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 한켠에 저 불빛 같은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승희,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빛을 뿜어내는 텔레비전 한 대가 있는 헌책방’ 부분,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030)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의 초반에는 모교 MIT에 강의하러 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가상현실을 이용한 심리 치료에 관한 연구를 시연하는 대목이 있다. 홀로그램처럼 그려지는 이야기는 바로 어린 자신과 부모님의 대화 장면이다. 이는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처럼 정말로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토니’의 기억에 의존해 그 조각들을 모아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다루는 이야기의 층위와 진폭 모두 다르지만, 만약 작중 ‘토니’가 돌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뛰어난 영화감독이었다면 바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 않을까.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자신의 유년에 대한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현재 자신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과거의 누군가(‘리보’)에게 바치는 헌사다.
"I believe that human beings are born first and given passports later. I'm really thankful for my journey. And It's a journey I didn't design."
알폰소 쿠아론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기예르모 델 토로 등과 함께 멕시코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영어덜트 인기 소설 원작 영화부터 시작해 내밀한 자전을 담은 흑백의 넷플릭스 영화, 곧 지금 말할 <로마>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넘길 필모그래피 없는 작품들을 내내 선보여왔다. "새로운 세계와 도전에 언제나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의 영화는 영화 만들기를 언제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최근 국내 개봉한 정이삭(Lee Isaac Chung) 감독의 영화 <미나리>(2020)를 보면서 처음 떠올린 영화는 윤가은의 <우리집>이나 윤단비의 <남매의 여름밤> 같은 작품들이었지만, 곱씹을수록 <미나리>는 그 작품의 성격상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유사한 면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나리>에 대해 쓴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https://brunch.co.kr/@cosmos-j/1217
알폰소 쿠아론은 <그래비티>(2013) 작업을 마무리한 뒤 "좀더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한다. "수년간 쌓인 자원과 도구, 테크닉이 있으니 드디어 고향에 돌아가 모국어로 영화를 찍을 때가 왔다"라고 생각했다고. 잠깐 언급한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굳이 영화가 될 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미나리>와 <로마> 모두 감독 자신의 유년을 기반으로 한, 특히나 더 사적인 출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닌, 잘 드러나지 않는 조력자이거나 거의 조명되지 않는 주변인이었을 사람들. 실제로, '이런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듀나 역시 이런 언급을 한 적 있다.
“신들과 괴물들이 지배하는 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긴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 대부분은 아주 지루한 삶을 살았고 그 삶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만한 특별한 개성도 없었습니다. 이런 개성이란 대부분 다양한 문화적 자극을 주는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물학적인 존재만으로서 인간은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듀나,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그러나 주변인이었을 사람들을 주변적 시선에서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는 만들어낸다. 그의 카메라는 나서지 않고 관찰자에 머무를 줄 안다.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는 순간. 이해관계와 효율, 힘의 논리가 남기는 어떤 상흔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살아있음의 에너지. 공간과 소리, 시간의 상호 작용. 삶과 세계 사이의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도 읽히고 싶다.
<로마>는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끝나는 영화이며, 사적이면서 공적인 영화고, 훗날 예술가로 성장한 한 사람이 자신의 지난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의 관계에 대하여 사려 깊고 섬세한 시선과 태도를 유지하는 영화다. 먼저 땅과 하늘에 대해 써야겠다.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기까지 약 3분. 부감으로 체크무늬의 바닥 타일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바닥을 물이 훑고 지나가고 세제 거품이 일렁이는 그 순간에 가만히 머문다. 바닥의 물이 거울처럼 비추는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이후 <로마>는 내내 순간에 천천히 머무르고 신비로운 배경처럼 파도, 우박, 비행기 같은 것들이 기억의 일부인 듯 프레임을 이룬다. <로마>의 땅과 하늘은 곧 주인공 ‘클레오’(얄리사 아파리시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거나 그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 자체다. 첫 장면의 바닥은 ‘클레오’가 청소하는 바닥이다.
이제 사적이면서 공적인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1970년대 멕시코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더라도 영화의 관객은 얼마든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로마>는 그것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 없다. 다만 ‘클레오’가 보고 듣고 겪는 만큼만을 정보로서 허용한다. 굳이 <로마>가 멕시코인 여성 가정부를 주인공으로 어떤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한 사람, 한 가정의 낮과 밤을 따라가며 그(들)의 행적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시대를, 그 시대의 공기를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음을 적고 싶은 것이다. 사적인 이유. ‘클레오’ 한 사람의 이야기인 동시에 알폰소 쿠아론의 기억 속 ‘리보’의 이야기이므로 사적이다. 공적인 이유. 임신한 아이의 아빠인 ‘페르민’이 떠난 후 남겨진 ‘클레오’와, ‘클레오’의 고용주인 ‘안토니오’가 개인의 성취 혹은 이기를 위해 떠난 후 남겨진 그의 아내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두 여성의 이야기가 평행선 혹은 그림자처럼 놓인다는 점에서 공적이다. 그러나 <로마>는 섣불리 ‘인종과 성별, 계급을 초월한 이야기’ 같은 것이 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거나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등의 가족처럼 보이는 일상에도 ‘가정부’와 ‘사모님’의 위치 차이는 존재하며 가사노동의 공간이 아닌 주거의 공간 역시 구분돼 있다.
“실제 우리 가족의 물건으로 방을 채웠다. 할머니 집에 있던 오래된 의자는 물론 다이닝룸과 아침을 먹던 공간, 응접실까지 원래 집에 있던 가구를 많이 채워넣었다. 극중 소피아의 초상화로 나오는 그림은 사실 우리 어머니의 초상화다. 아이들 방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은 실제로 사용하던 것 혹은 영화를 위해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보라스라는 반려견은 가족이 기르던 강아지와 종은 물론 이름까지 똑같다.”
- 알폰소 쿠아론 감독
<로마>의 주 공간이 되는 집은 알폰소 쿠아론이 실제 살았던 동네의 근처이며, 가구와 소품들은 최대한 기억에 의존해 비슷하게 재현했다고 한다. 앞서 사적이면서 공적이라고 한 점은 자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도 이어지는데, 결국은 자신의 유년이 어땠는지 자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키워주어 훗날 지금의 자신으로 만들어준 사람의 삶을 화자이자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 외 각본, 편집, 촬영까지 담당한 <로마>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사건이나 갈등이 아니라 가장 지나치기 쉬운 일상,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한켠에서 빨래나 설거지, 청소 등의 보이지 않는 일을 감내한 사람의 조용하고 고단한 하루들에 있다.
“앞으로 변화들이 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일 거야.”
-소피아, 클레오와 아이들에게
‘소피아’는 ‘클레오’에게 “우리는 널 정말 많이 사랑해.”라고도 말한다. 파도와 햇살을 끌어안고 서로의 모래 묻은 어깨와 등을 감싼 채 <로마>의 가족은 가만히 눈을 감고 사랑을 말한다. 이 순간 살아있음을 온 몸과 마음으로 끌어안고 만끽한 자의 모습으로. ‘나’의 삶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전해지고 쌓여온 누군가의 가까운 도움과 보살핌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에만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받을 때에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물론, 유년 혹은 유아기에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며 <로마>는 그것을 알고 있다. <로마>는 자신의 오늘이 타인의 과거로부터 비롯했음을 성찰하고,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그 타인의 일상에 빛을 전하는 사람이 만든 아름다운 영화다.
롱테이크와 패닝 숏으로 대표되는 미학적 스타일, 인물과 풍경을 담아내는 사실주의적 접근, 그리고 간결해 보이는 각본 안에 담긴 깊은 사유까지. 이미 경지에 이른 알폰소 쿠아론의 다음 영화를 믿고 기다려도 되겠다는 어떤 확신을 <로마>는 준다. 나를 살아있게 다른 이들의 지난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현재 애플TV의 시리즈 <Ascension>을 연출, 제작에 앞서 기획 중에 있으며, 아들 조나스 쿠아론과 함께 <A Boy and His Shoe> 각본도 집필할 예정.)
알폰소 쿠아론은 그렇게 “이 영화가 당신을 씻어내리도록 그냥 허락하세요”라고 권고한다. 동시에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개인의 삶 바깥에는 언제나 거대한 세계가 초연히 운동하고 있음을 말한다.
-김혜리 기자, <씨네21>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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