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24 15:32:06
3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백설공주> 아쉬운 흥행 성적, 뒷심 발휘할 수 있을까

디즈니의 새로운 프린세스 실사영화 <백설공주>가 북미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에 왕좌에 올랐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백설공주>는 북미에서 4,300만 달러, 해외에서 4,43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세계 개봉 수익 8,739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습니다.
당초 1억 달러 이상의 글로벌 오프닝 수익을 기대한 바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2억 7,000만 달러의 높은 제작비로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최소 7억 달러 이상을 벌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연 <백설공주>도 앞서 개봉했던 디즈니의 실사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처럼 무서운 뒷심을 보여주며 안정적인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한편, 케이트 블란쳇,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으로 나선 <블랙 백>은 개봉 2주 차에도 한 단계 더 올라서며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안착했습니다.
개봉 주말 대비 42% 감소에 그치며 꾸준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순위권에 돌아온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현재까지 전 세계 4억 80만 달러를 벌어들여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1억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를 고려하면 기대만큼의 흥행 성적을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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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마지막 주 영화 한줄평] <아네트>
8월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A24의 대작 <그린 나이트>의 언배시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그린 나이트>를 보고 오신
'씨네랩' 연구원 분들의 한줄평, 한 번 확인해볼까요?
1. <그린 나이트>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의 귀환
다시 영화의 세계로 관객들을 불러모을
2021년 칸영화제 개막작 & 감독상 수상 <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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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이 글은 영화 [한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생 좀 해 봐라.
선배 이순신이 후배 이순신에게 조언과 애정,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약간의 투정을 담아 건넨 단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때 최민식 배우의 얼굴에 있는 주름이 그렇게 멋있게 보였을 수가 없었다고 박해일 배우는 말 했다. (씨네 21 1365호 참고)
전편인 [명량]은 전 국민에게 미움받기 힘든 이순신이라는 위인을 (어느 정도) 성공 적으로 다룸과 동시에. 한국 영화 흥행 1위라는 두 가지 과업을 단번에 이루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을 고뇌를 겪었을 배우 최민식에게 주연상을 안겨주었음도 빠질 수 없다.
이제 막 서래의 바다에서 겨우 빠져나와. 몸의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박해일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순신이 되어 또다시 저 말 없는 바다로 등 떠밀려 돌아가야만 했다. 왜구뿐만 아니라 전편의 그림자와도 싸워 이 지긋지긋한 망령들을 몽땅 바다에 빠뜨리고 돌아설 결심으로.
박해일 배우 개인에게도 2022년 올해 개봉할 세 작품 중 중간다리의 작품이면서. 2022년 여름을 장식할 4대 영화 중 가운뎃 토막의 시점에서 선보일 영화 [한산]은 작품 내외적으로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이미 스포일러인 이 영화가 한국 사람의 마음속에 각인된 승리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냈을지, 그리고 전편과는 판이하게 다른 박해일의 이순신은 또 어떤 모습일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가져다줄 작품이다.
AS와 CS가 완벽한 후속작;칼을 갈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영화.
사진출처:다음 영화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전작 [명량]에는 수정해야 할 점들이 존재했다. 과도한 (소위)국뽕, 쓸데없거나 아예 필요 없는 서사,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신파 들은 늘 이 작품을 평가절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물어뜯기는 빌미를 제공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 [한산]은 정말 철저하게 이 “단점”들에 대한 대대적인 AS를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첫 장면에서부터 전편과 비교했을 때 말도 안 되게 스케일이 커졌음을 알 수 있지만. 전편에서 건너와 이번 작품마저도 망칠까 두려웠던 점들은 거의 대부분 차단했다.
[명량]을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곁가지들도 튀거나, 자신들의 지분을 주장하기 위해 영화 속에서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 해전을 향해 달려가는 데 있어 거슬리지 않는 변주에서 적당히 그치는 절제 미마저 갖추었다.
모든 것이 터지고 날아가는 전투 장면에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후반부의 전투 장면에 자막을 달아놓은 것도 높게 사는 점이다. 이 배려 덕에 적군 아군 가릴 것 없이 오고 가는 전략 회의를 놓칠까 봐 마음의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덜어낸 그 수고는 영화에 몰입하는 힘 위에 얹어져 조금 더 영화 속의 장면들을 면밀히 살피며 끝까지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관객들이 아쉬워 한 점들을 모두 수렴해 완벽에 가깝게 수정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태도도, 전하는 메시지도 비굴하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자신들의 결점을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서슬 퍼렇게 칼을 갈아 온 소리가 귓가에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토록 완벽에 가깝게 관객들을 위했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한산]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조금 더 쌓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마음이 든다.
완벽한 밸런스;영화에서 적장에 대한 예의/예우를 갖추는 방법
사진출처:다음 영화
전쟁영화. 그것도 역사가 스포일러가 되어 결말이 이미 누군가의 머릿속에 “상식”으로 잡혀있는 경우에는. 승리를 강조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과잉이 되기 쉽다. 전쟁 속에서의 적이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그린다거나.(참고 1) 혹은 과장되게 그려 “드라마틱”함을 강조하기에 급급하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 늘 반타작 이상은 “먹혀들어가는” 방법이므로.
그러나 [한산]은 와키자카(변요한)에게 이순신만큼의 품격과 시간을 할애했다. 덕분에 이순신의 숙적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큰 부담 없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빛낸다. 상황을 급조하지도 않고, 아주 큰 무리수를 둬 극한의 긴장 상황까지 관객을 몰고 가 들들 볶지도 않는다. 그 덕에 배우의 연기는 흔들림이 없고. 목표 하나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장수 한 명을 그려내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성스레 썼다.(참고 2)
누군가와의 시합, 혹은 대결이 정정당당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봐준 거다.라는 뉘앙스는 자신조차 속이고 농락하는 기만행위에 불과하지만. 영화는 다행히 그것을 피한다.
그 결과 이순신의 빛나는 지략만이 최고인 것처럼 톡 튀어 보이지 않는다. 승승장구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두려움을 숨길 수 없는 장수와. 해전에선 강하지만 전쟁의 흐름은 패전에 가까운 한 장수의 간절함이 부딪치는 순간들이 쌓인다. 쌓인 순간들 만큼 긴장감은 후반부로 갈수록 커지고, 아주 작은 균열에서 시작해 처참히 무너지는 적의 모습을 보는 재미는 극대화된다.
적장, 혹은 상대 배우에 대한 예우를 지켜준 만큼. 우리가 그토록 떠받들고 싶어 하는 이순신의 격도 함께 올라간 셈이다.
루머가 전설이 되는 과정;용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초기의 구선은(,그리고 이순신은 ) 분명 한계가 뚜렷했다.
당시의 전쟁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인에게는 전설 속의 괴물 같은 두려움의 대상이긴 했지만. 그만큼 익히 노출된 상태임을 뜻하기도 했다. 왜구들은 두려움의 결정체였던 조선의 구선(거북선)과 이순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첩자까지 동원해가며 전쟁에서의 우위를 잡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대의를 가지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을 시기했던 원균의 비난은, 이순신에게는 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쳐 대책까지 마련한 왜구의 저주와 동일시되어 들렸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선(거북선)은 그런 속마음마저 까뒤집어 본 듯 달라진 모습으로. 전장에서 보란 듯이 왜구의 진영을 휘젓고 다닌다. 그 어떤 한계도 없다는 듯 자신의 본분을 다 하고 있는 구선과. 치밀하게 들어맞는 이순신의 작전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 모습이 이 말 많고 탈 많은 영웅을 다룬 시리즈와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으로 인해 평가 절하된 모든 설움들을 안고 후속작인 [한산]을 만들어 대중들에 보여주기까지. 마치 영화 속 이순신이 그랬던 것처럼. 감독은 인내하며 속내를 감춰야 했을 것이다.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를 향해 속절없이 쏟아지는 비난과 붕 뜬 예상들은 빨리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부채질도 했으리라. 그러나 비로소 찾아온 마침맞은 때를. 이순신도, 그리고 감독도 놓치지 않았다.
작품의 말미는 왜구와 더불어 모든 편견들이 수장된 고요한 바다를 비춘다. 그와 함께 원균의 허망한 표정을 담은 장면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순신이라는 작자의 계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의 표정은. 아마도 의구심으로 날선 말을 아끼지 않고 던져댔던 관객이 짓기를 바라던 표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냥 내뱉었을 모든 악의를. 선의로 갚아 낸 이 감독의 멘탈이 대단할 지경이다. 용은 그렇게 두려움과 비난을 먹고 열심히 자랐다.
마치면서
포인트가 쑥쑥 쌓여가는구먼.
[명량]의 이순신이 가는 곳을 모두 불바다로 만들 것만 같은 카리스마를 뿜었다면. [한산]에서의 이순신은 서늘하고 또 유약했다. 공격을 당해 내려앉은 한 쪽 어깨를 보는 순간부터. 얼마나 이 역에 박해일 배우가 많은 부담감을 느꼈고, 또 그 부담감을 연기로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가 낫다.라는 말보다는 (어느 정도) 훌륭한 전작이 있었기에, 밥도 안 먹고 다닐 것만 같이 보이는 이순신이 어떤 계기를 통해 명량의 이순신으로 탈바꿈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전장보다는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샌님에서. 용이 되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이순신이 되기까지의 변화를 그린 이 영화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고 1
실존 인물이 설령 잔인한 인물이었다 해도 간접적이거나 필요한 장면을 통해서 드러내지 않고 시종일관 화가 나 있는 상태로(혹은 잔인하게) 영화에 비치는 것을 의미함.
참고 2
이 말 또한 일본이 한국을 쳐들어 온 게 잘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님. “영화상에서” 보통 이런 인물을 다룰 때 포악하기 그지없고 경박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과신하는 바람에 패가망신하는 존재로 비치는 것을 자제했다는 말임.
[이 글의 TMI]
개인적으로 손현주 배우님 너무 좋아하는데 나와주셔서 반가웠고, 그리고 하필이면 원균역을 연기해주셔서 감사했다. 후반부의 표정연기는 과연 이 배우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하는 감탄이 나올 만큼 섬세하고도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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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구원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x 티모시 샬라메의 재결합“보통의 삶, 보통의 가족, 보통의 존재. 보통의 것이 불가능한 누군가에게. 당신과 비슷한 타인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서로가 이어져있을거라고. 그렇게 상처를 보듬고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영화는 말한다.
‘카니발리즘(식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코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한 호러영화가 아니다. 사회 밖으로 내몰려 그 주변을 맴돌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메타포일 뿐.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들이 가진 아픔의 한 구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애썼다.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 그 상처는 얼마나 깊은지. 어떻게 해야 아물 수 있는지.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나가 되어 서로를 구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좌)테일러 러셀_매런과 (우)티모시 샬라메_리
삶의 경계선에 서있는 이들, 사회 속에서 이방인의 위치에 서있는 이들의 삶이란. 그것은 때로는 고독하며, 때로는 온전하지 못하다. 소중한 감정들을 짓눌러야 하고, 아픈 마음을 타인에게 쉬이 내비칠 수 없다.
영화는 식인을 하는 18세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의 성장을 그린다. 엄마는 매런을 떠난 지 오래고, 언제나 그녀 곁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마저 그녀를 떠나 결국 매런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매런은 자신과 같은 식인 성향을 가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왜 나랑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냐는 매런의 말에, 네가 착한 사람 같아서,라며 화답한 리. 그렇게 리는 매런의 인생길에 동승하게 된다.
힘든 삶을 살아온 매런과 리가 마침내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마를 마주댄 채 주고받던 말들이 참 애틋했다.
"You don't think I'm a bad person?" - 리
넌 내가 나쁘다고 생각 안 해?
"All I think is that I love you." - 매런
널 사랑한다는 생각뿐이야.나의 결핍이 타인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매런이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고 난 뒤에 리를 떠나려 했던 것처럼, 리가 사랑하는 동생 케일라 옆에 언제나 함께 있어줄 수 없었던 것처럼. 결국엔 각기 다른 모양의 결핍들이 연결되어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 역시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여동생 케일라를 끔찍이도 아꼈던 리. 너무나도 소중한 그녀에게, 리는 보통의 사랑을 내어줄 수 없다. 자신의 아픔이, 자신의 이야기가, 케일라에게 큰 상처가 될까봐 두려워서. 짓궂은 말들만 내뱉고, 전부를 터놓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 공중전화부스에서 케일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울먹이던 리의 마음이 너무나 연약해보였다.
저기 저 멀리, 언덕 위에 앉아있는 매런과 리를 보며 둘의 행복을 빌었다.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그곳이 참 평화로워보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곳. 나와 닮은 상처와 결핍을 가진 너를 껴안은 채 위로받을 수 있는 곳. 아픔을 묻어두며 살아온 리는 매런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나’라는 존재가 거부당하는 가혹한 세상 속에서, 그렇게 각자가 가지고 있던 빈자리는 서로의 존재 덕에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다.
강렬하고 아름다웠던 마지막 장면이 아직까지도 오랜 여운으로 남아있다.
Eat me please, bones and all. -리
영화의 제목은, 종반부에서 리의 말로 귀결된다. 뼈까지 전부 먹어달라는 리.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너 안에 영원히 존재하고 싶다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사랑하자고. 너에게 내 전부를 주고 싶다고. 그의 애원은 이렇게나 사랑으로 가득하다. 매런을 향한 리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 갖고 있는 마음의 크기만큼 줄 수 없는 사랑은 서럽고 또 서럽다.
2022 부산국제영화제_ 본즈 앤 올
정식 개봉 전, 2022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만난 영화. 상영관을 나오면서부터 개봉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영화라는 예술의 힘을 빌려, 사회 속 한 개인의 삶과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의, 그 둘의 사랑이 더 이상은 아프지 않길.
이 영화 역시 오랫동안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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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영화 <변호인>, <강철비> 시리즈로 자신만의 색깔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감독 양우석이 신작으로 돌아옵니다. 무게감 있는 작품들을 연출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남녀노소 즐기기 좋은 연말 맞이 코미디 영화로 기분 좋은 변신을 꾀했습니다. 과연 앞선 작품들을 연달아 성공시킨 것처럼 이번 작품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해외에서 남다른 호평을 받아 국내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영화들도 줄지어 개봉합니다. 데미 무어의 최고작이란 평을 듣고 있는 <서브스턴스>, 주연인 킬리언 머피가 제작까지 맡아 화제가 되었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독보적인 디스코그래피의 주인공 FKA 트위그스가 출연하는 <더 크로우>까지!
12월에도 영화와 함께해요!
대가족
About Family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7분
감독: 양우석
주연: 김윤석, 이승기,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
개봉: 2024.12.11.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줄이 끊이지 않는 맛집 사장 무옥 승려 선언한 외아들 문석 때문에 대가 끊기다?
마지막 함씨 가문! 세울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자수성가 맛집의 근본, SNS 없던 시절부터 줄 서 먹던 노포 맛집 평만옥의 사장 무옥(김윤석)은 대를 이을 줄 알았던 외아들 문석이 승려가 되어 출가한 이후 근심이 깊어 간다. 자신의 대에서 끊겨버릴 예정인 가문을 걱정하던 가운데 어느 날, 평만옥에 문석이 자신의 아빠라며 방문한 어린 손님들!
끊길 줄 알았던 가문의 대를 잇게 생긴 무옥은 난생 처음 맛보는 행복을 느끼고 문석은 승려가 되기 이전의 과거를 되짚다 그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개요: 스릴러 | 영국 | 141분
감독: 코랄리 파르쟈
주연: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봉: 2024.12.11.
배급: (주)NEW
줄거리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개요: 드라마 | 미국 | 98분
감독: 팀 밀란츠
주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개봉: 2024.12.11.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빌 펄롱은 석탄을 팔며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 펄롱은 숨겨져 있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더 크로우
The Crow
개요: 액션 | 프랑스 | 111분
감독: 루퍼트 샌더스
주연: 빌 스카스가드, FKA 트위그스
개봉: 2024.12.11.
배급: 판씨네마㈜
줄거리
가장 완벽했던 사랑의 끝, 가장 처절한 복수의 시작!
죽음마저 두려워할 피의 부활이 펼쳐진다!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외로웠던 순간,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가진 '셸리'를 만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에릭'. 완벽한 행복을 만끽하던 그때, 두 사람은 의문의 괴한들에게 무참히 살해 당하고 '셸리'는 과거의 끔찍한 실수로 지옥에 끌려가게 된다.
지옥에서 '셸리'를 되찾기 위해 '에릭'은 까마귀의 저주를 받아 불사의 몸이 되고 죽여도 죽지 않는 복수의 화신으로 부활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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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치의 투명함
<힘찬이는 자라서>(2022, 김은희)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김진화)
<세기말의 사랑>(2023, 임선애)
<살인자ㅇ난감>(2024)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 위 작품들의 장면과 결말 포함
손수현을 보기 위해 재생한 단편 <힘찬이는 자라서>, 노재원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주인공 정희의 친구의 남편 강석, 적당히 내향적이고 친절한 남자인 그는 대화의 주제가 달랐다면 예의바른 미소로 일관하다 퇴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영화가 만들어질 까닭도 없었겠지.) 정희가 쓰는 시나리오가 테이블에 올라오며 두 사람은 부딪힌다. ‘이퀄리스트’적 논리를 따박따박 나열하는 강석의 언행에 딱히 악의는 없다. 그는 모르고 또 알려 하지 않으므로 ‘억울’해 하는 게다. 강석은 현실을 반영해 구성된, 특정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물이었다. 배우는 역할에 충실했고, 나는 강석이 밉고 갑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직설이 차라리 반가웠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리도 솔직한 표정을 짓는 저 배우는, 주어진 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이가 정희의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왠지 그럴 것 같다. 그건 노재원의 연기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어졌다는 신호였다.
첫 만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서서히 스며들게 되는 이도 있다. 노재원은 말하자면 후자였으나, 어느 정도 전자이기도 했다. 타 배우를 염두에 두고 관람한 작품들에서 그를 목격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놀랐다.
자주 길을 잘못 들거나 가다 멈추곤 하는 로드무비 <윤시내가 사라졌다>. 운시내=준옥은 완벽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반짝이는 재킷을 걸친 그가 카메라에 잡힌 순간, 노재원의 이름을 기억했고, 좋아하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다. “원조 가수랑 똑같기만 하면 매력이 있나, 저는 그냥 저 마음가는 대로 부르거든요. 그래서 일이 안 들어와요.” 그 자조 섞인 담백한 대사에 준옥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그의 공연은 본인의 설명대로다. 힘주지 않아도 깊이가 느껴지는, 차분한 ‘엣지’를 품은 목소리. 섬세한 선을 그리는 움직임. 노재원은 단지 노래를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음으로 관객의 심장을 울릴 줄 아는 공연자였다, 꼭 운시내처럼. 무대 위의 옅은 웃음기는 후에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보며 짓는 미소와 닮아 있다. 미묘한 카타르시스. 겸손함, 당당함, 자만하지 않는 자신감. 삶의 지혜를 터득한 사람 특유의 아우라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운시내’가 노래하는 자세는 ‘정준옥’이 살아가는 자세와 닮았다. 식탁 밑에 있는 하다(=처음 보는 사람)를 동그란 눈으로 응시하다 한쪽 이어폰을 슥 빼 제 귀에 끼우는 그 독특한 붙임성. 당황한 하다가 식탁에 머리를 박자 튀어나오는 진심어린 감탄사 “아이고.” 그 마주침부터 줄곧, 하다는 무례하고 준옥은 스스럼없다. 준옥의 친절은 형식적 예의 이상이다. 어머니 뻘인 순이를 ‘친구’라 부르며 벽없이 훅 다가가는 그는 하다의 말처럼 “선을 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단 ‘선을 잘 넘는 법을 아는’ 이였다. 꿍꿍이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내면의 깊이마저 갖춘. 그 넓은 마음 씀씀이는 절로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스스로 투명하므로 타인의 속도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걸까. 그는 하다의 셈과 위악을 어느 정도 간파하면서도 섣불리 평가해버리지 않고 조용히 지켜본다. 은근히 끼고 싶어하는 속내를 눈치채고 보내는 눈웃음, 삐딱한 행동을 관찰하는 진지한 눈길. 준옥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형과 함께 모녀의 갈등을 터트린 것은 글쎄, 아마도 의도적이다. 가운데 끼어 욕을 먹고 눈치를 보며 기어이, 중요한 이야기를 던지고야 만다. 하다의 케케묵은 감정을 자꾸만 건드린다. 일부러 걸림돌이 되고 기꺼이 거슬린다. 노재원의 자잘하고 천연덕스러운 제스처들은, 준옥의 신묘한 중재자(!)적 능력을 의심케 했다.
그런 그가 살짝이라도 차가워지면 이쪽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단호해지면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준옥의 위로는 빈말이 아니고 그의 조언은 불쾌한 맨스플레인이 아니다. 그가 ‘실패한’ 과거를 꺼내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와닿았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진심을 체화한 노재원, 그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드문 종류의 것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굳이 말하자면 하다와 순이의 영화이기에, 준옥은 도중 하다에게 버려지며 화면을 빠져나간다. 화내거나 패닉하는 대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마는 것마저 그답다 싶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퇴장하는 그를 ‘메시지의 의인화처럼 보이는 존재’라고 해버리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리 갈무리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노재원을 만나 생명력을 얻은 준옥, 그의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안 정도는 빌고 싶어진다. 한편으로는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그는 잘 살아가리라 짐작하게 된다.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 ‘관종’과 ‘짝퉁’들의 언더월드에서 운시내=준옥은, 우아한 미스핏, 골목길의 귀인,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도인이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2020)
여기 ‘법 없이도 살 듯한 남자’가 또 있다. <세기말의 사랑> 속 도영이다. 모순된 묘사로 들릴 것이다, 그는 회사 돈을 횡령한 범죄자이니. 가출한 조카가 위장결혼한 와이프 명의를 도용해 만든 카드값을 혼자 메꾸려다 그렇게 되었다. 앞 두 문장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으나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다. ‘위장결혼’의 자간에는 사랑과 배려가 묵음처리돼 있다.
영미와 도영은 조금은 동족이다. 사랑하는 이의 범죄를 덮으려 밤새 부업을 하고 형까지 산 영미, 기다려달라는 영미 말을 따르다 그런 건지 뭔지 자수도 못하고 체포된 도영. 뒤늦게 꼬박꼬박 돈을 갚는 그를 미워할 수 있는 관객은 별로 없었으리라. 캐릭터의 사연도 성격도,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세기말의 사랑>, 도영의 껍질은 투명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소재를 클로즈업해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순간은 도영과 만나 유독 빛났다. 비엔나 소시지에는 타인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배려심이 묻어 있었다. 모기 물린 자국에 찍은 십자가에는 살짝 엉뚱한 유머감각과 순수한 설렘이 눌려 있었다. 도영의 스크린 타임은 짧았으나, 그의 됨됨이를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유진과 도영이 마주하는 시퀀스는 겨우 둘이었고 개중 하나는 화상면회 씬이었으나, ‘위장 결혼 상대’를 향한 도영의 사랑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좋아해요”를 뱉어버리고는 웃음기가 사라지는 입가에, 호텔 창문 너머 반짝이는 관람차를 보며 (혹은 보지 못하며) 섬세하게 일그러지는 뺨에, 작품이 생략한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도영은 그럴듯하게 멋져 보이는 법을 모르는 듯한 사람이었다. 어쩐지 노재원도 그런 사람일 것만 같았다. 수줍은 손끝과 내리깔린 눈꺼풀, 자주 흐리는 말끝에 가득 담긴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영에겐 그런 드문 자질이 있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고, 노재원은 이상한 배우다.
<세기말의 사랑>(2023)
최근 노재원은 넷플릭스를 누비며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D.P> 시즌2에 군복을 입은 실루엣을 비추었고, 최근에는 <살인자ㅇ난감>에 출연하며 ‘범위’를 증명했다. ‘하상민 역에 노재원’이라니, 뜻밖의 캐스팅이었다. <힘찬이는 자라서>까지를 포함해도, 앞뒤가 다른 하상민은 그가 이제껏 보여준 이미지와는 한참 먼 캐릭터로 느껴졌다. 허나 곧 (정이서와 더불어) 꽤나 영리한 캐스팅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노재원은 어떤 전형을 따라하는 대신 저만의 스타일로 보통의 악인을 소화했고, 결과적으로 시청자가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도왔다.
움츠러든 어깨, 차마 피하지 못하는 눈, 머뭇거리는 말투, 하상민은 매혹적인 젠틀맨이 되기보단 유약함과 무해함을 가장해 상대의 경계심을 해제한다. “혹시 연락을… 해도 되나?” 수락을 해도 반대로 거절을 해도 괜찮을 듯한 톤이다. 그 탁월하게 균형잡힌 딜리버리에 감탄했다. 경아에게 ‘너는 나와 동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 꾸며낸 피해 서사 자체보다는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의) 태도이고 마스크다. 악의라곤 없어 보이는 노재원의 눈빛에, 원작의 전개를 알고 있음에도 속아넘어갔다. 거울 앞에서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하상민에게 이유있는 싸함을 느끼면서도, 거기 속셈은 없다고 믿고 싶었다. ‘이번엔 믿어봐도’ 될 법한 분위기를 풍기는, 최우식과는 또다른 방향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두른 배우. 그렇게 노재원은 성공적으로 경아와 시청자의 의심을 풀었고, 배신감을 극대화했고, 최후의 순간에는 이희준과 만나 더없이 보잘것없어졌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평범하여 더 유해한 비겁자 하상민. 송촌 앞에서 벌벌 떨고, 울며 애원하고, 먹어 들어가는 발성으로 죄를 고백할 때보다- 경아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이내 이성을 잃고 목을 조를 때, 그는 가장 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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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행이었다, 그 직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시청한 것은. 노재원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이 작품을 최근에야 보게 됐는데, 이미 목격한 매력과 범위를 놀라운 형태로 재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서완은 일단, 조심스럽고 순하고 해맑다. 날카로운 눈매와 맑은 눈동자가 안경과 만나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쭈뼛거리는 눈가와 입가, 어깨. 말투는 정중하고, 발걸음은 자유롭다. 스토리텔링을 장황하게 늘이다 끝을 흐리는 점, 몸을 슬며시 뒤트는 점, 시선을 허공이나 바닥에 두는 점, 그러한 디테일은 대사와 맞물려 서완의 ‘컨디션’을 암시한다. 허나 캐릭터성 또한 나타낸다. 그 흐름에는 개성이 있다. 다은이 떠온 “암브로시아”를 공손히 받아드는 제스처에 뱃속이 간질간질해 진 이는 (이미 배우를 좋아하는) 나뿐이 아니었으리라.
작품은 서완의 스크린 타임을 영리하게 조절했다. 은은한 잔상을 남기고 박보영과 연우진에게 포커스를 넘기며 슬금슬금 퇴장했다가, 동네 주민처럼 가끔 얼굴을 비추며 독보적인 그림자를 흘리는 서완. 인자하고 어색하게 유유자적하던 그는, 자신의 견고한 세계가 외부 자극에 의해 깨질 위기를 감지하자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노재원은 그 간극을 설득하고, 인물의 사연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4화에선 조심스러운 선의로 주위를 밝히고, 5화에선 시청자의 심장을 잔뜩 졸인 끝에 허탈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 다음 화에서, 우리는 서완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그를 떠나보내게 된다.
자신이 구성한 판타지 월드 안 서완은 지쳐 있지만 단단하다. 발음과 말씨도 분명한 편이다. 그 세계가 스스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는 서늘한 눈동자엔 공허가 있다. 고요하고 무기력한 수긍이 이어진다. 유하고 공손한 그의 언어가 날카롭게 꽂히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 입원 전, 속상할 만큼 이성적인 자각을 털어놓는 상태와, 병 인지 후 조바심과 자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는 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은의 멍든 손을 보고 제가 더 아파하는 이다.) 노재원은 누르고 파고들고 덜어냄으로써, 공시를 준비하던 서완의 마음을 드러냈다. 참고 참아 무뎌져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 성마른 입술을 통해 뱉어내는 자조에 여러 해에 걸쳐 어마어마한 밀도로 압축된 응어리가 언뜻 비쳤다. 노재원은 쌓이고 뒤엉켜 본래의 색을 잃은 인물의 내면을 신중하게 내보이는 법을 아는 배우였다.
저마다 개성있고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로 가득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노재원은… 조금 달랐다. 무엇이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조금 달랐’다. 엉망으로 울게 했고, 기습적으로 웃게 했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그리고 서완의 마지막 순간, 노재원은 모조리 비워냈다. ‘차 한 잔’을 청하던 떨리는 목소리가, 허탈하고 자유로워 보이던 미소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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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세기말의 사랑>을 관람하며, <힘찬이는 자라서>를 돌이켰다. 노재원에게 받은 첫인상과, 현재 머릿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이미지를 번갈아 떠올렸다. 각이 예리하게 두드러지는 얼굴은 일관성을 유지하며 다채롭게 변했다. 그는 부드러운 피부를 입고 단단한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한없이 약해질 수 있었다(하상민). 전부 내려놓거나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무던한 듯 통통 튀는 손수현, 예민함과 유함이 공존하는 노재원. 두 배우의 에너지가 보다 친밀하게 엮이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이주영, 이유영, 스치듯 화면을 공유했던 최우식까지- 관심을 보다 먼저 두었던 배우들과 노재원이 다른 세계에서 다르게 얽히는 모습을 은근히 그려보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남자 배우가 선뜻 내보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미지를 노재원은 스스럼없이 둘렀다. 힘주지 않고 깊이를 담는 연기자. 노재원의 인터뷰들을 읽으며, 자주 준옥이 겹쳤다. 일에 대한 사랑과 겸손한 자신감이 진중하고 솔직한 언어에 실려 있었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스포츠경향]는 그는 현명한 걸음을 저답게 내딛고 있다.
“당신의 다정함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일본 TV 시리즈 <그래도, 살아간다> 속 대사다. <세기말의 사랑>, 도영을 보며 그 문장이 떠올랐다. 도영만이 아니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준옥,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서완, 그들은 웃는데 이쪽은 자꾸 울먹이게 됐다. 이들의 살갗에 안착한 배우가 노재원이 아니었다면 내 눈물샘이 이토록 왕성하게 활동할 일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노재원은 이상하고 소중한 배우다. 그가 수줍게 뿜어내는 무해한 아우라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영제는 “Daily Dose of Sunshine하루치의 햇빛(멋대로 의역. 배경이 병원이니 ‘복용량’을 살려 번역하는 게 더 맞을 테다.)”. 스크린 위 노재원을 보면, 하루치의 투명함을 보충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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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뿐인 이념이 인간의 얼굴을 할 때
사회학자 김동춘은 근대 국가를 사회 계약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전쟁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국경을 설정했고, 동시에 진행된 이념 전쟁은 국가의 발전 방향성을 결정했다. 한국은 미소 간의 이념 전쟁에 휘말린 대표적인 국가다. 1945년 세계 대전은 마침표를 찍었으나,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의 분단은 시작되었다. 나아가 발생한 1950년 발생한 한국 전쟁은 분단 상황을 공고화시키기에 이른다. 이같은 분단의 역사는 이제 80년, 남한과 북한은 여전히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놓은 채 대치 중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 관계에 있어 화합과 갈등이라는 모순적인 기능을 수행해 온 판문점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북한군 초소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남북 관계에 위기를 초래하고, 이 사건에 중립국 감독 위원회가 개입하여 수사에 착수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피의자인 남한군 수혁과 유일하게 생존한 북한군 피해자 경필. 온전히 다른 주장을 펼치는 두 사람의 진술서를 기반으로 과거는 회상된다. 중립국 감독 위원회에서 파견된 소피는 그 빈틈을 파고드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녀에 의해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의 파편을 비추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시간으로 관객들을 데려다 놓는다. 갑자기 등장하는 외국인 관광객 무리. 군사분계선의 남한 측에서 외국인 모자가 바람에 의해 날아가고, 북측으로 날아간 모자는 덩그러니 비춰진다. 카메라가 틸트업하면 보여지는 것은 경필의 모습이고, 모자를 주워 건네는 그의 모습은 부감으로 포착된다. 판문점이라는 공간에서 남북한의 경계란 흐릿하기 그지없다.
곧바로 보여지는 장면은 남한 군사들이 훈련 중 실수로 북한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습이다. 당황한 이들은 바로 퇴각하나, 잠시 무리와 떨어져 있던 수혁은 낙오된다. 엎친 데 덮친 격 지뢰를 밟은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북한군 경필과 진우는 우연히 그를 발견하고, 그의 생명을 구해준다. 고마운 마음에 편지와 녹음테이프를 교환하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북한군 초소에 방문하기에 이르는 수혁. 세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며, 수혁은 후임인 성식을 북한군 초소에 초대하기까지 한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는 이들. 이들은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것일까.
정해진 비극의 수순을 밟다
영화 속에서 총은 중요한 요소로 쓰인다. 수혁이 처음으로 북한군 초소를 찾은 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세 사람의 모습은 마치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순간처럼 연출된다. 세 사람의 중앙에서 원을 그리며 도는 카메라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낳는다. 서로를 도발하다 먼저 총을 드는 수혁. 세 사람의 장난은 금세 중단되나, 이는 미래의 불행을 알리는 씨앗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에게 총은 장난감으로 기능한다. 성식 또한 이들의 친구가 되며 네 사람은 총알로 공기 놀이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들은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성식은 경필과 진우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들을 월북시키려고 근무를 서는 ‘적공조’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수혁에게 표한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이들이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그의 손은 북한군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데 쓰인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우정은 견고해진다. 하지만 유사 전쟁 상황에 놓인 남북 청년들의 우정이 영원할 리 만무하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모인 네 사람의 모습은 또다시 러시안룰렛이 펼쳐지듯 연출된다. 수혁은 묻는다. “정말로 전쟁 나면 우리도 서로 쏴야 돼?”
다행히도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북한군에게 네 사람의 관계가 발각되며, 이들의 관계는 위기에 처한다. 살기 위해 총을 드는 이들. 누구보다 깊은 우정을 나누던 이들은 결국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이들의 유한한 우정은 이렇게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날, 판문점에는 비가 내렸다
영화의 말미, 사건의 진상에 도달해 가는 소피는 ‘인민군 장교의 딸’이라는 의혹을 받는다. 이념의 순수성을 의심당한 그녀는 중립국 감독 위원회의 직위를 잃고 만다. 그리고 판문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수혁과 면담의 시간을 가지는 그녀. 두 사람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이미 그녀의 소문을 들은 수혁에게 소피는 묻는다. “내가 인민군 장교의 딸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어떻던가요?” 수혁은 답한다.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수혁은 최소한 소피에게만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어차피 진실을 숨기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녀는 네 사람의 우정을 파악한 지 오래다. 그렇게 소피는 마지막으로 진실을 들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수혁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 즉 경필을 지켜주겠다는 것이 그녀의 조건이다. 그렇게 수혁의 입을 통해 네 사람의 깊은 우정과 비극은 전해진다. 소피는 경필에게도 마찬가지로 접근한 듯하다. 진실을 말하면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약속하에 두 사람이 전하는 각기 다른 진실을 듣는다. 일치하는 듯, 불일치하는 두 사람의 주장. 수혁은 진우를 쏜 것이 성식이라 주장했으나, 경필은 진우를 쏜 것이 수혁이라 말한다. 초소에서의 첫 만남에서 벌어진 러시안룰렛 속 수혁이 진우에게 가장 먼저 총구를 들이밀었던 복선은 이렇게 회수된다. 소피는 이를 전하며 누가 먼저 쏜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혁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회피해왔을 진실을 마주한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군번줄과 함께 달고 다니던 경필이 해체해준 지뢰의 잔해 위로 붉게 흐르는 피. 북한을 적대시해야만 하는 남한의 군인으로서의 정체성, 인간 대 인간으로서 북한의 군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만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양립하지 못한 채 비극을 낳는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넌 자는 안다. 수혁에게 더 이상 경필과 진우는 적이 아니다. 그렇게 ‘친구’가 된 이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결국 수혁을 죽인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날엔 판문점에는 비가 내렸다. 수혁이 죽음을 선택한 날에도 판문점에는 비가 내렸다. 고작 군사분계선상에서 동서 800m, 남북 400m로 구성된 정방형의 작은 공간. 이곳에서는 남과 북이 공존하며 대립한다. 이 멀고도 가까운 두 나라에서는 동시에 거센 장대비가 쏟아졌다.
빈껍데기에 불과한 이념 전쟁을 넘어서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이념 전쟁 속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개인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분단의 반세기 그 오욕과 고통의 세월을 뛰어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이 작품 속에 특별한 이념이 어디에 존재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어떤 이념이란 허상이며 이름 붙이기에 불과하다. 아(我)와 비아(非我), 즉 대립항에 불과한 것이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이념이다. 이들이 서로를 부르는 ‘빨갱이’라든지 ‘괴뢰군’이라든지 하는 호명들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 전쟁은 ‘남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념 전쟁은 ‘남한’ 사회 내부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 1980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이들을 ‘빨갱이’로 매도한 역사를 지나왔다. 그러나 2020년대가 된 지금도 별다를 것 없다. 노동과 소수자 의제를 논하는 이들에게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은 이어지고 있다. 즉, 냉전 체제에 놓인 이 사회에서 아직도 ‘빨갱이’는 사어가 되지 못했고,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봉 25주년이 된 이 작품이 현시대에 가지는 시사점은 단순히 통일에 대한 염원만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자국 내에서도 이념 전쟁이 팽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허상뿐인 이념을 넘어, 이념 너머의 얼굴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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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입덕 부정기는 끝?났?다? 폭풍 성장해서 돌아온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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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작조 : 현애지상> 30초 예고편
냉전이 감도는 1931년 중국, 소련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4명의 특수요원은 작전명 '새벽'이라는 비밀 임무에 착수한다.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그들의 작전은 한 반역자에 의해 위협에 휩싸이게 되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말의 상황 속, 이들의 숨통은 점점 조여오기 시작하는데...
1931년, 암호명 '새벽' 조국을 위한 이들의 작전이 시작된다!