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2021-09-08 13:56:10
삶으로 가르는 사람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땐뽀걸스> 리뷰
거제도. 내가 사는 부산에서 한 시간반. 2015년 처음 방문한 거제는 식당마다 사람이 가득하고 활기 가득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오토바이 행렬이 끝나지 않게 쏟아지던 곳이었다.
“거제의 거지들은 천 원짜리를 안 받는다.
거제의 개들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라고 할 정도로 지역 경제에 활력이 넘치던 그 시절. 요즘 출산율 높다는 세종보다 더 출산율이 높았던 그런 도시 거제. 그러나 급작스레 찾아온 조선업의 위기. 거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직·간접으로 조선업에 기대어 살아가던 그들에게 조선업의 몰락은 곧 거제시의 인구 절감으로 드러났다. 한 때 30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이미 5만 명 넘게 줄었고, 집값은 반 토막 난 지 오래고, 끊임없이 지어지던 아팥트는 미분양 사태가 속출되었다.
이런 거제의 어려움이 한참 시작되던 2016년 무렵. 블랙홀 같이 빨아들이는 조선업의 몰락 속에 노동자들의 아픔을 렌즈에 담으려 했던 KBS 이승문 PD. 연일 계속되는 어려움에 다른 직장을 구하고, 잘 다니던 회사에서 예상치 쫓겨난 사람들. 그들의 힘듬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건 바로 자녀들이었다. 특히 취업의 전선에서 가장 큰 타격을 경험하고 있는 거제 여자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PD는 취업의 불안함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댄스 스포츠 동아리 일명 ‘땐뽀반’을 만나게 되었다.
다수의 학생들이 불안함에 무기력해 있거나, 벌써부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모습들이 속에서 한 선생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취업에 어려워하는 상황에서도, 시험기간을 앞두고 있는 시간에도, 변함없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그런 상황 속에 평소에 지각하고, 학교에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뗀뽀반’을 통해 학교에 적응해 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다 지쳐 무기력한 아이들이 ‘뗀뽀반’에서 만큼은 춤 선을 위한 힘을 내고, 손동작에 각이 생긴다.
때로 밤늦게 연습이 끝난 뒤 집에 가는 아이들에게 교통비를 쥐어주고, 전날 늦게까지 술을 먹고 온 아이에게 숙취해소제를 내미는 선생님. 영화는 이 선생님을 과장하지도, 또 축소시키지도 않게 보여준다. 때로 사려 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에게도 너무 들이밀지도, 또 애매하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이규호 선생님의 모습은 굉장히 신선하다. 아이들을 향해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끊임없는 지지로 아이들을 대한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들은 선생님이 깔아놓은 사랑 가득한 무대에서 꿈과 미래, 비전과 목표는 내려놓고, 춤이 가져다주는 힘과 즐거움에 매료되어, 땀을 흘리고, 집중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제자들과 친해지려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하나 된 모습이 녹아져 있음을 느꼈다.
영화의 한 대목 중에 후배 교사가 이규호 선생님에게 물었다.
“승진은 이제 생각은 아예 접으신 거예요?”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우리가 승진하려고 선생 아는 건 아니다.아이가. 맞제? 아들 가르칠라고 하는 거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규호 선생님의 가르침과 사랑은 한동안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했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가장 큰 배움들은 늘 삶으로 가르쳐주신 분들로 인해 형성되었다.
나도 그분들 처럼, 이규호 선생님처럼.
삶으로 가르치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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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분명히 톱스타였던 내가 갑자기 무명 재연배우?
안하무인의 톱스타
오빠 일어나!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박강은 부랴부랴 눈을 뜬다. 우리 기사 났어! 동침을 한 동료 여배우의 말에 눈이 뜨인다. 핸드폰을 키는 박강. 뉴스란에 박강의 스캔들이 대문짝 하게 걸려있다. 연말에 귀찮은 일 생겼네. 기사를 처리할 생각에 매니저부터 생각난다. 그런데 눈치 없이 박강은 매니저만 찾지 않았다. 파트너인 동료 여배우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거 너네 회사가 낸 거 아냐?" 발끈하는 동료 여배우. 집에 크게 걸려있는 박강의 초상화에 커피를 뿌리고 집 밖을 나선다.
박강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라고 하는 것은 연기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박강은 톱스타다. 사생활은 더럽지만 연기는 곧잘 하는 박강. 한국영화대상이라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다. 올해도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수상까지 성공하는 주인공. 박강은 수상소감으로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회사 식구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초심 잃겠다'라는,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해 실검에 등장한다. 안하무인의 톱스타 박강. 온 세상이 우습지만 특히 더 만만한 건 친구 겸 매니저 조윤이다. 회사가 대형 에이전트는 아닌 탓에 박강의 흥망성쇠에 조윤 가족의 일상이 달려있다. 분명 연극 같이 하던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조윤은 박강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다. 자기가 했던 수상소감처럼 초심을 완벽히 잃은 박강. 이런 박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택시 하나를 탔을 뿐인데 자기가 톱스타였던 세계관에서 무명 재연배우인 세계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왜 지금 개봉을?
영화에서 중요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다. 이 영화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구색을 갖췄다고 느낀 것은 이 시간적 배경 덕분이다. 영화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왜 이 시기로 잡았는지 설명하는 편이다. 일단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은 시기가 연말이라는 것이다. 연말이기 때문에 시상식이 있다. 이 시상식에서 박강이라는 인물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또 크리스마스 자체가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감독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잘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 이 상징적인 의미는 후반부에 어떤 대사와 이어진다. 각본을 쓴 마대윤 감독이 이 부분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 전체적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야기의 터닝포인트로 활용한 부분이 몇 개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라는 소재에 여러 키워드를 넣다 보니 좀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왜 개봉시기가 2023년 1월일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 12월에 <아바타 : 물의 길>이라는 자연재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글쓴이는 11월 말에도 개봉시기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인생의 탄생’이라는 관점이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티브이기 때문에 1월의 개봉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올빼미>나 <육사오>처럼 장르적인 개성을 어느 정도는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의 영화(<육사오>)의 경우처럼 나름의 뚝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적당히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후에 개봉하는 <유령>, <교섭>보다 더한 임팩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예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기가 좀 아쉬운 영화가 됐다.
심심하면 만날 수 있어
영화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작년 11월에 개봉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찡한 가족드라마이자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영화. <덩케르크>처럼 미니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넣을 수 있는 건 죄다 때려 박아서 내내 폭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하나하나 빼곡히 넣은 소재가 영화의 주제 중 하나(‘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후의 삶’)과 이어져서 의미 없이 소모되는 것이 없었다. 이 <에브리씽~>은 이렇게 연출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쾌감 덕분인지 많은 분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하려고 하는 말의 방식이 신선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사골국같이 우려낸 소재다. 이제 <에브리씽~>의 연출방식이 아니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단 <소울>만 봐도 이런 소재 영화가 재작년에도 있었다.
이 <스위치>는 이렇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다. 바로 영화에서 기본적인 구성이 어느 정도는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는 <올빼미>나 <육사오>와 유사한 느낌이다. <올빼미>가 대체역사물과 스릴러라는 익숙한 맛을 살렸다면 <육사오>는 그냥 순수하게 웃기는데 집중한 영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치>는 가족구성원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고, 가족의 유대감을 살려 코미디로 소화하는 연출이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 아내 수현 캐릭터가 박강의 행보를 설명해주는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수현이 어떤 캐릭터로 설정됐느냐에 따라 박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좋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나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간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현의 몇몇 대사는 좀 오그라든다.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아서 화가 난고야?”같은 대사는 아쉽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과도 이어진다. 수현에게 비교적 올드한 연출이 집중되기 때문에 거의 주인공쯤 되는 분량인 이민정 배우 부분이 약간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사 몰입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가족구성원으로 나오는 어머니, 아들/딸은 나름 연출로 잘 살렸다. 자녀가 되는 로이, 로하 역할은 살짝 아쉬운 박강의 감정선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아이들이 귀엽다. 특히 박소이 배우도 귀엽지만 그 동생으로 나온 분이 애가 이쁘다. 극 중에서 그렇게 잘생긴 아이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냥 귀엽다. 캐릭터를 살리는 인물 설정이나 촬영방식에서 이 둘을 살리는 연출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캐릭터인 어머니 역은 두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역할을 나쁘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처음 등장할 때 어떤 위치에서 나왔고, 두 번째 등장할 때 어디서 만났는지를 보다 보면 가족구성원의 위치가 박강을 설명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스위치>에서 신파극적인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의 근거는 중 후반부쯤에 어머니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신이 있다. 뭐 다른 분들은 글쓴이만큼 좋아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 장면이 감정적으로 찡했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이렇게 엉엉 울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연출의 예시였다.
살짝 새는 구멍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세팅은 역시 멀티버스다. 영화에서 직접적인 '다중우주' 언급이 없긴 하지만 뭐 다른 평행세계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멀티버스를 언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깊게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았다. 단순히 작년만 해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서 이에 대한 묘사가 나왔다. 이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중우주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당연히 이를 두 번 세 번 설명하면 좀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설정을 과감히 생략하며 이야기의 선택과 집중을 강점으로 발휘시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영화적 특성'에 임팩트를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집중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박강이라는 인물을 곁에 둔 주변인들의 리액션이다. 영화에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세계관이 바뀐 박강의 상태 묘사다. 박강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슈퍼스타였던 그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만족한다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내 입장이 되면 나 같아도 저렇게 행동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분량을 할당하고 인물의 서사를 쌓은 방식 자체는 코미디로서도 좋고 영화의 매끄러운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영화에서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박강의 가까운 지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묘사된다. 여기서 박강의 인물선은 입체적인데 주인공과 친한 인간관계의 감정선은 평면적인 쪽에 가깝다. 설정에 대한 설명 이전에 박강이 어떻게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인물 서사에서 이를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후반부의 어떤 이야기전개는 숙제를 푸는 듯이 쉭쉭 넘어간다. 수현이 좋은 사람인 것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떡밥은 영화가 강박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따뜻한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살렸다. 이를 위해서 떡밥을 푸는 행동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 중 ‘와 이건 좋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가령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는 것,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부분은 이 부부에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재가 된다.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은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나름 잘 챙겨서 이야기 서사에 굴곡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것이 ‘강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헌트>의 엔딩에 대해서 써보자면, 이 작품의 끝 장면은 고윤정 배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정재 감독이 나중에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이랬겠구나’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다. 영화의 인물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를 너무 대놓고 다 보여준다. 만약 처음 만난 그 장면에서 끊었으면 여운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한 셈이다.
낡은 구석들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잘 갖춘 영화지만 나이 든 영화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권상우 배우의 상의 탈의 신 몇 개다. 영화에서 권상우 배우가 상의탈의를 한 장면이 다섯 번 정도 된다. 여기서 두~세 번 빼고는 사실상의 탈의 안 해도 된다. 특히 찜질방에서 조윤과 대화하는 신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권상우 배우 멋있는 걸 굳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아야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보여주는 코미디 신은 호보다 불호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박강이 슈퍼스타인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아 진짜 싫다. 이걸 재밌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진짜 너무 싫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이후에 박강과 어머니의 대화 신에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인상 깊어서 이게 더 두드러졌다.
그리고 수현이라는 캐릭터의 연출 방식도 살짝 아쉽다. 수현 캐릭터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배우로서의 성과가 시원찮은 박강을 굳게 일으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로서도 두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인물을 납작하게만 설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물에서 몰입이 깨지는 느낌은 대사(들)에서 나온다. ‘나 같은 예쁜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나쁜 거야?’식의 대사는 이민정 배우가 처음 등장했던 <그대 웃어요>에서나 본 대사다. 이런 대사가 이야기가 잘 전개되다가 갑자기 등장해서 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민정 배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영화에 플러스가 되는 셈이다. 근데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이것만 기억나는 거라면 이런 연출방식이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직업은 배우
사실 권상우 배우에게 예술가적인 기대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옥상으로 따라와’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빼곤 20대 후반인 글쓴이에게도 뭔가 신선한 느낌이 없다. 저번 작품인 <히트맨>에서도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스위치>에서 권상우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왠지 불쌍한 무명배우와 슈퍼스타의 간극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잘 연구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극에서 굉장히 찡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권상우 배우가 이렇게 감정적인 전달이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하무인 톱스타가 어떻게 이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외로운 눈빛과 몸짓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분이 새삼 직업이 셀럽이 아니라 배우인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권상우 배우의 최고작 갱신에도 불구하고, 오정세 배우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다. 이 배우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극 중 극 연기다. 이 영화 안의 드라마 연기와 영화 자체의 퍼포먼스를 비교하면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또 조윤이 톱스타가 된 세계관에서의 연기도 나름 충실했다. 대놓고 조윤을 안 챙기는 박강과는 다른 대비되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인물들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지'를 연구하고 표현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과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절제된 인물로 톱스타의 오만과 미덕에 대해 연기하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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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제80회 골든글로브 수상작은?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한국 시간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영화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과 드라마 부문으로 나누어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을 시상합니다.
과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는지 영화상을 중점적으로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상 - 드라마 | 더 파벨먼스 - 스티븐 스필버그
ⓒ 네이버 영화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더 파벨먼스>가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더 파벨먼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보낸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담았습니다.
영화는 2022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우주연상 - 드라마 | 타르 - 케이트 블란쳇
ⓒ 네이버 영화
올해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케이트 블란쳇
배우는 영화에서 리디아 타르 역을 맡아, 리디아 타르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했습니다.
남우주연상 - 드라마 | 엘비스 - 오스틴 버틀러
ⓒ 네이버 영화
올해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은 <엘비스>의 오스틴 버틀러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엘비스>는
시대를 뒤흔든 아이콘이자 전 세계가 사랑한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은 그린 영화입니다.
오스틴 버틀러는 엘비스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였습니다.
작품상 - 뮤지컬코미디 | 이니셰린의 밴시 - 마틴 맥도나
ⓒ 네이버 영화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은 <이니셰린의 밴시>가 수상하였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과거에 집필했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와 뉴욕비평가
협회상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우주연상 - 뮤지컬코미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양자경
ⓒ 네이버 영화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양자경 배우가 할리우드 진출한 이래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수많은 멀티버스의 다양한 역을 소화해내면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우주연상 - 뮤지컬코미디 | 이니셰린의 밴시 - 콜린 파렐
ⓒ IMDB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은 <이니셰린의 밴시>의 콜린 파렐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다수의 흥행작을 보유한 배우 콜린 파렐은 여러 감정들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표현해내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여우조연상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 안젤라 바셋
ⓒ 네이버 영화
올해 여우조연상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안젤라 바셋 배우가 수상하였다. 트차카의
아내이자 트찰라와 슈리의 어머니인 라몬다 역을 맡은 안젤라 바셋 배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높은 표현력으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남우조연상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키 호이 콴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우조연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키 호이 콴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20년 만에 스크린을 돌아온 키 호이 콴은 영화에서 다채로운 색깔의 연기와 현란한 무술 실력을
선보이며 볼거리를 제공해주며, 웨이먼드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은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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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윈도우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만 50편이 넘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공포, 호러에 바탕을 둔 장르소설로 분류하지만, 환타지, SF, 추리, 심리, 액션 등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기 때문에,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리타헤이우드와 쇼생크 탈출'처럼, 소설보다 영화가 더 유명한 경우도 있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 가운데 성공한 작품을 보면 '캐리', '미저리',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번역 출판산 스티븐 킹의 소설을 거의 다 읽은 독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샤이닝'이고, '샤이닝'과 같은 계열의 심리 스릴러 작품들이 다른 작품들보다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시크릿 윈도우'도 '샤이닝', '미저리'와 같은 심리 스릴러에 속하며, 주인공의 정신 분열을 영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물론, 중반 이후에는 관객이 이야기의 전개를 눈치 챌 수 있어 드라마틱한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은 '소설을 훔친 남자 Secret Window, Secret Garden'로 중편 소설이며, 소설가 '모튼'을 찾아오는 남자 '슈터'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영화보다는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 크다. 스티븐 킹의 최대 장기인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는 주인공의 감정에 거의 동질화할 정도로 깊게 이입하며, 주인공이 왜 이상하게 변해가는지, 서서히 광기를 띄며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공감하게 된다.
모튼은 뉴욕주에 있는 여름 별장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집을 청소하고, 식사까지 챙겨주는 마음 좋은 아주머니 - 당연히 임금을 준다 - 가 있고, 그는 노트북 컴퓨터에 워드를 띄워 놓고 소설을 쓰려 하지만, 소설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하루 하루를 빈둥거리며 낮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모튼.
어느 날, 누군가 찾아온다.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키가 크며, 조금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불쑥 원고 다발을 내밀며, 내 소설을 표절한 파렴치한 놈이라고 모튼을 향해 소리지른다. 모튼은 황당하고 불안하다. 자신은 결코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한 적이 없다고 맹세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남자는 표절한 작품을 원래대로 돌려 놓으라고 협박한다.
'슈터' 역을 하는 배우는 '존 터투로'로, 코엔 형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오, 형제여, 어디로 가는가'에서도 조지 클루니와 함께 중요한 역을 맡은 '피트'가 존 터투로인데, 코미디 영화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돋보이지만, 이 영화처럼 심리 스릴러 영화에서는 진지하고 무서운 연기를 보여주는 뛰어난 배우다.
주인공 '모튼'을 연기하는 조니 뎁은 '팀 버튼'의 영화에 자주 출연했고,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에도 나온다. '가위손'으로 이름을 크게 알린 이후, 헐리우드 최고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그가 진지하면서도 분열적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샤이닝'에서는 잭 토렌스가 '오버룩 호텔'에서 관리인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극심한 고립감, 호텔에 존재하는 거대한 악령의 영향,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소설을 쓰지 못하는 초조함 등이 뒤섞이면서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눈부시게 썼다면, 이 작품에서는 외부의 악령이나 미지의 힘에 의한 영향 없이,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만으로 변해가는 개인의 정신과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튼이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건, 아내와의 이혼 수속 때문에 별거 중이라 그렇다. 그는 뉴욕에 있는 집을 나와 이곳 여름 별장에서 혼자 지낸다. 아내 에이미는 새로 만난 남자 테드와 살고 있으며, 이혼 수속은 모튼이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상황인데, 모튼은 선뜻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튼은 아내의 불륜 현장을 급습해 에이미와 테드가 모텔에서 벌거벗고 있는 장면을 봤다. 에이미는 엄연히 모튼과 결혼한 상태로, 모르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모튼은 심한 배신감과 분노로 피가 끓었지만,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슈터'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기 소설을 표절했다는 말을 하니, 모튼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슈터'가 타고 온 자동차 번호를 보니 '미시시피주'였다. 남쪽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면 돈이나 뜯어낼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양아치는 아닌 듯 하고, 무엇보다 '슈터'의 표정은 진지하고 심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모튼에게 유리했다. 모튼이 '시크릿 윈도우'를 발표한 시기는 1992년이었고, 슈터가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고 밝힌 창작 연도는 1994년이었으므로, 오히려 슈터가 모튼의 작품을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슈터는 모튼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증거를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그러면서 모튼이 키우던 개를 죽이고, 모튼과 슈터가 대화를 나눌 때 차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도 죽였으며, 모튼의 변호사도 살해한다. 그 모든 것이 모튼이 증거를 내놓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모튼의 아내 에이미까지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면서 에이미가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질러 집이 모두 타버리고, 에이미는 애인 테드와 함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
이 와중에 에이미와 테드는 이혼 협상을 위해 변호사와 대동해 모튼을 만나지만, 모튼은 이혼서류에 싸인을 해주지 않고 버틴다. 에이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튼의 여름 별장으로 달려가 이혼 서류에 싸인하라고 말하는데, 이때 모튼은 사라지고, '슈터'가 나타난다. 모튼의 모습으로.
모튼은 아내의 불륜으로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소설가였으나 그가 소설을 쓰느라 보내는 시간 동안 아내 에이미는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소외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에이미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 것도 오로지 에이미의 탓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잘 나가는 소설가가 되려고 새로운 작품을 쓰려 하지만, 소설은 마음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어서 몹시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이다. 여기에 아내의 불륜이 준 충격으로 그의 내면은 이미 분열되고 있었고, 미움, 증오, 초조, 우울한 감정이 뒤엉켜 증폭하면서 그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만든다. 그가 바로 '슈터'다.
실제로 '다중인격'과 관련한 사례는 많은데, '싸이빌'에서는 주인공이 열여덟 명의 인격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다중인격자의 특성은 주로 어렸을 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의 자아로는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고통을 상쇄하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인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모튼의 경우, 다중인격으로 보기 어렵다. 그가 만든 '슈터'라는 인물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면의 분열을 통해 새로운 인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마치 자신이 아닌, 정신분열 상태에서 다른 존재가 나타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즉, 모튼은 매우 뛰어난 싸이코패스이거나 머리 좋은 살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용의자로 분류되지만 '슈터'가 저지른 여러 건의 살인은 결정적으로 증거가 없다.
슈터를 보지 못했다는 이웃 주민과 변호사는 차와 함께 강물에 가라앉았고, 아내 에이미는 집 뒤뜰에 묻혔다. 에이미의 실종은 테드의 증언으로 모튼의 여름 별장으로 갔다는 것이 확실해졌지만,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정황이 모튼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체포, 기소를 할 수 없는 것이 경찰의 딜레마인 것이다.
모튼은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광기를 분명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걸 알았고, 에이미의 배신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소설은 써지지 않고, 작가의 명성은 사라졌으며, 미래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변호사는 시간당 2백 달러를 주어야 하고, 이혼하면서 재산도 거의 다 사라졌다. 모튼에게 남은 것은 고통과 증오, 분노 뿐이고,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극단적으로 행동하는데, 그는 또한 냉정한 계산으로 일종의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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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스름한 운명의 결박을 뒤흔드는 관능과 냉소의 퀘스트
※영화 〈그린 나이트〉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보자. 소위 명망가의 집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으레 가족 중에는 속을 썩이는 아픈 손가락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다들 명석하고 현명해 가업을 이을 인재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들이 하는 대로 당장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인물로 커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천덕꾸러기 역할을 하는 사고뭉치가 없으란 법은 없다. 자식이 그런 역할일 때 부모는,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대충은 짐작이 가나 굳이 대답을 듣기도 싫고, 딱히 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도 없어 보이는 저 아이를 어떻게 교화시킬지 고민이 많아진다. 그럴 때 몇 년이라도 더 살아 본 이웃과 주변인들은 자식을 키워 본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 기회가 찾아오듯 지금은 답답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고 제 구실을 할 것이라 위로한다. 하지만 그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걸 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거대한 녹색의 형체에 도끼를 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지는 않을까.
왜 기사가 되고 싶은가?
영화가 켜켜이 쌓은 은유와 상징은 여러 갈래로 해석할 통로를 만들어준다. 문학의 뿌리이자 시초를 선택해 새로운 변형을 가한 데이빗 로워리는 전환기의 문제작을 선택해 낯설지 않고도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중세를 지탱하는 정신이었던 기사도는 접근할 수 없는 흠모의 대상인 귀부인을 향해 미혼의 기사가 펼치는 거세된 욕망의 궁정식 사랑으로 유지된다. 중세 귀족 중심의 남성연대를 유지하는 기능을 했던 이 논리에 따르면 기사는 꿈에도 넘볼 수 없는 성주의 ‘소유물’인 귀부인에게 플라토닉 사랑을 표출한다. 조금이라도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면 궁정식 사랑의 가치와 논리는 파괴된다. 여성은 욕망을 표출하는 대신 기사의 임무를 부여하는 대상으로만,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전달하는 NPC로 존재한다. 당대의 기사는 원하는 목표인 전설과 명예를 차지하여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는 여정의 복잡성을 귀부인이라는 도구적 존재로 스스로 만들어낸다. 외부적 상황에 따라 애초에 불가능한 귀부인과의 감정적 욕망은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장벽을 세워놓는 셈이다. 실패가 예고된 관계인 가질 수 없는 여성의 사랑은 그 자체로 남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그린 나이트〉의 원전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이러한 전통적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양난 이후 조선을 지탱하던 사대부 정신이나 봉건제 같은 가치관에는 근원적 동요가 일어난다. 문학에서도 이 흐름은 이어진다. 평민과 여성의 각성으로 사회비판과 현실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산문 문학이 발전하여 새로운 사조가 들어선다. 국가적 혼돈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며 전복의 계기를 마련한다. 14세기 말 유럽, 인간의 탐욕은 총포를 만들었고 백년전쟁은 전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뿐인가.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은 무자비한 속도로 인명을 앗아갔다. 환란의 시기에 사회를 지탱하던 봉건제와 교회는 힘을 잃는다. 기사도 정신이나 궁정의 예법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예전 같은 강경함은 사라진다. 이후 기사의 도덕적 권위가 하락함과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문화예술도 예외는 없다. 14세기 말 쓰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과거 아서왕 전설의 연장선상에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 서사의 진행은 기존의 문법인 궁정식 사랑과 기사의 영웅 서사를 따라간다. 그러나 본론으로 들어가면 인물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확연한 변화가 엿보인다. 용기와 신의를 중시하던 원탁의 기사들은 녹색 기사의 게임 제안에 주저하고 서로 미룬다. 가웨인 역시 기사도의 덕목이라는 충성과 용맹, 겸허와 거리가 멀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었다면 기사의 게임 이후 일 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을 때 철저한 자기 계발과 조력자의 훈련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미 준비된 영웅이었다면 그런 과정은 필요하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가웨인의 일 년은 별 언급도 없이 생략되어있다. 그렇다고 그가 기사로서 완벽한 인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얼떨결에 거대한 여정에 차출된 것처럼 떠나는 데다가 손쉽게 욕망에 휘둘린다. 이렇게 중세의 기사들이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성 인물들의 태도는 과감하고 적극적이다. 현명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상황을 이해하며 능숙한 계략을 선보이기도 한다. 모르간 르 페이는 가웨인의 전 여정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주동자이며, 레이디는 자신의 욕망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시선의 주체가 된다. 가웨인과 레이디의 뒤집힌 구도는 새로운 해방의 지점을 부여하며 관습을 거부하는 시대적 변화를 나타낸다. 남성 중심의 봉건 사회를 꼬집고 비판하는 수백 년 전 작품의 길을 2021년의 영화는 성실히 따라가면서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색깔을 마음껏 드러낸다.
데이빗 로워리가 펼쳐낸 가웨인(데브 파텔)의 여정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불안과 역경을 담아낸다. 아직 기사 작위가 없는 젊은 가웨인은 다른 기사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당당히 내세울 멋진 전설 하나쯤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아서 왕(숀 해리스)의 이복남매인 모르간(새리타 커드허리)의 아들로 태어나 원탁의 중심에 앉을 수 있는 혜택과 기회를 지닌 ‘은수저’지만 딱히 내놓을 에피소드는 마땅치 않다. 크리스마스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삼촌 아서 왕은 굳이 그를 옆자리에 부른 뒤 장광설을 펼친다. 기사들이 겪은 무용담을 즐기는 아서 왕과 기네비어 왕비(케이트 디키)는 가웨인에게 너도 저런 모험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은근히 압박한다. 명절마다 만나는 친척들의 달갑지 않은 질문 세례와 긴 조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때마침 불청객인 녹색 기사(랠프 아이네슨)가 찾아와 ‘목 자르기 게임’을 제안하고, 가웨인은 떠밀리듯 플레이어가 되어 그의 머리를 자르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 녹색 기사는 일 년 후 등가교환에 따라 ‘목을 잘리러 오라’는 통보를 한 뒤 방을 나선다. 준비도 안 된 가웨인의 갑작스러운 여정은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낯선 사회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청년들의 고민과 불안을 내포한다. 기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모험은 삶의 첫 시련에 던져진 미숙한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겪고 성장하는가를 보여준다.
기사가 스스로 차단한 욕망의 허들은 기존의 궁정식 사랑을 변용한 장르에서 종종 귀부인과 위험한 관계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킨다.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남성의 페티시즘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이용하는 방식은 현대의 누아르와 로맨스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웨인과 에셀/레이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관계에서 기사의 거세된 남성성은 여성의 욕망과 결합해 전복된 구도를 만든다. 사랑에 소극적이며 선택을 주저하는 가웨인에 비해 에셀은 자신의 감정과 소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나약한 남성이 홀로 유혹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카메라는 집요하게 그를 훑으며 욕망을 표출한다. 이 과정에서 가웨인을 향한 성적인 긴장은 레이디의 유혹에서 절정에 이른다. 우리는 원작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카메라가 모르간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웨인을 향한 성적인 함의가 농밀한 이 작품에 모르간의 존재는 곳곳에 드러난다. 영화 초반 녹색 기사의 행동과 교차하는 모르간의 의식은 모종의 계획을 암시한다. 처음 기사가 찾아왔을 때 아서 왕은 멀린을 쳐다본다. 잠깐의 붉은빛이 그에게 비춰오고, 왕을 향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왕의 마법사조차도 당해 낼 수 없는 힘, 혹은 이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안 모종의 거래가 의심되기도 하는 이 장면의 질문들 속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르간의 존재감이다. 버틸락의 성에서 가웨인 눈에만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눈먼 할머니와 눈을 가린 모르간, 그리고 한밤중 녹색 기사의 얼굴에 비치는 여러 얼굴 속 모르간처럼. 그렇다면 이 여정은 독립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한량 아들 가웨인을 험준한 사회로 내보내는 어머니 모르간의 시험이다. 스캐빈저와 성 윈프레드, 버틸락과 레이디의 내기 모두 모르간의 큰 그림 안에 포함된다. 원전에도 나오는 인형극의 인형처럼 가웨인의 모험은 퍼펫 마스터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가웨인은 왜 길을 떠났나?
혈육의 갱생 프로젝트치고는 상당히 과격한 여정을 가웨인은 왜 떠나야 했을까. 죽음을 담보로 한 게임에 머나먼 녹색 성당까지 가는 머나먼 길에는 매 순간 목숨이 위태롭다. 그뿐인가. 이해할 수 없는 마법과 말하는 여우, 귀신과 거인, 중세와 어울리지 않는 사진 기법까지 등장하는 이 혼돈의 세계는 문명과 대비되는, 태초의 인간에게 익숙했던 녹색의 자연을 상징한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 자연을 지배하려 했지만, 숭고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남아있었다. 동물성을 억압한 인간의 본성은 불확실과 혼돈을 넘나드는 설정으로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특히 ‘교환’의 상징이 어긋나는 지점은 흥미로운데, 영화 속 어디에도 ‘공정하고 평등한’ 규칙은 없다는 점이 그러하다. 크리스마스 아침의 게임부터 그러했다. 상대인 녹색 기사는 목을 날려도 일어나는 미지의 존재지만, 우리의 불쌍한 가웨인은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 확실하다. 처음부터 불평등한 위치에서 일어나는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캐빈저(배리 케오간)에게 길을 물어보는 대가로 동전을 쥐여주면 우리는 서로의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캐빈저가 알려 준 실제 성당의 위치도 거짓인 데다 가웨인이 지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거래는 끝난다. 영주 버틸락(조엘 에저튼)과 레이디 사이의 ‘획득물 교환 게임’에서도 가웨인은 버틸락에게 레이디와의 관계 그대로를 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대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윈프레드(에린 켈리먼)과의 거래도 일대일로 연결 짓기에 뭔가 석연치 않다. 이렇게 모험 내내 계속되는 비합리적인 교환의 연속은 영화에서 재신화화된 자연이 가진 혼돈과 대립, 거기에 나약한 인간을 대하는 냉정함마저 보여준다.
여기에 어머니라는 상징이 가진 자애로움마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가웨인의 방을 찾은 레이디는 그를 유혹하고, 이후 유사성행위를 암시하는 장면 이후 어머니가 짜 준 녹색 띠에 아들의 정액이 흩뿌려지는 장면의 결합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모든 과정이 어머니인 모르간의 의도와 설계에 의한 것이라면 관음의 시선인 카메라는 모르간의 것으로도 읽힌다. 거기에 레이디 역시 모르간의 휘하에 움직이는 존재라고 인지한다면 대상과 감시자 이상의 사회적 금기의 코드로 해석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법으로써 금지한 고대 시대 부족 내의 최초의 터부로 근친상간을 꼽았다. 특히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은 태곳적 금기와 훈육의 산물로서 만들어낸 인위적 죄의식으로, 상징적 아버지에 의해 경계된 사랑의 범위이다. 다만 영화와 이론을 관통하는 이 도식화된 관계의 원천이 서양 중심의 문화적 코드라는 점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존재를 소거한 문명과 제도라면, 영화는 남성-문명에 칼을 겨누는 여성-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들어선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에 나오는 중심인물로 아시아인이라는 점은 동양과 신비로운 마법을 연결 짓는 오리엔탈리즘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유색인종인 가웨인이 유럽-백인 사회의 엘리트 중심 원에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으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모르간이 짜 놓은 거대한 계획의 마무리는 아들이자 한 청년의 고난 끝에 찾아오는 값진 성장이라는 해피엔딩일까. 감독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 전반을 감싸는 비관적이며 냉소적인 시선은 몽환적인 사건들이 계속되며 한 청년의 불안에서 인간 전체의 죽음과 삶의 불안으로 이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그 냉소적 기운은 이미 드러난다. 첫 장면에서 우리는 저 멀리 집안에서 창문 밖으로 커지는 불길이 보인다. 가축들이 뛰어노는 아래는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에 기대 누워있는-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의식을 잃어 보이는- 사람과 덩그러니 서 있는 말이 있다. 이후 담 밖에서 남자와 여자가 들어서고 여자는 말을 타고 남자는 칼을 빼 든다. 무기를 집어 들고 바삐 움직이는 두 사람을 통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음을 예측해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끝내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전체 내용을 집약하면서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오프닝 시퀀스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은 폭력과 욕망, 그리고 혼란이다.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가 태어난 날, 축복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처음 봐야 할 것은 그렇게 성스럽지는 않고, 축복도 없는 인간의 실태이다. 그렇다면 이 모두를 바라보는 모르간, 그린 나이트,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자연’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볼까. 아마 저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탐욕과 파괴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웨인은 게임에서 살아남았을까?
크리스마스에 마을은 불타고, 범죄는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런 세상에서 가웨인은 원탁 앞에서 모험담을 당당히 자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는 가웨인이 세 번 죽는 장면을 바라본다. 첫 번째는 여정을 떠나기 전 인형극에서, 두 번째는 스캐빈저 일당에게 묶여 백골이 된 채로, 마지막은 게임을 포기한 채 어머니가 준 녹색 허리띠를 평생 차며 죽음을 피하다 종말의 순간 스스로 허리띠를 풀어내는 때이다. 사실 영화 혹은 녹색 기사로 현현된 자연은 가웨인을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이미 그의 죽음을 겨울이 오기 전부터 보았고, 시작조차 하기 전에 백골이 되어 끝나는 가웨인의 운명도 바라보았다. 영화는 어디로 기준을 잡는가에 따라 이후 벌어질 모든 서사가 실은 일어나지 않은 환상이라는 허무 의식을 심어놓는다. 그게 숲에 들어가기 전이든, 용기 없이 도망간 후든 말이다.
가웨인은 게임에서 살아남아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되었다. 가웨인은 애초에 기사가 될 수 없다. 그는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스캐빈저에 모든 것을 빼앗긴다. 윈프레드의 요청에 보상만을 바랐고, 환상 같은 거인에게 겁을 먹고, 녹색 기사와의 리벤지 게임에도 수차례 움찔거리며 몸을 사린다. 그는 교환의 논리에만 매몰되었고, 용기라고는 없으며, 성적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최소한 침대 위에서 레이디에게 굴복당한 이 장면을 기점으로도 전통적인 기준의 기사로서 가웨인은 실격이다. 그리하여 모험을 이겨내 기사가 되어 명예를 얻는다는 가부장적 남성성의 신화는 갈기갈기 찢긴다. 용기는 사라지고 욕망만 남은 가웨인의 도덕적 실패는, 남성연대 안에서만 통용될 모험담의 허상만 남아 인간-남성 사회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세 여자 형제의 손에 의해 정성껏 만들어진, 여성의 헌신과 노력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부적이나 전리품일 뿐이다. 마지막에 그 의미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다.
거기에 세상을 구원하러 온 예수와 가웨인이 오버랩되며 더 깊은 주제로 확장된다. 첫 시퀀스로 다시 돌아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는 잠에 빠진 가웨인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냅다 물벼락을 맞는 그의 앞에 에셀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막 잉태되어 흠뻑 젖은 인간을 연상케 하는 이 모습과 에셀의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영화에 처음 등장한 가웨인의 모습을 겹쳐놓는다. 여러 고난을 거쳐 인간에서 신이 된 예수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그의 연인인 에셀/레이디는 공교롭게도 한 배우가 연기한 1인 2역이다. 사창가의 창녀와 우아한 귀부인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연상하게 한다. 여성성의 이중구조를 투영해 남성의 페티시즘을 충족하는 존재로 취급되어 있지만 그의 진면모는 누구보다 현명하다. 에셀/레이디는 유혹과 회유를 거듭하고 질문과 정답을 말한다. 사랑에 용기 있게 대처하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며, 인간 앞의 거대한 자연을 향해 언제나 겸허하여지라는 메시지를 줄곧 던진다. 그러나 가웨인은 그 어떤 말도 대답하거나 수긍하지 않는다. 영화는 모르간과 에셀/레이디, 그리고 녹색 기사로 자연과 여성성, 즉 인간 문명과 신화에 객체로 존재했던 대상들을 앞으로 끌어낸다. 이들을 존중하지 않은 인간 사회의 최후는 ‘살아 있는’ 인간 중 가장 위대했던 그를 대표하는 것들의 몰락과 더불어 허위의식으로 꼿꼿한 인간의 목을 날려 버린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상징을 내포한 존재도 결국 신화 속의 허상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냉소를 자아낸다.
영화 후반부 가웨인이 맞닥뜨리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보고 누군가는 영웅의 성장을 만나겠지만 나는 뿌리 깊은 냉소를 본다. 어리석은 인간의 굴레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죽음을 기억하고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도 여전히 목은 잘릴 것이다. 원작의 결말처럼 게임에서 살아남은 가웨인이 원탁 앞에서 녹색 띠를 두른 채 거대한 남성연대의 일원으로 들어갔을 때, 영화는 인간의 죄책감과 나약함이 만드는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모험의 고난은 살아남은 인간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여정의 끝에는 거대한 녹색 기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죽음만이 기다린다. 느리지만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덧없는 명예와 영광에 사람들은 손을 뻗는다. 쿠키 영상 속 가웨인의 딸이 왕관을 집어 드는 모습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욕망의 감정에 관한 거대한 냉소주의적 시선이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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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한 후보>에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찍기까지
어제는 4월 1일! 만우절이었죠.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장난'으로 많은 이슈가 생기는 이날에도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요! 평소에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요? 순식간에 '진실의 주둥이'가 되어버린 3선 국회의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정직한 후보>는 선거를 앞둔 지금 보기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말은 진실보다는 거짓이라는 말이 있죠. 이 명언을 철저히 지켜오던 '주상숙' 후보는 한순간에 지나치게 정직한 입을 갖게 되었는데요. 영화 <정직한 후보>는 리얼 가득한 대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실제 국회의원들을 인터뷰하고, 찐 '선거 캠프'를 만들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부터 정치계 전문가들에게까지 끊임없이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들여 탄생시킨 캐릭터를 뒷받침하기 위해 로케이션 또한 현실과 최대한 맞닿아있을 수 있게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경기콘텐츠진흥원,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등 각 도시들이 지역 사회 홍보와 '콘텐츠 산업'의 부흥을 위해 콘텐츠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고, 2019년에 개봉한 <정직한 후보> 역시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제 41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한 기호 1번 주상숙 후보는 과연 어떤 장소들에서 어떤 선거 유세를 펼쳤는지 선거 유세 차량을 '씨네리포트'가 추적해보았습니다!
TJB 대전방송
선거 전 언제나 그렇듯 TV 토론이 열리고, 후보들은 주상숙 의원의 '자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합니다. '옥희재단'에 의문을 품고 있는 건 후보들뿐만이 아닙니다. 토론이 열리는 방송국엔 주 후보를 끝~까지 쫓아 비리를 파헤칠 기자님도 존재하죠. 토론부터 주 후보가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촬영된 이곳은 바로 TJB 대전방송으로, 대전의 지원 사업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배재대학교
"어려운 사람을 살피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을 남긴 '김옥희' 여사께서 설립한 옥희과학대학으로 변신한 이곳은 대전에 위치한 '배재대학교' 입니다. '옥희재단'은 주상숙 의원 비리의 핵심이었던 만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곳인데요. 늘 그렇듯 훈훈한 결말을 위해, 비리 가득했던 이곳도 결국 '정직하게 운영'되는 곳으로 끝맺음 짓게 됩니다.
국립경찰병원
말이 맘처럼 안 나온다니 굉장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직'한 후보여서는 안 되는 상숙은 궁여지책으로 병원으로 향하지만, 병원에서 진실의 주둥이는 더욱 활기를 찾습니다. 양방으로 안 된다면 한방으로 가야죠! 문젯거리인 주둥이에 침까지 맞아보지만 소용없습니다. 이렇게나 정직하신 후보님께서 방문하신 병원은 바로 국립경찰병원인데요. 치안이 훌륭한 곳이라고 하니, 아주 잘 다녀오신 것 같습니다.
서울책보고
지나치게 '정직'하게 된 후보님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곳은 바로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책보고'입니다. 다가오는 유권자를 보고 식겁하기도 하고, 사인을 요청하는 시민에겐 얼떨결에 '대필' 사실을 밝혀버리기도 하는데요. 서울시가 헌책방들을 모아 오래된 책의 가치를 담아 새로 만든 헌책방인 이곳 뒤편에서 후보님께서는 보좌관에게 '중고차'를 사주겠다고 고백하기도 하죠. 특색 있는 구조로 큰 인기를 끌었던 문화공간으로 문화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국회도서관
선거 10일 전, 과거의 킹메이커를 고문으로 부르자는 '보좌관'의 말을 믿고, 그를 모시러 갑니다. 온갖 정책과 시대의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일까요? 그분은 다름 아닌 "국회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캠프에 합류하자마자 전두지휘하며 주 후보 '왕' 만들기에 돌입합니다. 순식간에 '갓상숙'이 된 주 후보!는 국회에 입성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우절'에 전해진 반가운 소식! '진실의 주둥이 사단'이 돌아온다고 하는데요! 후속작 <정직한 후보2>는 장유정 감독과 라미란, 김무열, 윤경호 배우가 다시 만난 작품으로, 진실의 주둥이 '주상숙'이 정계 복귀를 꿈꾸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진실의 주둥이를 기다리며,
그때까지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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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에 걸맞은 그 이름 '리들리 스콧'
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맘껏 살 수 있는 인생이면 괜찮을 것 같다. 돈이 없다는 건 사람의 기분을 많이 좌지우지한다. 가령 이 사회복무요원 제도도 200만 원 월급을 받으면 할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한 달에 70만 원 받고 일하는 건 아무리 봐도 심했다. 또한 돈이 많으면 이 카페에서 초코 라테를 마시고 돈가스를 맛나게 먹고 가도 괜찮으니 금전적인 여유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솔직히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돈 벌고 싶어서라고 했을 때 '아니오'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애써 아닌 척했지만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혹은 돈 벌고 싶어서 어떤 일을 벌인다. 난 배 굶주린 게 너무나도 싫다. 그래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만약 굉장히 유명한 언론사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면 어떡하지? 나 내가 쓴 글이 있는 한 회사가 엄청나게 유명세를 타면 좋을 텐데! 같은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유명세를 타 인세를 받았다 치자. 그 후의 내가 계획한 행동들도 있다. 300만 원은 저축하고 100만 원은 내가 사고 싶은 걸 살 것이며 100만 원은 내 생활비로 쓸 거다. 유명해지면 인세만 받고 끝나지 않잖아? 강연 같은 것도 들어오게 될 테니 부수적인 수입도 있지 않을까? 그럼 기획자로서, 작가로서 인정받는 것이니 외적인 사랑도 날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돈은 이렇게 미래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그래서 모두의 삶에서 돈은 참 중요하다. 생활이 편하니까.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앞에서도 언급했듯 돈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착복한 돈이 아니라면 잘 나가는 기업의 CEO나 정치인쯤 되는 사람들은 존경까지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돈이 없는 건 아무것도 아닌데, 돈이 많으면 그 외 부수적인 것들도 따라오니 사람의 인생은 돈이 많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나눌 수 있다는 말도 그렇게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나 열심히 살았다'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를 만족하고, 또 타인의 관심을 얻는 방식엔 '비싼 브랜드 제품 사기'가 있을 것이다. 브랜드 구찌는 이런 우리의 욕구에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라이톤이나 지갑, 가방 뭐 그런 것들은 나같이 스니커즈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돈 하나로 내가 사고 싶은 걸 산다는 건 별게 아닌데 우습게도 가끔 우리는 이런 것들로 개같이 일 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에휴. 돈이 별건가. 쉽게 딱 얻고 끝나면 좋을 텐데. 내 아내(남편)가 돈 많은 사람이라면 일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통장에 꽂힐 텐데. 이걸 얻기 위해서 난 어떤 노력까지 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첩첩산중이란 걸 느끼게 된다. 그럼 '내가 돈에 농락당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싶다. 결국에 내 인생에 중요한건 재미라는 거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거다. 자, 지금 상영관에 어쩌면 중요하고, 또 그 사람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이 매개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다. 작년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의 메가폰을 잡았던 감독 리들리 스콧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막장 드라마를 가지고 돌아왔다. 영화 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이 글이 좋은 참고자료가 되면 나는 많이 기쁠 것 같다.
소시민이었던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해서
이 영화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구찌'의 운영과정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는 영화다. 파트리시아 레지아니는 20대 중반의 운송회사를 운영하는 부모를 둔 평범한 여자다. 그러다 구찌 일가의 구성원이었던 마우리시오 구찌를 한 파티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엔 가족 간의 갈등이 있어 구찌 운영의 실질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했지만 점점 그녀는 돈에 대한 욕심을 밖으로 표출하게 된다. 영화는 이 욕망에 대해 조명한다. 욕망을 어떻게 발현시키고 또 이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금방 찾아보면 이 영화의 엔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진짜 '무엇'에 관해 다루는 가에 있어 중요한 건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면이다. 어떻게 욕망에 의해 사람의 내면이 변해가는가.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엔 변해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는 '욕망에 의해 변해가는 사람'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레이디 가가가 맡은 파트리시아 레지아니를 국한 짓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녀뿐만 아니라 변호사, 이른바 '금수저' 집안 등 다방면의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행동들을 벌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와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줄거리가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장의 손 아래에서 매끄럽게 뽑혔으니 블랙코미디로서도, 스릴러로서도 좋은 기능을 한다.
덜어서 완성시킨 영화의 이야기
이 영화는 자체적으로 완급조절을 잘 했다. 실화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쳐내 비교적 순한 맛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한 가족이 있다. 근데 이 영화의 엔딩신으로 끝이 나는 가정이 있다고 치자. 이게 한국 아침드라마 감성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서 그렇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상영된다고 치면 ‘이게 뭔가’ 싶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 과제도 효과적으로 해낸다.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그대로 실으면 '이게 내 이야기가 아니고 금수저들의 속사정일테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영화는 오히려 톤을 적당히 가볍게, 또 무겁게 유지해 극의 설득력을 높였다.
또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들의 내면을 각본상의 허점이 없게 무난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감독이라고 치자. 여자 주인공이 극의 중심이라고 쳤을 때, 사랑도 사랑이지만 '그녀에게 돈이 더 중요한 결혼 사유였다'를 표현하려면 어떻게 장면을 그릴 것인가? 난 '돈만이 결혼의 이유'이거나 '사랑이 결혼의 이유'로 연출할 것 같다. 감독은 이 사이의 묘한 선을 잘 타고 넘어간다. 사랑도, 돈도 놓치지 않는 캐릭터 작법을 보여준다. 이 두마리 토끼를 잡을만큼 뛰어난 거장이기 때문에 이 실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고, 또 무난하게 뽑아낼 수도 있으니 과연 그가 이 극의 감독인 게 다행인 셈이다.
레이디 가가의 재발견
나에게 있어 레이디 가가는 가수다. 내가 10대 때 '포커페이스'가 나왔고 길거리 지나가다 많이 들었으니 그 곡의 후렴부를 지금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전작 <스타 이스 본>에서도 듣기야 했지만 이렇게 카리스마가 있는 줄은 몰랐다. 은근히 작은 체구의 그녀가 뛰어난 호연을 펼쳐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가 없다. 다른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역시 아담 드라이버일 것이다. 감독의 전작 <라스트 듀얼 : 후의 전투>에서 인면수심의 무식남 역할을 맡은 것과 비슷하다가도 다른 느낌을 풍긴다. 집에 박혀서 변호사 공부만 하는 숙맥에서 역시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이 역시 탁월했다.아, 이 영화에 자레드 레토 나온다. '자레드 레토 나온다'를 강조하는 이유? 보면 안다.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나름대로의 배역의 어려움도 있다. 근데 유심히 안 보면 그를 알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다른 역 알 파치노는 해마다 기력이 쇠하는 노인 역할을 잘 완수했다.
어떻게 구했어? 소품으로 구현한 당시의 구찌
브랜드 구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회사의 제품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난 구찌 제품을 보고 한 번도 고급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같이 돈이 많이 드는 브랜드가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 나의 습성 때문은 아닐 것 같다. 그냥 구찌는 요즘 들어서 뭔가 촌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1980~1990년대의 구찌 제품을 보고 엥? 싶었다. 이래서 구찌가 구찌구나! 하는 생각을 거의 처음으로 하게 됐으니 말이다. 영화 전체에 구찌 제품이 쓰이는데 이걸 일부러 소품용으로 제작했는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꽤나 고증을 잘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명품 보는 재미로도 영화는 즐겁다.
꼭 실화를 읽고 나서 영화를 보지 말 것
이게 실화 바탕이라 관련 기사 쓱 읽고 가는 게 도움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난 이거 오히려 반대한다.우리 한국에 살면 '막장 드라마'에 익숙하지 않나? 그 글을 읽으면 관련한 드라마들이 생각나서 영화가 주는 재미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스윽 가는 게 관객 입장에서 도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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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광기 어린 악녀이자 디즈니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빌런 ‘크루엘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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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웨이> 메인 예고편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그 곳,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미지의 섬에서 소년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어둠의 존재를 맞닥뜨린다.
그것을 피해 물과 식량이 풍족한 안락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우연히 날지 못하는 작은 새를 도와주고 친구가 된다.
그리곤 지도와 모터 사이클을 발견하게 되는데….
안락한 곳에서 안주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떠나야 할 것인가…
결국 소년은 작은 새와 함께 어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 섬을 탈출하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타고 거대한 산맥과 바다를 넘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어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소년의 불안과 공포일까?
그리고 소년과 작은 새는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