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21-11-07 21:28:25
정신을 잃고 깨어나보니 나도 모르는 남편과 아들이 생겼다?
지금만나러갑니다 리뷰
스포주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2018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중학생 때 학원에서 칭찬스티커를 많이 받아서 학원 선생님께서 영화관에 데려가 보여주신 영화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제목부터 뭔가 풋풋하고 아련한 느낌이 난다 소지섭과 손예진 두 배우가 부부로 나오는 이 영화는 아역배우 지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아역배우임에도, 비중이 많았음에도 딱히 어색한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지오가 커서 데이트를 하러가는 장면에 평소에 좋아하는 배우 박서준이 등장해 깜짝 놀랐다
- 이 영화는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써 감성도 일본 감성이 녹여져있다 필터도 색감도 첫사랑 재질이 느낌이 난달까,, 오글거리고 그러진 않는다 풋풋하고 보면 살짝 미소 짓게하는 그런 영화이다 기쁜것만은 아니다 마지막은 정말 뭉클하고 슬프다
- 과거 이야기 :;; 남자주인공 우진은 운동, 수영을 잘하는 고등학생이였다 그러다 여자주인공 수아를 보고 반하게 된다 그렇게 수아를 계속 따라다니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 노력했지만 철벽녀 수아를 꼬시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체육시간 수아에게 큰 실수를 하게 됬고 그 이후로는 말 한마디조차도 못 썪게 되었다 우진은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가게되고 수아는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우진은 수아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고 둘은 다시 만나게 됬다 하지만 몸이 안좋아진 우진은 수영을 못할 정도로 몸이 안좋아지고 수영을 그만두게된다 그리고 수아 그만 만나자 말하게 된다 하지만 수아를 못 잊게 된 우진은 서울로 올라갔지만 수아는 이미 다른 남자가 생긴 이후였다 그리고 이 이후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고 결국 수아는 우진을 찾아왔다 우진과 수아는 그렇게 둘이 아들을 낳고 살아간다 하지만 수아는 일찍 죽게되고 우진과 그의 아들 지오는 둘이 살게 되었다
- 현재이야기 :;; 지오와 우진은 둘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수아는 없었지만 항상 아침마다 우진은 수아의 사진에 뽀뽀도 하였다 그러다 터널에서 일년전 죽은 수아를 기적처럼 만나게 된다 수아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고 이 상황을 굉장히 어색해했다 하지만 점차 적응하게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수아는 언젠간 떠나야했다
결말이 정말 슬펐다 마지막이 정말 슬픈영화이다 꼭 봤으면 좋겠다
에딕터 파노라마 여서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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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빛으로 전하는 감사의 순환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영화 <플로우>가 지난 19일 수요일 관객들을 찾아오게 되었다. <플로우>는 고양이X골든리트리버X카피바라X여우원숭이X뱀잡이수리라는 독특한 라인업을 캐치프레즈 삼아 홍보해온만큼 개봉 전부터 그 내용에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바 역시 있다. 그렇게 영화관에서 만난 어느 고양이의 특별한 여정은 기대 이상으로 더 깊은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그들이 살아있지는 않은 어느 자연. 우리들의 주인공 ‘고양이’는 영역동물답게 자신의 영역에서 때로는 물고기를 잡고, 때로는 개들에게 쫓기며 일상을 살아간다. 드문드문 보여지는 고양이 관련 상징물들은 이곳에 체류했을지 모를 인간에게 고양이가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듯 보여지나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공생하는 동물들 만이 삶을 이어 나가고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건은 본격적으로 해수면이 차오르며 벌어진다. 이미 오래전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님 그저 자신의 삶을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를 고양이의 모험은 물에 잠길 위험을 몇 번이나 거듭한 끝에 저 멀리서 떠내려온 배 한 척에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이미 배에는 낯선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관객은 하고 많은 동물 중 왜 고양이가 그 주인공 되었는지 짐작이 가능해진다. 경계심과 겁이 많고 영역에서 생활하는 동물, 물을 꺼리고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동물이기에 대사를 비롯한 장치가 굳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고양이라는 주인공에게 모험은 그 자체로 시련이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물과 친근하지 않은 고양이의 특성을 십분보이며 그 모험이 쉽지 않을 것을 예고하기도 한다. 무던하지만 의젓하게 키를 잡는 카피바라, 물건을 수집하는 여우원숭이 그리고 다시합류하게 된 골든 리트리버까지 이 만남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찾아온 홍수라는 재해에 운명적으로 찾아오지만 뱀잡이수리와의 만남 이후부터 이는 필연이 되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구해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삶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삶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단순하다. 생존아니면 놀이이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몸부림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처하게 된 상황에 비관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거울에, 낮잠에, 공에, 반짝거리는 것에 눈을 빛내며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 고양이에게 찾아온 첫번째 구원의 순간은 리트리버로부터이나 아직은 이를 인식하지도, 특유의 관계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두번째 구원의 순간부터 고양이는 이를 인식하기시작한다. 거대한 몸집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고래는 물 속으로 가라앉던 고양이를 수면 위로 꺼내줌으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해준다. 단순 우연이었을지는 모르나 고양이는 그러한 도움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세번째, 뱀잡이수리가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무리의 우두머리에게 대든 결과로 날개가 뜯겨 나가고 무리로부터 방출 당한 것은 자신을 구해준 행위 그 이상으로 여겨진다. 뱀잡이수리는 더 이상 날지 못해 그들과 함께 배에 오르지만 고양이는 그렇게 한 가지 경험을 체화하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이는 후반부 고양이의 변화, 즉 성장과도 이어진다. 속절없이 물 밑으로 가라앉기만 하던 고양이는 이젠 처음 보는 물고기로 가득한 물 속에 뛰어들어 사냥감을 낚기도, 이를 뱀잡이수리와 나누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이가 딱히 좋지만은 않았던 고향의 개들을 구해주자 뱀잡이수리를 설득하기도 하고 위기의 순간에서 카피바라를 구해주기도 끝에는 자신들과 달리 지상에서는 살 수 없는 고래를 다시 물로 돌려 줄 순 없지만 그를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양이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다. 특유의 남다른 친화성을 가진 카피바라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은 동료 내지는 생존의연대를 깨닫는다. 여우 원숭이들 사이에서는 보물과도 같이 취급되는 거울을 포기하고 고양이를 따라 나서기도 하고 골든 리트리버는 동족들보다 여정을 함께 했던 이들 곁에 남기도 한다. 집단을 이루게 되며 이들은 도움에 대한 개념을 깨닫는다. 이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인간이 애초에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 돕게 되며 점차 개념들을 깨우쳐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런 인간보다 더욱이 특별한 이유는 뱀잡이수리 무리와 마찬가지로 같은 종족만으로 꾸려진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들을하고 우연, 아니 이제는 필연에 의해 가족이 되어감에서부터 비롯한다.
뱀잡이수리와 고양이의 이별 장면은 해당 영화에 있어 남다른 지점이 되어준다. 인연을 맺은 상대와의 이별, 그리고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나와 소임을 다했다 여기는 이와의 차이는 그렇게 빚어진다. 뱀잡이수리와 고양이는 무언가를 공유했지만 가야 할 길은 결국달랐다. 마치 일종의 목적지로 보였던 높은 봉우리는 사실 목적지가 아니라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이별의 무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원한 목적지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굴곡만이 존재할 뿐, 그렇게 뱀잡이수리는 만남과 이별 통해 고양이에게 가장 값진 선물을 준 뒤 멋지게 날아오른다.
밀물과 썰물이 광범위하게 반복되는 이 행성 안에서 서로가 도우며 그 삶을 이어 나갔기에 특별했던 것처럼 영화도 아주 다정한 방식으로 고래의 끝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쿠키영상에서 등장한 바와 같이 분명 지금도 어떤 고양이는 배 위에서 용감히 모험을 이어 나가고있을 것이고 또 어느 고래는 마음껏 바다를 누비며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살아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자연 앞에 순응하고 살아간다는 것앞에서 아마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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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 영화의 주제는, 음식 말고 영향력 그리고 뮤즈
줄리는 줄리아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 예민하고 불만 가득한 생활 속에서 줄리아의 자취를 따라 도전을 이어간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주는 느낌에, 더욱 줄리아를 사랑하게 되고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현실의 줄리아가 아니다.
줄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줄리아"이다.언제나 드러내지는 않았던 사실 : 저는 박은태 배우 좋아했어요.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하면, 늘 따라붙던 질문이 있다. 관객이건 전문가건 '뮤지컬을 좋아한다/직업으로 삼고 싶다'라고 하면 물었다.
"그래, 그럼 어떤 배우 가장 좋아해?"
그러면, 잠깐 대화의 흐름을 멈췄다. 내겐 좋아한다거나, 애정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배우가 딱 한 명 있었다. 꼭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내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히 누가 멋져, 누가 예뻐, 어떤 콘텐츠가 좋았어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들어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주로 가볍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없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 박은태 배우요!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당신은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줬던 사람! 고마워요 :D정해진 걸 재깍재깍 하던 중고교 범생이 시절을 지나, 사관학교로의 진로 고민을 하다가 방향을 틀어 경영학과에 갔고, 뮤지컬을 했다. 여기까지가 정말 닮았다. 그래서 신기했고, 응원했고,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가 다른 성별로 그즈음 태어났으면 저런 행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공연을 보고, 응원의 글을 남기곤 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느냐면, 동급생들이 한창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J팝을 듣고 부를 때, 나는 이 배우의 출연작 넘버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배우로 시작해 공연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가_받은_긍정적인_영향. zip
예민하고 나도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던 사춘기에, 다른 엄한 데 흥미 갖지 않고 뮤지컬 넘버를 흥얼거리며 프레스콜 영상을 뒤적이게 된 건 확실히 구원. 하지만 그 후로 얼마나 공연을 보고, 돈 안 되는 공연활동을 했던가! 물론, 내 선택으로 경험한 일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고3 수험생 때는 박은태 배우(이하, 박 배우)의 모교인 대학교의 동일학과 입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이동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논술 시험 시작 5분 후에 도착했으면서도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여기가 그 건물이구나, 여기 어디에 앉아 어떤 수업을 들었던 걸까?" 붙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물론, 해당 시험은 시원하게 떨어졌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소위 "성지순례를 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어이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이었다.
내가 힘들 때, 앞서 간 어떤 사람의 일화를 보고 들으며 '그 사람도 이랬대, 그런데 결과를 냈대.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식으로 영감을, 에너지를 얻는 것은 든든하다. 앞서 간 사람의 발길을 따라간다는 상상을 하면,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과연 공연 근처에라도 갈 수는 있을까 싶었지만, 진짜 전문가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인터뷰로만 접하던 때보다 좀 더 생생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공연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을 중/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이 만났는데, 박 배우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실하다, 겸손하다, 언제나 노력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프로 정신이 투철하다, 늘 성장하려 한다 등. 응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받으며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리는 이미지와 실제 본인은 다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 없는 박 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공연과 인터뷰 등을 조합해낸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 점도 늘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줄리는, 상상 속 줄리아의 손을 놓고 발자취 없는 길을 나설 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요, 줄리아."
나는 이제 뮤지컬을 예전만큼 자주, 많이 즐기지 않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순도 100%로 뮤지컬 넘버만 채우던 예전에 비해 한 달에 뮤지컬 넘버는 몇 곡을 들을까 말까 한다. 그리고, 박 배우의 소식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언제 내 이상적인 뮤즈의 손을 놓고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마음속으로라도 영화 속 줄리처럼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다.힘들었지만, 소중한 내 과거에 날 이끌어줘서 감사합니다.
본인은 전혀 모르시겠지만ㅋㅋㅋㅋ
그게 '진짜' 당신이 아닐지라도,
내게 열심과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꿈을 꾸는 희망의 불을 붙여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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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전하고 싶었던 어두운 피노키오
먼저 떠난 아들
김삿갓이 뭐죠? 방랑시인이 뭐죠? 우리의 예술가이자 귀뚜라미 크리켓은 오늘도 여행하고 있다. 크리켓이 여행 숙소로 머무는 곳은 보통 나무(들)의 심장이다. ‘어디 적당한 나무 없을까?’ 두리번두리번 돌아다니는 크리켓. 크리켓은 그렇게 숙소에 앉아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좋아. 이 자리가 좋겠어. 짐을 풀고 나무에 잠깐 누울 준비를 한다.
퍽. 퍽. 이게 무슨 소리야? 크리켓은 화들짝 놀란다. 나무에서 나오는 크리켓. 어떤 할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로 나무를 베려고 한다. 길가다가 벼락 맞는 것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불운이다. 할아버지는 뭔가에 단단히 씌인 것 같다. 무슨 일이지? 저 할아버지는 이 나무 근방에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제페토. 카메라는 제페토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제페토는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아들을 폭탄에 의해 잃었다. 회한과 후회가 제페토에게 남았다. 아버지가 되어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마음의 병으로 남는다. 미쳐가는 제페토. 제페토는 매일같이 아들의 묘지에 앉아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터무늬 없다. 망자가 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제페토는 나무를 베서 또 다른 아들을 만들려고 한다. 직업적인 특성을 발휘하는 제페토. 오래 걸리지 않아 '피노키오'라는 나무 인형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피노키오에 갑자기 특별한 마법이 들어왔다. 피노키오는 신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얻는다. 나타나자마자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피노키오. 과연 피노키오는 어떤 일상과 삶을 마주하게 될까?
아날로그 감성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하다. 7살 즈음에 봤던 <강아지똥>이 생각난다. 직접 만든 점토 같은 느낌으로 전개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애니메이션을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림처럼 그려 전개한다. 모형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 1 프레임 단위로 모형을 그려 이야기를 만들면 제작자의 눈알과 팔이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그려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노가다 중 노가다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 스톱모션 기법으로 제작한 영화다. 과거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던 동화를 예전에 제작하던 방식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도입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영화는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다. 영화는 피노키오의 형식만 따왔을 뿐이지 사실 아예 딴판인 이야기다. 영화에서 중요했다고 볼 수 있던 키워드는 두 가지다. 바로 전쟁의 참혹함과 '너 다움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이다. 이는 과거의 어떤 것을 되살릴 수밖에 없는 영화의 형식과도 이어진다. 일단 아들이 죽었기에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과거의 사건에 대한 현재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너 다움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은 예술가로서 두 감독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과거의 편린에 사로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주제적인 측면은 제페토와 피노키오가 처절할 정도로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대표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거를, 그리고 그 과거와 관련된 기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를 각자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인 세팅만 따온 이야기
영화 제목에 '피노키오'가 들어간다. 피노키오? 우리가 아는 피노키오 아냐? 맞다. 우리가 아는 피노키오다. 거짓말하면 코가 늘어나는 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이 거짓말이라는 모티브를 활용한다. 이 거짓말이라는 모티브는 영화가 품고 있는 다른 한 측면 '다양성'을 관통하는 키워드기도 하다. 나무로 되어있는 피노키오. 사회성이란 게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고 치기 일쑤다. 이런 캐릭터 세팅은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이질적으로 맞물리며 후자를 더 돋보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또 피노키오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역시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이 나무로 구성된 피노키오의 특성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끊임없이 제시된다. 늘어난 코를 활용한다던가, 불에 탄다던가, 부서지면 수리할 수 있다던가 하는 캐릭터의 특성을 코미디, 판타지로 소화한다.
또한 이야기 전개 자체가 아예 원작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부분이 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 모두가 행복하게 마무리 저었던 결말과는 달리 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이는 '남겨져 있는 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가 대비되는 전-후반부의 설정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전달하기 위해 전쟁의 참혹함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세팅했다. 또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에서 '피노키오'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라는 단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다른 지점을 찌르는 작품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든 극장에서든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분은 뭘 먹고살길래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사람은 기예르모 델 토로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약간 매니아적인 감독 중에서 제일 대중적인 느낌?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위너도 됐고 <판의 미로>라는 걸작을 만들기도 했다. 이 뿐인가? 올해 초에 <나이트메어 앨리>를 개봉시키기도 했다. 일단 델 토로의 작품 특성이라고 하면 시각화 비주얼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를 제외하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괴물'이다. 델 토로는 영화에서 괴물을 잘 등장시킨다. 그런데 괴물을 시각화하는 방식이 너무 특이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억에 선명하게 나온다. 또 폭력 수위도 쉽지 않다. 어쩔 땐 잔인하기도 한 델 토로. 이런 델 토로가 '피노키오'라는 고전소설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이 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일단 영화가 전체이용가 심의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글쓴이는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다.
영화는 이런 기대를 한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델 토로의 인장을 쾅쾅 박아 넣었다. 일단 영화에서 틸다 스윈튼이 맡았던 신 캐릭터가 있다. 여기에서 이 여신 캐릭터의 비주얼이 곤충 개미와 '램프의 요정 지니'를 섞은 듯한 비주얼로 뽑혔다. 이 캐릭터가 잔인한 장면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뒤틀려있다는 점에서 델 토로 연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초반부에 제시되는 영혼의 묘사 방식, 귀뚜라미의 시각화, 피노키오의 모습, 후반부에 등장하는 괴수까지 델 토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기대치를 충족하는 뛰어난 연출법이 돋보인다. 그래서 혹시 '아 이거 기예르모 델 토로 순한 맛 아닌가' 싶은 분들은 전~혀 그러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영화는 스톱모션이라는 촬영기법과 어딘가 기이한 캐릭터 시각화로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며 후반부까지 질주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어느덧 2022년의 끝자락을 맞이한다. 올해는 또 어디까지 왔을까. 연말을 앞두고 많은 분들이 생각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글쓴이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혼자라는 것. 나만 이럴까?라는 것이다. 단순히 커플이 되거나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그런 목표들이 내 인생에서 언제까지 나를 지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진다. 점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서 나부터가 마음이 떠나가고 있는 듯하고, 사랑하는 애인은 아직까지 타이밍이 아닌 것 같거든.
영화는 혼자 남은 캐릭터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물들은 한 자리에서 맴돌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는 듯하다. 이 질문은 결국 관객에게 전달된다. 과연 우리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도 당연히 코멘트하고 있는 영화지만 이는 올해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되는 사실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남아있는 제페토와 피노키오의 행적을 주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당연히 있고, 그 과정이 끔찍할지라도 우리는 서로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니까. 다 아는 맛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을 찌르는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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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하고 싶은 이들
삶에서 답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현재의 모습. 그 모습을 바꾸려고 이리저리 시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내 노력과 별개로 사회 시스템이나 제도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경제적인 상황이나 가족 문제가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에서 더 나아갈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면,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시도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어 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진정한 탈출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적인 해방과 더 나은 삶을 향한 강한 의지와 결단을 포함한다.
영화 <탈주>의 배경과 주요 인물
영화 <탈주>의 규남(이제훈) 이야기는 북한의 병사 이야기다. 10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의 모습에서 왜 그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가야 하는지가 먼저 제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규남의 서사가 드러나면서 그가 꼭 탈출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한이라는 사회의 벽, 그 안에서의 억압된 생활은 그에게 자유를 향한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규남에게는 남은 가족이 없다. 제대 후 무언가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자유롭게 무언가 도전해볼 수 있는 남한으로 가려고 한다. 영화는 규남의 탈출 과정을 통해 그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규남을 쫓는 현상(구교환)의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높은 사회 지도층의 가족으로 보이지만, 동성애자로 보이는 그의 삶은 북한에서 더욱 억압적이다. 그는 유학 후 북한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의 추격은 단순히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압된 삶을 반영하는 듯하다.
영화는 북한을 하나의 장애물로 다루지만, 그 장애물은 사실 남한에도 존재한다. 남한은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빈부 격차와 사회 제도의 벽이 꽤나 크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유학이나 이민을 선택하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적 한계 때문이다. 결국 북한을 탈출하든, 남한을 탈출하든, 그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려는 모습은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보인다.
북한과 남한의 사회적 한계
규남의 탈출 이야기는 북한의 극단적인 억압을 상징하지만, 남한 사회에도 존재하는 여러 한계를 떠올리게 한다.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젊은이들이 겪는 취업난과 주거 문제 등은 모두 그들의 꿈을 제한하는 요소들이다. 탈출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저 더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이지만, 이는 가끔 절망적이기도 하다.
결국 개인의 선택은 주변 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더 자유롭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한국 안에서 가능하다면, 탈출하려 하지 않겠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그런 가능성을 점점 줄이고 있는 듯하다. 나라를 탈출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 <탈주> 속 인물들의 갈등
규남의 처절한 탈주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사회적 억압과 개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본다. 그의 탈출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와 희망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규남을 쫓는 현상 역시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끌어안고 있다. 그의 추격은 단순히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도망칠 수 없는 억압을 상징한다. 그의 이야기는 규남의 탈출과는 또 다른 형태의 투쟁을 보여준다.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
<탈주>는 단순히 북한에서의 탈출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갈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담고 있다. 규남과 현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억압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 <탈주>는 북한이라는 극단적인 억압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메시지는 남한을 포함한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 자유와 억압,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현재까지 이 영화는 한국에서 73만의 관객이 찾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추격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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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과 상상, 그리고 대화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이야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우연과 상상>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살다보면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일이 일어날 때도, 혹은 상상과 달리 우연하게,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때도 있다.
영화 <우연과 상상>은 그런 일상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우연과 상상> 속의 총 3개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일들이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마도 '영화 속의 일들이 내게 일어나면 과연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와 '츠구미(현리)'가 택시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둘의 대화는 츠구미가 최근에 만난 새로운 남자를 주제로 이어진다.
메이코는 츠구미와 헤어진 뒤 어느 회사로 향한다.
이 회사는 츠구미가 이야기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의 회사였다.
사실 카즈아키의 전여친이 메이코였던 것이다.
친구가 이야기해 준 남자가 알고보니 내 전남친이었다니. 그리고 최근에 호감 가진 남자가 내 친구의 전남친이었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정말 마법처럼 신기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메이코와 카즈아키는 회사에서 또 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대화를 통해 아직 둘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구나, 미련이 남아 있구나, 등의 정보를 확인한다.
이후, 메이코와 츠구미는 카페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카즈아키를 발견한다.
아직 메이코와 카즈아키의 사이를 모르는 츠구미는 카즈아키를 불러 메이코에게 소개시킨다.
이때 메이코는 상상한다.
츠구미에게 사실 카즈아키가 자기의 전남친이며, 자신은 아직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상상.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츠구미는 도망치듯이 카페를 나가고, 카즈아키도 카페를 박차고 나가서 츠구미를 붙잡으러 가는 상상.
이 상황들은 그저 '상상'에 불과했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현실에서 메이코는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비켜준다.
메이코의 상상이 그녀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내심 바라는 상황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메이코 개인의 심정은 많이 복잡하겠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친구 츠구미와 전남친 카즈아키 모두를 위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에피소드다.
메이코와 츠구미, 메이코와 카즈아키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이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초반에 츠구미가 해주는 카즈아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내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어서 더 재밌게 느껴진 것 같다.
이 순간만큼은 관객이 아닌 츠구미의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문은 열어둔 채로」이다.
이 에피소드는 한 대학교에서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졸업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사키(카이 쇼마)'로 시작한다.
이때 교수실의 문을 닫으려는 사람에게 세가와 교수는 괜한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문을 열어두라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결국 졸업요건을 못 채워 제때 졸업하지 못한 사사키는 최근에 세가와 교수가 책을 내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불만이 많은 상태이다.
사사키는 친구 '나오(모리 카츠키)'에게 미인계를 써서 그를 망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나오는 결국 사사키의 부탁대로 세가와 교수를 찾아가 그의 소설 속 다소 민망한 구절을 낭독하기 시작한다.
오직 책의 한 구절을 읽는 나오의 목소리만 들리는 이 장면은 꽤 길게 이어진다.
세가와 교수는 가만히 이 이야기를 듣는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절부절한 사람은 관객이다.
실제로 나는 교수실의 문이 활짝 열려 있어 혹시 지나가다가 이 소리를 유심히 듣는 사람은 없는지에 대해 계속 불안해했다.
그리고 이때 나오는 교수실의 문을 닫았지만, 세가와 교수가 바로 문을 열어둔다. 혹시나 오해를 살 만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매우 조심스럽고 철저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오의 낭독을 모두 듣고 둘은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세가와 교수는 나오의 의도와는 달리, 그녀의 낭독을 들으며 전혀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초반에는 그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나오는 세가와에게 사실 추문을 일으키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사실 이 상황에서 나는 세가와 교수가 크게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가와 교수는 그러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상황들을 모두 이해한 뒤 오히려 그 녹음본을 보내줄 수 있냐고 말한다.
세가와 교수는 자신의 글을 좋은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어주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가와 교수는 나오의 고민상담을 해 준다.
결혼하고 애를 낳은 뒤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하여 다른 여학생들과 친하지 않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자신이 미움받는다고 생각하던 나오는 세가와 교수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움받을 수 있다' 등의 담백하지만 진심 어린 말을 통해 큰 위로를 받는다.
세가와 교수에게 뜻밖의 위로와 위안을 받은 나오는 그에게 감사해하며 그의 녹음본을 퍼뜨리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세가와 교수와 나오의 긴 대화를 통해 나오는 위로를 받았고, 교수는 잘못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났다.
이 사실에 나도 매우 안도하던 순간, 나오가 책 낭독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할 때 '세'가와를 '사'가와로 잘못 입력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잘못 전송된 이메일로 녹음본이 퍼진 세가와 교수는 자취를 감추고, 나오는 이혼을 하게 된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나오는 버스에서 우연히 사사키를 만난다.
사사키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며,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우연히 이메일을 잘못 보낸 상황으로 인해 나오와 사사키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만났던 둘은 나오가 버스를 내리면서 그렇게 헤어진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우연하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일들이 일어나서 제3자인 관객의 입장인 내 입에선 저절로 탄식이 나오곤 했다.
나오는 교수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교수는 자신의 소설을 처음으로 소리내어 읽어준 사람을 만나는 다행스러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뜻하지 않은 오타로 인해 부정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이 계속 상상하게끔 만든다'였다.
다른 에피소드들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자주 상상하곤 했다. 사사키가 나오에게 제안을 할 때는 세가와 교수가 사사키의 의도대로 오해를 받는 상상, 나오가 낭독을 할 때는 혹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상상, 나오가 자신의 녹음 사실과 의도를 밝힐 때는 세가와 교수가 노발대발 화내지 않을까 하는 상상, 그리고 나오가 이메일을 잘못 보냈을 때는 이후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상상.
또한, 이 에피소드는 '모든 우연이 상상한 것처럼 그리 영화 같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시 한 번」이다.
이 에피소드는 '제론'이라는 소프트웨어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 속 모든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상황을 알리며 시작한다.
결국 다시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간 세상 속에서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우연히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동창 친구를 만난다.
나츠코와 '아야(카와이 아오바)'는 반가워하며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아야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사실 둘은 서로가 생각하는 친구가 아니었음을 발견한다.
사실 나츠코는 아야를 자신의 첫사랑인, 많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인줄 알았고, 아야는 나츠코를 예전에 함께 학교에서 피아노를 쳤던, 자신이 동경하는 친구인줄 알았던 것이다.
서로가 기억하는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둘은 상상을 바탕으로 한 연기를 시작한다.
나츠코와 아야는 서로를 자신이 착각했던 친구로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나츠코는 아야에게 자신에게는 아직 마음 속에 큰 구멍이 남아 있으며, 예전에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진심을 전한다.
아야는 나츠코에게 사실 너를 동경했었다는 말을 전한다.
둘의 이런 상상을 바탕으로 한 진심 어린 대화는 길게 이어졌고, 헤어지기 직전 서로를 꼭 안아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이 세 번째 에피소드였다.
온라인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 속에서 우연히 매우 소중했던(그리고 여전히 소중한) 친구를 발견하고,
사실 알고보니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친구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그 친구인 척 기분 좋은 연극, 즐거운 연기를 하고,
이렇게 우연히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이런 시간들은 아마도 나츠코와 아야 둘에게 오래도록 남을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이 둘이 계속 만남을 이어갈지는 모른다.
따로 연락할 방법도 없으니 더욱 만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찰나의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우리네 인생을 보다 따뜻하게 살아가곤 한다.
나츠코와 아야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로에게 건넨 진심 어린 말들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로, 이 온기를 간직한 채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긴 대화로 전개된다.
장소나 사건이 휙휙 바뀌고, 극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 보다는 '인물들의 대화'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이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준다.
인물들의 대사를 듣다보면 관객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내가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대화를 직접 듣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대화라는 파도를 통해 관객을 영화라는 바다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크다.
<우연과 상상>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꽤나 다정하게 느껴지는 기억들을 담아낸 영화이다.
그리고 '우연'과 '상상'이라는 것은 기분 좋은 일,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일 등 어떤 결과든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우연과 상상이 지닌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꼭 영화관에서 직접 마주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관을 빠져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꼭! 세 번째 에피소드 속 상황을 다시금 떠올려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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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믿음을 믿으십니까?
종교가 있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겨?" 친구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믿으니까 그냥 믿는 거지." 분명하면서도 모호한 답변에 마음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 믿음이란 뭘까?
- 믿음은 어떻게 작동할까?
-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까?
- 만약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되지 못한 채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질문들은 '이 영화' 이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클럽 제로> 프라이빗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클럽 제로>는 2023년 1월 2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클럽 제로
Club Zero
엘리트 기숙사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 교사 '노벡'은 아이들에게 의식적 식사를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을 진행합니다. 의식적 식사는 말 그대로 의식적인 섭취를 통해 과식을 줄이고 주체적으로 음식을 먹는 식사법입니다. 어떤 아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고, 어떤 아이는 친구 그룹에 머물기 위해 의식적 식사법을 따릅니다. 또 어떤 아이는 끝까지 거부하다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죠.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게 된 배경은 각기 다르지만, 아이들은 점차 의식적 식사와 영양 교사 '노벡'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이 의식적 식사를 받아들이자 '노벡'은 음식을 아예 섭취하지 않는 극단적인 식사법을 권하기 시작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 절식의 이점을 누리며 '클럽 제로'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을 의식적으로 섭취하던 아이들은 결국 '클럽 제로'의 규칙에 따라 아무것도 먹지 않기에 이릅니다.
⊙ ⊙ ⊙
그럼, 이쯤에서 '노벡'이 제시한 의식적 식사를 실천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음식을 먹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눈앞의 음식에 정신을 집중하고,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섭취합니다.
적은 양의 음식을 천천히 섭취하는 것에 충분히 적응했다면, 다음 단계는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는 것입니다. 역시 음식을 먹기 전에는 심호흡하고 음식에 온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절식입니다.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의식적으로 신체와 정신을 통제합니다.
글로 읽어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설득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이 식사법을 믿고 따르게 된 걸까요? '노벡'은 은밀한 전술을 통해 아이들의 믿음을 조종합니다. 처음에는 과식이 신체, 정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설명하며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가르침을 전합니다. 적게 먹는 것이 어떻게 몸의 자정 작용을 일으키고, 어떻게 하고자 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며, 어떻게 세상을 더 지속가능하게 하는지 설명하죠.
그런데 섭식을 통한 변화를 이야기하던 '노벡'의 논점이 조금씩 섭식 그 자체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그럴싸한 명분들은 사라지고, 섭식이 단지 관습적인 것일 뿐이라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전환되죠. 평생 먹지 않고 사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냐고 묻는 아이에게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증명했기에 답을 찾으려 들 필요가 없다"는 말로 홀려 버립니다.
교육과 보호를 목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공간인 엘리트 기숙사 학교에서, 선생님은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아이들은 가르침으로 포장된 조종을 피하기가 어렵죠. 일순간 '노벡'을 깊이 신뢰하게 된 아이들에게 절식은 또 하나의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새로운 식사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믿음이 눈을 가린 아이들에겐 생기를 잃어가는 서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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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 식사법을 웰니스, 자아실현, 지속가능성을 위한 식사법으로 소개한다는 면에서 '노벡'의 말은 언뜻 현혹적이기도 합니다. 이 가치들은 영화 밖 현실에서도 간헐적 단식, 미라클 모닝, 채식주의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킨 촉매제니까요. 이렇듯 변화들은 으레 그래왔던 관습('하루 세 끼를 먹어야 건강하다',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영양소를 고루 섭취해야 한다')과는 다른 모습을 띱니다. 과거엔 관습만을 단 하나의 진실로 여기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다양성의 시대인 요즘은 다릅니다. 오히려 관습만을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배척당하기 쉽죠. 관습을 부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된 겁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급진적인 사상들은 더 자유롭게 세상 밖으로 나오죠.
그런데 만약 <클럽 제로>의 의식적 식사법처럼 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상이 '관습을 깨부수는 새로운 움직임'인 양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떨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세상을 바꾸는 바람직한 식사법이라며 의식적 식사를 제안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짜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급진적인 움직임인지, '급진'의 탈을 쓴 어불성설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관습일 뿐이라고 말하는 '클럽 제로'와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잘못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하는 지구 평면설 추종자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진짜 진실이고, 이 시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인 움직임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들의 말이 '급진'의 탈을 쓴 어불성설로 들리죠. 그러나 하지만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 보면,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는 제가 '클럽 제로'나 오늘날의 지구 평면설 추종자처럼 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관습을 깨부수는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 세상에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우는 이 세상에서, 진짜 진실을 쫓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과연 제가 믿고 있는 것들 중 진짜 진실은 몇 개나 될까요?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진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클럽 제로>는 누구도 진짜 진실을 알아차릴 수 없으며, 진실은 결국 나의 세계 안에서 형성된 하나의 믿음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썩은 해골물을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다는 원효대사처럼 말이죠. 비슷하게 <클럽 제로>에서도 아이들 중 한 명인 '엘사'가 '의식이 섭식을 통제한다'는 자신만의 진실을 피력하고자 먹은 것을 게워 낸 뒤 그 토사물을 다시 섭취하는 시위를 벌입니다. '엘사'의 현실에서는 그것이 진실이기에 토사물을 다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진실은 믿음이 만드는 허상이라면,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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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제로>는 소재도 급진적이지만, 연출도 그러합니다. 평범하게 구성해도 무방한 공간들을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으로 채우고, 러닝타임 내내 신경에 거슬리는 난타음, 기계적인 줌인, 슬로우 모션 같은 촬영기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죠. 이러한 연출들로 영화는 한 편의 잔혹동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인 기묘함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당연한 현실이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그 세계 안에서 절식은 채식주의와 비슷한 수준의 급진적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끝까지 진실과 탈진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클럽 제로>였습니다.
Summary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마티유 데미, 엘자 질버스테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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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맷 리브스
제작: 맷 리브스, 딜런 클라크, 월터 하마다 (기획)
각본: 맷 리브스, 피터 크레이그
원작: DC 코믹스 밥 케인, 빌 핑거
출연: 로버트 패틴슨, 조이 크래비츠, 폴 다노 외
장르: 슈퍼히어로 영화, 추리물, 스릴러, 느와르, 범죄, 드라마, 액션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마이클 지아키노
촬영 기간: 2020년 1월 28일 ~ 2021년 3월 13일
제작사: DC Films logo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2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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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중기 스타일의 액션 /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 / 보고타: 기회의 땅 / 권해효, 이희준의 물오른 연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보고타: 기회의 땅"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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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사랑이 24년 만에 찾아온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기억일까? 인연일까? 전 세계 68관왕 167개 노미네이트 [패스트 라이브즈] 메인 예고편 공개! 3월 6일, 극장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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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로 모십니다
베이비 주식회사의 레전드 보스 베이비에서 인생 만렙 CEO가 된 ‘테드’.
베이비인 줄 알았던 조카 ‘티나’가 알고 보니 베이비 주식회사 소속이라니!
뉴 보스 베이비 ‘티나’의 지시로 ‘테드’는 형과 함께 다시 베이비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보스 베이비 IS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