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1-08-07 09:30:44
쳇바퀴 돌듯 권태로운 삶일지라도
영화 〈팜 스프링스〉 리뷰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시사회를 다녀온 후 작성한 글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11월 9일이다. 사람들은 어젯밤에 열렸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세라가 왜 결혼식 준비를 또 하느냐고 묻자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세라는 깨닫는다. 자신이 타임루프에 빠졌다는걸.
영화 〈팜 스프링스〉 스틸컷
영화 〈팜 스프링스〉는 동생의 결혼식에서 만난 나일스와 하룻밤을 보낸 세라가 타임루프에 빠져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일스는 세라가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매일 반복되는 11월 9일을 보내고 있던 '타임루프 선배'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봤던 나일스는, 이제 탈출을 포기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다르게 즐길지를 고민하며 느긋하게 보낸다.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던 세라도 나일스 덕에 빠르게 타임루프 세게에 적응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비밀과 오해가 생기고 위기가 찾아온다. 이제 세라는 타임루프를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나일스는 그런 세라에게 간청한다. 그냥 이곳에 자기와 함께 머물러달라고. 매일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을 서로의 특별함으로 극복해나가자고. 세라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과연 둘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함께한다면 그곳은 타임루프의 안일까, 밖일까?
위 질문은 〈팜 스프링스〉뿐만 아니라 타임루프 설정을 가미한 영화가 항상 던지는 질문들이다. 감춰진 비밀을 좇는 스릴러 장르의 타임루프도 있지만, 잔잔한 분위기로 일상을 다루는 타임루프는 거의 언제나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상의 권태와 무의미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삶은 아름답다'라고.
영화 〈팜 스프링스〉 스틸컷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타임루프를 살아가고 있다. 많은 생활인들이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출근해서는 어제와 같은 일을 한다. 시간감각은 점차 무뎌진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심지어 내가 몇 살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비단 직장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권태는 비슷한 일을 반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필수적인 고난이다.
영화 〈팜 스프링스〉 스틸컷
그 고민에 대한 〈팜 스프링스〉의 대답은 사랑이다. 매일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깨어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제와는 다를 거라는 것이다. 한편, 2017년에 개봉한 영화 〈패터슨〉은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이 영화는 타임루프 설정을 활용하진 않지만, 영화 속 일상은 타임루프처럼 반복된다. 주인공은 어제, 오늘, 내일이 똑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팜 스프링스〉의 대답이 사랑이었다면, 〈패터슨〉의 대답은 일상의 리듬이다. 〈패터슨〉에서 삶은 지루한 무언가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변주되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팜 스프링스〉식 막무가내 로맨틱 코미디든, 〈패터슨〉식 일상의 예술적 변주든 결론은 같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상이라도 아름다움의 가능성은 곳곳에 내재해 있다는 것. 무의미한 삶은 없다. 그 어떤 반복도 완전히 똑같을 수 없기에 삶의 무의미를 극단적으로 도드라지게 하는 타임루프 속에서라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뻔하고 엉뚱하지만 때때로 사랑스러운 영화 〈팜 스프링스〉가 전하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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