기에 관객의 반응도 어떤 작품보다 궁금하다. <베테랑 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환경은 이미 만들어졌다. 추석 연휴 동안 경쟁작이 없고, <파묘>와 <범죄도시 4> 이후로 마땅한 작품이 없었으니 관객이 몰릴 여건은 충분하다. 다만 작품성과 메시지를 챙기기 위해 대중성과 상업성을 다소 내려놓았으니, 과연 이 선택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미지수일 따름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9년 만의 속편이 필요했던 이유를 윤리와 액션으로서 증명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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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무채색의 꿈을 채색하는 영화
무채색의 꿈을 채색하는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가섭 배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영화로 선정된 '오랜만이다'는 같은 꿈을 꾸는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담아낸 영화다. 8월 13일, 엽연초하우스에서 이가섭('오랜만이다' 현수 역) 배우를 만나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라는 작품에서 현수 역할을 맡은 배우 이가섭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오랜만이다’라는 영화는 누구나 다 겪었던 꿈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음악의 가사가 굉장히 와닿고,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로 만들어졌습니다. 음악이라는 소재, 꿈이라는 스토리, 색감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주목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연경의 서사를 조금 주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된 연경이가 사회를 생각하면서 버스를 타고 있는 장면에서 연경이의 눈을 보면 뭔가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연경이의 감정선을 따라가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 가사와 이런 게 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통해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릴 때는 꿈이라는 게 항상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되게 무채색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저는 되게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극 중 현수가 하는 말을 듣고, ‘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꿈에 대한 위로를 주는 장면이 많았는데 배우님께서 위로받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위로보다는 공감을 한 장면이 많았습니다. 내 손 앞에 있는데도 안 잡히는 느낌을 봤을 때, 그것을 보면서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극 중에서 피아노를 치셨는데 원래부터 피아노를 치셨나요?
아니요. 이번에 역할을 위해 연습했어요. ‘떴다 떴다 비행기’도 한 손으로만 할 줄 아는 실력이어서,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뭔가 취미가 생긴 것 같아 즐겁고 좋았습니다. 극 중에 ‘비창’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헤드폰 쓰고 혼자서 치고 있으면 괜히 ‘나 좀 뭔가 멋있어 보여’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웃음).
영화 속 가장 좋아하는 OST는 무엇인가요.
‘너의 말들은’이라는 곡이요. 가사에 ‘내가 나의 말은 나를 좀 무너지게 만드는데 너의 말은 나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과거 연경이가 현수한테, 현수가 연경이한테 해줄 수 있는 말들이었다고 생각해서 더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영화 풋풋한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편한 영화이고, 좋은 음악들이 많이 있는 영화이니 즐겁게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혜지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민서, 신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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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기억, 기록, 기억
우리 모두가 너무 다른 것 같아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인류는 비슷한 보폭을 맞추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 과테말라에 대해 아는 건 마림바와 향기로운 커피밖에 없던 내가, 과테말라의 젊은 감독이 만든 <스파이의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때처럼. 이 영화는 <액트 오브 킬링>을 처음 보았을 때 못지않은 충격으로 내게 강렬하게 남았다.
영화는 한 노인이 법정에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비쩍 말랐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하다. 노인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감독에게 촬영을 부탁해 둔 자리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해 내부에서 목격한 유일한 증인으로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이게 생의 마지막 증언이 될 것을 알았기에 촬영을 부탁했던 것일까? 증언 2주 후 그는 세상을 떠난다.
그는 젊어서 기자였다가, 내부무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가 일하는 정부는 국민을 학살하는 정부였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부라 부를 수 있는가? 불행히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소위 "과테말라 내전"이라 부르는 1970년부터의 36년. 내전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말의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놓은 것이 아닌지.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뿌리에는 돈이 있다. 미국 유수의 기업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이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상황에서, 좌파와 빈민, 토착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쌓여 반군으로 조직되었다. 군사독재자를 필두로 한 과테말라 정부는 공식 군대 외에 특수군을 창설했다. 이들의 역할은 "반사회적" 인물 제거.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와 살해를 당했다. 토착민들이 사는 산간지역이 토벌되고, 바른말을 하던 언론인들도 실종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정확하게 살해와 도륙의 의도를 갖고 진행되었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자, 법정에서 증언한 사람, 당시 내무부에서 일하던 사람, 엘리아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말하자면 스파이였다. 군부독재 정부의 학살에 반대하는 사람임을 숨기고 들어가서, 필요한 정보를 취해 전달했다. 곧 살해당할 사람을 미리 파악하고 피신시키는 일도 있었다. 정보를 얻고 전달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익명성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루어져야 했다.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짓밟으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농담을 웃어넘겨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스스로를 "두더지 견습생"이라 부르면서.
때로는 잘했다 싶은 일이 있어도 거울 속 자신 외에는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고, 자신이 느끼는 압박감이나 괴로움을 토로할 상대도 많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의심하는 것. 단지 침묵하는 것. 군부독재 사회에서 사는 사람, 특히 스파이로 사는 사람에겐 제1의 생존 원칙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아나이스 타라세나 감독 본인도 아버지가 독재 정권을 피해 망명 생활을 했다고 한다. 법정 증언을 촬영할 때까지도 이를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지만, 관련 자료를 좇는 과정에서 점차 이 촬영은 영화로 발전해 간다. 1915년이나 1920년 영상도 남아있는 기록보관소에 1970년대 영상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언제나 증거를 파기하고 역사의 망각을 기다린다.
아나이스 타라세나 감독은 기록의 부재에 절망하는 대신, 그 부재마저 기록의 소재로 되살려냈다. 용기와 성실함으로 촘촘하게 채운 결과물이 이 영화다. 당시 엘리아스와 함께 했던 동료들의, 그때 살해당한 언론인의 자식의, 기록자료원 직원의 인터뷰를 차곡차곡 담는다. 끌려가는 사람들이, 항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존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거기 남아 있다.
목숨을 걸고 남기는 작은 마크들. 사력을 다해 남기고 또 없애야 했던 정보의 조각들. 당시 엘리아스가 전달했던 정보도 그랬지만, 지금 카메라 앞에 인터뷰하는 사람들 또한 있는 힘껏 증언하고 있다. 가끔 갱단이 한 짓으로 보도되지만 실상은 그들의 소행이 아닌, "기억하고 지켜보는" 자들의 소행이 여전히 있다고 말을 아낀다. 여전히 익명으로 처리해야 안전한 이름들이 있는 것이다. 감독의 내레이션 또한 "여전히 죽음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라고 한다. 과테말라의 현대사에 무지한 사람이 들어도 위협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학살자가 여전히 살아있고, 21세기에도 목격되었으며, 도망자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에게까지 생생한 현실적 공포로 와닿았다. 살아있다는 건, 내가 영화를 보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나타나는 것까지도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니까. 이 공포는 아마도 과테말라와 무관한 내 것이라기보다는, 이 영화를 만들고 전하는 사람들이 느낀 공포가 전이된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과테말라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 "내전"이라는, 한껏 톤을 낮춘, '학살'이라는 거친 단어를 감춘, 용어 선택 또한 그런 공포에 기인한 것일 테다. 당시 엘리아스의 기록에는 물론, 지금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에게도 두려움이 생생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싸웠다. 그렇게 공포 속에서도 침묵을 깨야 한다고, 엘리아스의 삶이, 또 나아가 이 영화가 말한다. 살아남아 증언하는 사람들이, 본인에게도 괴로운 기억을 필름으로 되감는 사람이, 기록하는 힘이 말한다.
도시 외곽에는 여전히 그 시절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은 차들이 쌓인 채로 녹슬어 썩어 가고 있다. 그 시절 사람들이 납치당하고, 고문당하고, 총에 맞고, 끌려갔던 곳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 속 녹슨 금속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파상풍 같은 아픔을 계속해서 남기고 있다. 기록이 하는 일은 아프더라도 그 자리를 되짚는 일이다. 우리가 여기 있었노라고. 여기 있다고. 도시에 고요하게 가려진 전쟁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살해당한 사람들이 잊히지 않도록.
신념을 가지고 죽은 이를 기억한다. 신념을, 살리는 힘을, 서로를. 그 신념이 누군가에겐 기적이 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그 나라의 명암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시기가 끝내 아주 어둡게 끝나지 않도록 하는 어떤 힘을 사랑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테말라 현대사와 엘리아스라는 인물의 일대기에 경악하는 한편으로, 기억과 기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따금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연필 자국이 낫다" 같은 식의 말을 듣는다. 그럴 때 보면 기록은 기억의 반대편에 있는, 그래서 기억의 단점을 보완하는 도구인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역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억과 기록은 그렇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형태를 달리 하면서 몸피를 비트는, 거대하고 동일한 하나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기록되고, 또 기록이 기억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이 몸피를 비틀 때마다 역사의 비늘은 다른 빛으로 빛난다. 살육에 대한 공포로 기억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침묵 뒤에,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의 침묵이 있었음을. 나아가 그 침묵을 스스로 깸으로써 무겁게 사회를 내리누르던 침묵을 아예 걷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엘리아스의 증언의 연장선인 동시에, 언젠가 새로운 기억이 될 새로운 기록이다. 침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한 겹 더 아로새기는 작업이다.
학살은 늘 피해자 혹은 가해자를 주목하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억까지 눌러 담아, 기록은 더욱 풍성해지고 망각과 두려움에 맞서는 힘은 그만큼 강해진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는 아직 과테말라에서 일반 상영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시사회만 2회 진행했고, 해외 영화제 상영으로 안정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 6월 중에 4번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국제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사이 또 한 걸음이 추가된 이 영화의 여정을, 언젠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될 날을 기대한다. 그때는 더욱 풍성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전주국제영화제 남은 상영 일정
▶ 5월 5일 20:30 CGV전주고사 7관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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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이어준 글자들의 이야기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저명한 각본가 볼프강 콜하세의 실화 기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페르시아어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책 한 권으로 페르시아인 인척 거짓말을 시작한 ‘질'이 페르시아어를 배우려던 독일군 장교 ‘코흐'에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며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이다.
우연히 얻게 된 책의 주인 ‘레자 준'이라는 이름으로 페르시아인 행세를 하게 된 ‘질'은 목표가 그곳에서 살아남기인지 도망치기인지도 모를 정도로 하루하루 절박하고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런 주인공을 중심으로 문자(또는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레자와 질은 동일 인물이지만 그 경우가 표면적인 경우 레자, 심층적일 경우 질로 표기)
첫 번째, 언어를 가르치는 레자와 코흐의 관계(표면적)
이 관계는 가장 표면적이며 모든 관계의 계기가 되는 경우이다. 코흐는 레자에게 매일매일 페르시아어를 조금씩 알려달라고 하고 레자는 그로 인해 매일 주방 일을 마치고 코흐의 업무실로 찾아간다.
두 번째, 둘만의 언어를 갖게된 레자(질)과 코흐의 관계(심층적)
이 경우 위와 같은 것 같지만 조금 더 심층적인 형태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코흐의 입장에서는 언어를 가르쳐주는 이가 동일한 페르시아인 ‘레자'처럼 보이지만 ‘레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질'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데에만 국한되었다면, 이 경우인 질과 코흐의 관계는 둘만의 주고받는 언어가 생겼을 때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망가는 유대인들 틈에서 코흐가 레자에게 배운 언어로 외칠 때,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레자와 코흐 둘만 존재하는 공간이 된다. 둘만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보편적인(안면있는) 관계 이상으로 특수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의미다. 질이 만든 언어가 문화를 가지고 사고(思考)하는 방식까지 구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둘만의 언어로 소통할 때 서로로 인해 변화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질은 상황으로 인해 코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언어를 만들어낸다. 코흐 또한 초반에 무뚝뚝하고 자비가 없으며 정석을 고집하는 성격으로 보여진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잘대해주는 것이 코흐의 자신만의 룰이었을수도 있고, 유대인이 아닌 페르시아인이기에 룰을 어기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많이 사람들의 의심이 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레자에게 가는 것은 이전의 모습과 조금 다르게 보여진다.
다시 말해, 코흐와 레자는 하나의 관계를 맺는 듯하지만 실은 언어를 가르치는 레자와 질이라는 사람과 관계를 생성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수감자들과 질의 관계
수감자들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된 질은 수감자들의 이름에 빗대어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낸다. 수감자과 질의 관계에서 이름들을 소통의 도구로 이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직접 이름을 부르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며 하나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주방과 명단 정리 일을 맡게 된 레자는 배식을 할 때 마주하는 수감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본인을 위해 읊지만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셈이 된다. 그리고 질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 덕분에 끝까지 페르시아인 행세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은 질이 이름을 외운 덕분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 3천 개의 이름은 3천 개의 거짓말이 되고 단어가 되어 역할을 다한 뒤 다시 3천 개의 이름으로 돌아간다.
질이 수용소 생활을 버티기에 조력자처럼 보일 수 있는 가해자인 코흐에게 자세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동의하나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한 이유로 동생이 나오지만 그 관계가 설득력을 가지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딱히 추측이 필요한 부분도 아니었고 알려준다고 크게 달라질 부분도 없었겠다는 의견이다. 두려움으로 둘러싸인 긴장감 속에 피어나는 유머와 관객이 보고싶어하는 걸 잘 알고 보여주는 감독에게 실화 기반의 묵직하게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은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써 전달하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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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벤더와 레드에서 핑크로
수학여행을 가든, 노래방을 가든, 길거리를 돌아다니든 나의 질풍노도와 함께 그녀들은 함께 했다. 어떤 날은 우리를 향해 s.e.s는 고백했다. ‘너를 사랑해, 나의 마음이, 너를 생각할수록.’ 그러다가 이에 질세라 다른 날은 핑클이 부탁했다. ‘언제나 날 지켜줄 너라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줘.’ 계속되는 사랑 고백에 수많은 사람들은 라벤더색 풍선(S.E.S)을 들고 목이 터지라 “에쓰이에! 에쓰이에!” 외쳐댔고, 또 반대편에서는 빨강 풍선(핑클)을 흔들며 격렬하게 소리 질렀다. “핑클 짱 핑클 짱.”
빨강펄색깔은 핑클의 상징이었다. 그녀들은 가요대상을 탄 걸그룹이었다.최초의 걸그룹 S.E.S는 라벤더 물결이 가득한 연보라빛 풍선!철부지 녀석 하나가 내게 물어왔다. “넌 도대체 에스이에스와 핑클 중에 누굴 좋아하는 것이냐?” 평소 핑클을 좋아하던 그 녀석은 나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너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이 안타까운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선 삼국지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황건적의 난 이후 난세의 어려움 속에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꽃과 같이 피어나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 개개인의 인물들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 바로 삼국지에 즐거움이거늘, 위, 촉, 오중에 어느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당신은 충성스러움과 신의의 표본인 산상의 <조자룡>과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덤벼도 거뜬하게 막아내는 무력과 달리 한 여인을 향한 로맨티시스트 <여포>, 도저히 승부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지략으로 판을 바꾸는 <제갈공명> 등. 각 나라마다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 많은데, 어찌 위, 촉, 오중 하나를 고르란 말인가? 그럼에도 선택을 강요한다면 나는 SES에서는 유진을, 핑클에는 이진을 선택하겠다. 그러자 그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피아 식별을 향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이후 내게는 수많은 걸그룹이 스쳐지나갔다. 대학 시절 함께한 소녀시대, 군생활을 도와준 2NE1, 그러나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위로와 기쁨을 허락해준 두 그룹만큼의 임팩트는 찾아오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놀랍게도 그녀들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아이가 생겼고, 자연스레 그녀들도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돌 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방송에서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그 시절 설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때로 라벤더 빛으로 때로 붉은 장미 빛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삼십대에 만난 <블랙핑크> 는 내 삶에 에너지와 즐거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그렇게 지내던 내게 또 강렬한 색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블랙핑크> 다양한 걸그룹의 진화 속에서 한국의 팝 장르는 K-POP이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걸그룹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뉴스들을 간혹 볼 때마다, 그 시절, 보라색, 빨간색 풍선을 흔들어 대던 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혼과 육아, 그리고 끝나지 않은 학업과 노동의 현장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잘 버티고 있다며 다독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었고, 걸그룹은 멀고 먼 이야기로 지나가고 있었다. 연일 바쁜 삶 가운데 축 쳐진 볏단처럼 살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땀 흘리는 러닝머신 속에서 나의 속도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가사 중에서...헬스장을 갈 때마다, 이 곡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지겹고,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트와 함께 멜로디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한 번 더 힘을 가했다. 그리고 멈추려 할 때 로제는 말했다. “두 번 생각해~” 그렇게 두 번 생각하고 있다 보면 제니는 내가 젤 좋아하는 부분을 부르고 있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어느덧 이 노래는 삼십 대를 보내는 내게 다시 흥과 에너지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헬스장에서 수영강으로 옮겨진 나의 무대에 블랙핑크는 때로 봄에는 휘파람으로 시원함을, 여름에는 마지막처럼으로 청량함을, 가을에는 뚜두 뚜두로 열심을, 겨울에는 불장난으로 한 번 더 뛸 수 있게 해 줬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블랙핑크의 팬으로서 즐겁게 시청할 수 있었다. 음식에 있어서 풍미를 증폭하고 개선케 하며, 밸런스를 가져다주고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재료를 통해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든 《소금. 산. 지방. 불》을 독창적인 색감과 영상미로 이끌어주었던 캐럴라인 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라는 사람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블랙핑크가 되기까지의 장면들을 통해 그녀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제니의 인터뷰와 솔직한 모습은 아빠미소를 갖게 만들었다. 팬으로서 본 다큐멘터리였기에 전반적인 대부분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고, 특별히 그들의 프로듀서인 테디가 생각하는 블랙핑크와 노래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음에 즐거웠다.
<블랙핑크> 한명 한명의 인터뷰. 그것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다큐멘터리다!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K팝을 단순히 십 대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트로트처럼, 재즈처럼, 클래식처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고, 나이와 출신과 종교와 직업을 떠나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길 바랬다. 그것을 블랙핑크를 통해서 설득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나왔으면 했다. 블랙핑크 다큐멘터리에 k-pop 장르의 접근성을 다뤄 달라는 것이 다소 방향성이 엇나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K-POP은 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충분히 즐기고 누릴 수 있음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 나이에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대한 지지와 인정이 필요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절처럼 신곡이 나올 그날을 매일 기다리고, 책받침과 스티커는 필요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싶을 때, 청량한 햇살과 드라이브할 때, 덤벨을 하나 더 들어야 하는 그때...
그리고 내 마음속에 여전히 청춘과 젊음과 에너지를 느끼고 싶을때
나는 계속해서 블랙핑크를 찾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라벤더와 레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는<레드>와 <라벤더>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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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잡하고 우아한 사랑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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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Les choses qu'on dit, les choses qu'on fait, Love Affair(s))
개봉일 : 2021.11.11. (한국 기준)
감독 : 엠마누엘 무레
출연 : 카멜리아 조다나, 니엘스 슈나이더, 빈센트 맥케인, 에밀리 드켄, 귀욤 고익스
난잡하고 우아한 사랑에 대한 고찰
사랑을 정의할 수 있을까? 배려는 곧 사랑일까. 배려보다 앞서는 소유욕 또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말한다면 어떠한 이유로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랑에 과연 답이 있을까?
사랑이 어그러지는 순간, 사랑에 걸려 무너지는 순간.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순간들을 겹겹이 쌓아올리며 여러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 <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프랑스 영화 특유의 감성과 색감, 그를 더욱 빛내주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 그리고 모든 것을 고고하게 감싸주는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퍽 매력적이다. 잔잔하고 조용한 시간 안에 맺혀버린 여러 인물들은 각자가 가진 감정의 파고에 부딪히며 고뇌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했던 이의 마음과 자신의 진짜 마음을 깨닫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당신은 나를 사랑했던가. 이 심도 있는 질문 아래 답을 내리지 못한 인물들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여러 감정을 담은 미소를 짓는다.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꽤 단순했다. '니엘스 슈나이더'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하트비트>와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통해 내 심장을 두드렸던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니. 나에겐 다소 낯선 이름들로 가득하더라도 그를 보기 위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 니엘스 슈나이더뿐만이 아닌 새롭고 아름다운 얼굴들을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게 되었다.
특히 에밀리 드켄 배우의 연기가 눈에 들어왔었는데, 알고 보니 <로제타>의 주연을 맡은 배우였다. 내가 여러 번 보지 못해 잘 기억하지 못했을 뿐, 걸출한 연기력을 갖춘 멋진 배우였다. 씁쓸하게 식어버린 그녀의 표정에서 내가 평소에 믿었던 사랑의 본질을 진하게 느꼈다. 결국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순간도 있다는, 그 쓰디쓴 본질을 말이다.
<러브 어페어>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모두가 믿고 싶어 하는 달콤한 사랑의 향을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사랑에 빠져 활활 타오르는 마음과 그 뒤에 널브러진 깨어진 조각들, 사랑에 대해 질문하고 소유를 포기하며 얻게 되는 가벼움, 그리고 100% 이해할 순 없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우습게 말하자면 끝없이 달리는 막장드라마, 진지하게 말하자면 난잡하고도 우아한 사랑의 드라마라고 정의하고 싶다.
러브 어페어 :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가 하는 것 시놉시스
네 이야기를 들려줘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소설가를 꿈꾸는 막심은 시골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사촌 형의 여자친구 다프네에게 자신의 복잡한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막심의 이야기를 듣던 다프네 역시 남몰래 간직했던 자신의 연애담을 슬그머니 꺼내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남편 프랑수아가 출장을 가고 다프네 혼자 남은 집에 프랑수아의 사촌 막심이 도착한다. 막연한 꿈과 사랑의 상처를 안고 도착한 막심은 다프네의 부드러운 말씨에 마음을 열고 지나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안될 이유를 충분히 알면서도 이겨낼 수 없는 사랑을 했던 막심과 관심사, 감정으로 사랑을 만들어온 다프네. 새로운 이끌림을 따라 루이즈를 떠난 프랑수아, 사랑을 위해 소유를 포기한 루이즈. 이들은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이끌리고, 버림받고 또다시 사랑한다. 지금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 느껴지는 사랑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기라도 하듯이.
"근데 사랑에 규칙이란 게 있을까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사랑이다. 딱 정의할 수 없듯이, 이들이 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륜으로 엮인 사랑, 그것도 막장 불륜인데.. 그를 가만히 앉아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이게 '남들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역시 이런 사랑 이야기는 멀리서 듣는 게 가장 재밌다.
사실 유교걸의 시선에 이들이 이어가는 사랑은 그다지 아름답진 않다. 그럼에도 불쾌감보다는 옅은 호기심을 느꼈다는 건 그만큼 인물들의 감정을 적절히 담아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규칙은 없지만 사랑이란 감정 하나에 기대 그렇게 2시간이 흘러간다. 누군가는 사랑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하는 모든 것이 즉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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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세 얼굴
故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세 얼굴은 포개진다. 첫 번째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4)다.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으로 분한 그는 재난을 마주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정반대였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을 상관으로 둔 차정원은 모든 일을 정략적으로 처리하는 데 능숙한 인물이다. 어떠한 선택에 담긴 공적 의미가 아닌 그 선택이 표와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는지만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상관이 연루된 극비 프로젝트 때문에 되레 자신과 딸의 안전을 위협받고, 끝내 상관에게 버림받은 후 기존 가치관을 버리고 ‘생존자’로서 목소리를 낸다. 이때의 차정원은 웃는 얼굴이다.
두 번째는 〈행복의 나라〉(2024)에서의 군인 박태주다. 박태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에게 총을 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으로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경호원 3명을 살해했다. 재판에서는 박태주가 내란 모의에 적극 동조했다는 검사의 입장과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변호사의 의견이 대립한다. 두 입장의 길항이 이어지고, 그렇다면 군인은 어떤 명령이든 복종하기만 하는지, 그것은 아이히만의 변명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가 의아할 때쯤 박태주가 수동적으로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는 군인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박태주의 총알에는 상관의 명령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도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며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자신을 굽히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국가는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차정원의 당부는 시대를 거슬러 오른 박태주에게서 ‘국민을 지키기는커녕 되레 억누르며 위협하는 국가는 총의 주인이 아닌 총구의 표적이 된다’라고 응답받는다.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임하는 박태주의 얼굴은 내내 담담하고 결연하다.
그리고 차정원과 박태주가 아닌 인간 이선균의 얼굴이 있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2달 동안 그의 얼굴은 내내 지치고 버거워 보였다. 그는 노골적인 피의 사실 공표와 자극적 보도로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비난을 받았다.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 책임의 형태가 결코 이런 식이었을 리는 없다. 수사기관과 언론, 유튜버와 그들이 자극적으로 재생산한 단편적 진실들을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하거나 품평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에 대한 실망감을 너무 쉽게 비난의 형태로 표했고 모든 것을 손쉽게 단정했다. 내게는 이 모든 게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나중에 ‘아 그래?’ 하고 이내 잊어버렸으면 그뿐일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니었다.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낸 넓고 느슨한 연결망에서 관계 맺고 있던 나와 그가 이 추문의 파도를 마주했을 때 각자 느낀 충격의 격차는 거대했다.
나는 그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의 죽음에는 나의 책임도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를 클릭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살펴보고, 수사기관과 언론‧미디어의 행태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내가 재판관이라도 되는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쉽게 내뱉고……. 이후, 다시는 전반적인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누군가의 추문에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그리고 그 이전의 비슷한 수많은 죽음에) 그토록 슬퍼하고 반성하던 사람들은 이내 다른 먹잇감을 찾았고 물어뜯었다. 나 역시 그런 소용돌이에 말을 보태지 않고 빠져 있겠다는 다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만큼 우리를 휩쓸리게 만들고 관여하게 하는 추문의 파도는 일상적이었고, 거셌다. 나는 그의 죽음이 내게 남긴 무거운 질문에서 출발한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비틀거리고 있다.
〈행복의 나라〉에는 박태주의 변호사 정인후가 막후에서 재판을 좌지우지하는 군인 전상두(전두환)와 대면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영화 초반, 유능한 변호사 정인후는 군인들이 선을 넘는 것 같다며 짐짓 대범한 태도로 전상두에게 재판에 임하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영화 후반, 재판이 법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른다는 현실을 절감하고는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전상두 앞에 무릎 꿇고 울며 애원한다. 전상두는 첫 만남에서의 모욕감을 몇 배로 되갚는다. 그러고는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기에 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정인후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가 이 몽둥이를 들어야겠나?” 변호사가 아닌 군인이 몽둥이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인후가 기대는 법리는 전상두가 쥐고 있는 몽둥이의 힘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그리고 쿠데타로 몽둥이를 완전히 그러잡은 전상두는 우리가 알고 있듯 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만약 몽둥이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면, 그 손잡이는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군인이 아닌 보편주의에 입각한 법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전상두는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단죄받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사실상 ‘끝났다’(이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은 이 표현을 쓰는 데 머뭇거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제 모든 국민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받고, 재판받는다. 법의 영역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이 원칙을 두루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만 그렇다. 현실의 이선균 배우는 그가 법치의 원칙에 따라 마땅히 누렸어야 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북돋아야 할 법률가 출신의 위정자는 되레 정인후보다는 전상두의 방식으로 법을 대하는 듯도 보인다. 그리하여 차정원과 박태주를 경유한 이선균 배우의 얼굴은 이런 질문으로 나아간다. 총, 칼, 법, 여론 등 그 모습을 달리하며 반복해서 휘둘리는 몽둥이의 속성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 몽둥이가 꼭 필요할까? 우리는 어떻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가? 몽둥이의 폭력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한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선균과 함께했음을 기억합니다”라는 〈행복의 나라〉 영화 자막을 보고 울컥했다. 다시는 그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데,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여러 감정이 맞물려서 한동안 몸이 저릿저릿했다. 엔딩 크레딧까지 마무리되고, 모든 관객이 퇴장하고 혼자 앉은 텅 빈 영화관에서 그의 영화와 삶이 남긴 질문과 나의 다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선균 배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온 마음을 담아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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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볼버 - 전도연, 임지연 배우 두 명 빼고 모두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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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리볼버 #전도연 #지창욱
“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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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라는 매게체가 주는 시각적 청각적 황홀경의 최대치
*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0월 27일 개봉하는 작품 ‘아네트’의 돌비시네마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예술가들의 도시 LA,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함께 인생을 노래하는 두 사람에게 무대는 계속되지만, 그곳엔 빛과 어둠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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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 리차드> 1차 예고편
테니스계의 전설 월드 챔피언 윌리엄스 자매
그들의 신화는 여기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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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메인 예고편
매일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가 되어 버린 시리아의 세카. 음악마저 금지된 혼란 속 피아니스트 카림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피아노를 팔아 연주를 마음 껏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총격으로 피아노가 망가져 버리고, 피아노를 고치기 위해선 테러와 폭격을 피해 부품이 남아 있는 도시로 향해야만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