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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2021-09-15 18:41:12

인생은 함부로 판단되는 게 아니다

시리어스 맨 리뷰

경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답을 줘! vs. 못 줘!

 

<시리어스 맨> 등 코엔 형제의 작품을 관통하는 딜레마는 세상이 인간의 지혜를 통해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세상이 살만한 곳인가 하는 현실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에서 많은 돈을 노리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르웰린(조시 브롤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은 언제든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우연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는 씁쓸한 결론을 제시한다. 영화를 보면 르웰린이 똑단발을 한 악당,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의 추격을 받고, 르웰린에게 안톤이 가족을 전부 죽일 것이라 협박하지만 르웰린의 목숨을 뺏은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어스 맨> 속에서 코엔 형제가 선사하는 고난을 겪을 사람은 수학자 래리 고프닉(마이클 스털먼)이다. 그는 대학에서 종신교수 직을 약속 받았었다. 그런데 그한테 여러 재난이 찾아온다. 아무런 이유 없이. 딸이 성형을 하겠다고 돈을 요구하고, 아내가 이혼을 하고, 사무실에서 성적 조작을 해달라고 돈뭉치와 편지가 오기까지. 그리고 영화 중반에는 래리의 동생이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기도 했다. 그래서 위자료를 요구 받는 상황에 처한다. 그 상황 속에서 래리는 자신한테 오는 고난이 왜 찾아오는지를 알기 위해 랍비들을 찾아가지만 허탕만 친다. 심지어 마지막 랍비는 래리랑 만나줄 시간이 있음에도 래리와 만나주지 않는다.

 

 

 

<시리어스 맨>을 보면 코엔 형제가 래리를 너무 막 대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나마 처음에는 래리의 허둥지둥한 모습에 묘하게 웃음이 일었지만, 점점 웃음은 지워지고 그 빈 자리에는 씁쓸함이 남게 되었다. 불확실성과 인과관계의 부재가 인생의 본질이라고 싸늘하게 말하는 듯해서 말이다. 그나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온 르웰린의 죽음은 르웰린의 탐욕 때문에 일어났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래리의 불행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근무하는 학교 칠판에 자신만만하게 수학 공식을 써내려가는 래리의 모습은 그의 불행의 불확실성과 대조되어 래리의 초라한 모습을 더욱 드러낼 뿐이다.

 

 

 

래리가 끝내 성적 조작을 하는 모습에 면죄부를 주고 싶은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그렇게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재난을 피하고 싶은 래리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니. 하지만 반전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타난다. 래리는 영화 시작에 건강 검진을 받고 있었는데, 그 결과가 래리한테 통보된 것이다. 한편 래리의 아들은 학교 앞에 불고 있는 허리케인과 마주한다. 르웰린의 경우처럼 악행이 실제적인 결과를 만든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시리어스 맨>은 이 재난에 대해서도 끝내 침묵한다. 결국 <시리어스 맨>에서 모든 재난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최소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보여주지 않는다.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

 

안타깝게도 그것이 처음부터 <시리어스 맨>이 노리던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 시작에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라는 유대인 성서학자의 말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불행이 그 악행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한 판단도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본인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 이상, 래리처럼 '시리어스'하게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데 골몰하는 대신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로움도 필요하다고 코엔 형제는 래리의 촌극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코엔 형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늙은 보안관 에드가 그랬듯, 이러한 본질을 관망하면서 한탄만 하고 있지는 말라는 것도 은연중에 강조한다. 코엔 형제가 <시리어스 맨> 마지막의 2가지 재난(건강검진, 허리케인)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 르웰린의 탐욕 통해 인간의 잘못된 행동이 여전히 재난의 근원이 된다는 암시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코엔의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불확실 속에서도 인간 속의 악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끝없는 좋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통해서. 그래야 악행으로 비롯된 재난이라도 막아낼 수 있으니까. 이것이 르웰린이나 래리가 당했던 예상외의 재난을 최대한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작성자 . 박지수

출처 . https://brunch.co.kr/@komesta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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