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4-17 12:46:12
제로콜라는 살 안 찐다며
영화 [야당] 리뷰
이 글은 영화 [야당]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재주가 없는 자의 영화 리뷰 쓰는 법은 제법 처절하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것들 중 제일 큰 골자를 추려내야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모티프도 찾아내야 한다. 거기까지만으로도 이미 힘에 부치고도 남는데 그 두 가지를 엮어서 글을 쓰다 보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엉엉.
그렇다고 모티브나 레퍼런스가 쉽게 찾아지는 영화가 편한 것도 아니다. 바꿔 말하면 뻔하다는 뜻이니 그 단조로움을 뚫고 무언가를 써내려야 하는 고통(?)도 만만치만은 않다. 이번에 리뷰를 쓸 영화인 [야당]은 후자의 경우였다. 영화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과 닮아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으려 애쓰고. 익숙하다라던가 아는 맛이라는 표현들을 빼고 쓰려니 아주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비루한 실력의 영화 리뷰어는 이 작품에 제로 콜라의 개념을 차용하기로 했다. 영화 자체도 빼야 할 것은 빼면서도, 기대하고 있는 어느 정도 수준의 쾌감은 주었으니까.
우선 영화는 이런 류의 작품에서 가장 관객을 해롭게 하는 설탕 같은 존재인 현실적인 참혹함이나 처참함을 덜어냈다. 덕분에 사회고발 성격을 띤 작품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무거움과 찝찝함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영화는 훨씬 유쾌하며 가벼웠지만, 자칫 잘못하면 펄럭거리면서 바람에 도망 다니기 바쁠 수도 있었던 흐름을 적당한 속도감으로 못 박아 고정시켰다. 이 덕에 영화는 매끄럽고 부드럽게 눈에 읽혀 들어가고, 관객들은 가벼운 마음과 자세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제로 콜라임을 인지하고 마시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관객들이 애초에 어느 정도 감안한 채 접고 들어가는 부분도 존재한다. 몇몇 등장인물들은 소모성에 가까울 것이라는 사실과, 반전의 힌트가 언제나 코앞에 있다는 사실이다. 적정 수준의 통쾌함은 보장받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 예상 앞에서 마냥 쾌재를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제로콜라의 안전성 혹은 의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콜라의 대안으로 제로음료를 찾는다. PH2 정도 되는 산도(Acidity)를 숨기기 위해 때려 넣은 무지막지한 설탕에서 오는 모든 성인병을 비롯한 그 외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나 과연 제로 음료가 완벽한 대체제, 혹은 건강한 음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정답은 당연히 아니오 혹은 대답을 유보하는 것에 가깝다.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제로 음료가 장내 미생물의 질서에 혼란을 주는 것은 물론. 일부 설탕 대체제들의 경우는 설탕만큼은 아니라 해도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참고 1)
그리고 근원적으로. 제아무리 제로 음료라 할지라도 단맛이라는 감각에 대한 중독까지는 뿌리 뽑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 또한 여기에 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티프들을 그러모아 만들어진 이런 영화가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과연 이에 기대 만들어진 앞으로의 후속 작품들이 과연 한국 영화 자체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잘은 모르겠다. 는 답변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우후죽순처럼 깡패 영화가 만들어질 때가 있었다. 그 시대를 거치며 얻은 결론이라고는 자가복제에 지쳐 씁쓸해진 관객들의 입맛뿐이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는 맛은 이렇게 무섭고, 제로 콜라도 길고 넓게 보면 비만에 동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참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설탕 대체제들과 함께 포함되어 있는 요소들도 혈당을 올릴 수 있음. 몇십 캔을 먹어야 설탕이랑 비슷하다는 둥의 말하지 마라. 애초에 가장 위험한 것은 단맛에 대한 중독성 그 자체임.
[이 글의 TMI]
1. 하이퍼 나이프 리뷰도 써야 하는데...
2. 보물섬 리뷰도 써야 하는데...
3. 회사 가기도 귀찮은 휴먼이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야당 #황병국 #강하늘 #유해진 #박해진 #한국영화 #범죄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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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펜서' 리뷰
3월 11일,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 <스펜서>의 시사회에 참석하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찰스 왕자와 결혼한 왕세자비이자 영국을 넘어 전세계로부터 사랑 받은 사람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패션에 관심을 가진 후, 특히 최근 바이커 쇼츠가 유행하면서 그녀가 패션 아이콘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다이애나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글들을 찾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해 이해한 채로 관람한 것은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영화와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는 1997년에 마무리된 그녀의 짧은 생애 중 말기에 해당하는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3일을 배경으로 한다.
러닝타임 116분, 영화 내 배경 3일에 다이애나와 그녀의 삶을 다 담으려니 굉장히 압축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리 넷플릭스에서 <윈저 이야기: 영국 왕실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에피소드 5 '비극의 씨앗'을 시청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https://www.netflix.com/title/80181555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추가로 그녀의 생애가 간략히 정리된 마리 끌레르의 아티클을 공유한다.
이제 영화의 몇 장면들을 공유하면서 추가적인 정보와 감상을 남기려고 한다.
알다시피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 비 역을 맡았다.
크리스틴은 다이애나에 대해 이해하고 그녀의 습관들을 캐치하고자 여러 영상들을 보고 2권의 전기를 읽었다고 한다.
그녀는 <스펜서>를 통해 오스카 후보에도 올랐는데, 다이애나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을 잘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강렬했다.
관람 전 읽었던 글에서 한 해외 평론가는 스펜서의 장르를 '스릴러'라고 표현했던데,
품위 있게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가족 스릴러가 그저 이 영화의 장르인 게 아니라 왕실 가족의 숨은 이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에서 다이애나 외에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앤 불린(Anne Boleyn)이다.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부인으로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간통 등의 혐의로 참수당했다.
영화에서는 다이애나가 앤 불린의 전기를 읽으며 그녀에 공감하는데, 실제는 이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현실에서 앤 불린과 다이애나의 비교는 기껏해야 미미한 정도였다고 한다.
(출처: Newsweek)
그도 그럴 것이 둘은 공통점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둘 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고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왕족과 결혼한 백작의 딸이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헨리 8세가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과 같이
찰스 왕자가 다이애나의 언니 사라 스펜서(Sarah Spencer)와 불륜을 저질렀던 적이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둘의 비교를 통해 당시 영국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겼는지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다이애나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는 '파파라치'가 있다.
그녀는 당시 가장 사진을 많이 찍힌 여성으로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과 파파라치에 시달렸다.
심지어 이는 그녀의 죽음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다이애나의 차 사고 당시 사람들은 그녀를 구하려고 하기보다 그녀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는 크리스틴의 표정과 숨소리를 강조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시선에 불안감을 느끼는 다이애나를 표현한다.
영화는 거울에 비친 다이애나를 다양하게 보여주는데, 이 역시도 외부의 시선에 시달리는 그녀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왕실 가족들과의 식사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밤에 몰래 주방에서 음식을 먹는 다이애나의 모습이다.
실제로 다이애나는 거식증과 폭식증 등 심각한 식이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구대 양 끝단에 서있는 다이애나와 찰스 왕자,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검정 공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
위에서 말했듯, 영화는 3일이라는 시간적 배경 내에 그녀의 생애를 담으려 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는 다이애나의 타지마할 사진이 연상되었다.
다이애나와 찰스 왕자는 1992년 인도를 여행했는데, 찰스 왕자가 약속과 달리 혼자 출장을 떠나며 다이애나 혼자 타지마할을 방문해야 했다.
이 때 찍힌 다이애나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타지마할이 죽은 부인을 애도하며 지어진 건물이라는 점 때문에 이 사진은 굉장히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다이애나의 진실한 친구로 등장하는 매기.
그리고 매기가 남긴 메시지는 다이애나의 사망 26년 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우리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이애나의 또다른 모습은 어머니로서의 그녀다.
다이애나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했고, 다이애나는 8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녀는 어머니가 떠나던 날의 자갈을 밟는 발걸음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아픔에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다이애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왕실의 아이들은 태어나면 곧장 보모에게 맡겨지는데, 다이애나는 이를 반대하며 자신이 직접 돌보았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다이애나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해하는 모습과 다정함이 돋보인다.
<스펜서>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영화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색감과 미장센으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고,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앤 불린과의 비교는 관객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웠으며 전반적으로 너무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일부 장면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패션 비디오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왕세자비가 아니라 생애 내내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온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그녀를 잘 보여준 영화다.
3월이 여성의 달인 만큼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한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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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한 공동체를 지탱하는 온기
불온한 공동체를 지탱하는 온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2018) 비평
<앙: 단팥 인생 이야기>와 일련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배우 기키 키린이 2018년 9월 15일 향년 75세에 세상을 떠났다. 30대부터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할머니 역할을 도맡아왔던 그녀는 유작 <어느 가족>에서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다들 고마웠어.”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실제 배우의 육체와 겹쳐 묘한 감상을 길어 올린다. 그러나 죽음을 암시하는 배우의 신체와는 별개로 시바타 하츠에의 죽음은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차근히 밟아온 나에겐 다소 의문스러운 죽음이다. 이전 히로카즈의 가족영화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 사망한 가족의 자장을 좇거나, 결말부에 가족 구성원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담아왔다. <어느 가족>의 하츠에처럼 서사 중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은 그의 영화 목록에서는 이례적이다. 특히 그 대상이 그간 그의 가족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해온 어머니라는 점에서 더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면 하츠에는 왜 영화 중간에 죽어야 했으며, 왜 하필 그녀가 죽어야 했는지 영화 전반을 둘러보며 그녀의 사인을 밝혀보자.
히로카즈 감독은 국내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어로 ‘만비키’(万引き)라는 ‘shoplifters’는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라는 뜻과 동시에 ‘그들 자신이 여러 곳에서 도둑질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있다.”(<씨네21>, 2018.5.30.)라고 밝혔다. 후자의 의미를 따르면, 원제 <万引き家族>은 ‘훔쳐진 가족’으로 번역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훔쳐진 가족인가. 시바타 가족은 혈연이 아닌 사회 혹은 실제 가족에게서 버려진 구성원들로 이뤄진 유사 가족이다. 유리(사사키 미유)와 쇼타(죠 카이리)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를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부르진 않지만, 가족 외부의 사람은 쇼타와 함께 거리를 지나가는 노부요를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가족의 형상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어설프게 형태만 충족한 이 가족은 사회 시스템 앞에서 철저히 무기력해진다. 사회는 영화 종반부에 그들을 프레임 속 각자 다른 자리에 불러 세우고 유사 가족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시바타 가족을 해체한다. 즉, 사회는 혈연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유사 가족을 훔쳐낸다. 그런데 그 역도 성립한다. 시바타 가족은 동기의 무고함을 차치하고 보면 진짜 가족에게서 구성원들을 훔쳐 온 가짜 가족이다. 오사무는 차에 방치된 쇼타를 주워오고, 노부요는 유리에게 폭력을 가하던 진짜 가족에게서 아이를 법적 절차 없이 입양한다. 하츠에 역시 아키(마츠오카 마유)가 전 남편의 손녀인 것을 알면서도 아키의 가족에게 묵인하고, 시바타 부부도 오사무가 노부요에게 폭력을 가하던 남편을 죽인 뒤 사회적 계약 없이 맺어진 관계다.
그런데 하츠에가 시바타 부부를 집으로 들인 사연은 불투명하다. 단지 하츠에가 그들을 선택했다는 대사만 주어질 뿐 구체적인 동기는 말해지지 않는다. 하츠에는 전 남편이 죽은 뒤에도 그가 재혼하여 낳은 아들을 찾아가 위자료를 받아내는 속물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연금을 목적으로 집에 얹혀살며 그녀의 돈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시바타 부부를 가족으로 선택한 이유가 의뭉스럽다. 하츠에의 진짜 아들은 그녀에게 연락 한 통 없는 무심한 아들이고, 그녀는 보험을 들어서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부고를 전하고 싶어 한다. 정황상 그녀는 자신의 노후를 함께 해줄 가족이 필요했던 인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짜 가족에게는 '워크셰어(Workshare)'라는 공동의 규칙이 존재한다. 오사무가 쇼타에게 하는 “유리도 뭔가 도움이 되어야 같이 살기 편하지 않겠어?”라는 발언에서 시바타 가족은 암묵적으로 그 공모를 준거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금으로 경제적 자족성을 갖춘 하츠에가 시바타 부부를 받아들인 이유는 시바타 가족의 속물적인 규칙과 어긋난다. 이 불균질을 감수하고서라도 히로카즈 감독이 그녀를 유사 가족 안에 편입시킨 이유가 뭘까.
하츠에는 이름의 존재에서도 다른 가족들과 궤를 달리한다. 하츠에를 제외하고 시바타 가족의 구성원들은 가족 외부에서 불렸던 이름과는 다른 가명을 하나씩 갖고 있다. 유리를 찾는 TV 뉴스를 보고 그녀를 몰래 키우기로 합의한 가족들은 유리에게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그녀를 숨긴다.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보다 전이지만, 친부모에게서 받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쇼타 역시 오사무로부터 그의 본명인 ‘쇼타’라는 이름을 이어받았다. 시바타 부부와 아키 역시 본명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쇼타-오사무, 유코-노부요, 사야카-아키. 숨겨야 하거나 숨기고 싶은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본명이 사회와 진짜 가족에게서 밀려났을 당시의 이름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가명을 지어 과거의 이름을 숨기려 한다(가족이 해체되는 취조실에서 사회로부터 숨겨진 이름이 끄집어내지는 귀결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이름은 하츠에로부터 이어진 ‘시바타’라는 성으로 묶인다. 즉, 과거의 이름들을 은닉하기 위해 지은 새로운 이름들은 하츠에의 성을 받아 온전한 이름으로 기능한다.
이름 외에도 아이들은 어른으로부터 무엇인가 유전된다. 쇼타와 유리는 각각 가족을 부양하려다 다친 오사무의 오른발과 가족으로부터 받은 노부요의 상처가 유전처럼 전해진 아이들이다. 오사무는 공사현장 텅 빈 공간에서 “다녀왔어” “어, 쇼타”라고 자문자답한다. 오사무의 본명이 쇼타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관객들은 그가 불이 꺼진 곳에서 자신을 반겨줄 누군가를 바라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빠라는 호칭에 집착하던 오사무는 버려진 아이를 어린 시절 외로웠던 자신의 분신으로 삼아 “어, 쇼타”라고 반겨줄 아버지가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서 폭력을 당한 기억이 있는 노부요는 유리가 친부모에게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는 욕실에서 자신의 상처와 닮은 유리의 상처를 보고 아이를 끌어안아 몸에 품는다. 어쩌면 시바타 부부는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비가역적인 가족력처럼 쇼타는 다시 고아가 되고 유리는 다시 폭력적인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남은 하츠에로부터 아키에게는 무엇이 유전되었을까. 쇼타와 유리가 다시 시바타 가족이 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키는 아무도 없는 하츠에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섹스 노동을 할 때 가명으로 동생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보아, 아키는 동생에게 악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녀는 하츠에가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금전적 원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진짜 가족이 아닌 하츠에의 집에 다시 돌아올 정도로 실제 가족에게 감정의 골이 깊다. 그래서 그녀는 하츠에와 같이 실제 가족이 존재하면서도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홀로 살아가려 한다. 애정결핍이 있고 속물적인 가족의 규칙에 반감을 표했던 아키는 하츠에에게서 집을 이어받아 새로운 대안 가족을 만들어 하츠에의 자리를 대신할 혐의가 있다. 즉, 집의 소유주이자 재개발을 넌지시 바라는 부동산 업자로부터 집을 사수하는 하츠에는 아키에게 다른 가짜 가족이 거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집을 물려준다.
<어느 가족>에서 버려질 법한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집의 풍경은 마치 버려진 시바타 가족의 은유처럼 보인다. 일본 가족영화의 뿌리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다다미방처럼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집은 미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가족은 그 단어의 피상적인 뜻처럼 집으로 묶인 집단이다. 따라서 사회 시스템 속 가족의 형성과 위기를 탐구해온 히로카즈의 영화적 관심사에서 집은 포기할 수 없는 무대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은 사회의 공간과 대비하여 의미를 형성해왔다. <어느 가족>의 집도 사회와 시바타 가족을 구분하는 경계처럼 존재한다. 영화 초반부 집 내부는 가족의 형성이 주는 안온한 기운이 형형한 공간이다. 오사무의 자상한 얼굴과 노부요의 모성은 관객에게 시바타 가족 사이에 복류하던 도덕적 균열을 가리는 알리바이로 작용한다. 그들은 관계에서부터 사회의 윤리를 비껴가지만,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집 안에서는 문제없는 가족처럼 보인다.
과거를 숨기려는 이름들에 성을 주고 가족을 사회와 경계 지어주는 은닉처를 제공하는 하츠에는 시바타 가족 구성원들에겐 집과 같다. 그래서 집 밖의 공간인 해수욕장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으며 가족이 되려는 그들을 보면서 하츠에는 마치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안녕을 고한다. 그 이후 집에 묻힌 하츠에는 시바타 가족이 사회로부터 해체되는 취조실 시퀀스 도중 그녀 역시 집에서 꺼내진다. 하츠에가 집이고 그 집이 사회로부터 시바타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였다면, 하츠에의 죽음으로부터 가족이 사회에 노출되는 건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어느 가족>은 집 내부에 편재했던 따스한 온기를 결말까지 안일하게 이어가지 않는다. 영화는 하츠에의 죽음 이후, 피가 아닌 마음과 유대로 연결되었다고 말하던 가짜 가족들의 옆구리 바짝 서늘한 공기를 밀어 넣는다. 하츠에가 죽자 오사무와 노부요는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녀를 묻기 위해 욕실 바닥을 판다. 양심의 가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얼굴은 벽 너머로 할머니의 시체를 쓰다듬는 아키의 슬픈 손짓과 대비되어 섬뜩하다. 뒤이어 시바타 부부는 하츠에의 유산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한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을 방치한 어머니를 악인으로 비추지 않음으로써 사회 시스템의 부재를 지목했던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에선 어른을 포함한 가족 안으로 카메라를 끌고 와 문제를 가족내부에서도 진단한다. 단순히 사회를 적으로 두고 투쟁하는 가족을 숭고하게 그리지 않고 가족 내에 산재한 위태로움을 기어코 들춰내는 이 영화는 가족의 실패를 사회 시스템만의 잘못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유사 가족의 나체는 아이 쇼타에 의해 드러난다. 늙은 하츠에가 불온한 가족을 지탱하는 온기였다면 어린 쇼타는 태만한 가족의 폐부를 찌를 냉기다. 홍수정 비평가의 “누군가는 가족 모두를 경찰 앞에 불러모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영화가 한 세계의 문을 여는 방법이 진정 어린아이의 몸에 상처를 새기는 것뿐인가."(<씨네21>, 2018.08.16.)라는 의견에는 함께할 수 없다. 쇼타는 도덕적 규범에 게을렀던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가족 외부에 호기심을 피력하는 인물이다. 하츠에가 죽자 그녀가 가려주던 가족의 불온을 감지한 쇼타는 유리에게 도둑질의 전이를 한 차례 막아준 문방구 주인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래서 이제 아이는 두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나선다. 마트에서 유리의 도둑질은 들키지 않았지만, 쇼타는 양파를 들고 도망치며 주의를 끈다. 다시 말해, 쇼타는 유리가 걸릴 걸 두려워한 게 아니라 도둑질하는 행위 자체를 막기 위해 도망친다. 그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자문했을 것이다. 결국 아이는 가짜 가족의 집이 아닌 막다른 다리를 선택한다. 홍수정 비평가의 의문이 생긴 이유는 상처를 피해의 흔적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쇼타의 상처가 시바타 가족이 편안하게 이어가던 잘못된 내력에서 절연하려는 결연한 성장통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가족을 예비할 어린아이 손에서 이뤄져야 한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쇼타의 환부다. 영화는 쇼타가 다리에서 떨어져 다친 발을 오사무의 다친 발과 같은 오른발로 슬며시 겹쳐둔다. 오사무의 발은 사회 서비스인 산재보험에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쇼타의 다친 발은 쇼타를 버리고 도망치려는 다른 가족들에 의해 방치된다. 그들의 환부는 부위만 같을 뿐 각각 사회와 대안 가족에 의해 곪아간다. 즉, 영화는 쇼타와 오사무의 환부에 외면하는 방관자를 다르게 지목한다. 이 뒤바뀐 진술 사이에 하츠에의 죽음이 있다. 사회 시스템의 부재가 가족의 내부결함으로 도치되는 경계에서 가족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주던 집으로서의 하츠에가 사라지는 건, <어느 가족>이 함께 지목하려 했던 두 의문을 스크린 위에 세우기 위한 서사적 결단인 셈이다.
유사 가족의 무력함 이전에 가족 내에 떠돌던 생기를 목격했던 나로서는, 취조실의 조사관이 시바타 가족에게 묻는 “아이에게 도둑질을 시킨 게 양심에 걸리지 않았나요?” “아이에게는 부모가 필요해요.”와 같은 선명한 발언들이 시바타 가족에게 심정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데 조사관의 물음은 언젠가 시바타 가족이 스스로 물었어야 하는 지연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오사무의 “가르칠 게 도둑질밖에 없었다.”와 노부요의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워왔을 뿐이다.”라는 답변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오사무가 아버지로서의 해야 한다고 믿었던 역할이 오인된 착각이었고, 자신의 상처가 아이에게 이어지지 않게 하려던 노부요의 애처로운 자기방어였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끝끝내 가족으로 불리지 못하고 다시 부모를 잃어버린 쇼타와 아파트 난간으로 내몰린 린의 얼굴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가족의 형성과 해체만 보여줄 뿐 아이들은 시작과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이 막을 내린다.
<어느 가족>의 돌아온 결말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생략된 세계를 보여준다. 시바타 가족은 쇼타를 버리고 도주하려다 한 빛에 포착되는데, 조명을 든 주체가 등장하지 않아 마치 객석에서 뻗어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쇼타를 버리려는 시바타 가족의 이기심이 관객에게 들킨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에 이어서, 취조실 장면에서도 시바타 가족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흡사 그들이 관객에게 답변하는 듯 보인다. 사회와 유사 가족, 두 집단 모두의 불완전함을 전시하며 끝나는 영화는 막연한 낭만주의적인 희망을 품지 않는다. 다만, 영화의 시작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유리가 침묵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하고 스스로 난간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쇼타가 이제는 아빠를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유리를 구해줄 새로운 가족의 부재와 쇼타의 속삭임이 오사무에게 닿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쇼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유리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목격자로서 관객이 존재한다. 시바타 가족의 자기변호와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언급한 영화는 그 이상 말하지 않는다. 이제 유리와 쇼타가 자라 오사무와 노부요가 될지도 모르는 심증만 남은 재판에서 유일한 증인인 관객이 발언할 차례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헤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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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도경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연 발탁!
출처: SM 엔터테인먼트
국내에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리메이크 작품 제작을 확정지으며 많은 국내 팬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고 있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지난 2008년 개봉한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작품으로 피아노 천재인 전학생이 오래된 연습실에서 신비스러운 음악을 연주하던 여학생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개봉 당시 시공간을 초월한 풋풋한 첫사랑과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레전드 청춘멜로’로 지금까지도 관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새롭게 리메이크되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도경수는 원작에서 주걸륜이 맡았던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는다.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영화 <스윙키즈> <신과 함께> <형> 등에 출연해 스펙트럼 넒은 연기를 인정받으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공고히 한 도경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통해 한층 깊어진 눈빛과 감성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도경수와 호흡을 맞출 여자 주인공 역은 추후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할 계획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여온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하며, 연출은 허진호 감독의 <행복>과 <외출>을 비롯해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등의 각본을 집필하고, 개봉 예정인 서예지와 김강우 주연의 <내일의 기억>으로 데뷔한 서유민 감독이 맡았다.
강렬한 피아노 씬과 첫사랑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음악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 도경수 배우가 보여줄 강렬한 피아노씬을 기대하며, 과연 한국에서는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풋풋한 첫사랑을 그려나가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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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함 속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헤어스프레이>
오늘의 영화는 바로,
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을 흥겹게 만드는 <헤어스프레이>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뮤지컬 | 미국 | 115분
감독 아담 쉥크만
출연 니키 브론스키, 존 트라볼타, 퀸 라티파 등
등급 12세 관람가
줄거리
60년대 볼티모어. 댄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트레이시.
남들보다 뚱뚱한 몸매의 트레이시는 댄스 쇼 참가를 위해 오디션에 참가한다.
<헤어스프레이>의 T.M.I
출처: 네이버 영화
원작은?
<헤어스프레이>는 1988년 동명의 코미디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200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배우
<헤어스프레이>의 주연 니키 블론스키(트레이시 역)는 고등학교 때 생일 기념으로 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오디션에 지원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낙방하게 되었고, 2007년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에 캐스팅 되었습니다.
<헤어스프레이>에서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턴블레이드는 존 트래볼타가 여장을 하여 맡았습니다. 영화 프르듀서인 크레이그 자단과 닐 메론이 존 트래볼타가 영화 <그리스>의 주인공을 맡았기에 에드나 턴블레이드 역으로 캐스팅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합니다.
<미스터 핑키의 헤프티 하이더웨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하는 미스터 핑기 역을 맡은 제리 스틸러는 1988년 원작 영화에서 윌버 턴블래드를 연기했었습니다.
"유쾌함 속 묵직한 메시지"
출처: 네이버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196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실제 1960년대는 인종 차별이 만연했을 시기이다.
영화도 역시 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인종 차별, 외모로 인한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을 다루었는데요.
사실 이 부분만 보면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뤄 가볍게 보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이런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나갔습니다.
차별에 맞서 평등한 사회로 변화하자는 좋은 메시지까지 담은 영화입니다.
"OST"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OST이죠.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영화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요. 영화 속에서는 약 17곡의 노래가 나오는데,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싶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트레이시가 부른 'I can wait'가 삭제되었는데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으니까 영화를 다 본 후, 한 번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방구석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영화,
지금까지 영화 <헤어스프레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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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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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복》,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질문은 던졌지만 내용은 글쎄?
작년부터 공유와 박보검의 만남으로 굉장히 홍보를 열심히 하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미뤄지고 미뤄지고 결국 티빙과 함께 온라인, 오프라인 동시 개봉을 한 영화 《서복》.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었지만 솔직히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하는 작품이었다.
영화 《서복》 시놉시스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 그와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
과거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직 요원 ‘기헌’은 정보국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받는다.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하지만 임무 수행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되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기헌’과 ‘서복‘은 둘만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 실험실 밖 세상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서복‘과 생애 마지막 임무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기헌’은 가는 곳마다 사사건건 부딪친다. 한편, 인류의 구원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서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은 점점 거세지고 이들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서복》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욕은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요,,, 공유씨
공유가 영화에서 욕을 해본적이 없던가? 공유가 나오고 나서 거의 첫대사가 친구에게 찾아가 약을 타면서 욕을 하는 장면이었다. 와,,, 정말 저렇게나 욕을 못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욕이 입에 하나도 안 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화만 냈으면 그게 더 감정이입이 잘 됐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육두문자를 섞은 욕들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몰입이 깨져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굳이 욕을 안해도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욕 때문에 영화 전반적인 퀄리티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공유가 맡은 역할이었던 기현의 욕 때문에 몰입감이 중간중간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 자체의 몰입도가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면장면이 기억 나긴 하지만 그 장면 간의 연결성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었다. 사건이 발생하는 공간과 캐릭터들 간의 연관성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영화의 어떤 캐릭터를 가져다놔도 상관없을 것 같은 특색이 하나 없는 연구소와 캐릭터의 깊이감이 채워지지 않아서 붕 뜬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서복이라는 연구의 필요성, 서복의 능력에 대한 의문이 자꾸 생겨서 답답했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찾아가다
아마 연구소라는 배경 설정과 서복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상세하게 해결해주지 않은 이유는 영화 《서복》의 초점이 복제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맞이하는 죽음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SF영화들의 전형적인 문법이기도 하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철학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그 대답을 찾아간다.
영화 《서복》 역시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노화로 인한 죽음을 겪지 않는 서복이 죽음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고, 그와 대비되는 영원함은 무엇이며 영원히 잠드는 것이라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잠은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모순에 대해 서복의 존재와 기현의 대화를 통해 그 물음을 제시하고 있었다.
영화 《서복》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모순적인 감정을 풀어내려 했지만 영화 자체의 줄거리는 맥락이 잘 와닿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배우들을 좋아한다면 볼 만한 영화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하지 않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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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확장하고픈 욕망만 한가득
'스위트홈 2'를 정주행 한 감상평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즌 1 성공에 힘입어 세계관을 확장하고픈 욕망만 가득한 반면, 어디 하나 쉽게 몰입할 구석 없이 산만하기만 하다.
3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은 욕망이 괴물을 만드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을 삼고 있다. 시즌 1에서는 생존을 위해 그린홈 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차현수(송강)와 그린홈 주민들에게 포커싱 했다면, 시즌 2에선 그린홈 밖으로 나온 이들의 생존기와 또 다른 존재의 등장,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현상들까지 드러난다.
'스위트홈 2' 스토리 초반은 다양한 이야기 갈래로 나눠서 조명한다. 정의명(김성철)에게 몸을 탈취당한 편상욱(이진욱)은 군인들에게 잡혀가던 차현수를 빼돌려 신인류가 되어보자며 자신의 편이 되길 회유하고, 임신한 서이경(이시영)은 남편을 찾기 위해 밤섬특수재난기지에 숨어들어 진실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은유(고민시)와 윤지수(박규영)를 비롯한 그린홈의 나머지 생존자들은 군인들을 따라 안전캠프로 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한 역경을 겪는다. 여기에 탁상사(유오성)가 이끄는 까마귀 부대와 괴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임박사(오정세)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그러면서 주무대는 그린홈 아파트가 아닌 안전 대피소 스타디움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갈등으로 엮어낸다.
시즌 1이 공개될 당시 시청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몰입도 빌런' OST 삽입은 말끔하게 해결됐다. 최대한 극에 집중하게끔 최대한 잔잔한 톤으로 깔아 두면서 자신들의 장기인 '한국적 정서'로 끌어들인다. 이번 시즌에선 가족애, 모성애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게 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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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크맨 후기 / 테이큰은 벌써 13년전 / 은퇴한 해병대의 멕시코 갱들 참교육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마크맨”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액션영화, #로드무비, #리암니슨, #마약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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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각의 여름> 메인 예고편
뒹굴뒹굴 무기력증에 빠진 시인 지망생 ‘현실’.
공모전에 내야할 마지막 시가 데굴데굴 산으로 가자,
새로운 영감을 찾아 집을 나선다.
시가 산으로 가면, 산으로 가는 게 답?
‘현실’은 생각의 여름 속에서 집 나간 영감도 찾고,
호구 잡힌 자신도 찾을 수 있을까?
남다른 현실의 한여름 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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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니모나> 공식 예고편
- 조금은 악당. 조금은 영웅. 《니모나》, 6월 30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