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09-13 11:44:05
베테랑 2 | 전편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속편
<베테랑 2>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 챙길 시간도 없이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받는 범죄자, 일명 '해치'다. 서도철은 수사 끝에 해치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하는 일종의 자경단임을 파악한다. 때마침, 해치도 인터넷에 새 예고편을 공개한다. 서도철에게 한 번 체포됐었고, 임산부를 죽인 범죄자 '전석우'(정만식)를 다음 살해 대상으로 지목한 것.
이에 형사들은 전석우 보호 작전을 개시하고, 전석우 집 앞에서 분노한 시위대와 대치한다. 그 과정에서 서도철은 칼을 꺼내든 인터넷 방송인을 거침없이 제압하는 순경, '박선우'(정해인)를 만난다. 범죄자에게 무자비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 서도철은 박선우를 팀에 합류시킨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해치의 범행이 더 대담해지고 경찰이 그에게 농락당하자, 서도철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박선우를 받아들인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를.
<베테랑>의 의문, <베테랑 2>의 대답
2015년 여름,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연도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흥행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통쾌함'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재벌 악역 클리셰의 집합소인 '조태오'(유아인)를 비판하는 전개와 때리는 액션의 타격감은 OST만큼이나 경쾌하고 시원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선구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은 물음표도 남겼다. 주인공 서도철의 행적을 곱씹을수록 그 물음표는 커진다. 그는 사람 패려고 경찰 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먼지를 묻힌 무기를 쥐어준 뒤 정당방위라며 범죄자를 때리는 장면은 코미디이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섬뜩하기도 하다. 단지 형사라는 이유로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암시처럼도 보이니까. 그 폭력이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9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통쾌함에 가려진 이 딜레마를 고찰한다. <베테랑 2>는 사적제재라는 프레임 안에서 범죄자를 향한 폭력과 응징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결과 오락성과 대중성은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확실하다. 전편에서 확립한 성공방정식을 답습하는 대신 도전을 선택한 덕분에 <베테랑 2>는 품격 있는 블록버스터로 거듭났고, 3편까지 기대케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도철이라는 물음표
사실 <베테랑 2>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다. 되려 늦었다. 자경단원의 사적제재를 묘사한 작품은 <열혈사제>, <빈센조>, <빅마우스> 등 차고 넘친다. 자경단원 경찰도 이미 <비질란테>에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신입 형사 박선우가 사실 자경단원이고 악역이라는 사실은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만 봐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대신 <베테랑 2>는 관점을 달리하여 뒤늦은 도착, 식상함이라는 한계를 돌파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자경단원의 이야기와 사연에 집중하는 반면, <베테랑 2>는 자경단원을 관찰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서도철이 있다. 특히 서도철의 직위와 성향이 서로 어긋나는 모순이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서도철의 언행은 거칠다. 전편에서 체포한 전석우가 주취감경 판결을 받아 이르게 출소하자 그런 범죄자는 때려죽여도 시원찮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해치를 쫓으면서도 내심 그가 왜 더 악독한 범죄자를 죽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그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준다. 마치 자경단이 공권력을 대신하더라도 무방하다는 듯이. 이처럼 경찰답지 않은 언행은 박선우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기제처럼 느껴진다.
전편보다 분량이 늘어난 서도철의 가족 이야기도 그의 모순된 언행을 강조한다. 그의 아들은 꾸준히 교내 폭력 사건에 휘말렸고, 다른 애들에게 맞으며 지내던 피해자였다. 하지만 서도철은 아들의 피해 사실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애들은 서로 싸우며 크는 거라며 방관한다. 이는 그의 폭력적인 일면, 더 나아가 그와 박선우가 본성적으로는 결이 다르지 않은 인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해치 덕분에 찾은 답
하지만 <베테랑 2>는 서도철의 모순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뒤쫓는다. 서도철은 경찰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먼저 변한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자신이 무시한 '애들 싸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사소해 보이는 애들 싸움이 도를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비로소 그 결과를 실감한다. 정당방위라는 명분만 있으면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마침내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눈을 뜬다.
그제야 서도철은 박선우에게서 위화감을 느끼고, 그를 의심한다. 이는 영화가 박선우의 정체를 굳이 숨기지 않는 이유다. 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었고, 그의 정체를 미스터리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 2>는 박선우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그와 서도철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슷한 결을 지닌 듯 보이던 그들이 대립하게 되는 계기가 등장할 때까지의 긴장감을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몇몇 카메라 구도나 연출은 유달리 눈에 띈다. 일례로 박선우의 옆얼굴과 서도철의 정면 얼굴, 혹은 그 반대를 동시에 한 화면에 잡으면서 그들의 관계성을 부각한다. 직선으로 자르지 않은 화면 분할도 독특하다. 서도철은 검은 마스크를 쓴 박선우의 얼굴 앞에 작게 위치한다. 마치 그가 박선우의 계략에 집어삼켜지는 듯하게. 그 덕분에 차도철이 형사이자 아버지로서 고통받는 이야기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그 결과 <베테랑 2>는 마치 류승완표 <다크나이트> 같기도 하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너와 나는 같다"라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법을 가볍게 어긴다는 점에서 그들의 본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 배트맨 역시 조커를 거울삼아 자기 정체성에 관해 고민한 끝에 '다크나이트'가 된다. 이러한 둘의 관계성은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와 유사하다. 서도철 또한 박선우를 거울삼을 때 성숙한 '베테랑' 형사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액션이라는 느낌표
이 지점에서 <베테랑 2>는 액션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써 영리하게 활용한다. 액션은 리트머스 종이 같다. 더 잔혹해진 연출로써 차도철과 관객을 동시에 시험에 빠트린다. 액션의 중심에 박선우를 위치시켜 정의 실현과 사적제재의 선을 넘나드는 불편함을 유발하고, 경찰이라기에는 과한 그의 대응을 어디까지 용인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이 순간 관객과 서도철의 시선은 일치를 이룬다.
액션 시퀀스의 배치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액션만 따라가도 서도철과 박선우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도박장을 습격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전편처럼 경쾌하다. 반면에 자극적으로 연출된 남산과 약쟁이 골목 시퀀스는 질문을 던진다. 박선우의 범죄자 제압 방식을 보다 보면 그가 자기 과라고 확신한 서도철의 판단이 과연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클라이맥스에서는 서도철과 박선우를 가르는 경계선을 보여준다. 뻔할지도 모르지만, 그 선은 살인이다. 다만 살인이라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한 서도철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자칫 식상할 뻔한 대답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박선우를 제압하는 액션보다 그를 살리려는 액션이 눈에 띄기에 더 독특한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액션 자체의 질이 상당하기에 액션에 담긴 스토리텔링은 더욱 효과적이다. 특히 공간의 특성을 이용한 장면이 뇌리에 박힌다. 복도처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전과 그 이후 갑작스레 등장하는 넓은 공간에서의 격투라는 패턴이 반복된다. 그런데 액션 합의 타격과 속도감이 뛰어나다 보니 넓은 공간에서 액션이 펼쳐질 때 장점은 극대화되고, 부딪히는 인물들의 갈등도 덩달아 극대화될 수 있다.
형보다는 부족한 짜임새
다만 <베테랑 2>의 만듦새는 아쉽게도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일단 여러 층위의 플롯을 쌓아가는 전개가 매끄럽지 않다. <베테랑 2>는 서도철의 가족사나 해치와의 추격전 등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한 데 모여서 터지는 구조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다 보니 전편에서 비해 폭발력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은 악역의 존재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서도철의 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박선우의 서사는 빈약하다. 개인적인 동기도 제대로 못 보여주니 매력은 부족하고, 그저 서도철을 각성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결국 선한 마스크와 대비되는 광기 어린 눈빛을 보여준 정해인의 연기와는 별개로, 박선우는 조태오만큼 부각되지 못한다. 자연히 <베테랑 2>는 구심점 하나를 잃은 듯 보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는 인터넷 개인 방송을 활용하는 방식도 문제다. 물론 개인 방송을 등장시킨 이유는 납득할 수 있다. 이는 사적제재가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다. 근래에 밀양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되고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듯이, 사적제재가 유발할 수 있는 폐해를 경고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다만 지금의 방식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개인 방송의 일부를 스크린에 직접 띄워서 보여주데, 그럴 때마다 분위기가 끊기고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톤과 매너가 근본적으로 다른 영화와 인터넷 방송이라는 매체 간의 괴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베테랑 2>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영화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보이기 때문.
시리즈라서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베테랑 2>는 여전히 칭찬이 아깝지 않다. 시리즈인데도 1편의 성공 공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전편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전편이 남긴 의문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다른 맛과 재미를 갖춘 속편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그 결단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는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범죄도시>가 2편부터 4편까지 관성에 의존한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기에 관객의 반응도 어떤 작품보다 궁금하다. <베테랑 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 환경은 이미 만들어졌다. 추석 연휴 동안 경쟁작이 없고, <파묘>와 <범죄도시 4> 이후로 마땅한 작품이 없었으니 관객이 몰릴 여건은 충분하다. 다만 작품성과 메시지를 챙기기 위해 대중성과 상업성을 다소 내려놓았으니, 과연 이 선택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미지수일 따름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9년 만의 속편이 필요했던 이유를 윤리와 액션으로서 증명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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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상영작 100편의 포스터를 한눈에
2024 100 Films 100 Posters 전시2015년 시작된 ‘100 Films 100 Posters’는 매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100편에 대해 100명의 그래픽디자이너가 고유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대규모 기획전시로 국내외 영화계뿐아니라 한국 시각디자인분야에서도많은 관심을 모으는 전시로 인정받고있습니다.
이 행사에서만들어지는 영화 포스터들은,영화 포스터의 관습과 상업적압력이배제된, 영화의핵심을 그래픽 디자이너가 자유롭게해석한 것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만볼수있는유일무이한창작물이라는 특성을 가집니다.
행사는 팔복예술공장에서는매해 진행했던방식대로 제25회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100편을 선정, 100명의 그래픽디자이너가각자만의 포스터를만들어 전시하는 ‘제10회100 Films 100 Posters’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전주남부시장에서새롭게조성된문화공판장 작당에서 10년동안 제작된1,000장의 포스터를 전시·판매하는 대대적인 아카이브전시 이벤트가 진행되며, 완판본문화관(한옥마을),인후도서관, 영화의거리 등 관광거점도시 전주시만의특징적인 공간에서도 특색있는 전시겸이벤트로도만나볼수있습니다.
또한, 역대 ‘100 Films 100 Posters’에참여했던디자이너들을초청, 행사의 의미와기록을되짚는 디자이너토크와간담회및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있는 일반인이나전공생,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한 원데이 포스터만들기워크숍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디자이너, 전공생이라면 한번쯤 들려보면 좋을만한 공간이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들어와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넓찍한 공간과 체험존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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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를 볼 시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수능이 끝난 뒤 절망의 감정이 아직도 선명이 기억난다. 걱정했던 수학을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던 것도 잠시 4교시 외국어영역 마킹을 하며, 이십 번대부터 한 칸씩 미뤄 쓴 걸 알았을 때 이미 시험 종료가 임박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을 들어 새 답안지를 요청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마킹을 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잘 못 된 걸 알았지만, 고칠 시간이 없다는 것. 잘 못된 걸 안 채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은 아쉬움보다는 자책감이 컸다. “내가 왜 그랬을까?”에서 시작해 “나는 왜 이럴까.” “나는 형편없어.”까지 자꾸 나를 몰아세웠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냥 혼이 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모님께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답안지를 잘못 썼다는 것은 그냥 시험을 망친 아이의 변명 같이 느껴질 뿐이었으니까. 가채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나버린 시험, 아니 끝나버린 인생인걸.이라는 심정이었달까.
입을 꾹 다물고, 40권이 지나서야 완결되는 만화책, 람세스나 로마인이야기 같은 호흡이 긴 소설책, 고2, 고3에 나온 비디오를 쌓아두고 보며, 현실 세상에서 멀리 떠나곤 했다.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실은 잊혀졌고,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오래 떠돌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문득 우주 먼지 같이 작은 존재인 나의 고민이 하찮게 느껴져서 ‘아무렴 어때’라는 마음이 들었고, 무한한 시간 속에서 수능이라는 찰나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마법을 경험한 뒤, 힘든 마음이 찾아올 때, 무작정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수많은 인생의 날들 중에 컴퓨터를 열어 24시간 정도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시리즈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것도 좋고, 취향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가능하다면 현실과 접점이 없는 영화를 고른다. 세계관이 확실한 영화들. 나를 다른 곳,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스토리에 빠져들게 할 영화들이다. 최근에 새로 나온 시리즈들 중엔 디즈니플러스에서 <문나이트>나 <완다비전> <로키>도 즐겁게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최애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 다.
반지의 제왕은 호흡도 길고 서사가 방대하여 오랜만에 보아도 다시 보이는 장면도 많고, 웅장한영상속에서 스토리에 빠지기가 좋고, 해리포터 시리즈는 내가 호그와트 재학생이 된 기분을 가지고 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서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영화를 보며 주인공과 함께 마법 수업 속 주문을 외워야 함)
‘영어 답안 따위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초연해졌을 때,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놓았다. 한참을 심각하게 듣고 계시던 아빠가 말씀하셨다. “4교시 끝날 때 알아서 다행이네. 1교시에 그랬으면 얼마나 마음이 더 힘들었겠냐. 운도 실력이다 생각하고 성적 맞춰서 일단 학교는 원하던 곳이 아니라도, 가고 싶은 과를 가서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해봐. 그러고 나서 다음을 생각하렴.”
그렇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별일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별일 아닌 게 되었다. 학교의 이름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나아가 보겠다는 다짐은, 그 후에도 좌절감이 생길 때마다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더없이 기쁜 결과라면 조금 더 행복감을 누리고, 아쉬움이 남는다면 걱정하거나, 내일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나를 쉬게 했으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작은 공간에 레펠로 이니미쿰(Repello Inimicum)* 주문을 걸어 두고 ‘충분히 애썼어. 정말 수고했어.’ 나를 돌보는 시간을 보내길. 모든 수험생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레펠로 이니미쿰(Repello Inimicum)
어느 한 장소를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마법. 라틴어 Repello와 Inimicus(적)의 합성어로,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2부에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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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했던 비극보다 더 뜨거운 해방을 이끄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어색한 행동부터 불안한 눈동자까지 완벽하게 한 인물에 녹아든 포스터부터 해외 언론 매체들의 극찬까지 완벽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전 세계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27개를 석권하고 곧 있을 2022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까지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열연이 빛나는 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전기를 다룬 영화 스펜서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작품은 그녀 인생 전체가 아닌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노퍽 해안의 왕가 저택인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보낸 3일의 시간을 담으며, 가문의 성씨를 그대로 가져온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왕실의 강박적인 생활에 얽매인 채 고통받는 그녀가 한 사람으로 존엄성을 추구하며 스스로 나아가는 상징적 모습을 그립니다. 더불어 전형적인 전기 드라마의 형태보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심리 스릴러나 일종의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고, 그 외 주변의 소재나 인물들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녀의 마음을 투영해 보여줌으로써 상업성보단 예술성에 치중했다고 보시면 좋습니다. 만약 소재가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더 크라운’이나 ‘더 퀸’, ‘The Story of Diana’ 등 많은 영상매체들이 나와있으니 관람 전 미리 감상하시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세상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아온 다이애나 비, 어떤 모습이 담겼기에 많은 호평들을 받았는지 본격적인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스펜서 정보
그 누구도 전통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A fable from a true tragedy’이라는 문구와 함께 군사훈련을 방불케하는 분위기 속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식재료들을 옮기고
왕궁 수석 주방장 대런의 지시 아래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준비를 시작합니다.
1991년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디너가 진행되는 샌드링엄 별장,
왕실 가족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이제 남은 이는 엘리자베스 2세와 다이애나만이 남았습니다.
한편, 직접 운전해 오던 다이애나는 길을 잃고
주변 카페에서 들려 길을 물어보며 찾아오는 중이었죠.
묘연한 행방에 대런이 찾아 나서며 결국 만나게 되지만,
재촉하는 그에게 자신이 자란 곳에 헤맸다는 푸념을 하며
지각한 자신에 대한 식구들의 원망이 있을지 걱정하죠.
작은 해프닝과 함께 결국 가장 늦게 도착하며,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는 왕실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됩니다.
예고편│ Trailer
원제 : SPENCER │감독 : 파블로 라라인│각본 : 스티븐 나이트│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숀 해리스, 잭 파딩, 잭 닐렌, 프레디 스프라이, 스텔라 고넷 외 多│장르 : 전기, 드라마│상영 시간 : 116분│개봉일 : 2022년 3월 16일│국가 : 영국, 독일, 미국, 칠레│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7.0, 왓챠피디아 3.4, 로톤 토마토 신선도 83% 팝콘 52%, IMDB 6.7, 메타 스코어 76점│수상 내역 : 34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여우주연상, 의상상) 포함 총 38개 영화제 수상(이 중 여우주연상 27개)│시청 가능 서비스 : 3월 16일 개봉 예정
# 영화 스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
저는 현미경 샬레 안에 놓인 곤충이에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단순히 다이애나와 왕실 가족들이
함께한 3일간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그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의 어지러운 심중을 대변하듯 부산한 재즈 멜로디의 오프닝부터
삭막한 저택 내부의 분위기는 답답한 공기에 둘러싸여
마치 공황장애를 겪는듯한 공포감마저 조성합니다.
왕실이라는 이름 아래 규율과 억압으로 각자의 개성은
말살당하고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박탈당한 채 시종일관
불안한 시선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처연함만이 상황을 대변할 뿐이죠.
빡빡한 일정에 맞춰 정해진 옷을 입고 의무를 다해야 하는 생활은
악몽처럼 묘사되고, 찰스 왕세자와의 갈등과 냉담한 왕가의 반응은
그녀의 섭식 장애와 공황 등의 병적 증세를 극심하게 만드니
이 자체만으로도 영국 왕실 안에서의 느꼈을 감정이 절실히 전해집니다.
작품은 이 같은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구속과 해방이라는 큰 주제를 두고
상당히 많은 은유적 표현을 곳곳에 뿌려두고 마지막 장면을 위해 달려나갑니다.
왕실의 에스코트 없이 길을 헤매는 시작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벗어나고픈 열망을 드러내며
과거 자신이 입혀주었던 허수아비의 옷을 벗겨 챙깁니다.
이는 결혼 이전 자유로웠던 자신을 되찾겠다는 행동으로,
결말에 이르러 왕실에서 주었던 옷을 걸어두며
허수아비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또 한 번 드러내죠.
이 같은 메타포는 왕실의 부속품으로 묶어두는 상징적인 진주 목걸이,
자신을 옭아맨듯한 옛집 사이의 철조망 등
여러 형태로 구현되는데 하나같이 왕실이라는 큰 규제에
억압되어 있는 자신의 불행함을 그리는 데 활용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자란 옛날 집을 향하면서 상황은 바뀝니다.
본인의 처지처럼 폐가로 변해버려 더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계단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앤 불린의 환영이
나타나 유년 시절부터 청년, 성년의 그녀가 들판 위를 뛰는 장면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들판이 존재하는 한 왕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리고 자신처럼 사랑에 배신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가문의 옛집은 사라졌지만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죠.
그리고 다음날 이어진 꿩 사냥을 막아서는 순간을 통해
찰스 왕세자와 자신의 아들들을 분리시킴으로서
더 이상 지옥 같은 왕실에서의 성장을 목도하지 않겠음을 확연히 드러냅니다.
아마도 앤 불린과 다이애나라는 두 캐릭터가 가진 역사 속 상징성을 통해 그녀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발판이 되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It's not just me who loves you!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숀 해리스 등 연기력에서 정평이 난 배우들과의
호흡들이 든든히 떠받치며 때로는 주인공의 마음을 건드리고,
클래식과 재즈의 기묘한 만남이 돋보이는 조니 그린우드의 스코어가
올곧이 그 감정들을 탁월하게 표현해 주는 가운데, 역시나
불안과 혼란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다이애나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왕실에서 느꼈을 모든 감정들을
대사나 작은 행동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며
왜 수많은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열연을 펼쳐줍니다.
일대기 전체를 바탕으로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특정 순간과 불안정한 한 심리를 바탕으로 한 전개되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온갖 화려한 장식들과 음식들로 꾸며진 별장에서
그만이 느꼈을 불행과 외로움, 답답한 심정을 세밀한 연기를 통해
극대화하며 꾸며진 현실임에도 동조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깊게 남겨주죠.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특히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전날 밤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폐허가 된 옛날 집에서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되돌아가듯
과거 필름을 스쳐가는 독백 장면에서 두드려집니다.
여기에서 왕실의 아이가 아닌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은 물론, 어린 시절 자신이 꿈꾸었던 삶에 대해
파노라마는 강한 여운을 남기고 이제 더 이상 억눌려사는 왕세자비가
아닌 다이애나로 돌아갈 것을 보여주죠. 이러한 함축적인 의미에서
클래식하게 드레스 입은 채 고개 숙인 포스터는 근래에 본 것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 영상에서는 힘겹고
버거운 가족 식사 후 구토하는 장면이지만, 결과적으로 왕가에 속한
모든 것을 뱉어내는 중의적 표현을 심고 있기 때문이죠.
정말 그녀의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 때문인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연출적인 특징이 큰 힘을
발휘한다기보단 원 맨 쇼를 묵묵히 지켜보는 관찰자의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재키’, ‘네루다’와 같이 실제 인물 그려왔던 전작들에서
보여준 대칭 구도의 촬영 기법이나 화면 질감과 색감을 활용한 연출,
과거처럼 느껴지는 그레인 필름 등은 오래된 동화 같은 영상미를
남기며 날카로운 현악기의 연주가 깔리는 음향과 함께
다이애나의 불안과 공포를 선명하게 대변해 주지만,
그녀의 연기를 뒤따라가며 앙상블을 맞춘다는 느낌이랄까요?
더불어 마지막 엔딩에 이르러 두 아들을 사냥터에서 구출한 뒤
도로를 달리며 자유를 만끽한 뒤 패스트푸드 KFC에 들려 드라이브스루 주문에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인 ‘SPENCER’를
당당히 외치는 모습은 해방이라는 묵직함으로 기억됩니다.
허수아비처럼 영국 왕실에 다 빼앗겼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그 자체를 되찾아 온 그녀, 슬프지만 그 고귀한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매기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처럼 그녀를 사랑하는 것 저뿐만이 아닐 테니까요.
ps. 근래 대다수가 그렇듯 이것 역시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에 취중해있습니다. 그렇기에 취향에 따라 지루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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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소년과 초여름을 기다리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스프링 블라썸>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스프링 블라썸>은 수수한 블라우스를 입고 광장을 배회하며 한 소년과 초여름을 기다리는 '수잔'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프랑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랑에 빠진 수잔을 바라보다보면 어느덧 그녀의 마음에 동요되어 몽글몽글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잔(수잔 랭동)'은 학교와 또래 친구들에게 재미를 못 느끼고 하루하루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는 16살의 여자다.
거리와 광장을 배회하던 수잔은 우연히 한 극장 앞에서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을 발견한다.
라파엘에게 첫 눈에 반한 수잔은 그가 연극배우라는 것을 알아챘고, 자꾸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수잔은 극장에 몰래 들어가서 그가 연극 연습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도 하고, 부모님께 대뜸 연극 보러 갈 생각은 없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라파엘이 빵에 딸기잼을 발라먹는 모습을 본 뒤 집에 돌아와서 엄마께 빵에 딸기잼을 발라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고장난 스쿠터를 고치고 있는 라파엘의 모습을 발견하고 집에 돌아와 아빠께 고장난 스쿠터는 고칠 때 오래 걸리냐, 와 같은 질문도 한다.
또한, 아빠께 남자들은 치마 입은 것을 좋아하냐, 바지 입은 것을 좋아하냐, 라는 질문을 던진 뒤 아빠가 치마라고 대답하니까 바로 치마를 입고 라파엘을 만나러 가기도 한다.
항상 모든 시선은 그를 향해 있고, 부모님께 대뜸 그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하지만 자세한 상황은 얼버무리고, 그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보고.
모두 내가 한 번쯤은 겪어본 행동들이어서 수잔을 보며 그저 웃음이 났다.
그리고 수잔의 마음에 100% 공감이 되었다.
수잔의 서툴지만 또렷한 행동에서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비춰져서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한편, 라파엘은 같은 연극을 계속 반복해서 하면서 점점 연기에 재미를 잃어가던 35살의 남자다.
그리고 연기하는 것을 잊어버릴까봐 항상 걱정하는 사람이다.
라파엘 역시 수잔에게 끌렸다.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다.
어느 날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라파엘에게 수잔이 책을 들고 다가왔다.
그런 수잔을 보고 라파엘은 책을 좋아하냐,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먼저 말을 건넨다.
이때 수잔은 소설을 주로 읽지만 극작품도 좋아한다는 답을 한다.
극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연극배우인 라파엘과의 공통점을 형성하려는 수잔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던 사람과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을 어필하고 싶어하던 예전의 내 모습이 비춰져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이후 라파엘은 수잔이 시킨 석류 레모네이드를 맛보더니 자신도 같은 음료를 하나 주문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라파엘은 스쿠터를 가지고 수잔의 집에 왔다.
하지만 수잔은 아직 미성년자여서 부모님이 스쿠터를 못 타게 하시기 때문에 결국 라파엘은 이 스쿠터를 힘겹게 끌면서 다녔다.
이 영화는 이렇게 소소한 웃음포인트가 곳곳에 가득한 작품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특히나 수잔은 남자에게 큰 호감을 가졌지만, 35와 16이라는 큰 나이차라는 현실의 벽을 깨닫게 되었다.
이 감정이 북받칠 정도로 커진 어느 날, 수잔은 펑펑 울면서 엄마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너무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 그런데 그 남자와의 나이차가 너무 크다고.
엄마는 딸을 안아주며 조용히 그녀를 위로해준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지막 즈음의 엘리오와 엄마의 장면이 떠올랐다.
첫사랑과 현실을 마주하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북받치는 감정들로 인해 펑펑 우는 아들을 조용히 위로해주는 엄마.
자식의 서툴지만 진심이었던 감정을 이해하고, 조용히 토닥여주는 엄마.
시간이 지난 뒤, 수잔의 뜨거운 감정과 짝사랑은 점점 식어갔다.
날 것 그대로였던 감정은 점점 그 뚜렷한 형태를 잃어갔다.
라파엘을 사랑하는 수잔의 감정은 자연스레 사그라들었고, 영화의 마지막, 항상 그의 근처를 배회하던 그녀는 그의 극장을 그저 바라본 뒤 자신의 길을 떠났다.
그런 영화가 있다.
독특한 전개나 색다른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지닌 분위기 자체만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작품.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영화가 지닌 분위기만으로 관객을 홀리고, 관객을 설레게 하고, 살풋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또한, 러닝타임 내내 관객도 영화 속 공간에, 영화에 담긴 봄과 여름 사이에 있는 선선한 날씨의 순간에 살게끔 만든다.
이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나도 내가 좋아하는 셔츠나 블라우스를 입고 내 온마음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프랑스의 거리와 광장을 배회하는 경험을 했다.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 포인트는 바로 영화의 곳곳에 있는 뮤지컬 요소였다.
뮤지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처럼 수잔이 거리를 걷다 갑자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라파엘과 수잔이 극장에서 음악에 맞춰 조화롭게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그리고 라파엘이 수잔에게 자신의 헤드셋을 씌워준 뒤 같은 동작으로, 같은 호흡으로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금은 느닷없게 느껴져서 놀라기도 했지만,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오히려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들로 인해 영화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더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수잔 랭동의 노래가 나오며 끝이 난다.
나는 봄과 여름 사이의 날씨였던, 기분 좋은 선선함이 가득한 날에 이 영화를 봤다.
리뷰를 쓰는 이 순간, 그 날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딱 맞는 날씨에 이 영화를 관람하다니.
수잔은 자신을 한 소년과 초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 영화를 보다보니 어느덧 나도 초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완연한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이 낭만적인 영화를 꼭 관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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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관 | 폐허 위에 클리셰로 쌓은 애환과 사명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재 현장, 교통사고, 자살 소동 등 끊이지 않는 사건 현장에서 하나의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119 구조대 반장 '정진섭'(곽도원)과 그의 팀원들. 여느 때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그들 앞에 신입 소방관 '최철웅'(주원)이 등장하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구조 대원에게 답답함과 애정이 반씩 담긴 질타를 날리며 다시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섭과 철웅, 그리고 그의 팀에 돌연 위기가 닥친다. 한 화재 현장에서 철웅의 실수로 인해 선배 '안효종'(오대환)이 등 전체에 화상을 입은 것. 여기에 더해 진섭의 절친한 후배이자 철웅의 가장 친한 동네 형인 '신용태'(김민재)도 무리해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가 현장에서 사망한다. 이에 진섭과 철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그들 간의 갈등의 불씨도 커지기 시작한다.
뻔한데, 다르다
실화를 다루는 작품은 언제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린다. 영화적 재미 대신 실화의 힘을 선택하기 쉽다. 영화화해도 되겠다고 판단되는 실화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기 때문. 이처럼 쉬운 길을 걷는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누가 죽고 살 지 뻔한 클리셰의 향연. 운과 우연에 의존한 전개. 대부분의 캐릭터가 기억나지 않는 평면적인 묘사. 사건의 사회적 함의보다는 일차원적인 감정 분출에 집중한 각색까지.
곽택 감독의 신작인 <소방관>도 마찬가지다. <소방관>은 홍제동 방화 사건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가 사망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재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쉬운 길을 선택했다. 클리셰로 가득하다. 누가 사망할지, 각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누가 방화범이고 피해자인지 등을 영화 시작 10분 안에 전부 알 수 있다. 각 소방관의 개인사, 가족사를 부각하며 눈물을 흘리게 하는 신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방관>은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마냥 뻔하지는 않다. 신파는 많지만, 일반적인 한국 영화의 신파와는 결이 다르다. 모든 캐릭터가 스트레오 타입이지만, 최소한의 생동감은 있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이 아닌 구조대원 전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골고루 돌리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 덕분이다. 그 결과 <소방관>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고, 마냥 실화에만 의존한 신파극이라는 오명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클리셰 범벅
겉보기에 <소방관>은 특별할 게 없다. 한국 영화 특유의 클리셰로 가득하다. 주인공 최철웅의 서사만 보더라도 예측가능한 범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군대를 전역한 후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한다. 소방관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와도 알고 지낼 정도로 각별한 형 신용태의 권유로. 하지만 함께 출동한 화재 현장에서 용태가 사망하고, 철웅은 PTSD에 시달리며 방황한다. 재난 영화 등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상이다.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사실상의 주인공인 정진섭은 하필이면 소방관 근무 마지막 날에 홍제동 화재를 진압하다가 건물에 깔려 사망한다. 아빠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아들, 은퇴한 남편과 함께 운영할 치킨집을 막 오픈한 아내를 남겨둔 채로. 철웅의 선배 구조대원인 안효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곧 매제가 될 후배 '송기철'(이준혁)과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여동생을 남겨둔 채로 사망한다. 가족관계가 나오자마자 예측가능한 결말이다.
주인공 따로, 중심인물 따로
그러나 <소방관>에는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과 중심인물이 다르다는 것.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최철웅이다. 카메라는 그의 시점에서 소방관의 일상을 비춘다. 그런데 정작 그는 러닝 타임 내내 주인공다운, 영웅적인 활약을 거의 못한다. 사고 치고, 덤벙대고, 혼자 괴로워하고, 막말하기 바쁘다. PTSD를 떨치지 못해 구조 대원 복귀도 망설인다. 거칠게 말해서 이보다 찌질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객들은 소방관들의 내면을 깊이 살펴볼 수 있다. 관객에게 신입 구조 대원인 최철웅은 소방관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돕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 등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등병처럼 곧장 사고 현장에 투입되어서 실수를 남발하고, 선배들에게 온갖 꾸지람을 들으면서 소방관들의 일상과 업무에 녹아든다. 이때 관객은 최철웅의 눈을 통해 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이처럼 주인공의 눈을 통해 다른 대원들을 살피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소방관으로서 지닌 고민과 책임감에 서서히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정진섭은 그중에서도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무장한 채 불길 속에 뛰어드는 베테랑 구조대원이다.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아끼는 동료도, 자기 목숨마저도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섭의 주변을 보면 소방관이 견뎌야 하는 딜레마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아내는 생명보험에도 가입 못하는 그를 걱정하면서도 원망하고, 아들도 아버지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같이 시간을 못 보내서 미워한다. 그는 가족을 이해하면서도 쉽사리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이는 진섭이 철웅을 미워하는 듯 챙기는 이유다. 그가 보기에 철웅은 이 딜레마를 버텨낼 준비가 안 된 햇병아리이니까.
과한데, 억지스럽지 않은
진섭 외의 다른 소방관들도 비슷하다. 곧 가족이 될 효종과 기철이 서로 구조대원을 그만두고 행정직에 지원하라고 떠미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한 집에 구조대원이 둘이나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편히 잘 수 없다는 공감대가 무겁지 않게 새어 나온다. 이처럼 자칫 철웅에게만 쏠릴 법한 분량을 적절히 조정한 덕분에 각 캐릭터에게는 예상보다 더 많은 분량이 분배되고, 그들의 삶과 고뇌는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긴장감 가득한 화재 진압 장면은 진정성을 더해준다. 극 중 화재 시퀀스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하나씩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시퀀스만으로도 소방관이 감내해야 할 위험은 명확히 전달된다. 소방관의 시점에서 화재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드문 경험을 세밀히 묘사한 덕분이다. 갑자기 무너지는 계단과 벽, 폭발하는 가스통, 급격히 줄어드는 산소량 등은 관객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하기 충분하다.
그 덕분에 <소방관>의 신파는 과할지언정, 억지스럽지 않다. 눈물은 흘려도, 눈물을 짜내는 장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일상 속 소방관의 사명감과 그들의 애환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담담한 연출 덕분에 <소방관>의 신파는 더 인상적이다. 소방관이 사망하는 순간을 슬로 모션을 길게 끄는 식의 연출은 없다. 그저 필요한 장면만 담백하게 전달한다. 자연히 결말을 장식하는 철웅의 오열도 작위적이지 않다.
더 나아가 엔딩 크레디트도 전형적이라는 인상이 옅다. <소방관>은 여러 실화 기반 작품처럼 실제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막으로 부연 설명을 말미에 덧붙인다. 사실 이러한 마무리는 사건 자체를 조명하는 효과와는 별개로 영화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를 감추려는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방관들의 노력과 사투를 깊이 있게 묘사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부족한 디테일과 불운
다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우선 홍제동 화재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 이후를 다루면 어땠을까 싶다. <소방관>은 결국 소방관의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익 메시지에 힘을 주는 영화다. 불법 주차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어렵거나, 사비로 보호 장비 등을 갖추는 묘사가 반복되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사건 이후 소방관 처우 개선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게 소방관의 헌신과 희생을 더 돋보이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자막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화재 상황을 묘사할 때는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소음이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또 소방관들도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기 때문에 대사가 전달되는데 한계가 명확한다. 따라서 전투 시퀀스에만 자막을 삽입한 <한산: 용의 출현>이나 <노량: 죽음의 바다>처럼 화재 진압 장면만이라도 자막을 통해 대사를 보여주는 게 관객 입장에서는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측면이 있다.
이에 더해 영화 개봉도 밀리게 한 주연 배우 이슈도 안타깝다. 상술했듯이 곽도원이 연기한 정진섭은 주원이 연기한 최철웅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다. 소방관들이 어떤 생각으로 자기 직업을 대하는지가 주로 곽도원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 그의 목소리로 되새겨지는 소방관의 기도가 대표적이다. 또 주인공이라기에는 매력이 부족한 철웅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데도 정진섭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해당 배우가 물의를 빚다 보니 영화의 메시지나 연출 의도가 어쩔 수 없이 곡해되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고, 자연히 완성도를 낮추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뻔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의외의 울림과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방관>은 분명 불운한 작품이다.
Acceptable 무난함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다큐멘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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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체험해야 할 영화
개봉 | 2025.06.03.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독일
러닝타임 | 167분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놉시스 |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빛이 아니라
목 잘린 발들이 일으키는 먼지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외부가 한낮으로 향해 갈 때
어둠이 숨어드는,
모두가 짙어지면 홀로 더 깊이 짙어지는,
땅보다 낮은 땅에서
절대 상하지 않겠다
박세미, <일조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싶은 영화 중 한 편인데요. 보다 많은 분들께 영화에 대해 알려드리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영화는 테헤란을 배경으로 하며, 혁명 법원의 수사판사로 임명된 이만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만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사형 선고를 승인해야 하는 일을 맡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합니다. 일을 맡은 직후에는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만, 정신없이 일을 하며 그는 점차 무뎌지죠. 그가 일에 적응하는 한편, 그의 딸 레즈반과 사나는 세상의 변화에 눈을 뜨고 냉혹한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가 호신용으로 지급받았던 총을 집에서 잃어버리자, 그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집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속에 실제 2022년 이란의 '여성, 생명, 자유' 시위 장면을 삽입하여, 극 중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삽입된 시위 장면을 볼 때마다, 이 영화는 그저 영상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영화관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 “시네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포스터 상단에 적힌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영화”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었고, 관객들이 모두 이란 정부의 잔혹한 폭력의 목격자가 되는 듯했습니다.
영화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란 사회의 전체주의적 구조를 하나의 가정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영화에 그려지는 가족은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가 아니며, 집은 가장 편안한 장소가 아닙니다. 가족식사 장면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압박감마저 느껴지죠. 말을 해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고, 그 어떤 공간에서도 편히 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인 이만과 어머니인 나즈메에게는 총을 잃어버린 공간, 딸들이 총을 숨겼을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불신의 공간이라면, 딸인 레즈반과 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복해서 총을 숨겼냐며 따져 묻고, 수시로 방을 뒤지는 불안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갈등이 심화되며, 관객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이 혼란감을 주기도 하죠. 다큐멘터리같은 이 영화를 보며 서스펜스를 느껴도 되는 걸까? 영화는 정치적 책임감을 갖고 보지 않아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심리적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들이 눈에 띄기도 하죠. 영화는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추면서도, “영화”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끝까지 가져갑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제작진의 신변에 대한 걱정이 될 정도인데요. 이란 내의 폭력 현장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은 점으로 인해 개봉에 어려움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비밀리에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감독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우리가 안일하게 짐작한 것보다 훨씬 고되고 심각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이란 정부로부터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추가적인 형벌이 예정된 상태에 놓였습니다. 이에 그는 전자기기를 모두 버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산악 지대를 도보로 넘어 이란을 탈출했죠. 그는 수감과 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결국 독일에 도착하여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엄마 나즈메 역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골레스타니 역시 자국을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 74대와 징역 1년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실제로 2022년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체포되어 에빈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는데요. 영화가 개봉 이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출국 금지 조치로 인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과 함께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딸 역할의 두 배우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는 망명을 선택하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사생결단으로 만든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하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2024년 칸 영화제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상영된 후,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 영화인들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들은 우리를 낙담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존엄한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또한 영화제에서 이란에 남아 있는 배우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답답하고 두렵지만, 결국은 싹을 틔우고 조금씩 뿌리를 내리며 억압을 무너뜨리는 영화.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벗어던지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극장에서 한 분이라도 더 보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함께 목격하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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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주 최신 개봉영화(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더 그레이트 샤크, 그린나이트, 블랙핑크 더 무비, 도라에몽 진구의 신공룡)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1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더수어사이드스쿼드 #더그레이트샤크 #그린나이트 #블랙핑크더무비 #도라에몽 #진구의신공룡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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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 시사회 후기 - 메마른 관계일수록 불은 빨리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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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러운 일로 고향을 떠났던 `에런`은
친구 `루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루크`
유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을 파헤치던 `에런`은
여자친구였던 `엘리`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묻혀있던 두 개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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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커닝> 메인 예고편
흑사병이 유행하던 20세기 초 유럽. 흑사병으로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는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마녀로 지목되며 마녀재판에 회부된다. 지하 어두운 감옥에 갇힌 그레이스는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진실만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갇힌 감옥에는 너무나 끔찍하고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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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메인 예고편
기다림은 끝났다!
전 세계가 기다려온 단 하나의 액션블록버스터!도미닉(빈 디젤)은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형제 제이콥(존 시나)이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와 연합해
전 세계를 위기로 빠트릴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패밀리들을 소환한다.
가장 가까운 자가 한순간, 가장 위험한 적이 된 상황
도미닉과 패밀리들은 이에 반격할 놀라운 컴백과 작전을 세우고
지상도, 상공도, 국경도 경계가 없는 불가능한 대결이 시작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