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21-11-07 22:13:34
다시 시작해
<비긴 어게인>
좋은 음악, 좋은 영화를 찾아 떠도는 인디언(independent+ person)을 위한 영화.
"영화를 다시 보는 행위란"
나에게 영화를 다시 보는 시간은 자신의 성숙해짐에 감동하는 시간이다. 이 영화를 예시로 들었을 때 첫 번째 봤을 때보다 두 번째에 봤을 때가, 그리고 세 번째에 봤을 때에 이 영화에 대해 더 깊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포인트들이 보이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겪으면서 드디어 감독이 의도한대로 바라보는 느낌이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아,, 나 멋있게 잘 컸네,,, 이런 생각도 하고"라는 생각을 주니까)
그런 의미에 있어서 다시 찾게 만드는 영화들은 베리 머치 땡큐다. (비긴 어게인은 나 자신을 3번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나를 3번 사랑하게 만든 이 영화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음악
음악에 대해선 취향이 확고하며 질 인디 음악만 듣는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영화 ost다.(개인적으로 라라랜드 ost 별로 안 좋아함)
심지어 아무리 좋아하는 인디 음악이라도 여러번 들으면 질리는데, 이 영화의 ost는 도통 그럴 생각을 안 한다.
#거리 녹음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전부 일상적인 소음이 들어간다.(캔 따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 등)
이 영화 특성상 거리에서 녹음을 해서 음반을 만드는 컨셉이기 때문에 ost에도 그러한 소음이 들어간다. 이 또한 나에게 베리 머치 땡큐였다.
녹음실에서 작업한 음악들은 음질은 좋아도, 알게 모르게 가수와의 벽이 확고하게 느껴졌다. 그에 반면 소음이 들어가는 음악들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노래를 듣고 있던 나를 끌고 와 나를 바라보며 공연을 해준다.
주변에서 듣는 일상적 소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더 노래에 공감할 수 있으며, 그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어 더욱 더 생생하고 가사가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여기에 +a로 비긴 어게인은 녹음 장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비슷한 장소에 가서 이 영화의 ost를 틀면 <비긴 어게인>의 명대사
"내가 음악을 이래서 좋아해, 모든 평범함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니까"
와 비슷한 감정을 겪을 수 있게 해준다. 주인공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영화 한 번 봤다고 사는 것이 각박한 것만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고 희망을 갖게 만들어주니까. 주변이 비현실적으로 서정적이라 삶에 애정을 겪게 만드니까.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영화 주인공과 관객이 겪는 감정의 벽을 허무는 방법을 제시해준 영화는 <비긴 어게인>이 최초였다.
첨원하지면, 가로등 빛이 유난히 빛나는 밤에, 연인과 산책할 때( 비 온 다음 날 혹은 건물의 빛이 산란이 되는 한강과 호수 공원이면 더 좋다.) 이 영화 ost를 트는 걸 추천한다.
그러면 너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이 물에 일렁이는 가로등 빛처럼 일렁이는 경험을 겪을 수 있을 테다.
더 이야기해봤자 구차해지는 것이기에
음악이 필요한 밤, 속는 셈치고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는 분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다. 오늘 밤은 느낄 수 있는 영화 <비긴 어게인 어떤가요?>
파노라마 에디터_장현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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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발하게 직조한 스릴러
올빼미
주인공 경수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경수 형제의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다. 돈을 버는 건 경수뿐이다.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린 동생. 경수는 침술을 익힌 한의사로서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벌이는 적당히 잘 된다. 나름 실력이 있는 침술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수에겐 페널티가 있다.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은 경수. 장님이기 때문에 지팡이가 없다면 일상생활이 어렵다. 그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했다. 숨소리, 발소리, 냄새, 속삭이는 작은 소리까지 상황 판단에 능한 경수. 경수가 침술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용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역량의 힘이 컸다. 능력이 제법 있는 경수. 경수가 사는 마을에 어의를 뽑는 시험이 열렸고 주인공은 거기에 지원하려고 한다. 궁에서 나오는 월급이면 동생의 약도,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다. 그래. 한번 보는 거야. 다다른 시험장. 시험 문제는 경수 입장에서 좀 터무늬 없던 것이었다. 실 한 줄을 가지고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실 하나를 가지고? 이상한 문제에 의아해하며 출제자에게 태클을 거는 경수. '이 시험은 애초에 어불성설입니다!' 말 한마디에 어의 담당자였던 이형익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궁중에 입성한 경수. 경수가 근무하게 될 어의 집단은 위계질서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더라도 선임 대접을 깍듯이 해야 했다. 그런데 여느 군기가 심한 집단이 안 그랬나. 부조리도 있다. 앞이 안 보이는 경수. 나이 어린 선임이 반말을 찍찍 날리며 "약재를 저 칼로 정리해놔라"라고 지시한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 "그러니까 하는 거야." 어떻게 경수가 그걸 다 해? 하지만 경수는 선임이 지시한 업무를 무탈하게 완료한다. 의외의 이유가 있었다. 경수는 낮에는 앞이 안 보이지만 어두운 밤에서는 시야가 들어오는, 병을 앓고 있는 주맹증 환자였던 것이다. 약초 정리도, 궁에서 연애질 하는 남녀에게 쌀자루를 날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단지 어려운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궁중에 들어올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것이다. 안 보이는 척해야 했던 경수.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아예 못 봤으면 좋았을 텐데. 경수는 보지 말아야 할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청이 조선의 소현세자를 압송하고 8년 만에 세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세자가 죽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침술사 경수였다.
익숙한데
어? 이런 영화 본 적 있다. 언제? 올해 여름에. 바로 <헌트>다. <헌트>는 5공화국 당시 삼엄했던 분위기를 핵심 키워드로 삼은 영화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사냥감을 '헌트'하며 우리 현대사에서 괄호 쳐졌던 역사를 질문한다. 어떻게? 기존에 존재했던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 당시 '아웅산 테러 사건'은 1983년에 일어난 명확한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의 중심 서사는 이정재 감독이 각본을 쓰며 창작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시간적 배경이 1983년인 이유가 뭘까? 극에서 제시되는 여러 사건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글쓴이는 '5공화국의 말로를 맞이하기엔 몇 년 남았기 때문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아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 2022년에 다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올빼미>가 취한 노선도 <헌트>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인 안태진 감독은 조선왕조실록에 쓰여있는 '소현세자가 학질로 사망했다'라는 문장에 호기심을 얻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안태진 감독을 직접 만나 여쭤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히 시대극의 틀을 빌려와서 재미있는 스릴러'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올빼미> 역시 <헌트>와 비슷한 화법을 쓰고 있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대립하는 키워드는 '보다'와 '보지 않는다'라는 대비다. 주인공 경수가 어쩔 땐 보이고 어쩔 땐 안 보이는 주맹증 환자라는 1차적인 세팅 때문은 아니다. 영화는 인조와 소현세자, 최대감, 소현세자의 부인, 원손까지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고, 또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현재의 한국사회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밝지만 어두운 사실을 직면할 것인지. 어둡지만 아픈 사실을 받아들여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헌트>가 현대사의 상처를 묻는다면 <올빼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재에 대해 반문한다.
그래도 다른 것
그렇게 <헌트>와 유사한 영화지만 글쓴이는 <헌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헌트>만큼이나 훌륭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주인공을 인조로 설정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어느 부분도 성립되지 않는다. 인조라는 인물이 고르는 선택지가 삼전도의 굴욕, 병자호란, 인조반정, 당시의 주전론/주화론 간의 대립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감독이 인조라는 왕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과도 이어지고, <헌트>와 공통점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진범이 누구인가?'라는 중심으로 서스펜스를 끈끈하게 이끌어간다는 부분은 두 영화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이야기가 전복되는 부분도 왠지 모르게 공통점을 가진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동림'의 행적이 중요하다가 물 흐르듯 서서히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는 <헌트>처럼 '소현세자'를 암살한 흑막을 찾다가 후반부로 전개되는 이야기 전개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 <올빼미>를 보고 아쉬웠던 점은 이야기의 만듦새가 살짝 아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소현세자를 죽인 흑막이 누구인지 드러났을 때까지 이야기는 촘촘하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 제일 마지막 시퀀스까지 그 엔딩부의 장면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하나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이 흑막의 정체를 알고 나서 어떤 행동들을 계속한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 페널티가 없다. 아예 생경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주인공 경수는 거의 국정원 요원급에 준하는 스펙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글쓴이는 가장 마지막 시퀀스를 넣은 의도가 궁금해졌다. 거기서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를 지었다고 해서 쾌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쾌감 넣으라고 그 장면 넣은 거 아닌데?'라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무리 짓지 않아도 영화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다.
또 인조라는 인물에 너무 감정선이 얕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조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인물이다. 세자가 독살당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왕의 포지션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물의 행적을 유해진 배우의 표정연기와 역사적인 평가에 의존한다. 이 인물의 입장에서 더 감정적으로 비틀대거나,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하는 식의 장면이 초중반부부터 살짝 들어갔다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청의 문물을 거부하는 이유는 뭔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소현세자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무엇인지. 지금 명, 청에 대한 인조의 생각은 무엇인지. 인조가 보여줄 수 있는 외교적인 한 수는 무엇인지까지 이 인물의 내적인 동기부여에 확실했다면 이야기가 흐름이 윤활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유해진 배우의 열연만 기억에 남는 것이다.
유해진 배우 멋있어요
이 영화에서 두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일단 가장 중요한 주인공 류준열 배우는 자기랑 맞는 옷을 입었다. 올해 류준열 배우의 출연작으로 <외계+인> 1부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한데, 여기서 류준열 배우는 좀 이질감이 든다. 이 영화에서 대사가 갖고 있는 임무는 막중했다. 바로 이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세계관을 보다 쉽게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류준열 배우가 맡은 캐릭터가 품고 있는 비밀이 있음에도 경박한 모습만 기억에 남는 것은 감독의 무리수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올빼미>에서 류준열 배우가 맡은 '경수'는 앞에서 제시한 예시와 정반대에 있다. 영화에서 코미디가 없진 않지만 경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경수는 앞이 보이지 않으나 밤에는 시야가 밝아지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쉭쉭 무너져내리는 감정연기까지 수행해야 한다. 경수가 영화의 배경을 담당한 셈인데 류준열 배우는 어느 곳에 뭐가 들어야 전달이 쉬울지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류준열 배우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
또한 유해진 배우가 맡은 인조 캐릭터도 연기를 정말 잘했다. 영화에서 인조의 서사에 구멍이 났다는 점은 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유해진 배우의 경험치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신이 있다. 인조가 청나라 사신의 히스테리에 반응하는 신이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한다. 이때 인조가 갖고 있던 정신질환과 나라의 대표가 겪는 굴욕이라는, 역할 갈등에 해당하는 스트레스를 표정으로 보여주는 호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자체가 인조의 평가에 대해 살짝 의존한 감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무능력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어떻게 보여줘야 할 것인가? 는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때 인조가 궁에 있는 신하들에게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을 영화가 보여준다. 이 연기를 하면서, 유해진 배우는 눈빛 연기 하나로 감정전달에 입체성을 부여하며 극을 이해시킨다. 역시 유해진 배우도 올해 개봉작 <공조 : 인터내셔날>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이때 "아니 무슨 ~~ 도 아니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낡은 화법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해진 배우는 그동안 맡았던 가벼운 역할을 뒤엎는 중량감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올해 개봉작 중 남자 주연 배우들이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유해진 배우의 인조도 낄 만하다.
무리 짓는 것
영화에서 '본다'와 '보지 않는다'의 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무리 짓다'와 '무리 짓지 않는 것'의 대비다. 영화는 끊임없이 두 집단을 대비시킨다. 인조와 대립각을 세우는 최 대감 무리. 침 하나와 나머지. 경수와 군인들. 청나라 사신과 조선의 신하들 등등 인물의 밀도에 템포를 바꾸며 영화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 키워드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범주이자 선명한 대비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바로 백성들과 조선 지도부와의 대립이다. 이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게 촘촘하게 이미지를 보여줬다. 좋은 스릴러 영화다. 또 우리에게 밝지만 떼거지로 몰려있는 흑역사를 맞이할 것인지, 어둡고 혼자 밌지만 아픈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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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호수, 유리창, 거울로 그려낸 데칼코마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카롤린 링 Karoline Lyngbye
출연] 미켈 폴스라르 Mikkel Boe FØLSGAARD, 마리 바크 한센 Marie BACH HANSEN
시놉시스
스틴과 타이트는 어린 아들 네모와 함께 코펜하겐의 도시 생활을 떠나 스웨덴의 한 고립된 숲으로 향하고, 그곳에서의 삶을 팟캐스트 녹음을 통해 기록하며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자 한다. 그러던 중 자신들과 똑같은 모습의 커플을 호수 건너편에서 발견하고, 곧 원한과 이기심, 욕망으로 뒤덮인 자신들의 자아와 마주하게 된다.
도플갱어를 마주한다면?
독일에서 기원한 미신 '도플갱어(Doppelgänger)'. '나'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며, 그 사람을 만나면 자신은 죽는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괴테도 자기랑 똑 닮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 외에도 다양한 전승이 있지만, 핵심은 도플갱어를 만나는 게 악운의 전조라는 점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도플갱어는 존재할 수 없다. 생김새부터 DNA까지 전부 같은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0.1%가 채 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본다 하더라도 이는 정신 질환 증상이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도플갱어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존재할 수 없는 존재를 봤다는 공포와 내가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나를 감쌀 테니.
카롤린 링비의 장편영화 데뷔작 <수퍼포지션>은 그 공포와 두려움을 물고 늘어진다. 이 감정을 철저히 해부한다. '나와 똑같은 사람, 내 남편과 똑같은 남자, 내 아들과 똑같은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이라는 오싹한 상상을 원동력 삼아 굳건히 나아간다. 이 접근법은 생각보다 신선하다. 원초적인 감정에 충실히 몰두할 뿐, 좀처럼 딴 길로 새지 않기 때문이다.
호수가 두려운 이유
<수퍼포지션>의 지향점은 첫 장면부터 드러난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시작한다. 북유럽 특유의 길고 가는 삼림이 둘러싼 호수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호수를 보는 듯한데 모양이 평소와 다르다. 파란 하늘이 왼쪽, 호수가 오른쪽에 있다. 위아래가 아니라. 화면은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잔잔한 호수에 하늘이 비치면서 좌우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호수의 역할이 흥미롭다. 첫 장면 이후 호수는 한동안 아무 일도 안 한다. 스틴과 타이트가 지내는 집의 예쁜 배경을 할 뿐이다. 그러나 스틴이 호수 건너편에서 자기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을 발견하자 호수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생긴다. 도플갱어가 있다는 의심. 곧 두려움이다.
이에 더해 영화는 호수를 다른 이미지로 끊임없이 바꿔낸다. 유리창이 대표적이다. 일가족이 숲 속 집에 들어설 때, 그들이 집 안에서 요리하거나 글을 쓸 때, 싸우는 순간까지. 카메라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반사되어 비치는 모습을 같이 중심에 둔다. 그 덕분에 알 수 없는 호수의 두려움은 손쉽게 영화 전반으로 전염된다. 이는 도플갱어의 존재를 인지하기까지 초중반부의 흐름이 상당히 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이유다.
도플갱어의 진짜 의미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 때문에 두려울 수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 두려운 걸까? 영화는 호수가 잠시 역할을 하지 않는 사이에 그 답을 미리 일러준다. 영화 전반을 사로잡은 두려움은 단순히 도플갱어 때문이 아니다. 도플갱어를 만나 알 수도 있는 답 때문이다. 바로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이다.
첫 팟캐스트 녹음 때부터 스틴과 타이트는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다. 이번 기회에 서로에게 솔직해지자는 부부. 그러나 그 솔직함의 의미가 다르다. 스틴은 알몸을 보여주듯이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타이트는 필요한 일에 한해서만 솔직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 갈등은 점점 커지고, 서로를 비난한다. 서로 무책임한 남편과 아내라고.
이때 도플갱어의 등장은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지금 자기 모습이 어떤지, 부부 관계는 어떠한지, 아이에게는 어떤 부모인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다. 처음에 서로를 경계하던 도플갱어 부부가 싸우는 대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인생을 공유하는 이유다.
더 나아가 자기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꾼 사람과 자기 모습을 고집하는 사람의 운명이 갈리는 이유다. 거울을 보고 진짜 솔직해질 수 있는지, 아니면 그 거울에 비친 모습까지도 왜곡하며 외면할지. 자기 과오와 결점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갈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 <수퍼포지션>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다.
다소 빛이 바랜 도전
아쉽게도 <수퍼포지션>은 초중반부의 흡입력을 마지막까지 유지하지 못한다. 이유는 두 개다.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 있다. 우선 소재와 접근법의 참신함이 빛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물론 도플갱어와 거울의 이미지를 활용해 주인공의 심리를 파헤친다는 접근 자체는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문제는 최근 들어 멀티버스 소재를 꺼내든 영화가 너무 많다는 것. 멀티버스 영화도 대부분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을 통해 주인공의 인생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퍼포지션>의 도플갱어 이야기가 자기만의 한 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굳이 설명을 덧대는 약간의 욕심도 아쉽다. 영화는 도플갱어끼리 만난 이후에 상황을 해석하려 한다. 타이트는 자기가 미친 거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하나의 답이 도출된다. '중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제목 '수퍼포지션'이다. 평행세계가 겹쳐진 결과 도플갱어끼리 만나는 상황이 생겼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 설정 때문에 영화의 개성은 희석된다. <수퍼포지션>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일반적인 멀티버스 영화와는 달리 스릴러 내지 호러 영화의 분위기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명확한 설명 없이 도플갱어를 일종의 미스터리로 남겨두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북유럽, 그것도 숲 속을 배경으로 삼다 보니 유달리 스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일종의 설명, 특히나 SF적인 설정이 붙어 버리니 본래 분위기나 색깔은 약해지고 만다.
Acceptable 무난함
고요한 호수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나와 나의 싸움
상영 일정
7/2 17:00 - 18:45 CGV소풍 9관
7/6 19:30 - 21:15 부천시청 어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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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콤달콤 / Sweet & Sour, 2021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콜 - 차인표 - 승리호 - 낙원의 밤>에 예정된 <제8일의 밤>까지 "넷플릭스"로 향하는 한국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기 <새콤달콤>도 이에 해당되지만, 기대할 점이 있는 영화입니다.
첫 번째, 지금의 '넷플릭스'를 만드는데 일조한 장르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키싱 부스>같은 '로맨틱 코미디'인데, <새콤달콤>도 그렇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서야 택했다는 것에 기대치가 있었고, 두 번째로 이 영화를 연출한 "이계벽"감독입니다.
전작 <럭키>가 일본 영화 <열쇠도둑의 비밀>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이번 영화도 <이니에이션 러브>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그 감각을 믿었습니다. (물론, 필자는 원작을 못 보았기에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 <새콤달콤>은 어땠는지? - 영화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응급으로 병원에 오게 된 장혁은 그곳에서 계약직 간호사 "다은"을 만나고, 서로의 상냥함에 이끌려 그들은 이내 연인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혁은 회사에 파견을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은 파견직 "보영"을 만납니다.
으르렁거리는 사이이지만, 같이 일을 하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평범한 로코 아닌가?
1. 익숙한데, 끌리는 이유에는?
앞서 말했듯이 해당 영화가 원작이 존재해 챙겨보기 전에 결말을 아는 관객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 비교선상에 올라갈 겁니다.
그렇기에 영화 <새콤달콤>은 "굳이, 이를 챙겨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본 필자는 원작 <이니에이션 러브>를 챙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두 영화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 <새콤달콤>을 말하는 데는 가장 정확할 겁니다.익숙하고 익숙하다.
영화 <새콤달콤>의 가장 큰 매력은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해당 영화의 제목처럼 편의점에서 파는 간식처럼 이 영화의 장점은 "클리셰"로 말하는 익숙함입니다.
특히, 이 익숙함이 만화에서나 볼법한 설정을 연상하게 만드는데요.
극 중 뚱뚱한 남주가 뜻하지 않게 예쁜 간호사와 사귀게 되면서, 자신도 살이 빠져 잘생겨지는 내용의 애니는 <새콤달콤>이 아니더라도 많을 겁니다.
그만큼 익숙한 판타지로 시작하고 해소시켜주는 영화 <새콤달콤>은 욕해도 보게 되는 막장 같은 매력을 풍깁니다.2. 배우들은 제 역할을 다 해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익숙하니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갈 텐데요.
영화 <새콤달콤>은 이런 점에서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잘 살려냅니다.
이야기는 "장혁"을 맡은 "장기용", "다은"역의 "채수빈"과 "보영"역의 "정수정"분이 이끌어나가는데요.
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욕과 같은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장혁"과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은"과 "보영"만으로도 충분히, 이들이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베테랑 조연 배우들까지 배우들의 매력은 익숙함을 더 무섭게 만듭니다.원래, 연애란 이런 건가요?
영화 <새콤달콤>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로 연애를 기반으로 웃긴 상황을 연출하는데요.
그만큼 "연애"는 기본으로 깔아두는 장르로 영화가 보여주는 메타포가 눈에 띕니다.
특히, 조명으로 이들의 분위기를 해석할 수 있는데 환한 곳에서는 이들의 숨겨진 모습을 의미함으로 극 중 '커피'로 직장에서의 환심을 사거나 직장 상사의 불평불만을 삼키는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와 반대로, 어두운 곳에서는 자신들의 진심으로 공개되는 것으로 극 중 "보영"이 "장혁"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죠.
이처럼 영화 <새콤달콤>은 관객들을 전구로 이들의 감정도 읽게 만드는 도사로 만들어내려 합니다.3. 약간의 여지를 두었다?
그렇게 본 영화 <새콜달콤>의 이야기는 어딘가 예상이 갑니다.
줄거리에서도 말했듯이 누군가의 아픔으로 시작된 연애는 "연민"으로 시작되었으니 이는 동등한 입장보다는 앞서거니 뒤쳐지는 관계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이 익숙하고 뻔한 로코인건 이런 이유으로 배우들의 매력에 기대었을겁니다.
근데, 영화가 반전을 숨겼고 이런 해석을 머쓱하게 만드는데요.
마치, 시험에서 미세하게 말장난을 쳐놓은 100점 방지 문제처럼 미묘한 말장난은 앞선 해석을 뒤집어 놓습니다.근데, 나쁜 X은 변하지 않잖아
한차례 진행되었던 영화는 되감기해 다른 영화로 빠르게 보여주어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려놓기에 충분한데요.
그렇게, 다시 본 관계의 감정은 "연민"이 아닌 동등한 입장으로 보이는데 이런 이유는 직접 확인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영화는 "장혁"을 나쁜 놈으로 묘사하고 반전에서도 이런 사실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혁"의 나쁜 모습을 더 강조하지만 일방적인 "다은"의 해석이 달라질 여지를 제시합니다.
물론, 원인이 "장혁"에게 존재하지만 이 때문에 "다은"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정답을 모르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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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리오사가 지켜낸 희망의 씨앗
누구나 자신만의 희망이 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 줄 그 희망은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몇 번이나 찾아오는 절망적인 상황은 삶을 더 이어나갈 힘을 빼놓는다. 더 나아갈 힘이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 마지막까지 감추어두었던 희망은 꺼내어들 수 있는 마지막 무기다. 그 희망을 생각하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조금씩 되찾아간다. 만약 희망조차 없다면 그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먹고 자는 문제만 간단히 해결할 뿐, 나쁜 상황만이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2015년에 개봉했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희망을 무기로 꺼내든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퓨리오사(샤를리스 테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생명의 땅으로 가기 위해 임모탄(휴 키스번)에게 갇혀있던 여성들을 모두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다. 퓨리오사는 모든 여성들의 희망이었고, 그 희망의 여정에 맥스(톰 하디)가 우연하게 끼어들게 되면서 다각도로 전개되는 추격전이 펼쳐졌었다.
이번에 개봉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전편에서 희망의 전사였던 퓨리오사의 성장 서사를 다룬다. 사실 성장 서사라기보다는 그녀가 겪었던 모든 절망들을 보여주면서 그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의 퓨리오사(안야 테일러 조이)에게 행복한 순간은 어린 시절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짧은 행복의 기억 때문에 그녀가 수많은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이 영화는 그녀의 어떤 감정들을 전달하면서, 그가 겪었던 수만은 절망들을 보여주고 있을까.
[첫 번째 감정] 퓨리오사의 절망
영화의 대부분은 절망으로 가득 차있다.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는 끝없는 사막으로 바뀌었고, 그 안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누군가의 물과 식량을 탈취한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 이 시기에 아직 푸르름을 간직한 공간이 있었다. 바로 퓨리오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그런 곳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외부인을 강력하게 경계하지만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퓨리오사가 외부 침입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납치되면서 그녀의 절망이 시작되었다. 영화 초반 퓨리오사의 엄마가 납치된 퓨리오사의 뒤를 따라가는 길고 긴 추격장면은 절망을 맞이하지 않게 하려는 몸부림이다. 여기엔 두 가지 절망이 섞여 있다. 유일하게 존재하던 푸른 지상 낙원이 외부에 노출되어 버렸다는 것과 그곳 출신 아이인 퓨리오사가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끝까지 퓨리오사를 찾기 위해 추적하지만 결국 그 집단의 우두머리인 디멘투스(크리스 햄스워스)에게 붙잡히고 만다. 퓨리오사는 바로 앞에서 엄마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퓨리오사는 행복의 상징인 낙원에서 멀어졌고, 점점 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녀의 고통은 커진다. 초반의 긴 추격장면은 긴 안전끈이 늘어나가 끊어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가 죽임을 당한 후 십여 년이 지난 후, 성인이 된 퓨리오사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였던 잭(톰 버크)을 눈앞에서 잃게 된다. 그 역시 디멘투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퓨리오사에게 가장 큰 절망을 선사한 디멘투스는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한 존재를 하찮게 보고 그저 자신의 재미를 위해 제거해 버렸을 뿐이다. 그렇게 퓨리오사의 절망은 더욱 커지고, 그 절망을 준 존재를 향한 복수심은 더욱 커져만 간다. 영화 내내 디멘투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자동차들로 퓨리오사와 일행을 누르고 파괴한다. 영화는 거대한 디멘투스의 차량이 퓨리오사의 자동차를 짓밟는 모습을 담으며 퓨리오사의 절망을 처절한 액션 장면에 담고 있다.
[두 번째 감정] 퓨리오사의 분노와 복수
절망은 당연하게 분노의 감정으로 바뀐다. 퓨리오사는 임모탄이 지배하고 있는 시타델에 숨어 살면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퓨리오사의 분노가 조금씩 쌓여가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은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된 것이어서 단번에 폭발적으로 쌓인 것은 아니다. 퓨리오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성장하지 않는다면 복수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말도 극단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고 시타델의 시스템 속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탈출의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위치를 노렸다. 결국 수송 트럭으로 탈출을 감행하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잭은 <매드맥스> 시리즈의 모든 남자 가운데 가장 믿을만한 인물이다. 그는 퓨리오사 내면에 숨어있는 분노를 발견해 내고, 그것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무심하게 알려주는 인물이다.
영화 중반부에 잭과 퓨리오사가 무기 농장에서 디멘투스 일행에게 습격을 받는 장면이 있다. 무기 농장의 거대한 탑이 무너지는 가운데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해 그 상황을 겨우 벗어나지만, 그 액션 장면처럼 그 두 사람은 붕괴되고 있었다.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퓨리오사는 결국 마음속에 복수만이 가득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세 번째 감정] 모두의 희망이 된 퓨리오사의 희망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액션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비슷한 추격장면이다. 이 추격을 하기 위해 퓨리오사는 바퀴가 하나 없는 자동차를 타고 가게 된다. 마치 팔 하나가 없는 퓨리오사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그렇게 추격을 시작한 퓨리오사는 영화의 초반 자신의 엄마가 끝까지 자신을 추적해 왔던 것처럼 끝까지 디멘투스를 추격해 낸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 그리고 유일한 믿음을 주었던 잭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애쓴다.
사실 이런 복수의 전체 과정에서 퓨리오사는 희망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가 준 복숭아나무 씨앗 하나를 잊지 않았다. 그녀가 입안에 넣어 보호하는 그 작은 씨앗은 그녀가 지켜야 할 최후의 희망이다. 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이야기 직후에 벌어지는 내용을 다루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까지 이어서 보고 나면 퓨리오사가 지켜냈던 그 희망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희망이 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퓨리오사는 그 희망을 지켜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희망의 동력을 나눠주었다.
영화 속 빌런인 디멘투스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디멘투스는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또 다른 빌런인 임모탄은 정상적인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따라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엄청난 독재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디멘투스에겐 그런 희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재미있는 것만 추구하며 삶을 이어온 인물이다. 그가 잭을 죽이는 장면에서 혼잣말로 재미없다고 웅얼거리는 장면에서 그의 그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퓨리오사는 자신의 희망으로 무작위성, 혼란, 무계획의 대표적인 인물인 디멘투스에게 일종의 형벌을 내린 셈이다.
퓨리오사의 서사는 이번 영화로 완성되었다. 앞으로 <매드맥스> 시리즈가 더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2015년부터 시작된 <매드맥스 사가>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궁금한 인물이었던 퓨리오사에겐 숨겨진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에도 다양한 액션 장면들이 담겨있고, 한 액션 시퀀스가 꽤 길게 이어진다. 전작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프리퀄 영화다. 전작이 액션으로 서사를 완성했다면, 이번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는 액션과 음악 그리고 퓨리오사의 성장이야기로 길게 서사를 이어 완성했다. 전편이 직렬로 이어진 영화라면, 이번 영화는 병렬로 펼쳐 다각도로 퓨리오사의 경험과 생각을 전달한다. 퓨리오사의 희망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 끝까지 시선을 잡아두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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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를 이끌어 가는 대화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이자 세 편의 단편을 엮어 만든 소품같은 영화다. 걸작임에도 러닝타임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아 관객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두 시간여의 적당한 러닝타임에 편당 주요 등장인물의 수가 세 명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등장인물의 자리를 꿰찬 것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다. 이들의 대화는 때로는 독백의 형태로, 때로는 낭독의 형태로, 때로는 상황극의 형태로 발현되어 우연을 드러내거나 상상을 이끌어 낸다. 보다 스케일도 크고 로케이션도 다양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등장인물 수도 적고 배경도 한정되어 있지만 이들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드라이브 마이 카>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세계의 주목을 집중시켰던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는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열정>의 전개 방식에 <해피 아워>의 서사를 담은 것만 같은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감독의 초심을 담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어째서 복잡한 비유나 상징을 이용하는 대신 직설적인 발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영화 언어에서 발화 언어를 통한 서사 전개는 촌스러운 방식으로 여겨진다. 직접성보다는 간접성을 통해 수용자의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예술은 정답을 이끌어낼 여지가 있는 직설적인 표현을 꺼려한다. 아예 언어가 배제되는 회화나 무용의 경우는 색감이나 예술가의 신체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발화 언어를 사용할 선택지가 있는 영화 예술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예술성을 평가받기도 한다. 대사에 복잡한 비유와 상징을 담아 직설성을 배제하기도 하지만 대개 발화 언어는 직접적인 표현 방법에 쓰인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인 영화는 대사를 알쏭달쏭하게 꼬는 대신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미를 함축하더라도 직접적인 의미 전달과 간접적인 의미 함축이라는 두 역할을 수행하게끔 만들곤 한다. 이는 추리물을 포함한 반전 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관객에게 반전의 충격을 안겨주려면 간단한 대사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전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더라도 나레이션을 사용해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우연과 상상>은 소소한 반전을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플래시백이 전혀 없다. 등장인물들은 현재 시점에서만 존재하며 과거의 이야기는 전부 대사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플래시백을 영화 기법에서 제외하는 경우 관객은 한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는 전부 진실에 기반하는 것인가? 3화 「다시 한번」에서 아야(카와이 아오바 분)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반전은 아야만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아야의 말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야가 드러낸 진실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과 상상>의 대화들은 내용의 진실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관객이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다. 대개는 즐거움인데 대화가 <우연과 상상>을 한층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이유는 정작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진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연과 상상>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그야말로 충실하게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 에피소드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퇴근길 택시에 합승한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와 츠구미(현리 분)의 대화를 오래도록 보여주지만 대화의 내용은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츠구미가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이 대화 직후에 이루어진다. 메이코는 택시에서 내려 어딘가로 향하고 그 곳은 바로 츠구미가 만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가 일하는 곳이다. 카즈아키와 이코는 역시나 긴 대화를 이어가지만 대화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메이코가 이 장소를 떠나는 순간이 되어야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카즈아키가 메이코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대화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물들의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화가 거의 들리지 않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다. 그리고 카즈아키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리창 내부의 공간으로 이동했을 때 발생하는 대화는 주로 메이코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는 대화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인물들의 행동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혹은 맥거핀으로 유연하게 사용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관객의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발화 언어는 나오(모리 카츠키 분)가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 분)의 책을 낭독하는 부분이다. 상당히 오랜 시간 일부러 민망한 부분을 골라 낭독하는 나오의 목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세가와 교수가 보이는 반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멈추게 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낭독을 듣는 세가와 교수는 이 낭독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일까. 문을 닫으려는 나오의 행동만을 저지하며 긴 낭독을 듣고 나오의 고민상담을 해준 세가와 교수는 나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서야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나오의 질문에 대한 세가와 교수의 대답은 일반적으로 관객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관객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가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이 에피소드의 결말 또한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나오의 발화가 아닌 오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2화 또한 대화를 훌륭한 매개체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화를 발화 언어의 목적 그 자체에 가장 충실하게 활용한 에피소드는 3화인 「다시 한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에피소드의 가장 큰 반전은 아야의 입을 통해 전달되지만 아야와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는 결론적으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츠코를 자신의 집에서 대접하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야는 사실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어떤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던 것임이 드러난다. 반면 대화 자체가 목적이었던 나츠코에게 이는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이후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쪽은 나츠코가 아니라 아야다. 관객에게 가장 큰 충격을 전달하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지만 서사를 마무리짓는 것은 폭로 이후에 이어지는 상황극이다. 특히 아야가 나츠코를 배웅하며 역 앞의 육교에서 벌이는 상황극은 대사는 상황극일지언정 두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 에피소드에서도 대화는 아야와 나츠코의 과거를 들려주고 스스로를 힐링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실제로 심리 치료에도 사이코드라마라는 비슷한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다지 변화가 없는 배경, 적은 수의 등장인물을 가지고 대화만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이끌어 냈지만 사실 대화가 서사를 잇는 매개로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우연과 상상>은 영화 예술에서 대사의 활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어려운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지 않아도, 혹은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대사는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하마구치 감독이 증명해낸 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영화지만 <우연과 상상>은 초심으로 돌아간 감독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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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두 가지 꿈과 가족의 사랑을 담은 기차역
기적 (Miracle, 2020)
개봉일 : 2021.09.15
감독 : 이장훈
출연 : 박정민, 이성민, 윤아, 이수경, 김강훈, 정문성
소년의 두 가지 꿈과 가족의 사랑을 담은 기차역
올 추석 가장 볼만한 가족영화. 보는 이를 웃기고 울리는 휴머니즘 가득한 영화. 다소 진부하긴 해도 <기적>이란 영화를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 또 없을 것이다.
<기적>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최초의 민간 역사 양원역을 베이스에 두고 그 위에 주인공 준경의 가족과 준경이 가진 꿈을 얹어 완성한 이야기다. 준경이란 인물과 그의 꿈이라는 픽션에 최초의 민간 역사 양원역이라는 실제 장소를 섞어서 리얼리티와 감정선을 한층 살려낸 이 영화는 적절히 가볍고 귀여우면서도 썩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영화, 가족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신파'를 완벽하게 털어낸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의 신파라면 난 일단 환영한다고 말하겠다.
<기적>은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시국 때문에 몇 차례 개봉을 연기하며 내 속을 엔간히도 태웠다. "대체 준경이는 언제 만날 수 있지!" 아쉬움에 발길질을 해대던 찰나, 추석 연휴라는 대목을 끼고 개봉한 이 영화는 마치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를 기다려왔다!"는 듯 영화가 가진 매력을 사정없이 내뿜으며 추석 연휴 극장을 찾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의 매력 포인트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사랑에서 피어난 따스함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추억을 불러오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 아름다운 계절을 품은 기찻길의 모습 정도가 있겠다. <기적>은 누군가의 꿈 이야기이자 첫사랑의 두근거림, 가족 간의 깊은 사랑에서 피어난 따스함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영화다. 또한 시대 배경을 따라 맞춰 입은 배우들의 스타일링은 “촌스럽다.”라기보단 귀엽고 정겹게 다가온다. 거기에 비디오테이프와 플레이어, 흰 편지지와 연필, 세월을 담은 집과 가구 같은 것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시동>에 이어 새로운 느낌의 10대 소년 역할에 도전한 박정민 배우의 뚝뚝하지만 쑥스러움이 살짝 묻어나는 사춘기 소년 연기와 초반부의 발랄한 분위기를 책임지는 임윤아 배우님의 첫! 학생 연기, 원칙을 지키는 아버지와 준경을 벅찰 만큼 사랑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오가는 이성민 배우님의 안정적인 연기, 사실상 준경과 관객들에게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선사하는 인물, 보경 역을 맡은 이수경 배우님의 연기가 <기적>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이자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도로도 차도, 기차역도 없이 기찻길만 놓여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 준경은 마을을 얄짤없이 지나쳐가던 기차가 아주 잠시라도 설 수 있는 안전한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 한다. 기찻길도, 마을에 내려야 할 사람도 있는데 정작 기차역은 없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에 나가고 돌아올 때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정해진 시간이라도 있는 여객 기차는 대비하고 피할 수 있지만 수시로 지나다니는 화물 열차는 도저히 피할 겨를이 없다. 탈 사람이 없어 현실적으로 역을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준경의 기차역 건설에 대한 꿈은 매번 '제정신 아닌 소리'로 취급받고, 사람들은 역 만들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준경은 기차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준경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한 기찻길을 걸어가며 놓쳐야 했던 소중한 인연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고, 그것을 지키고자 청와대에 50통이 넘는 편지를 쓴다. 준경이 왜 이토록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왜 더 큰 세상에 나가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뽐내는 일보다 위험하게 철교를 지나는 마을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차역 만들기와 별을 보고 싶다는 두 가지 꿈을 꾸는 소년과 소년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하는 첫사랑 라희와 태윤, 보경. '꿈'과 '가족' 그리고 '사랑'을 한곳에 뭉쳐낸 이 이야기에서 진한 사람 냄새가 풍긴다.
<기적>은 제목 그대로 누군가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다. 역을 만들겠다는 준경의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등장인물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기적이, 준경이 또 다른 꿈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길.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꿈도 기적처럼 이루어지길. <기적>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수많은 기적을 바라게 되고, 또 그것이 이뤄질 거라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반짝이는 반딧불이로 가득 찬 기찻길을 보며 힘든 현실을 밝게 비춰줄 기적을 꿈꿔본다.
무뚝뚝한 말투에 덤덤한 표정, 고맙다, 사랑한다. 같은 감정 표현에 사뭇 서툴러 보이는 소년이 오래도록 품어온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피할 틈 없이 빠르게 지나쳐가는 기차의 앞, 옆모습이 아닌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을 기차역에 서있는 기차의 앞모습을 보는 날이 올때까지. 그리고 항상 흘깃거리며 볼 수 밖에 없었던 진짜 꿈에 얽혀있던 아픔을 풀어내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그 순간까지 준경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적 시놉시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를 보낸 ‘준경’(박정민)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이다.
기차역은 어림없다는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이수경)과 마을에 남는 걸 고집하며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 그의 엉뚱함 속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와 함께 설득력 있는 편지쓰기를 위한 맞춤법 수업, 유명세를 얻기 위한 장학퀴즈 테스트,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 응시까지! 오로지 기차역을 짓기 위한 ‘준경’만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포기란 없다. 기차가 서는 그날까지!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경상북도 1등 과학 영재이자 5분 만에 시험지를 후딱 풀어내는, 또라이 같은 천재. 준경. 준경이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편도 2시간 이상. 준경은 위험하고 긴 등하굣길을 오래전에 떠난 누나 보경과 함께 걷는다. 매일같이 .
영화는 준경이 경시대회에서 1등 상을 타던 날, 보경이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기 전까지는 준경의 첫사랑과 라희, 그리고 간이역을 짓겠다는 준경의 두번째 꿈에 집중한다.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어느 순간엔 가벼운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라희와의 대화와 과거 기억들을 통해 준경이 별과 우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흘린다. 경시대회 상을 받기 전, 계절별로 나눠진 별자리 그림을 쳐다보던 준경은 수많은 별자리들로 가득 찬 하늘 한가운데 가장 특별한 엄마 별을 그린다.
준경에겐 별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준경은 그 꿈을 당당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준경은 간이역을 짓겠다는 꿈은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청와대에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도 “니는 우주가 그래 좋나?"라고 묻는 라희에겐 그저 "별이 좋다. 그런 게 있다.”고 얼버무릴 뿐이다.
오래전 자신을 낳다 세상을 떠난 엄마와 경시대회 트로피를 지키려다 물에 빠진 누나. 준경은 보경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자신의 진짜 꿈을 가슴 깊숙이 숨겨놓고 마음의 짐을 덜어낼 두 번째 꿈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온 큰 이별을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보경을 놓아주지 못한다. 준경은 모두가 “이 마을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밖으로 나가라.”고 말해도 누나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지 못한다.
보경이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준경의 기억과 마음속에 담긴 보경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남매가 얼마나 각별하고 가까운 사이였는지 척- 짐작이 된다. 꼬맹이라고 부르며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 보경의 모습, 라희는 한 번에 찌르지 못했던 준경의 볼을 익숙하게 한 번에 찌르는 보경의 모습.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기찻길을 걷는 보경의 모습. 초등학교 4학년을 지나 어느덧 보경의 마지막 나이를 넘어선 동생 준경은 여전히 두려울 때면 보경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누나는 모른다. 내가 양원역을 왜 그래 만들고 싶었는지 아나?"
"아버지한테 칭찬도 받고 용서도 받고 싶었다."
"니를 사랑하는 걸 들킬까 봐. 니까지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서."
"이제 네 짐은 덜어내야지."
준경과 태윤은 이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지만, 서로를 의지하지 못한다. 엄마와 보경을 지키지 못했다는 각자의 후회와 유일하게 남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준경은 태윤을 사랑하기에 태윤에게 용서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나를 잃게 된 오래전 그날의 실수를 만회할 기차역을 만들려 했고 태윤은 준경을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마음에 준경과의 거리를 넓힌다. 항상 서로의 옆얼굴만 바라봤던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속에 묵혀온 아픔을 내보이며 짐을 덜어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돌아 드디어 함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무뚝뚝한 옆모습만 보이던 아빠 태윤이 준경의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순간, 힘 빠진 태윤의 등을 토닥이는 남매의 손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준경의 꿈에 나와서까지 태윤을 걱정했던 보경. 그런 꿈을 꿀만큼 태윤과 보경을 가장 사랑했던 어린 준경의 마음. 죄책감과 또다시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껴안고도 준경을 키워내기 위해 견뎌왔던 태윤의 무거운 사랑. 그리고 빼놓으면 섭섭한 준경의 첫사랑이자 뮤즈, 준경의 꿈에 대해 "꿈꾸는 게 뭐 어때서?"라며 처음으로 꿈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라희의 한결같은 사랑. 여러 가지 모습을 한 사랑과 빛나는 꿈이 한곳에 뭉쳐 만들어진 기적 같은 양원역과 기적 같은 준경의 꿈을 향한 첫 날갯짓이 참 예쁘다. 준경이가 오래, 더 높은 곳에서 행복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에 붙잡혀 어쩔 수 없이 나는게 아닌, 그의 비행을 바랐던 사람들의 사랑을 힘으로 삼아 마음껏 더욱 힘차게 날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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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스마트 리뷰 -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북스마트 #하이틴 #B급감성
꿈도, 연애도, 다이어트도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은 스무 살이
가장 기대되는 나이 열아홉♥아이비리그에 합격한 ‘에이미’와 ‘몰리’는
대학과 스펙이 인생의 전부라 믿는 파워 범생이.춤은 글로, 파티는 책으로 배운 두 사람은
고3의 마지막 졸업 파티에서
잊을 수 없는 레전드 핵인싸가 되기 위해
사상 초유의 일탈을 계획하는데…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어’이 구역을 뒤.집.어.놓.으.셨.다!
대리 만족 100% 현실 공감 200%
모두가 원하는 Last Night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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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만세 리뷰 - 제목은 학교폭력 가해자의 회개라고 짓겠습니다, 근데 이제 사이비를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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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화려한 반격 영상
처음부터 난 알았어. 내가 특별하단 걸
그게 불편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모두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잖아?
그러다 보니 결국,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지
우여곡절 런던에 오게 된 나, 에스텔라는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운명처럼 만났고
나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이용해 완벽한 변장과 빠른 손놀림으로 런던 거리를 싹쓸이 했어
도둑질이 지겹게 느껴질 때쯤,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됐어
거리를 떠돌았지만 패션을 향한 나의 열정만큼은 언제나 진심이었거든
근데 이게 뭐야, 옷에는 손도 못 대보고 하루 종일 바닥 청소라니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런던 패션계를 꽉 쥐고 있는 남작 부인이 나타났어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난 남작 부인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가게 되었지
꿈을 이룰 것 같았던 순간도 잠시, 세상에 남작 부인이 ‘그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난 내가 누군지 보여주기로 했어
잘가, 에스텔라
난 이제 크루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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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1분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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